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능력에 대한 예화 모음
능력
몇해 전까지만 해도 단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케냐 선수들이 세계를 휩쓸어, 여러 나라가 앞을 다투어 케냐 코치를 초청하는 유행이 생겼었다.
케냐 사람이 왜 빨리 달리는가? 이 수수께끼에 대하여 스포츠 심리학자와 스포츠 학자들은 한 결론에 합의했다. 즉 "아무도 지금까지 그들에게 할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이었다. 얼른 생각하면 학자들이 내린 과학적 결론으로는 너무 우스꽝스러운 내용 같으나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자신을 한번 더 검토하게 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무능과 약함과 불가능은 그 사람 스스로가 이미 결정해 버린 제한성(Predeterminedlimit)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어리석은자가 힘을 얻으면
1. 구한말, 나는 새도 떨어뜨릴만큼 대단하게 안동김씨의 세도가 극에 달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안동김씨의 구심점으로 정사를 좌지우지하고 1853년부터 1863년까지 영의정에 무려 3번씩이나 보직된 사람이 있다. 바로 김 좌근이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에게는 나주 출신의 기생첩이 하나 있었는데 이 여인의 권세와 행패가 얼마나 자심했던지 당시 사람들은 그녀를 일러 나합이라 불렀다. 나주 사람 합하라는뜻이다. 합하가 무엇인가?
정일품직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한 경칭이다. 그녀의 위세는 이렇게 대단했던 것이다.
나합은 금 밥그릇 금수저로 음식을 먹고 자기 안방에서 건너다 보이는 산의 경치를 가로 막았다는 이유로 추운 겨울 날 이웃집을 아예 헐어버렸다는 일화를 갖고 있는 여인이다.
한편 온 나라에 흉년이 들어서 온 백성이 초근목피로 생명을 연장해가고 있을 때이다. 자기는 부처에게 점수를 따겠다고 수백섬이나 되는 쌀로 밥을지어한강 물고기님들께 진상했다. 기록에 의하면 이때 먹을 것이 없어서 눈이 뒤집힌 백성들이 죽음의 위험을 불사하고 강물속에 뛰어들어 물고기님들의 식사를도적질해다가 먹고 나합에게 붙들려 직사하게 얻어터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2. 태종 이방원의 심복으로써 그를 도와 몇차례걸쳐 공을 세운 대가로 대단한 권세를 누렸던 이 숙번이라는 사람이 있다.
성현이 쓴 수필집 용제총화(總話)에 의하면 이 숙번은 창의문 안쪽에 고래등같은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 문을 통행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시끄럽다고 아예 그 길을 막아버리는 행패를 부리기까지 했다.
오늘날 새문안이라고 불리는 지역이 바로 이숙번이 길을 막았던 곳이라고 하는데 이는 새문(塞門)즉 막아버린 문의 안쪽이라는 뜻이다.
무식하고 천박한 인간이 어쩌다가 힘이 생기면 자기의 이기적이 향락과 자기 과시를 위하여 이따위짓으로 만인의 마음속에 한을 심어놓기 일쑤다.
얽힘을 해결하기 위한 10가지 충고
1.명령하는 듯한 말을 쓰지 말라. (반항을 일으키는 불씨다)
2.비판보다 칭찬거리를 먼저 찾으라. (칭찬해서 싫어할 사람은 없다)
3.상대에게 호의를 베푸는 연습을 시작하라.(좋아하려고 노력하고 좋아지도록 연습해야 한다)
4.그의 반항을 존중하라.(반항은 단지 존재가치를 느끼고 싶기 때문임을 알라)
5.싸우지 말라. (말이나 행동에 의한 적대감정을 피하라.윽박질러 놓으면 결과는 손해다)
6.상대방이 틀렸다고 마구 꾸짖지 말라. (틀리고 나쁜 점을 증명해 보라. 이점은 없다)
7.큰소리가 "No"라는 뜻이 아님을 알라. (80 %는 반항함을 잊고 만다)
8."나는 당신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를 압니다"라는 말을 애용하라. (놀라운 효과가 있다)
9.무언가 질문하고 그 얘기에 귀를 기울이라. (진지하게 자기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10.그 상대를 위해 기도하고 용서하라. (사랑으로 감싸는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라)
엄마의 힘
진(晉)나라 환공(桓公)이 삼협(三峽)의 강물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하인 하나가 강변에서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 갖고 왔다. 배 안에서 갖고 노는데 그 어미가 알고 구슬피 울어대며 배 따라 강변 길 1백여 리를 따라 내려왔다. 끝내는 배에 뛰어들어 뱃전에서 죽고 말았는데,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갈기갈기 촌단(寸斷)되어 있었다 한다. 비통의 극치를 단장(斷腸)의 슬픔이라 하고 애끊는 슬픔이라 함은 바로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그런 사례가 있다. 중종 때 학자 어득강(魚得江)의 견문기에 보면 한 친지가 꾀꼬리 어미와 새끼를 길렀는데 새끼를 다른 조롱에 옮겼더니 어미는 일체 먹이를 먹지 않고 조롱에 머리를 찧어대고는 끝내 죽고 말았다 한다. 그리고 배를 갈라보았더니 창자가 녹아 있었다 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이렇게 정신적이다 못해 생리(生理)까지 촌단시켜버릴 만큼 진한 것이다.
진화론자 찰스 다윈이 아프리카 밀림에 들어갔을 때 자연의 신비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나온 탄성이 "오 하나님!"이었다. 이에 비해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백두산의 자작나무 숲속에 들어갔을 때 그 신비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나온 탄성은 "에구머니!"였다 한다.
부성원리(父性原理)가 지배하는 서양사람들은 감정의 극치에서 하나님을 찾는데, 모성원리가 지배하는 우리 한국사람들은 어머니를 찾는다. 우리 한국인은 가눌 수 없이 기쁘거나 놀라거나 슬프거나 신나거나 황홀하거나 하면 에구머니, 또는 어머나 하며 어머니를 찾는다. 태극기를 올리는 챔피언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면 예외없이 눈물을 글썽이며 맨 먼저 어머니에게 이 기쁨을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대견한 일을 해낸 저력을 어느 누구에게 물었을 때 어머니 덕분이라느니, 어머니를 위해서라느니, 어머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반면에 무슨 큰 일을 좌절시키거나 큰 죄를 저질렀을 때도 어머니 때문이었다면 일단 동정을 하고 보는 우리 한국인이다.
이처럼 어머니는 우리 한국인에게 있어 모든 가치에 선행되는 원체험(原體驗)이요, 그 어머니의 품안은 선악이며 빈부며 영욕(榮辱)이며 성패(成敗)며 미추(美醜)며 잘나고 못남이며 유식하고 무식함이며 능하고 무능함이며 보수, 진보며 체제, 반체제며 좌익, 우익 등 그 모두를 포용하고 녹여버리는 용광로다.
실험약(實驗藥)으로 치면 어머니는 그 모두를 녹여버리는 용액(溶液)이라면 아버지는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시약(試藥)이랄 수 있다. 지난 주말 나름대로 사회정의를 주장하며 며칠 동안 단식했던 학생들의 농성이 풀렸는데, 그것이 경찰이나 최루탄 같은 물리적인 힘으로 풀린 것이 아니라 이 어머니의 힘-사랑의 용액으로 풀렸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아버지가 풀려 했다면 그 상반논리 때문에 풀 수 없었을 것이다. 한데 어머니는 풀 수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의 주장이 옳고 그르고 이전에 이 한국인의 강한 원체험을 그에서 본 것이다.
여성의 힘으로 여성 교육
스 7:25; 욥 32:7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크게 이바지한 것은 많은 심령들이 구원의 빛을 찾은 것과 각처에 학교가 세워짐으로써 근대신 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초기에는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던 교육기관이 1896년부터는 지방으로 분산되었다. 특히 관서지방 주민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는 주목할 만한데, 그들은 이미 근대화를 요청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여선교부의 여성 교육은 많은 결실을 맺었는데 제일 먼저 설립된 학교가 정진학교이다. 그 외에도 몇 개의 학교가 평양을중심으로 설립되었는데, 학교에서는 주로 성경. 신교육. 의학 상식을 가르쳤다. 특히 강서에 전삼덕이 들어가 함종과 학동에 학교를 세웠고, 김살로메. 김도라. 이사벧 등 한국 여성의힘으로 여성교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관서지방은 그 어느 지방보다도 여성 교육의 눈부신 발전을 보였는데, 그원인은 이 지방의 독특성에 기인한다. 초기 여선교부는 이런 배경으로 눈부신 여성 교육을 실시할 수 있었다.
영웅의 명답
1952년 미국의 전쟁영웅 아이젠하워의 전기가 출간됐다.이 책을 보면 지독한 골초인 아이젠하워가 의사의 충고에 따라 담배를 끊은 기록이 나와 있다
.저자가 출간 전 아이젠하워와 대화하면서 『담배 끊기가 무척 어려우셨죠?
담배를 태우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무척 괴로우셨을텐데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영웅」은 이렇게 대답했다.『나는 이렇게 생각했지.나에게는 담
배를 끊을 수 있는 의지와 힘이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없다고』
영적인 힘의 약화
미국 켄터기 주의 넓디넓은 지역은 켄터기 강으로부터 터어빈에 의해 일으켜진 전기를 공급받고 있습니다.
어느날 밤, 전력이 약해져서 그 지역이 어둡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즉시 전기 기사가 터어빈을 조사해 보았지만, 아무 이상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몇 시간의 헛된 수색끝에 발전소로부터 송전되는 전선들을 검사하기 위해 한 기능공을 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뱀 하나가 전선까지 기어 올라가 가로질러 걸쳐 있었던 것입니다.
그 뱀은 전선에 닿자마자 타 버렸지만 그로 인해 전류가 약해진 것이었습니다.그 뱀을 치우고 나서야 전류가 본래대로 통하여 밝은 전깃불이 다시 들어왔습니다.
신앙인들의 삶 속에서도 비슷한 예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 계시는 성령님에 의해서 생기는 영적인 힘이 어떤 이유로 해서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즉시 무엇이 그 힘을 약화시켰는지를 알아보아야만 합니다.
바울 사도는 거짓말, 노여움, 도적질, 더러운 말, 악독함, 분냄, 싸움, 비방, 증오, 불친절 그리고 용서못하는 태도 등등이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죄들 중 어느 것도 우리들 속에서 꿈틀거려 영적인 힘을 약화시키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한 치의 빈틈도 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고 경외할 때에, 비로소 성령의 힘은 우리들 속에서 역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영적인 힘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4)
예루살렘은 살기 힘든 이념 도시
세속적인 이스라엘 젊은이들 계속 떠나 이스라엘에서 요즘 유행하는 농담. 문 : 예루살렘의 최대 장점은? 답 : 텔아비브로 가는 길. 에얄 아가시(35)와 그의 부인 야엘은 88년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그 길을 떠났다. 에얄에게 예루살램은 지난 5년 동안 그의 고향이었고 야엘은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녀의 친구와 가족이 살고 있
었고 대학 졸업 후 자리잡은 헤브루大 연구 조수로서의 편안한 직장을 떠나기 싫었다. 그러나 하이파 태생의 물리 학자인 에얄은 텔아비브 교외의 한 광학 공장으로부터 좋은 일 자리를 제의받았다. 현재 그들은 텔아비브 교외의 호드 하샤 론에서 딸 론니(5)와 함께 잘살고 있다.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간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곳엔 일자리도 없고 좋은 아파 트는 너무 비싸다"고 에얄은 말한다. "예루살렘에서 살지 않겠다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교육수준이 높은 수많은 젊은 이스라엘 人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예루살렘은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유대인의 도시지만 자신들의 장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 이 이스라엘人들만의 땅이라는 데는 그들 모두 이견이 없다. 시몬 페레스 총리와 5월 29일 총선에서 그와 맞설 베냐민 네타냐후 리쿠 드黨 당수는 모두 통합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그렇지만 이번주부터 이집트 타바에서 항구적 평화정착 문제를 논의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협상단의 회담 의제에는 예루살렘의 장래 문제도 포함돼 있다. 양측 모두 예루살렘을 자기 네 수도라고 주장하면서도 평화정착을 원하고 있어 머지않아 모종의 타협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예루살렘은 사실상 세 개 의 별개 도시인 셈이다. 메아 셰아림 舊시가지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는 주로 정통파 유대인들이 거주한다. 또 하나는 아랍人 지구 로 東예루살렘 일부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이스라엘은 67년의 6일전쟁 때 東예루살렘을 장악하자마자 이스라엘 영토로 공식 편입시켰다. 이 두 지역사회는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이 지역의 출생률은 이스라엘의 전국 평균치를 훨씬 웃돈다.
세속적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세번째 지구는 꾸준히. 그리고 신속히 축소되고 있다. 지난 8년간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더 많았고, 타지로 떠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젊은 유대인과 그 자녀들이었다. 인구통계 전문가들은 현 추세대로라면 2010년에는 정통파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회교도 인구가 예루살렘 전체 인구의 근 60%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신앙심이 깊지 않 은 젊은이들에게 예루살렘은 살기 어려운 곳으로 변했다. 그들은 갇혀 지내는 듯한 압박감을 느낀다. 예루살렘은 점점 이념적 도시 로 변해가고 있다"고 헤브루大 강사 타마르 리바스는 말한다. 외지인들은 예루살렘 하면 칼이나 휘두르는 과격파 아랍人들과 율법서 를 맹신하는 유대교 광신도들이 모여 사는 언덕 위의 시골 마을 모습을 떠올린다. 때론 수세기 동안 기도와 비전, 그리고 기독교.유대교.회교 간의 성전(聖戰)으로 얼룩져 온 그 성도(聖都) 자체에서 갑갑한 느낌이 풍긴다. "갈데까지 간 모습을 드러낸 세 종교로 인해 분위기가 매우 무겁다. 정상
적인 사람이 이렇게 비정상적인 도시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전부터 의문이었다"고 텔아비브의 연예계 종사자 로디카 알칼라이(女)는 푸념한다. 그러나 많은 젊은이들은 예루살렘의 최대 단점은 오히려 아주 세속적인 거라고 말 한다. 다름아닌 가난. 예루살렘에는 집이 부족하고 보수가 후한 민간분야 일자리도 부족하다. 또 이스라엘의
대도시 중 가장 가난하 다. 에후드 올메르트 예루살렘 시장은 하이테크 투자와 호텔.주택 건설 붐을 일으켜 도시를 재건한다는 마스터 플랜을 세웠다. 그러 나 예루살렘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투자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점을 올메르트도 시인한다. 예루살 렘의 미래 문제는 이번 총선에서도 큰 이슈가 되지 못
했다. 네타냐후는 "예루살렘에 평화를"이라는 구호로 선거운동을 시작해 마치 페레스가 예루살렘을 일부 넘겨 줄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심었다. 그러나 두 달 전 발발한 회교 과격파의 연쇄 자살폭탄 테러로 리쿠 드黨 후보들은 좀더 효과적인 공격 거리를 만났다. 그 뒤로 네타냐후는 예루살렘보다는 보안 문제를 더 거론해왔다. 팔레스타인人들 은 예루살렘의 절반은 아랍人 것이라는 종래의 입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알
쿠즈(예루살렘의 아랍名)는 국민적 염원과 종교적 감정의 상징 이상의 뜻을 지니고 있다. 팔레스타인人들은 경제적으로 자립 가능한 국가를 세운다는 그들의 희망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예루살렘이라고 말한다. 서안(西岸)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다음
으로 큰 두 도시 나블루스와 헤브론 사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 이다.
그러나 아직은 성도의 일부나마 포기하려는 이스라엘人이 거의 없다. 로디카 알칼라이 같은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걸 그렇게 끔찍 하게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그곳은 이스라엘 영토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예루살렘을 가리켜 "우리 생활의 중심지로서 하나의 심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쨌든 예루살렘은 현재 협상 테이블에 올라
있다. 이스라엘은 실무 차원에서 타협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칼라이 갈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그토록 소중하게 여긴다면 평화의 대가라곤 하지만 그들을 설득시켜 예루살렘을 내주기가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월리엄 부스의 비결
윌버 채프멈이 런던에 있을 때 부스 장군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부스 장군은 80이 넘은 고령이었다. 채프먼 박사는 이 노장군이 지나간 재판과 투쟁, 승리 등을 이야기하는 것을 경건하게 들었다. 그리고 나서 이 미국의 복음주의자는 성공의 비결이 있으시면 가르쳐 주십사고 부탁하였다. 그는 잠시 주저하더니, 이윽고 눈물이 그의 뺨에 흘러 내렸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그래, 내 비결을 말해주지. 바로 하나님이오. 나보다 두뇌가 우수한 사람도 많았고 기회가 좋았던 사람도 있었겠지 그러나 내 가슴에 런던의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오던 날부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라면 이들을 어찌 구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던 날부터 나는 결심했지. 하나님께서 윌리엄 부스를 모두 가지시게 될 것이라고 말이오. 오늘날 구세군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모두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모든 사람, 의지력, 그리고 내 삶의 모든 영향력을 가지신 때문이오"라고 했다.
채프먼 박사는 이 만남에서 다음의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인간의 위대한 힘이란 그의 복종과 헌신에 달렸다."
위대한 힘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한 가난한 농촌마을의 한 학생이 집에서 농삿일을 배우고 있었다.
미래가 암담했던 이 학생은 어느날 교회에 나가 신앙을 갖게되면서 희망찬 꿈을 가졌다.이런 꿈은 그에게 현실을 극복할 용기와 자생력을 길러주었고 결국 대학에 진학,장학생으로 하와이로까지 유학을 가게 되었다.이 가난했던 학생은 후에 아프리카의 식량사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한「위대한 한국인」이 된다.
바로 옥수수 박사 김순권교수 이야기다.
은혜의 힘
『쓴나물을 먹으라』(민수기9:11) 어떤 목회자가 이런 주제로 설교하며 증오의 쓴나물,고집의 쓴나물,고난의 쓴나물을 은혜의 힘으로 먹고 새사람이 되자고 강조했다.설교 후 한 사람이 면담을 요청하더니 품 속에서 칼을 꺼내 보이며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참회했다.『오늘 처음 교회에 나왔는데 채무관계로 증오가 깊어져 상대방에게 중상을 입히려고 칼을 준비했다가 설교를 듣고 그 「쓴나물」을 먹기로 했습니다.은혜의 힘으로 먹고 나니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네요』
말 한마디의 「힘」
미국의 36대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은 95㎏이 넘는 몸무게로 고민했었다.
존슨은 체중감량을 위해 몇번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에게 의미있는 말 한미디를 듣고 다시 시도,성공할수 있었다.
그의 아내는 『만일 당신이 자신을 조절할 수 없다면 국가도 경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존슨은 이 말을 마음깊이 새기고 노력한 결과80㎏까지 뺄수 있었다.
하루에 의미있는 말 한마디씩만 한다면 인생은 달라질 것이다.
작은 "나"와 큰 "나"
랜달 필립 목사(L.A.)는 음악을 몹시 좋아해서 유명한 오페라 가수가 왔을 때 5분간의 면회를 청하였다. 그래서 질문 하나를 던졌다. "당신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초인간적인 큰 힘과 권위에 압도되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그런 능력이 어디서 나옵니까?" 성악가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사사한 성악 교수님이 이렇게 말해준 일이 있읍니다. 인간 속에는 "작은 나" (little me)와 "큰 나" (big me)가 있다. "작은 나"라는 것은 겁장이이고 미신적이고 약하고 욕심의 방향만 쫓아다니는 나인데, 무대에 올라서서 노래를 할 때, "작은 나"는 없애고 "큰 나"가 밖으로 나오게 하라는 말씀이었읍니다."
작은 일」부터 힘써라
런던 빈민가에서 3류 필경사로 일하던 청년이 있었다.
그는 밤늦게까지 남의 책을 베끼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첫직업」인 이 일을 청년은 단순노동으로 하지 않고 의미를 찾아가며 열심히 했다.
35세때 그는 「파리대왕」이란 첫소설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무려 4백50만부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가 바로 1983년 노벨문학 수상자가인 윌리엄 골딩이다. 「작은일」에 충실했던 3류 필경사가 위대한 작가로 성장한
것이다.『네가 지극히 작은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누가복음19:7)
작은 힘
작은 코르크가 무거운 강철조각을 움직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실험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240cm 강철막대가 강한 쇠줄위에 걸려있었습니다. 코르크가 움직여서 무거운 강철막대를 살짝, 그러나 리드미컬하게 쳤습니다. 10분후, 강철막대가 약간 흔들려 보일때까지는 아무런 충격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20분이 지났을 때 코르크 충격은 운동력을 옮겨 주어서 240cm 강철막대가 추처럼 앞뒤로 흔들거리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강철막대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고 작은 코르크처럼 속수무책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에 흔들거리면서 계속 그 자리를 지키십시오. 조만간 당신은 상황에 영향을 줄 만큼 충분한 운동력을 옮기게 될 것입니다.
절망을 이기는 힘
우리 주님을 불가사의한 분이시다. 우리가 불평하고 괴로워 할 때 가만히계시는 것 처럼 보인다.그리고 절망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멜도 침묵을 지키신다. 그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지 주님이 우리를 내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다가 우리의 힘이 탈진하고 더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되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게 되면 우리에게 갑자기 어떤 생각을 불러 일으켜 주신다. 영혼을 깨우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우리를 소생시키는 어떤 동기를 심어 주신다.
바로 이 순간이 절망이 찬송으로 바뀌게 되는 전환점이 되는 것이다.
절망 그것은 신(神)에대한 불신앙이다.
절망이라는 것보다 신에대한 불신은 없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아무리 큰 일이라도 그것은 위대한 신의 계획의 한 일부분이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워도 따라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정신의 힘
『악어에게 물려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AFP통신은 11일 호주 오지의한 농장에서 악어에게 물렸으나 극적으로 살아난 35세의 조 윌슨씨에 대해보도.그는 강 근처에서 일하던 중 갑자기 뛰쳐나온 거대한 악어에 팔을 물린 채 강으로 끌려갔으나 정신을 차려 나무뿌리에 발을 걸고 손가락으로 악어의 눈을 파내는 등 사투를 벌였다고.결국 악어는 동료의 총을 맞고 나서 윌슨의 팔을 놓아주며 즉사.위기의 때에 정신을 차리면 산다.
제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갈 5:22; 벧전 1:12; 살전 1:6
조동선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이 여인은 남편의 사업이 번창했 을때는 호화스러운 생활을 누렸으며, 또 유명하다는 사찰을 안 다녀본 곳이 없었다. 좋다는 점쟁이 집을 수없이 드나들면서 1년 신수와 한 달 신수 더구나 하루의 신수까지 보곤하였다.
그러던 중 남편의 사업이 갑자기 기울어지게 되어 재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일시에 알거지가 되었다.
그녀는 몇 날을 두고 고심을 하며 방황하다가 무심코 서울 구치소를 지나치게 되었다.
그 당시구치소에는 60년대 말 경제 사범들이 많았다. 그녀는 거기서 땅을 치며 통곡하는 여인을 보고는 그 순간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길로 그녀는 교회당을 찾아가 나생 처음으로 기도를 하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하나님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보다 더 불우한 이웃을 찾게 해 달라고 기도하엿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녀는 사형수들의 자매가 되었고, 그러면서 신앙이 더욱 돈독해졌다. 그래서 보문제일교회에 출석하면서 어려운 살림에서도 틈틈이 모은 용돈을 사형수의 영치금으로 넣어 주고 봉사하였다. 그녀는 형목에게 자신있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목사님, 이거 제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입니다.
조개살의 힘
지금까지 학계에서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조개삿갓의 엄청난 접착력이다. 바위나 배 밑창에 붙어 사는데 바위 자체를 깰 수는 있어도 거기에 붙은 조개삿갓을 뗄 수는 없다. 조개삿갓이 이렇게 강하게 붙은 원인의 하나로서 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은 오래
동안 파도와 싸운 결과라는 것이다. 파도의 힘은 시속 3백마일의 바람 속에 서있는 것과 비슷한 엄청난 저항이다. 이런 파도 속에서 오랜 세월을 견디는 동안 조개삿갓은 바위와 한 몸처럼 밀착하여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조용한 힘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조용한 힘이다.
햇볕은 하루 종일 아무 소리 없이 그 열을 발하지만 그 속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인력
도 역시 소리없는 힘이다. 인력에는 기계 돌아가는 것과 같은 그런 요란한 소리가 없지만
모든 별과 세계가 궤도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으며 우주 공간을 변함 없이 정확하게 회전
하도록 하고 있다.
이슬은 사람들이 잠을 자는 밤에 아무소리 없이 내리지만 모든 식물에 새로운 생기와
아름다움을 가져다준다. 우렁찬 천둥 소리에 전기의 힘의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번개
속에 전기의 힘의 근거가 있는 것이다. 대자연에있어서까지도 힘은 조용함 속에 있으며
가장 큰 위력은 소리없이 작용한다.
좌절을 이기는 힘
고아의 아버지 조지 물러는 믿음과 사랑을 지닌 위대한 인물이었다.
조지 물러에 대해 깊이 연구하던 아더 피어슨박사(1837-1911.미국 장로교회목사.저술가)가 조지 물러의 성경을 조사하게 되었는데 시편 37편 23절 말씀옆에 고인의 친필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니][ 그리고 또한 멈춤까지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멈춰 서성대고 좌절할 때가 있다. 그 때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보행을 살피시고 힘을 주시고 보호하시는 것이다.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시편 34:21)
좌절할 때 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
캘리포니아 말리브에 있는 페퍼다 대학교의 졸업식날이었습니다. 그날 1백명의 학생들이 학사학위를 받았는데 대학 졸업자의 평균연령이 40세 가까왔습니다.
고령의 졸업자 가운데 67세의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는 10명의 자녀와 27명의 손자 손려를 가진 할머니였습니다. 그 할머니가 학사 학위를 받으려고 단상에 올라가자 한 백발의 노인과 여러 사람들이 앉았던 자리에서 환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드디어 해내셨군요. 할머니, 잘하셨어요. 드디어 성공하셨어요." 졸업식이 끝나고 그 할머니는 자기 목사님을 만나 격정에 못이겨 눈물을 흘리면서 목사님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에게 만약 믿음을 심어 주지 않았더라면 나의 하나님이 내가 죄절할 때마다 나에게 새힘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시작하자마자 포기했을 것입니다."
줄을 풀어 놓으시오
우리 모두는 긴장을 풀고 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긴 전도 여행에서 돌아와 지쳐 있는 열 두 제자들에게 시간을 따로 내서 쉬게 하신 우리 주님을 미루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 가지 시간을 절약하는 문명의 이기나 수단이 사람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좀처럼 시간을 따로 내어 쉬지를 못합니다.
그리스에 전해 내려오는 얘기를 보면, 옛날 아테네에서 저 유명한 이솝 우화의 이솝 선생이 어린 아이들과 같이 유치한 장난을 하며 노는 것을 어떤 사람이 보았습니다.
이솝 선생의 점잖지 못한 거동을 그 사람은 비웃고 조롱을 했습니다.
이솝 선생은 그사람의 건방진 태도에 대꾸하는 대신, 현악기를 연주할 때 쓰는 활을 집어 들고는 그 활줄을 느슨하게 풀어 땅 바닥에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비웃는 구경꾼에게 "자,이 수수께끼를 풀수 있으면 풀어 보시지. 이 느슨해진 활이 무엇을 뜻하는지?"라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그 활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솝 선생이 설명하여 말하기를, "계속 활줄을 팽팽하게 매어 놓으면 끝내 그 활은 부러지고야 만다네.
그러나, 활줄을 늦추어 놓으면 다음번에 악기를 연주하려 할 때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도 이와 같습니다.
휴식을 취할 시간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 있는 것입니다.
삶의 팽팽한 활 같은 긴장을 늦추게끔 하나님께서도 "모은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습니다"(창2:3).
우리도 하나님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매일 시간을 따로내어좀 쉬고, 원기를 새롭게 하도록 해 봅시다.
잠시도 쉬지 않는다면, 주님을 위해 당신의 최선을 실행하기가 어렵습니다. 휴식은 다음의 일을 위한 에너지의 충전 기회입니다.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시 쉬어라 하시니..."(막6:30-31)
지친 삶을 살펴주는 힘
아버지를 잃고 어렵게 살아가던 소년이 소외감과 가난에 지쳐 4층건물 난간에서 자살 소동을 벌였다.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설득했으나 소년은 거부했다. 소년이 막 생을 포기하려는 순간 한중년남자가 두 팔을 벌리고 『얘야,내가 네 아빠가되어 주마』라고 말했다.
