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평안의 복음의 신발

하나님아들 2012. 9. 18. 16:56

평안의 복음의 신발

 

에베소서 6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로마 병정들이 신던 신발은 현재 우리 신발과 많이 다릅니다. 그들의 신발은 동과 주석을 섞어 놓은 놋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신발 모양은 발을 덮은 부분과 정강이 받이가 있었습니다. 정강이 받이는 영어로 그리브(Greave)라고 하는데 축구 정강이를 보호하기 위한 덮개와 같은 것으로서 그냥 보면 겨울 부츠(Boots) 신은 같이 보입니다.

 

신발 윗부분의 끝은 부드러운 놋으로 되어 있고 절대 끊어지지 않는 가죽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신발 바닥에는 7.5 센티미터 정도의 송곳같은 쇠못(Spikes) 부착되어 있습니다. 만일 신발에 차이거나 밟히면 날카로운 못에 찍히는 같은 같은 효과가 나타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평화의 복음의 신발이라고 표현하면서  평안 (Peace) (eivrh,nh) 또는 평강을 로마 군사의 신발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바울을 통해 복음의 신발과 평강을 연결시키셨습니다. 이는 평강은 신발처럼 우리를 보호할 아니라 송곳 같은 스파이크를 통해 적군을 아래 짓밟는 공격용 무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신고라는 헬라어를 살펴 보아야 하는데, 단어의 원어는 휴포데오라고 되어 있는데 휴포 아주 강하게 아래로라는 뜻이요, “데오 묶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조이게 묶다’, ‘떨어지지 않게 붙들어 메다라는 뜻입니다. , 신발을 조여서 메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평강의 신발을 신는다는 뜻은 마치 로마 군사가 신발을 조여서 신고 있는 것처럼 평강을 붙들어 메다’, 평강을 우리 마음, 지식과 감정과 의지에 붙들어 놓다라는 뜻이 됩니다.

 

, 이렇게 신발을 조여서 신은 상태가 되면 준비가 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신발을 조여서 신고 발바닥을 땅바닦에 딱붙이고 차렷하면 준비가 것입니다. 영적으로 말씀드리면 평강이 우리 마음 속에 든든히 자리 잡고 있으면 우리는 모든 면에서 영적 전투에 대하여 승리의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가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평안의 개념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평안은 원어로 에이레이네이인데, 원어의 성경적 개념, 헬라적 개념은  어떤 힘이 있어서 안정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마치 팽이를 돌리면  뱅글 뱅글 도는데 팽이에 힘이 있는 동안에는 변함없는 것과 같습니다. 배가 바다에서 힘있게 앞으로 계속 전진할 변함없이 달리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하늘의 구름을 만들며 전진하는 비행기! 그것이 헬라적 개념의 평강입니다. 정지 상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의 평강은 멈춰져 있는 것을 평강이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한한 에너지가 있기에 에너지에 의해서 자신의 사명을 계속 감당하고 있는 상태가 평강입니다.

 

그러므로 평강의 반대 개념은 힘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비행기가 연료가 떨어져 추락하는 상태입니다. 팽이가 원심력을 잃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질서와 혼탁함과 무너짐과 궤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 평안의 반대입니다. 혼란과 초조함이며 감당할 없음으로 인한 불안이 평강의 반대 개념인 것입니다. 이는 무한한 힘의 근원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생명력이 죽어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평안을 잃는 것은 우리 영혼이 혼탁하여지고 영력을 잃은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새 생각지도 않은 죄악의 상태로 빠져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무질서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영혼의 마음 속에는 평강이 사라지게 됩니다. 꾸준히 미는 인내력이 없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평안을 잃은 모습은 마치 어떤 군인이 더위와 피곤에 지쳐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이것이 평강을 잃을 , 평안의 복음의 신발을 신지 않았을 때의 상황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평강은 죄와 상극을 이룹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는 순간 마음 속의 평강은 사라집니다.  , 무질서에 빠지고 궤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어둠에 처하여지더니 미아가 되어 방황을 합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죄를 범할 평안을 가져다 주는 무한한 은혜의 보좌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락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평안의 복음의 신발이라는 말은,  복음으로부터 임하는 평강을 말하며 이는 믿음을 통한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로부터 내려오는 평강을 붙든 것을 의미합니다. ,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됨으로 누리는 하늘의 평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영어로 “Peace With God”이라고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인하여 죄사함을 누리는 상태에서 하나님과 화목하였음을 말합니다. 또는 “Peace of God”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바로 하나님의 평강 우리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평안은 하나님이 소유하신 평안이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안이란 말씀입니다. 평강은 하나님의 승리하는 힘이며 또한 모든 상황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자명한 뜻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이러한 승리의 평강이 우리의 심령과 속에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길 원하십니다.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감정에 임할 사탄이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사탄이 아무리 우리의 마음을 무너 뜨리려고 난리를 쳐도 우리 마음은 마치 발을 땅에 세게 붙이고 조금도 요동치 않는 그런 상태와 같습니다. 전혀 요동치 않게 하는 인내와 지구력이 바로 은혜의 평안인 것입니다.

