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상식 세계 한국 종교!!

종교가 필요한 우리 / 천주교에서

하나님아들 2020. 6. 9. 15:56

1. 종교가 필요한 우리

 

<도입> (마음열기)

 

하느님께 전화 다이얼을......

영국의 수도 런던에 사는 어떤 사람이 장난삼아 하느님이란 영어 알파벳

‘G-O-D’로 하느님께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는 친절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전화국에

물어보았더니 전화국 직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하느님이란 알파벳은 ‘안내(Information)한다’는 영어의 약자인

I-N-F와 같이 쓰입니다.“

우리 조상들도 그랬지만 우리도 다급할 때면 이렇게 탄식한다.

“오, 하느님 맙소사!”, "Oh, my god!"

또 억울함을 호소할 때에도 "하늘에 맹세한다.“,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

하고 습관적으로 외친다. 이처럼 우리가 ‘하늘’이나 또 ‘하느님’을 찾고

의탁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 여러분들은 어떤 처지에서 이렇게 하느님을 불러보았는지 ...

또 마음 깊숙이 하느님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태어나서 언제 처음으로 하느님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전개>

 

◉ 나와 하느님 (종교는 곧 삶의 해답)

- 인간은 누구일까?

: 약 100조가 넘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내 몸속의 DNA를 모두 합하면 지구와 태양 사이를 1000번 왕복할 수 있다는,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내 몸!

(인간의 DNA 한 개의 길이는 약 1.5m 정도로 ‘유전정보’ 가 입력되어 있다)

게다가 생각하고 창조적 활동을 하는 존재, 그러면서도 영광과 비참, 생명과 죽음의 존

재이자, 가변적이며 덧없고 유한한 존재이다. 이러한 자기 존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갈망하고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절대자를 찾아야만 그 해답이 나온다.

“왜 사는가?” 라는 질문에 철학은 망설인다.

철학적으로 물었지만, 결국 그 답변은 종교로부터 듣게 된다.

→ 하느님은 누구이시며 나는 또 누구인지

이렇게 하느님을 찾는 마음은 타고난 우리 모두의 본성이다. 나 스스로의 한계를 절실

하게 느낄 때, 어떤 절대적인 존재에게 의존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 이것이 바로 우리

가 타고난 ‘종교적 심성’ 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혹은 종교에 대해서 아예 관심을 두지도 않고, 모든 것

을 과학으로 해결 지으려고 한다.

 

과학에는... 한계가 뚜렷이 있다.

하느님이 만들어 놓은 자연법칙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지, 결코 새 질서를 만들지 못

한다. 원자탄, 수소탄 등과 같은 것도 물질에 있는 원자력을 그대로 이용한 것일 뿐이

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하루 24시간을 25시간이 되게 하지 못하고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할아버지 묘를 파내어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다시 살리지는 못한다. 즉, 과학 은 생명문제, 자연 질서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한다.

과학이 하는 것은 자연의 연구이지, 자연을 만든 하느님을 현미경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들도 자연과학을 연구할수록 자연의 신비를 보고 감탄한다.

그래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무능력을 깨닫고 하느님을 믿게 된다.

뉴턴도 가끔 하느님을 생각하고 고개를 숙여 하느님을 흠모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도

본래 무신론자였으나 노년에 접어들어서 하느님을 믿게 된다.

그는 말년에 창조주 하느님께 신앙고백을 합니다.

“나는 이러 저러한 과학적 현상이나 스펙트럼에는 관심이 없다. 평생 해봤으니까... 나

는 하느님에 대해 알고 싶을 뿐이다. 나는 하느님이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셨는지를 알

고 싶다. 나머지는 사소한 일이다.” 라고 말했다.

 

19세기, 20세기 과학자들의 신앙통계를 보면 95%가 깊은 신앙가였다고 한다. 정말 훌

륭한 지식을 가진 과학자는 겸손 되게 하느님이 계심을 인정하고 있다.

 

 

◎ 우리 사회엔 법과 인륜 도덕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종교 없이 각자 양심대로 살면 되

지 않을까? ‘종교’는 도덕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 종교는 도덕의 완성이다. (윤리는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와 규범, 곧 인륜 도덕의 원리)

- 도덕이 현실의 선만 추구한다면, 종교는 선을 넘어서 성(聖)에까지 이르게 한다.

