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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계사를 형성한 100大 사건 1 - 10.

하나님아들 2012. 9. 23. 22:16
100 EVENTS THAT SHAPED WORLD HISTORY
세계사를 형성한 100大 사건

<번역 : 에스프리>
<출처 : 번역원고>

서 론

인류 문명의 역사는 마치 고속도로와 같아서, 우리 선조들이 역사의 여명부터 지금껏 달려온 길입니다. 여타 고속도로와 마찬가지로, 그 길은 쭉 뻗은 직선로가 아니라 굴곡과 급회전으로 이루어진 언덕과 계곡을 지나는 길입니다. 이 길에는 이정표가 놓여져있는데, 인간 역사의 이정표들은 홀로 우뚝 서있는 비석이 아닙니다. 마치 도미노처럼 앞사건에 의해서 뒤의 사건이 일어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살라미스 해전과 플라타이아 전투때문에 그리이스 문명의 멸절당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그리이스 문명은 엄청나게 번창해서 결국 서구 문명의 기반이 되는 철학자들을 낳았던 것입니다. 워털루 전쟁과 양차 세계대전이 역사의 방향을 바꿔놓은것도 이와 마찬가지이고, 증기기관과 비행기의 발명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행성간 우주선의 비행을 통해서 우리들은 보다 가까이 있는 행성에 대해 잘 알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책에서 다루게 될 사건들은 수가 많고, 내용도 포괄적입니다. 그러나 사건들 사이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 사건들로 인하여 전세계, 혹은 중요한 한 지역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결정되었으며, 나아가서는 광대한 우주속에 놓여있는 우리들의 이 세상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개념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 결정은 영구적이고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책은 유럽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중심이 되어 있는데, 이는 순환론적인 역사전개가 이뤄지는 동양사에 비해서 유럽사가 직선적인 역사전개를 보여주기 때문이고, 또 유럽사는 이정표가 박혀져 있는 고속도로처럼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또 어떻게 보면 유럽인들이 좋은 의미에서 이거나 나쁜 의미에서 개척자, 역사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마르코 폴로는 중국과 인도사이의 빗장을 풀었으며, 크리스토퍼 콜럼부스는 구대륙과 신대륙간의 빗장을 풀었습니다. 만일 중국인들이 유럽으로 통하는 길을 개척했다거나, 북미의 수우족이 영국, 혹은 일본을 식민지로 삼았다면 우리의 역사인식은 지금과는 아주 다르게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이책은 역사를 친숙하고 재미있게 만들려고 쓴 책입니다. 역사의 흐름속에 놓여진 100개의 사건들이 시간에 따라 나열된 표를 보십시요. 그리고 책 뒷부분에 있는 연구과제를 당신 자신과 친구들이 함께 풀어보도록 하십시요. 이 책에 나와있는 100가지의 사건은 단지 세계역사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당신 스스로가 몇개의 사건들을 추가하거나 삭제하면서 그것에 대해 토의하고 논박을 벌이는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가장 중요한 역사적 이정표들중 몇개를 요약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들의 목표는 역사적 맥락하에서 이러한 이정표들을 발굴해내고, 그것들이 어떻게 하여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였는가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제공하며, 과연 누가 이 사건들을 탄생시켰으며, 또 이것들이 왜 중요한지를 밝혀내는 일입니다.

★ 1.역사의 여명 20,000-10,000BC

200만년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출현(아프리카)
50만년전 호모 에렉투스(북경,자바원인) 출현.
4만년전 크로마뇽인(호모 사피엔스)이 유럽과 중동에서 나타남.
3만년전 선사시대 예술이 이시기에 나타남.
2만년전 인간들이 베링 해협을 건너 아시아로부터 미주대륙으로 이동.
1만2천년전 야생동물을 길들이기 시작.
1만년전 가장 오래된 도시인 예리코市가 중동에 세워짐

