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아들 2012. 9. 18. 16:41

“때가 가까움이라”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

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시1:1-2 주야로 묵상하며 읽는) 자와 ‘듣는’(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 전하는 목사들의 말을 좋은 마음으로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마22:37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지키려고 애쓰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벧후3:6-7 노아 때에 물로 심판하신 것처럼,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마지막 때가 가까움이라).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기 전에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벧후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벧후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벧후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나 ‘주의 날이’(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는 그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사람의 몸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불에 타서 재가 되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불에 타서 재가 되리니) 너희가(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어떠한 사람이(어떠한 신앙을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약1:27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경건한 신앙을 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는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사람의 몸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재가 되려니와) 우리는(베드로와 예수님의 제자들은=지금은 성경말씀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려고 애쓰는 기독교인들은)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좇아 의롭게 신앙하려고 노력하였는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새 하늘과 새 땅을(계21:1) 바라보도다.

 

이 세상의 마지막에 불로 심판하시기 전에,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좇아서 바르게 신앙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신앙을 하는 자들이 되려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예언의 말씀은 크게 보면 성경 전체의 말씀이고, 적게 보면 요한계시록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시1:1-2 주야로 묵상하며 읽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읽어야 합니다.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남을 미워함이 마음에 가득 차 있으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주님의 정결한 신부며, 정결한 처녀입니다.

 

시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마음이 열리고 ‘영안’(영의 눈)이 열려야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의 비밀을 알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마음과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어,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였습니다.

 

눅24: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기독교인들의 마음이, 닫힌 마음도 있고 열린 마음도 있습니다.

창세전부터 감추어져 있었던 ‘복음’(비밀의 말씀)을 전하는 예수님을, 마음을 열고 영접한 제자들이 있는 반면에, 마음이 닫쳐서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을 박는 일을 한 유대교인(바리새인과 사두개인=교파의 교인)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복음을 전하여 주었는데도, “유대교인들은 할례(육신의 할례)를 받아야 하며,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오늘날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요5:39,딤후3:15) 이렇게 분명히 말씀해 주셨는데도, 교파 사상에 물이 들어서 “우리 교파가 최고다.” “우리 목사님이 최고다.”라고 주장하며, 성경말씀을 멀리하는 이런 기독교인들은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최고는 예수님이 최고이며, 성경말씀이 최고입니다.

예수님이 높습니까? 목사님이 높습니까? 예수님이 높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과 ‘목사님의 말’(사람의 계명)이 다르면, 당연히 ‘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좇아야 옳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 중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요1:1,14 말씀=성경말씀)보다도 자신들의 교파와 교단을 더 높이고,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를 최고로 알고, ‘성경말씀’보다 ‘목사의 말’을 더 높이 받들고 섬기는 기독교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법정에서도 판사가 판결할 때에 [‘우리나라 법’(형법이나 민법 등)으로] 재판하듯이, 예수님께서도 백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실 때에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성경말씀’(하나님의 법)으로 심판합니다.

목사들이나 교인들은 심판대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되고, 예수님은 보좌에 앉아서 심판을 하십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심판하시는 예수님과 심판을 받을 목사(사람)의 말씀이 다르면, 당연히 ‘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요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저버리다 = 약속을 어기다. 은혜를 모른 체하다.

‘나를’(예수님을) 저버리고 ‘내 말’(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믿는 자들을)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예수님이 하신 말씀=성경말씀)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받지 아니하는 기독교인들을, 예수님께서 백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실 때에 ‘성경말씀’(하나님의 법)으로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대로 기분에 따라 심판하지 않고, ‘하나님의 육법전서’인 ‘성경말씀’으로 재판을 한다.”는 것입니다.

 

슥5:3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

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

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성경말씀’(하나님의 법)으로 심판하여 저주를 받게 하고, 의를 행하는 자는 복을 받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시다가 때가 되어, 약 이천년 전에 창세전부터 감추었던 ‘비밀의 말씀’(복음=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전하여 주시기 위해 잠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기까지 하시면서 복음(새 언약=신약=성경말씀)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제자들이 ‘영생의 말씀’(복음=새 언약=성경말씀)을 듣기 위하여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요6:66-68).

