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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종말론 이오갑 교수

하나님아들 2019. 12. 28. 15:19

3 구약성서의 종말론 이오갑 교수 그리스도대학교 교수

 

구약의 역사에서 종말론은 비교적 늦게 나타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유는 히브리인들의 사고 자체가 현실적이라는 데 있다. 물론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역사를 이끌어가며, 자신들의 미래를 축복하고 구원한다는 것을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복이나 구원은 이 세상 속에서 이루어질 것들을 넘어서지 않는다.

 

그러기에 예언의 시대가 열리면서 종말론적인 요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최초는 주전8세기 아모스부터이며, 1 이사야, 미가, 하박국, 에스겔, 2이사야, 학개 스가랴 등 바벨론 포로이후 시대까지 이어진다. 그 예언자들 속에는 이미 우리가 현재 종말론이라 부르는 사상의 특징들이나 단편들이 많이 들어 있다. 이 예언서들 이후에는 다니엘서의 등의 묵시문학에서 강력하고 독특한 종말론이 발생했다.

 

그러나 구약성서에서 종말론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종말론의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종말론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 기원이나 내용이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횔셔같은 학자는 종말론을 매우 엄격하게세계 종말에 한정시켰다.

그렇게 되면 종말론이 세계 시간의 마지막과 역사의 완성 그리고 초역사적 사건이 명시되는 곳에서만 다뤼질 수 있다. 그래서 종말론은 구약성서에서 매우 뒤늦은 시기에, 또는 신국약 중간기에 와서야 나타날 뿐이고, 다니엘서와 같은 묵시문학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사실 세계의 종말이나 초역사적이고 초자연적인 격변, 대재앙,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 같은 묵시문학적인 요소들은 이미 이스라엘의 예언서들 속에서 나타나고 발전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멘트가 구약성서의 종말론을 예언서들에서부터 설명한 것은 적절하고 정당하다고 판단된다.

폰 라트 역시 예언자들에 의해서 고대 이스라엘의 시간과 역사관이 종말론화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여기서는 구약성서의 종말론을 주전 8세기의 예언자들로부터 살펴보며, 내용을 구분을 위해서 포로기 이전, 포로기, 포로기 이후, 그리고 묵시문학 다니엘서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본다.

 

. 포로기 이전(BC8-7세기)

 

포로기 이전의 예언자들로서 8세기에는 아모스, 호세아, 미가, 1이사야 등이, 7세기에는 스바냐와 하박국, 나훔, 등이 활동했다. 당시 예언들에서 종말론적 성격을 가지는 주제들로서는 여호와의 날”, 메시야 사상, 신화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이상세계 등을 꼽을 수 있다.

 

1. 여호와의 날

 

포로기 이전 예언자들은 주로 이스라엘과 이방 제국들에 대한 심판을 선언했다. 특히 주전 8세기 예언의 특징은 비로 심판을 위주로 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모스의 여호와의 날이다.

그에 따르면 여호와의 날은 당시 백성이 기대했듯이 여호와가 역사에 직접 개입해서 구원하는 날이 아니라 심판하는 날, 백성이 그를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몰리지만 더 큰 고통과 심판이 기다리는 캄캄한 암흑과 같은 날일 뿐이다(5:18-20)

 

1 이사야(1-39) 역시 아모스의 뒤를 이어 심판으로서의 여호와의 날을 선포했고, 7세기의 스바냐도 여호와의 큰 날이라는 이름으로 무서운 심판을 선포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을 매개로 한 심판선언은 예언자들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으며, 심지어는 그날이 구원과 은혜의 날로 선포되기도 했다.

