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은사와 어원과 바른정의 글/ 이반석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로마의 공화정이 끝나고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 30 - A.D. 14) 재임 시에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 땅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시작과 함께 이 땅에 선포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고 누리려면 선결 조건으로 회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시작하여 하나님 나라의 도래(到來)와 진행에 있어서 간과(看過)할 수 없는 것은 성령님( Holy Spirit )의 사역(使役)일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진행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사역(使役)인 것입니다.
예수님 승천 후에 그의 제자들에 의해 교회가 성립되었으며, 기독교는 잘 발달된 로마의 도로망을 통하여 로마 제국 내에 급속하게 퍼져나갔습니다. 기독교의 확산으로 이 땅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천국)는 성령님이 함께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님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인 것입니다(롬14:17).
1. 문제의 제기 성령님의 역사로 기독교 교회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근세에 극동의 한국에도 전래되어 지금까지 수많은 교회가 세워졌으며 한국 교회는 세계 선교사(宣敎史)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성장에는 수많은 성도의 순교와 기도가 있었으며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함께 수많은 은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성장이 멈춘 가운데 그동안 질(質)보다는 양적(量的)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성장에는 그동안 수많은 은사자들의 사역이 있었으며 교회사(敎會史)에서 이를 간과(看過)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지적할 수 있는 것은 한국 교회의 양적(量的) 성장에 있어서, 많은 사역자(使役者)들 가운데서 영적 은사들이 잘못 남용되거나 오용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에서의 은사의 오남용으로 은사자들은 자칫 영적으로 타락할 수 있으며 교회의 타락과 침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양적(量的)으로 성장한 가운데 요즘은 성장이 둔화된 상태라고 합니다. 작금의 한국 교회의 상태는 성장이 둔화된 가운데 군소교단의 난립과 무인가 신학교의 난립으로 신학 교육의 질적 저하와 함께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 목회자 후보자로 매년 수 천 명씩 배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인가 신학교라고 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는 알차게 교육시켜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는 신학교들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자질이 부족한 사역자들이나 평신도들이 신학적으로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가운데 영적 은사들이 남용 되었으며 오용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신학교의 난립과 은사 사역자의 범람(氾濫)으로 그 어느 때 보다도 성령님의 역사인 영적 은사들이 칼빈주의에 입각한 개혁 교회에서 먼저 신학적으로 제대로 정립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 됩니다.
2. 연구의 목적 팔레스타인(Phalestine)에서 시작된 기독교 교회는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役事) 가운데 은사자(恩賜者)들의 사역에 의하여 확장 되었으며 존립되어 왔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성령님의 역사(歷史)하심을 통한 은사자들의 쓰임 받았음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교회는 세계 선교사(宣敎史)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급격한 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양적(量的)으로만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가운데 많은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교계(敎界)와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켜서 교계는 물론이거니와 사회에서 지탄(指彈)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교회 사역자들의 윤리 부재에 기인한다고 생각 됩니다.
따라서 은사가 개인적인 자기 덕목에 머무는 것이나 자기 자랑으로 빠지는 유혹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합니다. 은사에는 선물과 과업, 은혜와 봉사, 자유와 질서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많은 사역자들 가운데서 은사자들이 범람한 가운데 일부 은사자들은 이 은사를 남용하거나 오용함으로써 교계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며 성도들을 오도(誤導)하기도 합니다. 은사자들의 오도(誤導)로 잘못된 성도들은 이단 사교에 빠지거나 신앙에 회의(懷疑)를 느끼고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사역하는 은사자들이 교회에서 은사를 나타내는데 있어서 교회에 덕(윤리)을 세우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삶을 보여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한국 교회의 사역하는 은사자들은 기독교 윤리에 바탕을 둔 모든 은사의 신학적 정립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에 본서가 기독교 윤리에 기초한 모든 은사의 신학적 정립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3. 연구의 범위 기독교 교회 역사(歷史)와 함께 시작된 성령님의 역사(役事)는 수많은 은사자들을 배출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전 세계적으로 확장시켜왔습니다. 기독교 교회의 역사는 구약사(舊約史)와 신약사(新約史)의 연장이라 할 수 있으며, 이에 성령님의 역사(役事)는 태초부터 진행되어 왔으며 따라서 성령님의 역사로 인한 성령님의 은사도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과 모세를 비롯한 수많은 예언자들(Prophets)과 왕들 가운데서 성령님의 은사는 나타났으며,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그분의 수많은 제자들 가운데서도 성령님의 은사는 나타났습니다.