역사의 시작은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ぢ선사시대っ라고 부르는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로부터 우리들의 역사를 형성하는 사건들로 넘어가게 되는 정확한 순간을 집어낸다는 것은 - 비록 불가능 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ぢ한순간っ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된 길고 점진적인 과정이었다.
인류는 50만년 전부터 지상에 존재했다. 얼마 전 발견된, 과학자들이 현대인의 조상이라고 믿고 있는, 유인원을 닮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뼈는 4000만년이나 그 연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30,000년 전에 대부분의 대륙에서 인류가 도구를 만들고 집단으로 생활했다는 증거도 있다. 암석화나 암각화는 적어도 10,000년 이상 그 연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스페인과 프랑스의 동굴에는 18,000년이나 연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벽에 그려진 정교한 그림들이 있다.
그렇다면, 만약 인간들이 수천세기동안 지구에 존재했다면,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서부터 역사가 시작되었을까? 역사의 시작은 아마도 사람이 거주하는 셰계의 모든 지역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발생했을 것이다. 역사는 의사소통의 수단인 언어와 함께 시작되었고, 다음으로는 이것이 줄거리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야기꾼들은 아마도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로 꾸민 이야기를 기억하고서 이를 다시 전달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세계의 여러 문화권에 신화와 전설이 생겨났다.
이러한 초창기 이야기들의 많은 부분이 사라지긴 했지만, 몇몇은 전해내려와서 점차 오늘날 우리가 지금껏 기억하고 있는 고대 전설로 발전했을 것이다. 역사의 여명은 전설이 최초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질 때 부터 밝아온 것이다.

★ 2.사회조직의 발전 6000 BC

9000 BC. 중동의 초승달 지역에서 작물재배 시작.
8000 BC. 죠몽문화가 일본에 등장.
7000 BC. 불에 구운 도자기가 처음 등장.
7000 BC. 남아메리카인들은 야생식물을 순화시키기 시작.
5000 BC. 이집트인들은 평형저울을 사용하기 시작.
5000 BC. 중국에서 용산(龍山), 앙소(仰韶)문화가 시작.
4000 BC. 소의 가축화가 이루어짐.
4000 BC. 메소포타미아에서 바퀴가 개발됨.
BC 20,000 년 경 처음으로 집단 또는 무리를 형성했다. 이 집단들은 야영지에서 함께 살았는데, 이러한 야영지는 보통 일시적으로 머물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유목을 했기에, 정해진 주거지가 없었다. 그들은 계절에 따라 이동했고 그들의 식량원을 따라다녔는데, 야생동물과 철따라 나는 야생 식물도 먹고 살았다.
식량원이 되는 식물과 동물들을 사람들이 처음으로 경작하고 사육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BC 8000 년 경 중동 지방에서 부터였다. 그들은 들과 밭을 경작하는 법과, 양떼들과 가축을 모으는 법을 배웠다. 곧,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주변 지역-현재 시리아와 이라크 지역-은 지금 ぢ비옥한 초승달 지대っ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유랑생활을 그만두고 한곳에 모인 정착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이곳, 고대 메소포타미아(그리스어로 ぢ강 사이의 땅っ이란 뜻)지역이었는데, 이 정착지들이 최초의 도시가 되었다. 또한 이 비옥한 초생달 지대는 BC 6000년 경에 이르러 ぢ문명의 요람っ이 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정착해서 함께 살면서 사회집단이 발달하였고,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과 이러한 사회를 통치해 나갈 정부제도를 만들었다.

★ 3. 문자의 탄생 3500BC

3500BC. 빵 제조법이 이집트에서 등장.
3000BC. 이집트와 크레타에서 밀랍 양초를 사용하기 시작.
3000BC. 청동기가 중동에서 널리 쓰임.
3000BC. 메소포타미아에서 전차를 사용하기 시작.
3000BC. 수메르에서 쐐기문자를 사용하기 시작.
3000BC. 노와 돛으로 움직이는 갤리船이 지중해에서 사용되기 시작.
3000BC. 미노아 문명이 크레타섬에서 절정을 이룸.