 

가령 제1 이사야의 여호와의 날(2:10-21)은 상당히 완화된 심판임을 보여 준다. 그 예언은 서두에 야곱 족속아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2:5)는 부드러운 권유로부터 출발하고 있으며, 또한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2:22)고 맺으며, 좁다란 코에 목숨을 부지하는 인간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며 구원의 길을 열어놓고 또 그리로 초청하고 있다

 

또한 이 여호와의 날바로 앞에 나오는 2:2-5까지의 본문은 전혀 다른 성격의 이 등장한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2:2) 여기서 말일로 표현된 최후의 날은 심판의 날이 아니라 구원과 은혜의 날이다. 그날은 여호와의 전의 산 곧 시온이 세상의 모든 산들 위에 우뚝 서서 산들의 산이 되고 세상의 정점, 중심이 된다. 그 산에서 하나님은 말씀하고 다스리고 판결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나라들, 모든 사람들은 그리로 몰려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뜻을 따르게 될 것이다.(2:2-3) 물론 이렇게 전혀 다른 구원의 날로서의 말일8세기의 사상이 아니라 구원 예언이 주인 포로기 이후의 첨가라고 할 수 있다.

 

2. 메시아사상

 

메시아사상이 최초로 등장한 것 역시 주전 8세기이다. 물론 당시의 메시아는 후대인들이 이해하는 것과 같지는 않았지만, 메시아사상으로 발전할 토대가 놓여졌음을 의심할 수 없다.

 

먼저 제1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며 메시아를 예언했다.

한 싹 한 가지는 신약에서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본문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카이저는 그를 2의 다윗으로 불렀다.

당시 이사야 자신은 다윗의 후손에서 태어날 실제 어떤 왕을 생각했을 뿐이다.

2의 다윗은 여호와의 영, 그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의 영을 받아 하나님과 온전히 합치된 인물이다. 그는 정의롭고 신실하여 올바른 재판을 행함으로써 힘없는 자들이나 가난한 자들이나 낮은 자들이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으며 악인들을 심판하고 물리치는 왕이 될 것이다.

 

이사야의 2의 디윗은 동시대 예언자 미가의 책에서 더 발전된 형태로 나타난다. 반면에 이사야보다 100년 뒤의 예례미야에게도 2의 다윗이 나타나는 데 발전되는 것은 거의 없다.(23:5-6_거기서도 이사야에서처럼 제2의 다윗은 초역사적 메시야의 성격을 가지기보다는 다윗의 후손에서 나올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평화를 이루는 지상의 미래의 탁월한 왕에 대한 기대를 넘어서지는 않았다.

 

미가의 경우는 독특하다.

그는 이런 말을 첨가했다. “베들레험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여원에 있느니라”(5:2-4)

미가서는 제2의 다윗의 기원을상고에, 영원에두었다.

이것은 단지 이스라엘의 성군이 아니라 신적이고 신비한 구세주라는 메시아사상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점은 미가의 원저작설을 의심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낟. 반면에 이어지는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5:5-6)는 미가 자신의 것으로 본다.

이것은 주전 701년 아시리아가 예루살렘에 쳐들어왔던 사건을 반영해 준다. 당시 산혜립은 유다를 정복하고 예루살렘까지 포위했으나 그냥 돌아가고 말았다. 미가가 언급한 5, 6절은 바로 아시리아 산혜립의 침입과 예루살렘 포위, 그리고 거기로부터의 구출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미가가 제2의 다윗 예언을 아시리아 침공과 결부시켰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의 임박한 메시아 도래의식을 보여준다. 즉 그는 제2의 다윗이 아시리아의 무서운 위협으로부터 구해주기 위해 속히 도래하리라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예루살렘이 아시리아의 칼날 아래 짓밟히고 약탈당하고 붕괴되는 것은 면했지만, 이 제2의 다윗이 태어난다는 예언은 이후로도 계속되어 이스라엘의 특정적인 메시아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3. 신화적이고 자연친화적 이상세계

 

1 이사야는 구원으로서의 말일을 선포하면서 다음과 같이 미래의 이상사회를 꿈꿨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리시니 무리가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2:2-4) 즉 여호와께서 완성하시는 최후의 날에는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심으로써 정의가 실현되고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지며, 따라서 민족들 간에 전쟁도 없고, 군사훈련도 없는 세상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미가 역시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로 시작되는 같은 내용의 이상 세계를 선포했다.(4:1-3) 그 전승은 예루살렘의 제의에서 고백되던 것으로서 종말에 예루살렘이 온 세상의 배꼽/중심으로 우뚝 서게 된다는 신화적인 대망을 표현한다.