- 도덕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궁극적 최고의 선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는 투쟁의 과정

이지만, 종교는 궁극 목적이 하늘로부터 이미 주어진 ‘약속의 승리’ 로서 초월자(신, 하

느님)의 도움으로 각자 존재의 완성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겐 종교가 꼭 필요할까? 하느님은 나도 예수님처럼 아름답고 온전하게 되기를 바라신다.

‘인생’이란, 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과정이다. 이 부족한 부분이 채워진 상태를 ‘자기실현’, ‘자아 완성’이라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다. 종교는 이 자기실현의 과정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는 가치(루카 24, 48)(루카 24, 48)기준이 되어준다. 곧 나의 인생관, 가치관을 바르게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렇게 인간이 신앙을 가지고 하느님 뜻을 받아들여 그분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성취를 이루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인간 창조의 뜻이다.

 

◎ 참된 종교란 무엇인가?

이 세상엔 여러 종교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참된 종교의 조건은 무엇일까?

참된 종교는, 우리에게 신(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영원

한 삶을 향한 희망을 갖게 한다.

- 종교는 이성을 초월할 수는 있어도 이성과 모순되어서는 안 된다.

- 종교 때문에 인간의 도리, 곧 인륜을 거스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 종교의 근본 진리는 시대나 장소에 따라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정통성)

이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참된 종교이다.

(여러 종파 중에서도 유일신 종파는 그리스도교, 유다교, 이슬람교다. 그런데 유다교와 이

슬람교는 삼위일체 교리를 믿지 않는다.)

 

◎ 참된 종교인으로서의 ‘종교적 삶’은 어떤 삶인가? ‘종교적 삷’을 산다는 것, 곧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인간 근본)을 알아보고 인생의 올바른

길을 하느님 안에서 찾는 것이다.

- 생존 경쟁의 이 사회에서도 성실함과 정직함으로 사람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으며 늘

기쁘고 평화롭게 사는 삶.

- 보다 더 큰 위로와 희망, 영원한 삶에로의 약속이 보장된 삶.

-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

 

* 이런 ‘종교적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철스님, 신부님, 수녀님, 루터킹목사, WHO 이종욱 사무총장, 사회복지 시설의 도우미들, 순교자, 교황님, 마더 테레사. 마하트마 간디, 정의 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 만델라, 착한 이웃들 등등.

 

◎ 그러면 천주교는 어떤 종교라고 생각하는가?

천주교는 인간이 스스로 진리를 터득해서 세운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직접 당신을 드러내고 진리를 가르쳐주심으로써 이루어진 계시종교(啓示宗敎)이다.

 

* “계시” 라는 말의 의미는 ‘알게 하고 그 뜻에 접근하는 주도권을 하느님이 계시다.’ 는

뜻이다. 낱말의 어원은 ‘우리 앞의 일을 가로 막고 있는 장막을 제거한다.’ 는 뜻

을 갖는 라틴말에서 나온 용어 이다.

이처럼 계시란 하느님께서 당신과 당신의 사랑을 직접 가르쳐주시는 것, 곧 하느

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랑의 한 방식이다. 한 마디로 ‘계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밝혀 드러내 보이는 하느님의 사랑의 행위이다.’

(대표적인 종교로 가톨릭= 천주교이다.) 하느님 계시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하느님과의 만남의 순간들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하느님은 이미 당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① 양심(하느님의 목소리)을 통해서

: 인간은? 眞 善 美 (바르고 착하고 아름다움)

바르고 착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원히 누리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자리 잡

고 있다. 이 진선미를 하느님께서 이미 인간의 마음 안에 심어 주신 것 으로서 이것을 통하여 세상을 초월하여 진선미이신 하느님을 향하고 갈

망하고 있다.

② 우주 만물을 통해서 : 태양, 지구, 가을 하늘의 은하수, 저 태평양 바다, 봄이 오면 아

름다운 꽃동산, 동물, 식물,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해, 달, 별, 이

땅덩어리 등은 누구의 업적일까?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③ 성경을 통해서 : “하느님 계시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경은, 우주만물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간접적인 계시라고 말한다.