의미를 나타내는 상징을 그리거나 쓰는 능력은 인류라는 종족의 특징이고, 이것은 우리와 세상의 다른 생물간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의 하나이다. 인간은 BC 35,000년 전부터 바위 위에 상징물을 그리고 색칠했으며, 이러한 그림들은 수세기동안 인간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32,000 여년 후, 약 BC 3500년쯤에, 사람들은 간단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상징-문자-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말하는데 사용되는 음소(音素)를 나타낼 수 있고, 문장을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방식으로 결합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이러한 문자체계를 일컬어 표음 문자라고 한다.
최초의 표음문자는 고대 수메르인들이 고안한 쐐기(설형) 문자이다. 이것은 메소포타미아 지방 전역에서 폭넓게 쓰여졌으며, 또한 이집트의 신성 문자(히에로글리프 hieroglyphics)보다 앞선 것이었다. 히브리와 아랍의 문자들도 바로 쐐기문자로부터 유래했으며, 이것은 또한 그리스 문자의 선구(先驅)이기도 했는데, 오늘날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등 대부분의 서양 언어에 쓰이고 있는는 로마 문자가 바로 이 그리스문자로부터 나왔다. 러시아와, 그밖의 슬라브 국가에서 쓰이는 키릴 문자도 역시 고대 그리스 문자로부터 발전된 것이다. 중국의 문자는 고대 중동지방의 문자들보다 다소 늦게 생겨났는데, 이것은 일본이나 한국과 같은 아시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문자의 근간으로 차용되어 쓰여졌다.

★ 4. 파라오, 이집트 통일왕국의 건설 3100 BC

3100BC. 메네스왕이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통일. 이집트 왕조의 시작.
3000BC. 페니키아의 도시인 바빌론이 활동적인 항구와 무역센터가 됨.
3000BC. 트로이市에 처음으로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
3000BC. 메소포타미아에서 수금(竪琴)이 발명됨.
2800BC. 영국의 스톤헨지 유적이 세워짐.
2700BC. 인더스 문화가 인더스 계곡에서 출현함.
2686BC. 이집트 구왕조가 시작됨.
2333BC. 최초 한국의 왕조인 단군왕조가 성립.
2300BC. 힛타이트족이 소아시아 지방으로 침입함.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나타난 최초의 도시들은 도시국가의 형태를 띠었다. 그곳에서는 자급 자족과 성벽 안에서의 자치가 이루어졌으며, 그 도시들의 영향권은 기껏해야 그 도시국가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거나 경작하던 주변 농지와, 도시에 의존해서 살아가던 주변의 마을까지 밖에 미치지 않았다. 군주의 통치는 보통 그가 언덕에서 바라 볼 수 있는 지역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했다.
약 BC 3300년 경 나일강 주변의 마을과 촌락들이 상 하 이집트로 두개의 왕국을 형성하면서, 이러한 양상에도 변화가 왔는데, BC 3100년 이집트의 파라오 메네스는 두개의 이집트를 하나로 통합하면서, 세계 최초의 제국을 형성했다. 25,000년이나 지속되었던 파라오의 통치 아래에서 형성된 이집트의 문화는 이전에 존재했던 그 어떤 문화와도 다른 것이었다.
각각의 마을과 도시들은 더 이상 자급자족할 수 없었고, 상호 의존적이 되어갔다. 파라오의 궁전이 이 사회의 부와, 정치적, 종교적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파라오는 단순한 왕 이상이 존재가 되었으며, 신으로서 숭배받기에 이르렀다. 거대한 도시 건설과 거대한 토목공사 계획들도 착수되는데, 한 예로 BC 3800년에서 2500년 사이에 35개가 넘는 거대한 피라밋이 파라오의 무덤으로서 세워졌다. 피라밋들 중 가장 큰 것은 케옵스 파라오(paraoh Cheops 2700BC-2675BC)의 통치기에 세워진 것으로, 45층짜리 빌딩과 맞먹는 높이이다.
이집트인이 세운 피라밋과 그 외 거대한 구조물들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문명지가 어디였던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단지 빙산의 일각일 뿐으로, 제국의 중앙집권화로 인해 예술과 과학-특히 수학과 천문학-이 이전까지 세상에 알려진 그 어떤 수준보다도 높이 발전하는 것이 가능했다.

