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지도자의 원칙론
[홍성개 목사]
역사에 남는 봉사자가 되자
성직에 대한 확고한 소명의식 우선돼야
교회관·예배론 원칙지키며 영적 권위 회복
현대 교회는 교회 지도자들의 지도력과 영적 권위가 점점 상실되어 가고 있다. 그 이유는 단적으로 영적 지도력을 가질 수 있는 원칙을 모르거나 원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적 지도력을 갖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의 기본적인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제 영적 지도력의 원리를 살펴보고 자신이 그 원리에 적용되어 있는가를 점검해서 영적 권위를 회복해야 겠다.
성직에 관한 소명
영적 권위를 회복해서 지도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선 ‘성직에 관한 소명’이 확고해야 한다.
계시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자를 직접 불러서 사용하셨다. 그것은 일종의 기적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 그러나 직접 계시의 시대가 지나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직접적인 부르심이 아니라 일반적인 방법으로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이 일반적인 부르심은 주로 두 가지 단계를 거치게 된다.
첫 번째는 내부적인 단계이다. 헤르만 바빙크는 소명의 내부적인 단계를 성직을 감당할 수 있는 은사를 받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고 또한 그 성직을 지속적으로 앙망하는 순결하고 올바른 열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는 외부적인 것으로 성직 받은 자는 교직자의 인도를 받아 회중의 투표를 거쳐 안수를 받는 단계로 공교회의 인정을 받는 일이다. 여기에서 안수란 사람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와 함께 안수하는 순간 그 직에 합당한 특별한 은혜를 부여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직을 감당하는 사람이 그 소명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르시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태초부터 불러 세웠다는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성직에 확고한 소명이 없다면 그는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았고 자신의 뜻대로 성직에 나선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교회관의 확립
다음의 원칙은 교회관에 대한 것이다. 성직의 일터는 교회다. 그러므로 그 교회에 대한 생각이 확립되어야만 힘이 솟아나고 지도력도 갖출 수 있다. 예전에 교회를 전투적인 교회, 승리하는 교회, 폭발하는 교회 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4권 제1장에서 “참된 교회의 일치를 보수함. 그 이유는 모든 경건한 사람들의 어머니인 때문이다”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즉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와 같이 포근하고 따뜻하고 모든 것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거룩한 곳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무지하고 나태하고 변덕스럽다. 이런 천성으로는 신앙을 받아들이고 신앙 안에서 살려해도 올바르게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한 것이다. 교회가 부족한 자녀들을 불러모아 양육하고 인도하면서 성숙한 신자가 될 때까지 어머니와 같은 배려로 그들을 인도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어머니 품에서 젖을 먹고 자라듯이 우리의 신앙은 교회 속에서 자라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어머니와 같은 교회를 감당하고 있는 우리 목사 장로들은 성도들을 보듬고 인도하고 양육해야 한다. 목사는 말씀이라는 젖을 통해서 성도들을 양육하고 장로들을 덕이라는 젖을 통해 성도들을 돌봐야 하는 것이다.
예배론의 확립
마지막으로 예배론이 확고해야 한다. 교회는 예배하고 전도하고 교육하고 봉사하는 곳이다. 예배는 하나님과 그 백성간의 공적인 만남으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는 말씀처럼 오직 하나님을 향해서만 드려야 한다.
그 예배에는 두 가지 요소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님을 기준으로 하는 객관적인 요소와 죄인의 심령을 울리는 감동인 주관적인 요소가 그것이다. 예배 시간중 드리는 찬송이나 기도 헌금 찬양 축도 이 모든 것은 이 두 가지가 함께 함유되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께는 영광과 존귀 감사 찬양이 드려지고 죄인의 심령에는 사죄 축복 치유 고난의 해결 신비한 영적 교제가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인간이 만들고 하나님이 영감을 불어넣는 작품과도 같은 것이다.
역사에 남을 봉사자가 되자
이제 우리는 영적 지도력의 중요한 원칙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소명을 받고 이러한 원칙을 지키고 모든 성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소명에 시간과 정력을 바치는 모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로마서를 보면 바울은 15장에서 결론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다시 16장에서 자신의 사역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동역자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있다. 바울은 그곳에서 그 누구보다 여자 뵈뵈를 처음에 적고 있다. 바울에게서 잊을 수 없는 동역자 가운데 뵈뵈가 첫 번째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리도 역사에 남는 봉사자가 되자. 내게 손해가 있더라도 교회만을 위해 살고 이 한국 교회를 세계 교회로 펼치려는 사명감으로 살자.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영적 지도력을 회복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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