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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 계획(GOD'S PLAN OF THE AGES)

하나님아들 2020. 8. 27. 09:04

하나님의 구원 계획

(GOD'S PLAN OF THE AGES)

 

루이스 탈보트 著

(BY LOUIS T. TALBOT)

 

권 혁 봉 譯

 

역자의 말

 

그리스도의 처녀탄생 예언, 베들레헴에서의 탄생 예언, 애굽 피신 예언, 나사렛 거주 예언, 십자가 상의 죽음과 부활, 승천 예언등 예수님에게 관련된 모든 예언이 역사적으로 다 이루어졌다.

그런데 한가지 예언만이 남았다. "다시 오리라"는 예언이 그대로 있다.

[탈보트 신학교]의 교장이신 [루이스 탈보트] 박사의 본서는 우리에게 구원사적 관점에서 우주와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질서와 섭리를 펼쳐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의 우주 및 시대계획과 특히 재림 및 미래상태에 대해서는 구구한 해석이 있다. 역자는 본서를 단지 옮겼을 뿐, 이에 대한 동의나 선택의 과제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렸다. 그러나 힘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본서는 은혜와 소망을 불어 넣어 주는 책이었다는 사실이다. 선물을 사가지고 오시겠다는 약속을 뒤로 남기고 멀리 가신 아버지를 기다리며 선물얘기를 오손도손 나누는 어린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즐겁고 의의가 있다. 더욱이 말세를 당해 온갖 세상만을 내려다 보며 하늘 쳐다 볼 줄을 모르는 오늘의 많은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려 주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갖게 하는 데에 본서는 당당히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사랑하는 독자여, 우리는 소망 속에 살면서 은혜를 받자. 하나님의 자상한 우주 계획과 섭리를 찾아보자.

 

1973. 4. 2 역자 識

 

1. 지구의 태고시대

 

우리는 오늘 만물의 시작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을 다루고 오셨는가에 대한 포괄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세대 계획을 공부하고자 하는 바이다.

사람들이 사실상, 성경이야말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심중에 품고 계셨던 위대한 계획을 계시하고 있는 책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명백히 이해하는 일이다.

내가 처음 미국의 시카고시에 살려고 왔을 때에, 내 친구 한분이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먼저 이 시의 지리에 익숙하도록 만들려고 했다.

이 친구는 나를 가장 높은 빌딩의 꼭대기로 데려 가서 시카고시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이 친구는 나에게 이 시의 동쪽의 미시칸호를 비롯해서 북쪽, 남쪽, 서쪽의 방향부터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해서 내 마음 속엔 먼저 시카고시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가진 후 나는 시카고시의 거리, 건물, 그리고 유명한 장소등 세부적인 것을 아는 데에 그리 힘들지 아니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는 태도도 이와 마찬가지다.

앞으로 계속될 몇몇 강의에서 나는 성경의 세부적인 면까지를 파헤치려고 목적한 것이 아니라, 다만 여러분에게 영원 과거에서 시작하여 영원 미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시대를 따라 어떻게 인간을 다루어 오셨는가에 대한 세대의 개요를 제시코자 하는 바이다.

따라서 오늘 아침엔 영원 과거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우주가 있기 전, 단 하나의 유성도 존재하기 전, 천사까지도 창조되기 이전의 때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우리는 시종이 없는 사실들을 알아보기 위해 일단 영원 과거로 되돌아가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4가지 사실을 바라보기로 한다.

그 4가지 사실은 (1) 영원하신 하나님, (2) 영원하신 아들, (3) 영원하신 성령, (4) 영원한 목적등이다.

 

영원하신 하나님

 

"영원한 하나님께서 네 피난처가 되시며 영존하는 팔들이 밑에 있도다." (신 33:27)

여기 인용한 잘 알려진 아름다운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를 위한 약속 이상의 어떤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이 말씀은 피곤한 자에게 힘을 솟게 하고, 넘어지는 자에게 확신을 안겨다 주는 아름다운 약속이 되지만 사실은 그 이상의 내용도 포함하고 있으니 곧 "하나님은 영원하시다"는 사실을 분명히 설명해 주고 있다.