★ 5.함무라비 법전 1740 BC

2000BC. 켈트족이 유럽에 등장.
1900BC. 미노아의 선형 A문자가 크레타에서 발달함.
1900BC. 앗시리아인들은 메소포타미아를 통일.
1900BC. 힛타이트인들은 철의 제련을 시작.
1900BC. 소돔과 고모라 시가 지진으로 황폐화됨.
1800BC. 청동기 제조법이 유럽으로 전파됨.
1800BC. 앗시리아인들이 소아시아에서 힛타이트족에게 쫓겨남.
1800BC. 와스텍족이 마야로부터 분리.
1800BC. 웨섹스 문화가 영국에서 성립.
1792BC. 함무라비가 바빌로니아의 왕으로 통치를 시작.
1766BC. 은나라가 황하 유역에서 세워짐.

사람들이 사회를 형성함에 따라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행동을 규제할 규칙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초기 문명권에서는 규율이 별로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개인에 대한, 또는 재산권에 대한 침해와 같이 명백한 범죄행위들에 관한 것들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국가들과 이집트의 왕국이 형성됨에 따라 규율들은 보다 복잡해졌으나, 일반적으로 그것들은 군주가 제정한 것들이었으며, 군주제와 왕국을 위해서, 백성들의 생활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최초의 진정한 법전이 반포된 것은 바빌론의 왕 함무라비(1792BC-1750BC)의 치하에서였다. 함무라비 왕은 ぢ질서와 정의를 지상에っ 부여한 왕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1901년 프랑스의 고고학자에 의해 고대 바빌론의 폐허속에서 발견된 함무라비 법전은 거대한 석판에 쐐기문자로 새겨져 있는데, 석판에는 282개의 법 조항이 남아있고 그 외 35개 조항은 마멸되어 사라졌다는 것을 알수있다.
법전은 일정한 범죄에 대해서, 그 범죄에 해당하는 일정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서 자기 소유의 제방을 수리하지 못한 사람은, 땅이 침수되어 버린 이웃에게 보상하도록 되어 있었고, 허가없이 술집에 들어간 여자 승려는 산 채로 화형당할 수 있었으며, 미망인은 남편의 재산을 그의 아들과 똑같은 비율로 상속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되어 있다. 법전에서는 또한 채무자가 그의 아내나 아이들을 3년동안 채권자에게 빌려주면 채무를 소멸시킬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었다.
이 법전에는 정부 구조를 명문화 시키는 규정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는 이법전이 단순한 법령집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리고, 왕이 또한 최고 성직자였으므로, 법전은 바빌로니아의 종교생활에 관한 규율도 포함되어 있었다.
함무라비 법전은, 처음으로 법률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왕이 마음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포되고 법전으로 편찬되었다는 점에서 세계사에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것은 대부분의 근대 사회가 실행한 법적 제도의 선구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6.시나이 산의 모세 1250 BC

1700BC. 크레타 섬의 크놋소스, 파이스토스 궁전이 화재로 파괴됨.
1674BC. 힉소스 왕조가 외국인으로서 이집트를 다스림.
1650BC. 린드 파피루스가 최초의 수학책으로서 출판됨.
1600BC. 그리이스의 중장보병이 전투에서 보호 장갑을 사용하기 시작.
1600BC. 은나라의 갑골이 점치는데 사용됨.
1500BC. 페키니아인들이 북아프리카의 탄지에르市를 세움.
1500BC. 힌두교의 베다가 이시기에 씌여짐.
1450BC.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이 그리스 본토에서 온 침략자들에 의해 멸망함.
1361BC. 투탄카멘이 이집트의 왕이 됨.
1200BC. 샤빈 문화가 페루에서 발전함.