하느님은 인간이 당신 존재를 알 수 있게 하기 위해 광대한 우주를 창

조하셨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눈을 돌려 이 대자연의 신비에 대해서 조금만 더 관심

을 가진다면 성경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은 이 세

상을 창조할 때 모든 존재가 아름답고 온전하게 되기를 바라셨다. 하

느님의 우주창조 목적이 모든 존재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 내 삶의 기준이 있다면?

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과정이 곧 인생이다. 자아실현이 곧 내 인생의 목표 라면 ‘신앙’은 우리의 올바른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가치기준이다.

 

◎ 그렇다면 ‘신앙’이란 무엇일까?

(→ 계시를 통해 알려주신 것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것이 신앙이며, 믿음이다.)

「信仰」 :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를 믿고 받드는 일 (사전상의 풀이)

신앙은, 한 인격체인 인간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행위로, 지성과 이성을 지닌 인 격체인 인간과 초월자이신 하느님과의 만남이다.

신앙은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고백이며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따르기에 그분께 모든

것 즉, 삶과 죽음까지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으로 새로 태어나 마음과 생

각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겠다는 약속이다.

우리는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자주 방황한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종교적 심성을 건 드리시며 ‘믿음의 길’로 초래하신다. 타고난 종교적 심성을 지닌 나는 참 종교가 필요하고 천주교 신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신앙을 갖겠다는 생각보다는 마음의 평화, 건 강, 입시, 취업, 결혼, 승진, 사업, 사회 정의 등 인간적 동기가 앞설 수도 있지만 남이 들 으면 부끄러운 동기일지라도 중요한 것은 신앙인이기에 그 동기부터 거룩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 마음열기 # “예수님과 자캐오” (참고: 루카 19, 1 ~)

 

세관장 자캐오! 당시 로마의 속국이던 팔레스티나 땅 예리코에서 로마 침략군의 앞잡이 로 그들을 위해 자기 동족에게서 세금을 거두어들이던, 그러면서 부당하게 자기 몫까지 챙기던 자캐오! 로마를 위해 일하고 동족을 등쳐먹는 민족의 배반자요, 죄인으로 낙인찍혀 멸시와 무시를 당하던 자캐오! 남달리 키가 작았던 그는 어느 날, 예리고 거리를 지나시는 예수님이 너무 보고 싶어 길가의 돌무화과 나무위로 올라가 앉아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를 쳐다보시며 먼저 말씀하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 5)

이 부르심에 기쁨으로 가득 찬 자캐오는 망설임 없이 회개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 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이집에 구원이 내렸다....” (루카 19, 9)

 

☞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보려는 열성이 있었다!

세리는 우선 부정축재의 대명사다. 검은 돈과 관계된 인물이요. 매국노요. 세속적 이익에 밝은 사람으로 ‘죄인’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들의 으뜸인 세관장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죄’ 때문에 구원에서 제외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구원에 있어서 문제는 과거의 상태와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자캐오처럼 예수님을 보려는 열성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 5) 하는 성사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시되는 예수님의 초대에 ‘우리가 응답하느냐, 응답하지 않느냐?(=신앙인이냐, 신앙인이 아니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참고)

* 종교란 무엇일까?

한자로 宗 → 모든 것의 중심

→ 가르침

즉, 종교란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가르침’ 이다. 곧, 인생의 근본과 도리에 대한 가르 침이라는 것이다. 종교의 어원을 찾아보면 ‘인간이 하느님께로 향하는 길을 다시 찾는 것’,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확인하게 해주는 것’ 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 종교의 종류에는

1) 자연종교 : 토테미즘, 애니미즘, 미신, 범신론, 불교 등이 속합니다.

㈀ 토테미즘 : 힘이 센 짐승을 믿을 수도 있습니다.

㈁ 애니미즘 : 자연 속의 정령을 믿을 수도 있습니다. 정령 신앙이라고도 합니다.

㈂ 미신 : 서낭당의 잡신, 우상을 믿을 수도 있다.

㈃ 범신론 : 우주

㈄ 불교(=자력종교) : 인간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 스스로의 힘, 노력으로 절대자

신의 영역에 이룰 수 있다.

