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발을 씻어준 이유* 요13 : 3-11 / 扈一麥 목사
우리가 매 주일 예배를 드릴 때 주기도문송을 함께 부르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나서 꼭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참회기도입니다. 불과 1, 2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한 주간 동안 주님 앞에서 잘못한 것이 있는지 하나 하나 생각하 면서 "주님, 또 이런 일을 저질렀네요. 또 이런 나쁜 생각을 가졌네요."하고 우리 각자가 주님 앞에 참회를 합니다.
물론 교회에 나와서 참회기도 시간에만 참회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각자 시간을 내어 한적한 장소를 찾아서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마다 "주님, 나에게 이런 죄가 있습니다. 용서해주옵소서." 하고 참회 기도하는 것이 일상생활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이와 같은 참회기도가 얼마나 중요하며, 얼마나 큰 복이요 특권인가 하는 것을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세상에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다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구질구질하게 날마다 무엇이 잘못되었으니 용서해 달라고 눈물을 짜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것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았다는 분명한 믿음이 없는데서 오는 불신앙 행동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바로 믿는 사람이면 당연히 잘못된 일에 대해서 참회 해야 마땅한데 '참회라는 것이 필요가 없다.' 고 가르치는 이단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듣기에는 참 그럴듯한 말입니다. 그래서 자칫 "아, 그렇구나. 용서받았다고 하는데 구질구질하게 또 용서해 달라고 그럴 필요가 뭐가 있는가?"하고 잘못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단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이단이 된 것은 그들이 하는 말 전부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한 십분의 일만 잘못되어도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회개가 필요 없다고 하는 것만큼 무서운 교리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듣고 우리가 매일 참회하는 기도가 얼마나 귀중한 것이며, 얼마나 생명의 샘이 되는 것인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욕하는 것과 발을 씻는 것 예수님이 발을 씻기시기 시작할 때는 한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15절을 보십시 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쉽게 말해 '형제를 섬긴다는 것이 무엇이며, 사랑으로 봉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가 너희에게 모범을 보여줄테니 너희도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원래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드디어 베드로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돌출적인 반응 때문에 발 씻는 사건의 내용이 엉뚱한 데로 자리를 옮기는 것을 봅니다. 가끔 가다가 우리도 그런 경우를 경험하지 않습니까? 잘 이어 나가던 이야기가 중간에 어떤 사람이 엉뚱한 말을 해서 완전히 다른 데로 빗나가는 경우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바 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발을 내놔라. 내가 씻어주마." 하시자 베드로는 "주님, 꼭 내 발을 씻으셔야 합니까?" 하고 버티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네가 지금은 왜 내가 네 발을 씻겨주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지나면 다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발을 내 놔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아니오. 절대 제 발을 씻기지 못하십니다." 하고 버티었습니다. 주님이 "내가 만일 네 발을 안 씻기면 너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잘라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화들짝 놀라서는 이렇게 요청을 합니다.
"주님, 정히 그러시다면 내 머리와 내 손발도 다 씻어 주세요." 그러자 주님은 너무나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발밖에 씻을 것이 없다. 이미 깨끗한 사람은 발만 씻으면 되느니라." 예수님 께서는 목욕하는 것과 발씻는 것을 비교하시면서 그들의 발을 씻기는 것에 무슨 영적인 진리가 담겨 있는지 교훈 해 주셨습니다.
