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율법
신약성경의 서신서에서 구약의 율법을 폐했다는 말은 무슨뜻입니까? (히7:18-19)
간단하게 말해서 구약의 율법에는 크게 계명과, 제사가 있습니다.
(세분하면 네가지 혹은 그이상으로 구분되기도 합니다.-시119편)
계명은 인간이 지켜 행해져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고, 제사는 지켜 행해져야 할 말씀을 인간이 어겨 불순종함으로써 받아야 할 죄의 심판을 짐승으로 대신 속죄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그런데 율법중 이 계명은(십계명,윤리강령,도덕법....)애굽을 떠나 이스라엘 민족의 공동체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가나안땅에 도착하기까지 애굽의 모든 법과 우상의 때를 벗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백성 가운데 꼭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40일을 금식시킨뒤에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을 받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세부사항들을 말씀합니다.
성경은 이 율법의 기록자가 하나님이 직접 쓰신것이라고도 하고(출31:18, 32:16, 34:1,28, 신4:13, 9:10)) 천사가 썼다고도 하며(행7:53) 모세가 말씀을 받아 적은것(출34:27)이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구약의 복음)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말씀대로 지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애굽의 문화 사상 종교에 길들인 그들이었기에 어느 누구도 온전히 지킬수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광야생활에서의 척박한 삶은 애굽을 동경하기에 이르렀고 그들의 죄는 율법을 통해 점점 더 심각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제단위에는 그들의 죄값으로 속죄의 피가 강같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율법(계명)의 기준으로 점점 드러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해 매일같이 드리는 이 율법의 속죄제사는 의미가 없는 형식으로 탈바꿈 되고 말았으며 세월이 흘러 왕조시대에 이르러게 되자 이 율법의 속죄제사는 점차 제사장의 배를 불리는 외식과 위선으로 탈바꿈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선지자는 타락하여 사랑과 평화를 외치며 영적타락을 더욱 부채질 하였습니다.
참 선지자가 나타나 회개와 결단을 촉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면 오히려 사람들은 자기귀에 듣기에 좋은 거짓선지자들의 말만듣고 참선지자를 핍박하였습니다.
바울이 율법을 폐했다는 말은 바로 이런 상황과 뜻을 두고 한말입니다.
주님께서 온 인류를 위한 영원한 십자가의 속죄희생으로 새법이 제정되어서 이제 옛 구약의 하나님의 말씀이 무가치하게 된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최종적 약속이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땅에 진정한 평화가 올것을 선지자들에 의해 예고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약속이 성취 완성되었기에 이제 율법은 낡은 옛것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잘아시다시피 십자가의 대속이 이루기 까지 우리 주님은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시고 율법을 완전케 하러왔다고 하셨습니다.
(마5:17)
이로보건데 주님께서도 생전에 율법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든것이 아니라 율법을 더욱 더 율법되게 만든것입니다.
무슨 뜻인가요?
아까도 말씀드리다 시피 율법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그 내용이 613가지나 되는데 이 모든것을 인간이 지켜 행하게 하도록 되어져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율법을 잘 지켜 행하여 죄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땅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할것입니다.
우리의 열심과 노력으로도 얼마든지 잘 지켜 행할수만 있다면 담대한마음이 생겨 하나님앞에 자기의 의로 나아가 상받기를 원할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우리가 어느것 하나라도 제대로 지켜행할수가 없기 때문에 이 율법앞에서 우리의 죄된 모습만이 드러나게 되어 거룩한 하나님앞에 두려운마음으로 겸손히 설수 있도록 세상끝날까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율법을 율법되게 했다는 것은 율법을 이전보다 더욱 세밀하게 잘지켜 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로 부터 예견된 율법의 요구와 약속을 예수님께서 홀로 다 이루신다는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앞에 우리의 죄된 모습으로는 나아갈수 없으니 주님께서 이 율법의 요구를 십자가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성취시킴으로서 율법의 요구에서 벗어나 십자가의 은혜의 선물을 받을수 있도록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와 약속은 무엇입니까?
세상법아래 묶여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우리가 다 지켜 행할수 없는 것이지만 이 율법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무익하고 어리섞고 허물많은 자인것을 알아 끊임없이 율법을 통해 십자가로 나아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말한 율법의 완전성인것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자자나 폐하러 온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마5:17-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것을 두고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몽학선생 이라고 까지 하는 것입니다.(갈3:24)
그렇습니다.
