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함께하는시간 임마누엘타임

[스크랩] 성경 소리내어 읽기의 유익

하나님아들 2019. 1. 26. 19:46

 

 

성경 소리내어 읽기의 유익

 

 

 

여호수아 1:8과 시편 1:2는

성서가 일차적으로 소리내어 읽는 책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실상 오토 카아저(Otto Kaiser)의 말대로 ,

율법 그 자체는 밤낮으로 "크게 읽도록" 되어 있었다

 

대만 기독교 인구 3%가 3여년 안에 9%로 성장한 비결은

기도제단쌓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루 평신도는 적어도 10장 성경을 읽을 것이고 목회자들은 적어도

20-30장 성경을 읽기로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어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읽다가 중간에 멈춰서서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소리내어 읽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어가 가진 신비를 조금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적인 세계관에서는 물리적인 세계는 하나님의 피조물로

하나님의 아름다우시고 영화로우시며 지혜로우신 성품과 능력을

반영하는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후 늘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버리라고 하는 것은 물리적인 육이 아니라 욕망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면서도 육이라는 몸안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섭리와 그 지혜를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찬양을 할때 몸과 영이 하나가 되어 온전히 하나님께

집중하듯이 소리 내어 성경을 읽을때 영적인 계시와 지식이 소리를 통해

영혼안으로 깊이있게 들어가고 선포된 진리는 내안에 성전안에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헛된 사상을 다 허물어버리는 청소를

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성경을 쉬임없이 소리내어 10-30장을 읽어 나가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번잡한 생각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버릴수가 있습니다.

사실 그런 것들은 우리안에 숨겨진 쓴뿌리들이 드러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집중하지 못하게 자꾸 치고 들어 오는 다른 생각들을

걷어 내고 성경말씀을 주욱 읽어나가다 보면 성경이 아주 재미있어지고

쉽게 읽혀지며 그안에서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이 명료해집니다.

 

 성경을 그저 읽는 것이 아니라 그안에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 요청해서 그안에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와 여호와 하나님을

내적으로 계시 받아야 합니다. 그런 내적 계시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날때

우리는 그분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알아가며 그리스도의

신부로 변화될수 있습니다.

즉 말씀 묵상의 촛점을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행동이나 도덕적

선택보다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계시로 맞추고 성령께 요청해 나가면 그런 계시를 반드시 주십니다.

 

 제가 아는 한 목사님은 3년전부터 그렇게 성경만을 계속 읽어오면서

교회에게 주신 영적 권세와 능력과 이기는 자의 비결에 대해

존 물린디 목사님과 거의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성벽을 쌓을때 적들은 "너희가 그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라고

조롱합니다. 성경좀 읽어 나간다고 정말 영적 돌파가 일어날 것인가

조롱하는 음성이 들릴것입니다. 그런 음성이야 말로 사단이 떨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내안에 성경읽기가 하기 싫은 이유가 101가지 떠오른다면

더욱 성경을 읽어야 사단의 계략을 파괴하는 것이 될것입니다.

말씀의 성벽을 쌓고 언약궤를 말씀으로 채워넣어야 합니다.  

우리가 쌓는 이성벽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를

돕는 분은 전능하신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마음에 무너진 성벽을 쌓고 성전을 청소하고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이기는 자가 되는 것,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루도 빼놓지 마시고 성경을 읽고 내가 읽은 성경속에

하나님을 송축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을 하면 어느때인가 완전한

하나님의 평강과 사랑가운데로 들어 갈수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은

그안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갈수 있습니다. 이미 마음의 지성소가 청소

되었고 성벽이 재건되었고 말씀의 영으로 강건해 졌기 때문입니다.

용기를 내십시요.

 

다음은 히브리인들에 성경묵상에 대한 이해입니다.

명상을 위한 시간

히브리인들은 오랜 세월, 방해 받지 않는 명상 시간을 가져왔다.

