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창조 역사에 참여하는 공동 참여자 - 인간 창조와 노동에 대한 이야기
질문 1) 창 2:7절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인간에 대한 이해를 볼 수 있습니다. 고대 히브인들의 인간이해는 무엇이며,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질문 2) 히브리인들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주변 열국들의 인간 이해에 대하여 비교해 보자.(고대사회의 창조신화에서의 인간 창조에 대한 부분 : 인간 - 반란자의 피)
1) 바벨론 시대 창조신화(에뉴마 엘리쉬 : 주전 1900-1700년)
2) 아시리아의 창조 신화(아트라하시스 : 주전 1700-1600년)
질문 3) 성경에서는 '일'과 '휴식'과 '땅의 경작'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복되고 창조적인 노동)
(창 2:2-3)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출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3:1-11) 너는 육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11제 칠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찌니라
(레 26:32-35) 그 땅을 황무케 하리니 거기 거하는 너희 대적들이 그것을 인하여 놀랄 것이며 33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34너희가 대적의 땅에 거할 동안에 너희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 때에 땅이 쉬어 안식을 누리리니 35너희가 그 땅에 거한 동안 너희 안식시에 쉼을 얻지 못하던 땅이 그 황무할 동안에는 쉬리라
질문 4) 노동의 기원과 역할 - '파라다이스'라고 하는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무엇을 했을까? 과연 일을 했을까? 아니면 타락한 인간에게 내려진 벌로 일(노동)이 주어진 것입니까? 창세기 2:15절의 '동산을 돌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일하지 않고도 풍성하게 먹고 살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과연 축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노동은 어떤 역할을 가지고 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그의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창조한다는 것과 말씀한다는 것은 똑같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만듦으로써 자신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려준다. 예를 들어서 사람들이 시를 쓰거나 노래를 작곡할 때,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그리고 목수가 책상을 만들 때도 그렇다.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일을 통해서, 즉 그가 만든 것을 통해서 자신을 알린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고 별을 하늘, 땅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도 자신을 표현하고 알려주신 것이다."
-에르네스또 까르네날 지음, [말씀이 우리와 함께]
1) 노동은 자아 실현과 자기 표현의 활동이다.
2) 노동은 개인을 사회적 관계로 불러내는 활동이다.
질문 5) 에덴동산 - 낙원 - 은 현재 이라크 지역이다. 그곳이 지금도 에덴동산, 낙원일까요? 그렇다면 에덴동산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은 입니까? 우리의 가정과 일터를 신바람나는 창조적 자기실현의 장인 낙원으로 만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정한 안식(휴식)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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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창조 역사에 참여하는 공동 참여자 - 인간 창조와 노동에 대한 이야기
질문 1) 창 2:7절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인간에 대한 이해를 볼 수 있습니다. 고대 히브인들의 인간이해는 무엇이며,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인간(아담:Adam) = 흙(Adama) + 하나님의 숨(영, 숨, 기) : 사람이 존엄한 까닭은 사람이 ‘하나님의 숨(영)’이기 때문이다.
숨 : 살아있음은 곧 들숨과 날숨이 있다는 것이고, 살아있는 동안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 숨이다. 그 숨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다. 인간 존재의 뿌리를 하나님에게서 찾는 것이다. 이 말씀은 살아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가까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존엄한 것은 자신이 그 생명의 주인인 하나님을 알거나 모르거나 상관없이 하나님의 영이 생명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는 말씀이다.
질문 2) 히브리인들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주변 열국들의 인간 이해에 대하여 비교해 보자.(고대사회의 창조신화에서의 인간 창조에 대한 부분 : 인간 - 반란자의 피)
1) 바벨론 시대 창조신화(에뉴마 엘리쉬 : 주전 1900-1700년)
남신(마르둑)과 여신(티아맛)과의 전쟁에서 남신이 승리한다.(이 시대의 신화들은 남신이 승리한다.- 사회학: 주전 2000년대쯤 모계중심사회에서 부계중심사회로의 변화를 반영) 마르둑은 티아맛을 죽여 소재로 제사를 드리고 티아맛의 총사령관인 킹구의 피와 흙을 섞어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에게 고된 노동의 의무를 부과한다.(신전봉사, 신전사역) 반면, 인간이 노동을 전담하므로 신들은 휴식을 한다. 에뉴마 엘리쉬에서 '인간 = 흙 + 반란자의 피'인 셈이다. 인간의 본질을 ‘반란자의 피’라고 본 것이다. 바벨론의 신화에서는 고된 노동과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란이 계속되는 악순환을 인간의 본질이나 운명으로 본다. 따라서 인간을 반란의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강도 높게 감시하고 억압해야 할 존재로 본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영, 그 분의 숨결이 인간을 이루는 특성이 된다고 본다. 이는 고대 사회의 인간 이해와는 그 본질이 다르다. 하나님의 기운, 하나님의 영을 인간의 본질로 보는 새로운 인간 이해이다. 성경은 이를 웅변적으로 대조시키며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2) 아시리아의 창조 신화(아트라하시스 : 주전 1700-1600년)
신들에게는 두 가지 계급이 있다. 높은 계급의 신은 놀고 쉬며 낮은 계급의 신은 일을 해야 했는데, 이로 인해 낮은 계급의 신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신들의 불만을 무마하고 또 신을 대신해서 노동을 전담시킬 목적으로 인간이 창조됩니다.