이 말 한마디에 소년은 마음을 돌렸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고독과 불안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되어 주마』
지혜로운 행동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젊어서 친구와 함께 사냥을갔다가 친구가 그만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
그때 그 친구는 사람 살리라고 소리만 치면서 점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보고 비스마르크는 총을 가지고 그 친구의 머리에 대고 겨냥을 하면서 하는 말이 "자네를 건지려고 내 손을
내밀었다가는 나까지 빠져 죽고 말겠네. 그렇다고 내가 그냥 자네를 놔두고 가면 자네는 무고한 고생을 하다가 죽게 될것이 아닌가, 이것은 친구의 도리가 아닐세. 그러므로 내가
자네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겠네. 저승에 가서라도 내 우정을 꼭 잊지 말게나"하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체 했더니 수렁에 빠진 친구는 온몸에 죽을 힘을 써서 반쯤 빠져 나오게 되었다.
이때 손을 내밀어 건져 주면서 하는 말이 "내 총은 자네의 머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자네의 생각이었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행동인가.
지혜의 힘
이스라엘에서 공부한 학생이 있다. 그가 3년 동안 공부를 하고 돌아와 간증을 하면서 이렇게 말하더란다. 이스라엘에 가서 살펴보니, 이스라엘은 5백망이요 아랍은 3억이 넘는데, 이 5백만과 3억이 팽팽히 맞대결을 해가지고 계속 긴장관계있고 계속 쌔우는 것인데, 언제나 이스라엘이 이기는 것이었다. 그 이기는 비결이 무엇일까, 그는 늘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3년동안 그 비결하나는 확실히 배웠다는데, 바로 이스라엘은 지혜로 싸우고 아랍은 힘으로 싸운다는 것이다. 힘으로, 무기로, 의지로, 고집으로 싸우는 것... 다 소용이 없다. 지혜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친절의 힘
미국 LA근교의 한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댔다.음식맛이 특별하거나 값이 싼것도 아니었다.이 음식점의 최대 무기는 『친절』이었다.식당 입구에는 『손님은 왕』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또 남자화장실에는 『King』,여자화장실에는 『Queen』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손님들은 자신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식당측의 친절에 감동해 단골고객이 된다.『친절』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자본이다.그러나 이 자본을 활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태양의 힘
생활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고요한 힘입니다. 태양광선은 하루 종일 고요히 비취고 있읍니다. 인간의 귀로는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태양광선 가운데는 놀라운 에너지와 큰 힘이 있어서, 축복을 주고, 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기계의 귀 따가운 소리도, 엔진의 소음도, 철사의 금속 음도 없읍니다. 그러나 인력은 모든 별, 모든 세계를 궤도에서, 변함없이 정확하게 우주를 운행케 하고 있읍니다. 이슬은 한 밤중, 사람들이 잠자고 있는 때에 고요히 내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식물, 모든 잎, 모든 꽃에 내려, 새로운 생명과 아름다움을 줍니다. 전기의 에너지가 존재하는 것은 번개 속이지 천둥 소리 가운데는 없읍니다. 이렇듯, 자연계에 있어서마저, 힘은 고요한 중에 있고, 가장 강력한 에너지는 소리도 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투창을 24미터나 던졌다.
출연하여 인기를 끌고있는 미카엘 렌돈아라는 남자 배우의 이야기가 실렸었다. 그는 어릴때 몹시 수줍음을 잘 타고 겁도 많았었던 소년이었다. 그런데 그가 체육학교 9학년이던 그 어느날 투창던지기에서 24미터나 던져 친구들과 선생을 놀라게 했었다. 그 선생은 미카엘의 재능을 발견한 것에 기뻐하며 열심히 해 보라고 격려해 주었고, 그날부터 집과 학교에서 매일 던지기 연습을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그의 탁월한 능력을 인정한 45개 대학으로부터 좋은 조건의 입학을 제안받을 정도였다.
미타엘은 후에 자신의 길을 자신이 정하긴 했지만 그 어린시절의 경험과 격려는 그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경험"이라는 것은 우리의 전생애를 바꾸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됨의 힘
힘은 하나될 때에 강하게 역사한다. 힘의 세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 하나됨(Unity)
둘째, 조화(Harmony)
세째, 협력(Cooperation)
자동차 한대를 만들기 위해 약 2만개의 부품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2만개가 모여서 하나의 자동차가 된다. 자동차 한 대가 제대로 되려면 그 부속품 하나하나가 전부 제구실을 해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말썽을 부리면 안 된다. 어느것 하나도 빼 놓고 달릴 수 없다. 2만개의 부속이 똑같이 힘을 협력해야 조화를 이루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함께 힘쓰는 남편
우리 옛 여인들 아이를 낳을 때 남편의 상투를 움켜쥐고 힘을 쓰는 습속이 있었다. 진통이 시작되면 남편은 산실 문밖에 버티고 앉아 창호지를 뚫고 상투를 밀어넣는다. `우습세라 우습세라 젊은 각시 아 날 때는 제 남편 상투 쥐고 잉잉 울콩불콩 쑥 빠진다네'(關東民謠). 경우에 따라 상투가 뽑히기까지 했다 하니 두피(頭皮)를 벗겨지는 듯한 아픔이었을 것이다. 옛날 서북(西北)의 박천 지방에서는 산모의 진통이 시작되면 남편은 지붕에 기어 올라가 진통을 더불어 하는 `지붕 지랄'이라는 습속도 있었다.
아이는 부부간의 공동 작품인데 아이 낳을 때 아내만이 진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불평등하다는 남녀평등 사상이 원시 시대부터 있었던 것 같다. 이 진통 공감의 습속을 쿠바드(Couvade)라 하는데, 지금 미국에서는 여권 향상의 새 풍조로 현대화 된 쿠바드가 부활되고 있다 한다.
6월 3일자 미국의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85년형(年型) 개량 남성상(改良 男性像)을 커버 스토리로 특집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미국 남편의 다섯 명 가운데 네 명 꼴이 산실에 들어가 아이 낳는 데 힘을 더불어 써주고 있다고 했다. 이 사실은 미국의 남성상(男性像)의 변모에 굉장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마초(macho)라는 말이 있다. 멕시코계 스페인말로 수(雄)컷이란 뜻으로, 남성 우위론(男性 優位論)을 뜻한다. 이것은 과격한 남성 우위론자인 작가 노만 메이러가 쓰기 시작한 말인데, 이 특집에서 마초는 갈기갈기 찢어진 군기라고 결론 짓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남성 우위 사회였다. 한국의 가계(家計)는 주부가 주로 쥐고 있지만 70년대만 해도 미국의 가계는 남편이 쥐고 아내는 필요할 때 얻어 쓰는 게 고작이었다. 한데 지금은 부부 공동 명의로 은행 구좌를 갖는 가계 혁명이 보편화 되고 있다 한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와이프 비팅이 사회 문제화 됐지만, 이제 허스밴 비팅이 역세를 몰아 중화시키고 있다고도 한다. 수입(收入)-지출(支出)을 비롯, 요리(料理)-육아(育兒)를 부부가 똑같이 분담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게 되고, 마이클 잭슨이나 보이 조지같은 중성 남자(中性 男子)가 우상화 되고, 귀걸이 하고 다니는 사나이가 부쩍 늘고 있는 것도 그것이다.
미국 사회가 지향(志向)하는 85년형(年型) 개량 남성(改良男性)이란 앞치마 입고 기저귀 갈이는 하지만 중성화 되지 않고 남성적이고 과단성을 지닌 그런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남성인 것이다. 사상(史上) 남자 살기 가장 어려운 세상이 돼가는 것 같다.
해고 면하려면 자기 홍보 힘써라
미국의 샐러리맨들이 끊임없이 해고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IBM 제너럴모터스 AT&T등 거대기업들은 경쟁력 만회를 위해 수만명의 인력을 해고했으며 이같은 추세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은 최근 특집에서 다운 사이징(조직축소)에 따른 해고의 主타깃은 50代 중간관리층이라고 보도했다. 해고 바람이 미국기업들을 휩쓸면서 기업내 분위기도 살벌해지고 기업에 대한 샐러리맨들의 충성심도 예전같지 않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
해고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끊임없는 자기 홍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차례 좋은 실적을 올렸다고 안심하는 것을 금물이다. 요즘 팀제가 활성화돼 개인 실적이 묻히는 경향이 있는데, 복수의 팀활동으로 자신을 드러내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상사들도 한 사람에게만 의지할게 아니라, 여러 명의 후견인들을 두고 있어야 한다.
▲ 금융업 : 대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직접 조달하고 메릴린치와 같은 경쟁업체들이 등장하면서 미국 은행들은 합병을 통한 경재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앞으로 5년내지 10년 사이 45만명의 은행원 자리가 없어질 전망. 특히 지점 축소로 창구 안내원이나 관련 중관 관리자들이 위험하다. 파생상품 거래인은 비교적 안전한 직위로 꼽힌다.
▲ 미디어 흥행업 : 타임워너社의 터너社 매입, 디즈니社의 태피털 시티즈社 합병등 아합집산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샐러리맨들의 보직도 위태해졌다. 특히 소규모 미디어 회사는 위태롭다. 합병되는 기업의 관리자들이 해고 위기를 맞게 되는 반면, 만화가 다자이너등 전문가들은 예봉을 피할 수 있을 것같다.
▲ 유통업 : 월마트등 대형 할인매장의 등장으로 소규모 유통업자들의 도산이 이어지고 있다. 재고 관리자들이나 세일즈맨, 점포 관리자들이 감원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며, 인터넷망을 통한 세일즈광고 디자인관련 직종은 비교적 안전지대로 통한다.
▲ 통신업 : 워낙 빠른 속도로 기술개발이 이뤄져 낡은 아날로그식 기술과 관련된 직종은 가장 위태롭다. 미래 사업으로 각광받는 무선분야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안전하다.
▲ 설비업 : 앞으로 몇 년 사이에 16만명의 감원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신규고객 확보가 사업성패의 관건이 되면서 마케팅 담당들의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호스를 밟고 있던 사람
집안의 수도에 긴 호스를 연결하여 잔디밭에 물을 주고 있던 어느 사람이 감깐 쉬었다가 다시 호스를 당겨 물을 주려고 하는데 물이 잘 나오지 않자 당황하여 저만치 떨어져 있던 손자에게 "얘 들어가서 수도를 틀도록 하라"하고 소리쳤다. "할아버지께서 호스를 밟고 계시잖아요"하고는 웃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아래를 보니 자신이 호스를 밟고 있는 것을 보고 얼른 발을 옮겼더니 물이 뿜어져 나왔다.
이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욕심으로 말미암은 하나님과의 원활한 친교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의 영적 생명의 교제가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막힌 통로를 뚫어야 한다.
확신이 주는 힘
영국의 클 경은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헨델의 메시아를 연주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연습이 다되면 연주일 전에 오케스트라와 총연습을 했습니다. 한번은 메시아 오라토리오 중에 절정이라고 볼 수 있는 할렐루야 합창 후에 나오는 소프라노 아리아 “내 주는 살아계시고”라는 곡을 소프라노 가수가 부르는데 정확한 음정과 박자. 아름다운 음색과 감정표현 그리고 적절한 호흡을 조절해 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많은 청중이 “야. 참 잘한다”하면서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래클 경이 갑자기 지휘봉을 멈추고 노래를 중단시켰습니다. 노래 부르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오케스트라 단원들. 심지어 관중들까지 놀라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서로 마주 보았습니다. 이 때 래클 경이 소프라노 가수에게 “너. 정말 내 주가 살아 계신 것을 믿느냐.”
그 때 이 가수가 그런 것을 생각이나 했었겠습까. 너무 뜻밖의 질문이라 그저 당황해서 “예. 예.”하며 대답했습니다. 래클 경은 “그러면 다시 불러”하면서 지휘를 시작했습니다. 이 때 소프라노 가수는 음정. 음색. 호흡. 박자. 감정같은 것을 생각할 여지도 없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 주는 살아 계시고.” 이 노래를 듣고 많은 청중들이 아까는 “참 잘한다”고 생각하며 노래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너무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들었다고 합니다. 꼭 같은 사람이 꼭 같은 노래를 불러도 확신을 가지고 부르는 노래가 이처럼 감동을 준 것입니다. 확신에는 힘이 있습니다. 모든 고통도 절망도 딛고 일어설 힘이 있습니다.
환난의 밥
우리는 시련과 고난의 홍수가 밀려올 때 그 아픔을 바라보고 절망 할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의 홍수]위에 좌정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아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시련의 홍수를 통해 성도에 게 복 주십니다.
작은 홍수엔 작은 선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큰 홍수 엔 큰 선물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믿고 어떠한 시련의 아 픔이 있더라도 인내하며 예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특히 성경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편29:11)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시련과 고난을 통해 힘을 얻고 평강을 얻습니다. 운동 선수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로드웍을 하고 끊임없이 신체를 단련합니다. 심한훈련은 그들에게 있어 큰 고통이지만 이런 고통을 통해 체력이 강해지는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의 인격도 시험을 통하고 환난을 통해야 강해지고 굳세어집니다. 성도는 시험과 환난의 밥을 통해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힘(장사)
1.여 장사
삼국시대 초기만 해도 힘이 샌 여장부나 몸이 큰 거녀(巨女)는 우러름 받았다는 역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 산상왕(山上王) 때 주통촌(酒桶村)의 스무 살 먹은 여장사는 수십 명의 군사들이 잡지 못하는 사나운 돼지를 한 손으로 잡고 있다.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은 손수 주통촌을 찾아가 이 여장사를 계비(繼妃)로 삼고 왕자(東川王)를 낳고 있다. 한데 문호왕(文虎王) 때 키 13 척, 발바닥 길이만도 6 척이나 되는 거녀가 사
비해에 떠올랐느니, 백제 말엽에 18 척인 거녀의 시체가 생초진(生草津)
에 떠올랐느니 하는 기록이 나오는 걸 보면 거녀나 여장사의 수난이 삼국시대 후반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존여비의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조에서 여성의 무력화는 세계사에서 가장 가혹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발이 크면 도둑년이라 하여 틀버선을 신겨 비틀걸음을 걷게 하고, 젖통이 크면 화냥년이라 하여 젖졸임말로 죄어 육체를 왜소화시켜서까지 무력화하였다. 그리고 거녀나 별나게 기운이 센 여아가 탄생되면 지방 수령들은 조정에 보고하게 돼 있었고, 흉물이라 하여 처치해 버리거나 궁중에 불러다 가두어 기름으로서 그 기운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관습이 돼 있었다.
김옥균(金玉均) 등의 개화 쿠데타 갑신정변 때 유일한 여자 행동대원인
이우석(李禹石)이란 궁녀도 그런 숙명의 여인이었다. 키가 7 척이요, 힘이 세어 쌀 두 가마를 겨드랑이에 끼고 유유히 걸어다니기에 모든 사람이 돌아보는 큰 지어미라 하여 고대수(顧大嫂)란 별명을 지녔던 이 한국 최초의 여자 혁명가는 대역죄로 시구문 밖에서 석살형(石殺刑)을 받고 있다.
고전소설 <박씨전>에 보면 병자호란에서 용골대를 항복시켜 엎드리게 한 박씨는 하루에 쌀 서 말을 먹고 사나이 대여섯 명이 못 드는 바윗덩이를 한 손으로 들어올리는 여장사다. 이처럼 여장사는 소설 속에서만 구제 받았을 따름이었다.
전통사회에서 여장사가 쓸모 있었다면 안방에 숨어 있는 범인을 잡기 위한 포도청 소속의 다모(茶母), 곧 여형사 수명에 불과했다. 키가 5 척이 넘어야 하고, 막걸리 세 사발을 단번에 마셔야 하며, 쌀 닷 말을 번쩍 드는 채용시험을 거쳐야 하는 다모는 쇠도리깨를 휘두르고 범인이 숨어 있는 내방의 문짝을 부수고 들어가 힘센 사나이를 손을 비틀어 잡아와야만 했다.
세계 유도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두 낭자 역사(娘子力士)가 세계를 제패했다는 것은 금메달이라는 차원 이상의 부각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여자를 왜소화하고 무력화하고 비인간화해 온 수천 년의 역사에 반동하는 신기원으로서의 증명자들이기 때문이다.
2.여장군
이라크 여장군 전설 속의 여장군은 많다. 물론 우리 나라에도 있었다. 병자호란 때 호
장(胡將)들을 박살낸 `박씨전'의 박씨야말로 굴지의 여장군이다. 박씨는 생김새가 아름답지는 못하나 장사 풍채와 영웅 풍모를 지녔으며 한끼에 한 말씩 하루 서 말을 먹는 대식가였다.
병자호란 때 여대장으로 종군하는데 호장을 잡아 무릎 끓려놓고 항복을 받는 대목을 보자. 호장은 손이 묶인 채 박씨 앞에 끌려나와 땅에 엎드려 사죄를 청하는데, 소장(小將)이 천하를 횡행하며 조선까지 나왔으나 이제껏 무릎 한번 꿇어본 일이 없었으나 처음으로 무릎 꿇어 비나이다 하며 머리를 조아려 애걸하자, 여장군은 그제야 주렴을 걷고 나와 가로되, `너희들을 씨도 없이 멸종시키려 하였으나 내 인명을 상해함을 좋아하지 않아 십분 용서하노니-.' 대단한 기개가 아닐 수 없다.
또 호장이 전사한 그의 아우 용골대의 머리를 돌려줄 것을 애걸하자 `용골대의 머리는 톱질을 하여 남한산성에 걸어 패한 분을 만분의 일이라도 풀려 하니, 아무리 애걸해도 그만은 못 하리라'고 원념을 토로하기도 한다. 남한산성에서 패한 굴욕적인 민족의 울분을 여장군 박씨를 통하여 승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 속의 여장군은 지금 이라크가 위치한 바빌론 지역에서 자주 탄생되고 있다.
1세기쯤 이 지역에 브리톤 왕국을 다스리고 있던 여왕 보아디케아는 로마 병사들이 자신의 두 딸에게 성폭행한 것에 분노, 지원병을 모집, 로마에 쳐들어가 1군단 병력 7만 명을 죽이고 잡힌 몸이 되자 음독 자결하고 있다.
3세기에는 제노비아라는 여장군이 이곳에서 동방의 여왕임을 자칭하고 인근 시리아, 이집트, 메소포타이마 등 소아시아의 거의를 손수 지배했었다. 후에 로마 군사에게 붙잡힌 몸이 되어 벌거벗긴 채 로마 시내를 끌려 다니는 수모를 당하긴 했지만-. 모진 사막의 지역적 특성 때문인지 그곳에 여성들의 특유한 의식구조 때문인지 또는 남다른 종교적 원념(怨念) 때문인지 과격한 여장군이 양산도 돼 온 것이다. 그 전통이라도 잇듯 지금 이라크에는 36세 된 미모의 냉혈 여장군 라자비가 과격 주전파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한다. 계급도 육군 대장-. 역사상 여성으로서 최초요, 최고의 계급이 아닌가 싶다. 군
에의 여성 진출이 가장 활발하다는 미국에서도 투 스타 곧 소장이 고작이요, 여자를 우대했다던 중국 공산 군대에서도 혁명 여장군인 진립(陳立)은 원 스타인 준장이었다.
제노비아처럼 여장군 라자비도 반(反)호메이니 운동에 가담했던 그의 자매들이 호메이니파에 의해 강간 살해된 것에 원한을 품고 군에 투신, 이란과의 8년 전쟁 때에는 자신의 손으로 3만 명의 이란 포로를 살해했다고 호언하고 다닌다고 한다.
이번 쿠웨이트 침공 때도 변장 여인부대를 인솔, 미리 잠입해 있다가 역습으로 점령을 성공시킨 일등공신이다. 후세인이 바빌론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성전이라 호언했듯이 라자비는 보아디케아, 제노비아로 이어지는 맹렬 여장군의 재림을 호언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힘과 힘의 대결
이솝의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산림의 왕자인 사자 한 마리가 코를 골며 羚駭쨉, 그 모습은 무척 도도했으며 마치 그 아무도 공격해 올 수 없을 것만 같은전능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사자 곁을 날아가던 모기 한 마리가 건방지게 이 사자를 공격하기로 결심하고 사자의 민감한 코, 눈두덩, 귀를 사정없이 쏘아댔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사자는 마침내 화가 치밀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뒹굴었습니다. 그러나 모기는 공격을 늦추지 않았고 사자는 뒹굴다 뒹굴다 지쳐 쓰러져 버렸습니다. 모기가 밀림을 제패한 것입니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쓰러진 사자의 주위를 유유히 맴돌고 있던 모기.
그러나 그 모기는 한 순간 가냘픈 그물에 걸려 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거미줄이었습니다. 사자를 이긴 승리자 모기는 끝내 거미의 밥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힘을 쓰는 자는 힘에 의해 패망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고 봅니다. 힘과 힘의 대결, 그 속에서는 그 누구도 승자일 수 없으며 오직 패자만이 존재한다는 삶의 진실이 이 이야기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익살스러운 이야기는 오늘날처럼 힘과 힘의 숨가쁜 대결의 세상에 던져 주는 고귀한 삶의 지혜로 전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힘껏
개구리 한 마리가 길에 파여진 꽤 깊은 구멍에 빠졌다. 친구 개구리들이 도와주 며 아무리 꺼내어 나오게 하려해도 모든 게 허사였다. 결국 친구 개구리들은 포기 하고 다 가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튿날이었다. 친구 개구리들이 보니 어제 구멍에 빠졌던 그 개구리가 신나게 깡충거리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친구 개구리들이 도대체 어떻게 그 구멍에서 나왔는가고 물어보았더니 그 개구리가 다음 과 같이 대답을 했다. "글쎄 말이야, 자네들이 다 가버리고 내가 구멍에 빠진 채로 있는데 저 앞에서 큰 트럭이 한 대 이 길로 오고 있지 않겠어? 그래서 나는 그 구멍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되었거든!"
힘든 것
한 왕이 훌륭한 학자를 불렀다. 왕은 학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사는 게 훌륭하게 사는 것니까?"
훌륭한 학자가 대답했다.
"나쁜 짓은 하지 말고, 착한 일만 하는 겁니다."
왕은 피식 욱으며 말했다.
"아니, 그건 다 아는 쉬운 거잖습니까?"
훌륭한 학자도 웃었다.
"세 살 먹은 아이도 다 아는 거지만, 팔십 살 먹은 노인도 실제로 지키
키는 힘든 거랍니다."
[되새김]
신앙 생활 잘 하는 법을 몰라서 잘 못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지 실천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참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고가 뒤따른다. 새
생명을 얻기위해 산모가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하듯이 말이다.
힘든 기도의 결과
히 11:6; 유 1:3,20; 계 2:13; 골 1:23
부쉬넬 박사의 대학시적에 있었던 일이다.대학시절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존재는 현실적인 분이 아니었다. 어느날 그는 기숙사에서 `하나님은 정말 계신가...나는 과연 하나님을 믿고 잇는가...나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바라고 아주 적지만 하나님이 게신 것을믿고 잇따. 그른 분명 선하신 하난미이심이 틀림없다.
그는 나를 도와 주신다.'라는 등의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내 혼의 어두움을 걷어 주소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여 주소서."그 는 희미하게 느껴지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정직하게 그 희미함을 고백하며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 것이다.
그것은 매우 힘든 기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최선의 기도였다. 그의 기도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그 영혼과 함께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 그리고 영원의 아침을 맞았다. 하나님의 존재에대해 방해하는 의심을 벗어버렸다. 그는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힘을 기르자
일그러지고 왜곡된 무(武)가 남북한의 반세기를 지배해 왔다. 저들은 군대를 길러 같은 사람이 50년을 통차했고, 우리는 武를 숭상한다는 우리들이 서로 주고 받으며 나라를 다스려 왔다. 이제는 그것을 풀어야할 때이다. 일그러진 武를 풀자면 참다운 武만이 가능하다.
주살이란 무기가 있다. 화살의 일종으로 새나 짐승 따위를 잡는 무기로 쓰여지다가 차츰 兵器로 발전했다.
한자로 익(익)이라고 쓰는 고대병기의 대명사였다. 인류는 마침내 核을 발견하였고 그것으로 대량학살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핵을 북쪽 사람들이 이미 가졌다고도 하고, 앞으로 가지겠다고도 한다.
武란 글자를 눈여겨 보라. 병기(익)쓰는 일을 그치는(止) 것이다. 참다운 무는 변기를 써서 서로 죽이는 싸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치게 하는데 있다. 병기(익)를 어떻게 그치게 하는가. 이쪽의 힘이 넘쳐나야 한다. 힘이 넘치면 상대는 싸움을 걸지 못한다. 이것이 이른바 세력균형의 원리이다.
우리 민족의 참다운 武가 어디에 있는가를 세계 만방에 과시할 절호의 기회가 바로 지금이다. 우리가 그것을 실현한다면 세계는 우리를 우러러 볼 것이다. 북쪽의 살황이 한치의 앞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급변한다. 그러나 저들과의 일에서 우리가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에게 힘이 넘쳐나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수많은 성례들이 그것을 말해 주었다. 그들에게는 힘만이 통했을 뿐 감상같은 것은 금물이었다.
사람들은 '같은 동족끼리'라는 달콤한 감상에 젖어 당장이라도 통일이 가까와지는 것으로 착각한다. 힘과 세월만이 남북통일을 이룩할수 있다. 세월의 힘을 보라! 세월은 김일성도 데려갔다.
'내가 살아 있을때' '내가 이 자리에 있을때' 그것잉 이루어져야 한다는 성급한 생각을 버리고 힘을 기르며 차분히 기다리면 남과 북에서 다같이 참다운 武가 실현될 날이 반드시 온다.
힘을 다해
한때 이집트인들은 세계를 주도할 만큼 총명하고 능동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이집트인들은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무덤에 살면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구걸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왜 이집트인들은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했을까요?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슬람교를 믿는 이집트인들은 걸핏하면 '인솨 알라'즉, '알라의 뜻'을 들먹인다고 합니다. 그들은 구걸 행위를 하는 것조차도 알라의 뜻이라고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이상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하나님의 뜻이라면'이라는 말을 내세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뜻이라면 좋은 직장을 주시겠지, 좋은 배우자를 주시겠지, 건강을 주시겠지.... 라고 하면서 그에 따르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노력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대로 행하기 위해 또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 저희로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면서 게으른 숙명론자가 되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숙명론자'란 자신의 인생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힘을 주시는 분
하나님의 위대한 인물들은 그들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깨닫고 하나님께 힘(능력) 주시기를 간구했다.
어느 주일날 아침, 찰스 스펄전이 타버나클의 설교단 문뒤를 지날 때 그는 많은 무리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거기서, [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고 외치는 소리를 얼핏 듣고 그는 자기가 이 위대한 주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도저히 큰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힘이 넘치는 설교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종교개혁자 존 낙스는 1555년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복음운동,개혁운동을 했다.그의 『스코틀랜드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한 기도문은 지금까지 크리스천들에게도전을 주는 명언으로 남아있다.
그는 친구의 부축을 받아야 설교단에오를만큼 약해질 때도 온 힘을 다해 설교하곤 했는데,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설교했던지 친구 하나가 이렇게 그의 모습을 회상했다.
『그는 너무도 힘차게 설교하기 때문에 단상이 산산조각 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 다할 때까지
히 3:6; 계 2:10; 행 20:24; 고전 4:2
존 엘리어트라는 유명한 설교가는 교회를 사임하고 세계를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 교회 교인들은 "목사님, 이곳에 오래 계시면 예배당도 훌륭히 짓고 사택도 잘 지어드리겠습니다."라고하며 말렸다.
"나의 사명은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곳에 오래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교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세계 전도의 길에 올랐다.
그는80세가 되기까지 설교를 그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힘이 다하여 결국 걸을 수가 없게 되었을 때 흑인 아이들을 모아놓고 성경을 읽어주고 하나님 나라에대해서 말해 주었다. 이 같은 모습을 지켜 보던 그의 제자가 그에게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그동안 수십년간 일했으니까 이제는 안하셔도 됩니다. 좀 쉬십시오."
그러자 그는 정색을 하면서 거절하였다.
"몇 십년간 일을 했다 해도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일세. 내가 비록 자리에 누웠으나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줄 힘은 아직 남아있네. 그래서 지금 그것을 실행하는 것일세."