믿음의 눈은 위를 쳐다보고 하나님을 본다. 쳐다 볼 때 거기엔 하나님이 서 계신다. 살아 계시는 인격자로 존재하고 계신다. 단순한 무형적인 세력으로서가 아니라 인격자로서 가져야 할 모든 속성을 지닌 하나님으로 계신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활동하시며, 존재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의지활동을 하시며, 사랑하시며,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며, 하나님의 오묘한 생각을 다 관통하신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시며 사랑이 충만하신다. 그런가하면 죄를 용납하시지 않으시는 거룩하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의로 옷을 입어야 함을 주장하신다.

 

영원하신 아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바로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요 1:1,2,14)

말(words)이 사상(thoughts)을 표현하듯이, 영원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에게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중심 사상을 표해 주고 있다. 그 사상은 사죄하는 사랑의 사상이다.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시다.

"처음에(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아들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700년 전에 미가 선지자가 아들에 관해 기록하여 이르기를 그는 "이스라엘에서 치리자가 될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아오리라. 그의 나아감은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 있었느니라." (미가 5:2) 고 했다.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서 이를 기록한 미가에 의하면 이것은 베들레헴에서 출생했던 그 아들을 가리킨다. 이 구절이 이 사실을 명백히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하시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그의 근본은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 있었느니라."

다시 한번 믿음의 눈으로 위를 쳐다 보고 아들을 바라본다면 이는 삼위일체의 제 2격으로서 아버지와 동등하시며 아버지와 똑같이 영원하셔서 피조되지 않은 본래부터 계셨던 자기 특유의 영광과 위엄을 가진 아들임을 알게 될 것이다. 아들이 세상에 계실 때 세상에서의 사역의 막바지에 이르러 갈보리 십자가에서 아버지께 기도하여 이르시기를 "오 아버지여, 세상이 있기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그 영광으로 이제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 17:5)

 

영원하신 성령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요 3:16)

아들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도저히 구원할 수 없는 죄많은 인간의 대속자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위해 오셨다.

갈보리에서 이루신 주님의 사역을 믿는 모든 사람의 속죄자로서 예수님이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렸을 때에,"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영원하신 아들을 합당한 제물로 받아 들이신 일은 오직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히 9:14)

"영원하신 성령"은 아버지의 아들과 동등하며 함께 영원하신 하나님의 성령을 말한다. 성령님은 살아 계시는 인격자이시지 그냥 하나의 세력은 아니다. 성령님은 온갖 인격의 표식을 다 지니고 계신다. 요한복음 14장, 15장, 16장에서 주 예수님은 성령님을 살아 계시는 인격자로 지칭하셨다.즉 보혜사, 교사, 인도자, 그리고 죄를 깨닫게 하고 일깨우는 능력자로서 말씀하셨다. 이는 성령님이 곧 하나님의 성령이신 연고다.

 

영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 아들되시는 하나님, 그리고 성령되시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오직 세 인격자이시다. 이 세 인격이 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에 관해서 모세는 자기 백성들에게 기록하여 말하기를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신 6:4). 역시 동일한 저자인 모세가 창조기사와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이 신명기보다 앞서 기록했을 때에 삼위일체에 관해서 이렇게 언급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라고 했다. (창 1:26). 이사야가 "높이 들린 왕좌에 앉으셨던 주님"을 보았을 때도 그 주님은 거룩한 삼위일체였다. (사 6:1). 스랍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는 말을 이사야가 들었을 때 그것도 거룩한 삼위일체에 관하여 하는 말이었다. (사 6:3).

이것들은 영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교리를 증명할 만한 성경의 수다한 인용구 중의 소수 구절에 불과하다. 이 교리는 이성적인 논리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고 있다. 지금은 한정된 사고력을 갖고 있어서 이 삼위일체 교리를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어느 날인가 이 위대한 교리를 이해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그 날엔 어떻게 3인격이신 하나님이 한 하나님이 될 수 있었던가를 완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몇년 전에 말 한마디도 똑똑이 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진 어떤 저능아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위를 쳐다보며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나는 보네, 나는 보네, 무엇을 보아?