이 두 가지 신화에서 휴식은 신들과 관련되고 노동은 인간에게 한정됐다. 또한 일과 휴식이 분리되어 있는 인간사회를 반영한다. 이 신화들은 노동을 특정 계급에 부과된 의무로 보게 할 뿐 아니라, 그 노동의 열매를 취하면서 휴식을 전담하는 또 다른 유한계급의 존재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노동은 소외되어 있으며, 고통과 강제된 의무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노동하는 인간과 노동하지 않는 인간의 관계는 적대적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이지러지고 빼앗기고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질문 3) 성경에서는 '일'과 '휴식'과 '땅의 경작'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복되고 창조적인 노동)
(창 2:2-3)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출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성경에서 노동은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도 엿새 동안 일하셨다. 하나님은 손에 진흙을 묻히고 땀을 흘리며 그것을 빗고 또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신다. 하나님은 사람뿐만 아니고 들짐승과 새들까지도 일일이 손으로 빚어서 만드신다.(창세기 2:19). 우리는 여기서 마치 토기장이나 정원사처럼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쉬어야 할 근거 역시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 엿새동안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야 "너희의 소와 나귀.... 여종의 아들과 몸 붙여 사는 나그네도 숨을 돌릴 수 있을 것" 이며, 주인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사람들, 혹은 말 못하는 짐승 등도 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출애굽기 23:12). 이러한 의무는 땅에까지도 적용되는데, 6년간 경작하고 제7년째는 안식년으로 지켜 휴경하라고 한다.
(출 23:1-11) 너는 육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11제 칠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찌니라
땅이 쉬어야 하는 것은 땅이 누릴 "제 몫의 안식"이며, 땅의 권리이다. 이스라엘에서는 나라가 망해서 자신들이 포로생활을 하게 된 이유를 '자신들이 땅을 혹사시켜서 땅을 쉬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강제로 착취자인 자신들을 유배시킴으로 비로소 그 땅을 쉬게 하신 것'이라는 독특한 해석을 내리기도 하였다.
(레 26:32-35) 그 땅을 황무케 하리니 거기 거하는 너희 대적들이 그것을 인하여 놀랄 것이며 33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34너희가 대적의 땅에 거할 동안에 너희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 때에 땅이 쉬어 안식을 누리리니 35너희가 그 땅에 거한 동안 너희 안식시에 쉼을 얻지 못하던 땅이 그 황무할 동안에는 쉬리라
놀라운 역사해석이다. 이렇게 성경에서는 노동이 소외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과 인간 모두가 함께 일하며 모두가 함께 쉰다.
질문 4) 노동의 기원과 역할 - '파라다이스'라고 하는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무엇을 했을까? 과연 일을 했을까? 아니면 타락한 인간에게 내려진 벌로 일(노동)이 주어진 것입니까? 창세기 2:15절의 '동산을 돌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일하지 않고도 풍성하게 먹고 살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과연 축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노동은 어떤 역할을 가지고 있을까요?
"파라다이스(낙원)"-페르시아어, "울타리가 있는 과수원", 인간의 노동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창세기 2:15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산을 돌보게 하셨다(Abad : 돌보다, 일하다)"라고 한다. 노동은 타락한 인간에게 내려진 벌이 아니다. 이와 같이 에덴동산에서도 노동이 있었으며, 놀고먹는 곳이 아니었다. 마냥 풍요와 쾌락을 즐기는 곳이 아니라, 동산을 가꾸고 돌보며 일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노동은 본래부터 인간 삶을 이루는 본질의 하나이지, 타락한 인간에게 내려진 형벌이 아니다. 따라서 에덴동산, 즉 낙원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유흥장이 아니라 함께 가꾸고 지키며 유지 관리하는 삶의 일터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풍족한 축복을 주셔서 일하지 않고도 풍성하게 먹고 살기'를 구한다면 그것은 축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구하는 것이다.