* 불교, 유교도 넓게 보면 자연 종교에 속한다. 인간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있고 자력 으로 절대자, 신의 영역에 이룰 수 있다. 인간의 힘으로 하느님이 계심을 깨닫고 하 느님이 주신 양심의 법도를 따라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2) 계시 종교 :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

유대교 : 구약성경을 성전으로 하는 유대인의 민족종교. 천지만물의 창조자인 유일신

(야훼)을 신봉하며 유대인을 신의 선민(選民)으로 자처하고 메시아의 지상

천국 건설을 믿는다. 예수가 일반 민중을 상대로 한 종교적 인격자라는 사

실을 인정하나, 그리스도교처럼 하느님의 아들, 즉 메시아로는 인정하지 않

기에 이들의 메시아 대망은 현재까지도 존재한다.

이슬람교 : 7c 초엽에 아라비아의 마호메트(A.D 570년 메카 출생)가 알라의 계시를

받은 데서 비롯된 종교이다. 계시를 기록한 코란을 경전으로 삼고, 알라를

유일신 전능의 신으로 믿는다.

‘마호메트’, ‘모하메트’, ‘회교’, ‘회회교(중국의 경우)’ 라고도 불린다.

전 세계 이슬람 인구는 13억 정도이다.

그리스도교 : ‘천주교’는 사도(使徒)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교황을 세계 교회의 최고

(=천주교) 지도자로 받들고 그 통솔 밑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교파이다.

가톨릭교회는 ‘나자렛 예수’라 불리는 유다인의 가르침에 의해 창립

되어, 이분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이들의 모임이다,

예수는 제자 중에서 12명을 선정, 그 장에 베드로를 임명하고 전체

교회를 통치하는 권위를 부여 했다(마태 16,18-19). 예수가 예루살렘에

서 십자가에 못 박힌 뒤 제자들은 성령에 의해 신앙이 강화되었으며,

예수의 가르침을 널리 폈다.

그러다가 중세 말에 이르러 교회의 퇴폐에 따른 개혁을 요구하는 목

소리가 높아졌고 M.루터의 등장으로 결정적 단계를 맞게 되어, 가톨릭

교회가 분리되면서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성립하였다.

이에 대하여 가톨릭교회에서도 예수회 등의 새 수도회에 의한 쇄신

운동을 진행시켜 교회는 점차 새로운 힘을 회복시켰고 해외선교활동 등

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교도권에 순명하는 점에서 프로테스탄트와는 다르다.

 

#「여러 종교 알아보기」

 

불교

 

B.C 5세기 초엽에 인도의 석가모니가 설법한 가르침으로, 이 세상에서의 온갖 번뇌를

버리고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으로써 부처가 됨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이다.

'불교'라는 말은 부처(석가모니)가 설한 교법이라는 뜻과 부처가 되기 위한 교법이라는 뜻

이 포함된다. 불(佛:불타)이란 '각성(覺性)한 사람', 즉' 각자(覺者)'라는 산스크리트 ․ 팔리

어의 보통명사로, 고대 인도에서 널리 쓰이던 말인데 뒤에는 특히 석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지극히 논리적, 이성적이며 실천적 종교인 이 불교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로 나뉘는데 우리나라 불교는 大乘불교(B.C 1세기 무렵의 새로운 신앙운동)이다. 대승 불교에서의 ‘보

살’은 ‘깨달음 속에 있는 자로서 중생을 구제하려는 자’ 를 의미한다.

불교의 환생설(윤회설)은 정당한 보상 및 응보에 관한 교리로서, 업보가 인간 운명을 좌

우 한다는 것인데, 인간이 해탈하지 못하면 끝없는 재생의 윤회를 거듭한다는 교리이다.

이 환생설에서의 구원은 ‘해탈’이라는 방식의 자기 구원과 자기완성에 달려있다.

(티벳 불교 ↬ 달라이 라마, 링 린포체 -달라이 라마의 환생한 스승, 등신불…)

 

유교

 

공교(孔敎) ․ 공자교(孔子敎)라고도 한다.

춘추시대 말기에 노나라에서 태어난 공자를 시조로 하고 인의(仁義)를 근본으로 하는

정치와 도덕의 실천을 주장한 유학의 가르침(중국의 대표사상)이다.