◆목욕과 발 씻는 것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목욕은 한번 하는 것이요, 발은 자주 씻는 것입니다. 요즈음이야 온,냉수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목욕을 한번 한다'는 말이 이해가 안될지도 모릅니다. 거의 날마다 목욕을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목욕은 '한번'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목욕은 일년에 많이 해야 두 번 했습니다. 여름에 더울 때 냇물에서 멱을 감는 것을 제외하고는 추석 명절과 정월 초하룻날 두 번 하는 것입니다. 그 날이면 어머니가 가마솥에 일부러 물을 데워서 우리를 발가벗겨 놓고 피가 맺히도록 씻겨댑니다. 다음에 목욕할 때까지 한 일년은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목욕할 때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어머니는 때를 마구 벗겨대고 우리는 막 비명을 질러대며 그자리를 빨리 벗어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유대 나라도 그렇습니다. 이 나라는 비가 많이 오는 나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요즘처럼 집집마다 목욕탕을 만들어 놓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목욕은 한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 나라에서 발은 매일 씻어야 했습니다. 워낙 건조 하여 먼지가 많았고, 샌들 모양의 신발도 먼지로부터 발을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유대 나라 상황을 생각해 볼 때 목욕은 한번 하는 것이요, 발은 매일 씻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목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목욕하는 것은 신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속죄'를 말합니다. 혹은 '칭의'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죄를 무조건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속죄'라고 합니다. 완전히 용서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용서합니까? 죄인으로 태어난 신분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눈을 뜨고 귀로 듣기 시작하면서 지은 모든 죄와 아직 짓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지을찌 모르는 그런 모든 죄까지 통틀어 다 용서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속죄', 혹은 '의롭다 함을 받았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말씀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아직도 죄가 남아 있고 아직도 더러운 생각하고 있고 아직도 더러운 죄인의 신분으로 남아 있는 우리를 무조건 값없이 은혜로 의롭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목욕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나면 바로 이런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 의롭다 하신다, 무조건 용서하신다는 말에는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골로새서 2장 13절 말씀대로 '모든 죄를 용서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히브리서 10장 14절 말씀대로 '영원히 용서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완전히 팔자 고치는 것입니다. 모든 죄가 다 용서 받습니다. 영원히 용서받습니다. 이것이 목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꼭 한번 있는 사건입니다. 반복이 안됩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에 단 한번으로 끝나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롬8:1).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예수그리스도를 믿은 자는 이미 온 몸이 깨끗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즘 참 답답하고 분통도 터지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값없이 의롭다하시고 은혜로 영원히 용서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찬송이 나오지 않습니까?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여기서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목욕을 하고 보니' 라는 말입니다. 이미 목욕을 한 우리에게는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발씻는 것은 무엇입니까?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참회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우리를 의인이라고 보시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죄 짓지 않고 사는 날이 있습니까? 아마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호목사도 날마다 죄를 많이 짓긴 많이 짓는 모양이다. 무슨 죄를 짓기에 날마다 죄 짓는다고 그러나?"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몰라서 하는 말씀입니다. 죄 안 짓는 날이 있습니까? 해수욕장에서 샤워하고 수건으로 깨끗이 닦고 새 옷을 갈아 입어도 밖에 나와서 조금만 걸으면 신발이 다시 엉망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집에 가면 또 씻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세상에 사는데 과연 죄를 안 지을 수 있습니까? 어디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또 하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대로 사랑합니까? 못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거룩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거룩하게 살려고 해도 거룩하신 그분 앞에서는 모두가 흠투성이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죄 안 짓고 산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했지만 우리 마음이 얼마나 자주 세상에 끌려 다닙니까? 죄 안 짓고 사는 날이 단 하루도 없습니다. 게으름 피는 것도 죄요, 마음에 욕심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도 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139:23,4). 쉽게 말해 "하나님, 내 마음의 생 각과 내 무의식의 생각까지 하나님께서 다 점검해 보세요. 무슨 악한 행위가 내게 있나 살펴보세요. 있으면 내게 가르쳐주셔서 나로 회개하게 하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여 주세요."하고 간구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이기에 날마다 발을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그의 발을 씻겨주셨지만 그는 깨끗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목욕을 안한 자, 곧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목욕을 한 자들입니다. 우리 몸이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기에 작은 죄라도 참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회개는 놀라운 특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잘못했다고 참회하는 기도를 귀찮게 여기지 마십시오. 이것만큼 우리에게 행복한 기도가 없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용서를 보장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참회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 다.