한 분 안에 세 분,

세 분 안에 한 분이 계시네,

가운데 계시는 그 분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지"

우리의 지력이 아무리 심오하다할지라도, 우리가 삼위일체에 관해서 생각할 때에 하는 말은 바로 위와 같은 것이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한 하나님이신데, 삼위일체중 제 2격 되시는 분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사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셨다.

 

영원하신 목적

 

우리가 소명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에 따른 것이라." (엡 3:11). "영원하신 목적"은 물론 하나님의 심중에 품으신 영원한 계획에 의한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죄가 무엇을 저지를가를 예견하셨기에,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구속시켜서 높이 들려 아들과 연합시킬 하나의 계획을 마련해 두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시기 전에 아버지께 간단한 기도를 할 때에 아들에 관해 확신있는 말씀을 하신 것을 들어보자. "내가 이 사람들만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말로 인하여 나를 믿을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오니 이것은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20-23).

영원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들, 영원하신 성령님, 영원하신 목적, 오직 이 모든 것들은 다 영원하다. 천사들은 영원하지 않다. 천사들도 하나님의 피조물들로서 시작된 때가 있다. 물질도 영원하지 않다. 과학자들은 혹 "영원한 물질"에 관해 말할지 모르나 영원한 물질은 없다. 오직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 그의 영원하신 목적만이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영원할 뿐이다".

 

최초의 창조

 

우리가 이 과를 공부하는 데에 사용할 차트를 보기로 하자.

"최초의 창조"라고 불리우는 부분을 유의하여 보자. 창세기 1장1절에서는 "처음(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고 했다. 창세기 1장의 1,2절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나타난 창조를 단지 설명해 주고 있을 뿐이다.

"처음(태초)에..." 처음(태초)에는 언제 였던가? 태초란 말은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랜 과거로 돌아가야 할 때인가? 여기 창세기의 제일 첫 절에는 6일간의 일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다는 사실에 유의하기 바란다. 우리가 알고 있는 6일간의 창조 사적은 후에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지구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월력이 가리키는 6일 동안에 창조되었다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 성경에는 그렇게 가리킨 데는 아무데도 없다.

얼마전 나는 영적인 것에 관해서 문제를 가지고 있는 한 여대생의 초청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이 여대생이 말하기를 자기는 여러가지 이유로 해서 성경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중에 한가지는 세상이 엿새 동안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여대생에게 성경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일러주니까 그녀는 나를 못믿겠다고 했다.

사실말이지, 성경에서 분명히 말한 것은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하셨던 일은 "만드셨던" 일이지 "창조하셨던"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든다"는 말과 "창조한다"는 말 사이엔 하나의 차이가 있다. "창조한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든다"는 것은 이미 있던 재료를 가지고 그 형태를 바꾸었을 따름이다. 주님이 엿새 동안에 하신 일은 전자의 사업이 아니라 후자의 사업이다.

"처음에(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리라." 다시 한번 물어보자.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랜 과거로 가야 할까?

영국 과학협회에서는 지구 나이가 1억년이라고 한다. 성경엔 이런 말을 부정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그저 "처음에(태초에)"라고 하는 말은 어느 과학자든 우리를 자기 마음대로 최대한도로 끌고 갈 수 있는 한계선일 따름이다.