지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지금 이 세상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의 말씀’(복음=새 언약=성경말씀)을 듣기 위하여, 하늘나라까지 올라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성경에 다 있습니다.

지금 성경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는, 예수님이 오신 그 당시에 따라다닌 제자들과 같은 차원의 신앙인들인 것입니다.

 

반대로 ‘성경말씀’보다도 ‘교파의 교리’나 ‘목사의 말’(사람의 계명)을 더 따르는 자는, 바리새파나 사두개파에 속한 사람들과 같은 신앙인들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 속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일4:5-6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

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

을 이로써 아느니라.

 

‘저희는’(유대교인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교파의 교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교파의 교리와 세상 철학과, 세상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와, 예화집에서 뽑은 예화 설교 등)을 하매, ‘세상이’(요8:23 세상에 속한 교파의 교인들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사도 요한과 같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사도 요한이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유대교인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교파의 교인들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진리의 영을 받은 자들)과 ‘미혹의 영’(미혹의 영을 받는 자들)을 이로써 아느니라.

 

사도 요한과 같은 사도들이 전하는 말(성경을 바르게 전하는 말)을 듣는 자는 ‘진리의 영’을 받은 자들이지만, 사도들이 전하는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미혹의 영’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먼저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한 신앙을 하여야 합니다.

육신의 부모들도 자식들이 공부 잘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부모의 말 잘 듣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기독교인들이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십니다.

 

삼상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

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순종(順從) = 순순히 복종함.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주일 대예배, 삼일 예배, 금요 기도회, 새벽 예배, 집회, 부흥회 등을) ‘그 목소리’(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예배드리는 것보다) 낫고, ‘듣는’(성경을 바르게 풀어서 전하는 말씀을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재물을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제사(예배)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가 신약시대에는 예배로 바뀌었습니다.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 순종하는 것이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교회에서 예배드릴 필요는 없고 집에서 성경만 보라고 하더라.”고, 이렇게 들으시면 안 됩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라.”(행2:46)고 하였습니다.

“먼저 가정에서 성경을 열심히 보고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면서, 교회에 와서 예배도 드리고 집회와 부흥회도 참석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입니다.

 

잠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율법(律法) = 신이 내려주신 인간이 지켜야 할 법.

‘율법’은 ‘모세의 율법’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말씀’(복음=신약)을 ‘그리스도의 율법’(고전9:21),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약1:25)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밤을 새워가며 부르짖어 기도드릴지라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고 가증이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버리신다.”고 하였습니다(삼상15:26).

그리고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롬2:6).

미련하고 어리석고 부족하지만 성경말씀을 좇아서 살려고 노력하면 붙잡아 주시고, 깨끗하게 해주시고(요15:2), 그리고 모든 것을 맡기고 신앙하는 자의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시37:4-6).

 

요15:22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

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성경말씀을 주시지 아니하였으면, 기독교인들이 범죄하고도 ‘몰라서 그랬습니다.’라고 핑계를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성경말씀을 주셨으니 ‘몰라서 그랬습니다.’라고 핑계를 할 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을 주었는데, 자신이 성경을 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신앙을 하였거나, 거짓 목사들의 말에 치우쳐 잘못된 신앙을 하였다면,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말씀입니다.

 

백 보좌 심판대 앞에서 예수님에게 “우리 목사님이 성경을 잘못 가르쳐서 ‘우상 제물’, ‘피’(돼지피로 만든 순대도 포함), ‘목매어 죽인 것’(개고기)을 먹었으니, 목사님을 벌주시고 나는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한들, 그 말이 예수님께 통하겠습니까?

 

그 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성경책을 주었는데 네가 너무 세상을 사랑하여 ‘내 말’(성경)을 보지 않고 등한히 여겼으니, 네 죄는 네가 감당하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잠5:11-13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패할 때

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

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

니하였던고.

 

훈계(訓戒) = 타일러서 경계함.

