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처녀에게 나신 예수님➂*이동원 목사

하나님아들 2018. 10. 21. 23:15

예수가좋다오

처녀에게 나신 예수님

마태복음 1장 18-25절 /이동원 목사


“18.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니라.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였을 때에 그들이 함께하기 전에 그녀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밴 것이 드러나매 19. 그때에 그녀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므로 그녀를 공개적인 본보기로 삼기를 원치 아니하여 은밀히 그녀를 버리려고 마음먹었으나 20. 그가 이 일들을 생각할 때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이르되, 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녀 안에 수태된 그것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1.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 22. 이제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에 관하여 대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라. 24. 이에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천사가 자기에게 지시한 대로 행하여 자기 아내를 취하고 25. 그녀가 그녀의 맏아들을 낳을 때까지 그녀를 알지 아니하다가 낳으매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1:18-24)


우리가 마태복음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이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나타난 믿음의 내용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고백이 가장 많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믿음의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33년간 육신의 몸으로 사셨지만 전기(biography) 형식으로 기록하지 않으시고, 생애의 일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적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①-탄생, ②-고난, ③-십자가의 죽으심과 ④-부활입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이나 성경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행적보다도 병자들과 함께 하셨고, 가난한 자들을 위로하신 단순히 한 인간의 모범적인 행동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부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만 성경은 예수님을 단순히 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이 분이 어떻게 이 세상에 오셨으며,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예수님이 어떤 삶을 살았느냐? 고백하지 않고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에 역점을 두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의 기록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의 일주일간의 사건을 기록하는 데 거의 절반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연구하면서 예수님은 독특한 방법으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살펴 본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독생자를 믿는 일이 왜 중요한 일인지도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는지의 여부에 따라 구원을 얻기도 하고, 심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 3:18에서 이 사상을 잘 증거 하여 주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독특한 방법으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으로 믿는다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내용은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의 주제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연구한 것과 비교해 본다면 "독생자"의 주제가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신 사건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루어졌다면,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마리아에게 나신" 사건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이 되셨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22문에도 이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람이 되셨습니까?"라고 말한 다음에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동정녀(童貞女) 마리아의 태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시고, 그녀에게서 태어나셨으나 죄가 없는 참 몸과 이성적인 영혼을 취하심으로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나라 성경에 한문을 채용하여 어릴童 곧을貞 그래서 동정녀라고 하지만 그대로 처녀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서 이 주제를 다루면서 첫 번째로는 처녀 탄생의 증거, 두 번째로는 처녀 탄생의 배경, 세 번째로는 처녀 탄생의 목적에 관하여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1. 처녀 탄생의 증거


우리 사도신경에는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는 고백은 예수님의 특별한 출생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처녀 탄생을 증거해 주는 본문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대표적으로 마태복음 1장 18-25과 누가복음 1장 26-38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처녀에게서 탄생하였다는 사실이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고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리이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나 그의 부인 헤라처럼 이해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박혁거세가 알에게 태어났다든지, 고구려의 동명성왕이 알에서 깨어난 것과 같은 종류의 신화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과학을 신임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처녀 탄생을 완전히 신화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성령으로 잉태되는 이 일이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예수님의 처녀 탄생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은 우리가 믿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진리 가운데 한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처녀 탄생에 대하여 분명히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처녀 탄생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말씀 가운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마태가 인용하였습니다. 마태가 이 말씀을 인용한 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이사야 7:14의 예언이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다는 관점에서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마태가 "처녀"를 잘못 인용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말하기를 이사야 7:14에 " "처녀"(히 בתול 알마) 라고 번역된 단어는 "젊은 여자"라고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젊은 여자라고 말할 때 그가 처녀일 수도 있고, 결혼한 여자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번역 성경 가운데 RSV나 NEB같은 성경은 "젊은 여자"(young woman)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문제가 된 대한성서공회에서 발간된 "표준새번역"은 "난외 주"에다가 "칠십인역을 따름. 히. '젊은 여인이'"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원문은 젊은 여인인데, 번역된 성경인 칠십인(LXX)역을 따랐다는 의미로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물론 히브리어로 알마(히 בתול 알마)가 "젊은 여자"를 의미하는 단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젊은 여자"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주전 250-150년 사이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된 칠십인역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처녀를 의미하는 파르테노스(헬.παρθενσs)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에 사람들이 이 단어를 젊은 여자가 아니라 처녀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하였음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인 신약성경에서 마태와 누가가 이 본문을 인용하면서 "처녀"라고 인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사야의 문맥에서도 처녀인 것을 분명히 알게 해 줍니다. 이사야 7:14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말씀 가운데 "징조=표적"라는 말이 그것을 증거 합니다.