 

혼 돈

 

이 지구가 "태초에는" 과연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죄가 들어와서 파손하고 파멸하기 이전엔, 이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러나 이 보다 앞선 귀절에 보면,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라고 했다. (창 1:2). "was" (혼돈하고, 공허하며......위에 있고 할 때의 be동사)는 성경의 다른 곳에 가 보면 became(되었다)로 번역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창세기 1장2절을 "땅은 형태가 없었고 비어 있었더라"로 번역해서 읽어도 좋다. 이것은 우리가 이사야 45장18절에서 읽어 본 대로 어떤 함축된 사상을 풍긴다. "하늘들을 창조한(created)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하나님은 친히 땅을 조성하고(formed) 만들며(made) 견고하게 하였으되 땅을 헛되이 창조하지(created) 아니하고 사람이 거주하도록 조성하였느니라. 나는 주니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땅을 창조하시되 헛되게나 또는 공허하게 창조하시지는 아니하셨다. 만일 하나님께서 땅을 헛되게나 또는 황폐하게나 공허하게 만드시지 아니한 것이라면 최초의 창조엔 어떤 변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어졌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럼 그 변은 어떤 것이냐? 성경은 그 불의의 변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있다. 에스겔 28:12~19절에서 우리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만 사탄이 되어버렸던 루시퍼(Lucifer)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본다. "사람의 아들아. 두로의 왕에게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지혜가 충만하여 아름다움이 완전하여 모든 것을 봉인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었는데 모든 보석 곧 홍보석과 황옥과 다이아몬드와 녹주석과 줄마노와 벽옥과 사파이어와 에메랄드와 석류석과 금이 너를 덮었고 네가 창조되던 날에 네 안에서 네 작은북과 네 피리의 작품이 예비되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 받은 덮는 그룹이라. 내가 너를 그렇게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거룩한 산 위에 있었고 불타는 돌들 한가운데서 오르내리며 다녔도다. 네가 창조된 날부터 네가 네 길들에서 완전하였는데 마침내 네 안에서 불법이 발견되었도다. 네 상품이 많으므로 그들이 네 한가운데를 폭력으로 가득 채우매 네가 죄를 지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 내리라. 오 덮는 그룹아, 내가 너를 불타는 돌들 한가운데서 끊어 멸하리로다. 네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네 마음이 높아졌으며 네 광채로 인하여 네가 네 지혜를 부패시켰은즉 내가 너를 땅에 던지고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이 너를 바라보게 하리라. 네가 네 많은 불법 곧 네 무역의 불법으로 네 성소들을 더럽혔나니 그러므로 내가 네 한가운데서 불이 나오게 하여 너를 삼키게 하고 너를 바라보는 모든 자들의 눈앞에서 너를 데려다가 땅 위의 재가 되게 하리라. 백성들 가운데서 너를 아는 모든 자들이 너로 인하여 놀라리니 네가 두려움이 되고 결코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라, 하라." (에스겔 28:12`~19)

여기에서의 설명은 아담과 하와가 있던 에덴의 설명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최초의 창조에 관한 설명임이 분명하다. 그때 루시퍼는 자기가 타락하기 전에 에덴에 있었던 것이다.

이사야 14:12~17절은 루시퍼의 타락에 관해 설명해 주고 있다. 아침의 아들 루시퍼가 자기 믿음 속으로 어떻게 말하고 있었던가를 말해 주고 있다. "네가 네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하늘로 올라가 내가 하나님의 별들 위로 내 왕좌를 높이리라. 또 내가 북쪽의 옆면들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내가 구름들이 있는 높은 곳 위로 올라가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이 되리라, 하였도다." (이사야 14:13,14). 가장 높으신 이와 같이 될려고 했던 루시퍼가 이런 말을 했을 그 당시엔 최초 창조의 최고 위에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루시퍼는 지극히 높은 자와 같이 되려고 하던 그 교만의 죄로 말미암아 타락했고 따라서 주님이 누가복음 10장18절에서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바로 곧 이 루시퍼의 타락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었다. 하나님은 루시퍼를 추방하셨다. 그 루시퍼가 사탄이 되었다. 이 땅이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후에 손상을 받았던 것과 꼭 같이, 최초 창조에 있어서의 땅도 루시퍼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혼돈(황폐)하고 공허했던 것이다.

이미 말한대로 에스겔 28장과 이사야 14장에서 하나님은 루시퍼를 원래 창조 가운데서 최고 위에 두셨다는 것과, 이 루시퍼의 타락과 퇴보가 원래의 창조 (창세기 1:1)를 형태가 없고 비어 있게 만드는 변을 초래케 했다는 사실을 믿을만한 이유를 우리는 갖게 되었다.