교회의 역사와 함께 성령님의 은사는 교회를 확장하고 존립시켰습니다. 이에 본서는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하여 21 세기 현대까지 이르는 하나님 신앙의 발자취를 성령님의 영적 은사의 나타냄으로 보는 가운데, 구약, 신약, 그리고 오늘에 이르는 영적 은사를 살펴보려합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오늘의 한국 교계에는 많은 은사 사역자들이 은사에 관하여 신학적으로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가운데 은사를 남용하거나 오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에게 은사에 관하여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책임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동안 국내 신학계에는 보수 및 근본주의 영향으로 은사에 관한 연구가 소홀히 취급되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영적 은사에는 신비적인 요소가 있기에 지적이며 학구적인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은사에 관한 연구는 자연히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한국 교계에 영적 은사에 관한 외국 신학자들의 번역서 및 국내 신학자들의 연구 논문과 저술이 많이 나와야 될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부족하나마 몇몇 연구 논문과 여러 책들을 참고하여 영적 은사의 정의와 은사의 발자취, 은사의 종류 그리고 은사에 대한 분석을 서술하려 합니다.
1. 은사의 어원
3 . 은사의 분류와 특성 모든 성도들은 한 가지 이상 몇 개의 은사를 받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봉사할 때 ‘선지자들과 교사들’의 명단에 들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행13:1). 그리고 그 후에는 ‘사도들’이라고 불렀습니다(행14:14). 그 이전에 바나바는 권위자(Son of Encouragement)로서 구제하는 일을 하였고 그의 별명이 나타내듯이 그는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었습니다(행4:36-37).
바울은 병 고치는 은사와 함께 능력 행함, 방언의 은사를 받았던 것으로 증거 되는 가운데 바울은 적어도 5 가지 정도의 은사를 받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성경에서 체계적인 은사목록을 작성한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믿음의 분량대로 은혜 "카리스마타"(karismata)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참된 성도들에게 예외없이 주어진 사역을 위한 성령님의 은사요, 둘째는 새롭고 뛰어난 능력이 그 은사가 시행될 때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서신에 의하면 각 사람에게 성령님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고,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다고 말함으로써 교회의 유익과 성장을 위해서 은사를 주셨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기록에서 좀 혼돈되는 것은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한 가지의 은사를 받은 것같이 보이지만 그 기능이 여러 가지로 충만히 나타날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 은사들이 서로 병합하여 나타나고 중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이 받은 은사 중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중복되어 언급되었고 모두 세분해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저들은 5 가지 이상의 은사를 소유한 사역자들일 것입니다.