징조라는 말은 표적이라는 말인데,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가리켜 구원의 표적으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젊은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은 징조가 될 수 없고 상식에 속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여러 증거들을 볼 때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고, 또한 이 사실은 예수님이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하여서는 역사적으로도 받아들였습니다. 2세기경의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었던 익나티우스의 글에도 "참으로 처녀의 몸에서 오신 예수님"라고 하였고, 170년경의 저스틴 마터(Justin Martyer)도 "처녀의 몸에서 빌어서 오신 예수님"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사도신경에도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라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니케아 신경에서는 "성령에 의하여 처녀 마리아로부터 몸을 입으시고 사람이 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도신경은 하면서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童貞女) 마리아에게 나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이 성령에 의해 처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시고 태어나셔서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2. 처녀 탄생의 배경


그러면 하나님께서 처녀 탄생이라는 방법으로 통하여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이 되신 배경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답을 인간의 타락에서 찾아야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시고, 그 만드신 모든 만물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전인격적인 존재로 만드셨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우리 인간이 교제할 수 있는 방편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언약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언약의 말씀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선악과는 하나님이 인간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 즉 창조주와 창조물의 관계를 표시해 주며, 동시에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편으로 제시된 것이었습니다. 이 언약의 내용에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어기고 따먹으면 영영히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 사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따 먹지 않으면 계속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며 에덴동산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최초의 언약입니다. 이 언약을 신학적으로 행위 언약 또는 생명의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7장 2항에서도 이 사실을 분명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그 후손들에게 생명을 약속하셨다. 그 약속은 그들의 완전하고 인격적인 순종을 조건으로 하신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하는 사탄의 말을 듣고 이 언약의 말씀을 어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말씀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책임은 죽음인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죽음과 여러 가지 고통이 찾아오게 된 이유는 바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을 어긴 일에 있습니다. 세상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죄들, 예를 들면 시기, 질투, 미움, 거짓말, 살인 등이 모두 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환경문제도 죄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우리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단코 하나님께 나아가서 교제할 수 없고 완전한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 가운데 누가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전제조건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첫번째로는 죄가 없는 사람이 그 죄의 문제를 위하여 대신 죽어야 합니다. 두번째로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중보자의 일도 감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죄를 지어 하나님에게 원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사람 가운데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죄가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중보자가 될 수 있는 분은 어떤 분이어야 되겠습니까? 여기에 신인(神人) 양성을 가진 분이 필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녀 탄생이라고 하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서 죄가 인간의 출생 방법으로 전가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은 타락 이후에 누구나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것은 죄없는 사람이 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기 위함입니다. 바로 이러한 방법으로 태어나신 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이러한 사상은 성탄절에 부르는 122장 3절 가사에 잘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주께서 강생할 때에 참 사람과 참 사람이 되시려고, 동정녀의 몸에서 나시었으니,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구세주 났네."


칼빈(J. Calvin)도 그의 유명한 책 "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어떻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보 할 수 있으며 화해시킬 수 있을까? 거룩하신 하나님과 인간은 중보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위엄의 보좌에서 내려오신 인간이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2:5에서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처녀 탄생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사람이 되신 배경은 1차적으로는 인간의 범죄이고,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3. 처녀 탄생의 목적


예수님께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의 문맥에서 천사가 처녀에 몸에서 탄생하신 아기가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1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말하기를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예호슈아 (יהושוע)가 그리스어 성경으로 번역될 때에 “이에수스(Ἰησοῦς) 라고 번역된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말식으로 번역되기는 각각 “여호수아” 그리고 “예수스”가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 본문 말씀에서 분명히 명시하고 있는 것은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생각해 본대로 인간의 죄 때문에 죽음이 왔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었습니다. 이 죄의 결과로 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지옥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의 실재에 대하여 부정하는 사람이 많이 있으나 성경은 분명한 실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지옥형벌의 비참성을 말하고 있고, 그 지옥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바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에서 말하는 억압받는 상황에서의 구원이 아니고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이 비참을 겪는 것은 인간의 제도나 구조적 모순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의 부패한 죄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로 이 부패한 죄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의 문제를 우리 인간사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의 몸에서 나신 것은 참 신과 참 사람이 되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태어나신 목적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지은 죄의 형벌을 받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사람이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필요한 조건을 갖추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예수님의 탄생과 죽으심을 볼 때 얼마나 의미가 있는 일인지요? 고린도후서 5:21에는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5:19에서는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의로운 자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죄 없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의로운 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인격적인 특징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목적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의롭다하여 하나님과 교제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사람이 되신 목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참 사람과 참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와 함께 사시며 교제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진리요 신비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여 처녀의 몸으로 태어나신 사건과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교제하신다고 하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여러분은 이 신비로운 사건들이 믿어지십니까? 이 신비로운 사건들이 믿어진다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은혜로운 사건들을 날마다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벤스 하브너라는 목사님은 이러한 신비로운 진리에 대하여 참된 신자라면 "정말 그럴까?"하는 의문부호(?)가 아니라 "아 그렇구나!"하는 감탄부호(!)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신비로운 사건들이 바로 자신을 구원하여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는 은혜로운 사건으로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라는 말씀을 연구하면서, 동정녀 탄생의 성경적 증거, 배경, 목적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처녀 탄생이라는 방법으로 오신 것은 인간의 범죄함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나신 것은 참 사람이 되시고, 참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믿는 신앙의 내용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기사마다 예수님이 처녀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비중 있게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은 죄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의로운 자가 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인이었던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의로운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 일은 우리 인간 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범죄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낮고 천한 사람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유롭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씨가 아닌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로 처녀 탄생이라는 방법으로 이 세상에 오신 진리를 고백할 때마다 먼저 우리가 과거에 죄인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이 죄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와 교제하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가좋다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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