대부분의 고대 종교들-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그리스, 그리고 후에 로마의 종교와 같이-은 다신교인데, 이는 그 숭배자들이 태양신, 달의 여신 등등 많은 신과 여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야훼라고 불리는 유일신을 믿었던 일신교를 신봉하는 특이한 집단이 하나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히브리인으로서, 이스라엘의 12지파였으며 유태교를 그들의 종교로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 일신교는 명백히 소수의 신앙이었으나, 오늘날은 일신교가 전 세계적의 종교인 과반수 이상이 믿는 핵심교리가 되고 있다. 이것은 주로 유태교 경전들, 특히 토라(torah)-이것은 기본적으로 크리스트교의 구약과 같은 문헌이다-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에 기인한다.
유태인의 역사에는 많은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유태인과 크리스트교인의 교리에 가장 멀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예언자 모세(1300-1280?BC)가 시나이산에서 십계를 받은 사건이다.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인에게 패해서 이집트에 노예로 잡혀갔었는데, 그 후 한번은 모든 히브리인 사내아이들을 죽일것을 명하는 칙령이 선포되었다. 모세는 그의 어머니가 그를 갈대로 만든 바구니에 넣고 나일강에 띄워보낸 탓에 이러한 운명을 피할 수 있었는데, 그는 파라오의 딸에 의해서 발견되었고, 궁전에서 양육되었다. 그가 성인으로 성장했을 때, 그는 그의 민족을 해방시켜 달라고 파라오를 설득해서, 마침내 파라오 람세스2세(1292BC-1225BC)는 마지못해 승락하기에 이르렀다. 모세는 이집트로부터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나왔는데, 지금 이스라엘 지역인 원래 그들이 살았던 땅으로 가는 길에 시나이 사막에서 40년을 방랑했다고 한다. 성경에 의하면 BC 1250년 경 시나이산 위에서 신이 모세에게 나타나, 십계로 알려져 있는 한 묶음의 법조항이 수록된 두개의 석판을 그에게 주었다. 모세는 이를 그의 백성에게 가져갔고, 그들은 이것을 유태교의 기본적인 도덕율로 받아들였다. 그 후 크리스트교가 십계명을 받아들였고 그것은 오늘날 16억이 넘는 세계 인구의 신앙적 근간을 이룬다.

십계

1. 나는 종살이하던 너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너희 하나님 여호화이다. 너희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
2. 너희는 하늘이나 땅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의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말며 그것에 절하거나 그것을 섬기지 말아라. 나 여호화 너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내가 나를 미워하는 자를 벌하고 그의 죄에 대하여 그 자손 삼사 대까지 저주를 내리겠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그 자손 수천대까지 사랑을 베풀 것이다.
3. 너희는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라. 나 여호화는 내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자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4. 너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걸을 거룩하게 지켜라. 6일 동안은 열심히 일하고 7일째 되는 날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므로 그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너희나 너희 자녀들이나 너희 종이나 너희 가축이나 너희 가운데 사는 외국인도 일을 해서는 안된다. 나 여호와는 6일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7일째 되는 날에는 쉬었다. 그러므로 내가 안식일을 축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5.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그러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줄 땅에서 너희가 오래오래 살 것이다.
6. 살인하지 말아라.
7. 간음하지 말아라.
8. 도둑질하지 말아라.
9. 너희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하지 말아라.
10. 너희 이웃집을 탐내지 말아라. 너희 이웃의 아내나 종이나 소나 나귀나 너희 이웃이 소유한 그 어떤 것도 탐을 내서는 안된다.

★ 7.페니키아인의 항해와 식민지 1200BC

1200BC. 철 제련 기술이 이시기에 완성됨.
1190BC. 트로이 전쟁이 발발함.
1100BC. 페키니아인들이 스페인의 카디즈를 발견.
1100BC. 미케네 시가 함락됨.
1085BC. 이집트가 둘로 분할됨.
1027BC. 주나라가 은나라를 이어 세워짐.
1020BC. 이스라엘의 사울왕이 처음으로 왕국을 세움.
1000BC. 다윗왕은 팔레스타인인을 격퇴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세움.
1000BC. 마운드 빌더족이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나타남.
900BC. 켈트족이 고올 지방에 살기 시작함.
900BC. 남아메리카대륙에서 산 로렌조가 권력을 잡음.
814BC. 페니키아인들이 카르타고를 세움.

