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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명령과 하나님의 형상(존재유비, 관계유비)

하나님아들 2019. 9. 17. 23:30

 문화 명령과 하나님의 형상(존재유비, 관계유비)


질문1) 창세기 1:28에서 하나님의 다섯 가지 명령은 찾아보시오. 이 문장은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에게 내리는 축복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은 서양의 자연 남용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마련해주고 있다.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어원적 해석) [읽을 성경 창세기 1:28]


- 5대 문화명령:

- ‘정복하고 다스려라’의 어원적 의미:



질문2) 이미 공부한바 창세기 1장은 포로기에 쓰인 것이다. 그렇다면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처지에 과연 남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이 적절한 것인가?(사회학적 해석) 폭군적 왕권을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신학자 브루그만은 “화려한 명령어로 쓰인 이 축복문은 포로생활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고 있는 가난과 패배에 대한 저항이요, 그들의 억눌린 처지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 권리의 선언으로 이해할 때 자연스럽다.”]


- 생육하라(더 이상 자손이 해를 입지 않는다.)

- 번성하라(더 이상 황폐하지 않는다.)

- 땅에 충만 하라(더 이상 땅에서 유리되지 않는다.)

- 정복하라(더 이상 종속되지 않는다.)

- 다스리라(더 이상 지배받지 않는다.)

- 이 구절을 폭군적 왕권으로 해석하고 인간사에 적용할 때(서구역사)



질문3) 창세기 1:26절의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면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말이다. 무엇이 닮았다는 말일까? 존재가 닮았다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본성이 닮았다는 의미인가? 하나님의 본성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왜 복수(우리)인가? [읽을 성경 1:26]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天賦人權 : 하나님이 인간에게 평등하게 부여한 권리)

1)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

2) 관계의 유비(analogia relationis)

3) 하나님은 관계를 관계케 하는 관계이시다.

-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은 엘로힘(Elohim)

- 이사야 6장 ‘하나님들’ [읽을 성경 이사야 6:8]

- 성경의 여러 곳에 나타난 하나님이 주재하시는 천상회의

-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

- 하나님의 본성

- 하나님의 본성대로 지음 받은 인간

 

 

강의

[오경] 2장 문화 명령과 하나님의 형상(존재유비, 관계유비)


질문1) 창세기 1:28에서 하나님의 다섯 가지 명령은 찾아보시오. 이 문장은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에게 내리는 축복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은 서양의 자연 남용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마련해주고 있다.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어원적 해석) [창세기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5대 문화명령: 생육하다. 번성하다. 땅에 충만하다. 정복하다. 다스리다.

- ‘정복하고 다스려라’의 어원적 의미: '정복하다(kabash), 다스리다(radah)'란 동사는 "조화로운 통치를 상징하는 왕권의 행사" (착취, 남용, 파괴의 오용을 일삼는 폭군적 통치가 아닌, 왕권이 미치는 범위의 모든 것들이 번성하도록 능력껏 잘 돌보아주고 지켜줄 책임을 지는 선한 왕으로서 다스리라는 말이다.)


질문 2) 이미 공부한바 창세기 1장은 포로기에 쓰인 것이다. 그렇다면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처지에 과연 남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이 적절한 것인가?(사회학적 해석) 폭군적 왕권을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신학자 브루그만은 “화려한 명령어로 쓰인 이 축복문은 포로생활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고 있는 가난과 패배에 대한 저항이요, 그들의 억눌린 처지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 권리의 선언으로 이해할 때 자연스럽다.”]


- 생육하라(더 이상 자손이 해를 입지 않는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 할 때 아기들이 죽임을 당한 것과 같은 끔찍한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더 이상 자신들의 자손이 해를 입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선언인 것이다.

- 번성하라(더 이상 황폐하지 않는다.)

이미 그들의 땅은 짓밟혔고 도륙 당했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사는 땅이 더 이상 황폐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선언이다.

- 땅에 충만 하라(더 이상 땅에서 유리되지 않는다.)

지금은 역시 남의 땅에 억류된 상태이지만, 더 이상 이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유리되지 않아야 한다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

- 정복하라(더 이상 종속되지 않는다.)

우리가 더 이상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아니한다는 선언이다.

- 다스리라(더 이상 지배받지 않는다.)

더 이상 우리는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아니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선언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 이 구절을 폭군적 왕권으로 해석하고 인간사에 적용할 때(서구역사)

이교도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미화했고, 성전(거룩한 전쟁)에 참여하도록 선동했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 신대륙 인디언 말살 전쟁, 근세 서구의 식민지 확장에 이르기까지 이 말씀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이 전통은 오늘날 그대로 미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이기주의와 군사 패권주의를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 전쟁으로 포장해서 사람을 전쟁터로 몰아가며, 이러한 행위를 아무 거리낌 없이 하나님의 뜻으로 미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이 말씀은 정복하고 다스리는 입장을 정당화시키는 논리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어떤 인간도 더 이상 남에게 지배받거나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위대한 인간 권리의 선언으로 볼 때에 비로소 이 말씀이 선포된 정황에 적합한 해석이 되며 또한 정당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주셨던 축복을 노아홍수 이후에는 숨 쉬는 모든 생물들에게도 주시어, 그들도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독자적인 권리를 부여하셨다(창 9:10이하). 그리고 그 약속의 증표로 무지개를 세우신다.


