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보혈의 세례

하나님아들 2012. 9. 20. 14:39

"보혈의 세례 "    11-1-16본문:요한복음 19 30-34

 

뉴질랜드의 원주민 피지족들의 생활을 연구한 선교사의 기록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 니다. 원주민들이 사는 동네 한 가운데에는 Killing Stone이라는 바위가 있다고 합니다.이 바위는 우리나라 단두대라는 것과 역할이 비숫한 것인데, Killing Stone은 사람을 죽이 는 바위로서 아주 무서운 사형 방법의 하나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죄가 많은 죄인은 이 큰 바위에 묶어놓고 머리를 짓눌러서 죽이며 흐르는 피를 닦아내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이 참 혹 한 광경을 보여줌으로써 죄에 대한 경고를 대신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온 선교사가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서 예수를 믿게 하고 세례를 줄 때, 그 죽이는 바위 앞에서 주었다고 합 니다.

그 바위에서 피를 보게 하고 ", 옛 사람들은 이렇게 죽었습니다."하며 세례의 의미를 지혜로운 방법으로 인식시켰다는 것입니다. 이 선교 방법은 대표적인 케이스로 알려지고 있는 데 그 문화권 속에 알맞게 지혜롭게 대행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세례는 옛 사람이 완전히 예수와 함께 죽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을 세례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의  피를 기록한 말씀입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의 의미를 예수님이 요단강 가에서 받으신 세례를 기념하는 주현절을 동해 보혈의 세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경에 나타난 보혈의 사건의 의미는?

 마르틴 루터가 말하길 성경을 짜보면 피가 나온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구약성경을 살펴보면 피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은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죽은 동물의 피를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 역시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기록해 놓았는데 오늘 말씀처럼 피가 처참하게 흐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우리는 피 비린내 나는 피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절규하며 느껴야 진정한 의미의 성경을 이해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피를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면 영적 장님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같이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다음부터 피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십자가에서 들림 받을 때까지 피가 보이는 책입니다. 성경은 피에서 시작하여 피로 끝나는 책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성경에서 피를 보지 못하면 영적인 장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자신의 피로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방법은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이 때 세례 요한이 예수를 보고"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라고 말했습니다.

 

구약시대에 사용되었던 어린양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야흐로 구약의 짐승의 피와 신약의 예수의 피가 역활을 교대를 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표현 되어 집니다. 죄 없는 예수님은 요한에게서 물로 세례를 받았지만 우리는 그 분의 보혈의 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죄가 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피 값이 아니면 영생을 누릴 수 없는 것과 같이 그 분의 피로 세례를 받지 않으면 이 땅에서 우리는 새 생명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예수님은 보혈의 피로 우리에게 세마포 옷을 주십시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를 하기 전에는 벌거벗고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는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그러나 죄를 짓고 나서는 부끄러워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러나 무화과 나무 치마는 너무나 불안한 옷입니다. 한 시간 정도면 말라버렸고 조금만 잘못하면 찢어져 버렸습니다.우리는 그 옷으로는 영원히 우리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었습니다.

 

보다 못한 하나님은 그래도 당신의 피조물들을 사랑하셨기에 보다 못해 무화과 나뭇잎 으로 된 치마를 벗기시고 가죽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가죽 옷은 일생 몇 벌만 있어도 되는 단단한 옷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불완전을 완전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죄인에게 가죽 옷을 입혀주려고 하다 보니 짐승이 죽었습니다. 아마도 양가죽 옷이었을 것입니다. 이 같이 사람이 죄를 지은 후부터 피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간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양이 대신 죽어야 했으며 피를 흘려야 했던 것입니다.그래서 모세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에서 피의 제사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대속죄일에는 원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 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대속죄일과 대속죄일 사이에는 자범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 양과 비둘기를 많이 드렸습니다. 성막은 하나님께 피의 예식을 거행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모세부터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까지 짐승의 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죽옷을 입었고 그것으로 그들의 수치를 가렸습니다.

 

 그러면 이제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는 주님의 피 값으로 어떤 옷을 입고 주님께 나아가게 될까요? 이렇게 구약에서는 짐승의 피로 신약에서는 예수의 피로 인간들은 구원을 받았기에 우리는 더 이상의 가족 옷은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마지막 우리가 들림을 받을 때 우리는 어떤 옷으로 갈아 입게 될까요? 들림 받을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벌거벗고 올라가게

될까요? 아니면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올라가게 될까요?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가 들림 받을 때에는 세마포 옷을 입고 올라가게 된다(1913-1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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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의 주위를 보십시오 예수를 믿거나 안 믿거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관속에 들어 갈 때 입은 옷이 무엇입니까? 바로 세마포로 만든 옷을 입고 갑니다. 왜 안 믿는 자들도 이같이 세마포 옷을 입겠습니까? 그것이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우리기 저 세상에 갈 때 우리는 세상 옷이 아닌 구별 된 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예수님의  값으로 사신 세마포로 갈아 입어야 천국 시만의 자격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새사람이 입는 옷이 바로 세마포 옷이기 때문입니다. 세마포 옷은 분명 피로 세례를 받은 자가 입어야 하는 옷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보혈의 세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우리가 흔히 예수님의 보혈 하면 십자가의 보혈만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위하여 네 번의 보혈을 흘리셨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분명히 네 번 피를 흘리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 흘리신 네 번의 피를 통해 우리가 세례를 받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살펴볼 때 고귀하신 예수님의 피가 저와 여러분들의 가슴에 뜨겁게 자리잡기를 바랍니다.

