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오늘날 한국교회와 이민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고, 복음진리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교회를 갱신하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일 중 하나는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교회가 행하는 여러 가지 사역과 기능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라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너무나 다양한 의견들과 생각들이 충돌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예배를 그저 매주일마다 또는 정해신 시간마다 정기적으로 갖는 종교적 행사나 의식으로 생각한다. 예배를 종교적 행사나 의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배 시간을 떼우는데 급급할 뿐, 예배안에서 그리고 예배를 통하여 일어나는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또 무지하다. 그래서 그들의 삶 속에서 예배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그저 정해진 시간에 치러야하는 습관적인 행사가 되어 버린다. 그들은 예배에 대하여 어떠한 기대도 없으며, 가능하면 예배는 짧을 수록 좋고 단순할 수록 좋은 그야말로 의식과 행사가 되어버린다. 심한 경우 예배는 더 중요한(?) 다른 일을 위한 요식행위가 되어 버린다.
또 어떤 이들은 예배를 목회자의 설교를 듣는 시간으로 이해한다. 이들은 예배 중에 드려지는 신앙고백이나 찬양이나 기도나 헌금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그저 목회자의 설교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예배 시에 목회자의 설교가 소위 은혜가 되면 좋은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고, 목회자의 설교가 은혜가 되지 않고, 감동이 없다면 좋지 않은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배는 학습이나 교육의 현장으로, 그리고 예배당은 교실로 치부되어 버린다. 특별히 로마천주교의 의식중심적 예배를 개혁하고 나온 개혁교회 전통에서 예배시간에 말씀과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게 되었고, 이런 전통이 극단화되면서 예배시간을 단순히 말씀을 듣는 시간으로 축소시키는 경향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것은 의도야 어떻든 예배의 본질을 왜곡함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예배의 본질은 무엇인가?
예배의 본질은 살아계신 성삼위일체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인격적으로 만나는 사건이다. 이 만남 속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부르시고,
그들의 마음을 만지시며,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을 새롭게 하시고,
그들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부어주신다.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성과 예의를 다하여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높이고,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마음을 다하여 인정하고 고백한다.
예배 안에서 성삼위일체 하나님은 예배하는 회중들 가운데 실재적으로 임재하시며, 당신의 임재가 가져다 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넘치게 하신다.
그러므로 예배란 하나님과 사람이 인격적으로 만나는 초자연적인 사건이다. 예배는 단순한 의식이나 행사가 아니며 요식행위는 더더욱 아니고, 단순한 학습이나 교육의 사건이 아니다.
예배는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당신의 자녀를 사랑가운데 만나주시는 사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의 주인공, 에배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이 점에 대해서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다. 예배의 주체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당신의 백성을 예배의 현장에 부르시는 분도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당신의 백성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을 만나주시고, 복 주시고, 위로하시고, 만지시는 분도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그들의 심령 속에서 찬양과 경배가 감사가 터져나오게 하시는 분도 궁극적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은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말씀하신다.
죄와 허물이 많고 유한한 인간이 거룩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일은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이다. 그것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마음 자체도 인간 스스로에게서 나올 수 없다.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서는, 성령의 이끄심과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성령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엡 2:18), 삼위일체적 사건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들에서 예배의 신비는 사라져 버렸다. 예배의 초자연적 성격은 잊혀졌다. 예배는 단순히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의식으로 전락해 버렸다.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를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경외감을 상실한지 오래 되었다.
이런한 예배의 타락은 예배음악의 타락과 궤를 같이 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사용되는 음악은 한 마디로 딴따라로 변질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신비로운 경외감과 우리 자신을 낮추는 깊은 겸손함이 베어 있는 경건한 음악은 소위 지루한 음악으로 치부된다. 그저 우리의 감정과 흥을 돋우는 음악, 인간의 감정에만 호소하는 음악, 때로는 너무 시끄러워서 잠잠히 하나님을 묵상하고 뵈옵는 것을 방해하는 음악들이 예배음악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음악적으로 보아도 너무나 수준이 낮은 천박한 음악이 예배음악의 주류가 되어 버렸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예배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례이다.
21세기 성경적인 기독교의 회복을 꿈꾸는 교회들은 예배의 본질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예배를 어지럽혀온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주님 앞에 토설하고 주님의 자비로운 용서를 구해야한다. 그러면서 예배의 초자연적, 신비적인 성격을 다시 회복하고, 예배의 주체와 주인공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본래의 자리로 모셔야 한다.
동시에 예배를 방해하는 모든 인간적인 음악을 일소하고, 성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거룩하고 깊은 만남을 돕는 아름답고 탁월한 음악을 추구해야 한다. 한국교회와 이민교회가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진보를 이뤄갈 때,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는 점진적으로 갱신되고 개혁되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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