 

회 복

 

이 땅이 이러 혼돈된 상태에 얼마동안 머물러 있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아마 수많은 해를 그렇게 보냈을 것이다. - 이미 수백만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혼돈된 땅이지만 버리시지 아니하셨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고 말을 보고서 알 수 있다. (창 1:2). 창세기 1장 4절에서 시작하여 그 마지막 절에서 회복에 관한 설명이 있다. 즉 하나님이 땅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니 곧 하나님이 땅을 재형성하시고 그 위에 사람을 살게 두셨다. 이 재형성의 순서는 매우 분명히 언급되어있다.

(1) 빛, (2) 궁창, (3) 땅과 바다, (4) 일월성신, (5) 어류와 날짐승, (6) 가축, 기는 것들, 짐승과 인간등의 순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처음 몇장들에 대한 유일한 성서적 해석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과학의 법칙들과 모순되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과학과 법칙과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과학과 연구의 렌즈를 가지고 보아도 조금도 모순될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 혼돈된 땅을 회복하셨고, 혼돈에서 질서를 되찾아 새로운 존재 - 인간 - 를 만드시고 그에게 이 회복된 땅을 통치할 것을 일임하셨다는 사실을 성경은 너무도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분명히 사탄이 질투를 유발하게 되었던 원인을 따지고 보면 인간에게 준 그 권위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탄이 타락하기 이전에 땅을 차지하던 그 통치권을 이제는 인간이 그를 밀어내고 대신 차지하게 된 까닭이다.

 

그림자와 모형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 계획

 

이제 우리는 최초의 창조와 혼돈과 회복에 관해서 언급된 모든 것의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어서 장차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을 다루시는가를 미리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타락 전의 인간의 역사와 또 상징과 모형으로 제시된 바 있는 구속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본다. 최초의 창조는 직접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것인만큼 완전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그것은 혼돈하고 황폐하며 공허하게 되었다. 인간은 자기본연의 위치를 떠나 무엇인가 좀 되고자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런 일을 결코 뜻하신 바 없었다. 모든 죄는 하나님의 뜻을 뒤엎고 "내 뜻대로 하겠다."는 데서 나온다.

그러나 하나님은 땅도, 인간도 버리시지 아니하셨으니,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하던 것과 같이, 하나님은 혼돈과 폐허에서 극히 아름답고 하나님을 닮은 대상을 가져 오시겠다는 영원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인간을 만드셨던 것이다. 회복(창조)의 시간에 "빛이 있으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던 것 처럼, 개개 인간의 회심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빛이다. 하나님께서 어두움과 빛을 나누시듯,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그렇게 하신다. 죄의 어두움과 예수 그리스도 안의 생명의 빛 사이엔 건너 갈 수 없는 깊이 갈라진 간격이 있다. 다만 갈보리 십자가 상에서 이루신 주님의 구속 사업을 믿음으로서만 그 간격을 건널 수 있을 뿐이다.

나의 형제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혼을 향하여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던가? 당신이 그 빛을 원한다면,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 예수의 얼굴을 들여다 보라. 예수 안에서 당신은 세상의 빛을 볼 것이다. 그 빛이야말로 당신에게 죄가 무엇이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 무엇인가를 계시해 준다. 빛이 당신의 영혼 속에 비춰 오도록 허용할 때에, 당신은 어두움에서부터 분리되고 또 어두움이 제시하는 온갖 것으로부터 분리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빛의 아들이 되어,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21:23, 22:5절에서 말한 그 빛의 도성을 향하여 여행의 길에 오른다. "그 도시는 해와 달이 안에서 빛을 비출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시를 밝혀 주었고 어린양께서 그 도시의 광체이시기 때문이라....... 거기에는 밤이 없겠고 등잔불이나 햇빛이 그들에게 필요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시기 때문이라. 그들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리로다."