그들이 삶의 리듬은 자명종 시계나 공장의 호루라기 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해에 의해서 정해졌다. 목자로서, 농부로서, 또는 어부로서

히브리인들은 밖에서 살았기 때문에 토지와 바다와 밀접한 생활을 해왔다. 그들은 한주간에 한번씩 안식일에 쉬었을 뿐 아니라 해가 중천에

떳을 때에도 휴식시간에도 말씀을 묵상했다.

 

 히브리인들은 성서를 명확하게 세부분으로 나눠진 책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모세 오경인 율법서와 예언서 그리고 성문서로

이루어져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여호수가아 히브리 성서의 두번째인

예언서에서 하나님은 율법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라고 하셨다.

시편은 성문서에 첫번째 책이다. 시편1편에서도 밤낮으로 묵상하라고 한다. 시편 77:12절은 "주의 모든일을 묵상하리라"고 한다

위에 구절들은 묵상이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히브리 성서를 하나로

묶어주고 있는 열쇠임을 말해주고 있다. 위에서 인용한 세구절에서

묵상은 (hagah)로서, "소리를 내다""나직하게 말하다," "중얼거리다."

"낮은 목소리로 말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인들에게 명상은 퀘이커 교도가 하는것 처럼 소리없이 눈으로

글을 읽고 침묵속에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본문들이. 묵상는 일반적

으로 언어, 즉 말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즉 시편 49-3절에서는 "내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나의 마음의 묵상(hagut)은 명철이 될 것이다"(RSV).여기에 사용된 히브리 대구법은 ,입으로

말한것 과 "묵상"이 똑간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NIV성서는 하구트(hagut)를 "묵상"이 아니라"말"(utterance)로

옮기도 있다. 시편 19:14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사용된 "내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 hegyon)이 평행을 이루고 있다. 더 나아가 여호수아 1:8은 "이 율법책을 네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ehagita)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컨텍스트에서 "묵상하여"라는 단어는 율법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는 명령에 의해 규정되어 진다.

"이것은 매우 강한 명령이다"

 

묵상은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또는 그이 가르침이나 역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것을 입술을 통해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호수아 1:8과 시편 1:2는 성서가 일차적으로 소리내어 읽는 책

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실상 오토 카아저(Otto Kaiser)의 말대로 , 율법 그자체는 밤낮으로 "크게 읽도록"되어 있던 것이었다

(기독교와 히브리 유산- 마빈R 윌슨) 저




사람이 입을 통해 소리를 내게 되면 발음기관, 공명기관, 호흡기관이

동시에 관여한다고 한다.

호흡은 '허파'가, 발음은 '입, 혀, 치아, 잇몸'이, 공명은 '흉부, 복부,

목, 비강, 머리' 가 관여한다. 

이밖에도 우리 몸 구석구석이 목소리의 크고 작은 파장으로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현대 과학은 소리의 공명이 두뇌를 자극하여 질병과

노화 방지에 까지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온 몸을 진동시키고 파동까지 일으키면서 나오는게 사람의'말'이다.

결국은 '혀'를 다스리는게 정신과 신체 모두를 단련하는 지름길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소리 내서 책 읽기는 여러모로 경제적이다.

 

자신의 근기에 맞는 마음 편한 구절들이 담긴 얇은 책을 골라서 소리 내서 읽기 용으로 정한다. 

눈은 책속의 글씨를 보고 입은 소리 내서 정확하게 읽는다.

그때 귀는 입이 내는 소리를 틀리면 틀린대로 맞으면 맞는대로 그대로

듣는다. 그래서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발음이 입에 익어

읽는게 익숙하면 속도를 점점 빨리한다. 그러다 보면 머릿속은 온갖

잡념들이 돌아다니고 머리속에서 생각을 지어내고 부수고 

저 혼자 별별 곳을 다 헤집고 다닌다. 그게 바로 잡념이 없어지는 과정이다. 건드리니까 나타나 없어지는 것이다. 만약 중단하면 잡념은 그대로

머리속에 파묻혀 잠재되어 언제 자신을 집어 놓을지 모른다. 