초기의 인류 문명은 지리적으로 근접한 문명 외에는 다른 문화와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것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거대한 문명이 일어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집트인들은 남쪽으로는 누비아인들,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인들과 접촉했었고,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북쪽과 동쪽으로, 페르시아인 그리고 다른 문명들과 접촉을 했다. 물론 몇몇 진취적인 사람들이 그들 나라의 정치적 영향권을 넘어서서 여행을 하긴 했지만, 제국의 건설이나, 원거리 무역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다.
이것에 변화를 가져온 사람들이 페니키아인들이었는데, 그들은 지금 레바논 지역인 지중해의 동쪽끝에 위치한 해안지역에 살았는데, 뒤로는 산을, 앞으로는 바다를 마주한 이들은 배타기를 업으로 삼았다. 그들은 세계 최초로 막강한 해상 교역국이 되었으며, 수세기 동안 막강한 나라로 있었다. 그들은 또한 고대 중동에서는 최초로 유럽과의 지속적인 접촉을 증진시키려 했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항해는 세계사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페니키아인 이전에는 어떤 사람들도 당시 말 그대로 ぢ지구의 끝っ이라고 보여지던 곳까지 그들의 교역망을 확장하기 위해서 의식적인 노력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페니키아의 함대-상선은 물론 군대까지도 포함하고 있었던-는 지중해의 양 해안의 거의 모든 항구를 방문했다. 함대는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서 대서양까지 항해를 했고, 북유럽의 항구와 아래로는 아프리카의 해안까지 갔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실재로 북아메리카의 해안까지 도달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페니키아인들은 또한 사이프러스에서 코르시카와 스페인에 이르는 땅들을 식민지화했고, BC 810년에는 카르타고(오늘날의 튀니지)를 세웠는데, 이것은 후에 전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국가 중 하나로 성장했다.
페니키아인은 단순히 상인은 아니었다. 그들은 유리공예를 또한 발전시켰고, 유리그릇제조법을 발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들은 투명한 그릇과 반투명한 그릇을 대량으로 만들어 낸 최초의 사람들이었고, 이것은 그후 그들의 무역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 8.로마의 건국 753 BC

887BC. 중국에 광동市가 세워짐.
850BC. 이탈리아의 투스카니 지방에서 빌라노반 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함.
800BC. 그리스의 코린트市가 세워짐.
750BC. 그리스 작가 호머가 활동을 시작함.
750BC. 에트루리아인들은 이탈리아에서 그들의 식민지를 확장하기 시작함.
729BC. 앗시리아인들은 바빌론을 점령함.
722BC. 연나라는 북경을 수도로 삼음.
722BC. 앗시리아는 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함.
715BC. 스파르타는 1차 메세니아 전쟁에서 메세니아를 정복함.
700BC. 스키타이인들이 안장을 고안해 냄.

로마제국은 아마도 19세기 이전의 유럽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체(政治體)였을 것이며, 그 이후로도 그러할 것이다. 로마제국은 현재의 스코틀랜드에서 지브롤터까지, 그리고 라인란트에서 흑해, 터키 그리고 북아프리카 전체까지, 지중해로부터 사하라 사막까지 서유럽 전체를 포함하고 있었다. 사실상 지중해의 바닷 물이 밀려오는 모든 해안은 로마의 영토였다.
로마의 정치구조, 로마의 문학 그리고 심지어 로마의 문자까지 이후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후속문명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러한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로마제국이 있기에 앞서, 이탈리아 반도의 서쪽 구석에 도시 국가 로마가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로마는 BC 753년에 세워진것으로 오랫동안 전해 내려왔는데, 이 사실은 고고학적인 증거에 의해 확인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두명의 형제 아물리우스와 그의 형 아스카니우스가 있었는데 아스카니우스는 라비니쿰(지금의 중앙 이탈리아)의 왕이었다. 아물리우스는 그의 형과 형의 아들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려 했다. 이 계획은 아스칼니우스의 딸 레아 실비아가 쌍동이를 가질 때 까지는 성공했었다. 아물리우스는 그녀를 감옥에 보내고 쌍동이를 티베르 강에 버릴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남아서 늑대에 의해 길러졌고, 목동이 소년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늑대로부터 ぢ구해냈다.っ 목동과 그의 아내는 그들에게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그들이 어른이 될때까지 길렀다. BC 753년 (경)에 두 형제는, 현재 로마에 있는 팔라티누스 언덕에 새로운 도시를 새웠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빈번한 다툼으로 인해 결국 로물루스가 그의 동생을 죽였다.
로물루스의 이름을 따서 로마라고 이름지워진 이 도시는 괄목할만 하게 성장하여, 로물루스는 인근 땅들을 강압이나 정복에 의해 병합하는 것도 포함한 제국 건설 정책을 수행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1000년간 지속될 제국의 시작이었다.