힘있고 능력있는 생활 방식
누구나가 좋은 것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도덕적인 것이든 차별하지 아니하고 좋은 것을 갖고자 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죄짓지 아니하고, 도덕적으로 훌륭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자 하고, 겉과 속이 아름답고, 무엇에든 용기있는 삶을 살고자하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물질의 풍요속에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고자 하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막강한 힘을 가진 정말 능력있는 사람, 즉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허리를 굽힐 수 있는 권세와 직함을 갖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여러가지 소망들이 요즘엔 많이 걸러진 것 같습니다.
무엇은 남고, 무엇은 빠져나가고해서 그 윤곽이 거의 확실히 들어나 있는데염려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것이 남아야하는데 이젠 쓸모없는 것들만 남아있고 그것들은 오히려 인간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힘있고 능력있는 생활,
그것에 대한 소망을 품고 우리 모두 살고 있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지치고 힘들어 합니다.
포기해 버리고,어떤 극단적인 방법으로 무리하게, 그리고 쉽게 그러한 삶을 살려고 합니다.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획기적인 어떤 지식을 인하여 그것을 성취해 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그러한 꿈을 이루었다고 장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 그 사람들이 인간의 근본적인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것에 불만족스럽지 않고 다 만족 할 수 있는 성취를 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떠오릅니다.
설령 그렇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착각하는 것이겠지요.
사람의 창조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하는 소망을 품도록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의 모든 소망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성취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주안에서 누리는 만족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바로 그 점에서 좌우됩니다. 세상 안에서 만족을 누린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소망을 반도 이루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안에서 만족할 수 있다면 인간으로서의 소망은 100% 다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그러한 성공적인 삶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서의 소망과,
인간에게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으며 권세와 능력을 발휘하며 사는 그와같은 소망까지도 다 이룰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우리의 마음속에 좋은 말이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본문 1절에서
[내 마음에서 좋은 말이 넘쳐 왕에 대하여 지은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필객의 붓과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좋은 말이란 사랑이 섞인 말입니다.
좋은 말이란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말입니다.
좋은 말이란 남에게 기쁨을 주고,소망을 주고,남을 살리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무슨 말들이 들어 있습니까?
슬픔과 걱정으로 가라앉아 있고, 분노와 미움과 시기로 눌려있고,
실패의식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채우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기뿜의 노래로 가득하고,감사의 언어가 마음속에 충만합니까?
이 세상의 말은 좋은 말과 나쁜말로 구분되어 집니다.
그렇다면 좋은 말은 어떤 말을 말합니까.
바로 소망이 가득한 말이요, 용기를 주는 말이요, 믿음을 주는 말이요, 어떤 역경도 능히 이길수 있게 해 주는 말이요,
생명력이 넘치는 말이 바로 좋은 말입니다.
이러한 좋은 말은 모두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 말씀은 바로 좋은 말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변화시키는 능력이 잇습니다. 치료의 힘이 있고, 부요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내 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그때는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여러분,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바로 나는 죽었고 내 속에 에수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이요,
내 말은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살아서 역사함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온갖 진실된 언어들로 가득해야 합니다.
그러한 좋은 말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언어들은,
우리의 더러운 죄악을 씻겨주고, 우리의 염려와 근심된 마음을 소망의 마음으로 바꾸어 주며,실패된 인생을 성공의 삶으로,거짓된 인생을 진실한 삶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그와 반면에 거짓된 언어들은 우리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합니다.
세상의 언어들은 거짓된 말들입니다. 세상의 소리는 모두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러한 거짓된 말들을 가슴에 품고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거짓된 삶을 사는 것이요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며 사는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잘못된 언어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미움의 말들, 파괴적인 말들, 자신의 인생까지도 결코 좋게 말하지 않는 비관작인 언어들이 얼마나 많이 우리의 가슴을 채우고 있습니까?
그것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분명 불행해 집니다.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언어들을 버리고 슬프고 비애적인 말들을 가슴에 품고 살면, 부정적인 언어들로 마음을 채우고 산다면 결코 행복할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거짓되지 않았다.
나는 어쩔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 앞에서 정직하게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거짓된 언어들을 품고 어찌 정직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거짓된 것을 품고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거짓 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나는 진실하다고 말해도 거짓을 품고 있는한 우리는 거짓 된 사람입니다.
좋은 말, 진실된 언어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하다면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으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내가 두 마음을 품는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너희 행악자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리로다] (시119:103-106,113-115.)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좋은말이 넘쳐나게 하십시오
그것은 필경 필객의 붓의 되어 아름다운 그림과 글이 쓰여지듯이 여러분의 삶을 아름답게 그려낼 것이요 여러분의 소망의 말들이 현실로 쓰여지게 될 것입니다.
나는 죽었고 내 속에 예수님이 살아 계십니다.
내 말은 죽었고 하나님의 좋은 말들이 내 가슴에 가득하므로 내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대로 다 이루어 질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좋은 말을 품고 사십시오.
여러분을 화나게 한다거나, 분노의 격정으로 몸을 떨게 한다거나, 여러분을 의기소침하게 하는 말들이 가득하다면,
또는 염려와 근심의 단어들이 가득함으로 괴로운 마음으로 살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면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의 마음속에 좋은 말로 가득히 채우십시오.
그 말은 여러분의 삶을 윤택하고 안정되게 해 줄 것입니다.
나 자신에 대한 좋은 말들, 내 가정에 대한 좋은 말들, 내 이웃에 대한 좋은 말들, 내 직장에 대한 좋은 말들은 바로 나를 살리는 힘이 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게 되고 그러므로 사람에게 인정을 받을 것이요,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좋은 말,죽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며 가슴에 품고 사심으로 여러분의 소망대로 능력 있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비결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사람입니다.
본문 2절에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왕은 인생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영히 복을 주시도다]
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위한 소망은 누구나가 갖고 있습니다.
겉과 속이 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우리는 꿈을 꾸지만 나의 한계를 알게되면 우리는 그만 둘 중 하나를 포기하고 마는데 대부분 속 속사람이 아름다워지는 소망을 버리게 됩니다.
그때부터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으로 급전환을 합니다.
열심히 화장을 하고 다니는 분들을 보면 저절로 우러러 보입니다.
아름다워보이기 위해 열심히 하루도 걸르지 않고 화장하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생각해 보면 그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어짜피 나는 볼 수 없는 얼굴입니다. 거울앞에서나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머리에 거울을 메달고 그것을 들여다 보며 살 수는 없지요.
그렇기 대문에 거울을 떠나는 순간 그렇게 한시간이 넘도록 공을 들인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남을 위한 화장이지요.그렇기 때문에 화장이 더 어려워집니다.
우리 나라에 분이라는 것이 처음 나왔을 때 그 때는 사람들도 그렇게 세련되지 않았고 얼굴도 대체적으로 고생들을 많이 해서 새까맣게 그을렀는데 바르면 바를수록 하예지는 게 신기해서 덕지덕지 바르고 나오면 실소를 금치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턱을 경계선으로 해서 귓부리 밑 까지는 하얀데 그 밑은 무슨 삼팔선을 그어놓은 양 새까만 여인네들이 많았거든요, 요즘도 가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여렀을 때 허옇게 분을 바르고 다니던 여자분들이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나옵니다.
분을 바를 때는 꼭 목 밑까지 구석구석 바르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시편기자는 진정한 아름다운 사람을 이렇게 말합니다.
[왕은 인생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복이 있나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술에 머금은 자가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구원의 찬송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인하여,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인하여,
하나님의 도우시고 인도하심을 인하여 항상 그 은헤의 찬송을 입에 물고 사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창출해 냅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아름다움을 보고 노래합니다.
일출의 황홀함과 황혼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을 연발합니다.
꽃 한 송이를 보면서도 신의 손길을 느기고 그분의 오묘하신 창조의 능력을 봅니다.
세상의 모든 삼라 만상을 보면서 그분의 절묘한 솜씨에 감탄을 하며 노래합니다.
인생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헤를 발견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아름다운 진주를 생산해 내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왠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머금은 사람의 영혼은 맑은 수정과 같아서 세상 만물속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세게를 바르게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산산히 조각난 거울로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노도광풍에 출렁이는 호수로는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을 비출 수 없습니다.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마음의 세계가 세상적인 탐욕으로 가득찬 사람이나,
염려와 근심으로 찌들어 버린 사람이나,
두려움으로 그 마음이 흐려져 있는 사람이나,
분노함으로 그 마음이 격동이 되어 있다면 결코 아름다음을 바라볼 수 없고, 또한 아름다운 사람으로의 변화도
불가능해 집니다.
요한계시록 22장을 보면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천국에 흐르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가슴속에 천국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수정같은 맑은 생명수의 강은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흐르고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속에 생명수가 흐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헤의 강물이 흘러 넘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화장술로, 요란한 악세사리로, 화려한 옷으로 우리의 몸을 치장하지 않아도 그러한 하나님의 은헤를 머금고 있다면
분명 우리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자신이 아름답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매사에 자신이 넘칩니다. 항상 용기가 넘칩니다.
삶의 활력이 넘칩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다면 분명 나에게는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생을 좋아서 뛰며 살아도 시원치 않을 엄청난 사건입니다.
천사는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천사가 부러워 한다면 어떻습니까?
아름다운 신부를 보는 처녀의 마음속에는 놀라움과 부러움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은혜를 입술에 머금은 사람이 되십시오.
입만 열면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지는 사람이 되십시오.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채 몇일을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안타까워서 발을 구르고 있었는데 몇일만에 가까스로 깨어난 이 사람이 입을 열었습니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할렐루야 ]
그 소리를 들은 식구들은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은혜를 입술에 머금은 사람은 그렇게 어떤 상황에서도 그 은혜가 흘러 나옵니다.
그러한 사람은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의 입술은 은혜를 머금은 입술이었습니다.
그의 평생 하나님을 노래하지 않은 날이 드물정도로 그는 하나님의 은헤를 머금고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자와 곰앞에서 능력의 사람이었고.
골리앗 앞에서도 그는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전쟁터에서도 그는 능력으리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배신과 배반의 갈등속에서도 그는 능력의 사람임을 과시하며 예루살렘성에 입성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헤를 그 입술에 머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의 삶은 온통 은헤의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머금고 계셨기 때문에 입을 여실 때 마다 은헤가 흘렀습니다.
소망이 흘렀습니다. 치료의 강물이 흘렀습니다.
구원의 강물이 흘러 넘쳐 온 인류의 가슴을 적셔주었습니다.
십자가위에서 비록 패배한 것 같았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한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능력있는 삶을 우리 주님은 이 땅에서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은헤를 머금은 입술이 되십시오.
바울과 실라는 어두운 감옥에서도 능력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니엘과 아벳느고의 세 친구들도 사자굴에서, 불구덩이에서 능력있는 사람의 면모를 수 많은 사람들에게 과시하며
살았습니다.
은혜를 그 입술에 머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은헤를 머금은 삶이라면 아무리 험한 골고다 언덕일지라도, 아무리 사나운 사자들이 날뛰는 굴속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뜨거운 불속이라 할지라도 능력의 전신갑주를 입은 우리는 머리카락하나 상하지 않는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좋은 말이 내 마음에 넘치고,
은헤를 그 입술에 머금고 있다면, 속에 있는 아름다운 말들은 그 입술을 타고 흘러 나와 온 메마른 대지를 적시게 될
것이요,
여러분의 메마른 삶까지도 적시게 됨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좋은 말이 가슴에서 넘쳐 흘러 은헤를 머금은 입술로 흘러 나오는 사람은 진정 능한자가 되어서 이 세상을
이기게 되는 것임을 시편 기자는 말씀합니다.
[능한자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
힘있고 능력있는 삶을 묘사한 말씀입니다.
모든 일에 능한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은 능력의 힘을 덧입어서 어떤 문제앞에서도 두려워 하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대적하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
[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 가십시오.
그렇다면 힘있고 능력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질병과 삶의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요?
좋은 말이,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넘치게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과 은헤를 입술에 머금으십시오
그리고 담대하게 이렇게 외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힘껏 최선을 다하니!
개구리 한 마리가 길에 파여진 꽤 깊은 구멍에 빠졌다. 친구 개구리들이 도와주며 아무리 꺼내어 나오게 하려해도 모든 게 허사였다. 결국 친구 개구리들은 포기하고 다 가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튿날이었다. 친구 개구리들이 보니 어제 구멍에 빠졌던 그 개구리가 신나게 깡충거리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친구 개구리들이 도대체 어떻게 그 구멍에서 나왔는가고 물어보았더니 그 개구리가 다음 과 같이 대답을 했다. "글쎄 말이야, 자네들이 다 가버리고 내가 구멍에 빠진 채로 있는데 저 앞에서 큰 트럭이 한 대 이 길로 오고 있지 않겠어? 그래서 나는 그 구멍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되었거든!"
힘든 것
한 왕이 훌륭한 학자를 불렀다. 왕은 학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사는 게 훌륭하게 사는 것니까?"
훌륭한 학자가 대답했다.
"나쁜 짓은 하지 말고, 착한 일만 하는 겁니다."
왕은 피식 욱으며 말했다.
"아니, 그건 다 아는 쉬운 거잖습니까?"
훌륭한 학자도 웃었다.
"세 살 먹은 아이도 다 아는 거지만, 팔십 살 먹은 노인도 실제로 지키는 힘든 거랍니다."
힘든 기도의 결과
히 11:6; 유 1:3, 20; 계 2:13; 골 1:23
부쉬넬 박사의 대학시적에 있었던 일이다.
대학시절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존재는 현실적인 분이 아니었다. 어느 날 그는 기숙사에서 `하나님은 정말 계신가...나는 과연 하나님을 믿고 잇는가...나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바라고 아주 적지만 하나님이 게신 것을믿고 잇따. 그른 분명 선하신 하난미이심이 틀림없다.
그는 나를 도와 주신다.'라는 등의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내 혼의 어두움을 걷어 주소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여 주소서."그는 희미하게 느껴지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정직하게 그 희미함을 고백하며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 것이다.
그것은 매우 힘든 기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최선의 기도였다. 그의 기도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그 영혼과 함께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 그리고 영원의 아침을 맞았다. 하나님의 존재에대해 방해하는 의심을 벗어버렸다. 그는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힘이 다할 때까지
히 3:6; 계 2:10; 행 20:24; 고전 4:2
존 엘리어트라는 유명한 설교가는 교회를 사임하고 세계를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 교회 교인들은 "목사님, 이곳에 오래 계시면 예배당도 훌륭히 짓고 사택도 잘 지어드리겠습니다."라고하며 말렸다.
"나의 사명은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곳에 오래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교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세계 전도의 길에 올랐다. 그는80세가 되기까지 설교를 그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힘이 다하여 결국 걸을 수가 없게 되었을 때 흑인 아이들을 모아놓고 성경을 읽어주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이 같은 모습을 지켜 보던 그의 제자가 그에게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그 동안 수십년간 일했으니까 이제는 안하셔도됩니다.
좀 쉬십시오."
그러자 그는 정색을 하면서 거절하였다.
"몇 십년간 일을 했다 해도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일세. 내가 비록 자리에 누웠으나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줄 힘은 아직 남아있네. 그래서 지금 그것을 실행하는 것일세."
가장 힘든 기술
본문 : 딤후 4:2-5; 딤전 1:11,13
로이드 조지는 어느 목사의 설교를 들은 다음 교회 사무실에서 블랙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따. "당신들 목사들이 연설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기 저기에서 자주 강연을 합니다. 분위기를 따로 만들어 줄필요는 없지요. 그 때 분위기는 자극적이고 낙천적입니다. 그래서 저의 관중들은 아주 진부한 말이나 아주 어리석은 농담도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람들에게 매주일 두 번씩설교를 합니다. 그 사람들은 재치 있는 말을 기대하거나 즐거워지려는 기대를 갖고 오는 것도 아닙니다.
또 당신은 전반적으로 언제나 똑같은 주제에 관하여 이야기하며 분위기도 그렇게 만들어냅니다. 목사가 한 교회에서 계속적으로 같은 설교를 하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 가운데에서 가장 힘든 기술중하나라고 생각됩니다."
감사의 힘
감사하면 「불행한 상황」이 달라진다. 어떤 처녀가 반지를 잃어버리고 집에 와서 분노한 모습으로 불평했다.그녀는 반지 한 개를 잃어버림으로써 행복과 자존심, 생활까지 다 잃은 듯 끊임없이 원망을 쏟아놓았다. 이런 딸을본 어머니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 상황이 반전됐다.『얘야,손가락을 안 잃어버린 것을 감사해라.네 손가락은 그대로 있잖니.손가락마저 잃어버렸으면 어떡할 뻔했니? 반지야 다시 살 수 있지만 손가락은 살 수 있겠니?』
물로 강철을 자른다
스펀지에서 강철, 다이아몬드에 이르기까지 각종 물질을 깨끗하게 잘라내는 물 칼이 개발됐다.
과학 기술처는 최근 초고압의 수압을 이용하여 소재를 절단 가공하는 장치 두 종류를 국내개발 신기술제픔으로 보호하기에 이르렀다. 가람유압시스템이 한국과학기술원 權五寬박사팀 (기계공학연구부)과 공동으로 개발한 수류(워터제트) 절단 장치는 물만 이용하는 것과, 여기에 연마제를 첨가 절단능력을 더욱 높인 것등 두가지로 되어 있다.
물을 초고압으로 압력을 가해 고속으로 분산시키면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이 발생한다. 가람유압시스템의 물칼은 약 4천기압 (1㎠당 4천kg)으로 압축시킨 물을 미세한 구멍을 통해 음속의 3배 속도로 분사시킴으로써 종래의 어떤 절단 장치보다도 우수한 절단성능을 발휘하고 있다. 물을 분사하는 노즐의 직경은 0.1- 0.5mm정도이다. 워터 제트의 개념은 40년대부터 항공기의 고속화 추세에 따라 항공기와 빗물과의 충돌로인한 문제점을 연구하던 결과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70년대 들어서야 산업에 응용되기 시작했다...
워터제트 절단기의 최대 장점은 가공재료의 변형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래 절단기의 칼날등에 의해 생기는 절단면의 찌그러짐이나 구부러짐등을 막아주기 때문에 인쇄회로기판등 정밀 전자부품 재료절단에 적합하다. 레이저 광선을 이용한 절단기도 이같은 장점이 있기는 하나, 물칼은 레이저 절단기와는 달리 열을 발생하지 않으므로 인화성 물질이나 폭발의 위험이 있는 재료 절단에 안성마춤이다. 미국에서는 광산의 착암기에 이 워터제트를 많이 응용하고 있다. 열에 의한 손상을 받기 쉬운 인체의 뼈를 절단할 때 종래의 외과수술용 톱대신 이용한다면 효과를 볼 수 있다. 토목건설 분야의 워터 제트공법은 진동과 소음이 적기 때문에 도심지 콘크리트 구조물의 해체 작업에 종래의 착암기 대신 이용할 수 있다...
개 무리의 힘
JCC(유태인 공동체 센터)는 유태인 사회에서는 보기드문 단체 가운데 하나이다. 이 단체는 순수한 유태인들만으로 만들어진 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러시아, 영국,프랑스,이스라엘,미국계 등 여러 계통의 유태인들이 작은 단위로 소그룹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태 계율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키지 않은 사람, 또 자선에 힘쓰는 사람,그렇지 않은 사람 등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제각각 개성을 보이고 있는 관계로 아주 통일성이 없는 단체인 것이다.
이러한 무리를 이룬 사회에서는 긴장감 같은 상태가 항상 존재한다. 그러던 중 어느 작은 단체에서 서로 반목하는 두 그룹으로 분열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나는 위기의 단체에게 <탈무드>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주었다.
"갈대가 하나로서 있을 때 쉽게 부러지지만, 갈대가 백개의 한묶음으로 있을 땐 몹시 단단하다. 개들만 떼로 한데 모아 놓으면 서로 싸우지만, 그러나 늑대가 나타나면 싸움을 그치고 힘을 합친다.
유태 민족의 오늘은 아직도 안전이 보장받지 못한 상태이다. 게다가 아랍, 러시아, 그리고 반유태주의자들에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유태인끼리의 싸움을 무조건 피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식 아래에서 지금은 별다든 충돌없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거대한 폭포의 힘
북 아메리카 동부의 카나다와 미합중국의 경계에는 거대한 폭포가 있다. 바로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이다. 이 폭포는 약 1만년 전에 형성되어 높이가 48m, 폭 800-900m로써 50-60m의 급한 벼랑을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장관을 이루는 명물이다. 더우기 주변의 아름다운 전망은 이 폭포를 더욱 돋보이게 하며 또 야간에는 온갖 찬란한 조명구들로 폭포를 채색하여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이 웅대한 광경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여 전 세계 곳곳에서 많은 관광객이 이 장관을 보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한편 미국과 카나다 양국 정부는 이 폭포의 거대한 힘을 이용하여 큰 수력 발전소를 세웠으며 엄청난 전력을 이용하는 이익을 누리고 있다.
어느날 그 곳을 찾은 한 관광객이 이 웅장한 모습에 감탄하면서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굉장하구면! 저 위대한 물줄기가 가진 힘을 100% 이용한다면 에너지 위기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텐데 말야." 그러자 친구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천만에 그것보다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네. 뭔지 아는가? 바로 성령의 권능일세. 성령의 권능이 세상 사람들에게 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면, 에너지 위기는 커녕 죄의 위기도 없을 것이고 저 수력발전소보다 더 막강한 영혼의 전기가 발생되지 않겠는가?"
건강 격언
ㅇ 건강은 제일의 부다(에머어슨)
ㅇ 건강한 몸을 가지지 안호은 자는 조국에 충실하기 어렵다. 좋은 아버지,
좋은 형제 좋은 아들, 좋은 이웃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페스탈로찌)
ㅇ 병은 천가지가 있으나 건강은 한가지 뿐이다(베르네)
ㅇ 건강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하나님은 우리가 건강하기를 원하신다.
신체는 건강을 위하여 창조되었지 질병을 위해서 창조된것은 아니다.
ㅇ 정승부러워 말고 네 몸 튼튼히 하라(한국속담)
견디는 힘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 햇빛이 대지를 녹일 때면 목동들은 양들을끌고 나가 겨울 동안 길게 자란 양털을 깎는다고 합니다.
지금은 기계화되어 아주 쉽고 빠르게 깎지만 옛날에는 하나 하나 사람의 손으로 깎는 중노동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마리 한 마리 털을 깎고 있는 도중에 늦추위 몰아쳐와 눈보라가 날리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당황한 목동은 양들을 다 깎은 양, 절반 정도 깎은 양, 못 깎은 양으로 구별하여 우리에 몰아 넣은 다음 눈보라가 지나가고 다시 따뜻한 햇빛이 대지를 비칠 때 우리를 열고 양들을 끌어 낸답니다. 그럴 때 이상한 것은 다 깎은 양은 앙상한 채로 살아 있는데 오히려 절반 정도 깎다 만 양은 예외없이 감기에 걸리고 그 중 다수가 죽는 것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힘을 준다.
미국에서 냉동음식 관련사업을 하며 훌륭한 요리책과 강습회를 인도하는 엘라나라는 부인이 있다.
이 부인이 처음에는 평범한 음식점을 했었는데 어느날 부터인가 눈이 멀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있어 전혀 보지 못하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그녀는 암흑의 세계에서 홀로 남아 수 주간을 멍한 상태에서 실신한 사람처럼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이 부인은 기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몇 일간을 밥도 먹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부인은 크고 강한 손이 자기를 붙잡아 올리는 것 같은 느낌은 체험하게 되었다.
그 부인의 부정적 생이 적극적 생으로, 비관하던 자리에서 낙관의 자리로, 원망에서 감사하는 자리고 옮기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강한 신앙의 경험은 그의 슬픔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게 하였다.
고생많다, 소야 ! 힘들지?
어느 시골길에 달구지를 끌고 가는 소 한마리가 있었습니다.그런데 소를 끌고가는 농부도 등에 한 짐 짊어졌네요.달구지에 짐을 더 얹을수 있는 공간이 충분한데도... `대지'의 작가 펄벅 여사가 기차를 타고가다 이 광경을 보고 그만 가슴이 찡해지며 크게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글에 `소가 힘들까봐 짐을 나누어지고 가는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한국인' 이라고 한 것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을 갈던 농부가 잠시 새참을 먹습니다.
그사이 아주머니는 소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고생많다, 소야! 힘들제?'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 입니다. 소도 한가족이어서 함께 일하고 함께 쉬는 그런 인정많은 사람들이 한국인 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힘
어떤 시골의 한 청년이 교회에 나가서 예배 드리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거부하고 교회를 떠났다. 그가 내세우고 있는 것은 혼자서도 교회에서만 큼이나 예배를 잘 드리고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겨울 저녁, 목사가 그 고집센 청년의 집을 방문했다. 두 사람은 벽난로 앞에 앉아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나 교회 출석 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것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목사가 벽난로 옆에 있던 부젓가락을 집어들더니 불속에서 반쯤 타고 있는 석탄 덩어리 하니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난로 밖에 따로 놓았다. 그러자 그 석탄의 불은 이내 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벽난로 속에 있는 석탄 덩어리들은 여전히 붉은 빛을 내며 활활 타고 있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청년은 입을 열었다. "목사님,이번 주일부터 교회 예배에 꼭 참석하겠습니다."
근원적인 힘
세상에는 들리는 소리와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다.매스컴을 통해 들리는소리가 「인생의 전부」인 것 같고 시대의 방향인 것 같지만 사실 삶의 정황을 이끌어가는 것은 이런 표피적인 현상이 아니라 「근원적인 힘」이다.1
930년대 미국에서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사람들이 모두 어렵다고 하고 죽겠다고 할 때 루스벨트 대통령은 「들리지 않는 근원적인 소리」가 있음을 이렇게 강조했다.『불황보다 더 두려운 존재는 두려움을 갖는 생각이다.우리가 희망을 이야기한다면 불황이 두렵지
않다』
기도의 힘
영국 회중교회 목사인 조지프 파커박사(1830~1902년)는 누구보다 기도를 강조한 인물이었다.그는 기도가 역사와 공동체, 삶과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고 믿었다.그의 말.“기도를 열심히 하는지 안하는지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얼굴이 증명해 줍니다.매일매일 하나님과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에는 영혼의 아름다움이 없습니다.왜냐하면 풍기는 인상이 기도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늘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에게서는 주의 정원에 피어있는 향기로운 꽃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기적을 일으킨 말 한마디
요일 4:7-9; 행 3:6-8
에드워드 어빙이 병으로 빈사상태에 빠진 한 소년을 문병했다. 그는병실에 들어가자마자 곧 소년의 머리에 손을 얹고 "얘야,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단다."라는 한마디 말로 위로했댜.
그러고 그는 병실을 떠났는데 소년은 이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소년은 병상에서 일어나 집안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대요."라고 외치며 걸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해 주신다는 확신이 그 소년을 변화시켰고, 그 마음에 새로운 힘을 샘솟게 했다.
예상 외의 힘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빅토르 프랑클 (Frankl) 은 2차 대전 중 나치 독일의 강제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때의 체험담인 "밤과 안개"라는 책에 이런 경험을 고백하였다.
수용소의 유태인들은 병으로 죽어가고 차례차례 가스실로 보내져 학살되고 있었다.
프랑클 교수 자신도 영양실조로 몹시 쇠약해졌으며 언제 가스실로 끌려 갈지 죽음의 날만 기다리는 형편이었다.
이때 그는 체포되는 당시 뿔뿔이 헤어져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아내를 생각하였다.
자기도 고통스럽지만 여자의 몸으로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며 날마다 기도를 할 때, 이상하게도 자신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고 약한 몸을 일으켜 노동을 감수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
프랑클 교수는 이런 말을 썼다.
"누구든지 좋으니까 그대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마음 속으로 부르며, 그 사람과 함께 고통을 나누어 가지면서 살아 보라. 그대는 예상치도 않았던 힘이 어디선가 솟아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누군가를 마름으로부터 사랑하고 자기 스스로를 비울 때 놀라운 힘을 얻을 수 있다. 공간으로 서로 떨어져 있더라고 효과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內助의 힘
직장에서 해고당한 사람이 있었다.절망하며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 이야기했을 때 아내는 반색을 하며 말했다.『드디어 당신이 문학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군요.해고당한 일이 얼마나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것을 알기나 하세요』아내는 남편을 격려한 뒤 돈을 꺼내 놓았다.『이럴 줄 알고 당신봉급에서 따로 마련해둔 돈이예요.당신이 명작을 쓸 동안 이 돈으로 살아요』 나타니엘 호손의 명작 「주홍글씨」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놀라운 설교의 힘
로버트 모패트(1795∼1883년)는 남아프리카 선교의 개척자다. 그는 선교활동중 고향인 영국에 잠시 들러 후원을 호소했는데 첫번째 교회에 들어섰을 때 무표정한 서너명의 여신도밖에 없어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그래도 그는 잠언8장4절을 인용,「사명의 고귀함」에대해 설교했다.