율법은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우리는 지켜 행할수 없으며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지 죄를 알게해주는 무거운 짐이었기에 이제는 율법을 지켜행하여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죄를 깨닫는 이 율법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앞에 나아가는 몽학선생으로 우리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한마디로 죄를 발견하고 깨닫는 도구로 율법이 우리앞에 있다는 것입니다.(롬2:12, 롬3:20)
모든 사람은 죄를 깨닫거나 발견하지 못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죄인임을 깨달을때 주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법은 세상사람들에게 공평합니다.
법대로 착하고 좋은일하면 상을주지만 법을 어기거나 불순종하면 그 죄값을 치룹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천국의 백성으로 살기 원한다면 그 원함으로만 되는것이 아니라 반드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해야하며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죄인됨을 알고 거듭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인됨을 알수 있는 것은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나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악할뿐임을 진심으로 선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수 있도록 하는 도구가 바로 율법인것입니다.(롬3:20)
잘아시다시피 우리 주님은 생전에 사도들과는 달리 율법의 무용론을 주장한다거나 폐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의 정신을 존중하였습니다.(마8:4,12:5,19:17......)
하지만 우리 주님은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육신의 깨끗한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감취어진 마음의 더러운 생각이 문제였기 때문에 주님은 인간이 율법의 수십,수백가지를 아무리 잘지키고 행하더라도 그중에 한가지만 마음으로 어겨도 죄인이 되어 저주와 멸망을 당할수 밖에 없는 연약한 자임을 율법을 통해 깨닫기를 원했었습니다.(마5:27-48)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을 이루시고 죽음에서 부활승천 하신뒤 사도들에 의해 새언약의 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행2:14-36)
그래서 한때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며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던 사울은 다메섹동산에서 주님을 만난뒤 주님의 마음을 흘러받고는 죄와 사망의(율법에서) 놓임을 받아 생명의 복음안에서 자유롭게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알수 있기를 원했던 것입니다.(롬8:1-2)
바울은 우리 모든사람은 온전히 그 율법을 지켜 행할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그런 이 율법의 기준을 벗어버리고 (율)법아래 매여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주님만을 마음으로 의지하고 바라는 삶을 살기를 바울은 선포했습니다.(롬,갈)
그렇습니다.
오늘날 죄로인해 죽었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새생명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와같이 하나님의 생명의 복음안에서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삶이 아닌 말씀을 자유롭게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주를 믿으니 율법의 기준을 떠나 복음안에서 아무렇게나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때 그 후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옳게행한것은 그 나타난 선한 결과로 인해 주께 영광 돌리게 되며,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않는 죄와 악한 모든것은 자신의 마음도 하나님의 마음과 같이 싫어진바 되어 멀리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서신서에서 이러한 깨달은 복음강령을 자그마치 오백여가지 이상 주안에서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안에서의 이끄심인 것입니다.
만약..... 어느 누군가가 말하기를 예수를 믿어 새사람이 되었으니 이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는 힘들지만 신.구약의 성경말씀대로 열심히 지켜 행하자고 한다면 이는 제 2의 율법주의로 흘러갈 위험성이 있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은 우리가 주안에서 생명을 누리는데 있는것이지 지킬수도 없는 법을 가지고 내가 열심히 말씀대로 살고자 나아가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의 보게될때의 정확한 기준은 나는 이렇게 할수 없습니다 라는 자신의 진짜 연약하고 추한모습을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힘을 의지하지않고 주님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성경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내힘으로 살수 없음을 알아 주님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대로 산다는것은 우리의 죄된마음을 의의마음을 바꾸는것을 의미합니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잘못된 행위를 일일이 고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우리의 죄악된 행위를 그대로 보고 주님께 솔직히 아뢰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될때 자신의 의는 무가치하게 여기고 모든것을 주님께로만 영광돌릴것이며 우리의 죄와 허물은 저절로 싫어져 멀리하게 되는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에서 먼저 주의 의를 위해 갈구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며, 마음에서 죄와 허물은 저절러 싫어진 바 되어 멀리하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안에서 자신의 마음을 바꾼 신앙인의 삶인것입니다.
