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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 충만함의 비결

하나님아들 2022. 5. 13. 17:54

성령님 충만함의 비결

 


1. 성령충만을 사모함

로이드 죤스는 성령충만을 위해서는 사모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로이드 죤스 D.M, op.cit., p. 99.

즉 자신을 드림과 함께 충만해 지고자 하는 소원이 있을 때 성령충만을 받기에 적합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7:37-38에서 성령의 충만을 위해 두가지 단순한 요구를 하셨는데 그것은 지배를 갈급해 할 것이며 성령의 지배에 의해 주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다. 위스트, K.S, op.cit., p. 10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이라는 말은 성령께서 신자 자신의 모든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을 지배하시는 분이 되시기를 바라는 신자의 열망을 말한다. 우리가 목마르지 않으면 물을 마시지 않는다. 우리가 성령의 지배를 바라지 않으면 우리는 그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성령이 우리들의 삶을 지배해 주기를 원하는 열망을 가져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케 되기 위한 소원 속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죄를 판단하시고 제하시도록 하는 원함 또한 포함되어야 한다. 이것은 세상의 끈과 악한 제도로부터 주님께로 분리 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살았다는 사실을 우리 삶 속에서 효력을 보기 원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성령의 열매를 맺기 원하는 소원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성령의 충만은 참으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과 그 값을 치를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들과 그것을 받는 것이 필요하여 다른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님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충만히 채워질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진정으로 성령에 의해 지배되기를 원하는 소원은 기도와 말씀의풍성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기도와 말씀의 충만이 성령충만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말씀과 기도가 뒤따르지 않는 원함은 지식적이고 피상적 사모함이다.

2) 죄를 고백함
스탓트는 성령충만의 은혜가 잃어진 때에는 회개와 기도로 그것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면서 성령은 죄 때문에 슬퍼하시며(엡 4:30) 죄인에게 채워 주시기를 그치신다고 하였다. 그런데 회개는 채우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박형룡, op.cit., p. 13.

토레이는 성령의 충만을 성령침례와 동일한 비상 은혜로 보면서 성령의 침례를 받는 7가지 방법을 행 2:38에 의해 열거했는데 첫 번째 단계로 회개를 들고 있다. R.A. Torrey, op.cit., pp. 182-230.

신약성경에서 회개는 마음의 내적 변화를 깊이 느끼게 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내적 변화는 전 인격을 결정하는 것으로 그들의 죄와 불신에서 떠나 그리스도에게로 향하는 인격을 의미했다. Ibid., p. 185.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용납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이루어 놓으신 사역임을 절대적으로 믿고 말씀의 빛에 따라 드러난 부분들을 버리고 어둠을 몰아내는 작업들이며 이것이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행 2:38을 통해 볼 때도 그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 약속되어 있다. 박형룡, op.cit., p. 15.
작은 죄라고 하는 것조차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며 이것이 성령의 충만을 막아 버리는 고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할때마다 마음에 떠오르는 그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레만 스트라우스는 생화 주위에 있는 모든 시기, 위선, 거짓, 더러운 것을 버리고 진실하도록 하라고 하면서 무례하고, 불친절하고, 상냥하지 않으며, 용서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회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죄를 회개하며 성결의 옷을 입고 사는 신자는 성령에 민감한 자이므로 성령 충만한 신자라고 하였다. 레만 스트라우스, 「성령론」, 생명의 말씀사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70), pp. 137-146.

그 외에도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생각나는 모든 죄를 자백하고 성령 충만함에 따라 발견되어지는 성품 중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점도 모두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허복구 목사도 성령충만의 8개 조건 중의 하나로 회개를 들고 있고 죄는 신자의 성령의 지배를 방해하므로 죄에서 돌아 설 때에 성령으로 충만케된다고 말했다. 허복부, 「성령과 말세」 (서울: 성광문화사, 1976), pp. 48-57.

죄인이 내재하는 성령님의 책망을 듣고 그 죄를 스스로 버리지 않는 한 성령님은 그를 지배할 수 없다. 성령을 거역하는 자는 결코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도 이러한 의미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3) 간구함
우리가 만일 성령으 충만을 받으려면 그 충만을 간구해야 하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정도는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구하는가 않는가에 달려 있다. 이것이 우리의 의무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이다. 우리가 성령을 위하여 간구하고 그래서 그를 충만히 받으면 우리는 우리로 하여금 그를 간구하도록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토레이는 성령침례를 받는데 마땅히 밟아야 할 여섯째 단계로 눅 11:13을 말했는데 R.A. Torrey, op.cit., p. 215.
성령충만을 받는데 있어서도 적용되는 말씀이다. “너희가 악할 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아니 하겠느냐?” 단지 천부께 구하는 것이다. 분명한 성령의 충만을 받게 하여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박형용 박사도 “신자가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하여 사람 편에서 이행할 의무들로 지적된 것이 여러 가지인데 기도에 의뢰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라고 하면서 ‘이 주장의 뒷받침으로 눅 11:13이 인용된다’고 했다. 박형용, op.cit., p. 12.
뿐만 아니라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을 위하여 간절히 기다려야 된다는 견해도 있는데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로 봄이 옳을 것이다.
팀 라헤이도 “자신을 살피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생각나는 모든 죄와 부족한 점을 모두 고백하고 성령의 인도하시에 따라 완전히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다음 눅 11:13을 따라 성령의 충만을 간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오순절 이후로는 그리스도인은 오로지 간구하였다고 하였다. 팀 라헤이, 「Spirit Controlled Temperament」, 생명의 말씀사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71), pp. 64-77.

