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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과 망상의 차이

하나님아들 2020. 5. 29. 23:04

하버드대학 교정의 웃지못할 풍경

방학 때 하버드 대학교 교정에는 진풍경 하나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 손을 잡고 하버드 대학교에 찾아와 “얘야 잘 봐둬라, 여기가 앞으로 네가 올 학교란다”라고 말하는 풍경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사람들은 100%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모두 한국 사람이거나 한국 교포들이다. 네다섯 살짜리 아이들의 손을 잡고 와서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에게 여기저기 가리키면서 말한다.




“저기가 강의실이고, 저기는 도서관이고, 여기는 기숙사란다. 너도 앞으로 여기에서 생활하게 될 거야. 너는 다음에 꼭 하버드에 가야 한다. 그게 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이다.”




부모는 이같은 상황을 마치 자녀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꿈과 비전을 이런 것이 아니다. 제자들 중 필자에게 와서 거대한 꿈을 이야기하며 한참 떠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세계적인 사람이 되고, 세계를 무대로 뛰어 보겠다는 그 학생의 말이 비전이 아니라 망상으로 느껴지는 경우에 나는 결국 한 마디 한다.




“그래, 좋은 꿈을 가졌구나. 그런데 너 토플 점수가 몇 점이니?”




하버드 대학교를 보여주는 것이 비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그러기에 적당한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를 계속 지켜보니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여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중학생 정도나 고교 초반의 아이를 데리고 가서 그런 비전을 가지게 하는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그런 사실들을 주입하듯이 강조하는 것은 결코 자녀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꿈과 뻥, 비전과 망상은 전혀 다르다

꿈이나 비전과 뻥이나 망상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그러면서도 그 결과는 전혀 다르다. 꿈이냐 뻥의 차이는 자녀의 능력이나 소질, 조건 등에 맞느냐, 그것을 위해 현재 준비하고 있느냐 여부에서 온다. 그것이 자녀의 능력이나 소질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꿈이 아닌 뻥이 될 수 있다. 현재 그것을 위해 부모가 끌고 가는 형태의 타율적인 준비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자율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꿈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어린아이들의 꿈이 많은 경우 아이 스스로 설정한 것이 아니라 부모에 의해 만들어진, 심어진 것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자녀에게 터무니없는 기대를 거는 부모들이 많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격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꼭 그런 인물이 되라고 강요한다. 아이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아이들에게는 심각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스트레스는 아이들의 건강과 정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심각한 피해는 아이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부모의 요구나 기대에 부응하기 어려울 때 좌절하거나 회피하고 다른 엉뚱한 것으로 관심사를 돌려 그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아이들이 부모에게는 이 얼굴을, 또래나 다른 사람에게는 저 얼굴을 해 보인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의 아이 얼굴과 부모를 대하는 아이 얼굴이 다른 것이다. 이것 역시 부모의 과도한 기대에 의한 일종의 정신 장애이다. 심하면 정신 분열이 되기도 한다.




대리만족의 포장을 걷어야 자녀가 산다

또 부모들 중에는 부모 자신의 욕망이나 만족감을 대리 충족시키기 위해 아이에게 기대하는 경우도 있다. 자녀를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지, 자녀를 통해 자신의 욕망이나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느끼는 사람은 대부분 자녀에게도 어떤 인생을 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반면 과거에 대해 후회나 미련이 많거나 열등감이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는다”, “이런 직업을 가져야 행복하다” 등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가 대신 이루어주기를 바란다. 즉 바라던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 한이 된 사람은 자녀가 그 대학에 꼭 합격해 주기를 바라게 되고 어떤 전문가가 되려고 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자녀에게 그 꿈을 대신 이뤄 주기를 바라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바라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무의식 중에 거의 강요하게 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자녀는 그것이 부담이 되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 스트레스가 온갖 정신 장애와 신체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그것 역시 자녀로 하여금 부모의 삶을 대신 살아 주도록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모의 개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이를 성공시키려고 지나치게 부담을 주게 되면, 노력하는 과정보다는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자녀는 매사에 성과와 결과에만 의존하려 들 것이며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인생에서 좌절하게 되고 쉽게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그 좌절과 상처에 대한 원망은 부모에게로 돌아간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 그 자체에서 만족감을 경험하며 자라난 아이들은 원하지 않은 결과에 직면하더라도 담담하게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게 되고, 다른 돌파구가 없는지 여러 가지 방향과 방법으로 열심히 탐색하게 된다.