그가 설교하는 동안 남자라고는 오르간에 바람을 집어 넣는 소년 조수 한명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놀라웠다. 아무도 안들었을 것같은 그의 설교를 이 소년이 듣고 감화를 받아 후에 위대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리빙스턴이었다.
다시스로 가지말자
여러분! 기밀문서 수송을 맡은 군용 짚차와 전령들이 목적지로 가지 않고 도중에 술집으
로 빠졌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책가방을 들고나간 학생이 학교에 가지않고 엉뚱한 곳에
가있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요나선지자를 니느웨로 보냈습니다.그러
나 그곳은 죽어도 가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는 척 하다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
습니다.
그러나 그가 평안할리가 없었습니다. 풍랑이 일어났고 결국 그는 물고기에게 먹히웠습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워도 다시스로 가지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도하시는 니느웨로 가
는 우리의 발걸음이 되도록 합시다.
대립된 현실
현대는 매스컴 시대이며 데모 시대입니다. 각자가 마음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외쳐도 한 사람의 힘 같은 것은 사회나 역사에는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도오꼬오에서 열렸던 빌리그래함 국제대회의 마지막 집회일에는 고오라꾸엔 스타디움에 4만명이 몰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로 그 날 옆의 경마장에서는 그 해 최후의 대 경마가 행해져 역시 몇 만이라는 사람이 모였었는데 나중에경찰과 소방서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마장은 쓰레기가 산더미, 고오라꾸엔 스테디움엔 먼지 하나 없었다.
두 부류의 군중이 이렇게 판이함에 놀랐다.
그릇된 군중은 확실히 무서운 파괴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군중이 모였어도 그저 모였다는 것만으로 깨끗하고, 사랑에 충만 하고,서로 용서하고, 서로 도와서 전진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깨끗한 마음이 한 데 모여야 비로소 깨끗한 힘이 되며 사랑의 마음이 모여야 비로소 사랑의 힘이 됩니다.
대통령의 힘은 어디서 오나
ㅇ미국의 링컨 대통령-11세때 어머니가 임종하면서 물려준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와 정직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ㅇ지미 카터 대통령-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면서도 성경을 바탕으로 생활하여 가장 정직한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ㅇ레이건 대통령-어머니가 물려준 성경에 손을 얹고 대통령취임 선서를 했으며 1984년을 미국성경읽는해로 선포했습니다.
ㅇ영국의 처칠수상-영국이 위기에 처해 있을때 전국민에게 호소했으며 그 자신도 하루종일 기도했던바 기적적으로 비가내려 위기를 면했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ㅇ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하나님과 성경책이 없이는 세상을 옳게 다스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대 철학자 칸트는 성경을 업수히 여김은 인류의 죄악이다 라고했고 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이라는 것을 떠나서 인류에게 주신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록펠러의 힘
세계적인 거부 록펠러는 세가지 기록을 갖고 있다.첫째는 자선의 기록이다.그는 록펠러재단을 만들어 남을 위해 사랑을 베풀었다.둘째는 인생역전의 기록이다.그는 매우 가난했다.첫 여인에게 `가능성이 없는 가난뱅이'로 몰려 버림을 당했다.그러나 그 비방을 자극제로 삼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재벌로 우뚝 섰다.셋째는 `장수의 기록'이다.록펠러는 98세까지 장수를 누렸다.눈을 감을 때까지 치아와 위장은 여전히 건강했다.
록펠러가 3대 기적을 창출해낸 원동력은 세가지였다.첫째는 감사의 마음이다.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남을 비난하지 않았다.둘째는 경건한 생활이다.그는 한번도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그리고 평생동안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했다.셋째는 성경묵상이다.아흔살이 넘어 시력이 약해지자 그는 사람을 고용해 성경을 읽게 했다.귀로 성경을 들으며 마음의 평화를 유지했다.
`선행'과 `감사'가 장수를 선물한다.`불평'과 `원망'은 뼈를 마르게 한다.
마비병
어떤 돌풍이 서남 지방을 휩쓸고 큰피해를 일으키게 한 일이 있었다.
소아마비 때문에 허리 밑으로 완전히 마비가 되어 침대에 누워 있던 한 어머니는 돌풍이 그 극치에 달했을 때 옆방에 있던 그녀의 두 아이들 때문에 정신이 번쩍나게 되었다.
그때, 그녀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마침내 그 돌풍은 그 집을 강타하고 있었다.
그녀의 하체는 마비되어서 아무 힘이 없다고 알았었지만,그러나 그 자식들의 안전에 대한 걱정은 그녀의 여러가지 신체적 제약보다 더 강한 어떤 것이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고통스럽게 옆방으로 그녀의 발길을 옮겨갓다.
양팔에 그녀의 두 아이들을 안은채로 그녀는 그 집에서 뛰쳐나올 수가 있었다.
사랑은 그녀가 결단코 다시는 움직일 수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던 소아마비보다 더욱 강한 것을 증명해주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마비가 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사지가 아니라 그들의 생각에 마비 병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라고 말함으로써 그런 제약들을 받아들이고 잇다.
그러나 그런 낮은 자기 평가는 결코 진실이 아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자신보다 더 위대하다.
마음을 지킵시다
성도는 그 별명이 낙심하지 아니하는 자이다. 낙심이란 마음에 힘이 없어서 목표를 잃어 버리는 상태이다. 신앙생활은 마음의 힘이 없으면 할수 없다. 사탄은 사람을 찾아 와서 마음의 힘을 빼앗으려고 한다.
욥과 같은 사람은 다른 힘을 다 빼앗겼다. 재물(생활의 힘) 건강(육체의 힘) 아내(가정의 힘) -자녀 (혈육의 힘) 친구(사회적 힘) 그러나 욥은 마음의 힘을 잃지 아니했다. 욥은 참담한 환경속에서도 마음의 힘을 빼앗기지 아니했다. 사탄이 욥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했음을 볼 수 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것이요 영혼을 지키는 것이요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잠 4:23)
성경에는 마음에 대한 교훈이 많다. 하나님의 버림 받음의 특징은 마음이 강팍해 지는 것으로 표현 했다. 전7:4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다고 했다. 성경에 마음이 강퍅한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저주이다.
반대로 하나님은 마음이 아름다운 자에게 은혜와 복을 주셨다. 인간의 하나님과의 접촉점은 바로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의 아름다움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마음을 귀히 여겼다.
성경에 믿음의 사람들의 유언을 보면 한결 같이 마음을 담대히 하라 고했고 신약에는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고 했고 성전의 일도 마음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로 하라고 했다. 성도는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 마음이 겸손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마음의 힘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낙심은 사탄이 주는 것이다. 바울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아니한다고 선언했다. 낙심은 결국 마귀가 주는 것이요 육체를 사랑하는 자가 얻는 것이요 하나님 나라를 포기한 자들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탄은 지금도 와서 마음의 힘을 빼앗아 간다. 밀톤은 44세에 소경이 되었다. 그래도 마음의 힘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실락원을 지었다. 링컨은 네번 실패에도 마음의 힘을 잃지 않았다. 결국 대통령이 되어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이다.
사람이 늙어 가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마음의 힘을 빼앗기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갈렙은 나이 85세에 모두 두려워 하는 아낙자손의 험한 산지를 내게 주소서 내가 앞장 서서 싸우겠다고 했다. 그는 마음힘을 죽는 날까지 가지고 산 사람이였다.
말 한마디의 「힘」
미국의 36대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은 95㎏이 넘는 몸무게로 고민했었다. 존슨은 체중감량을 위해 몇번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에게 의미있는 말 한미디를 듣고 다시 시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의 아내는 『만일 당신이 자신을 조절할 수 없다면 국가도 경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존슨은 이 말을 마음깊이 새기고 노력한 결과80㎏까지 뺄수 있었다.
하루에 의미있는 말 한마디씩만 한다면 인생은 달라질 것이다.
용띠-범띠 여아 찾기 힘들다
말띠, 용띠, 범띠 해에 여아 출산이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대한가족계획협회에 따르면 84년부터 95년까지 12년간의 출생 성비(여아 1백명당 남아수)를 조사한 결과 84년 108.2, 85년 109.4이던 출생 성비는 범띠해인 86년 111.7로 크게 높아졌다가 이듬해인 87년 108.8로 떨어졌다.
그러다가 용띠해인 88년 다시 113.3으로 높아졌다가 89년 111.8로 낮아졌으며 말띠해인 90년에는 또다시 116.6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그후에는 91년 112.5, 92년 113.7, 93년 115.5, 94년 115.3, 95년 113.4로 모두 90년보다 낮게 나타났다.
이같은 현상은 특히 대구에서 두드러져 이 지역의 86∼95년 10년간 평균 출생성비는 124.7이나 범띠해인 86년에는 126.9, 용띠해인 88년에는 134.5, 말띠해인 90년에는 129.9로 훨씬 높게 나타났다.
가족계획협회는 “이같은 현상은 이들 띠해에 태어나는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잘못된 통념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범띠해인 올해도 여아출산 기피현상이 두드러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말씀의 힘
렘 5:1; 약 5:16
가난한 사제 사보나롤라는 몹시 타락한 도시에서 유일한 정의의 예언자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만이 제단에서 힘있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변화되어 충실한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보나롤라의 설교로 인한 결과다.
그의 설교로 도시의 모든 모습이 완전히 변화되었다. 어떤 부인은 자기의 보석과 장신구를 버리고 수수한 옷차림을 하였으며, 제멋대로 굴던플로렌티누스는 종교인으로 변화되었다.
또 경건한 찬송이 로렌조의 축제날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나쁜 서적과 그림들을 버렸고, 축제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장작불을 피우기도 했다. 참으로 말씁은 힘이 있고, 이제까지 신앙인들의 진술이기도 하다.
말의 힘
어느 목사님이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성경 구절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듣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이 성경 구절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며 어째 그런 가고 되물으셨다.
"할머니 그 자리에서 잠깐 일어서 보시겠습니까?"
목사님의 말에 할머니는 일어서셨다.
"다시 앉아 보시지요."
할머니는 다시 앉으셨다.
"자, 보십시오 방금 할머니를 일으켜 세웠다가 앉으시게 한 것은 말씀의
힘이 아닙니까?"
할머니는
"참말로 그렇구나!"
하고 그 성경 구절의 숨은 뜻을 알아차리게 되셨다.
한 선생님이 수업시간이 끝나갈 무렵 앞자리에 앉은 한 아이를 내 힘으로 일으켜 세워 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온몸에 힘을 꽉 주어 웅크리고 있으니 일으켜 세워지질 않고 달랑 들려 올라왔다. 아이들은 막 웃어댔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째서 들려 올라왔을까?"
아이들은 힘이 있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팔의 알통에 힘이 들어있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힘이란 것을 실험해 보았다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나는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에는 힘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아이들은 의논이라도 한 듯이 똑같이 대답했다.
"정말 없을까요?"
"예!"
소리가 더욱 커졌다.
"틀렸습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여러분들에게 그 힘을 보여줄 수 도 있습니다. 이걸 한번 보여 줄까요 말까요?"
"보여 주세요."
"좋아요, 그럼 모두 일어나 보세요."
아이들은 빠짐없이 모두 일어섰다.
이때 였다.
"자 보세요. 아까 내 팔의 힘으로는 한 명을 일으켜 세우기도 어려웠지만
내 말의 힘으로 이렇게 쉰 명을 한꺼번에 일으켜 세웠습니다."
"와아!"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
말한마디 힘
AP통신 21일자에 따르면 최근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아들인 케네디2세가 깜짝 결혼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는데 그가 이런 결행을 하기까지는 한 광고 문안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는 것.그는 18일 포틀랜드 광고협회가 개최한 오찬장에서 『어느날 저녁 나는 내 인생의 중대사를 결정하기 위해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시작하십시오」라는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으며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라고 고백했다고.한 마디 말,작은 행동 하나가 일생의 변화에 영향을 끼칠 때가 있다.
모든일이 힘으로 될수없는법
시51:1-19 렘3:25
거북이의 목을 강제로 빼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한다.
거북이의 체중이 불과 25-40 파운드 밖에는 안 되나 150-200파운드를 가진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빼낼 수 없다는 것이다.
옛날에 이런 얘기가 있다. 태양과 바람이 지나가는 사나이의 오바를 벗기는 내기를 했다.
바람이 큰 소리고 말했다.
[ 내 입김으로 한번 큰 바람을 내면 저 사나이의 오바를 당장에 벗길 수있어]
그러나 아무리 큰 바람을 불어 대도, 사나이는 단추를 확인하고 두 손으로 움추리며 오히려 옷이 벗겨질까봐 안간힘을 쓰는 바람에 오바를 못벗겼는데, 태양이 슬슬 웃으면서 뜨거운 열을 쏟으니 사나이는 그만[이거 웬일이야! 어이구 더워...] 하면서 오바를 벗어 들었다.
거북이의 목을 빼내려면 따뜻한 화롯불 가까이에 놓아 두어야 한다. 그러면 거북이가 당장에 목을 뽑는다는 것이다.
국민을 꼼짝 못하게 하는 공포, 공안정국은 오히려 몸을 움추리게 한다.
모이기를 힘쓰라
모닥불은 흩어놓으면 꺼지고,모아놓으면 활활 불이 붙습니다. 한국인을 가리켜 [하나는
강하다.그러나 열은 약하다] 고 합니다.이것은 좋은 평판이 아닙니다. 모이면 모일수록 강
한 힘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모이기를 게을리 하는 습관을 버리고 모이기에 힘쓰는 우
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력론의 피해자의식
언젠가 택시 정류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열지어 서 있다가 차례가 되어 택시를 탔다. 한데 나보다 먼저 앞자리에 올라타는 젊은이가 있었다.
운전사는 아마 일행인줄 알았던지 이 낯선 두 사람을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앞자리 손님과 뒷자리 손님과는 시비가 붙을 수밖에 없었고 무법자인 앞자리 손님이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궁지에 빠져 더 이상 시비를 할 수 없게 되자 이 젊은이는 나는 권력도 [빽]도 없는 노동자니까 맘대로 하시구려 하며 자세를 고쳐 눌러앉는 것이었다.
웬 난데 없는 권력도 [빽]도 없는 무력자를 내세우는지 도시 알 수없었다. 불법과 무력은 통하는 것인지 또는 무력이 유력보다 강하고 또 무질서가 도덕이나 법률보다 강하다는 어떤 개연성이 있지 않고는 이 궁지에 몰린자가 무력을 방패로 삼으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한국인은 말로써 시비할 수 없는 그런 경지에서 곧잘 이 무력을 내세우며 서로가 먼저 상대방으로부터의 피해자가 되고자 한다. 예외 없이 서로 몸을 내밀며 [때려?…] [때려?…]한다. 싸움은 이겨야 하고 이기려면 선제 공격을 하도록 하는 이 행위는 바로 자신을 무력자로 만들어 육체적으로 피해를 받음으로써 주변사람으로 하여금 무력이라는 공감 측면에서 응석을 떨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이처럼 한국인은 무력이란 공감에 응석을 떠는 버릇이 보편화 되어있다.
옛날에 산송이라 하여 무덤자리를 두고 가문끼리 싸움이 잦았다. 왜냐하면 풍수를 믿었기에 무덤자리가 가문의 성쇠와 직결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가문이 번창하거나 세도가 있거나 또는 벼슬아치가 있을 경우 약자의 가문에서는 약자인 부녀자들로 하여금 그 묘자리에 가서 연좌시키는 일종의 약자대결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3.1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민족대표들의 독립선언도 이같은 무저항의 저항을 행동강령으로 삼았던 것은 지극히 한국적이랄 것이다. 33인의 민족대표들이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을 하고 종로 경찰서에 연락하여 체포해 갈 것을 통고했던 것이다.
무력에의 공감이 한국인에게는 어떤 도덕, 질서, 법률, 권력보다 우위에 있으며 이 공감을 촉발시킴으로써 한국인은 그같은 가치로부터의 소외에서 구제 받았던 것이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라도 재판관 앞에서 [조실부모하고 사고무친인데 먹을것도 없고 동생들은 배고파 울며…] 하고 무력과 약자를 강조할 때눈물을 흘리며 공감하고 또 그에 일단 공감하면 한국의 대중들은 그 흉악범죄를 잊어버리거나 용서해 준다.
한국인에게 어떤 요소가 이같이 무력에 응석을 떨고, 그것이 힘을 갖게 했을까. 여러가지 복합요소가 있다고 본다. 첫째, 한국인은 아이가 어머니에게 의존하고 응석을 부리는 그런 모성 의존적 퍼스낼리티가 강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곧 어머니에의 응석은 사리, 도리나 법률 같은 이성사회를 초월한 행위다. 서양인이 이성적이고 독립적인 부성문화라면 한국인은 정실적, 의존적인 모성문화라 그 응석이 실생활에서 무력 공감에
의 응석으로 나타난다. 둘째, 한국인은 가족 외적요소에 낯설다는 것을 들수 있다. 그러기에 어떤 가족 외적요소에 침해를 받거나 받을 우려가있으면 가족 내적 요소로 도피하여 구원을 받으려 한다. 셋째, 역사적으로 한국인은 항상 피해자로 살아온 역사시간이 그렇지 않은 역사시간보다 길다는 이유를 들 수 있다. 외침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정착된 중앙집권제의 정치가 백성으로부터 빼앗아만 갔지 돌려주는 것이 없었다는 기나긴 체험에서 약자의식, 피해자의식이 체질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 약자끼리 공감하지 않고는 살수 없는 것이다. 비록 그 피해가 피해자의 잘못 때문이라도 피해자끼리의공감은 이 역사적 상황 아래에서 생존의 조건이었기에 이같은 퍼스낼리티가 체질화된 것이 아닌가 싶다.
믿음의 힘
1985년 테네시 주메이슨마을에 사건이 생겼다. 감옥에서 탈출한 죄수가 잠시은신처를 얻으려고 디그라핀리스 씨의 집에 침입하였다. 남평 나단은 무서워서 입도 열지 못했다. 그러나 부인 루이스는 조금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가까운 손님처럼 대했다. "무거운 총을 내려 놓아요, 서있지만 말고 거기 앉아요. 내가 맛있는 요리를 해드릴테니까요." 하며 콧노래로 찬송을 부르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탈옥수는 이상해서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내가 무슨 짓도 할 수 있는데 무섭지 않소 !" 이때 루이스는 자기는 예수를 믿고 영생을 믿기 때문에 무서울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예수 믿는 기쁨과 새로운 인생의 간증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 죄수도 새로운 출발을 할 수가 있음을 분명히 말하였다. 불과 일곱시간 사이에 그러니까 새벽 세시에 침입하여 오전 열시가 되었을 때에 탈옥수는 제발로 교도소에 돌아갔던 것이다. 이 실화 속에서 콘트롤(제압)과 파우어(능력)의 비교가 드러난다.
탈옥수는 총이 있으므로 자기가 그 집을 콘트롤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루이스는 파우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 힘은 죽음을 이긴 예수로부터 받은 힘이었다. 세상의 힘이란 흔히 콘트롤을 뜻한다. 그러나 신앙의 힘은 어떤 세상의 콘트롤도 극복하는 상위의 능력이다.
믿음의 힘
알렉산더 왕에게 아주 충성스러운 의사가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의사를 시기해서 어떻게 해서든 그 의사를 곤경에 빠뜨리고자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왕이 마시는 컵에 그 의사가 독약을 넣을 것이라는 거짓 편지를 써서 왕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은 왕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 편지를 읽어주면서 자신이 의사를 믿고 있다는 표시로 컵에 들어 있는 물을 단숨에 마셨습니다.
의사에 대한 알렉산더 왕의 믿음은 순수하고 전폭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도 이러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믿음은 힘을 발휘합니다.
"주님,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순수하며 전폭적이길 소망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강하게 되는 것이다. 의심은 힘을 속박한다. 믿음은 곧 힘이다.
바람을 탈 줄 아는 독수리
사 40:31; 삼하 22:11; 슥 5:9; 행 27:40
인도 북부 지역에서 휴가를 보내던 한 관광객이 산길로 수마일 걸어가서 8천 피트 되는 산 정상에 올랐다.
남쪽의 더운 평원으로부터 세찬 바람이 불어 왓다. 그 때 발 밑으로부터 독수리 한 마리가 불어오는 바람을 향하여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독수리는 강풍을 만났을 때 바람을 피하는 대신에 날개를 펴서 고정시키고 상승기류를 이용하여 푸른 하늘에 작은 점으로 보이기까지 높이 높이날아올랐다.
인생의 폭풍이 우리에게 가까이 올 때, 우리는 폭풍을 피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날개를 고정시키고 노호하는 고난의 돌풍위로 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을 우리를 안정시켜 주시고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실 것이다.
변화시키는 힘
캐나다의 존 케디라는 선교사는 식인종이 사는 작은 섬으로 복음을 들고 나갔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고 언어를 습득하여 성경을 번역하고 교육을 시켰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기념비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1848년에 그가 이곳에 처음 상륙하였을 때에는 이곳에 그리스도인이 한명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1872년에는 여기에 식인종이 한명도 없다."
즉 그는 섬사람 모두를 그리스도인 되게 한 것이다.
복음은 이렇게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식인종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된 자를 그의 자녀로 삼으셔서 신분이 바뀌게 한다(요 1:12).
성경은 우리가 원래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어둠이었는데 생명의 빛을 받고 빛이 되었다고 말한다(엡 5:8). 투정과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찼던 사람이 감사하고 노래하며 밝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복음이요,죄의식과 좌절로 누추하게 살던 사람이 자유함고 희망으로 청결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이 복음이다.
우리 주변에는 정말 험악하고 거친 인생을 살다가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유순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바뀐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이 생명의 복음을 사랑하자
보이지 않는 힘
어떤 사람이 수영을 배우려고 갖은 애를 썼으나 잘 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수영코치를 찾아가 『나는 평생 수영을 못 배우나 보다』고 하소연 했다.
수영코치는 이 사람에게 물에 들어가 헤엄치라고 한후 그 모습을 유심히 살피더니 이렇게 소리쳤다.
『물과 싸우려 하지 말고 물이 당신을 떠받쳐 줄 것이라고 생각하 세요. 그런 다음 힘을 사용해서 헤엄쳐 보세요』
이 사람이 그렇게 하니 과연 떠서 헤엄칠 수 있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내힘」으로 해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면 신앙생활을 할 수없다.
사랑의 사명을 가진 자는 죽지 않는다
깊은 산골에서 땅을 개척하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네살된 딸과 아직 돐도 안 된 아들이 있엇다.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러 읍내에 가야 했는데, 너무 멀다 보니 하룻밤을 묶고 돌아오곤 햇다. 남편이 없는 동안에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꼬박 이틀을 지내야했지만 별로 무서워 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을 보러 나가는 남편은 밀린 일거리가 많아서 이틀 정도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남편을 보낸 아내는 장작을 마련하기 위하여 뒤뚤로 나갔다. 그리고 장작더미를 향하여 손을 내미는 순간, 그 속에 움추리고 있던 독사가 순식간에 그녀의 다리를 물어버렷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옆에 있는 도끼를 들어 독사를 내리찍었다.
그러나 이미 그녀의 몸에는 강한 독이 퍼지고 있었다. 남편이 돌아오려면 이삼일이나 있어야 했고, 그렇다고 가까운 이웃도 없엇다. 이제 꼼짝없이 죽은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은 물론이지만 어린 자식들마저도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녀는 독이 더 퍼지기 전에 아이들을 위해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햇다. 먹을 것을 준비해서 손닿는 곳에 놓고 아궁이에 장작을 모아놓고 어린 딸에게 불이 꺼지지 않게 계속 나무를 넣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는 "얘야, 이제 엄마는 곧 깊은 잠을 자게 된단다. 너는 동생을 잘 돌봐주어야 해. 우유도 먹여야 하고.. 엄마가 깨어나지 못하더라고무서워하지마.. 동생을 잘 돌보고 있으면 곧 아빠가 오실거야"라고 딸에게 일러주었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과 아궁이의 불길, 그리고 마지막가지 자녀를 위하여 애쓰는 그녀의 온 몸에서는 땀이 물흐르듯 흘렀다. 그러나 줄줄이 흘러내린 땀이 그녀의 몸 속의 독을 제거하여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될 줄은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녀는 계속 불을 지폈고, 구수한 냄새와 함께 밥이 다 되엇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그녀는 자신이 아직
살아잇다는 사실에 비로소 깜짝 놀랐다.
뜨거운 사랑의 사명이 있는 자는 결코 죽지 않는다..
사랑의 힘
미국에 유명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이라고 하는 분이 있다. 아우슈비츠에까지 가서 그는 많은 유대사람들이 학살될 때에 그 비참한 모습들을 보면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가 유대사람으로서 그 포로수용소에 있는 동안 게속 사람들은 끌려나가 죽는다. Gas chamber에 들어가서 죽고 죽고.... 이렇게 되는데 그는 또 생각한 것이 있었다. 그가 잡혀 올 대에 아내가 너무 고통을 당하는 것을보았는데 그녀는 어디로 끌려갔을까? - 그는 자가의 괴로움보다도 사랑하는 아내의 고통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디 가서 숨어 있을까? 어디 끌려가서 죽었을까?...' 그러면서 그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그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진실로 사랑하면서 그녀를 위해 기도하고 애썼다. 그러는 동안 그는 힘을 얻었다. 그 어려운 고통을 잘 견딜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심리학자로서 이런 말을 하였다. "누구든지 좋다.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그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위해서 기도하라. 그리고 그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마음을 가져라. 그리하면그대는 예상보다 훨씬 더 엄청난 힘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랑의 확증과 유혹을 이기는 힘
한 크리스챤 대학생으로부터 디스코텍 출입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어둡고 지루했던 긴 터널을 막 빠져 나왔듯이 고달프고 긴장되었던 고교시절을 마친 신입 대학생들에게는 이제까지 막혀있던 담이 뚫린것 같이 모든것이 자유로울 것이다.
한없는 가능성과 활짝 열린 기회앞에 오히려 선택의 갈등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크리스챤으로서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디스코택 출입문제도 그중의 하나이다.
그러한 곳에 가보고 싶은 유혹(誘惑)을 스스로 혹은 친구들로 부터 받게 된다. 적어도 이 문제로 갈등을 느끼는 사람은 영적으로 살아있는 증거라고 할 것이다. 갈등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신앙적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려고 애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없는 사람은 마치 죽은 물고기 같아서 물흐르는대로 떠내려 가는 것 같이 내면속에 이런 갈등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산 물고기는 물의 흐름과 싸우며 역행하려는 투쟁이 있는 것이다.
육신의 소욕, 즉 성령을 거스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쪽 선택보다 저쪽이 유혹이 더 많은 영적 우범지대(虞犯地帶)라면 우범지역 근처로 다니기를 피해야 하지 않는가 ?
크리스챤들을 하나님의 군사라고 성경은 말한다. 군인은 맹 훈련을 받아야 하고 엄격한 규율속에 통제된 생활을 한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기위해 육신의 법을 즐겨 쫓기를 원하는 나를 제어해야 하며 육이 원하는 것을 참는 고난도 감수해야 한다.
[군사로 다니는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세상과 벗되는 것은 분명히 그리스도인으로서 경건을 방해하는 요소이다. 하나님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자기를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다.
나를 끌어 내리려는 유혹을 이기는 비결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 뿐이다. 이 사랑을 경험한 자만이 이런 유혹에 자신을 함부로 맡기지 않는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열중하여 놀다가 더 좋은 것을 발견하면 지금까지의 것을 미련없이 던져버리듯이 주님 사랑안에서 삶의 진정한 행복과 사랑을 발견한 자는 세속이 주는 재미를 버릴 수 있다. 유혹에 쉽게 빠지기 쉬운 청년의 때에 주의 말씀을 등불로 삼아 우리의 발을 삼가야 할 것이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4:8)
사라의 힘
금세기 최고의 여배우가 있다. 미국의 심리학 박사요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네 번씩이나 수상한 캐더린 헵번이다. 타고난 재능과 매사에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성격 잘 조화된 때문이라고 할까.