 

반면에 평강이 우리 마음에 없을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초조하여 집니다.  걱정과 염려와 모든 짜증과 신경질과 삶의 요동들이 우리의 마음과 삶에 가득하게 됩니다. 여러가지 외적 조건은 갖추어져 있는 보여도 그럼에도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이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감정 변화가 심합니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될 우리 마음은 복음의 평안이 임합니다. , 우리는 복음의 평안의 신발을 단단히 착용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탄이 우리에게 가장 쉽게 접근하여 다스리는 부분이 감정 부분입니다. 감정 부분은 만큼 예민한 부분이라 우리는 사탄에 속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에 사탄의 역사가 있을 , 좋아하는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게 하여 불륜을 저지르게 합니다. 싫어하는 마음을 미워하는 감정으로 만들어 결국 혈기를 부리고 무서운 죄를 범하게 합니다. 나아가 살인 죄를 범하도록 유혹합니다. 특히 사탄의 통치가 우리의 감정을 주관하면 우리는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욕설과 혈기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혈기를 부리는 때는 사탄이 우리의 감정을 주장했다고 보면 전혀 하자가 없습니다. “사람이 (혈기)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1:20).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할 없습니다. 오직 유일한 방법은 평안의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탄의 역사,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는 역사가 완전히 차단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을 붙든 자들에게 욕설과 혈기란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불의에 대하여 분노할 수는 있어도 절제를 잃고 폭력을 행사하는 짐승같은 모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제 로마 병사의 신발의 정강이 받이를 살펴봅시다. 바울은 평강을 정강이 받이와 연결하였습니다. 정강이 받이는 동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병사의 다리가 멍이 들거나 상처를 입거나 뼈가 부러지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특히 특수 사명을 받은 병사들, 예를 들어 연락병이랄지 특수 지령을 담당하는 병사들은 다른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산속이나 지름길로 다녀야 때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특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아주 험난한 길을 가야 했습니다. 만일 이들이 정강이 받이를 하지 않는다면 다리에 심한 타박상과 상처를 입게 것입니다. 다리에서 상처가 나며 피가 많이 것입니다. 그리면 분명 신속하게 움질일 없게 됩니다. 만일 뼈가 뿌러지면 아무리 훌륭한 용사라 할지라도 자신을 보호할 없습니다. 만일 특수 지령을 받은 병사의 다리에 문제가 생기면 그에게 맡겨진 중대한 특수 사명은 실패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받은 병사는 반드시 정강이 받이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험난한 길에서, 바위 산벽에서 그의 다리가 보호를 받게 것입니다. 따라서 계속 사명을 감당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데 있어서 아주 삭막한 상황과 또한 어려운 대인관계를 맞이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부부 관계가 어려워지고 계속 오해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몸에 병환이 찾아 왔을 때가 있고 패역한 일들과 배은 망덕한 일들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오해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만일 정강이 받이가 없으면 멍이 들고 피가 나고 뼈가 부러지고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강이 받이로 상징되는 평강을 취하고 있으면 삭막한 상황과 어려운 대인 관계 속에서도 전혀 상처 받지 않고 멍들지 않은채, 계속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 나갈 있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 사명을 감당하는 병사는 홀로 급한 길을 다니며 적군을 만나 일대일로 붙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병사를 향한 적군의 일반 공격은 정강이를 발로 차는 것입니다. 만일 정강이 받이가 없으면 순간적인 고통으로 고개를 숙이게 되고 그러면 적군은 칼로 목을 내리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놋으로 만든 정강이 받이를 신고 있으면, 적군이 아무리 발로 차도 절대로 고통 가운데 쓰러지지 않습니다. 고개를 떨구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선교사들이나 목회자들을 흔히 특수한 사명을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특별한 고통스런 환경이 주어집니다. 어려운 만남과 대인관계와 오해가 종종 주어집니다. 이때 만일 그들에게 평강이라는 무기가 없으면 그들의 사명은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현재 땅의 수도 없이 많은 목회자들과 선교사님들이 우울증에 걸려 있습니다. 사실 약간씩 노이로제 증상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의 피해 의식 때문에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회피하는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이 많습니다. 사모의 경우는 심각합니다. 이들은 특이한 외로움을 겪습니다. 설명하기 힘든 정신 질환에 걸려 있는 사모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정강이 받이로 상징되는 평강을 소유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명의 길을 걷지 못하고 가다가 지쳐 멍들어 상처 받아 쓰러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적군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언제나 특수 사명을 받은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평강” “복음으로 말미암는 평강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여야 것입니다.