여가서 예루살렘은 더는 역사적이고 지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내면적으로 영적으로 대변혁을 이룬 종말론적으로 완성된 대세계, 그 속에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고 다스리며 온 세상의 민족들이 운집하여 그의 통치를 받는 완전한 평화, 궁극적 이상의 세계이다.

 

그러나 사실 미가나 제1 이사야는 주전 8세기 예언자들로서 심판예언을 주조로 한다는 점에서 이런 예언들은 포로기 이후의 구원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모두 포로기 이후 편찬자에 의해 심판에서 살아남은 공동체에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해 첨가된 것으로 평가된다.

 

1 이사야는 한 걸은 더 나가서 자연에서의 완전한 평화를 노래했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11:6-9) 이 부분은 자연신화적 표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사야저작을 부인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카이저는 초기부터 이스라엘 전승에서 저의와 자연구원이 서로 결합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동일 본문으로 평가했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원래 인간과 동물들, 자연의 모든 피조물의 관계가 멀어지면서 인간끼리외 관계도 깨지고,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에도 긴장과 불화와 경계와 적대심이 자리잡게 되었다. 항상 두렵고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치명적인 관계가 지배하는 자연계가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 구원론적이고 종말론적인 사유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안 일일 것이다. 이사야는 그런 모든 죄와 불화가 자연계 전체에서 극복되고 회복되는 완전한 이상세계를 예언했던 것이다.

 

포로기 예언자들(BC6세기)

 

포로기 예언자들은 유다왕국이 주전 587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가던 무렵부터 포로기간 동안 활동한 예언자들로서, 예레미야와 에스겔, 2 이사야 등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예언은 대체로 바벨론의 침입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여호와의 새로운 구원을 기대하라는 내용을 주로 하고 있다.

 

1. 구원의 선포

 

포로기 예언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구원의 선포에 있다.

당시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시기로서, 예루살렘 성과 성전도 붕괴되고, 모든 사회 제도나 제사도 사라졌으며, 백성은 유다와 바벨론으로 나뉘어 살았다. 그렇게 비참했던 시기에 예언자들은 백성을 위로하고 희망을 복돋으며 새 삶에 대한 용기를 주었다.

 

에스겔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는 초기에는 이상의 전통에 따라 백성에 대한 심판을 선포했으나(7:3-) 점차 구원 예언으로 전환했다. 최종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구원을 선포했는데, 그는 활동기 대부분을 차지하고 책에서는 34장 이후에 해당된다. 이는 에스겔이 포로민들에게 향한 요구가 그들의 능력을 넘어선다는 것과 미래가 단순히 소수의 경건한 남은 자들에게만 호락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 예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에스겔 34:23-28의 제2의 다윗, 즉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다.

거기서 에스겔은 이사야와 미가 예언자의 제2의 다윗을 원용하여 여호와의 계약이 회복된 평화로운 왕국의 이상을 선포했다. 아울러 그 시기에 이스라엘 국가가 재통일될 것도 선포되고(36-37) 축복의 강물이 흐르는 성전으로 여호와가 다시 귀환하리라는 것도 선포된다.(40-48) 반면에 예루살렘을 여전히 위협하고 있는 공격자들에게는 파멸이 급히 뒤따르게 된다.(38장 이하)

 

포로 말기에 제2 이사야도 구원예언을 주축으로 한다. 그는 포로생활에 지치고 희망을 잃은 백성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구원을 선포했다. 이제복역기간이 끝났고 받을 벌을 다 받았다. 남아 있는 것은 해방이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일뿐이다(49:1-2)

 

2. 보편주의적 신 인식

 

포로기에 이르면 여호와에 대해 매우 확대된 보편적 신 의식이 확립된다.