그녀는 무슨 일을 맡아도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 실적을 올린 사람으로 유명하다. 헉교에선 박사학위를 땄고 연극 무대에서는 성공적인 연기자로 공인받을 것이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그 후 영화계에 투신한 그녀는 처음 비극의 주인공으로서 명성을 얻더니 이어서 희극배우로서도 멋지게 성공하는 역량을 과시했다.
이렇게 무대와 영화, 희극과 비극을 모조리 휩쓴 사람으로서 남달리 개성이 강한 그녀가 나이 84세에 손수 자서전 "나"라는 책을 발간한 바 있다. 자서전을 통하여 그녀의 애정생활을 한 번 간단히 흙어보자
헵번은 나이 20세에 필라델피아ㅏ의 사업가 러들로 오그던 스미스와 결혼했고 6년후엔 서로 갈라섰는데 그녀는 이 결혼생활을 한마디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루디는 나를 사랑했지만 나는 나 자신만을 사랑했다."
첫 결혼이 파경에 이른 다음 보기만해도 고집이 세고 개성적이며 오만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그녀는 자기 생긴 그대로 요란한 남성 편력을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몇가지 사례를 들면 이혼한 그 해부터 제작자 그렌드 헤이워드와 4년을 사귀었고 그 후엔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와 3년 동안 정을 나누었다.
이런 생활을 하던 햅번이 33세가 되던 1941년 "그 해의 여인"이라는 영화를 함께 출연한 스펜서 트레이시와 운명의 해후를 했고 그 이후 그녀는 27년동안 오직 그 사람만 사랑했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헵번이 트레이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한 번 들어보자.
"우리는 그가 좋아하는 것을 먹었다. 우리는 그가 좋아하는 일을 했다. 우린 그가 좋아하는 삶을 살았다. 이것이 내겐 크나큰 기쁨이었다. 그이의 관심, 그이의 요구가 언제나 우선이었다." 세상의 그 주구보다도 오만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며 고집불통이었던 개성미의 상징인 헤번도 사랑의 대상 앞에선 고양이 앞의 쥐였다는 것은 사랑만이 지닌 신비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어느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헵번이 내린 결론과 같이 사랑하는 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의 요구를 곧 나의 요구로 생각하며 그가 원하는 것을 내가 하면서 한없는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마련이다.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사랑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전 생애를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참된 신앙의 사람들은 어느 누구의 강요도 없이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데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참된 사랑을 말할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를 위한 글
얼마전 어떤 장애인 소식지에 감동적인 이야기가 실렸다. 1989년 8월 14일 가족 캠핑을 떠나던 박모세씨의 가정을 반대편에서 과속으로 달려오던 대형버스가 중앙선을 넘어와 정면출돌한 것이다. 이 사고로 4학년과 2학년된 두 딸을 잃고 아내는 전신마비라는 끔찍한 장애자가 되었다. 2년 3개월만에 집으로 돌아온 그들을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편인 박씨는 더 심하게 다친 아내를 위하여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말을 써놓았다. "많은 사람이 보기에는 아마도 완전히 파괴된 가정이요, 가장 불쌍한 부부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행복합니다." 그의 하루는 새벽 3-4시에 일어나 아내의 욕창 방지를 위한 위치 바꿈으로 시작한다고 했다. 집에서 하루 세차례 운동, 대소변 받는 일, 이틀에 한번씩 머리 감기는 일 등등... 그는 이렇게 고백을 한
다. "사랑이 없다면 곧 지쳐 버리기에 충분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3년 6개월동안 하루에도 수십번씩 아내의 귀저귀를 갈아주는 엄마와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
가슴속에서부터 뭉클한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었일까? 그것은 환경이 변해도 변함없이 지켜가는 '사랑'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정이 파산한 상황에서도 행복의 꽃을 바라보는 그 힘은 다름아닌 '사랑의 힘'이라는 것을 새삼 느껴 보았다. 이 사회, 그리고 내가정이 이런 사랑의 힘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을때 아름다워지리라는 확신이 든다.
사랑의 힘
당신이 가는 곳마다 사랑을 전파하세요. 먼저 당신 자신의 집에서 그 일을 실천하세요.
당신의 자녀를,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세요. 그리고 그 다음엔 옆집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세요…. 어떤 사람이든지 당신을 만나고 나면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지게 하세요. 신의 사랑이 당신을 통해 표현되도록 하세요. 당신의 얼굴에, 당신의 눈에, 당신의 미소 속에, 그리고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 속에 신의 사랑을 표현하세요.마더 테레사
어느 사회학과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과제물을 내었다. 그것은 볼티모어의 유명한 빈민가로 가서 그곳에 사는 청소년 2백 명의 생활 환경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조사를 마친 뒤 학생들은 그 청소년들 각자의 미래에 대한 평가서를 써냈다. 평가서의 내용은 모두 동일했다.
"이 아이에겐 전혀 미래가 없다. 아무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뒤, 또 다른 사회학과 교수가 우연히 이 연구 조사를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에게 그 2백 명의 청소년들이 25년이 지난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추적 조사하라는 과제를 내었다. 학생들의 조사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사망을 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20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180명 중에서 176명이 대단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직업도 변호사와 의사와 사업가 등 상류층이 많았다. 교수는 놀라서 그 조사를 더 진행시켰다. 다행히 그들 모두가 그 지역에 살고 있었고, 교수는 그들을 한 사람씩 만나 직접 물어볼 수 있었다.
"당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답은 모두 한결같았다.
"여선생님 한 분이 계셨지요."
그 여교사가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교수는 수소문 끝에 그 여교사를 찾아가서 물었다. 도대체 어떤 기적적인 교육 방법으로 빈민가의 청소년들을 이처럼 성공적인 인생으로 이끌었는가? 늙었지만 아직도 빛나는 눈을 간직한 그 여교사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 간단한 일이었지요. 난 그 아이들을 사랑했답니다."
사랑의 힘으로
오래전 이야기 입니다.미국 뉴오올리안주의 읍내에 자기 돈으로 고아원을 경영하고 있던 마가레트린 이름의 부인이 있었습니다.그러나 흑인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 이 지방에서는 기부금 같은 것이 잘 모이지 않아 고아원 경영이 곤란했습니다.
연말이 다가와 크리스마스가 눈앞에 닥쳐오자 마가레트 부인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어떻게 든지 따뜻한 선물로 아이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날그날 먹을 것도 없어 쫓기는형편으로는 도저히 생각할수 없는 일 이었습니다.
그래서 단단히 결심한 부인은 검은 옷을 몸에 걸치고 한참 흥청거리는 복잡한 빠로 들어 갔습니다.그리고 테이블로 돌아다니면서 부드러운 미소와 겸손한 태도로 사람들에게 얼마씩의 동정을 바라고 다녔습니다.외면하는 사람,마지못해 돈을 주는 사람,가지가지
사람중에 갑자기 주정뱅이의 탁한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시끄럽다 남이 지금 기분좋게 술을 마시는데 그런 기븐 나쁜 낯짝을 내밀지 말아라 이거라도 먹고 빨리 꺼져 버려" 하고는 거기있던 맥주 컵을 손에들어 부인의 얼굴에 내 던졌습니다.
앗!하는 순간 컵은 부인의 얼굴에 맞아 박살이 나고 부인의 뺨은 유리 조각으로 찢겨 피가 솟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난폭한 행동에 질색하여 행동을 멈추고 이 부인이 어찌 하려나 보려고 죽은듯 조용해졌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수건을 꺼내 상처를 누르면서 서서히 깨어져 흩어진 유리조각을 하나하나 주워서 손에 들고는 "고맙습니다. 이 컵은 나에게 대한 선물로 받아 가겠습니다.
자 그런데 가엾은 고아들에게는 무슨 선물을 주시겠습니까?"
순간 사람들의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앞을 다투어 성금을 내 놓았습니다.그 술 주정뱅이는 떠들석한 동안에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테이블 위엔 그의 물건인듯한 두터운 지갑이 남겨져 있었으며 그 곁에 연필로 "불쌍한 고아들에게"라고
쓰여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힘
극한 상황 속에서의 사람에게 삶에의 용기를 부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2차 대전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힌 유태인들은 매일같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해야 했다. 자기도 언제 죽을 줄 몰랐다. 그런 절망적인 생활을 심리학자 프랑켈은 용케 이겨냈다. {나는 죽음보다도더한 고통 속에서 시달리고 있을 나의 아내를 생각했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사람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사랑인가 보다는 것이 그의 풀이였다. 그는 어떻게든 살아나서 다시 사랑하는 아내를 볼 수있게 되기를 바랐다. 아내도 똑같이 겪고 있을 고통에 내가 굴복할 수는 없다는 의지가 그를 살려낸 것이기도 했다.
최명석군이 살아나왔을때 모두들 [X세대의 낙천주의]에 감탄했다.사실은 자기를 그토록이나 사랑하던 부모를 슬프게 만들어서는 안되겠다는 사랑의 힘 탓이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뜨거운 사랑의 유대가 삶의 지렛대역할을 했다고 봐야 하겠다.
유지환양에게 힘이 된 것도 부모의 사랑의 매질이었다. 그리고 또 언제나 희망을 잃지 말라는 어머니의 교훈이었다. 진학까지 포기하고 집안일을 돌봐야 했던 딸을 측은해했던 어머니와 딸사이에 오가는 정은 여간 애틋하지 않았을 게다.
3백77시간 동안 사경을 헤멘 박승현양도 {내가 죽으면 특히 엄마와 할머니가 얼마나 슬퍼하실까} 하며 힘을 냈다고 한다. 사람은 [나 때문에 상대방이 아파할까 보아서라도] 살아야 한다는 뜻이겠다. 이들을 살린 것은 단순한 X세대적 낙천주의만은 결코 아니었다.
생각의 힘
한 청년이 알프스 산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준비해간 물이 떨어져 심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는 알프스 계곡 사이에 있는 맑고 깨끗한 호수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청년은 단숨에 물을 꿀꺽꿀꺽 마셨습니다. 몹시 시원한 물이었습니다.
물을 실컷 마시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그는 "포이즌(poison)"이라고 쓴 경고판을 보았습니다. 이 물 속에 독이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 청년의 몸에서는 열이 나기 시작했고, 그는 심한 구토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온 몸이 떨 리고 얼굴은 창백해졌습니다. 그는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계시판을 잘못 보았군요 그것은 '포이즌(poison)'이라고 쓴 것이 아니고 '포이존(poissun): 낚시금지)'이라 고 쓴 것입니다.
이 청년은 '포이존'을 '포이즌'으로 잘못보고 야단법석을 떤 것입니다.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청년은 열이 내리고 구토도 멈추고,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것이 생각의 힘입니다.
생명은 힘이다
시 16:11; 욘 4:3; 애 1:11
오늘 조선의 병은 제도나 조직의 불완전에 연유한 것이 아닙니다. 이 병의 운인은 우리가 생명을 잃어버린 데에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생명을 잃어버린 제도와 조직과 형식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완전으로 생긴 병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그 병이우리의 생명을 해하
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앗아가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현황을 둘러 보십시요. 어디에 생명의 요동이 있습니까? 상하를 불문하고 발버둥치거나 뿌리치지 못하고 절망의 마수가 잡아당기는 그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같이 애처롭게 끌려가지 않습니까? 생명이 있는 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보십시요. 공중을
나는 작은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아갑니다. 물속의작은 물고기는 폭포를 타고 올라갑니다. 보리싹은 추운 겨울 얼어붙은 땅을 뚫고 솟아오르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생명은 힘입니다. 역경을 정복하는 힘입니다. 환경을 정복하는 생명의힘을 계산하지 않고는 인류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선을 행할 힘
한 청년이 급히 교회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에서 한 노인이 자전거의 체인이 풀려 끼우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간단한 일이지만 처음 해보는 노인에게는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청년은 자기가 도와 줄까도 생각했지만 오늘은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는 날이고 자기가 오늘 맡은 순서가 생각이 나서 그냥 못본 척하며 지나갔습니다.
교회에 도착하니 부흥회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초청된 목사님이 아직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약속된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목사님이 나타났습니다.
청년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목사님은 자전거를 고치고 있던 바로 그 노인이었습니다.
또 선한 일을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아낌없이 베풀고, 즐겨 나누어 주라고 하십시오.
(디모데전서 6:18)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재주가 하나 씩은 있습니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만, 친구는 운동을 잘 할 수도 있고, 내가 힘이 세면, 다른 친구는 지혜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왜 일까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서로 돕고 살라고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힘있는 자가 약한 자를, 지혜있는 자가 미련한 자를 서로 서로 도와 가면서 그렇게 말입니다.
그 청년이 목사님을 도와 체인을 갈아 주었다면 부흥회가 좀 더 일찍 시작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게 선을 행할 힘이 있을때 주저하지 말고 행하십시요.
우리에게 그러한 힘이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의 힘
다음은 카톨릭 추기경, [와이즈맨]의 실토중의 한 토막이다.
"케톨릭 신자가 개신교로 개종하는 모든 경우는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이
유 때문이다.
성경을 읽는 그들은 사제를 찾아가, 카톨릭 교리들이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고 불평을 한다.
사제(신부)는 장시간 그들과 논쟁을 하면서 그들을 방황케하는 이 책(성경)을
덮어버리도록 온갖 노력을 다하여 설득을 하나, 그들은 끝내 말을 듣지 않고
맘껏 성경을 읽고는 프로테스탄트 신자가 되어 버린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피퍼라고 하는 사람은 구원의 범주에 속한 종교로서 대표적인 두 가지를 공산주의와 기독교를 들었다.
공산주의는 종교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이상이지만 어떤 면에서 볼때 주체사상,막스와 레님의 교조적 사상은 그 신봉자들에게는 하나의 절대적인 신앙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종교의 범주에 넣어도 과히 무리가 없을지경이다.
공산주의는 현재 삶의 여건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앞고 능히 개선할 수 있고 변혁시켜 나갈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도 역시 현실의 여러 어려운 조건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것을 변혁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기독교 집회에 참석하는 것도 "어떻게하면 현제보다 좀더 나은 생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나의 불리한 조건들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수 있겠는가?"
하는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또 성경의 결론 자체가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21:5)
하는 변혁의 약속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변혁을 상당히 강조하는 종교인 것이다.
인생 자체도 예수안에서 완전히 변화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것이 바로 거듭남이다.
공산주의와 기독교의 유사점은 바로 현실 부정과 인간 사회의 현실을 개혁할 수 있디고 보는 것이다. 즉 인간이 소외 상태에 있다고 하는 데에는 기독교나 공산주의가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소외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인간 회복을 시도해야 한다는 데에서는 동의하면서도 인간 소외의 원인 규명에서는 양자가 서로 그 의견을 달리한다.
인간 소외의 원인을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에 두고 나름대로의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공산주의와는 달리 기독교에선 인간 소외의 원인을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된 데 있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불안과 인격 분열과 고통을 경험하며 증오심에 사로 잡히게 되고 원치 않는 악을 자꾸 행하며 사회적으로는 구조적인 악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내리신 해산의 고통이 개인의 영역에 속한 심리적이 문제로,아담에게 노동을 하고 땀을 흘려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신 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소외의 문제에 대해 공산주의와 기독교 모두 매우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절대적인 변화를 주장하지만 그 실현 방법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계급 투쟁을 통해서 제도작으로 혁명을 일으켜서 해결하려는 것이 공산주의의 방식이다. 공산주의는 세상을 변혁시켜 나가는 동기 부여와 진행 과정에서 언제나 그 주체가 인간이 된다.
인간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서 혁명이라는 방법을 통해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옛 사람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되는 것을 통한 문제 해결을 주장한다.
인간과 사회를 새롭게 하고자하는 이 동기는 인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하니님으로부터 오며 변혁의 진행 과정에서도 하나님이 주체가 되시고 인간은 그분의 동역자로 참여한다
는 생각이 바로 공산주의와 다른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적 유물사관에 근거하여 필연적으로 자율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회 혁명을 이야기하며 기독교는 죄인 스스로 죄에서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는 타율적인 인간 변혁을 이야기 한다.
신약 성경을 보면 변혁의 동기를 가지 주체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이 나타나 있다. 탕자 비유에서 아버지를 쩌나 돼지를 치며 고생하던 둘째 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로하여금 집으로 돌아 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 아버지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가 집을 떠나갈 때 그의 등 뒤에서 아버지는 돌아올 것을 기다린다는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아들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대문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탕자는 다시 돌아완고 아버지는 자신을 받아 주실 것이라는 잠재 의식을 안고 떠나갔던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을 다시는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고 탕자가 집을 나섰다면 어찌 그가 다시 아버지를 향하여 갈 수가 있었겠는가?
그가 돌아갈 수 있었던 힘을 제공한 주체는 자신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였다. 인간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인 것이다. 공산주의가 그래서 실패한 것이다.
소리의 힘
한 심리학자가 "음악이 야만인 구매자들을 매혹시켰다"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냈다.
백화점에서 물건사는 사람과 음악과의 관계를 실험한 이 연구보고서 에 따르면 같은 음악을 108의 속도로 흘려 보냈을 때에는 12,112불 어치의 물건이 팔렸고, 속도를 60으로 늦추었을 때는 16,740불의 물 건이 팔렸다고 한다.
이들이 점포 밖으로 나갔을 때, "점포 안에서 음악을 들었느냐?"
고 물었더니 28%는 "음악은 전혀 없었다"고 대답하고, 33%는 "확실치 않다"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 61%가 음악을 듣지못한 것이다.
즉 그들의 마음은 물건에만 집착되어 있었고 음악이 그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발걸음을 빠르고 느르게 하는 것 뿐이었다는 것이다.
숨겨진 힘
테이블 위에 곤충의 고치가 있었습니다. 그 고치에서 여러 나비들이 나오게 되었 습니다. 나올 때는 심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그 좁은 구멍으로 나비들이 나오는데 구멍이 너무 작아 비벼대면서, 비틀며, 푸드덕거리고, 경련을 일으키면서 필사적 으로 몸부림치면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구멍이 너무 작아 고치 하나를 가위로 잘라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놈이 나와서 날개를 푸드덕거리는 모습이 제일 곱게 보였습니다. 다른 놈들도 나오긴 나왔는데 푸드덕거리고 비틀비틀 거렸습니다. 한참 있으니까 그 많던 나비가 훨훨 공중으로 다 날아갔지만 가위로 잘라 주었던 이 나비만 병신처럼 날개를 푸드덕거리다가 일생 날지 못하는 기형아가 되어 버렸 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나비들은 밖으로 나오면서 힘을 쓰고 몸부림치는 가운데 많은 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슈퍼맨
스트롱맨 이라고 제목이 붙여진 그림이 있었다. 한 사나이가 아파트 난간 위로 피아노를 들어 올리고 있는 그림이었다. 여러분 한 사람이 피아노를 머리위로 들어 올린다는 것을 상상해 본적 있습니까? 없을 것입니다.왜냐하면 우리는 피아노 무게를 짐작하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이유를 알수 있습니다. 피아노는 가느다란, 그러나 강력한 두개의 선에 매여 있었고 선의 끝은 옥상위의 크레인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나이가 피아노를 들어 올린 비결은 위에서 매여져 있는 끈과 크레인 이었다. 그는 슈퍼맨이 아니었습니다.
스승의 힘
유년에 형성된 인격 평생지속 선생님만이 가진 교육의 위력
흔히들 아이들의 도덕적 기틀은 아버지가 기르고 인간적 품성은 어머니가 기른다고 한다. 곧 자잘못을 자르고 맺는 부성원리와 자잘못을 초월해서 감싸고 보는 모성원리(모성원리)가 아이들의 인간이나 인격형성의 기틀이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지 이 두 원리가 이상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게 마련이다. 전통사회에서는 부모가 무지해서 방임할 수밖에 없었고 근대사회에서는 너무 바빠서 방임돼 왔으며 현대사회에서는 과보호나 수험지상주의 때문에 이 두 원리가 좌절되는 것이 상식이다. 이 인간 인형성의 임무가 맡겨진 것이 바로 선생님이다. 따라서 선생에게 아이들이 맡겨진다는 것은 마치 점토(점토)공작을 위해 그 소재가 맡겨진 것과 같은 것이다. 그 무형의 원료를 어떻게 주물고 매만져 조형을 하는가가 선생에게 맡겨진 셈이다.
뇌세포의 전두엽(전두엽)이 형성되거나 굳어지기 전에 입력되고 잡혀진 기틀은 그 자잘못을 초월해서 죽을때까지 영속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나는 어릴적 서당에 다니면서 잡혀진 심정의 기틀 하나를 절감하고 살아왔다. 천자문 57행이 화인악적(화인악적)이고 58행이 복연선경(복연선경)이다. 화-곧 불행은 악업-곧 나쁜 짓을 자주하므로써 일어나고 복-곧 좋은 일은 선행-곧 좋은 짓을 자주하므로써 얻어진다는 뜻이다.
그때 서당 선생이 해준 이야기가 평생 잊혀지지않고 있다. 중국의 옛 임금이 임금으로써 도를 저버리고 사치를 쫓으며 나쁜 짓을 골라했다. 요리인이 곰발바닥을 굽는데 먹고싶은 것을 못 참아 빨리 굽지못한다고 그 자리에서 죽였으니 나쁜 짓이요 조상을 모시는 제사날에 궁녀들을 벌거벗겨 춤을 추게했으니 나쁜 짓이다.
이 임금은 그 인연으로 신하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훈장의 설명이었다. 이어 옛날 삼국지의 오나라 임금의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이를 심어 익었는데 지나가던 세 사람이 살만한 돈이 없는데 하나 줄 수없소했다. 이에 원두막에 정중히 불러앉혀 오이를 따받치고 식사까지 대접했다. 이 세사람이 떠나면서 답례로 묘자리를 잡아주고 세마리 학이 되어 날아갔다. 그 묘자리에 부모를 장사지낸 것이 발복하여 그의 아들이 오나라를 세운 손견(손견)이요 손자가 손권(손권)으로 대대로 임금이 됐다는 것이다.
스트롱 맨
스트롱 맨(Strong Man)이라고 제목이 붙혀진 그림이 있었습니다.
한 사나이가 아파트 이층 난간 위로 피아노를 들어 올리고 있는 그림입니다. 물론 당신도 어떤 한 사람이 피아노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는 것은 상상해 본적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아노의 무게를 짐작하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볼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피아노는 가느다란, 그러나 강력한 두선에 매여 있었고 선의 끝은 옥상 위의 크레인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나이가 피아노를 들어 올린 비결은 위에 매여져 있는 끈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슈퍼맨이 아니었읍니다.
오늘날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씨름왕 이만기 같은 사람일까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세개씩 따낸 어느 삼관왕 일까요? 혹은 당신 있음직한 "세상에서 믿을 것은 자기자신 밖에 없다" 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일등을 도맡아 놓고 하는 어떤 친구 같은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오늘 이 땅위에서의 진정한 강자는 하나님이 편이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명장 다윗왕 같은 이도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 내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오늘 우리의 싸움은 주먹과 권세의 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하나님 편에 가까이 서서 하나님을 의지하느냐의 싸움입니다.
어때요. 당신은 스트롱 맨 입니까...........
시련을 이긴 신앙의 힘
찬송가 364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은 크리스천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이 찬송가의 작시자 사라 애덤스는 시련을 신앙으로 극복한 훌륭한 시인이었다.그녀는 남편을 잃고 많은 어려움을 당했으나 「주를 가까이」하려는 믿음으로 늘 살았다.
그녀는 어느날 교회의 목회자로부터 『광야에 홀로 있었으나 희망과 믿음을 가진 야곱에 대해 설교하려고 하는데 그 야곱의 심정을 시로표현 해 줄 수 있겠느냐』는 권유를 받고 자신의 시련과 믿음을 생각하며 시를 썼고, 이것이 오늘날 널리 애송하는 찬송가가 된 것이다.
신비한 힘
인체의 심장은 평균 1분에 75회,1년에 4천만번 박동한다.사람이 70년을 산다고 할 때 25억회 박동하며 박동할 때마다 1백g이 넘는 혈액을 방출한다.
이 양은 하루에 3천갤런,1년에 65만갤런에 달하는데 이는 8천갤런짜리 탱크차를 81대 채울 만한 양이다.또한 심장이 한시간 동안 내는 힘은 75㎏의 사람을 3층짜리 건물 꼭대기로 올리는 힘? 같다.「70년의 힘」은 바다의 군함을 육지로 끌어올리는 힘? 같을 만큼 강력한 것이다.이 심장을 주관하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쓰여진 말의 힘
롬 16:25; 딤전 2:7; 사 60:6
웬델 필립스는 훌륭하고 품위있는 웅변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말할 때의 모습은 조용조용했고 몸짓은 거의 취하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군중들을 감동시킬 만한 힘을 갖고 잇는 인물이엇다.
그가 보스턴에서 연설했을 때의 일이다. 그의 연설을 들으러 온 군중들은 그에게 모두들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연설할 때 그들은 야유를 보내고 노래를 부르며 아예 웬델의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방해를 하였다. 그러나 웬델은 이러한 그들의 췌방에 대하여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잠시 후 그는 강단 가까이 자리를 잡고 있던 기자들에게 아주 낮은 목 소리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러자 군중들은 그의 태도를 주시하고 흥분했다. 군중들은 과연 그가 기자들에게 무슨 말을 할것인가 주시하며 귀를 기울였다. 그 때 웬델이 군중들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신사 숙쒼여러분, 계속 말씀하십시오. 괜찮습니다. 저의 연설은 여러분의 귀가 필요치 않습니다. 자, 그러니 여러분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십시오. 나는 다만 3,000만 명에 달하는 독자들에게 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그의 말에 장내는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들은 쓰여진 말의 힘을 알기 때문이었다.
능력에 대한 소망의 힘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사25:8)
여러분은 미국의 '능력의 시간' 프로듀서의 딸 타라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타라는 뇌를 다쳐 귀머거리.벙어리 그리고 맹인이 되었다.그녀는 평생 식물 인간으로 보낼 것 같았으나, 사고를 당한 지 6년이 되는 오늘날 그녀가 보고, 듣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30초 동안 자기 힘으로 기억했습니다."
타라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녀가 그렇게 된 것은 미래에 대한 그녀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힘
얼마 전에 상영되었던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는 존 내시라는 천재 수학자의 일생을 담은 전기영화다.존은 21세 때 쓴 논문으로 40여년 후에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천재였지만 그의 성격은 오만하고 괴팍했으며 비사교적이었기에 변변한 친구하나 없었다.원작 표현을 따르면 “숫자를 다루는 일에는 신이 부럽지 않을 만큼 능란했으나 인간관계 함수를 파악하는 데는 갓난아기처럼 서툴렀던 사나이”였다.
그러한 그에게 냉전시대의 시대적 상황은 소련의 비밀정보를 해독하는 임무를 맡기게 되고 그 일로 인해 존은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혀 산다.결국 존은 정신분열증 환자가 되고 30여년 간 그의 삶은 황폐한 사막이 되었다.
그런 그가 병을 극복하고 마침내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순전히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의 힘이었다.한 사람을 그렇게 철저하게 사랑하고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는 엘리사의 사랑이야말로 정말 탁월한 재능이었다.사랑은 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다.그러기에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요한일서 4:7)
고난을 극복하는 힘을 준다
미국에서 냉동음식 관련사업을 하며 훌륭한 요리책과 강습회를 인도하는 엘라나라는 부인이 있다. 이 부인이 처음에는 평범한 음식점을 했었는데 어느날 부터인가 눈이 멀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있어 전혀 보지 못하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그녀는 암흑의 세계에서 홀로 남아 수 주간을 멍한 상태에서 실신한 사람처럼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이 부인은 기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몇 일간을 밥도 먹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부인은 크고 강한 손이 자기를 붙잡아 올리는 것 같은 느낌은 체험하게 되었다. 그 부인의 부정적 생이 적극적 생으로, 비관하던 자리에서 낙관의 자리로, 원망에서 감사하는 자리고 옮기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강한 신앙의 경험은 그의 슬픔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게 하였다
고난이 힘이다.