4) 믿음
기독교의 모든 축복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다.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음으로써 죄책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며,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음으로써 죄의 세력에서 거룩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결의 영의 더욱 충만한 내주는 행위에 의해서 받게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 의해서 받게 된다. 팔마, op.cit., p. 203.
성령께서 우리로 성령과 그리스도를 구하여 믿음으로 기도하도록 하심이 사실이나 우리가 그의 내적 임재를 믿음으로 구하면 구할수록 우리들의 생명 가운데 더욱 충만히 오시는 것이 성경의 원리다. 왜냐하면 믿음은 성령과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Ibid., p. 109.

어네 빠쉬는 성령충만하기 위해 우리가 걸어야 할 첫 단계는 믿는 것이라고 하면서 믿음을 세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먼저 그를 믿고 모든 일에 그를 바라보기를 요구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하며, 둘째는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기 원하는 것을 믿어야 하며 셋째로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채워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하였다. 어네 빠쉬, 「성령의 인격과 역사」, 정학봉 역 (서울: 요단출판사, 1988), pp. 156-157.

믿음으로 받을 수 있는 성령의 약속은 갈 3:14에서도 발견된다. 본 절은 “이는 ...... 이는”이라는 두 병행구로 되어 있다. 전 절은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이 가진 이중적 목적을 밝히고 있는데 첫째는 축복이 이방인에게 미친 것이고 둘째는 믿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 주심이다. 두 번째 “이는”은 첫째 것에 의거하는 것(그 결과)이 아니라 병행된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둘째 목적은 약속의 성령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일찍이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고(요14:16-18, 행 1:4) R.C.H. Lenski, op.cit.,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서울: 백합출판사, 1979), p. 135.
이 약속은 오순절 때 성취되었는데(행 2:1-4, 33) 신약에서의 성령의 선물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가 없이 보편화되었고 또 성도와 더블어 성령께서 같이 계시는 것이다.(요 14:16)

케드린마살은 성령충만의 방법 7가지를 들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들일 때(요 3:8)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C. Marshall, 「보혜사」, 권명달 역 (서울: 보이스사, 1979), pp. 67-118.
이말에서 보건데 믿음은 성령과 그리스도가 충만히 거하시는 열쇠요 따라서 죄를 이길 능력을 얻는 열쇠다. 우리의 생명에 성령께서 충만히 거하시도록 믿음으로 기도하면 성령충만을 받게 될것이다.

5) 순종
많은 사람들이 이 조건으로 인하여 성령충만을 받지 못하거니와 또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어떤 조건으로보다도 이 조건에 의하여 성령충만의 경험을 맛보게 된다. 토레이는 성령충만 받는 방법 7단계중 4번째 단계에서 순종을 성령충만 받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R.A. Torrey, op.cit., p. 20.

그는 특히 순종을 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 순종은 행 2:38에서 우리가 주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모실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의 순종 즉 하나님께서 명하시는데 따라 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순종의 중심은 의지에 있다고 하였다. 우리의 의지를 맡기는 일이야말로 성령의 충만을 받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의 하나라고 했다.

결국 성령충만이 성령의 지배받음을 의미하는바 성령의 깨닫게 하심과 감동하심에 순종할 때 성령충만의 실제를 체험케 되며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자원하는 마음과 의지의 순종 없이 성령께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해 주시도록 기다리는 것은 성령님이 인격이시라는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음이다. 인격은 상대 인격을 인정하는 데서 그 관계가 유지되고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인격적 순종만이 성령충만을 가능하게 한다.
레만 스트라우스는 ‘빈 마음이 성령충만의 첫 조건이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고 완전히 복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성령으로 가득 채워 주실 것이다’고 했다. 레만 스트라우스, op.cit., pp. 137-146.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최후 분부하심을 순종한 무리들이 성령을 충만히 받았던 점으로 보아서도 그리스도의 분부하심에 대한 순종이 성령충만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동혁, 「성령론」 (서울 : 대한예수교 장로회출판, 1979), pp.52-57.

팀 리헤이도 어떤 종류의 거절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는 것은 성령충만을 방해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는 것은 성령의 충만을 방해한다고 말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것이 성령충만의 조건임을 말하고 있다. 팀 리헤이, op.cit., pp. 64-77.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성령의 모든 지시하심에 극히 유의해야 하며 성령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을 하고 그에게 예민해 지는 것이 그 한 비결이다. 그에게 복종하면 할수록 그의 소원을 더욱 더 지시할 것이며 더욱 더 고무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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