청종(聽從) = 시키는 대로 잘 좇아서 함. 이르는 대로 잘 듣고 좇음.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불로 심판하는 그 날에) 네 몸 네 육체가 쇠패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지금 성경말씀으로 이렇게 훈계하는 것을)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성경을 바르게 전하는 목사들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라고 하며,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섭게 이 땅을 심판하실 때에,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사람의 말에 치우쳐 적당하게 신앙한 기독교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한탄의 말입니다.

육신의 정욕을 좇아 세상 재물과, 세상사는 즐거움에 취한 기독교인들의(사28:1) 입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인봉 재앙, 나팔 재앙, 대접 재앙으로 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립니다.

방사능에 오염이 되어 살과 눈과 혀가 썩어 들어갑니다(슥14:12). 또 길에는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어 있는 시체가 즐비합니다.

“시체가 너무 많아서 울지도 않고 잠잠히 내다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암8:2-3 가라사대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가로되 여름

실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니,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버리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관주 성경의 난외주에, “여름 실과”와 “끝”이란 말의 발음이 같다고 되어 있음.}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슬퍼하여 흐느껴 우는 소리로) 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날은, 바로 창세로부터 없었고 후에도 없을 ‘칠년 대환난’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고대광실과 같은 집에서 세상의 즐거움에 취하여 부르던 노래가 그치고, 전쟁과 재앙과 굶주림으로 슬피 우는 소리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시체가 너무 많으니 장례식도 하지 않고, 시체를 잠잠히(울지도 않고) 처처에(이곳저곳에) 내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르완다 내전 때도 기근과 전염병에 죽은 시체가 많으니, 사람들이 울지도 않고 잠잠히 내어버리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보셨을 것입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지금은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끝이 이르기 전에 자신들의 죄를 성경으로 깨달아 회개하여, 물세례보다 한 차원 높은 성령세례와 불세례를 받아서 ‘육성’(혈기와 고집)을 죽이고,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거듭난 새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 이때가 되면 은과 금이 있어도 먹을 양식을 살수가 없습니다.

 

겔7:19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 같이 여기리

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

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

 

오예물(汚穢物) = 더럽고 퍽 지저분한 물건.

지금은 모든 물질이 풍족하니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살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동의 이라크에서 ‘세계3차 대전’이(계9:14-19) 일어나면, 석유가 수입이 되지 않아서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지 못하게 되고, 또 농산물, 수산물, 축산물을 산지에서 소비처로 화물차가 기름이 없어서 운송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면, 그 때는 돈이 있어도 ‘필요한 물건’(먹는 식물과 생필품 등)을 구입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칠년 동안 전쟁이 계속되니(겔39:8-9)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어렵게 되어, 나중에는 금덩어리를 손에 쥐고도 먹을 양식을 구하지 못하여 굶어 죽은 사람의 시체가 길거리에 널려 있다.”는,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일점일획도 어김없이 이루어집니다.

 

욜2:1-2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찌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

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

름이 끼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같은 것이 자고 이래

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

 

“이제 임박하다.”고 하십니다. 자고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을 그 날이 서서히 온 인류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진 기독교인들에게는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한다.”고 하였습니다(눅21:34).

그래서 기독교인들에게 “거룩하고 경건한 자가 되기 위해 힘을 쓰라.”고 하였습니다.

 

벧후3:11-12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한 행실은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질 수가 있습니다(딤전4:5).

‘성경말씀’(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듣지 않는 자들은 거룩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옛 구습을 벗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은(거듭나는 것은) 짧은 시간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고 경건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연습하고(딤전4:7), 노력하는 가운데 오랜 시간 연단을 통해서 다듬어지는 것입니다.

 

약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

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국어사전에는 {경건 = 공경하는 마음으로 삼가 조심함.}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경건의 뜻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환난 중에, 어려운 가운데서도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또 자신의 믿음을 지켜 세상의 풍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 성경적인 경건입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것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마6:1-4)

기독교인들이 텔레비전 같은 곳에 나와서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자신이 구제한 것에 대하여 ‘나팔을 불면’(자랑을 하면), 하나님께 상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성경말씀)을 바르게 깨달아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려고 연습하고 노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할렐루야!

 

 

 

전 화: (042) 9 3 6 - 7 5 9 9

부족한 종 전대복 올림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대언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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