(엡4:11)에서도 목사와 교사는 한 그룹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함께 있는 디모데와 실루아노를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하였고 실라를 ‘예언자’라고 언급하였으며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성경상 두 곳에서 ‘반포자, 사도, 교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예언자, 교사, 권위자, 목사 또는 전도자 등은 자체의 의미로 희미하게 구별되지만 가르치는 것과 권위하는 일은 예언자적 기능의 일부입니다. 효과적으로 교회를 세운 사도는 또한 전도자로서 전도한 것이며 저들을 가르치고 권위함에 있어서는 사도적인 사역의 필수적인 부분을 감당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은사들은 스펙트럼(분광기)과 같이 나타납니다. 각각의 색깔은 붉은색, 파란색, 남색 등으로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이와 같이 모든 은사도 분명한 목적하에 주어지는데 이웃 성도들과 중복되는 은사도 있습니다. 한 개인이 그 많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은사를 개인적인 스펙트럼에 나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몇 개의 연관된 은사는 소유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교회의 유익과 성장을 위해서 세운 성령님의 은사목록은 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 12장-14장, 에베소서 4장 등에 나타나 있으며 그밖에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은사를 합하면 30여 가지가 됩니다. 성령님의 은사를 분류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그 방법마다 다 일리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고린도전서 12장 8-10절에 나타난 9가지 은사목록입니다. 또한 28절에 나오는 은사 목록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의 목록으로부터 시작합니다(사도, 예언자, 교사). 그리고 순위를 가리키기 위해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라는 순서를 넣고 있습니다. 둘째로, 네 번째와 다섯 번째(기적과 병 치유 은사)에서는 다시 은사들(χαρισμάτα)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단순히 “그 다음은” 으로 연결 됩니다(고전12:9-10)에서는 ‘병 고치는 은사’와 ‘기적’이 순서가 뒤바뀌어져 있습니다. 여섯 번째부터는 은사들을 그냥 나열합니다. 방언의 은사가 마지막에 오는 것은 그 자체가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이었음을 부각시키려는 바울의 의도인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모두는 하나님, 주, 성령님으로 불려지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적 선물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은사를 거론할 때 성자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의 사역을 제외시켜 놓고 성령님의 사역에만 배타적인 강조점을 두다보니 그들의 은사 경험에 있어서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께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셨는지 놓쳐버리는 우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바울의 주장대로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기초해서 성령님을 통해 베푸시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3. 은사와 윤리 성령님의 대표적인 사역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성령님의 은사로 나타나는 카리스마적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님의 열매로 나타나는 윤리적인 사역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인 은사들을 성령님의 열매에 종속시킴으로써 그의 윤리적 전망에 통합시킵니다. 바울은 고전 12-14장에서 영적인 은사들의 문제가 무엇보다도 윤리적인 문제임을 보여 줍니다.
고린도교인들이 비록 영적인 충만을 소유하고 여러 비상한 은사들을 받았다고 주장하더라도 그들은 분쟁, 싸움, 사랑의 결핍, 비평, 불화, 그리고 부도덕과 같은 다른 영들의 지배를 받아 ‘도덕적인 위기’(moral crisis)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13장을 영적 은사들을 논의하는 맥락에 곧바로 위치시킨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3:4-7)에 묘사된 대로 ‘사랑’을 은사들이 행사되어야 할 표준이며 기초임을 제시합니다.
넷째로, 성령의 은사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선물로서(고전12:7) 은사자 개인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신앙생활까지도 견고케 하고, 강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신자들이 신령한 은사를 소유함으로써 믿음 생활도 견실해지고 다른 사람의 믿음 생활도 강하게 붙들어 주는, 이른바 교회의 ‘덕을 세우는’(upbuild)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섯째로, 성령님의 은사는 종말론적인 선물로서, 사도 바울은 (고전1:7-8)에서 은사와 재림을 서로 긴밀하게 연결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신자들을 자신의 자녀로 부르셨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은사들을 주셔서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 교회 전체를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확증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여러 서신들을 통해서 ‘성령님 안에서의 삶’을 자주 ‘믿음의 삶’과 거의 같은 맥락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동일한 사실이 영적인 은사들에도 적용됩니다. 바울은 믿음을 카리스마 전체와 관련시킵니다(롬12:3,6). 이 점에서 은사들을 사용하는 것은 믿음이 은혜를 그 활동 속에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윤리와 은사, 또는 성령님의 열매와 성령님의 은사 사이에 날카로운 구분을 긋는 것을 반대하는 주장은 어느 정도 정당화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언의 은사인 경우에 교회에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안위하기’ 위해서 주어지므로, 예언은 신자들에게 그들의 도덕적이고 영적인 상황 속에서 실천적인 지침을 제시하는 ‘윤리적 차원’을 분명히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특정한 은사를 소유하는 것은 개인 신앙의 능력이나 도덕적 성취의 정도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은사를 경험했다고 해서 반드시 신자를 더욱 거룩하고 윤리적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며 보다 영적인 사람임을 보여주는 징표도 아닙니다. 바울 서신에 의하면 진정한 영성(靈性)의 지표는 언제나 성령님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논증되고 나타나며, 신자가 얼마나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았는가에서 구체화되는 가운데, 바울은 ‘사랑’을 영적인 은사들을 시험할 수 있는 규범 또는 표준으로 설명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카리스마는 사랑의 도구여야 하고 봉사자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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