빌리 그래함은 인격의 사람이다. 그는 스캔들이 없는 사람이다. 남들에게 쉽게 비난받는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그만 재정적 스캔들, 성적 스캔들도 없었다. 왜? 그의 사역은 진실하였고, 투명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능으로 잠시 빛을 발할 수는 있다. 그런데 영원히 남는 것은 인격이다. 빌리 그래함은 실로 오랜 기간 동안 불타고 있는 인격의 사람이었다. 영적 지도자가 제일 하기 힘든 말은 "잘못했다."라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빌리 그래함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할 줄 아는 넓은 인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50년대 매카시 열풍의 핵심인물이었다. 공산주의 비슷한 모습만 보여도 공격하는 '빨갱이 사냥꾼'(red hunter)이었다. 지난 99년 8월 9일에는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란타 시에서 인상적인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에게 '자유의 대통령 메달'이 수여 되었던 것이다. 이 상은 미국의 퇴임 대통령들이 그렇게도 받기를 소망하는 귀중한 상이라고 한다. 왜? '자유의 대통령 메달은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라도 모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후세에 길이 기념할 수 있는 탁월한 영향력을 준 대통령에게만 주는 상이기 때문이다. 이 자부심 넘치는 상을 최악의 현직 대통령이란 칭호를 들었던 지미 카터가 받았던 것이다. 그는 '최악의 현직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최고의 퇴임 대통령'으로서 만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단풍은 떨어질 때 가장 큰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지미 카터는 단풍과 같이 그의 노년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어려울 때 힘 되신 하나님
세계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원래 첼로 연주자로서 심한 근시로 인해 제대로 악보를 볼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그가 속해 있던 악단의 지휘자가 병원에 갑자기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단원들 중 누군가에게 지휘를 부탁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악보를 몽땅 외우고 있던 토스카니니가 선발되어 지휘자를 대신해 지휘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서 세계적인 지휘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토스카니니가 그토록 시력이 나쁘지 않았다면 그는 평범한 첼로 연주자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시력이 나빠서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악보를 외워야 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세계적인 지휘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괴롭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고통은 더 큰 능력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합니다. 토스카니니는 회고록에서 "어려울 때 힘 되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좋은 환경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아담은 에덴동산과 같은 좋은 환경에서도 타락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눈물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눈물이 있는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더 똑똑히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힘이 되어주십니다.
기도: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때로 지치고 낙심할 때도 있었지만 주님은 그때마다 나를 세우시고 새롭게 일어나 나아가도록 격려하셨습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믿음의 승리를 계속 체험하게 하소서.
단합은 위기를 극복하는 힘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20-22)
바다거북은 일생의 대부분을 물 속에서 보낸다. 그러나 그가 산란할 ㅣ기가 되면 그는 모래사장으로 올라와 알을 낳는다. 보통 하 번에 500개 이상의 알을 낳는데 그 알들은 모두가 모래 속에 묻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나오는 장면을 매우 감동적이다. 그 새끼들은 철저한 협력과 역할 분담을통해 모래를 뚫고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맨 위쪽 새끼들은 부지런히 머리이의 모래를 걷어낸다.
그러면 옆의 새끼들은 끊임없이 그의 발과 머리를 이용하여 벽을 허문다. 그러면 맨 아래 있는 새끼거북은 무너진 모래를 밟아 바닥을 다져가면서 그들 모두가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거북 알 하나를 모래에 묻어놓으면 밖으로 나올 확률이 고작 25%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러 개를 함께 묻어 놓으면 거의 모든 새끼가 모래 밖으로 나온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호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사랑의 힘
어느 날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한 걸인이 톨스토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손을 내밀었다.그
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다.그러나 주머니에는 단 한푼의 동전도 없었다.톨스토이는 걸인의 손을 꼬옥 쥐며 속삭였다.
“형제여,미안하오.지금 내가 가진 돈이 한푼도 없구려.정말 미안하오”
그때 걸인은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톨스토이의 손을 잡았다.걸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저는 선셍님께 돈보다 훨씬 소중한 것을 받았어요.선생님은 저를 ‘형제’라고 불러주었습니다.그리고 선생님의 손에서 따뜻한 사랑을 느낍니다.이것은 돈과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의 출발은 관심이다.사랑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것이다.사랑은 노여움과 불만을 녹이는 강력한 힘이 있다.
피보다 진한 사랑의 힘
성 구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국내 가정에 입양되는 어린이는 한 해 1,600여 명 우리나라에도 점차 입양을 원하는 가정이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이는 여전히 아이들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한해에 버려지는 어린이 8,000여 명 가운데 절반 정도는 가정과 가족의 사랑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심한 장애를 가진 아이의 경우 버림을 당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최근 심한 장애를 가진 아이를 입양해서 피보다 진한 사랑을 쏟는 양부모가 있어 우리의 각박한 사회를 따뜻하게 해줍니다. 친부모로부터 도 버림을 받은 아이를 피 한 방을 섞이지 않은 양부모가 사랑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피보다 진한 사랑의 힘
성 구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국내 가정에 입양되는 어린이는 한 해 1,600여 명 우리나라에도 점차 입양을 원하는 가정이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이는 여전히 아이들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한해에 버려지는 어린이 8,000여 명 가운데 절반 정도는 가정과 가족의 사랑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심한 장애를 가진 아이의 경우 버림을 당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최근 심한 장애를 가진 아이를 입양해서 피보다 진한 사랑을 쏟는 양부모가 있어 우리의 각박한 사회를 따뜻하게 해줍니다. 친부모로부터 도 버림을 받은 아이를 피 한 방을 섞이지 않은 양부모가 사랑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힘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힘이 없는 이유는 어느정도는 스스로 해보려고 하면서 또 하나님의 도우심도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우리 자신은 철저하게 무능하게 되어 하나님으로 역사하시게 해야만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일꾼이 되려면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살펴 봅시다. 모세,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급으로 인도하여 나올 때 어떻게 하였으며, 여호수아가 그들을 가나안으로
들일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종들은 불가능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전능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시지만 우리는 스스로 노력하고 하나님을 `조금 도와 주시는 분`으로만 여길 뿐 하나님께 ` 저는 전혀 불가능하오니 하나님께서 마땅히 하시옵소서 ` 라는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다.
베드로에 대하여 배운것 곧 그의 자신만만함, 자기의 힘, 자기의 의지 그리고 종래에는 주님을 부인한 사실을 기억하십시요.
그러므로 `오 ! 내속에 자아가 있고 육신이 아직도 나르 지배하고 있구나 !` 함을 깨닫고 그러한 깨달음 가운데서만 구함받을 길이 있음을 믿으십시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능히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셔서 그의 성령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실 수 있음을 믿으십니까? 이러한 깨달음을 가지고 회개의 눈물과 깊은 겸비함과 두려움으로 이렇게 외치지 않으시렵니까?
` 오 하나님, 저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찬송 드리옵기는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으십니다..`
여기에 구원받을 길이 있음을 확신하십니까?
지금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손에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십시오. 그의 사랑이 무한하시듯이 그의 능력도 무한하셔서 새롭게 이루실 것입니다
사랑의 힘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팀이 얼마 전 "사랑은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시킨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교수팀은 먼저 학생들에게 인자한 얼굴을 한 성직자가 난민병원에서 사랑으로 환자들을 돌보는 기록영화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서 IG-A (감기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저항력)를 검사한 다음 1주일 후 이번에는 나치가 유태인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기록영화를 보여주고 IG-A를 검사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학생들이 사랑을 느꼈을 때 IG-A 수치가 더 높아졌다는 것을 알아냈다.
기도의 힘
새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날 수 있고, 배는 돛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항해하고, 기차는 화통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질주하고, 비행기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날아간다.
어떤 사람이 시계에 달린 큰 추를 보고는 시계가 힘들어 하니 추를 떼어 두자고 했다. 그러나 그 추를 떼는 순간, 시계바늘은 서고 말았다.
바로 이것이다. 성도들은 피곤하고 힘들어도 매일 기도해야 산다. 성도는 기도의 힘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힘과 사랑의 차이
나폴레옹이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외로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독백하기를 "알렉산더, 시이저, 샤를레망 그리고 나는 왕국을 건설했다. 우리는 힘위에 왕국을 건설했었으나 그 말로는 비참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아무런 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사랑의 터위에 그의 나라를 세웠다. 오늘날 그의 나라는 왕성하여 모든 인류가 그를 경배하며 수천의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죽으려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만족을 줄 수 있다......."
사랑은 용암과 같다. 처음에는 물과 같이 유연하게 흐르나 세월이 흐를수록 단단한 바위와 같이 딱딱해진다. 이 사랑위에 세운 왕국은 세월이 흐를수록 왕성할 수밖에 없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행하는 자는 주와 더불어 영원하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라
요셉 게이보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종교를 멸시하는 공산 체제 속에서 신앙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학교에서 공산주의 사상을 가르치는 선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예수님을 믿는 분이었습니다. 요셉은 주일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어머니와 함께 기차로 세 시간 거리에 있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요셉의 신앙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기차로 세 시간 거리에 있는 교회에 다니면서 굳게 다져지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성실하게 교회 예배에 출석하고 계십니까 ? 혹, 형편이 좋지 않으면 교회에 안 가는 쪽을 택하시지는 않는지요 ? 믿는 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친교를 나누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귀하고 복된 일입니다.
"주님, 저희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기에 힘쓰게 하시고, 그로 인해 저희 안에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이 확연히 있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성전인 당신은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어느 정도로 귀하게 여기고 계십니까 ?
그리스도인들의 집은 교회이고, 일터는 세상이다.
진짜 힘든 일
크리스마스 계절이 되면 미국 워싱톤 D.C.에 있는 중앙우체국에서 산타크로스에게 보내는 편지가 전국에 있는 어린이들에게서부터 수천 수만 통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대개가 “금년 크리스마스 때 좋은 선물을 많이 보내 주세요”하는 어린이들의 소원이 담긴 내용의 편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체국에서는 이 전달할 수 없는 편지를 받아가지고 어린이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 전 미국에 있는 교회와 유지들에게 전부 그 편지를 보내서 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보내도록 도움을 청한다고 합니다. 이 편지를 받은 미국의 교회와 교인들 그리고 유지들은 비록 알지는 못하는 아이들 이지마는 산타크로스에게 선물을 보내달라고
보낸 편지를 받고 정성껏 선물을 준비해서 그 어린애들 주소로 크리스마스 때 받을 수 있게 보내 준다고 합니다(미국이니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 우체국 당국자들이 하는 말은, 분명히 교회나 교인들 그리고 유지들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보내 준 것은 틀림없는데 몇 달이 지나도 “선물을 주셔서 고맙습니다”하는 감사의 편지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선물을 보내 주세요”하는 편지는 수천 수만 통 오는데, “선
베풀 힘을 주소서
본문:잠언 3;27∼35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잠 3:27)
9월엔 우리의 전통 명절인 추석이 있어서 수확의 계절이며 나눔의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지나간 태풍 ‘루사’ 때문에 추수의 기쁨과 나눔의 즐거움이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피해 지역 강릉에서 어떤 분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전쟁 때도 이렇지 않았는데…전쟁보다 더 심해요” 나누어 베푸는 일이 절실한 때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갔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그래,그러면 네 재물 문제에 대해서 들어보자꾸나” 이 사람이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었던 부동산이 시가로 200억원은 될 겁니다. 유가증권과 현찰을 모두 합하면…” 하나님이 말을 막으셨습니다. “얘야,나는 네가 모은 재산이 얼마인지에는 관심이 없단다. 네가 재테크를 얼마나 잘했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간단하게 한 가지만 말하면 된다. 네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쓴 것이 얼마나 되느냐?”
천국에서 재산을 계산하는 방식은 이와 같습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쓴 것만이 ‘내 돈’입니다. 내가 쓴 돈 중에서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눈 것이 참된 의미에서 내 재물입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말씀을 보세요.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누가 마땅히 받을 사람인가요? 어려운 사람들이지요. 생존이 위협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힘으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누가 베풀 수 있습니까? 자기 손으로 선을 ‘베풀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선을 베풀 힘이 있다는 말은 얼른 생각하면 가진 것이 많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만 그것이 제일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도 베풀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요. ‘베풀 힘’이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자기 재물을 나누어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베풀 힘에 담긴 또 다른 의미는 은혜의 감격을 가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에 감격하고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습니다. 수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물질로 돕고 계속해서 중보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기도: 수해를 당한 사람들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성경: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
지난 10년간 미국 교회에서는 12개의 큰 교회 중 8개가 한국 교회였고, 1991년도에 와서는 20여개의 큰 교회는 모두가 한국 교회 였습니다. 같은 성경책, 같은 돈, 같은 목적인데, 한국 교회는 성장하고, 미국 교회는 황폐되었습니다.
1980년 미국 목사의 기도 시간은 하루에 8분 이었고, 한국은 30분 이었습니다. 다른점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목회로 교회를 일으키려고 하기 전에 정말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밤이 새도록 기도했고, 사도행전 1장 14절에 '더불어 몸과 마음과 뜻을 합쳐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의 백성이 더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기도로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치료하는 힘이 있는 포옹
누군가를 꼬옥 껴안아 봅시다.
상대가 당신의 사랑하는 이성일 수도 있고 형제나 자매, 아이들, 조카들, 혹은 당신의 애완용 강아지일 수도 있습니다.
포옹에는 치료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선 온도가 적당하고 편안한 곳을 찾아 보십시오
여름 같으면 집밖에 있다면 라운지의 의자 위에 앉는 것이 시원한 공기를 느낄수 있어 더 만족스러울 것입니다.
의자 위에서 서로를 껴안고 누워 계십시오.
성적인 자극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기 위한 것입니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어도 괜찮지만 이럴 때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욱 좋을 것입니다.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잠
5:19)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레오날드 번스타인의 지휘하는 모습이 텔레비젼을 통해 방송되었습니다.
이윽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되자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수많은 악기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번스타인은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제2바이올린입니다.
제1바이올린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과 똑같은 열의를 가지고 제2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을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플루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1연주자는 많지만 그와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 줄 제2 연주자는 너무나 적습니다.
만약 아무도 제2연주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아름다운 음악이란 영원히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1등, 최고, 주인공만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쫓는 우리에게 조용하게 다가오는 이야기가 아닐는지요.
진정한 힘이란...
오래 전 본 영화 가운데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 영화의 한 장면 중 주인공이 독일군 친위대 장교에게
"무엇이 진정한 힘입니까? 죽일 수도 있으면서도 죽이지 않고, 때릴 수 있으면서도 때리지 않는 것, 은혜를 베푸는 것, 그것이 진정한 힘입니다. 죽일 수 있다고 곧장 죽이고, 때릴 수 있다고 때리는 것은 힘이 아닙니다"
하고 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복수할 힘이 있다고 내리치는 것은 힘이 아닙니다.
칠 수 있지만, 복수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을 뿌리채 뒤흔들어 놓을 수 있지만 참고 용서하며 품어주는 것이 바로 진정한 힘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모습이요, 많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누려야 할 은혜의 축복임을 마음에 담으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절망(좌절)을 이기는 힘
고아의 아버지 조지 물러는 믿음과 사랑을 지닌 위대한 인물이었다.조지 물러에 대해 깊은 연구하던 아더 피어슨 박사(미국 장
로교회 목사)가 그의 성경을 조사하게 되었는데 시37:23절 말씀 옆에 고인의 친필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리고 또한 멈춤까지도`라고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멈춰 서성대고 좌절 할 때가 있다.그 때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보행을 살피시고 힘을 주시고 보호하시는 것이다.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시편 34:21)
참으로 힘든 일
죽음을 앞둔 사람이 재산을 세 아들에게 나누어 준 뒤 "너희가 석달 동안 객지에 나가 좋은 일을 하고 오너라"고 말했다. 석달 후
첫째 아들은 상인이 맡긴 보석을 하나도 빼돌리지 않고 돌려 주었다고 보고했다.
둘째는 호수에 빠진 소년을 구해주었다고 보고했다.
셋째는 원수진 사람이 벼랑 끝에서 잠든 것을 보고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노인은 셋째 아들에게 아끼던 다이아몬드를 주면서 말했다.
"첫째나 둘째는 당연한 일을 했으나 너는 참으로 힘든 일을 했구나"
겸손의 힘 (2)
옛날 팔레스타인 지도를 보면 사해 서편 해안에 엔게디라는 곳이 있다. 여기는 험한 산지로 접근하기 힘든 바위와 동굴이 많아 천연의 요새가 되는 곳이다. 약 3000년전 다윗과 사울은 이곳에서 극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다윗은 사울왕이 수금을 타라고 발탁한 소년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레셋사람들과 계속 전쟁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이 전투에서 소년 다윗이 적장 골리앗을 돌팔매로 죽이는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때부터 다윗의 인기는 상승했고 사울은 그를 질투하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결국 사울은 다윗을 노골적으로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다윗은 자기 병사들을 데리고 엔게디로 가 숨어있는 신세가 되었다.
이것을 안 사울은 정예병력 3000명을 동원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이곳까지 오게 된다. 사울은 공교롭게도 다윗과 그의 병사들이 숨어있는 굴속에 들어가 용변을 보게 되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됨이니라”하면서 이 유혹을 물리친다.
존 던이라는 시인은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인간은 누구나 다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다윗과 사울의 이야기에서 두 가지 관계의 유형을 볼 수 있다.
첫째는 타인과의 관계이다. 1937년에 출간된 ‘나와 당신’이라는 책에서 마틴 부버는 인간관계의 두 가지 형태를 말하고 있다. 하나는 ‘나와 그것’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당신’의 관계이다. 전자는 내가 상대방을 물건처럼 대하는 것이다. 필요할 때는 사용하고 걸림돌이 되면 내버리는 태도이다. 사울이 다윗을 대한 태도는 분명히 이런 관계이다. 그 반면 후자는 상대방을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다윗의 태도에서 볼 수 있다.
둘째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하는 것이다. 다윗은 시편 131편 1절에서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 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그가 자기 성찰을 하는 사람이고 겸손한 사람이며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잘못과 죄를 솔직하게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셋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가장 중요한 관계이다. 그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평범한 양치기 소년에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된 다윗은 자기의 잘못과 실수,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 앞에 겸손과 충성을 버리지 않았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보신 것이다. 잠언4장 8절은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했다. 여기에 성공적 인생을 산 다윗의 비결이 있다. 훌륭한 인생을 살고자 하는 자는 먼저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다./ 조영준 목사
숨겨진 힘
테이블 위에 곤충의 고치가 있었습니다. 그 고치에서 여러 나비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나올 때는 심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그 좁은 구멍으로 나비들이 나오는데 구멍이 너무 작아 비벼대면서, 비틀며, 푸드덕거리고, 경련을 일으키면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면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구멍이 너무 작아 고치 하나를 가위로 잘라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놈이 나와서 날개를 푸드덕거리는 모습이 제일 곱게 보였습니다. 다른 놈들도 나오긴 나왔는데 푸드덕거리고 비틀비틀 거렸습니다. 한참 있으니까 그 많던 나비가 훨훨 공중으로 다 날아갔지만 가위로 잘라 주었던 이 나비만 병신처럼 날개를 푸드덕거리다가 일생 날지 못하는 기형아가 되어 버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나비들은 밖으로 나오면서 힘을 쓰고 몸부림치는 가운데 많은 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4:13)
바람의 힘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꼽을 때면 '번영'이니 '평화', '안정'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죠.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아시는지요?
고요한 어느 아침,
수십 년간 세찬 비바람도 이기고 꿋꿋이 버티고 섰던느릅나무의 커다란 가지가 우지끈 부러져버렸습니다.
왜 그런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정원사가 말했습니다.
"이렇게 큰 나뭇가지가 부러진 것은 바로 고요, 정적 때문입니다.
밤새 이슬이 내렸지만 바람이 조금도 불지 않아서 그 이슬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뭇가지가 그만 부러진 것이지요."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고요한 삶, 우리는 거기서 오는 안정과 평화, 번영을 꿈꿉니다.
그러나 우리가 싫어하는 바람, 그 바람 같은 '고난'과 '위기'가 도리어 우리 삶을 지탱해나갈 힘을 길러주는 게 아닐까요?
선교에 힘쓰라
본문: 마태복음 28:18-20
남태평양의 뉴 헤브리스 제도는 전혀 문화 혜택이 주어지지 아니한 미개한 지역임을 확인한 페튼 목사는 그곳을 선교하기로 결심하고 주변의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인과 자녀들을 데리고 1958년 영국을 떠났습니다. 페튼 선교사 가족은 탄나 섬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면서 언어와 풍속을 익히며 그들에게 접근했으나 기후가 다르고 움막에서 미개한 생활을 해야 하는 어려움과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고 가뭄이 오거나 병든 사람이 생기면 원주민들은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의 침입 때문이라며 무장을 하고 달려와 죽이려고 위협하므로 도무지 복음이 전해질 가망은 보이지 않아 실망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그때 그때를 잘 견디어 가다가 사랑하는 아내가 기후 병으로 죽고 설상가상으로 아들도 죽고 말았 습니다. 그러나 존 페른 선교사는 "이곳에서 가족을 잃어버린 불행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데려가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계속 일하기로 결심하고 더욱 복음 전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존 페튼 선교사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으로 계속 노력하자 그토록 완악하고 강퍅하던 주민들이 선교사의 사랑과 헌신적인 봉사에 감복하여 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들의 영혼과 육신의 생활들이 밝아져 복음의 역사는 전개되었습니다. 외국으로 선교하러 가시는 분들을 보면 그 헌신이 대단합니다. 얼마 전 해외선교위원회에서 선교 보고하는 내용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느 선교사님은 네팔에서 선교하시다가 두 자녀를 잃고도 그곳에서 계속 사역하려고 했는데, 사모님이 두 자녀가 아른거려 그곳에서 선교를 못하시고 방글라데시로 사역지를 옮겼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한 분은 표창 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선교사님은 선교지에서 세상을 떠나시고 대신 사모님이 시아버지와 같이 나오셔서 상패를 받는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고난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
1930년대 초,미국은 심각한 대공황을 겪고 있었다.어느날 클레어린스목사가 공장이 밀집된 지역의 한 흑인교회를 방문
했다.그 교회의 신자들은 대부분 극빈자들이었으며 60% 이상이 실직을 당한 상태였다.그런데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은
힘과 희망이 넘쳤다.그들의 표정에서 절망의 빛을 찾을 수 없었다.클레어린스목사는 설교를 중단하고 교인들에게 물었
다.
“지금은 대공황입니다.도무지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실업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요.그런데 여러분은 무엇이 그리 즐겁
습니까” 그때 한 교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고 있습니
다.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곁에 계신다는 사실이 최고의 희망입니다”
신앙은 고난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절대자에 대한 믿음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인생 자산이다.신앙은 ‘고
난의 밤’에도 ‘희망의 아침’을 노래하게 만든다
삶이 힘들어지면
삶이 힘들어 지칠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새 힘이 생기고 삶의 짐이 가벼워집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슬픔과 아픔이 나를 휩쌀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슬픔이 옅어지고 아픔이 치료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좌절하고 낙심할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좌절의 늪에서 빠져 나와 새로운 소망의 언덕에 서게 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일이 잘 되지 않고 실수하여 야단맞을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나의 부족함이 깨우쳐지고 겸손한 자세로 새로운 다짐과 노력을 하게 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껴질 때면 나는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외로움과 쓸쓸함이 썰물처럼 밀려가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정다운 모습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힙입니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미움이 일어날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미움이 사라지고 다시 사람을 신뢰하게 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힙입니다
불평이 가득하고 웃음이 사라질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불평이 떠나고 미소가 피어 오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인간을 강하게 하는 힘
유태인 임상심리학자인 브리즈니츠의 연구논문 중에 `인간의 희망`에 대한 것이 있다.
이는 이스라엘 육군 훈련병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완전 장비한 병사들을 4조로 나누어 20KM를 행군시켰는데 1조에게는 출발 전에 행군 거리를 말하고 매 5KM마다 남은 거리를 말해 주었다.
2조에게는 `지금부터 먼 거리를 행군하겠다`고만 했다.
3조에게는 `15KM을 행군한다고 했다가 거의 다 왔을때 20KM를 행군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4조에게는 25KM를 행군한다고 했다가 14KM 지점에서 20KM를 하겠다고 했다.
이 결과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조는 제2조였고 가장 적게 받은 조는 제1조였다. 그리고 제 4조는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추가된 거리를 거리를 걸을 수 있었고 나중에는 오히려 거리가 감축되었음을 알고 기뻐했다.
진짜 힘든 일
크리스마스 계절이 되면 미국 워싱톤 D.C.에 있는 중앙우체국에서 산타크로스에게 보내는 편지가 전국에 있는 어린이들에게서부터 수천 수만 통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대개가 “금년 크리스마스 때 좋은 선물을 많이 보내 주세요”하는 어린이들의 소원이 담긴 내용의 편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체국에서는 이 전달할 수 없는 편지를 받아가지고 어린이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 전 미국에 있는 교회와 유지들에게 전부 그 편지를 보내서 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보내도록 도움을 청한다고 합니다. 이 편지를 받은 미국의 교회와 교인들 그리고 유지들은 비록 알지는 못하는 아이들 이지마는 산타크로스에게 선물을 보내달라고 보낸 편지를 받고 정성껏 선물을 준비해서 그 어린애들 주소로 크리스마스 때 받을 수 있게 보내 준다고 합니다(미국이니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 우체국 당국자들이 하는 말은, 분명히 교회나 교인들 그리고 유지들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보내 준 것은 틀림없는데 몇 달이 지나도 “선물을 주셔서 고맙습니다”하는 감사의 편지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선물을 보내 주세요”하는 편지는 수천 수만 통 오는데, “선물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편지는 거의 안온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사람이 아니겠읍니까?
교회 힘의 근원
인도 수상 네루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인도의 종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늪지를 메우고 댐을 건설하도록 자극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교회가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짐을 덜어 주려고 노력해 왔다. 교회가 인간을 자극하고 이끌었던 힘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마28:1-8, 요20:1-10
섬기는 힘
성경: 빌2:5,7
“예수 그리스도는…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돈이 힘이다.” 바로 이런 논리가 세상 문화의 대부분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자신의 정직함을 내어버리면서까지 자기들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식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들이 원하는 차를 타고 다니기 위해서, 그 밖에도 원하는 모든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서 부를 얻으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돈을 숭배하는 문화 속에서는 그리스도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가족들을 자기 마음대로 하기 위해 돈을 이용하고,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헌금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과는 너무나 다른 방법입니다. 병고치는 권능을 가지신 예수님은 그것으로 병든 자를 고치는 데 쓰셨습니다.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권능을 가지신 예수님은 그것으로 두려움을 제거하는 데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창조의 권능을 가지고 수천명의 사람을 먹이는 데 쓰셨습니다. 그는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권세로 죄인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는 그 자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셨으나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주셨습니다 (롬 10:13).
예수님은 모든 권능을 가지셨으나 그 권능을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데 쓰셨습니다. 다락방에서 제자들은 그를 “주”라 불렀으나 그는 그곳에서 홀로 섬기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요 13:2-17). 그가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안된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절).
돈이나 다른 어떤 것들도 이기적인 수단으로 쓰지 말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데 쓰십시오. 그것이 바로 힘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섬기고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킬 때 우리는 주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더 섬기면 섬길수록 우리의 자아를 덜 섬기게 될 것이다.
위대한 힘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한 가난한 농촌마을의 한 학생이 집에서 농삿 일을 배우고 있었다.
미래가 암담했던 이 학생은 어느 날 교회에 나가 신앙을 갖게 되면서 희망찬 꿈을 가졌다. 이런 꿈은 그에게 현실을 극복할 용기와 자생력을 길러주었고 결국 대학에 진학,장학생으로 하 와이로까지 유학을 가게 되었다.
이 가난했던 학생은 후에 아프리카의 식량사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위대한 한국인」이 된다. 바로 옥수수 박사 김순권교수 이야기다.
기도의 힘
새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날 수 있고, 배는 돛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항해하고, 기차는 화통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질주하고, 비행기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날아간다.
어떤 사람이 시계에 달린 큰 추를 보고는 시계가 힘들어 하니 추를 떼어 두자고 했다. 그러나 그 추를 떼는 순간, 시계바늘은 서고 말았다.
바로 이것이다. 성도들은 피곤하고 힘들어도 매일 기도해야 산다. 성도는 기도의 힘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큰 힘주는 격려
격려와 칭찬은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화학을 전공하는 한 학생이 중간고사를 치르게 되었습니다.시험문제는 ‘석탄으로
알코올을 얻는 방법을 쓰라’ 였습니다.그 학생은 아무리 생각을 짜내보아도 해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이것을 풀어내는
화학공식이나 부호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이렇게 대답을 썼습니다.‘석탄을 팔아서 알코올을 사면 됩니
다’.그후 그 학생은 교수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고 낙제할 줄 알았습니다.그런데 담당교수는 그 학생을 불러서 말했습
니다.‘너는 석탄으로 알코올을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찾아 냈다’면서 충분한 점수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그러움과 사랑이었습니다.칭찬과 격려였습니다.솔로몬은 “선한 말은 꿀같아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
라”(잠 16:24)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설교의 힘
로버트 모패트(1795| 1883년)는 남아프리카 선교의 개척자다.그는 선교활동중 고향인 영국에 잠시 들러 후원을 호소했는데 첫번째 교회에 들어섰을 때 무표정한 서너명의 여신도밖에 없어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그래도 그는 잠언8장4절을 인용,| 사명의 고귀함| 에대해 설교했다.