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 ․ 제가(齊家) ․ 치국(治國) ․

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 ․ 정치학이며, 수천 년 동안 중국 ․

한국 ․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왔다. 또 고대부터 외국으로 전파되어 세계적인 영향

을 주었다.

한국에 유교문화가 도입된 것은 중국과의 교류가 있은 때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민족

정체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교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할 만큼, 우리의 전통적인 가

치관과 문화의식이 유교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우리 언어, 관습, 규범 속에 깊이 녹아

있다. 유교의 핵심은 仁, 義, 禮, 智, 忠, 孝이며 安貧樂道, 原善意識이 그 기저를 이룬다.(논

어, 맹자, 대학, 중용 ↬ 한국은 유교문화권)

 

 

도교

황제(黃帝)와 노자를 교조로 삼은 중국의 토착종교로, 노자와 장자를 중심으로 한 도가

(道家)사상과 구별된다. 도교는 후한시대 장도릉(張道陵)이 세웠다고 전하며, B.C. 3C 무

렵에 중국 신선사상(神仙思想)의 기반 위에서 자연 발생하여, 거기에 노장사상, 유교, 불

교, 그리고 통속적인 여러 신앙적 요소들을 수용하여 형성시킨 종교이다.

4C 이후에 비로소 불교의 체제와 조직을 모방하고 불법의 전개방식 등을 받아 들여,

교리의 체계화와 종교체제의 정비를 꾀하게 되었다. 지금도 대만 ․ 홍콩 등지에서 중국인 사회의 신앙이 되어 있다.

(도가의 시조격인 장자는 자연의 아름다운 환경을 그저 나오는 감상주의적 차원이 아니라

물아일체(物我一體)적 철학에서 관조하고 있다. ↬ 우리 ‘단군신화’와도 연관됨)

 

힌두교

힌두교는 B.C 2천~3천년 경 발생, 오늘날까지 인도인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

‘힌두’는 인더스강의 산스크리트말인 ‘신두’의 페르시아 발음으로, 말 자체가 인도를 가리

킴으로 ‘힌두교’란 곧 ‘인도종교’라는 말이다.

이 교의 특징적 사상은 윤회와 업, 해탈의 길, 도덕적 행위 중시, 경건한 신앙으로 요약

된다. 힌두교인들의 삶이 곧 종교로서 구체적인 기능을 가능케 하는 것은 카스트 제도이

며,근본 경전은 ‘베다’이다. 브라만은 출생, 비슈느는 중간의 삶, 시바는 죽음을 주관한다고

믿는 이들의 종교와 일상생활은 견고하고 조화롭게 결합되어 있다. 인도의 이 모든 정신을

이끈 이는, 붓다(불교의 창시자), 샹카라차리야(베단타 철학의 대가), 라마크리슈나(힌두교

의 성자)이다. 힌두교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진리의 상대주의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관용과

혼합의 전통이다.

 

개신교

중세 교회의 쇠퇴로 인한 16C 종교분열의 결과로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온 그리스도교 의 여러 종파를 일컫는 말로, ‘신교’, ‘프로테스탄트’라고도 한다. 이 말은 ‘프로테스트’에

서 기원했는데, 1529.2.21에 열린 독일 슈파이어 국회에서 루터계 제후와 도시들이 황제

카를 5세 등 로마가톨릭 세력의 억압에 항거한 데서 유래한다.

독일의 마틴 루터는 당시 교회의 부패에 반기를 들었고, 1518년 교황은 루터를 파문했

지만, 1555년 아우구스부르크 의회에서 가톨릭 ․ 루터 교회가 유럽의 합법적 종교로 인정

되었다.

가톨릭에서 갈라져간 교회는 희랍정교회, 성공회 등도 있는데 역사적으로 분열의 원인

은 사회적, 정치적, 개인적, 권위 비판적 등 다양하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는 성경, 성사, 성전, 성화, 성모님 공경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가톨릭은 이들을 형제적 존경과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리스도교 교회의 일치를 목표로 하고 다른 교회들에 대한 가톨릭의 태도를「일치 운동」

과「동방 교회」에 관한 교령으로 분명히 하며, 상호 이해와 일치에의 길을 열었다.

(한국의 주요 개신교파는 100여 교단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1885년에 장로교와 감리교

가 세워졌다. 1889년 성공회, 1959년 루터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