◆참회는 막힌 것을 없앤다. 우리는 자범죄까지도 예수님이 씻어주셨던 것같이 서로 씻어 주어야 용서가 됩니다. 그러면 왜 참회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까? 베드로가 "절대 자기 발을 씻을 수 없다"고 하자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발을 씻지 않으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느니라." '상관이 없다'는 말은 '교제할 수 없다', '동행할 수 없다'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매일 주님 앞에 발씻듯이 참회하고, 씻김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주님과 우리 사이가 잘못되지 않고 주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에 막히는 것이나 어색한 것이 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아니면 수시로 주님 앞에서 발을 씻듯이 회개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나 부모 자식간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관계 형성은 비교적 쉬울지 모르 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서로간에 막힌 것이나 낀 것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가 끼면 안됩니다. 죄가 끼면 하나님이 너무나 불편해 하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긴밀한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그런 관계입니다. 이 세상 끝날 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고 동행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참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발씻을 물동이를 갖다 놓으시고, 발을 닦을 대야를 갖다 놓으시고, 발을 닦을 수건을 갖다 놓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매일 참회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절대 우리와 자기 사이가 이상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죄를 몇 번이나 지었든 간에 하나님 앞에 참회하기만 하면 그 죄를 깨끗이 씻어주시고 용서해주실 수 있도록 해 놓으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우리가 주기도문을 보아도 이와 같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려면 이 두 가지는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육신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침, 점심, 저녁을 잘 먹고 소화해야 하고, 몸이 조금이라도 잘못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이 어떤 기도를 주셨습니까?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육신이 살기 위해서는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를 날마다 해야 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행복한 신앙 생활을 하려면 또 하나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매일 범하기 쉬운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래야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잘못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라고 날마다 기도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지 않도록 하 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날마다 발을 씻는 것 같이 회개하기만 하면 그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십니다. 그리고는 항상 자기와 교제를 나누는 사람으로, 항상 하나님이 동행하는 사람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간구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간구는 항상 함께 따라 다니는 간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일용할 양식을 위하는 것만큼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 나의 죄를 용서받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까? 어거스틴은 말년에 그렇게 경건하게 생활했지만 날마다 시편 51편을 가지고 참회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시편 51편을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경건하게 살았음에도 왜 이렇게 날마다 참회의 기도를 드렸을까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과 더 긴밀한 관계를 갖기 위해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끼는 것이 없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자기를 보실 때 불편하게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계속해서 이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참회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과 같이 고통스럽고, 불안하고, 후회스럽고, 누군가를 향해서 돌멩이를 던지고 싶은 충동도 느끼는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주님과 더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이 내 영혼을 소생시키는 음성이 되어야 하고, 이런 때일수록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가까이 다가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그 황홀함과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과 슬픔과 분노를 극복 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더 가까워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이 우리를 보실 때 불편해 하실만한 것은 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보십시오. 부도가 나서 직장에서 쫓겨나고,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은 이런 상황 속에서 믿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친구를 믿습니까? 회사 상관을 믿습니까? 끄떡없다고 생각하던 기업을 믿습니까? 은행에 쌓아 놓은 돈을 믿겠습니까? 그렇다고 여러분 자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 도대체 믿을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믿을 분은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고 주신 주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우편에서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예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떠나도 예수님은 안 떠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상황이 어떻게 되든 간에 마지막으로 찾아갈 분도 예수그리스도시요, 마지막으로 기댈 분도 예수님이요, 마지막으로 해답을 주실 분도 예수님이신데, 그 주님과 우리 사이에 껄끄러운 것이 끼어 있음에도 참회하지 않고 버틴다면 우리가 그만큼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날마다 발을 씻듯이 참회하는 것을 귀찮게 여긴다면 여러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목욕을 시켜주었으니 발만 씻으면 된다는데 왜 안 씻습니까? 우리가 부지런히 발을 씻으면 열 번, 백 번, 천 번이 라도 다 용서해 주신다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참회하면 되는데 왜 참회하기를 싫어합니까? 그리고 우리가 참회하면 할수록 주님과 우리 사이가 더 끊을 수 없는 관계로, 무엇이나 다 이야기하고 주고 받을 수 있는 더 깊은 관계로 맺어지는데 왜 참회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참회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두 가지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시34:18-9). 첫째는, 죄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중심으로 통회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가까이 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아주 가까이 오셔서 나의 신음소리까지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와 같이 참회하는 자를 구원해 주시고, 모든 환난에서 건지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5절 말씀대로 우리가 환난 날에 부를 때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 나라가 바로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대통령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경제 부서 공무원들이 철저하게 참회해야 합니다. 우리부터 참회해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만 바로 하면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십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다시 주목 하실 것입니다. 우리 자신부터 돈 좀 있을 때 거드름 피우고 허세 부리던 것, 진실로 참회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이 가까이 하십니다. 가까이 오셔서 우리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염려하시면서 우리를 위로하실 뿐 아니라 갈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이 환난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를 우리가 받읍시다. 이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살 수 없습니다. 사방을 둘러 봐도 답답한 일들 밖에 없는 참으로 어려운 때입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의 허물을 회개하고 주님 앞에 가까이 가면 주님께서 우리 가까이 찾아오시고, 모든 고난에서 우리를 건져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답답한 처지에 놓여 있는 분들도 오늘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밤이고 낮이고 읽으며 은혜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마음에 생각나는 죄가 있으면 서슴치 말고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 처럼 서로 용서하는 발씻기는 그런 삶을 사십시요. 그러면 주님이 바로 우리 곁에 계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그 모든 고난에서 건져주시는 것을 우리가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떠오르게 하시는 우리 하나님 되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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