신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살인이나 싸움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미운생각이 나오고, 우리가 말씀대로 간음하지않아도 저절로 음란한 생각이 나는 것이 우리육신의 본능적 모습인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사도들은 신약성경을 통해 수천년간 간직하고 지켜왔던 이 율법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속의 죄와 허물을 깨닫기를 원했었고 이사실을 알때 율법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복음앞으로 이끌어가는 완전한 길잡이로 사용되어지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처음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믿고 구원받을려고 할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믿어야 될지 잘 모르기 때문에 교인의 의무를 지키면서 교회의 법이나 교리나 신조를 배우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신앙이 깊어지면 말씀대로 살면 구원관이 더 확실하다고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 다니면서 예배와 십일조를 드리면서 시간나는 대로 성경공부에도 참석하여 열심히 주님의 말씀을 배웁니다.
하지만 이는 주님을 알아가는 배움의 과정일뿐입니다.
신앙은 실제입니다.
죽음바다에 빠진 죄인된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생명되신 주님을 직접 만나 건짐을 받고 교통하는것이 신앙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비록 베드로나 도마나 바울과 같은 똑같은 방법이 아닐지라도 각사람마다 실제이신 주님을 만나는 과정을 이론과 배움이 아닌 개개인적으로 직접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율법은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할때 더욱더 죄인으로 정죄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르고 교회에 다니지 않았을때는 양심의 법으로 자기의 옳은 생각과 판단으로 아무거리낌없이 살아왔지만 회심을하여 주님을 알고 교회에 다니고 말씀을 정독하며 생활할때는 말씀속에 점점 자신의 죄악들이 드러납니다.
여기에 매이면 하나님은 엄격한 심판의 하나님으로 여기게 되어 혹시 말씀에 벗어나지않나 하고 제대로 자유나 쉼을 누리지 못하는 답답한 상태가 되고맙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는 이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의 죄는 과거나 현재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전생애가 죄의 심판을 끝내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생명을 얻는 복음을 마음으로 나아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속죄를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얼마나 무익하고 형편없는 존재인가를 알게 해주시기 위해 거룩한 말씀(율법,혹계명)을 통해 우리의 완악하고 죄된 존재를 말씀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죄에 울부짓는 우리를 (나를)초청하고 불러서 내가 그죄를 다 갚았다라고 하시면서 십자가로 나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중요한것은 이 복음을 듣고 알았다고 해서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께서 날위하여 십자가에서 하신일과 내가 그로인하여 의롭게되엇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것이 이론과 지식이 아니라 실제의 경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말하여도 각자가 주님을 만나는 실제의 경험을 갖지못하면 전부 지식과 학습으로만 그칠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이 실제의 경험을 갖게 되는것입니까?
그 사실은 단 한가지 오직 회개(회심)밖에 없습니다.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단 한번뿐인 회심+회개(돌아섬,방향전환)이 실지의경험입니다.
이 회개는 단순히 죄고백만의 차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옥으로 끌려들어가는 무력한 자신의 모습을 십자가앞에서 생생하게 발견해야합니다.
지옥문앞에서 무서워 벌벌떠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발견해야합니다.
이 회개는 고상하고 우아하게 자신이 옛적에 지은 죄나 잘못을 시낭송하듯이 읖조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악된 존재를 발견하고 비참한 모습을 어느순간 영안에서 생생하게 느껴지면서 주님 살려주세요!!. 주님 저를 불쌍히여겨 주세요!!, 이렇게 단발마와같은 비명을 지르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자신이 지금껏 옳게 살아왔다고 자부한 모든나날들이 온통 죄악뿐임을 알게되었을때 십자가앞에서 부들부들 떨며 주님의 긍휼하심을 기다리는 것이 바로 회개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실지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회개가 없이 살아오다보니 모든 사람마다 각자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오면서 지은죄와 잘못한 모든 허물은 입으로읖조리듯 회개자복합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에 요구되는 것은 자신의 옳은 행위로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가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줄로 생각합니다.