제 4일의 사건에 관한 기록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체들이 있어서 밤에서 낮을 나누고 또 그것들은 표적들과 계절들과 날들과 해(年)들을 나타내라. 또 그것들은 하늘의 궁창에서 빛이 되어 땅 위에 빛을 주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커다란 두 광체를 만드사 큰 광체는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광체는 밤을 다스리게 하시며 또 별들도 만드시고" (창 1:14~17)

해와 달과 별들이 "창조와 계절을 위해서" 하늘에 있음을 당신은 유의해 보았는가? 우리는 계절의 의의는 잘 이해하고 있지만 "표적"의 의미는 무엇으로 알고 있는가? 그것은 빛의 자녀들인 하나님의 백성들과 "의의 태양"이며 세상의 빛이신 주 예수와의 관계를 예시하는 것이 아닌가? 비유적으로 말해서, 태양은 그리스도를 대표하고, 달은 교회를 대표하고, 별은 개개의 신자들을 대표한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태양이 낮을 주관하고 달이 밤을 주관하듯이, 그리스도는 "의의 태양으로서 어느 날인가 그 날개 안에 병을 고치는 능력을 가지고 솟아날 것이다." 한동안 교회가 죄의 밤 동안에 어두운 세상을 비취인다. 더욱이 달은 인간의 시력을 초월해 있는 태양 광선을 반사하듯이, 교회도 교회 자체의 영광이 아니라 교회의 빛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반사한다. 교회가 빛을 발하고 있는 기간은 하나님께서 신앙의 눈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시선에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지금 시대를 말한다. 여러 유성들도 태양과 관계하고 있어서 태양에 의해 지배를 받으며 태양의 힘에 의해서 그들의 제도가 고정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여러 자녀도 다 충만한 빛으로 차 있어서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의 아들과 관계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는 것이다. 이 장면은 그리스도와 그의 몸이 되는 교회와의 관계를 얼마나 놀랍게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유다서 13절에 보면 "떠돌아 다니는 별들이니 그들을 위해 캄캄한 어둠이 영원토록 예비되 있느니라" 한 것을 읽어 볼 수 있다. 이것은 "의의 태양"과 정당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믿지 않은 사람을 도표식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의 궤도에서 벗어난 별과 같아서 영원한 어두움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내 친구여, 혹 당신도 이런 부류에 속하고 있는가?

내가 어린 소년시절의 일이다. 내가 살고 있던 지방의 사람들은 "할레이의 혜성"이 나타난다고 해서 크게 흥분하고 있었다. 듣건데 그 혜성이라는 별이 매 70년마다 단 한번씩 우리가 살고 있는 지방의 하늘에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나의 어린 호기심에는 여러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 별은 항시 어디에 있다가 이렇게 나타나는 것인가? 그런데 내가 들은 이야기로는 그 별이 우리 하늘에 단 한번 나타났다가 태양에서 떨어져 허공을 향해 돌진하는데 일초에 무려 수천마일의 속도로 계속 달리고 달려서 점점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간다고 했다. 그런데 이 혜성은 70년 동안을 태양에서부터 멀리 멀리 계속 달아나다가 마침내 태양이 다시 이끌어 들인다는 말도 나는 들었다. 그래서 나는 곧 의문을 품어 보았다. "그 혜성이 계속 달리기만 하고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이러했다. 그 혜성이 계속 태양을 떠나 달려가기만 한다면 점점 더 멀리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고 말 것이라고 했다.

나의 형제여, 이것은 모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모습이다. 처음에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 자신과 정당한 관계에 두었다. 그런데 죄가 들어와서, 인간의 얼굴은 어두움을 향하게 했다. 인간의 얼굴은 그때 이래로 계속 그 어두운 방향을 향하게 되었다. 인간이 중생하지 않는 한, 바깥 어두운 곳에서 영원한 세대를 보내게 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간구하노니, 이제 바른 방향으로 얼굴을 돌리고, 하나님의 빛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결코 어지럽게 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속에 살기를 바란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그 빛의 도성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 안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거기엔 밤이 없느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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