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원창조로 회복시키시는 변화에 잘 적응하라.(7월1일 주일 설교초안)

하나님아들 2012. 9. 18. 14:16

원창조대로 회복시키는 변화를 따라 잡으라. 엡2:1-10

주신 말씀 엡2:1-10절을 중심으로[ 원창조대로 회복시키시는 변화를 따라 잡으라]는 제목으로 말씀이 선포될 때 큰 은혜 받으시기 원합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주 안에서 평안 하셨는지요.?

이제 전반기가 지나고 새롭게 7월이 시작되는 첫 날이며 후반기가 시작되는 첫 주간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후반기를 시작하기 원합니다.

엡1:3-3:21은 신약교회의 설립근거로 구속 예정 성취에 대해 내용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문은 개시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신약교회의 존재기반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죄와 영적 죽음으로부터 성도의 구원과 구원의 목적에 관련된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 받기 이전의 과거의 모습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이후 성도가 하나님께 받은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말합니다.

즉 구원 받기 이전 성도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단절되어 육체의 소욕에 따라 행함으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심판 외에는 아무것도바랄 수없는 상태였으나,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은혜를 입음으로 말미암아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과 승천과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크고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이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구원한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신분의 변화와 놀라운 복이 너무 크고 상상도 못한 일들이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몇 일전 길을 몰라서 몇 사람에게 물어보니 자기들도 초행이라 모르겠다합니다. 그런데 한 젊은이가 스마트폰을 켜서 가르쳐 줍니다.

한참을 가다 다시 헷갈려 물어 볼만한 사람이 있는가 하고 찾아보니 선교사 같은 연세든 어른이 있어 물어봤더니, 역시 스마트폰을 꺼내 자세히 가르쳐 줍니다. 카리브해 여행을 하고 돌아 온지 몇일 안 되는 교수라 합니다.

국내에 있던 내가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할 텐데 거꾸로 되고 말았네요.

아직 G-3폰을 쓰고 있는 나는 시대에 뒤떨어져 이사람 저사사람 신세를 지며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물어보지 않고 GPS 안내받고 곧바로 찾아갈 수 있을텐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분을 세탁해서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십니다.

이제부터 사탄의 종을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 상속자로 바꿔주셨습니다.

구원한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선한 일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바랐던 일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 본래 모습으로 회복시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로 삼기 원하시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이 되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살려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 원하시는 이 눈이 팽팽 돌아가는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아직도 죄의 구렁텅이를 찾아 둥지를 틀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지 않으신지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원창조로 회복시키시는 변화에 잘 적응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살리신 뜻에 부합된 삶을 살라.(1-3)

1절에서 ‘너희의 허물과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합니다.

이 말은 과거 우리는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을 말합니다.

영적인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기도 하면서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합니다.

생명은 육체가 살아 숨쉰다고 해서 진정한 생명은 아니라 목숨이 산 것이죠.

진정한 생명이란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진정한 생명이란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교류하며 그와 함께 호흡하는 것입니다.

이것 없는 모든 생명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사실은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 만나고, 교제하고 , 호흡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태가 죽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불능상태에 빠져 버린 자를 내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은혜로 다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봅니다. 두 사람이 천만원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 갑돌이는 발에 불이 나도록 아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삼일 만에 구했습니다. 한 사람 구원이는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수년전 빌려간 돈을 갚겠다고 연락이 와 딱 필요한 날 정확하게 천만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천만원만 갚고 다음에 나머지를  갚겠다고 하며 죄송하다합니다.

다리품을 팔아 돈을 구한 사람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수년전 이미 떼어버린 돈이라고 포기했던 사람이 우연히 길에서 친구를 만나 소식을 알고 천만원을 보내준 사람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두 사람간에 별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문제가 생기면 한 사람은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가 해결하려 하지만, 한 사람은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개입과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신줄 믿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 내 인생을 하나님께서 직접 경영하시고 다스리시고 개입하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해 주실 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성도에게 베푸시는 능력의 지극히 크신 분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물 위에 있는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비밀스럽고 , 인간의 능력이나 지력으로 불가능한 일을 능력이 지극히 크신 분이  우리 성도들을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고, 교제하고, 교류하는 모든 일이 성도들님들의 선택이나 지적능력이나 종교적인 활동때문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를 나의 주  나의 구원자고 믿게 되었고 이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로 인해 산자가 된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우리를 깨우쳐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시고, 예배하게 하시고, 믿게 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감격으로 받아들이며 감사하는 시간되기 원합니다.

우리 자신이 이렇게 크고 놀라운 사랑과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죄에서 용서함 받고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예배자로 살기 원합니다.

눈먼 자를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자를 능력으로 다시 살리실뿐만 아니라, 죽을 수 밖에 없는 나 같은 죄인 택하여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 삼아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평생 동안 기리고 찬송하며 , 하나님이 우리 즉 나를 살리신 그 깊은 뜻을 새기며 하나님의 기대에 부합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시를 축원 합니다.

원창조의 모습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변화에 잘 적응하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둘째로 살림 받고 하늘에 앉게 해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라(4-6)

4-6절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림(거듭남)을 받았고, 더 나아가 하늘에 앉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까지 사랑해 주셨을까요?

혹시 여러분이나 저에게 남다른 무엇이 있어서 일까요.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풀지 않고는 안 될 그 어떤 공적이 있거나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신지요?