예수의 제 1 보혈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흘리신 첫 번째 피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흘리신 피입니다. 이 피는 우리의 죄를 닦아주는 피가 아닙니다. 만일 겟세마네 동산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의 죄를 닦아준 피라면 주님의 구속 사업은 겟세마네에서 끝났을 것이고 갈보리까지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갈보리에서 죽으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33세의 청년 예수는 솔직히 십자가를 지고 죽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한 후에는 "만일 하실 만 하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26:39)라고 하신 것을 보아도 예수께서도 죽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피 흘리도록 기도하시고 나서는 결국 아버지께 아버지의 뜻대로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의 피로 세례를 받는 다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대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피로 세례를 받고 피로 기도한다면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 할 지라도 그 어려움이 작아 집니다. 문제가 안됩니다. 모든 문제는 주님의 뜻대로 해결이 될 것이기 대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2의 보혈,

주님이 이 땅에서 두 번째 흘리신 피는 채찍에 맞아 흘리신 피입니다. 예수님은 대강 3시간 가량 채찍에 맞으시고 9시간 가량 피를 흘리셨습니다.(19:1;50:6).

그 채찍은 끝에 납 덩어리가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날카로운 짐승 뼈가 묻어 있습니다. 한 번 치면 몸 속에 박힌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채찍을 당기면 살점이 묻어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등허리는 밭고랑처럼 패어져 피가 줄줄 흘러

내렸습니다.

 

과연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두 번째의 피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피일까요? 그에 대하여 이사야는 말하기를,"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3:5).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주님이 채찍에 맞아 흘린 피는 우리에게 신유를 주는 피입니다. 나음을 주는 피입니다. 건강을 주는 피입니다.

 

그리스도의 제 3 보혈,

주님의 제 3보혈은 가시면류관에서 흘리신 피입니다(19:2).두 강도는 가시면류관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만 가시면류관을 쓰셨을까요? 가시가 무엇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은 뱀과 아담과 하와를 나란히 저주하였습니다. 그때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3:18)라고 하셨습니다. 가시는 천지 창조 때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인간을 저주할 때 인간을 찌르라고 새로이 창조한 것입니다.

 

첫째 아담이 범죄할 때 가시가 나왔는데, 둘째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면서 인간을 구원하실 때 가시면류관을 쓰셨다는 것은 너무나도 의미 심장하지 않습니까? 이 가시 면류관의 피는 바로 인간의 저주를 씻어주는 피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우리의 저주까지도 담당하신 분입니다. 주님이 가시 면류관에서 흘리신 제3의 보혈의 피를 믿기만 하면 우리는 가난에서 부유로, 흑암에서 광명으로, 병에서 건강으로, 문제에서 해결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뀔 수가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들의 저주를 씻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제 4 보혈,

주님께서 네 번째 흘리신 피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입니다. 가장 귀중한 피입니다. 양 손과 양 발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로마 군병이 주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런데 옆구리를 찌를 때 주님은 아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은 것을 찔렀기 때문입니다 (1933-34). 나중에 조사된 바에 의하면 예수님의 왼쪽 가슴 세 번째 갈비뼈와 네 번째 갈비뼈 사이로 창이 들어갔음이 세마포에서 밝혀졌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네 번의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피는 우리에게 죽어야 산다는 구원 역사를 주셨습니다. 이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모자이크 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누군가를 위해 피 흘리며 기도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누군가를 위해 피 흘리며 모진 고통을 참아 내며 헌신 한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왜곡하는 사람들은 그 당시 예수님께서 '혹시 혼절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서 정신을 차려서 다시 나오신 것을 제자들이 '부활'로 신화화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기절설'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성경에 기록하기를 '다리를 꺾어'(31 )라는 뜻은 망치로 다리를 숨이 끊어질 때까지 분쇄해 버린다는 뜻입니다. 그 와중에 검시관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숨진 것을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완전한 죽음의 일차적 증거입니다(33 ). 또 그것도 부족하여 로마의 한 병정이 매달린 주님의 심장을 찔러 재차 '확인 살해'했습니다(34 ). 이것이 둘째 증거입니다. 그 다음 '피와 물이'(34 ) 쏟아졌다고 했는데, 의학적으로 물이 흐르는 현상은 '심장 파열'의 증거이며, 또 시신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셋째 증거입니다. '기절설'은 가당찮은 가설이라는 논증입니다. 주님은 그때 확실히 절명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종교 철학을 신앙의 근거로 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셨으며, 인류를 대신한 흠 없는 인간으로서 속죄를 하신 역사적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것을 양보하고 우리 세계로 오신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외면한 어리석은 자들의 죄악 을 폭로하는 심판의 근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흘린 피를 온 마음으로 받아 들이며 그분의 보혈로 새 생명을 얻었고, 그 생명의 감격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보혈의 세례 입니다.

 

보혈의 세례는 보혈로 우리가 거듭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우리가 죄의 상태로 주님 앞에 나아 갈 수 없기에 보혈의 은총으로 우리가 거듭 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역사적 인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 입니다. 그래서 보혈로 거듭나지 않고 받는 형식적인 세례는 아무 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보혈의 세례는 세상에서 주님을 모르고 있던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사건이 보혈의 세례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의 마음속으로 받는 세례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보혈의 공로에 의지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의 일군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익산모자이크장로교회
글쓴이 : 다윗과 조나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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