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본문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를 향하여 저주를 받을지어다'고 외쳤습니다. 7절을 보면 「다른 복음」과 「그리스도의 복음」이 나옵니다. 「다른 복음」이란 여러 개의 복음이 있는 중에서 하나라는 말이 아니라 완전히 성격이 다르고 내용이 무엇인가 변질되어 있는 상이한 복음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이야기 합니다. 많은 사람이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에 가면 처음부터 이상하게 들릴꺼라고 생각하지만 극단적인 이단을 제외하고는 다 예수를 말하고 십자가를 말합니다.
혼란하게 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불신자에게 전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몇 마디만 던져주면 금방 혼란에 빠져 넘어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근본을 왜곡(歪曲)시켜 버립니다. 예를 들면 서울의 어느 교단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예수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으므로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다 용서 받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회개할 필요가 없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그 자체가 십자가에 대한 모독이며, 기도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예배도 필요 없다고 해서 성경공부만 가르칩니다. 이렇게 되면 벌써 근본을 바꾸어 놓은 변질된 이단입니다. 이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갈라디아서 4장 17절에 지적한 것처럼 열심이 대단합니다. 이 열심으로 사람들을 끌어내므로 바울은 1장 6절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났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귀의 힘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다른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에게 다른 것을 보태는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여러 교회를 개척해 놓고 떠난 다음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신자들은 유대인이 예수 믿고 신자가 된 그룹과 이방인이 예수 믿고 신자가 된 사람들이 같이 한 교회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들 중에서 유대인 신자들은 예수 믿는 것 외에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방인 신자들이 혼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바울이 '저주를 받으라'고 크게 노했습니다. 이렇게 예수의 복음에 보태는 것은 복음을 변질시키는 무서운 누룩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을 보태는 것은「다른 복음」입니다.
예수의 복음에서 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전형적인 예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뽑아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사의 우두머리로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인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도 빼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말합니다. 이것도 「다른 복음」입니다.
예수의 복음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복음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인데, 이것은 강조하지 아니하고 엉뚱하게도 세상에서 예수 믿으면 잘산다는 것만 강조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 사람이 좋아하는 「다른 복음」입니다. (참고/갈라디아서 1장 10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복음」을 주의하고 피해야 합니다. 갈라디아 지역의 교인들이 「다른 복음」에 쉽게 빠진 이유는 교인들이 신앙적으로 어렸던 것입니다. 그 당시는 신약도 없었고 오직 순수하게 들은 복음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복음」이 독버섯처럼 들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참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가르쳐 준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내는 「복음」입니다(갈라디아서 6장 14절)
예수 외에는 구원할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예수의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썩어져 가는 사회의 밑바닥을 수술하며, 이 험악한 세상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며 하나님 나라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지켜줍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요, 결국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임하게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