그가 설교하는 동안 남자라고는 오르간에 바람을 집어 넣는 소년 조수 한명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놀라웠다.아무도 안들었을 것같은 그의 설교를 이 소년이 듣고 감화를 받아 후에 위대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었다.그의 이름은 리빙스턴이었다.
진정 무서운 힘
태형산과 왕옥산, 두 산은 둘레가 700리나 되는 산이다. 그 산 곁에 우공이라는 한 늙은이가 살고 있다. 그는 어느 날 이 두 산이 자기네 교통에 불편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산을 옮겨 버리기로 작정했다. 바로 그날부터 우공의 온 식구가 동원되고 이웃집 과부의 아들도 동참하여 작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일 년 동안에 두 번 그 산의 흙을 퍼다가 바다에 버리고 돌아왔다.
우공의 친구로서 지수라는 영감님이 있었다. 그가 하루는 우공에게 말한다. 야이 사람아, 어쩌면 그렇게도 어리석은가. 죽음이 코앞에 닥친 사람이 이 엄청난 산을 옮기겠다니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우공의 답변을 들어 보자. 어리석은 것은 자넬세. 산이 불어 나는 법이 있던가. 그러나 우리 자손들은 영원히 번창할 것이 확실하지 않은가. 내 후손들이 계속 이 산을 파 나르면 제까짓 태산인들 언젠가는 없어지고 말 것이 아니겠는가.
우공의 이 말을 들은 산신령은 산을 허무는 인간의 노력이 끝없이 계속된다면 결국 자기의 터전인 이 산이 사라지고 자기는 실업신령 신세를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즉시 옥황상제에게 호소하여 태형산과 왕옥산을 고스란히 다른 지방으로 옮겨 달라고 청원했다. 옥황상제 또한 그의 청원을 검토한 결과 이유 있다고 생각하고 결국 기주 남쪽과 하양 북쪽에 있던 그 산들을 옮겨 삭동과 옹남에 각 각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기주지 방은 끝없는 평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고전인 열자 탕문편에 기록된 우화다.
現중고생 20% 장가가기 힘들어진다
결혼적령 인구(남 26~30세^여 23~27세)의 남녀성비 불균형이 심화돼 오는 2011년에는 여자 1백명당 남자가 1백25.1명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현재 남자 중고생이 결혼할 때 쯤이면 치열한 신부 쟁탈전이 벌어지고 중국 연변처녀 등 외국으로부터 색시감을 데려오는 일도 비일비재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인구는 지난 1일 현재 4천5백75만7천명이며 오는 2008년 5천6만6천 명으로 5천만명을 돌파한 뒤 꾸준히 증가하다 2028년 5천2백77만6천명을 정점으로 감소할 것으로 추계됐다.
8일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 인구 추계 결과에 따르면 65세이상 노령인구는 평균수명의 연장과 출산율의 감소로 95년 전체 인구의 5.9%(2백65만7천명)에서 2000년에는
7.1%(3백37만1천명)로 본격적인 노령화 사회로 진입하며 2020년에는 13.2%(6백89만9천명)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경제발전과 국민보건 수준의 향상 등으로 평균수명은 지난 70년 63.2세(남자 59.8세 여자 66.7세)에서 95년 73.5세(남자 69.6세 여자 77.4세)로 계속 높아진데 이어 오는 2020년에는 78.1세(남자 74.5세 여자 81.7세)로 상승할 것으로 추산됐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UN이 분류한 선진국 평균수명과의 격차가 95년 1.2세에서 2000년 0.5세,2005년 0.1세로 좁혀지며 2010년에는 격차가 없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여성 1명이 가임기간 동안 갖는 평균자녀수인 합계 출산율은 지난 70년 4.5명에서 80년 2.7
명,90년 1.6명 수준으로 계속 낮아져 왔으며 지난 95년에는 1.74명으로 다소 높아졌으나 2005년에는 1.71명으로 다시 낮아질 전망이다.
출생아수도 지난 70년 1백만7천명에서 80년 86만5천명,90년 65만7천명 등으로 낮아졌으며 앞으로도 소폭 감소세를 지속해 오는 2015년에는 59만명에 그칠 것으로 추산됐다.
평균 초혼연령은 81년 남자 26.4세,여자 23.2세에서 94년에는 남자 28.4세, 여자 25.3세로 높아져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으며 앞으로도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측됐다.
여아 1백명당 남아 출생수를 나타내는 총출생 성비는 81년 1백7.2에서 95년 1백13.4명으로 계속 높아졌으나 출생 성비의 불균형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태아 성감별에 대한 법적 근절책이 마련됨에 따라 점차 낮아져 2015년에는 정상 성비 수준인 1백7.0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격려의 힘
선천적으로 병약했던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뼈와 관절의 심한 질환으로 언제나 고통스러운 생활을 했다. 아이들과 어울릴 때도 적응하지 못해 늘 소외됐다. 이런 아이에게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아버지의 교훈과 격려였다. 아버지는 "너의 상처를 찬란한 별로 만들라"고 말하며 꿈과 힘을 심어주었다. 이 아이는 후에 영국외과학회 회장, 국제외과학회 회장을 지내는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 그가 바로 현대성형수술의 창시자인 해리 플래트 경이다. 그는 1986년 1백세로 작고했다.
함께 힘쓰는 남편
우리 옛 여인들 아이를 낳을 때 남편의 상투를 움켜쥐고 힘을 쓰는 습속이 있었다. 진통이 시작되면 남편은 산실 문밖에 버티고 앉아 창호지를 뚫고 상투를 밀어넣는다. `우습세라 우습세라 젊은 각시 아 날 때는 제 남편 상투 쥐고 잉잉 울콩불콩 쑥 빠진다네'(關東民謠). 경우에 따라 상투가 뽑히기까지 했다 하니 두피(頭皮)를 벗겨지는 듯한 아픔이었을 것이다. 옛날 서북(西北)의 박천 지방에서는 산모의 진통이 시작되면 남편은 지붕에 기어 올라가 진통을 더불어 하는 `지붕 지랄'이라는 습속도 있었다.
아이는 부부간의 공동 작품인데 아이 낳을 때 아내만이 진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불평등하다는 남녀평등 사상이 원시 시대부터 있었던 것 같다. 이 진통 공감의 습속을 쿠바드(Couvade)라 하는데, 지금 미국에서는 여권 향상의 새 풍조로 현대화 된 쿠바드가 부활되고 있다 한다.
6월 3일자 미국의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85년형(年型) 개량 남성상(改良 男性像)을 커버 스토리로 특집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미국 남편의 다섯 명 가운데 네 명 꼴이 산실에 들어가 아이 낳는 데 힘을 더불어 써주고 있다고 했다. 이 사실은 미국의 남성상(男性像)의 변모에 굉장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마초(macho)라는 말이 있다. 멕시코계 스페인말로 수(雄)컷이란 뜻으로, 남성 우위론(男性 優位論)을 뜻한다. 이것은 과격한 남성 우위론자인 작가 노만 메이러가 쓰기 시작한 말인데, 이 특집에서 마초는 갈기갈기 찢어진 군기라고 결론 짓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남성 우위 사회였다. 한국의 가계(家計)는 주부가 주로 쥐고 있지만 70년대만 해도 미국의 가계는 남편이 쥐고 아내는 필요할 때 얻어 쓰는 게 고작이었다.
한데 지금은 부부 공동 명의로 은행 구좌를 갖는 가계 혁명이 보편화 되고 있다 한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와이프 비팅이 사회 문제화 됐지만, 이제 허스밴 비팅이 역세를 몰아 중화시키고 있다고도 한다. 수입(收入)-지출(支出)을 비롯,
요리(料理)-육아(育兒)를 부부가 똑같이 분담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게 되고, 마이클 잭슨이나 보이 조지같은 중성 남자(中性 男子)가 우상화 되고, 귀걸이 하고 다니는 사나이가 부쩍 늘고 있는 것도 그것이다.
미국 사회가 지향(志向)하는 85년형(年型) 개량 남성(改良男性)이란 앞치마 입고 기저귀 갈이는 하지만 중성화되지 않고 남성적이고 과단성을 지닌 그런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남성인 것이다. 사상(史上) 남자 살기 가장 어려운 세상이 돼 가는 것 같다.
기다려 보는
''어느 정도의 시간'' 속에 전부가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갈 여러분에게 전해 주고 싶은 말을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번민하게 된다면, 그때 ''어느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 보는 힘''을 내어 보세요!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부단히 힘을 길러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의《나의 나무 아래서》에서 -
* 안정환 선수가 경기 초반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해서 도중에 교체했다면, 연장 경기 후반의 그 기막힌, 세계를 흔들어 놓은 가히 역사적인 골든골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응원단의 큰 실망과 일부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히딩크는 그를 끝까지 믿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믿고 기다려 주는 마음, 그것이 힘입니다. 기다려 보는 힘이 기적과 신화를 만듭니다.
큰 힘을 주는 격려
격려와 칭찬은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화학을 전공하는 한 학생이 중간고사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시험문제는 ‘석탄으로 알코올을 얻는 방법을 쓰라’ 였습니다. 그 학생은 아무리 생각을 짜내보아도 해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풀어내는 화학공식이나 부호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을 썼습니다. ‘석탄을 팔아서 알코올을 사면 됩니다’. 그후 그 학생은 교수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고 낙제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담당교수는 그 학생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너는 석탄으로 알코올을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찾아 냈다’면서 충분한 점수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그러움과 사랑이었습니다. 칭찬과 격려였습니다. 솔로몬은 “선한 말은 꿀같아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라고 했습니다.
새마음 새뜻 새힘
세계적인 철학자 러셀은 세상에는 물리적인 힘, 경제적인 힘, 영향력 등 세 가지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은 큰소리치고 힘없는 사람은 아무 소리도 못합니다.세계 각 나라들은 군사력이란 물리적 힘을 가지려고 하고 사람들은 경제적인 힘을 숭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돈을 하나님보다 크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주일 동안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상경하신 예수님은 어느날 아침 무화과를 찾았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 시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광야에 있을 때 어린 소년이 내어놓은 보리떡 다섯 개, 생선 두 마리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점심,저녁을 굶어야 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은 물리적인 힘뿐 아니라 경제적인 힘도 빈약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큰소리,큰기침 하나 없음에도 이스라엘의 큰 무리를 통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힘이 무슨 힘이겠습니까. 그 힘은 물리적인 힘이 아닌 것입니다. 또 경제적인 힘이 아닙니다. 이 힘은 철학자 러셀이 말한 대로 영향력이라는 힘 즉 종교적 힘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선교 2세기를 향해 영향력이라는 종교적 힘을 가져야 합니다. 이 힘은 첫째 하나님 말씀의 실천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만큼 생활에 옮기느냐, 즉 실천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긴다고 하는 것은 위대한 인격과 정신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말씀을 옮긴 분입니다. 우리들도 이런 생활 훈련을 연마해야 이 세상에 소금도 되고 빛도 되는, 영향력 있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입니다. 인간의 최대 기대는 생존과 행복과 평화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같은 기대에 부응하였던 것입니다. 즉 울고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였으며, 이 세상이 끝인 줄로 알고 있는 인생들에게 부활이 있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리고 무덤 속에 썩고 있는 나사로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재생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인간의 기대를 예수님은 모두 부흥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선교 2세기를 내다보는 한국 교회도 인생의 기대에 부응하는 교회가 되도록 힘과 기량을 배양해야 하는 것입니다.적어도 앞으로의 한국 교회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참생명, 밝은 희망 그리고 영원한 평화를 건네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교회가 지녀야 할 힘은 생활의 변화와 창조의 기능입니다. 날로 새로워지는 신생의 역사입니다. 변화의 출발은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과 교회는 마음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면 생각도 새로워지고 뜻도 새로워지고, 말도 새로워지고, 행동도 새로워지고,생활도 새로워지고 인생 전부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새로운 힘을 배양하십시다. 물리적인 힘이 아닙니다. 경제적인 힘도 아닙니다.예수님이 지니셨던 정신적인 힘,종교적인 힘,성령의 힘 곧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신앙의 힘, 사랑의 힘, 영적 영향력을 가집시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당신과 나,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새로운 피조물'이란 생명을 선택하는 문제말이다. 자, 당신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 어떠한 결정들을 내렸는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당신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해도 당신을 용서하신다. 그에게 용서를 빌라.
경제 살리기에 힘을 모읍시다
학생은 나라의 미래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바르고 건전하면 나라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내어 밝은 앞날을 열어 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의 경제는 헤픈 씀씀이 때문에 매우 어려운 형편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전기 한 등, 물 한 방울이라도 아끼고 소중히 하는 근검 절약 생활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힘을 모으면 우리 경제는 다시 일어나 곧 풍요롭고 살기 좋은 나라가 이룩될 것입니다. 오늘의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우리 경제를 살리는 일에 앞장서는 자랑스런 학생이 되기 바랍니다.
우리 경제 살리기 실천 사항
1. 학용품 아껴쓰고 잘 간수하기 (절약생활)
불필요한 학용품 안 사기, 끝까지 알뜰하게 쓰기, 자기 물건에 이름 쓰기
2. 전기,수돗물,물자 아껴쓰기 (절약생활)
안 쓰는 전기 끄기, 수돗물 적게 쓰기, 생활용품 아껴 쓰기
3. 쓰던 물건 바꾸어 쓰고 다시 쓰기 ( 근검생활)
교과서 물려 쓰기, 교복 물려 입기, 생활용품 바꿔 쓰기
4. 용돈 절약하고 적은 돈도 저축하기 (저축생활)
1인 1통장 갖기, 용돈 기입장 쓰기, 동전 모아 저축하기
5. 값싸고 필요한 물건만 사서 쓰기 (건전한 소비생활)
우리 상품 애용하기, 생일은 가족과 함께 하기, 필요한 물건만 사기
6. 먹을 만큼 덜어 먹고 음식 남기지 않기( 바른 식생활)
음식물 고루 먹기, 음식물 덜어 먹고 안 남기기, 외식 줄이기
7. 불법과외 안하고 스스로 공부하기(사교육비 절감)
학교 공부 열심히 하기, 불법과외 하지 않기, 내 할 일 내가 하기
참된 힘
힘이란 돈과 같아서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되기도 합니 다. 그래서 힘이 없으면 무력하고 무능하게 됩니다. 하지만 힘이 넘치고 커져서 그것이 잘못 사용되어도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이 커 집니다. 첫째, 참된 힘이란 꼭 필요한 것이지만 동시에 절제와 통제 가 가능한 힘이어야 합니다. 힘이란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 요합니다. 둘째, 참된 힘이란 그 본질이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에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힘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셋째, 참된 힘이란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위탁되는 것입니다. 힘이란 일정한 시간에 절대 힘의 소유자로부터 빌려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위탁받았던 힘을 끝까지 자기의 영원한 소유처럼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그 최후는 비참 하며 그 말로는 허무합니다. 넷째, 참된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시편 18편 1절에서 보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 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힘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본 자마다 하나님의 힘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교제를 힘쓰라
그리피스 존은 20년이 넘도록 중국에서 지내면서 젊은 선교사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경건해지도록 힘쓰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1877년 상하이에서 열린 선교회의에서 그는 “선교사는 무엇보다도 거룩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중국사람들은 선교사들이 거룩한 사람이길 기대합니다. 나는 별로 경건하지 않은 채 큰 영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목회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목회자는 착한 사람이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 지방 사람들의 언어와 문학을 익힐 뿐만 아니라 경건해지기에 힘써야 합니다. 형제들이여, 이것이 바로 이 큰 나라가 우리를 통해 변화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삼위일체시요 거룩하신 분이신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가지십시오. 거룩함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영이시며 우리를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시간을 나누십시오. 이처럼 거룩한 교제를 위해 시간을 내어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친히 우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십니다. 끊이지 않는 교제를 경험하십시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습니다.”라고 했다.
잠잠하고 신뢰하는 힘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사30:15).
나의 막내딸이 철자법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나는 내 어린 시절을 기억했다. 그때 나는 한 단어를 10번씩 되풀이해서 썼었다.
하나가 틀리면 선 생님은 그 벌로써 10번씩 더 쓰게 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긍정문을 열번씩 쓰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해 보았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왔다. 3번 썼을 때 말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10번을 썼을 때는 긍정문이 완전히 내 것이 되어 있었다.
당신도 한번 해보라.'이사야 30장15절'을 택하라. 그리고 이렇게 변경시켜 읽으라.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는다."
남편의 의처증으로 가정·사회생활 힘들어
Q: 20대 중반 여성입니다. 남편은 제가 어떤 남자와 이야기만 해도 저를 의심합니다. 밖에 나가서 친구도 만나지 못하게 하고 어디를 가든 확인을 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까지 합니다.
A: 의처증과 의부증은 어린 시절부터 무슨 일이든지 그냥 넘기지 못하는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 지나칠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 사람, 이기적이고 불평이 많은 편집증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난다. 여자의 경우는 의존적이고 미숙해서 배우자가 옆에 있어야 안심하는 경우나 시기심이 많고 독점력이 많은 경우 의부증이 될 확률이 높다.
심리적 원인은 시기심이 많은 성격을 소유한 사람이 배우자에 대해 열등감을 느껴 배우자를 의심하게 된다. 또 자신이 바람 피우고 싶거나 동성애적 경향이 있을 때나 배우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성장과정에서 부모가 적대적이고 지배적이어서 아이에게 두려움이나 불안을 느끼게 하거나 부모가 알코올 중독이나 편집증이 있는 경우, 구박을 많이 받고 자란 경우도 심리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의처증과 의부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다. 심리치료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불신과 열등감이 많으므로 비판하거나 설득하려고 해서는 안되며 비위를 맞추려고 해서도 안된다. 한결같이 단호한 태도로 ‘나는 당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는 이해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고 그런 망상을 갖게 되었는지 통찰해주고 분석해주는 치료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부부치료와 가족치료가 필요하다. 가족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환자를 설득하고 때로는 약간의 강제성을 띠기도 해야 한다. 치료만 잘 받으면 분명히 치료될 수 있으며 직장생활이나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
눈보라에 갇힘
알래스카의 추가지(Chugach)산을 등반하던 한 사람이 무서운 눈보라에 갇히기 전 야영 막사까지 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때는 늦었습니다. 눈보라는 너무 맹렬히 치기 시작하여 두 자앞도 보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강풍에 날린 눈과 얼음 조각은 길을 찾아 헤메는 그를 넘어지게 했습니다.비록 야영지 까지 몇 걸음 안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방향감각이 없어져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어둠 속에서 그는 쌓인 눈 사이로 빠졌습니다. 춥고 젖고 완전히 지쳤습니다. 더 이상 한 걸음도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삶을 포기하고 죽을 생각이었습니다. 그가 눈 속에 넘어져 있을 때 무슨 작은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잦아들 듯이 우는 새끼 개의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그는 힘을 내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그것은 개였습니다. 개도 이 눈보라에 길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그 새끼 개는 어떻게 어미 개를 놓친 모양이어서 얼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재빠르게 개의 털을 비비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피가 다시 돌아 개가 살아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계속 새끼 개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밤새 그의 숨결로 개를 따뜻하게 했습니다. 다음날 마을에서 나온 구조대가 살아 있는 사람과 개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그 사람이 밤새 새끼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것이 그도 살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힘-기도의 힘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 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가장 위대한 힘은 기도의 힘이다."
W.클레멘트 스톤의 말이다. 그는 대성한 사업가로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진정한 해결안 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풍요로움의 근원이시다. 그는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다.생명과 행복의 근본이시다.
문제가 있는가? 부족함이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하라.
"하나님, 나를 구하소서. 하나님을 따르게 하소서."
기도의 힘1
새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날 수 있고, 배는 돛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항해하고, 기차는 화통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질주하고, 비행기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날아간다.
어떤 사람이 시계에 달린 큰 추를 보고는 시계가 힘들어 하니 추를 떼어 두자고 했다. 그러나 그 추를 떼는 순간, 시계바늘은 서고 말았다.
바로 이것이다. 성도들은 피곤하고 힘들어도 매일 기도해야 산다. 성도는 기도의 힘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용기있는 구혼자(사랑의 힘)
와세다 대학의 '아베 이소오'고수는 도쿄에 있는 한국 학생들의 초청을 받아 강연회를 하던 중,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는 말을 자신의 경험으로 표현했다. 자기가 전차로 통학하던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차에 오리기만 하면 책을 펴들고 곁눈질 한 번 하는 일이 없이 책에만 정신을 쏟곤하는 얌전하게 생긴 여학생을 보고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용모와 태도를 보아 양반집 딸임에는 틀림이 없고 장차 훌륭한 사람의 아내가 되기에 충분한 여인이라고 생각한 아베는, 어느 날 여학생이 내리는 정류장에서 따라 내렸다. 그리고 여자 몰래 뒤를 따라가 그의 집과 주소를 확인하고는 문패의 이름으로 편지를 했다. 내용은 "자기를 사위로 삼아 달라"는 구혼의 편지였다. 당돌한 남학생의 편지를 받은 여학생의 부친은 좌우간 한 번 찾아오라고 답장을 냈다. 회답을 받은 아베는 즉시 그 집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는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학교의 성적을 묻는 말에, 서슴치않고 첫째하고 대답을 햇다. 후일, 다시 부르면 오라는 말에 아베는 그 집을 나왔는데, 여학생의 부친이 학교에 전화하여 그의 성적을 알아본 결과 첫째가 아니라 꼴지였다.
화가 난 여학생의 부친은 그를 다시 오라고 하고는 "성적이 꼴찌면서 첫째라고 거짓말하는 학생놈은 다시는 내 집에 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호령하는 통에 대답 한 마디 못하고 물러났다. 마음이 상한 아베는 '그러나 사랑스런 저 학생은 반드시 내 아내로 만들어야 한다'고 결심하고는 열심히 공부한 결과 3학년 말에는 1등을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찾아가 전일에 거짓말했던 것을 사과하고 첫째가 된 것을 보고했다. 1년이 되도록 한 번도 찾아도지 않던 학생이 다시 찾아와서는 정중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여학생의 부친은 학교로 다시 확인하여 보았더니 1등이 분명했다.
기특하게 생각한 부친은 날짜를 잡아 약혼식을 올리고 얼마 후 결혼을 하도록 허락하였다고 말하고는, 단상 오른편에 앉아 있는 자기의 부인을 가리키며 "그렇게 예쁘고 얌전했던 처녀가 지금은 저렇게 늙었답니다."하여 청중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분발케 하였고 성공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람,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8)
용서의 힘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의 절반 정도는 그들이 진정으로 용서받았
다는 것을 알게 되면 퇴원할 수 있는 환자들이라는 임상보고가 있었다. 용서
를 하거나 용서를 받는다는 것이 정신건강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단적으로 설명해준 예라 하겠다. 남모르는 죄책감이나 억울함으
로 인해 갖가지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죄책감이
나 심리적인 불안감도 갖가지 질병을 초래할 수 있지만 기꺼이 용서하지 못
하고 원한이나 미움, 억울한 감정을 계속적으로 품게 되도 건강을 해칠 수가
있다.
용서하거나 용서받지 못했을 때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의 쓴뿌리는 결국 인
체를 서서히 산성화시켜서 효소의 활성도를 떨어뜨리며 각종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도 감소시켜 결국 허약한 병적 체질이 되고 만다. 옛 사람들의 양생법
에도 너그러운 마음가짐이 몸을 편안하게 한다고 했으며 감정의 부조화는
만병의 근원이 된다고 했다. 예수께서도 환자들의 병을 고쳐주실 때 생리 병
리적 차원보다는 얽힌 인간관계나 죄책감, 사랑의 결핍이라는 관점에서 인간
회복을 이루셨으며 참다운 용서를 통하여 치유역사를 완성시키셨던 것이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의 피로 씻음 받지 못할 만큼 큰 죄인도 없으며 예수님
의 피가 필요 없을 만큼 깨끗한 의인도 없기에 서로 용서하며 용서받을 줄
아는 것이 성숙한 성도의 건강한 모습이다.
프란시스의 성결 생활에 힘씀
프랜시스는 자기의 일평생을 통하여 늘 반성하고 늘 깨끗한 마음과 거룩한 생활하기를 힘썼다고 한다.
하루는 제자(후원)들을 거느리고 있을 때에 맞은편 남 그늘에 앉은 제자들을 바라보고 프랜시스는 그 제자에게 무엇을 시키려고 그를 불렀다.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그는 한마디의 대답이 없었다.
한번 두번 세번 또 거듭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고보니 프랜시스는 분노한 기분으로 그 제자에게 가보니 그는 신비로운 세계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고로 프랜시스는 뜻하지 않은 실수에 자기의 결박함을 느끼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눈물을 흘리면서 참
회 하였다는 것이다.그는 계속 거룩한 생활에 힘썼다.
견디는 힘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 햇빛이 대지를 녹일 때면 목동들은 양들을 끌고 나가 겨울 동안 길게 자란 양털을 깎는다고 합니다.
지금은 기계화되어 아주 쉽고 빠르게 깎지만 옛날에는 하나 하나 사람의 손으로 깎는 중노동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마리 한 마리 털을 깎고 있는 도중에 늦추위 몰아쳐와 눈보라가 날리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당황한 목동은 양들을 다 깎은 양, 절반 정도 깎은 양, 못 깎은 양으로 구별하여 우리에 몰아 넣은 다음 눈보라가 지나가고 다시 따뜻한 햇빛이 대지를 비칠 때 우리를 열고 양들을 끌어 낸답니다. 그럴 때 이상한 것은 다 깎은 양은 앙상한 채로 살아 있는데 오히려 절반 정도 깎다 만 양은 예외없이 감기에 걸리고 그 중 다수가 죽는 것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생각의 힘
한 청년이 알프스 산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준비해간 물이 떨어져 심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는 알프스 계곡 사이에 있는 맑고 깨끗한 호수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청년은 단숨에 물을 꿀꺽꿀꺽 마셨습니다. 몹시 시원한 물이었습니다.
물을 실컷 마시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그는 "포이즌(poison)"이라고 쓴 경고판을
보았습니다. 이 물 속에 독이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 청년의
몸에서는 열이 나기 시작했고, 그는 심한 구토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온 몸이 떨
리고 얼굴은 창백해졌습니다. 그는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계시판을 잘못 보았군요
그것은 '포이즌(poison)'이라고 쓴 것이 아니고 '포이존(poissun): 낚시금지)'이라
고 쓴 것입니다.
이 청년은 '포이존'을 '포이즌'으로 잘못보고 야단법석을 떤 것입니다.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청년은 열이 내리고 구토도 멈추고,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것이 생각의 힘입니다.
나라가 망하거나 힘이 없을 때
살을 에이듯이 추운 날이다.
옷 없는 병졸들이 움추리고 앉아 떨고 있다.
군량은 바닥났다. 군량은 오지 않았다.
(<난중일기> 1594년 1월20일자)
그 무렵 조선 백성들의 참상은
땅위의 지옥을 이루었다.
부자(父子)가 서로 잡아먹고
부부(夫婦)가 서로 잡아먹었다.
뼈다귀를 길에 내버렸다(<징비록>).
굶어죽은 송장이 길에 널렸다.
한 사람이 쓰러지면 백성들이 덤벼들어 그 살을 뜯어 먹었다.
뜯어먹은 자들도 머지않아 죽었다(<난중잡록>).
명나라 군사들이 술 취해서 먹은 것을 토하면 주린 백성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틀어박고 빨아먹었다.
힘이 없는 자는 달려들지 못하고 뒷전에서 울었다(<난중잡록>).
- 김훈의《소설 이순신-칼의 노래》중에서 -
* 나라가 망하거나 힘을 잃었을 때 가장 비참해 지는 것은 백성, 곧 국민입니다. 부자가,
부부가 서로의 살을 뜯고, 다른 나라 병사가 토악질한 것을 서로 먹으려고 아귀다툼하는, 처참하고도 서글픈 역사를 돌이켜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나라를 잃은 날부터 2천년 동안 세계를 떠돌아야 했습니다.