안타깝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신약성경의 서신서에 율법의 폐기나 무용론을 주장했다는 것은
첫번째로 모세이후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날마다 드렸던 번제와 속죄제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번제로 완성시켰기 때문에 내 죄를 위해 내가 또 다시 속죄하지 않도록 영원히 폐했다는 것입니다.(히7:18-19)
이것은 제일 중요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가슴아프게, 자신의 지은죄를 위해 구약의 속죄제사처럼 죄가 드러날때 마다 또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필요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회개로인해 우리도 주와함께 영원히 십자가에 못박혔음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대속은 단한번의 제사로 영원히 우리죄를 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또 다시 우리육신에 의해 죄가 드러난다면 어떻게 합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자의 허물은 다시금 드리는 회개가 아니라 통회자복입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는 믿는자가 또다시 드러나는 죄의 이 부분까지 다 합쳐 회개한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단 한번 사단에 속한자가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설때가 회개의 모습인것입니다.
회개는 입술로 죄를 고백하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바꿔 돌아서는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즉 사단의 종노릇 하였다는 것을 알게되어 그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하나님의 길로 돌아서는 것을 회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한 이후 또다시 죄와 허물이 드러날때는 회개가 아니라 이런 나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앞에 나아가 마음으로 통회하며 입술로 자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우리보통 일반교회는 이것까지 회개라고 합니다.)
이럴때 자복은 죄지은 범죄목록을 반성문을 쓰듯 입으로 자복하라는게 아니라 자신은 이렇듯 육신아래 죄지을수 밖에 없는 자임을 비통한 심정으로 아뢰며 그 죄악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미워하는것을 의미합니다.
그럴때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성령님으로 하여금 싫어하는 마음을 주셔서 그 죄악을 벗어날수 있도록 이끌어 가실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믿고 거듭난 우리는 주앞에 서는 날까지 자신의 죄를 위해 대속하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불뱀에 물려 죽게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대높이 달린 놋뱀을 바라보면 살게 되듯 말입니다.
두번째로 율법의 폐기나 무용론을 주장한것은 율법의 내용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행위로 나아갈려고 하는 것을 폐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더하거나 뺄수도 없습니다.
율법(계명)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주안에서 새생명을 얻어 거듭난자는 율법 즉 계명은 나의 죄사함과 구원과 상을 위해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주안에서 믿음으로 모든것을 소유했으니 이후의 삶은 나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믿음으로 이끌림 받아 살아야하며 행해져야 합니다.
만약 믿는자가 율법(계명)을 가지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나 자랑을 위해서나 높임을 위해서 한다면 그 사람은 행위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믿는자가 율법(계명)을 가지고 죄사함과 구원을 위해서 지켜산다면 그사람은 율법주의자가 되고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으로 내가 행할수 있는것과 그렇지 못한것을 떡 하니 갈라놓고 율법을 잘지켜 행하는 것을 드러내고 자랑한다든지 못하는것을 가리고 숨기운다든지 하는 그런 위선적 모습은 행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것은 자신의 마음입니다.
다른사람은 속일수 있지만 자신의 마음은 속일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일우선 자신의 양심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모든 행위에는 고발을 당할것입니다.
그럴때는 즉시 통회자복(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를 십자가에 죽이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교회안에서 말씀대로 여러가지 일을 행해도 겉으로는 주님께 영광돌린다고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그 모든 영광을 누리기를 원했고 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것은 꽤 오랜시간이 걸릴수도 있으며 매일 자신과 싸워야 되는 힘든 과정이 따라옵니다.
만약 복음의 세계를 몰라서 지금까지 말씀대로 지켜 행했다면 그것은 죄가 아니라 허물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했는데 이제 알았다면 마음을 바꾸는 은혜를 입어야 할것입니다.
순수한 마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은혜의 십자가의 세계를 깊이 알지못해 전통과 관습으로 열심과 노력을 통해 주님앞에 나아가는 분들은 십자가의 복음의 세계를 듣고 앎으로서 자신의 마음을 쉽게 바꿀수 있는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던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고전10:31
이것이 바로 성령안에서 이끌림받아 말씀안에서 사는 삶인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성경을 지켜 행하는것은 율법적 행위주의적 삶이고 성경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하게 될때는 자기의가 빠진 믿음의 삶이 되기때문에 복음과 은혜의삶이 되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율법주의자가 될수도있고 복음주의자가 될수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ㅡL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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