포로기 이전에도 아모스나 하박국 같은 예언자들에게도 보편주의적 신 이해가 나타나지만 포로기의 에스겔에서 드두러진다.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초세계적 주권을 가진 분으로서 예루살렘 성전에만 묶여 있는 분이 아니다. 그 하나님은 온 세계를 포괄하며, 세상의 모든 주권자들을 예속시킨다. 지금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유다를 심판하고 있으며, 느부갓네살은 그 심판의 도구다. 그러므로 유다는 심판을 받아들여야 할 뿐 예루살렘을 향한 여호와의 구원을 믿고 섣부르게 독립을 추구하고 저항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런 보편적 신 의식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은 제2 이사야서이다.

이사야는 페르시아의 고레스를 하나님의 목자, “기름 부음을 받은 자”(45:1)로까지 지칭했다.

고대 세계에서목자는 종종 왕의 별칭이었다. 또한 이스라엘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메시아를 뜻하며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이다.

2 이사야가 이방인의 왕에게 그런 칭호를 부여했다는 것은 혁명적인 일이다. 그것은 그의 신 의식이 대폭 확장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여호와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으로서 어느 한 지역이나 어느 한 민족에만 묶여 있는 신이 아니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곳까지”(45:6) 온 세상의 하나님이다.

또한 그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는 ”, “그 모든 일을 행하는”(45:7) 존재이다.

그런 하나님이기 때문에 W2 이사야는 여호와를 처음이요 마지막”(48;12, 41:4) 이고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며그 모든 가운데서 그의 뜻을 세우고그가 기뻐하며 그의 모든 것을 이루는(46:10) 분으로 선포할 수 있었다.

요한계시록의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며 처음이고 마지막이라는 선언도 이사야의 선언과 맥락을 같이 한다.

종말론이라는 것 자체가 신에 관한 그런 인식, 즉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이 세상의 역사를 자신의 뜻에 따라 완성하고 성취하며, 그 범위는 단지 그가 택한 백성들만 아니라 온 인류, 더 나아가서는 우주 전체를 포함한다는 믿음으로부터 생겨났다.

그 점에서 제2 이사야에는 기독교의 우주적 또는 보편적 종말론이 배양될 휼륭한 통양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개인주의의 발현

 

포로기 예언에서 두드러진 특징 또 하나는 개인주의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먼저 에스겔은 개인의 책임적인 태도와 응답을 강조했다.

그에게서 종교나 율법의 준수는 더는 집단적인 민족의 일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개인의 올바른 태도와 행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상호관계를 주목하고 또 강조했다.

구원이나 심판, 생명이나 사망도 민족 단위로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책임에 따라 그의 삶이 결정된다. 그 점은 특히 에스겔 18장에서 잘 나타난다.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으므로 그의 아들이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너희가 이스라엘 강누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이것은 이스라엘이 좁은 영토와 성전을 중심으로 살았던 집단적 삶의 방식이 와해되고, 바벨론과 주변 여러 나라로 흩어지기 시작했던 때의 상황을 반영한다. 유대인들은 이제 어디서든 살아야 하고, 그만큼 성전과 민족이라는 속박은 완화된다.

여호와 백성의 정체성은 성전이나 민족집단이 아니라 율법과 그 준수에 달려있다. 이제 유대인은 언제 어디서, 어떤 조건에 살든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순종하고 그의 법을 따라야하는 책임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2 이사야 역시 그러나 또 다른 방향에서 개인을 부각시켰다.

그의 예언에는 개인적 어투가 두드러지며, 개인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듯한 연설이 주조를 이룬다.

그 어조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첫마디부터 나타난다.

그런 식으로 표현한 예언자는 제2 이사야가 처음이다.

그에게 자주 나타나는 의인화도 같은 맥락이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41:14) 같은 표현이다.

예언자는 백성 전체를 상대로 말한다. 그러나 그가 선포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전체를 이루고 있는 각 구성원의 지극히 독자적이고 인격적인 삶을 겨냥하고 있다. 거기에는 전체가 하나이고 하나가전체라는 예언자의 인식이 담겨 있다. 개인은 민족이라는 전체 속에 묻어가지 않으며, 민족은 개인이 빠진 공허한 개념이기를 부정한다. 예언자 앞에서 백성은 모두 각 개인으로서 민족의 이야기를 듣고, 민족의 운명과 미래를 바로 자신의 것으로 알아듣고 울고 웃으며 결단한다.