노동의 역할 - 1) 노동은 자기 실현과 자기 표현의 활동이다.
(일)노동은 저주나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주신 가장 값진 선물이다. 일 - 삶을 풍료롭게 하고 기쁨과 자기실현의 도구이다. 일을 통해서 인간-인간, 인간-자연과의 관계를 조화롭게하는 인간다움의 표현이므로 매우 복되고 창조적인 것이다. 만약 인간에게 노동이 없다면 어떻게 자신을 표현할 것인가? 음악가에게 연주를 못하게 하고 건축자에게 집을 짓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바로 지옥일 것이다. 브라질의 한 노동자는 "모든 것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으며, 말씀을 통하지 않고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요한복음1:3)는 창조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그의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창조한다는 것과 말씀한다는 것은 똑같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만듦으로써 자신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려준다. 예를 들어서 사람들이 시를 쓰거나 노래를 작곡할 때,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그리고 목수가 책상을 만들 때도 그렇다.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일을 통해서, 즉 그가 만든 것을 통해서 자신을 알린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고 별을 하늘, 땅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도 자신을 표현하고 알려주신 것이다."
-에르네스또 까르네날 지음, [말씀이 우리와 함께]
이렇게 삶의 진실을 담은 (일)노동, 나의 생산물이 나 자신의 한 분신이 되고, 이웃에게 나 자신을 표현하는 '말씀'으로의 노동이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되고 삶의 성취와 보람을 갖게 된다. 이 얼마나 축복된 노동인가?
2) 노동은 개인을 사회적 관계로 불러내는 활동이다.
노동을 통해서 상호의존의 관계를 맺는다. 노동이 결과는 이웃에게 기쁨과 그들의 삶을 실현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이웃의 사랑 속에 있게 된다. 나의 삶을 표현하는 노동이 나 자신에 그치지 않게 되며, 이웃들이 각자 자신의 삶을 나타내고 창조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이 노동을 통해 생산해낸 결과물에 의존하며 그들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승인하고 인정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노동을 통해서 더불어 사랑하도록 하신 우리 자신의 참된 본질, 참된 인간성을 실현하게 된다. 노동을 통해 서로 종이 되어 섬기는 더불어 사는 사회의 한 이상이 에덴동산에서의 노동이며, "섬김을 받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고 섬기려고 왔다(막 10:45)."고 하신 예수님의 뜻이다. 일을 통해서 우리는 이웃을 섬긴다.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더불어 함께 사는 자아를 실현시켜 준다.
노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
- 노동 소외 문제 : 누구는 놀고 먹고, 누구는 뼈 빠지게 일해도 살기가 힘들고,
- 자본주의 :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의 전락, 좋은 노동은 좋은 대가를 받는 노동이고 나쁜 노동은 나쁜 대가를 받는 노동으로 평가 된다. 차등하게 노동의 질을 평가하고 차등한 대우를 하는 것은 노동자로부터 노동의 존엄성을 빼앗아 간다.
개신교 전통에서의 노동(종교개혁)
노동 = 예배,(부지런한 노동자는 하나님의 충실한 종), 직업(calling, vocation : 문자적으로 '부름'을 뜻함) 소명(하나님의 부르심) 자존심의 근거가 되었다. 종교개혁 정신은 힘들고 고된 노동의 현실을 참아내는 인내력을 주었다. 시간이 흘러 이러한 생각들은 변질되어 노동의 종류, 목적을 고려하지 않고 부지런히, 열심히 노동하는 것이 덕(德) 그 자체가 되었다. 틀에 박힌 무의미한 노동이 '부름', 즉 "소명"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노동 착취 현장을 "하나님이 세운 당신의 자리"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게 되는 모순을 낳기도 했다.
모든 노동은 다 신성한 것이다?
모든 노동이 다 신성한 것은 아니다. 죄는 노동하는 인간을 분리한다. 서로를 나누고 격리하고, 사랑을 파괴하는 노동은 죄 위에 죄를 더하는 일이다. 한 해에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백만 원을 받기도 힘든 사람이 있으며, 그나마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더군다나 평생 반복되는 단순 가사노동은 여성의 인간됨을 희생시킨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당연히 나름의 꿈과 소망을 가지고 부푼 소녀시기를 보낸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기를 출산하면 육아라는 그물에 걸려 그 아이들이 다 성장하도록, 자신의 고운 얼굴이 다 이지러지도록, 부엌일과 집안 청소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누가 소녀 시절부터 나는 평생 부엌데기로 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여성은 소외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인생을 희생해야 한다.