멋대로 하게 하는 것과 기를 세우는 것

부모들 중에는 ‘아이의 기를 꺾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고학력이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부모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아이가 기죽을 만한 행동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의욕이 강하고 개성이 강한 아이로 키워서 세상에 나가서도 자기주장을 분명하게 펼치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자기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제지를 하거나 야단을 치면 득달 같이 달려와 막으며 화를 낸다. 아이가 식당에서 소리치며 뛰어다녀도, 지하철 의자 위에 신발을 신고 올라가, 주변 어른들에게 버릇없이 굴어도 그냥 둔다.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멋대로 하게 하는 것과 기를 세우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물론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기 자존심을 절대 굽히지 않고 마음대로 하려는 사람을 받아줄 곳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아이들이 왕따 시키는 첫째 대상이 ‘잘난 체 하는 아이’이다. 아이들은 잘난 체 하는 아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모든 아이들이 자기 집안에서는 잘난 아이이고 귀중한 자식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함께 의논하고 조금씩 양보하면서 사는 곳이다.




자녀를 왕따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

학교에서나 유치원에서 아이가 왕따를 당하게 하기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것은 학교나 유치원 선생님에게 우리 아이만 특별히 사랑해 달라고 하면 된다. 만일 학교나 유치원에서 교사가 어떤 아이만 특별히 사랑하고 편애하게 되면 다른 아이들이 그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선생님이 특별히 챙기는 아이, 선생님으로부터 특별히 사랑받는 아이, 그래서 자기는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같은 반 아이들이 그 아이를 미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아이를 특별히 키우고 다른 사람도 우리 아이를 특별하게 사랑해주기를 바라면 그것이 오히려 그 아이를 특별하게 외톨이로 만드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능력이나 소질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그러나 인격이나 사람으로서의 소중함에 있어 아이는 모든 부모에게 소중하고 특별하다. 집에서야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키워야 하지만, 밖에 나가서도 내 자식만, 내 아이만 특별하게 대우해 달라고 하게 되면 자연히 그 아이는 특별한 아이가 된다. 철저한 외톨이와 고립된 아이로 말이다.




오늘날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 너무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는 여러 가지 미디어와 정보를 통해 아이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해 많이 알게 됐지만 여전히 아이를 제대로 이끌어야 하는 부모의 책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허용적이면 아이가 부모를 너무나 당연한 존재로 여기고, 자신을 위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다.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 역시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이의 어리광을 받아주기만 하면 시냅스의 억제성 기능이 제대로 단련되지 못한 채 아이의 신경세포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그러면 쉽게 흥분하고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아이로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그렇게 대해 주지 않으면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감사할 줄도 모르고 요구사항만 늘어 놓고 남을 존경할 줄 아는 마음을 키우지 않는다.




너무 높은 기대는 자녀를 좌절시킨다

아이들의 기를 살리고자 하는 문화에서는 많은 아이가 자신의 강점이나 약점, 그리고 한계와 능력에 대해서 비현실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약속을 쉽게 생각하게 된다. 하려고 하는 일이 어렵게 꼬이면 그 문제를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포기한다. 좌절을 참고 견디는 힘을 키우지 못한다. 그래서 중독성이 강한 행동에 쉽게 빠져 들어 게임에 중독되고 인터넷에 빠지고 TV를 끼고 살게 된다. 또한 자제력과 갈등 해결 능력이 부족하여 그런 상황을 회피하려 한다. 오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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