 

일반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 관계에서,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고용주와 고용원의 관계에서, 친구 관계에서, 교회 성도와의 관계에서, 목사와 성도 관계에서 치고 채이면서 얼마나 심한 마음의 멍들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강을 유지한 사람들은 모든 불편한 대인 관계 속에서도 마음이 병들지 않고 오히려 영롱하고 아름답게 훈련된 사람들입니다. 무서운 병마와 감당할 없는 저주스런 사건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마음이 병들지 않고 수정처럼 거룩하고 맑은 사람이 되는 것을 발견할 있습니다.

 

제가 과거에 섬기던 교회에 류게릭 병을 앓고 있던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주스러운 병마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는 것을 때가 많았습니다. 이는 바로 그녀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신발을 신었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탄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계속 우리의 정강이를 발로 찹니다. 이때 차일 때마다 정말 아픕니다. 가시 돋힌 , 그리고 감당할 없는 일들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가 많습니다. 사탄은 사건과 동시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리의 마음에 틈이 생기면 잽싸게 들어와서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려고 합니다. 미움과 불안과 짜증과 증오와 탐욕과 헤꼬지와 변덕, 시비, 혈기 등을 부리게 만들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앞에서 다스리는데 최고로 필요한 것은 복음으로 말미암은 평강인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인 믿으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4 6-7절은 평강의 복음의 신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평강이 지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킵니다. 어디로 부터 지킵니까?  사탄이 우리의 마음을 장악하는 역사로부터, 감정을 다스리려는 역사로부터, 짜증, 혈기, 초조, 불안, 극한 외로움, 견딜 없는 증오, 악한 계획들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 현상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평강의 능력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셋째로, 평강은 스파이크, 발바닥의 송곳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송곳으로 로마 병사는 발을 땅에 박고 흔들리지 않게 있습니다. 말씀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까지 물러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바람이 오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폭풍이 치나 그리스도의 평강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감당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가만히 살펴 보기 바랍니다. 언제 사람들이 귀한 일들을 때려칩니까? 평강을 잃을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포기합니다. 사명을 포기하면 만큼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이렇게 되면 결국 나중에 일이 없어서 비참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것은 평강을 잃은 가운데 귀한 사명들을 때려쳤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기 전에 움직이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인내하기 바랍니다. 인내의 힘은 평강에서 나옴을 믿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움직일 계획이 없는데 자기 맘대로 자꾸 움직이는 사람들은 평강이 없어서, 신발에 스파이크가 없어서 자꾸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하실 가며 오라 하실 있으려면 마음에 복음의 평안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평강은 공격용 무기입니다.

로마서 16 20절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선포하고 있습니다. ‘상하게라는 말은 포도 열매를 포도주 틀에 넣어 즙을 만들어 버릴 사용하는 동사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실수로 포도를 밟아 적이 있으십니까? 바닥에 짓이겨진 포도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처럼 상하게라는 뜻은 뼈를 상하게 하다’, ‘완전히 작살이 나서 가루가 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가가와 부활은 사탄을 상하게 만듭니다. 짓이깁니다. 심판의 포도틀에서 사탄을 포도즙으로 만드는 장면입니다. 주의 복음은 원수의 뼈를 작살나게, 가루가 되게 합니다. 평안의 복음의 신발은 신은 신자에게는 두려움이 있을 없습니다. 승리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대장이신데 두려움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승리하신 주님 안에서 당당합니다. 이는 전능하시며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대장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 이후로, 사탄이 지금 있을 있는 유일한 곳은 여러분의 평강의 신발 아래입니다.  너희 아래라는 말은 여러분의 평안의 복음의 신발 송곳 아래를 말합니다.

 

여호수아 1 3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거인들과 험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발바닥으로 걸으면 땅이 자신의 땅이 되었습니다. 땅의 거민들과 험한 일들은 계속 머리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여야 일은 걷는 일입니다. 평강의 복음의 신발을 신고 힘차게 걷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고 전진하며 전진하고 전진하는 , 그것이 평강의 힘입니다.

 

특히 다른 군병들과 함께 같은 신발을 신고 행진할 기세가 얼마나 등등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평강을 누리는 자들이 함께 평강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함께 전진하고 전진할 , 사탄의 권세를 밟아 버리게 됩니다. 나의 죄성과 사탄의 역사를 이기고 이기면서 승리의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시간 성령 안에서 평강을 소유하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복음의 능력 가운데 주시는 평강을 소유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평안입니다. 이는 우리로 영적 전쟁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는 능력이요, 사탄에게 조종 당하지 않고 계속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의 평안의 신발을 착용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어려운 인간 관계 속에서든 계속 전진하고 전진할 있는 하나님의 능력, 우리 모두가 복음의 평강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하기를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오스왈드 챔버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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