때로는 심지어 우리의 노동이 잘못된 구조 속에서 악마적인 노동이 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의 자녀를 위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기 위해서 행한 노동이 남미의 어느 나라에서 부모가 보는 앞에서 그 자녀를 살해하는 무기가 된다면, 이때는 노동은 악마적, 파괴적 노동이 된다.
질문 5) 에덴동산 - 낙원 - 은 현재 이라크 지역이다. 그곳이 지금도 에덴동산, 낙원일까요? 그렇다면 에덴동산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은 입니까? 우리의 가정과 일터를 신바람나는 창조적 자기실현의 장인 낙원으로 만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정한 안식(휴식)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에덴동산을 설명하는 지명을 보면 유프라테스 강, 티그리스 강 등 지명들은 현재의 이라크 지역이다. 지금도 그곳이 에덴동산일까? 에덴동산이란 우리가 사는 일터가 창조적인 자기실현의 장이 되어, 저마다 기쁨으로 자기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여러분의 가정을 에덴동산으로 만들려면, 여러분의 일터를 신바람 나는 일터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노동이란 어디까지나 삶을 복되고 창조적인 인생이 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인간이 노동을 위해 존재하게 되어 주객이 바뀔 대 노동은 소외된다. 소외란 인간이 생산한 생산물, 사회적 상황, 제도, 이데올로기 등이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는 낯선 세력으로 인간과 대립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소외된 노동은 소외된 인간을 낳는다.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은 일의 필요에 의해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있음으로, 그가 나와 함께 함으로 인해, 상대의 존재 자체로 기쁨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하나님의 영을 나눈 존재이다. 상대를 어떤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행복과 기쁨을 나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을 때, 우리 안에 공통으로 계신 하나님의 영에 화답하는 것이 아닐까? 역사 속에서, 이 세상에서, 현실적으로 하나님은 어떻게 일을 하시는가? 하나님은 일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모든 사람이 다 혁명가, 투사가 될 수는 없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함으로써, 우리 일이 하나님의 정의, 평화, 사랑을 창조하는 일이 되게 해야 한다. 우리 각자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일으키는 이 일, 이 변화야말로 진정한 혁명과 투쟁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근원적인 생명들 가운데서 쉴 새 없이 변화, 운동하시며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통해서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확대하고 지속해 나가신다.
골방에서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혼자 떨어져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함께 일할 사람을 찾으신다. 사람은 일을 통해서 하나님과 만나게 되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 속에서 일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일을 통해서 동시에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다. 거역할 수 있다. 놀고 먹는 사람, 그리고 꾀를 내서 또는 힘을 이용해서, 덫을 놓아서 남의 것을 가로채 먹는 사람, 누군가의 행복을 빼앗고 생명을 노리는 악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다.
주님 안에 안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단순히 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안식일은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본래의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을 긍정하고 기쁨의 노동이 될 수 있도록 하며, 노동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거룩하게 성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참다운 노동에 참여할 때, 소외된 노동을 극복하고 안식일의 평화를 목표로 하는 선한 노동에 참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쉬게 하시는 우리 주님의 참된 안식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일함으로 이웃을 섬기고, 사랑을 확대하고, 슬픔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기쁨과 평화를 소유한다면,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과 공동창조자로 하나님의 창조역사에 참여하는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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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창조 역사에 참여하는 공동 참여자 - 인간 창조와 노동에 대한 이야기
(질문 1-3번 요약)
히브리인과 열방의 인간이해와 노동에 관한 비교
- 히브리인의 인간 이해 : 인간(Adam) = 흙(Adama) + 생기(하나님의 숨, 영, 기운)
- 인간이 존엄한 것은 인간 존재의 뿌리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 노동(일) : 노동과 휴식의 근거가 하나님께 있다.
- 일과 휴식 : 일과 휴식은 한 가지이다. 하나님, 인간, 땅(만물)이 일하고 휴식한다.
- 이방열국의 인간 이해 : 인간 = 흙 + 반란자의 피
- 인간은 반란과 혹독한 감시로 억압해야 할 대상이다.
- 노동(일) : 신은 휴식을 즐기고, 인간은 노동의 의무만 있다.
- 일과 휴식 : 일과 휴식이 분리되어있다. 신은 휴식 인간은 노동의 의무만 있다.