거룩한 교제를 힘쓰라
그리피스 존은 20년이 넘도록 중국에서 지내면서 젊은 선교사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경건해지도록 힘쓰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1877년 상하이에서 열린 선교회의에서 그는 “선교사는 무엇보다도 거룩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중국사람들은 선교사들이 거룩한 사람이길 기대합니다. 나는 별로 경건하지 않은 채 큰 영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목회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목회자는 착한 사람이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 지방 사람들의 언어와 문학을 익힐 뿐만 아니라 경건해지기에 힘써야 합니다. 형제들이여, 이것이 바로 이 큰 나라가 우리를 통해 변화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삼위일체시요 거룩하신 분이신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가지십시오. 거룩함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영이시며 우리를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시간을 나누십시오. 이처럼 거룩한 교제를 위해 시간을 내어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친히 우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십니다. 끊이지 않는 교제를 경험하십시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습니다.”라고 했다.
사랑의 힘
성 구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미국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다섯 명의 젊은이가 있었다. 이들 가운데 '피트'라는 청년은 신혼 여행도 포기하고 에콰도르 선교에 나섰다. 5명의 선교사는 아내들을 후방에 남겨둔 채 경비행기를 타고 기독교인이 단 한 명도 없는 아우카 인디언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다. 1965년 1월 2일 피트 선교사는 아내에게 긴급 무전을 보냈다. "흥분한 인디언들이 몰려오고 있다. 기도해 달라," 그 뒤 연락이 끊어졌고, 이튿날 구조 대원과 가족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5명의 선교사들은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총과 무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사용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5명 모두가 인디언들에 의해 순교를 당해 있었다. 20대의 선교사 부인들은 울부짖으며, 한 가지 결심을 하였다. "남편들이 이루지 못한 과업을 우리가 이루자." 아내들은 모두 아우카 마을로 들어가 그 곳에 살면서 복음을 전하였고, 그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마을은 복음의 땅으로 변하였다. 선교사들을 살해했던 5명의 인디언 가운데 4명은 목사가 되었고, 1천여 명의 주민들은 모두 주님을 영접하였다
기도의 힘
스트롱 맨(Strong Man)이라고 제목이 붙혀진 그림이 있었습니다.
한 사나이가 아파트 이층 난간 위로 피아노를 들어 올리고 있는 그림입니다. 물론 당신도 어떤 한 사람이 피아노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는 것은 상상해 본적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아노의 무게를 짐작하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볼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피아노는 가느다란, 그러나 강력한 두선에 매여 있었고 선의 끝은 옥상 위의 크레인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나이가 피아노를 들어 올린 비결은 위에 매여져 있는 끈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슈퍼맨이 아니었읍니다.
오늘날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씨름왕 이만기 같은 사람일까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세개씩 따낸 어느 삼관왕 일까요? 혹은 당신 주위에도 있음직한 `세상에서 믿을 것은 자기 자신 밖에 없다` 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일등을 도맡아 놓고 하는 어떤 친구 같은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오늘 이 땅위에서의 진정한 강자는 하나님이 편이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명장 다윗왕 같은 이도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 내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오늘 우리의 싸움은 주먹과 권세의 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하나님 편에 가까이 서서 하나님을 의지하느냐의 싸움입니다.
어때요. 당신은 스트롱 맨 입니까...........
역사를 변화시키는 힘
이 세상에서 사람의 마음처럼 신비한 것은 없습니다. 마음은 한없이 넓어질 수도 있고, 한없이 좁아질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잘 관리하면 육신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습니다. 또한 마음을 잘 관리하면 그 가운데 인생을 치료하고, 가정을 치료하고, 나라를 치료하는 길이 있습니다. 사실상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보이고 행복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는 많은 문제가 산적해있습니다. 결국 그 문제는 우리 마음의 문제일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너무 마음이 메말라있고 병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를 보면 감사와 격려보다는 불평과 비난이 점차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일이 잘 풀리면 마음이 금방 높아집니다. 그러다가 일이 안 되면 마음이 금방 무너집니다. 승자의 겸허한 아량과 패자의 깨끗한 승복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사회생활에서 손끝의 노력으로 자기 존재를 알리기보다 혀끝의 노력으로 자기 존재를 알리려는 분들도 점차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좋은 나라, 좋은 사회가 어찌 이루어지겠습니까?
로마가 무너진 원인은 마음과 인격이 먼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토인비가 말했습니다. 아무리 모든 분야가 발전해도 마음 분야와 인격 분야가 무너지면 그 사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지키는 일은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힘써야 할 일입니다. 흔히 말하는 초 일류국가는 마음의 정비에서 시작되고, 믿는 사람들이 말하는 영적인 장자국가도 마음의 정비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편협한 마음으로는 결코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남을 쉽게 비판하고 남을 욕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금방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 중에서 제대로 행복하게 사는 분은 거의 찾기 힘듭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정의로운 마음과 시기하는 마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을 높여 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마음이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하고 마음의 우리의 행복을 결정합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많이 개혁했고 많은 것을 정비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정비는 바로 마음의 정비일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깎듯이 우리 마음을 다듬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의 정비는 필생 과제라는 말입니다. 마음의 정비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공보다 성공 관리가 어렵고, 성공 관리보다 마음 관리가 어렵습니다. 어려운 만큼 마음 관리를 잘 하면 우리가 속한 사회는 진정한 개혁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진정한 마음의 변화는 역사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연합 선교의 힘
성 구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눅 9:1-2)
일반 성도들의 해외 의료봉사 활동이 복음이 들어가기 어려운 지역의 문을 활짝 열고 있다. 기감 서을 중앙교회 의료 선교회(회장 강종명 장로)와 여의도 순복음교회 인도지나 선교회(회장 이건종 장로)는 최근 연합팀을 구성, 캄보디아에서 새 천년 두 번째 의료 선교를 성공리에 마무리짓고 돌아왔다 안과, 치과, 내과, 소아과 전문의 5명과 현지 선교사 등 총 34명으로 구성된 캄보디아 의료 선교단은 지난 3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으로 출발, 빌림 지역 마을인 피아우 등에서 의료 선교 활동을 펼친 후 10일 귀국했다. 의료 선교단은 주로 빈민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1 400여 캄보디아인들에게 의술과 복음을 함께 전했다. 의료 선교단은 낮에는 의술로, 밤에는 현지 교회에서 부흥 집회를 인도하며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한국 의료팀이 방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 주민들이 몰려들었고, 일부 주민들은 의료팀의 손을 잡으며 기도를 요청하기도 했다. 기적도 일어났다. 피아우 현지 교회에서 김용준 목사(여의도 순복음교회 선교국장)가 저녁 부흥 성회를 인도하던 중 청각 및 언어장애인인 75세의 한 남자가 고침을 받고 말문을 열게 되었다.
원망과 분노가 사라지는 기도의 힘
하나님이여 나의 근심있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시64:1)
나는 여러분과 함께 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가지고 있다.
'2개월 전만 해도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었습니다.
저는 4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이 미웠습니다. 의사들이나 남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남편은 제게 '능력의 시간'에서 메시지를 들으라고 강 력히 권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그때 원수를 친구로 전환시키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수년 동안 부모와 일체 대화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들이 어린 저를 고아원에 맡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저를 만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저는 그 들을 만나지 조차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미워하는 모든 원수들 중에서 가장 미운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남편 론에게 부모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만났고, 그분들을 용서했습니다. 제 인생에 가장 즐거운 시간을 맛본 것입니다. 저한테 있던 원망과 분노가 모두 사라 졌습니다.
저는 이제 새로운 인간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저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당신이 품고 있는 나쁜 감정들을 모두 제거시키려면 기도하라. 당신의 원수를 친구로 만들라. 하나님은 당신이 즐겁게 살기를 항상 원하신다.
온유와 겸손의 힘
20년간 제가 존경했으며, 오래 전 신학교 시절 제게 히브리어를 가르쳐 주신 분이 브루스 왈트케 박사님이십니다. 그분은 뛰어난 셈어(語) 연구 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온화한 우리 주님의 종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의 식구 가운데 화평케 하는 자로는 이분이 가장 뛰어난 모범을 보이셨던 것 같습니다.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이 다만 사랑과 온유 그 자체였습니다.
오래 전 이 왈트케 박사님과 브렌디스 대학 출신(신학대학 학생이기도 했던) 한 명과 또 한 목사님과 함께 보스톤 시내 ‘기독과학제일교회’라는 곳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웃으면서 우리를 맞은 노부인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교역자 네 명인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적어도 처음에는 우리는 전혀 신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부인은 1층에서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복잡한 파이프 오르간 앞에 갔을 때 부인은 그들의 교리와 특히 천국에서의 심판을 부정하는 그들의 믿음을 얘기했습니다.
왈트케 박사는 적시를 기다렸다가 아주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렇지만 부인, 성경 어디쯤인진 잘 모르겠는데,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9장 27절의 그 말씀을 희랍 원어로도 말할 수 있는 그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관대함을 보이며 늙은 부인을 잘 요리해 갔습니다. 솔직히 저는 뒤에서 ‘계속하세요, 박사님. 정신이 좀 들게 해줘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쉬지도 않고 이렇게만 말했습니다. “2층도 보시겠어요?”
그때 왈트케 박사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물론이지요. 고맙습니다, 부인.”
부인은 안심한 듯 웃으며 앞장서서 2층 층계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망 못 가게 해요. 어서 그 대답을 해 보라고 하세요!’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시달리던 저는 박사의 팔을 잡아당기며 나지막하게 물었습니다. “에이, 박사님. 어서 납작코를 만들어 주시지 뭘 우물쭈물하세요? 어서 정곡을 찔러서 도망 못 가게 붙들어 놓고 대답을 하게 하시지 뭐하시는 거예요?”
그는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제 어깨에 손을 얹어 놓으며 속삭였습니다. “아닐세, 여보게. 그건 공정치 못해. 사랑도 아니거니와. 자, 더 보세.”
흐음! 그 조용한 나무람이 머리 속을 팽팽 맴돌았습니다. 그 순간을 저는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가 어떻게 끝났는지 궁금하실 테니까 들려드립니다.
그로부터 채 20분도 안돼 박사는 부인과 단 둘이 앉아 아주 부드럽게 그리고 자세히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을 했습니다. 부인은 완전히 넋을 빼앗기고 앉아 있었습니다.
온유한 평화주의자 때문에 한 사람의 청취자를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미 급한 과격파인 저는 잊지 못할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 부인이 이분에게서 본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살아 있는 증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교회 공동체의 힘
어떤 시골 교회 목사가 교인 중 한 사람이 다음 주일부터는 교회예배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낙심한 그 교인이 내세우고 있는 것은 들판의 자연환경 속에서도 예배당에서 만큼이나 수월하게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겨울 저녁, 목사는 그 고집 센 교인의 집을 심방 차 방문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벽난로 앞에 앉아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나 교회출석 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것만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목사가 벽난로 옆에 있던 부젓가락을 집어들더니 불 속에서 반쯤 타고 있는 석탄 덩어리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그것을 난로 밖에 따로 놓았다.
그러자 그 석탄 덩어리의 불은 이내 꺼져버리고 회색빛 덩어리만 남았다. 그러나 벽난로 속에 있는 석탄 덩어리는 여전히 활활 타고 있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교인이 입을 열었다.
"목사님, 다음 주일에는 예배에 꼭 참석하겠습니다."
진정한 신앙에는 힘이 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행 8:5,6.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있느뇨"-행 8:35,36.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1,12.
"너를 아는 사람이라면 분명코 네가 믿는 하나님을 믿게 될거야."라는 식의 말을 들어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
챨스 웨슬리 목사는 어느 날 밤 몇 시간 후면 사형당하게 될 실의에 빠진 사형수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형수들에게는 영원히 살 장소가 바뀌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사형수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죽으시고 그들을 천국으로 맞아들이기 위해 기다리고 계심을 분명히 확신하고 사형장으로 갔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 그것은 챨스 웨슬레라는 한 사람의 진정
한 그리스도인 때문이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강한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은 주위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힘입니다. 당신에게는 이런 힘이 있습니까 ?
"주님, 저희가 주님을 믿으라고 강권하지 않더라도 저희의 모습을 보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이 어떤 특정한 사람의 구원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있다면 우선 당신 자신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인지부터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라.
생각을 초월하는 생각의 힘
< 생각의 힘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
가을이 깊어지면서 옛날에 읽었던 <오 헨리>의 작품 <마지막 잎새>가 생각납니다. 늦은 가을 초라한 3층 지붕 밑 방에서 존지라는 소녀가 폐렴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녀에게 있어서 폐렴보다 큰 문제는 의지를 잃어버린 감상주의였습니다.
존지는 자기 병상에서 보이는 건너편 집 담장에 있는 담쟁이 넝쿨을 바라보면서 그 넝쿨의 잎이 마지막으로 떨어지면 자신의 생명도 끝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언니 수우는 말합니다. "담쟁이 잎이 너의 생명과 무슨 상관이야."
그러나 존지는 대답합니다. "아냐. 언니. 저 잎이 떨어지면 나도 분명히 죽을 거야."
드디어 담쟁이 넝쿨의 마지막 한 잎새가 남았습니다. 존지는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마지막 잎새가 남았던 그날 밤은 유난히 비바람이 심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존지는 떨어진 마지막 잎새의 흔적을 보려고 커튼을 젖혀달라 했는데 놀랍게도 그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지 않고 아침햇살에 더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마지막 잎새가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그 마지막 잎새는 이미 떨어졌는데, 그 집 1층에 사는 걸작품 하나 그리지 못한
노(老) 화가 베어먼 할아버지가 그 담장에 그 마지막 잎새를 그려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그려진 담쟁이 넝쿨의 마지막 잎새 하나가 결국 존지를 병에서 일으킵니다.
생각의 힘은 우리는 생각을 초월합니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살 확률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죽을 확률이 극히 줄어듭니다. 잘 생각해야 합니다.
고통을 행복으로 바꾸는 힘
인도의 성자 선다싱이 복음을 전하다 어느 날 네팔의 감옥에 투옥됐다.그는 마치 바울처럼 감옥에서도 다른 죄수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그러자 이를 못마땅히 여긴 간수가 그를 냄새가 심하게 나는 독방에 감금시켰다.손과 발을 묶고 옷을 벗긴 채였기 때문에 거머리가 달라붙어 피를 빨았다.그러나 오히려 그는 하나님을 소리높여 찬양했다.
이 모습을 본 선다싱의 고소자가 간수에게 말했다.“당신은 선다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오? 그는 고통에도 아랑곳없이 노래하며 행복해하고 있지 않소?” 그러자 간수는 “그는 미쳤소.그리고 우리의 목적은 달성되지 못했소.우리는 그의 설교를 중단시켰고 고통을 주었소.하지만 그는 오히려 행복에 젖어 노래를 부르고 있소”라고 말했다.그러자 선다싱의 고소자는 소리쳤다.“그는 미친 놈이다.당장 석방시켜라!”
세상을 살다보면 나 때문에 겪는 고난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겪는 고난이 있다.하지만 그리스도 때문에 겪는 고난은 값지고 행복한 고난이다.또 영원한 상급도 함께 마련되어 있다.
감사의 힘
감사하면 「불행한 상황」이 달라진다. 어떤 처녀가 반지를 잃어버리고 집 에 와서 분노한 모습으로 불평했다.
그녀는 반지 한 개를 잃어버림으로써 행복과 자존심, 생활까지 다 잃은 듯 끊임없이 원망을 쏟아놓았다. 이런 딸을 본 어머니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 상황이 반전됐다.
『얘야,손가락을 안 잃 어버린 것을 감사해라. 네 손가락은 그대로 있잖니.손가락마저 잃어버렸으면 어떡할 뻔했니? 반지야 다시 살 수 있지만 손가락은 살 수 있겠니?』
그리스도인의 힘
본문: 빌 4:13
세상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힘'과 '능력'으로써 돈과, 권력과, 명예와, 지식 등을 말하고 또한 그러한 것들을 필요로 합니다. 정치인들은 권력과 명예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경제인들은 돈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연예인들은 인기를 힘입어 산다고 말합니다. 학자나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명예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필요로 하는 자기만의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과 능력은 무엇이며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겠습니까? 또한 그 힘과 능력은 왜 필요한 것이겠습니까?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도 힘과 능력이 필요하며, 그 힘과 능력을 바탕으로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몸의 구속을 입기 전까지는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힘이나 능력이 없다면, 누구라도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다리를 지탱하는 힘, 팔을 들어 올리는 힘, 일할 수 있는 능력, 등등. 그리스도인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능력)이 없다면 당장이라도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힘과 능력은, 결국은 부질없는 것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전 1:2-3 [전도자가 말하노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에서 무슨 유익을 갖겠는가?]
세계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던 알렉산더 대왕은 30대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아야 했으며,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라고 하는 정주영 씨는 비서의 부축이 없으면 걷지도 못하는 형편입니다. 또한 세계 최고의 지식을 자랑하던 박사나 학자들도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 유명했던 헐리웃의 배우들도 자신들의 모든 수고가 헛되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힘과 능력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닌, 일시적인 착각입니다(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일시적인 착각을 위해, 자신의 힘과 능력을 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어떤 힘을 필요로 하며, 또한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그 힘과 능력의 근원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사는 것은 세상의 힘과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은 능력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사실들을 잊고 살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은 능력으로 살지 못하고, 육신의 힘과 세상의 능력으로 살려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은 힘과 능력으로 살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힘이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힘"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누가
그리스도인은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힘과 능력의 근원은 주 예수 그리스도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개역성경>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개역성경>은 "그리스도"를 삭제함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탄도 사람들에게 나름대로의 힘과 능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힘과 능력의 근원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시지, 누구인지도 모르는 '자'(者)가 아닙니다. 등 거의 모든 변개된 성서들은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삭제하고 'him'(그)라고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앞 뒤 구절에는 그가 누구인지를 참고할 만한 것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변개된 성서들은 이외에도 고전 16:22, 엡 3:9, 골 1:2, 살전 1:1, 마 8:29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이나 호칭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와 집단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전혀 아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불교나 이슬람교 또는 이상한 잡 종교에서도 기적과 같은 일들이 있으며, 상당한 힘과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힘과 능력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불교의 중들에게 그러한 힘과 능력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마리아 상에서 눈물 흘리는 이상한 짓을 하시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마귀도 자신의 힘과 능력을 자신의 수하들에게 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든 그렇지 않든 누군가로부터 힘을 부여받습니다(육신적인 힘 뿐만 아리나 영적인 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힘과 능력의 근원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의 힘과 능력의 근원과 출처는 마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 자신에게 있는 힘과 능력이 주님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너무나도 간단하고 분명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실을 잊게 되면 그 힘과 능력을 엉뚱한 곳에 허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힘과 능력을 잘 사용한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며, 또한 반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힘과 능력을 엉뚱한 곳에 사용한 사람들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힘과 능력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데 사용했습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힘과 능력을 이방인들을 죽이는데 사용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을 복음을 전파하는데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주님께서 주신 힘과 능력을 엉뚱한 곳에 사용함으로 인해 처참한 최후를 맞아야 했습니다.
솔로몬도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명철을 엉뚱한 곳에 사용함으로 인해 적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과 능력의 출발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힘과 능력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언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죄인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킬 때에,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한 죄인이 거듭남과 동시에 받게 되는 힘과 능력은 참으로 값진 것입니다. 죽음을 이길 힘과 능력이 있으며, 죄를 이길 힘과 능력이 있게 됩니다. 또한 자아와 싸울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아무에게나 아무렇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해 놓고도 예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을 갖다 붙인다고 해서, 그러한 것들이 모두 하나님과 연관되는 것은 아닙니다. 죄인이 그리스도를 통한 능력을 받기 원한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는 그 순간부터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주의해야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아무 때나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서 힘과 능력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그리스도인이 죄를 짓고 있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정상적인 교제를 나눌 때, 그리스도인들에게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지 못한 죄인에게 자신의 힘과 능력을 주시지 않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죄인은 죽음을 이길 수 없고, 죄와 싸울 수 없으며, 마귀의 지배 하에 있는 것입니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성령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을 주셔서 죽은 영이 살아나듯이(또한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도 정상적인 교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힘과 능력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죄인은 거듭나야하며, 거듭난 성도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분명히 나실인으로써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부여받았지만, 그가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에 있지 못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그의 힘과 능력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착각하는 것은 자신의 악한 상태나, 죄와 연류된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서 힘과 능력을 주시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녀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힘과 능력은 있겠지만, 하나님과 정상적인 교제를 통해 받는 힘과 능력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3. 어디서
주님의 힘과 능력은 교회 예배당에서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은 교회를 성전이라고 부르면서 예배당에서 기도해야만 능력있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유명한 기도원에서 기도해야만 기도 응답을 잘 받는 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행 17:24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시니 그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들에는 계시지 아니하시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만든 성전에 붙잡혀 계신 분이 아닙니다. 더구나 오늘날 교회의 예배당들은 절대로 성전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의 몸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3:17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이는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는 그 성전이기 때문이라.]
고전 6:19 [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리스도인이 주님과 교제하고 있는 장소라면, 그곳이 어디든지 주님께서는 함께 하시고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바로 그리스도인의 몸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선원이 태평양 한 가운데서 하나님과 교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곳에서 그 그리스도인에게 힘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선교사가 아프리카 오지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부르짖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아프리카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실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의 암흑시대에 지하 감옥에서 하나님과 교제했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께서는 찾아 가셨고, 힘과 능력을 허락하셨습니다. 또한 화형대의 불길 가운데서도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힘과 능력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장소의 한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무소부재하심이 있습니다. 어디에나 어떤 곳에나 계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지옥에도 계실 수 있습니다. 시 139:8 [내가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주께서는 거기 계시며 내가 지옥에 잠자리를 마련한다 하여도, 보소, 주께서는 거기 계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외적으로 지옥에서 부르짖는 요나의 기도마저도 들으셨던 것입니다.
"내가 나의 고통으로 인하여 주께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나를 들으셨나이다. 내가 지옥의 뱃속으로부터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 2:2)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교제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장소라 할찌라도 찾아 주시고, 힘과 능력을 주실 수 있습니다.
4. 어떻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온전한 이름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아버지께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에게 주시리라."(요 16:23)
그리스도인이 받는 힘과 능력은 그리스도께서 주십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통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힘과 능력은 단 한번만 받고 끝나는 부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의 구속을 입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바로 이러한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복종했던 것처럼, 내가 있을 때 뿐만 아니라 내가 없는 지금도 더욱더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
빌 3:12-14 [내가 이미 이르렀다 함도 아니요, 이미 온전해졌다 함도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 예수에 의하여 붙잡힌 그것을 나도 붙잡으려고 좇아갈 뿐이라. 형제들아, 나는 내가 붙잡은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다만 한 가지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에 손을 뻗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그 표적을 향해 좇아갈 뿐이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은 후에도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은 후에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종교적인 열성이나, 선행이나, 다른 무엇인가로 힘과 능력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평안도 기쁨도 소망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얻는 것들이 아닌, 외적인 것들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주님을 통하여 받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힘과 능력을 공급받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5. 왜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모든 것'이란 말 그대로 '모든 것'(all things)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주님께로부터 공급받는 힘과 능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한계를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나 자신이 그 한계를 정해 놓고, 주님의 힘과 능력에 대해 의심한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주신 힘과 능력에 대해서 반기를 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힘과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한계는 하나님께서 아시고, 또한 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사역에 대해서 한계를 정하시고 바울 사도를 막기도 하셨습니다(행 21:10-13)
능력을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힘과 능력을 사용하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단지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이 발휘되도록 사용되는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빗자루, 총, 가전제품-세탁기를 예로).
저는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란, 인생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생의 먹고사는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셨다면, 바울은 가장 비참한 삶은 산 사람이며, 베드로나 그 이후의 수많은 순교자들은 하나님의 힘과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된 '모든 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이 말하는 '모든 일'이란 인생의 성공적인 삶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잇습니다.
빌 4:10-12 [그러나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노니, 이는 이제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마침내 다시 살아남이라. 너희가 비록 생각은 하였으나, 너희에게 기회가 부족하였도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 이는 내가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라.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또 풍부함에 처할 줄도 알며, 모든 처지와 모든 일에 있어서 나는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함과, 궁핍함을 다 배웠노라.]
'모든 일'이란 인생의 성공적인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궁핍함과, 스스로 만족하는 법과, 비천함과 풍부함과 배부름과 배고픔 등 하나님의 사역을 하다가 겪은 모든 일을 말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겠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위해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세상적인 성공을 위해 주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세상에서의 성공이 곧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등식은 전혀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6. 무엇을 줍니까?
주님께서는 능력을 주십니다.
능력이란 힘과 강함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죽음을 이길 힘을 주시고, 박해를 이길 힘과 능력을 주시고, 사탄의 불붙은 화살을 끌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형제들에게는 거리에서 설교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자매들에게는 입을 열어 구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은 결코 보잘 것 없은 세상의 돈이나, 권력과, 명예나, 지식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큰 힘이며, 큰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단 한번의 속죄로써 전 인류의 죄를 제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은 죽은 혼을 이겨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은 세상을 이길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은 죽음의 권세를 이길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은 세상의 통치자인 사탄을 이길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하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위대한 힘과 능력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힘과 능력이 있기 때문에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을 파괴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결론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통하여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어떤 곳에서 구한다 할찌라도, 주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힘과 능력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받은 힘과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사랑의 힘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한 번도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 그는 바로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사랑, 이 얼마나 감미롭고 가슴 두근거리는 단어이며 혼을 사로잡는 감동의 어휘일까?
나는 사랑을 경험하기 전에 사랑이라는 어휘에 매료되었고,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과 시에 매료되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음과 잡음에 불과하고, 미래를 예언하는 힘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 힘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며, 사랑의 본질로서 오래 참음과 온유와 소망과 ....
그러다가 사람을 사랑하고, 원하지 않는 사랑을 받아 봄으로써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참고 성내지 않으며 기뻐하며 투기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원하지 않는 사랑을 받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경험함으로써 사랑의 실천이 두렵고 실천없는
사랑의 무가치함을 알기 시작했다.
삶이란 어쩌면 수없이 거듭되는 사랑의 시도이며, 성숙하고 철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의 경험을 통하여 보다 헌실적인 방법을 깨우치며,실천적인 사랑의 의미를 알고 거듭 시도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털끝만큼도 사랑할 요소가, 아니 매력적인 것을 지니지 못한 사람에게서,오하려 약점 투성이인 남성을 사랑하여 본 그대는 수긍하리라. 사랑하기 전에는 약점이며 결점으로 보이던 작은 키,검은 얼굴, 뱀새 눈도 사랑하게되고 보면 아담한 키에 강인한 피부빛과
날카롭고 매혹적인 야망인 눈초리로 보여지는 것을....
사랑은 보이지 않는 세계,이편의 반대쪽에 숨겨진 장점을 보는 힘이다.그것은 사랑의 힘 중에서도 참으로 아름다운 힘이며 발견의 힘으로써 사랑의 위대성일 것이다.
나는 사랑이란 고통이라 생각한다. 사랑은 자존심과의 싸움이며,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이며,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극복일 수밖에 없고,그래서 어떤 형식으로든
고통을 요구하면서 기쁨을 기대하는 것이며, 그래서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 오는 것은 슬픔이며 인내가 아닐까?
노력없이는 사랑이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사랑이 아름답다 하지만,
사랑의 아름다움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 즉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가를 절감했으리라.
노력으로서 얻어지지 않는 사랑의 감정은 일시적인 감정의 사치이며 정신적인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표현 방법도 얼마나 중요한가도, 사랑은 온유한 것이지 거칠고 사나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랑의 표현 또한 부드럽고 조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어쩌면 세련된 사랑의 표현은 서툴러 역겨움이 된다.
외국학자로부터 들은 이야기.......
노부부가 적적하여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
키우다보니 아이에게 빠져들어 아기를 안으며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풀어 헤치고 젖을 먹이는데, 실제로 노부인에게서 젖이 나온다는 것이었고, 아기는 부인의 젖을 먹고 자랐고 부인은 젊어지고 이것은 기적이다.생리학의 설명이 주는 감동이 매력적이다. 부인의 깊은 사랑은 내분비선을 자극하여 젖이 나오게 되었으며,지극히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이었다.
사랑은 기적을 낳는다고 얘기한다.
화분의 꽃 나무도 사랑의 음성을 들러주며 잘 자라는 것을... 하물며 사람끼리이랴,
우정도, 형제애도,효도도, 그것은 눈에 보이는 실천가능한 사랑이며, 지금 내 곁에 있는 내 손에 닿는 이웃과 친구에게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며 손 잡아 따스한 체온을 나누는
사랑의 실천에 보다 힘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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