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전

성막의 변천사 본문 : 창 3:21

하나님아들 2020. 5. 23. 16:25

성막의 변천사   본문 : 창 3:21 
 

오늘은 “성막의 변천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막의 역사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 변동사입니다. 에덴동산 이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남이 곧 구원이고 그것이 영생이고 그것이 확신이고 그것이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의 담이 가로놓여 있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내셨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변천사는 곧 계시의 완성을 향한 점진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하나님을 만남에 대한 여러 교훈을 줍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를 살피는 가운데 우리의 영적인 교제를 다시 한 번 점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성전이 필요 없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창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그 시대는 에덴동산의 시대입니다. 에덴에서는 성전이 따로 필요 없었습니다. 아무 곳에서나 어느 때나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도 계시고 내 밖에도 계시고 온전히 임마누엘 상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진리는 죄가 없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59:1-2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했습니다. 분명 성경은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만나지 못하리라(히12:14) 하셨습니다. 혹시 영적인 교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가죽옷 시대가 있었습니다.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안타깝게도 인류는 그 축복을 유지하지 못하고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평화를 깨고 말았습니다. 그 타락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뱀의 미혹에 넘어가 범죄하고 저주 받게 되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위해서 구원하시고 만나시기 위해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여기 가죽옷은 무엇을 뜻할까요? 우리를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신 구주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구언은 물론이고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으로 옷 입어야 합니다. 갈3:27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했습니다. 여기 세례는 곧 성령 세례입니다. 성령 세례는 단회적이면서도 점진적입니다. 그러므로 더 풍성한 은혜 가운데로 나가야 합니다. 아주 예수로 칭의의 옷만이 아니라 성화의 옷까지 입기 위해서 성령세례의 충만한 곳으로 나가십시오. 그 때 하나님과 온전한 영적인 교제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3. 돌단시대가 있었습니다.

창28:18에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에덴에서 나온 아담 자손들은 돌단을 쌓고 양을 잡아 제사하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기 돌단을 쌓는다는 의미는 오늘날로 치면 무엇일까요? 우리 성도들의 예배생활입니다. 이 제단을 잘 쌓아야 하나님을 만납니다. 즉 기도의 제단을 쌓고 예배의 제단을 쌓고 찬송의 제단을 쌓고 감사의 제단을 쌓고 전도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단을 통해서 보여주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없다면 그것은 제단을 쌓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단이란 구약적 용어이지만 신령한 의미에서는 제단은 계속 쌓아야 합니다(롬12:1). 얼마나 제단 쌓음이 중요한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끊어지면 영적으로 죽습니다. 영적 사망이란 하나님과의 분리입니다. 이 분리가 곧 죄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 믿지 않는 것이 죄요, 하나님께 예배하는 생활이 부족한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돌단에서 예배생활 기도생활의 회복을 교훈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영적인 교통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4. 성막시대가 있었습니다.

출26:30 “너는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광야에서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이 성막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입니다. 이 성막에는 구속의 진리가 잘 담겨 있고 이 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셨고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성막이 보여주는 귀한 진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앞에서의 계시보다 더 구체적인 계시입니다.

즉 하나님께로 나아가려면 성막 울타리의 하나 뿐인 문에서 예수님을 나의 유일하신 주님으로 믿고, 번제단에서 나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의 공로를 믿으며, 물두멍에서 내 죄를 씻어야 함을, 성소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자세가 확립되어야 함을, 또한 휘장이 갈라지듯 나의 옛 사람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통이 주어지게 됩니다. 이 과정을 잘 준비할 때 하나님과의 만남은 더욱 가까워집니다. 앞으로 성막 연구를 더 하겠지만 성막을 통해서 온전히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5. 장막시대가 있었습니다.

대상6:48 “하나님의 집 장막의 모든 일을 맡았더라” 왕상3:2 “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이 장막시대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고 실로에 있을 때입니다. 이 때는 삼상1:9의 “여호와의 전 문설주”라는 구절을 참고할 때 텐트형이 아닌 건물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광야생활이 끝나고 이스라엘이 안정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때는 전반적으로 발전이 아니고 퇴보입니다. 왜냐하면 엘리 제사장이 블레셋에게 법궤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법궤는 얼마 가지 않아서 되돌아오긴 했지만 성전에 안치되기까지 성막과 법궤가 분리된 기간이 약 112년 가량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산당이라 해서 법궤가 없는 장막시대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장막에 법궤가 없음을 우리 신앙에 적용한다면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신앙이 잘못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짐을 보여줍니다. 즉 그 문제점이란 무엇일까요? 먼저 엘리 제사장에게서 보듯 게으름과 안일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생활에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서 보듯 잘못된 양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고 또 회개한 후에는 평안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법궤를 이용하려 하다가 빼앗겼듯 내 주권적인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용되어지는 겸손함을 가져야 합니다. 이처럼 무언가 잘못되어 있으니까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됩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 자신을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6. 성전시대가 있었습니다.

대상22:10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지라”
솔로몬이 금으로 만든 가장 찬란했던 성전시대입니다. 설계도와 재료는 다윗이 준비했고 솔로몬은 그것에 더하여 잘 지었습니다. 가격으로 치면 성전의 금값만 해도 900조에 해당한 답니다. 900조원 상상이라도 됩니까? 900조면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성막의 금값은 약 500억이지만 성전은 그것은 수천 배에 해당한 것입니다. 이 놀라운 부요를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세계 열방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낙성식한 날 밤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 곳에 와서 기도하면 기도응답을 해 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재앙을 제거해 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고, 땅을 고쳐 주시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성전에서 하나님과의 더욱 온전한 교제를 암시한 것입니다. 이 성전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성전이십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안에서 기도 응답을 받고 예수 안에서 용서를 받고 예수 안에서 고침을 받고 예수 안에서 변화를 받으며 아버지의 사랑을 받음을 가리킵니다.
나아가 우리들이 바로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을 어디서 만나느냐? 그것은 예수님 믿어 우리가 성전 되면 거기서 우리를 만나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이제 솔로몬 성전의 온갖 귀한 보물과 같이 우리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마치 다윗이 수많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전리품을 얻어 성전을 지었듯이 우리 마음이 바로 만국입니다. 이 마음을 다 정복하여 온전히 하나님께 다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보배와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응답이 멀리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우러납니다. 여기 성전시대도 여러 가지 수난을 겪습니다만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교회시대입니다.

마24:2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그 예언대로 A.D.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서 성전은 완전 파괴되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 대한 심판을 의미할 뿐 아니라 더 중요한 의미는 새 시대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그 시대는 교회시대입니다. 교회시대란 더 이상 하나님께서 건물 성전에 계시지 않고 신령한 성전인 우리 성도들과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들이 신령한 성전으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성전으로서의 기능 즉 하나님을 잘 경외해야 할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에 문제가 있다면 성전으로서의 역할에 문제가 있는지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우리 죄인이 만나는 성막 변천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할 수 있는가를 보았습니다. 죄를 해결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신령한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드려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과 온전한 만남과 교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