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와 이스라엘의 멸망!
남 유다입니다.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신바빌로니아)에 의해서 멸망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입니다. 기원전 722년에 앗시리아(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했습니다.
두 나라 모두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로로 멸망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남 유다입니다.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신바빌로니아)에 의해서 멸망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입니다. 기원전 722년에 앗시리아(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왕은 엘라의 아들 호세아였습니다. 이때 북방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의 왕은 살만에셀입니다. 이 내용은 구약 열왕기하 17장에 나와 있습니다.
남 유다입니다.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신바빌로니아)에 의해서 멸망했습니다. 멸망 당시 유다의 왕은 시드기야였으며, 바벨론의 왕은 느브갓네살이었습니다. 이 내용은 구약 열왕기하 25장에 나옵니다.
두 나라 모두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멸망했다고 성경은 적었습니다. 우상숭배란 말에는 많은 의미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신당부를 하는 많은 내용의 언약들이 있었습니다. 그 언약들의 요점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에 사는 민족들을 따라 행하지 말며, 그들과 결혼하지 말고, 서로 거래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가나안 입성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당시 가나안땅에 있던 이방민족들을 다 쫓아냈어야 합니다. 이건 하나님의 명령이었고, 그래서 이스라엘은 싸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민족들을 다 몰아내기 전에 지쳤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그 땅의 민족들을 어느 정도 남겨 두고 같이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이방 민족들과의 교통이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우려대로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우상숭배에 빠져 들게 됩니다.
하지만 역대하를 자세히 읽어보게 되면 역대기의 저자는 열왕기서의 저자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유대 민족의 식민지 생활을 적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안식년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매년 7년째는 땅을 쉬게 하고 빚을 탕감하며 은혜를 베풀어야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그것을 단 한번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기에는요. 그래서 땅이 쉬어야 되는데, 쉬지 못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땅에서 흩으심으로 강제로 쉬게 하셨다는 표현이 역대하 마지막 장에 나옵니다.
하여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 돼어서 북방 이스라엘이나 남방유다는 다 그 당시 강대국의 침략을 받게 됩니다. 북방 이스라엘이 먼저 망한 이유는 그 나라에 선한 왕이 하나도 없이 모두 악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남방 유다는 선한 왕이 간간히 명맥을 이으며 하나님의 법을 충실히 실행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북방 이스라엘은 침략당한 후에 완전히 흩어져서 다시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오지를 못했습니다. 하지만 남방유다는 포로로 잡혀간 70년 뒤에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남방 유다도 흩어져서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되는게 상식적인 일인데,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드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남방유다가 멸망하기 전에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이 70년간 포로 생활을 할 것이라고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기간 동안에는 힘들더라도 반항하지 말고 순종하면 지내라 이런 식의 말씀도 하셨죠. 왜냐하면 그 70년조차도 하나님은 그분의 구속의 계획 속에 포함을 시키셨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9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간절한 기도는 70년 포로 생활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예레미아의 70년 예언을 이해한 다니엘이 하나님께 그 약속을 실행시켜 달라고 애원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을 잘못 이해하고 있던 그 당시 유다인들은 이 예레미아의 예언조차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귀환령이 떨어지고 다시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하라는 령이 나왔을 때 대부분의 유다인들은 그냥 바벨론에 남게 됩니다. 전체 인원 중 10분의 1도 안되는 인원만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세상 역사의 뒤에는 선악간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유대민족을 이 땅에서 없에려는 사단의 계획은 강대국은 선동하여 이스라엘과 유다를 멸망시킵니다. 왜냐하면 이 유다민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메시야가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남 유다멸망 과정
남 유다왕국이 망하면서 유대인들은 4차에 걸쳐서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첫번째는 B.C.605년에 다니엘을 포함한 왕족들과 귀족 계급이었고, 두번째는 B.C.597년에 여호야긴 왕을 포함한 일반 백성들과 모든 방백들과 군사들 1만명 외에 많은 기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B.C. 586년에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이 최후로 함락될 때 시드기야 왕을 포함한 백성들이었습니다. 네번째는 B.C. 581년 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의 시위대장인 느부사라단아 마지막 남은 유대인들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렇게 대부분의 유대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유대 본토에 남겨진 백성들은 극히 미천한 자들로 토지를 갈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자들은 불과 2만 명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멸망한 후 각처로 도망갔던 유대인들이 다시 모여 왔으나 황무해진 그 지역의 형편은 기아와 무법천지였습니다.
반면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들에게 바벨론 정권은 비교적 많은 자유를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집을 짓고 사업을 할 수도 있었으며, 관리에 등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성전은 없었지만 종교의 자유도 허락되어서 성전을 대신한 회당을 중심으로 그들의 신앙을 유지하며 민족의 흩어짐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런 환경에서 신앙과 민족의 순수성을 유지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남유대왕국의 사람들로서 유대지파와 베냐민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왕국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의 나머지 10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앗수르(앗시라아)에게 망하고 일부는 포로로 잡혀갔으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 백성의 대부분을 강제로 자신들의 다른 영토로 이동시켰고,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이방 민족을 이스라엘과 혼합되게 하여 새로운 사마리아족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스라엘의 잊혀진 열 지파로 사라져 갔습니다.
바벨론제국에 포로로 있던 유대인들은 바벨론이 바사(페르시아)에게 망한 후, 바사제국의 고레스왕(고레스2세)이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락함에 따라 1차 귀환을 하였습니다. 그 때가 B.C. 538-537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도자는 스룹바벨이었습니다. 그 후 B.C. 457년 아닥사스다왕 때에 에스라를 지도자로 2차 귀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B.C. 444년 2차와 같은 아닥사스다왕 때에 유대인 느헤미야가 유대지방의 총독이 되어 민족을 이끌고 3차 귀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포로귀환 후 활동하던 선지자들은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입니다.
바벨론제국이 B.C. 586년에 유대왕국을 멸망시키고 B.C. 538년에 바사에 의해 바벨론이 망하게 되는 그 사이에 인도지방에서는 불교의 석가모니가 태어나고, 중국에서는 유교의 공자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에서는 지배계급인 귀족들에 대한 평민들의 불만이 폭력으로 귀족정치를 타도하고 평민에 의한 독재정권을 세우는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런 독재자를 참주라고 부르며 그런 정치를 참주정이라고 부릅니다. 그 참주정은 민주주의의 시효로 알려지는 그리스의 B.C. 508년의 민주정치의 도입까지 이어졌습니다. 민주주의(Demokratial)란 말은 민중(Demos)이 권력(Kratos)를 가지는 정치체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이 망하고 바사가 근동지역을 지배하던 때인 B.C. 509년에 유럽의 이탈리아반도에서는 로마의 공화정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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