 

에스겔이나 제2 이사야처럼 분명하게 개인을 부각시키고 책임적인 존재로 자리매김을 한 예언자들은 없다. 종말론은 이제 한꺼번에 죽고 한꺼번에 사는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결단에 따라 그 끝이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 문제가 된 것이다. 포로기의 그런 사상은 개인적 종말론과 더 나아서 실존적 종말론으로까지 발전되는 확실한 토대라 평가한다.

 

포로기 이후 예언저들 (6세기 말 이후)

 

포로기 이후 예언자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뒤의 예언자들이다.

주전 587년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은 약50년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538), 이는 당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새로 등장한 페르시아 고레스 대왕의 정책 덕분이었다. 당시 예언자들은 제3 이사야, 학개, 스가랴 등으로서 귀환한 백성을 고무하고 독려해서 새로운 국가와 종교를 수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 세속적 번영으로서의 종말론

 

당시 포로로부터 돌아온 사람들의 처지는 가난과 곤궁과 환란의 연속이었다. 가뭄과 흉작으로 기근이 밀려왔고, 그런 어려움은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의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1:6)

의욕적으로 시작한 성전재건도 진행되지 않았다. 학개는 상황이 매우 불확실하고 절박했으며 경제적 궁핍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이 거대한 공동사업은지지 부진한 상태에 있었다고 전한다.(1:1-11)

 

그런 상황에서 3 이사야(56-66)는 세상적인 의미에서의 번영과 성공, 부를 종말론적 약속으로 선포했다. 즉 이 세상에서의 구원에 집중된 예언이다. 온 세상, 사방 각국, 각지의 재물과 특산물, 가령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황을 가지고”, “게달의 양 무리”, “느바욧의 숫양이 예루살렘과 성전에 가득하게 될 것이다.(60:5-7) 그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성문은 항상 열려 있어서 사람들이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들의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오는데 지장이 없고(60:11) 적대국들, 강대국들과 그들의 자손들이 유다에 굽신거리고 예루살렘을 칭송하게 될 것이다(14-20)

그처럼 제3 이사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영광과 안녕, 백성의 물질적인 부와 번영, 전쟁에서의 승리 등을 약속하고 있다.

물론 이런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약속은 이미 이전 예언서들에도, 가령 에스겔이나 제2 이사야에도 나오고 있다는 점을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제3 이사야는 이전 예언자들에 비해 그런 요소들을 휠씬 더 집중적이고 풍부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종의 번영의 신학의 기원으로 간주해도 별 문제 없다고 본다.

 

곧이어 학개도 물질적인 축복으로서의 종말을 선포했다.

학개는 성전완공을 종말론적인 영구한 시간의 도래와 결합시켰다. 성전을 건립하는 일에는 어떠한 핑계도 댈 수 없다. 성전의 초석을 놓는 날은 새시간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제 성전이 오나공되면 빛나는 영광과 축복만이 있을 뿐이다. 성전이 완공되면 자연과 민족들을 뒤흔드는 세계적인 진동으로써 만방은 여호와를 알게 되고 그의 봉신이 되어 은금과 금을가져와서 바칠 것이다.

 

포로기 이후의 예언자들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성공과 풍요를 종말론적 구원으로 보았던 것은 새롭게 전개될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신학적 대응이라고 봐야 한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이 당장 부딪힌 것은 심각한 혼란과 가난이었다. 남아 있던 사람과의 토지나 주택의 소유권 다툼 등의 사회 경제적 갈등도 심각했다. 성전은 의욕적으로 착공되었으나 곧 중단되고, 재개되기도 쉽지 않았다. 포로지의 동족들이 돌아올 길은 더욱 요원했다. 바벨론 등에서 터를 잡고 어느 정도 사회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돌아오기를 망설이는 자들에게 황폐하고 궁핍한 예루살렘 대신 화려하고 빛나는 성과 성전, 번영하는 국가, 넘쳐나는 부의 약속이 있어야 했다. 그것은 또한 이미 돌아와서 가난과 혼란을 딛고 다시 정착해야 하고 국가와 여호와 종교의 재건을 이뤄내야 하는 동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길이었다.