소리 내서 읽어서 저절로 사라지게 한다. 평소에 없던 꿈도 많아 진다.

그래도 그냥 흘려 버린다. 

그러면 잡념, 번뇌망상에 점령 당했던 몸의 감각이 깨어나면서

머릿속 고요한 시간이 점점 많아지게 된다. 

 

초반기에는 눈, 입, 귀도 서로 조화를 맞추지 못해서 제각각 따로 논다.

입은 혼자서 종알 대면서 계속 읽어 가지만 눈은 5분이 지나면 읽던 곳을

놓쳐 버리고 헤맨다. 귀는 그런 눈과 입의 장단에 끌려 다니느라

대부분의 소리를 놓쳐 버린다. 책을 소리 내서 읽어 보기 전에는

나의 눈, 입, 귀가 제각각 노닌 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 감각이 정상인체 잘 돌아가는 줄 알았다. 이렇게 감각이 제 각각이니

집중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소리내서 읽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자기가 읽는

소리가 계속 귀에 들어온다. 

눈, 입, 귀가 비로소 조화를 이룬 것이다. 책장을 넘기던 손이 실수로

책장을 빨리 넘기지 못하면 입은 다음 장의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고 기다린다. 

손이 책장을 넘겨서 눈이 글자를 봐야 비로소 소리를 낸다.  

반대로 입이 틀리게 읽거나, 버벅거려 제대로 읽지 못했을 때도

눈은 다음 글자로 가지 않고 기다려 준다.

예전 같으면 손보다 입이 계속 나가서 읽어대고 

눈은 다시 글을 찾아 헤맬텐데 그러지 않는다.

감각이 점점 일치되어 가는 것이다.  

 

소리 내서 읽기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묵독과 낭독과의 경계도 없어진다.

입은 닫고 눈으로만 일반 책들을 보다보면 잡념 대신 그 책과 연관된

다른 책의 내용이 줄줄이 떠오르면서 연결된다. 

정신이 다른 곳으로 새지 않아서 짧은 시간에 많을 것을 읽을 수 있다.

저절로 그렇게 된다.

감각이 깨어나면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을 정해 놓고 소리 내서 읽으면서 일치가 된 신체기관은

우리 몸이 행하는 모든 것들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그게 사람들 근기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고비만 넘기면 일반 생활과

책 읽는 수행이 하나가 되어 돌아간다. 산책할때, 집안 일 할때,

칼로 뭔가를 썰때, 뜨거운 것을 만질때도 호흡과 더불어 일치가 되어,

다치지 않거나 다치기 직전에 알아채게 된다. 순간순간 집중이 되기

때문이다. 잡념이 끼어들지 않아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필사(筆寫)를 할때도 책을 읽을 때의 호흡이 유지된다.

눈은 긴 문장들을 그대로 보고와서 공책에 제대로 씌여지는지 지켜보고,

입은 다물고 코는 숨을 죽이고, 귀는 손이 쓰는 사각거리는 펜소리를

듣는다. 필사를 하는 내내 모든 감각이 하나가 되어 돌아간다.   

 

2

그렇다고 계속 하기 좋은 상태만 지속되는건 아니다.  

속도도 빨라지고 잡념도 줄어든 것 같은데 발음이 꼬이고 호흡도

불규칙한 순간이 온다. 그때, 꼬이는 발음일지라도 평소처럼 계속 해주면

정신적으로 한 단계 더 나아진다. 발음, 발성은 더 다듬어지고 눈, 입,

귀의 조화는 한층 더 나아지고, 아랫배 호흡도 더 안정되고 깊어진다.

그런 불규칙하고 하기 싫은 순간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면서 자신을

시험한다.

잘 되다가 안 되는 고비가 바로 발전을 위한 도약의 단계다.

해보면 알게 된다.  

 

기쁨, 슬픔, 즐거움, 분노, 공포, 불안이 닥쳐도  마음속과 머리에서

우르르 솟구쳐 일어나지 않는다.