★ 9.불교 528BC

688BC. 복싱이 올림픽 경기에 포함되었다.
671BC. 앗시리아인들은 멤피스를 점령하고 이집트의 일부를 지배하였다.
660BC. 비잔티움이 세워졌다.
600BC. 이란에서 조로아스터敎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594BC. 아테네, 솔론의 개혁
586BC. 유대인들의 바빌론 유수가 시작.
561BC. 페이시스라투스가 아테네의 참주로 등장.
550BC. 노자(老子)가 도교의 기반을 닦음.
543BC. 스리랑카의 콜롬보에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

많은 신자를 거느린, 조직화된 다섯개의 커다란 세계 종교들 중에서 둘-유태교와 힌두교-은 그 기원이 태고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중 유대교는 랍비가 히브리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신을 따를 때 부터 시작된다고 가르치긴 하지만, 일정한 창시자가 없다. 나머지 셋-불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은 특정인에 의해 역사적 시간 속에서 모두 창시되었다.
불교는 북부 인디아에서 싯다르타 고타마라는 사람에 의해 창시되었는데, 그는 BC 563년에 전사계급인 크샤트리야에 소속되어 있는 왕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힌두교의 기본 경전인 베다에 있는 철학과 문학에 일찍부터 심취해 있었다. 그러나 점차 그는 힌두교에서 벗어나 자신이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고통받는 자가 되어가지고, 세속의 고난으로부터 영혼의 구제를 약속하는 다른 종교적 철학을 발전시키기로 결심했다.

29살에 싯다르타는 일련의 계획을 가지고서, 그의 궁전, 아내, 아들로 부터 떠날 것을 결심하고, 모든 세속적 소유와 인연을 끊은 후 ぢ진리っ를 찾아 출발한다. 그는 많은 성인들을 방문했고, 단식과 명상으로 많은 해를 보냈다. 그의 목적은 모든 육체적 욕망-배고픔을 포함하여-을 극복 할 수 잇는 방법을 찾고, 그의 마음을 완전히 조절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가 추구하던 진리는, 그가 보리수 아래 않아서 불교도에게는 ぢ해탈っ이라고 알려진 것을 깨닫던 BC 528년 5월의 어느 밤이 되어서야 찾을 수 있었으며, 이 한 순간에 삿다르타는 갑자기 고통이 정복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힌두교의 기본 교리 중 하나는 윤회라는 것이다. 죽은 모든 생명체의 영혼이 다른 생명체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 순환은, 영혼이 곤충에서 동물로 인간형태로 점차적으로 올라가면서 영원히 반복된다. 만약 인간이 그의 일생에서 사악했다면 그는 낮은 형태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또다른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다. 이 윤회는 끝이 없지만, 싯다르타는 해탈속에서 명상과 헌신이라는 正道(다르마)를 따름으로써 영혼이 완전한 마지막 상태인 열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는데, 이 열반은 유태-크리스트교에서 천국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싯다르타는 ぢ깨달은 사람っ이라는 뜻의 ぢ부다っ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의 철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상으로 나아갔다. BC 483년 그가 죽은 후, 그의 제자들이 승단을 만들었고, 곧 불교 철학은 아시아에 퍼져나가서, 중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에 인도보다 더 많은 비율의 신도들이 생겨났다. 오늘날 거의 세계에는 약 3억의 불교 신자가 있으며, 그 중 99.5%는 아시아에 있다.