 

이제 그들의 신학은 기독교 종말론의 세상적 지평을 자신 있게 열어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성취는 사람들의 성공과 더불어 이뤄지고 하늘나라는 지상나라에 발을 내리며 하나님의 비전은 사람들의 세속적 꿈과 따로 가지 않는다. 단 기독교의 종말론이 그 한가지로만 집중되지 않는다는 전제는 있다. 마치 제3 이사야가 자신의 새 사상을 전개하면서도 제1 이사야나 제2 이사야의 사상을 여전히 그 안에 담고 이어갔듯이, 이 세상적 종말론은 세상으로부터 자유와 초월이라는 제 세상과의 긴장과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불가피한 상황 또는 시대적인 요청이나 필요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2. 종말론적 환상들-묵시문학의 전조

 

포로기 이후 예언자 중 특히 스가랴는 환상을 매우 많이 담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전에도 이미 아모스가 7장과 8장에서 네 개의 환상으로써 예언하는 등 환상이 예언의 일부로 자리 잡았던 전통이 있다.

 

환상은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미래에 일어날 이들을 말로써만이 아니라 시각적 이미지로써 마치 지금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해 주는 그림언어이고, 문학적 장치이다. 그럼으로써 예언자들의 말을 듣고 청중들이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일에 대해 전휼함으로써 더욱 폭넓게 발견하고 다양화될뿐더러 주도적인 내용이 된다. 즉 과거 예언서에서 환상들이 문학적 장치로써 가능했다면, 묵시문학에서는 그것 자체가 문학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에스겔 역시 수많은 환상들과 상징적 행위들, 이방적 요소들을 수룩함으로써 묵시문학으로의 이행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에스겔은 예언서의 범주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환상이나 상징 같은 단편들이 매우 많다고는 해도 묵시문학이 가지는 독특한 특성들은 대부분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가랴에게서 종말론적 예언은 주로 그가 밤에 본 일련의 환상들 속에 나타난다.

첫 번째 환상은 화석류 나무(소귀나무) 사이에 선 자의 환상이다. 환상의 내용은 사람들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즛빛 말과 백마가 있는데”, 그들과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천사와 그리고 여호와 자신의 문답으로 이루어진다.(1:8-17)

스가랴가 본 이 환상의 세부 사항을 다 알기는 어럽다, 아마 그 표상은 이스라엘 밖의 종교사의 복잡하게 뒤얽힌 국면을 암시해줄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가랴가 본 환상이 비로소 묵시문학 환상과 같은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특히 예언자가 보는 환상에 대해 질문을 해고 해설자 천사가 대답을 하는 형식이다. 그래서 스가랴서야말로 예언서에서 묵시문학으로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또는 마지막 단계를 보여준다.

 

묵시문학 다니엘서

 

다니엘서는 묵시문학 저술로 꼽힌다.

묵시문학이란 헬라어의 apokalypsis 즉 계시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신적인 비밀을 그려내고 알려주는 글이다. 그 비밀이란 바로 마지막 때의 비밀, 천국의 비밀 같은 것들이며, 그래서 묵시문학은 종말을 주제로 하는 문학, 즉 종말론이다.

 

1. 다니엘서의 주요 문제

 

다니엘서의 저자로 기록된 다니엘은 포로기에 바벨론에서 살았다는 것 외에 알려진 바가 없다. 다니엘서는 다니엘이 유다의 패망으로 포로로 잡혀갔던 때부터 페르시아의 고레스 때까지 살았던 즉 바벨론 포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다니엘서는 휠씬 후대인 주전 2세기 시라아의 셀류커스 왕조의 지배하에 있을 때 164년 직전의 작품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소위 사건 후 예언이다. 즉 이미 일어난 일을 그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서 예언의 형식으로 기록했던 :문학적 수단이다. 다니엘서에서 순수하게 예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11:40절 이하의 다가오는 안티오커스의 죽음과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하나님의 개입에 대한 기대이며, 그 외에는 후에 상징으로 고찰된 역사나 천사가 해석하는 형식으로 후에 고찰된 역사이다. 즉 실제 관점은 안티오커스 박해시대로서, 그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저자에게 의미 있는 역사를 도식화함으로써 임박한 역사의 절정을 내다보았다는 것이다.