그때 알게 된다. '이게 휘둘리지 않는다는 거구나'라고... 냉혈한이 되는게 아니라 같이 기뻐해 주고, 같이 슬퍼해 주지만 마음이 들고 일어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되 더 이상의 '전도망상'을

하지 않는다.

고요한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서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신도 몰랐던

아주 어릴 때 기억들까지 생각이 나다가 사라진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것은 뇌의 어느 부분이 일정하고 끝없는 자극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한다. 소리 내서 읽을때 가장 자극을 많이 받는 곳이 바로 두뇌다.

소리가 만들어 내는 머리 공명은 뇌를 골고루 자극 하면서 발달 시킨다고

한다. 뇌가 균형을 잡는 것이다.

기억을 가장한 이런 잡념들이 없어진 자리만큼 고요한 시간은 더 늘어난다.

그리고 잘 나가다가 가끔 느닷없이 웃음, 울음, 폭풍 같은 분노가 생길 때도 있다. 그 중에서도 분노가 가장 오래 버틴다. 그만큼 '내가 옳아', '

나만 억울해'등의 자아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이 옅어지다 없어지고 나면,  이번에는 다른 뭔가가 튀어나와

또 자신을 시험 한다. 그럴 쯤이면 그것에 조차 자연스레 길들여져

그냥 지나가게 한다. 어떤 때는 자신이 생각 했던게 바로 현실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도 주기적으로 반복되다가 이또한 잡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별 생각 없이 흘려 보내게 된다.  

이런 것들이 되풀이 되면서 실생활에 닥치는 여러가지 일들도 마음의

흔들림 없이 보내게 된다. 물론 강도가 아주 센 일들은 잠시 마음이

미묘해지면서 머뭇거리다 중심을 잡는다.

 

그리고 속도를 빨리해서 읽는게 좋은 점은 실생활 대화에서  상대방의

말을 빠짐없이 느릿하게 다 알아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120km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목적지가 가까워 졌을때 속도를 정상

속도로 줄이면 주변 사물들이 갑자기 느리게 느껴진다. 120km로 달려도

운전자는 휙휙 지나가는 사물들이 무엇인지는 다 안다. 그와 똑 같다.

대화할때 상대방의 말이 느리고 정확하게 들린다. 몇 배속으로 정확하고

빠르게 읽다보니 일반 대화는 아주 느린 상태로 들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화할때 자기 말이 빨라지는 것은 아니고 자기 목소리를

자기가 들으면서 정상적인 속도로 얘기를 한다.

 

한글을 익숙하게 읽은 눈은 어떠한 한글 책도 틀리지 않고 소리 내서

읽는다. 심지어 영어책을 읽어도 배웠던 문장들은 단숨에 정확하게

읽어 낸다. 외국어 공부를 할 때도 해당 외국어 책을 정확하고 빠르게

소리 내서 읽는 훈련을 거친 후, 그 나라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배우들의 대화가 잘 들린다. 외국어 대화의 문제점이 원어민의 말 속도를

외국인이 우리가 못 따라가서 놓치게 된다.  이런 것도 책을 눈으로

보면서 입으로 정확하고 빠르게 발음하다 보면 해결된다.

단, 소리내서 읽는 책은 한 권의 책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 좋다.

 

뭔가를 제대로 하려고 실행하다보면 벽을 만나게 된다.

대충 편하게 살았으면 만나지도 않았을 벽이다. 

하나의 벽을 겨우 부수고 나아가면 또 다른 벽이 나타난다.

다시 좌절하지만 그 벽을 부수고 다시 나간다.

부수고 다지고 하는 과정이 내가 걸어가는 길을 단단히 잘 다져지게 하는

구조물이 됐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벽은 그것을 계속 하는동안 주기적으로 나타날 거라는 사실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받아 들이게 된다. 소리내서 읽는 책을 계속

바꾸면서 하는 사람도 있고 한 권을 평생 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 취향대로 선택하겠지만 그 차이는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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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하늘사랑
글쓴이 : 주님과베드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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