{인간사회를 반영됨} 신 : 휴식 - 상위계급 - 감시와 억압(착취, 소외)
인간 : 노동 - 하위계급 - 반란과 반역(고통, 의무)
* 신, 인간, 만물이 적대적 관계가 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깨지고 빼앗기고 고통의 연속이다.
(질문 4번 요약)
"파라다이스(낙원)"-페르시아어, "울타리가 있는 과수원", 인간의 노동을 상징.
창세기 2:15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산을 돌보게 하셨다(Abad : 돌보다, 일하다)".
에덴동산은 유흥장이 아니라 삶의 일터이다. 노동은 형벌이 아니라 인간 삶을 이루는 본질로 인간에게만 주신 축복이다.
- 노동의 역할
1) 노동은 자기실현과 자기표현의 활동이다.
창조가 하나님의 자기표현이듯이 노동은 자기를 실현하고 표현하는 축복이다.
2) 노동은 개인을 사회적 관계로 불러내는 활동이다.
노동의 결과가 이웃에게 기쁨을 줄때 자신에게도 보람이 된다. 노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있다. 이렇게 우리는 노동을 통해서 더불어 사랑하도록 하신 우리 자신의 참된 본질, 참된 인간성을 실현하게 된다. 노동을 통해 서로 종이 되어 섬기는 더불어 사는 사회의 한 이상이 에덴동산에서의 노동이며, "섬김을 받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고 섬기려고 왔다(막 10:45)."고 하신 예수님의 뜻이다. 일을 통해서 우리는 이웃을 섬긴다.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더불어 사는 자아를 실현시켜 준다.
3) 노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
- 노동 소외 문제, 자본주의, 종교개혁 정신의 변질, 모든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분리)
노동의 결과가 인간의 분리와 분쟁, 섬김이 아닌 다툼일 때 좋은 노동이 될 수 없다. 노동의 결과로 다른 사람이 기뻐하고, 다른 사람의 노동의 결과로 나 또한 기뻐할 수 있는 상호 연관되어있는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을 경험케 하는 노동이 선한 노동이다.
(질문 5번 요약)
에덴동산 - 창조적인 자기실현과 자기표현의 장이되고, 기쁨으로 자기 일에 몰두 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에덴동산이다.
가정과 일터를 신 바람나는 에덴동산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1) 인간이 노동을 위해 존재하는가? 노동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가?(소외된 노동)
창조적인 삶이되기 위해서 노동이 있는 것이지 노동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인간이 노동을 위해 존재하는 주객이 전도될 때 노동은 소외된다. 소외란 인간이 생산한 생산물, 사회적 상황, 제도, 이데올로기 등이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는 낯선 세력으로 인간과 대립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소외된 노동은 소외된 인간을 낳는다.
2) 존재 자체로 기뻐하라.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은 일의 필요에 의해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있음으로, 그가 나와 함께 함으로 인해, 상대의 존재 자체로 기쁨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하나님의 영을 나눈 존재이다. 상대를 어떤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행복과 기쁨을 나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을 때, 우리 안에 공통으로 계신 하나님의 영에 화답하는 것이 아닐까?
3)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하나님은 어떻게 일을 하시는가? 하나님은 일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모든 사람이 다 혁명가, 투사가 될 수는 없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함으로써, 우리 일이 하나님의 정의, 평화, 사랑을 창조하는 일이 되게 해야 한다. 우리 각자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일으키는 이 일, 이 변화야말로 진정한 혁명과 투쟁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근원적인 생명들 가운데서 쉴 새 없이 변화, 운동하시며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통해서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확대하고 지속해 나가신다.
하나님은 함께 일할 사람을 찾으신다. 사람은 일을 통해서 하나님과 만나게 되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 속에서 일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일을 통해서 동시에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다. 거역할 수 있다. 놀고먹는 사람, 그리고 꾀를 내서 또는 힘을 이용해서, 덫을 놓아서 남의 것을 가로채 먹는 사람, 누군가의 행복을 빼앗고 생명을 노리는 악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다.
4) 안식의 참 의미
안식은 단순히 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안식일은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본래의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을 긍정하고 기쁨의 노동이 될 수 있도록 하며, 노동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거룩하게 성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참다운 노동에 참여할 때, 소외된 노동을 극복하고 안식일의 평화를 목표로 하는 선한 노동에 참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쉬게 하시는 우리 주님의 참된 안식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일함으로 이웃을 섬기고, 사랑을 확대하고, 슬픔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기쁨과 평화를 소유한다면,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과 공동창조자로 하나님의 창조역사에 참여하는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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