 

다니엘서가 쓰여진 당시는 시리아의 셀류커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특히 극단적인 헬라주의자였던 안티오커스 4세가 왕으로 등극한 뒤(175) 유다의 상황은 매우 악화되었다. 그는 헬라주의에 동화된 협력적인 유다인들과 연대하는 반면 이스라엘 저의와 율법을 고집한 사람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그는 안식일과 기타 축제일을 금하고, 이교 제단과 성전과 신당을 세우며 돼지와 부정한 동물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고 할례를 금지하고, 일부러 음란과 모독 행위를 해서 스스로 더럽히는 등 율법과 규례를 저버리고 바꾸라고 명령하며, 이를 어기면 사형에 처한다는 칙령을 내렸다(마카베오 상44-50) 그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제우스의 현신이라고 믿었던 그는-그래서 에피파네스라는 명칭이 붙었다.-16712월 성전 번제단 위에 제우스 상을 세웠다. 그 상을 다니엘은 멸망하는 가증한 것이라는 말로 표현했다(11:31 또한 21:11) 예수께서도 대환난을 깨닫는 징표로 삼기위해 쓴 표현이 그것이다(13:14)

다니엘서가 기록된 것은 그런 탄압이 극심하고, 그에 대한 저항과 지지가 극명하게 갈려서 대립과 분열상이 최고조에 달하던 때였다.

 

2. 다니엘서의 종말론적 예언

 

다니엘서의 종말론이 가장 잘 나타나고,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 종말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2이다. 거기서 이스라엘의 수호천사 미가엘의 등장과 최후의 환난과 죽은 자들의 부활, 성도들과 악인들에 대한 심판, 그리고 마지막 날의 기간과 양상 같은 것들이 제시된다.

 

1)호국천사 미가엘과 개별적 구원

 

12;1절에 미가엘이 이스라엘의 호국천사로 등장한다. 미가엘은 마지막 환난, 즉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대환난에서 백성 중에 기록된 자를 구원하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다니엘의 이 본문을 이어 받아 최후의 환난 때 하늘에서 일어날 전쟁을 수행하는 미가엘을 소개하게 될 것이다(12:7-8) 최후의 환난에서 구원받을 백성 중에 기록된 자는 구원이 선별적임을 알려 준다. 이미 때는 안티오커스 4세의 반 유대 칙령들과 탄압으로 인해 순교자들이 늘어가고 유다 마카비 전쟁이 일어나던 즈음이었다. 강대한 적국에 동화되고 협력하는 배반자들이 속출했던 때 선민 이스라엘의 구원, 민족의 구원은 애기될 수 없었다. 재판장의 책에 낱낱이 기록된 대로 최후까지 믿고 충성한 자들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종말론이 완성되었다고 평가 할 수 있다.

 

2)부활 신앙의 등장

 

부활 신앙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땅의 티글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12:2) 물론 이집트나 그리스 같은 주변 세계에도 여러 형태로 죽은 자들의 부활과 사후세계에 관한 믿음들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성서에서든 바로 묵시문학의 다니엘서에서 부활 신앙과 사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부활 신앙이 구약성서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일치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토 카이저에 따르면 다니엘서가 거의 최초이다 물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내용은 이사야 29:19절에서도 볼 수 있다. 카이저는 이것을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서 안티오커스 4, 즉 에피파네스 때로 본다.