★ 10.그리스의 페르시아 격퇴

518BC. 다리우스 1세는 페르세폴리스를 수도로 건설.
510BC. 스파르타 왕 클레오메네스 1세는 아테네의 참주인 히파이아스를 제압.
509BC. 로마는 공화국이 되었다.
507BC. 클리스테네스는 아테네에 민주정을 도입.
500BC. 아데나 언덕의 주거지가 북아메리카대륙의 오하이오 계곡에 건설됨.
500BC. 싸포텍族은 남아메리카대륙에 몽테 알반市를 건설.
500BC. 시베리아의 파지릭에서 최초의 손으로 짠 카페트가 무덤에 부장(副葬)됨.
480BC. 싯다르타가 인도에서 죽음.
460BC.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정치적 지도자가 됨.

BC 5세기, 막강한 제국의 세력을 자랑한 이집트의 시대가 머나먼 기억으로 남고 로마제국의 평화로운 시대가 아직 먼 미래에 머물러 있을 무렵, 두개의 강력한 세력이 세상에 나타났는데, 이 둘은 서로 상반된 문명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한쪽에는 그리스가 있었는데, 그리스의 철학과 문학은 유럽 문명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었고, 다른 한쪽에는 페르시아제국이 있었는데, 이는 성격상 명백히 동방적인 문명이었다.
키러스대왕(558-528BC)이 페르시아의 부족들을 통일하고 그의 지배의 영역을 지중해로부터 인도의 인더스강까지 확장하면서 페르시아제국을 건설했다. 그의 손자 다리우스(558-486BC)는 521년 왕위를 계승했는데, 그는 이집트에 대한 페르시아의 통치를 견고히하고, 페니키아의 함대를 그의 군대에 편입시켰다. 그의 다음 목표는 그리스를 정복하고 페르시아제국을 유럽까지 확장하는 것이었다.
다리우스는 그리스 도시국가간의 내부적인 불화를 이용하려고 했으나,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내부이견을 옆으로 미뤄두고 다리우스의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서로의 군사력을 뭉쳤다. 페르시아인에 비해 숫적으로 열세였지만, 잘 훈련된 그리스인들은 BC 490 년에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쳤다.

10년 후 다리우스의 아들 크세르크세스(519-465BC)가 더 큰 군대를 이끌어모았다. 해군의 지원을 받으면서, 페르시아 군대는 약 250만명의 군인을 이끌고 그리스로 진군했다. BC 480년 11월 23일,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인 함대를 살라미스 섬 부근의 좁은 해협으로 끌어들여서 의표를 찔러 격퇴시킴으로써 그리스인은 첫번째의 대승을 거두었다. 크세르크세스는 겨울동안 다시 군사를 모아서 다음 해에 되돌아와 그리스인들과 플라타이아 평원의 전투에서 맞붙었다. 마라톤과 살라미스에서처럼, 계략에 능한 그리스 군대가 또다시 숫적으로 우세하고 강력한 페르시아 군대를 함정에 빠뜨려 물리치는데 성공했다.
플라타이아에서의 크세르크세스의 패퇴는 페르시아 제국의 종말의 시작이었다. 더 이상 확장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페르시아는 안으로부터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다음 세기가 끝날 즈음에서는 알렉산더 대왕(345-323BC) 휘하의 그리스 군대에 의해 정복될 운명이었다.
비록 아무도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지만, 플라타이아의 전투에서 절정에 달한 이 전쟁은 세계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가 되었다. 만약 다리우스나 크세르크세스가 승리했더라면, 그리스는 페르시아의 영향아래 놓이게 되었을 것이고, 피정복문화가 되었을 위대한 그리스의 과학과 문학은 BC 5세기 후반기 동안 종말을 맞았을 지도 모른다.또한 아마도 로마에 대한, 그리고 이후 유럽 문화에 대한 그리스 문명의 심대한 영향도 결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BC 479년 여름의 어느 긴 하룻동안 유럽 역사의 방향-그리고 본질-이 정해졌던 것이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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