질문3) 창세기 1:26절의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면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말이다. 무엇이 닮았다는 말일까? 존재가 닮았다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본성이 닮았다는 의미인가? 하나님의 본성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왜 복수(우리)인가? [읽을 성경 1:26]

[창세기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天賦人權 : 하나님이 인간에게 평등하게 부여한 권리) :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인간의 권리가 하늘로부터 왔다는 "천부인권天賦人權"사상의 근거가 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인권신장을 위해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는 말씀이다.


1)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 :  하나님의 존재와 유사한 형태로 인간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인간만이 다른 동물, 식물과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인간 존재만이 가지는 특징을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자연과 구별되는 특징을 "하나님답고 인간다운 것"으로 삼게 되면 결국 자연과 인간은 구별되고, 인간은 자연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폭군일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2) 관계의 유비(analogia relationis) : 그래서 사회학 등에 영향 받은 현대신학은 "하나님의 형상"을 관계의 유비(analogia relationis)로 해석한다. 즉, 하나님의 특징을 관계성으로 보고 인간이 그와 닮은꼴로 지음 받았다는 사상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하나님을 "다자간의 관계를 완벽한 이해와 조화 속에서 일치해 나가시는 주체"로 본다.


3) 하나님은 관계를 관계케 하는 관계이시다.

-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은 엘로힘(Elohim) : 여기서 -im은 명사의 복수형이다. 이것은 다신론에 영향 받은 고대적 표현일 테지만 기독교 교부들에 의해 발전된 삼위일체론의 한 표현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하나님은 단지 한 분일까? 그렇다면 그 분에 대해 '사랑의 하나님'이나, '관계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표현들은 그의 본성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공허한 말이 될 것이다. 혼자서 어떻게 사랑하고 관계를 맺는다는 말인가?


- 이사야 6장 ‘하나님들’(우리)

[이사야 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여기에도 하나님은 "우리"라는 복수로 언급된다. 이처럼 하나님은 상대를 필요로 하신다. 한 여성신학자는 "하나님은 고독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고독 때문에 괴로워하시며, 하나님은 관계를 맺기 위하여 창조하신다."고 하였다. 피조된 세계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고립된 체계가 아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한번 행사한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은 혼자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다. 홀로 계실 때 완전하신 하나님, 상호관계를 초월해서 독존하는 하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다.


- 성경의 여러 곳에 나타난 하나님이 주재하시는 천상회의

성경의 여러 곳에는 하나님께서 천상회의를 주재하시며 의견을 나누시는 모습이 언급되고 있다. 하나님은 홀로 존재하는 분이 아니시고 누군가와 회의를 하시며 의견을 나누신다는 것에 주목해보자. 때로는 예언자가 그 천상회의에 참여하기도 하며 욥기 1,2장에서는 하나님과 의견을 주고받는 대상으로 심지어 사탄이 등장하기도 한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으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홀로 완전하신 하나님은 결코 좋은 모양의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의 완전성은 그 분 홀로 존재하고 홀로 완전하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완전성은 그 분 자신 안에서 여러 인격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완전하시다는 말이다. 혼자 완전한 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관계 안에서, 그 상호성 안에서 하나님은 완전하게 되시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완전성이다. 하나님 안에 살아 있는 관계의 역동성은 나 아닌 타자와 완벽한 조화와 일치를 이루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관계성이 바로 신성의 본질이다.


-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우리와 관계를 맺으신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있어서 매우 중요한 주제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들이 하나님의 본성과는 상관없이, 단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으로 취급된다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에게 부과된 장식물이나 액세서리 같은 것 중의 하나가 되어 버린다.


- 그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인간은 그 모양대로, 그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그래서 인간은 타자를 그리워하고 만나고 싶어 하고 사랑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를 홀로 있게 놓아두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역시 당신과 같은 관계 안의 존재로 만들어 가신다. '나'라는 존재를 타인과 분리된 공간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나라는 존재는 타인과 관계 맺는 가운데 오히려 명백해지고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서양의 인간존재에 관한 사유는 독립된 인간 존재에서의 '나'라는 데카르트적인 사유방식을 기반으로 삼는다. 그러나 타인과 분리된 '나'라는 존재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골방에서 자아를 확립해 놓고 다른 사람을 만나 자신을 입증하고 설득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한다면,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독선적인 인간형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자아는 물과 같이 형태를 가지지 않으며 다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모습과 의견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고정된 실체에서 자신을 찾지 않으신다. 역동적인 관계, 그 관계와 관계가 얽히고 설켜서 만들어내는 생명력과 역동성으로 하나님은 우주를 운영하시고 세상을 섭리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