 

경건한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고 배반자들이 상급을 누리던 시대에 이스라엘은 이 세상 안에서 역사의 끝을 볼 수 없었다. 의롭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을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의를 위해서 이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다시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함께 누릴 것이다. 그 믿음으로써 순교자들은 가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의연하게 죽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형성된 부활 사상을 하시딤 왕조에서 상류층이었고 성전을 지배했던 사두개파 사람들은 믿지 않았던 반면 경건한 대중들이었던 바리새인들이나 에세네파 사람들은 철저히 믿게 된다.

 

3)지도자들과 종말론적 공동체의 출현

 

부활 신앙이 나타나는 2절 못지않게 3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빛나리라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민족의 수난과 전쟁의 때에 영웅적인 지혜와 용기와 지도력을 발휘한 이들을 잊을 수없다. 그들을 향한 거룩한 백성의 무한한 존경과 신뢰는 하늘에서의 영원한 보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폰 라트는 다니엘-묵시문학의 결정론적 역사관을 강조하면서 이런 지혜 있는 자참고 견디는 자들의 편에서의 인도자임을 지적했다. 그들은 환난의 시대에 대항해서 싸우기보다는 오히려 고난을 당하는 편이었다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인간이 영향을 미칠 만한 것은 없다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앙드레 라콕도 그 점에 동의하면서도 논의를 발전시킨다.

라콕에 따르면 지혜 있는 자는 maskilim으로서 11:33절에도 많은 사람을 가르치다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해서 몰락하는 지도자로 나오는데, 마카비서의 경건한 자에 해당된다. 그런데 11:34-35절는 이들이 하나님의 직접적이고 기적적인 개입을 기다리며 유다의 사막과 산으로 옮겼음을 의미한다.

그 무리들은 후에 콤란 공동체의 에세네파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 공동체는 매우 종말론적인 성향을 가진다. 그들은 약 200년간 지속된 유다전쟁 후 73년 경 마사다에서 로마군의 진군을 앞에 두고 집단 자결함으로써 종말을 고했다.

 

그렇게 볼 때 다니엘서에서 이후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출현하게 되는 종말론적 공동체 또는 종말론집단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상 많은 무리들이 박해나 고난이나 기타 불안을 야기하는 격변의 시기를 종말의 때로 인식하면서 지도자를 중심으로 함께 생활하면서 신앙과 삶의 순수성을 유지하며 최후의 날을 준비하려는 종말론적 공동체 운동들을 일으켰다. 그런 유형들의 출발이 다니엘서에서 최초로 발견된다.

 

4)“의 약속과 연장

 

이제다니엘서 저자는 강 양편에 선 천사들을 본다. 그의 환상 중에서 강 아래쪽 천사가 위쪽의 세마포 입은 천사에게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인지”(12:6)를 물었다.

위쪽 천사는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들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라고 대답했다. “한 때는 일 년으로서 일 년과 이 년과 반 년을 합하면 삼 년 육개월이 된다.

일수는 1277일이다. 이 기간은 수난과 순교의 때를 겪는 성도들에게는 무척 길고 지루한 기간이다. 그 기간이면 성도들이 다 희생당하고 남아 있는 자가없을 정도가 된다. 그러니까 섣부른 기대나 희망을 버리라는 요청이고 끝가지 견디다 죽어야 한다는 각오의 다짐이기도 하다. 특이한 것은 10절에서 천이백구십일이던 것이 11절에는 천삼백삼십오일로 그 수가 계속 많아진다는 점이다.

 

즉 한 때 두 때 반 때(1227)가 멸망하게 될 가중한 것을 세울 때(성전에 제우스 상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일로, 그리고 다시 천삼백삼십오로 늘어난다.

이것은 박해와 수난이 예고된 기간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이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즉 계속 일수가 수정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당연히 이후에 첨가된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놀라운 개입을 통한 최후의 구원과 승리를 실망하지 않고 변함없이 믿는다는 점이다.

 

 

 

추천도서

 

이오갑. “종말론, 무엇이며 어떻게 볼까?”. 서울:쿰란출판사, 2012

 

로돌프 스멘트/편집부 역, “구약성서의 종말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3

 

A 바이저, K. 엘리거/번역실. 소 예언서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96.

 

발췌한 것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