4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신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이유요 원인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 자체가 나타난 결과이며, 이유요 ,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은 수학에서 공리와 같다 할 것입니다.

더 이상의 원리나 설명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즉 1+1은 2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왜 나오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와 원리를 설명할 수 없기에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성도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이신 예수님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하신 그 이유와 원인을 알 수 없지만 변할 수 없는 자명한 원리요 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 자체가 결과요 원인이 됩니다.

요일4:8에서 요한 사도가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라고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이 사랑의 결론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어떠한 이유도 원인도 없다는 것입니다.

 잘난 것도 잘한 것도 뛰어난 것도 훌륭한 것도 깨끗한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있다면 죄와 허물뿐입니다. 그런데도 창조주 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은 그냥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신 독생자 예수님을 주신 사랑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함께 살려주신 사랑이요, 예수님과 함께 하늘 보좌에 앉혀주신 사랑이요, 이제 예수를 주로 믿는 자마다 영생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 마음 전도법]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데 앞장서고 있는 예심교회 김기남 목사님이 오이가 아니라 오이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오이는 전도해야지 하고 마음만 먹고 실제로 전도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밥을 먹든 구두를 사든 옷을 맞추든 택시를 타든 무엇을 하든지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고 복음관계를 맺어 기도하며 그 영혼을 구원시키는 도구로 쓰임받으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라면 반드시 오이지가 되어 유익하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이로 있으면 풋내나는 과실이지만 오이지가 되면 맛을 내는 반찬이 되어 주인을 기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이가 오이지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가 오이지 담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오이가 오이지가 되기 위해 먼저 오이덩쿨에서 떨어져야 합니다.

세상과 맺고 있는 모든 인연이나 관계등과 단절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이나 기쁨 단맛이나 쾌락을 계속 맛보고자 하면 오이지가 될 수 없습니다.

오이가 오이지 되기 위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깨끗한 그릇이 될 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로 초벌 씻기를 한 후 소금과 식초를 넣어 다시 씻습니다.

천주교, 불교, 기독교 할 것 없이 모든 종교가 타락의 길을 걷습니다.

왜냐하면 성결의 삶, 거룩한 삶, 구별된 삶을 인간으로 살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피로 날마다 씻음을 받고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내 행위를 자랑하려 하지 말고 회개의 기도를 통해 거듭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다음은 따뜻한 소금물을  끓여 붓습니다.

뜨거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속에 있는 더러운 죄를 모두 뱉어내야 합니다. 세상의 속된 물을 모두 토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꼬들꼬들하고 노랗게 변한 맛있는 오이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금 언약 즉 말씀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내 안에 변하지 않는 언약의 말씀이 절여질 때 썩지 않고 변하지 않는 질좃은 오이지가 되는 것입니다.

오이가 오이지 되기 위해서 옛 사람이 죽고 회개를 통해 죄 씻음을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말씀으로 무장될 때 맛 잇는 오이지가 되어 언제 어디서든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전도자의 삶을 살 수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아끼시는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의 분신인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죽이시까지 바로 나를 위해 사랑해 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 사랑에 조금이라도 감동해서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은 바로 내가 오이지가 되어 죽어가는 영혼을 살려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되는 길인 줄 믿고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원창조로 회복시키시는 변화에 잘 적응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셋째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7-10)

7절에서 성도 개인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체 구원 계획과 매우 긴밀한 관계에 있다 합니다.

성도는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격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그 단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땅을 유업으로 받았지만, 그 언약이 이루어진 것은 그로부터 400년 후의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많은 역경과 고난을 묵묵히 이겨내며 참고 견디며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질 날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만국의 아비인 아브라함은 단순히 후손의 구원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열국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 자신의 후손을 통해 메시야가 오시고 자신의 후손뿐만 아니라 전세계 열방이 구원을 받을 줄 믿었기에 갖은 고난과 역경을 참고 견디며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구원을 자신의 개인적 차원에서 생각하지 않고 철저히 후손과 구원의 차원에서 넓고 크게 생각했기에 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모든 것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의 구원이 나의 것이라고 나 개인에 국한해서 생각하는 소인배가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400년 후의 후손과 먼 훗날 오실 메시야를 통해 구원받을 열방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대장부가 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전체적인 구원역사를 바라보며 그 안에서 내 구원계획과 의미를 파악하고 나에게 부여된 역할과 의미가 무엇인지 바로 알고 이루어내는 자가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가 되는 줄 믿으시기 원합니다.

8절은 구원은 자력으로 취득 불가능한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조합니다.

즉 이것은 구원이 인간에게서 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인간이 생산해 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9절에서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라 하므로 사람의 행위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물은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구원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만들 수 없고 구할 수 없는 그런 성격의 것이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세속 종교나 문화 과학이 인간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무엇으로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만약 구원의 길이 있다면 왜 하나님께서 직접 이 낮고 추한 세상에 죄인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겠습니까?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값없이 주신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구원의 본질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으로 인해 자기를 자랑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본질을 바로 이해할 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할 수 있고, 하나님만 자랑하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10절에서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는 말은 생산품, 제조품, 작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인 줄 믿으시는지요?

나는 부모님의 하룻밤 사랑의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아직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예정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속에 바로 이 때 이 세상 이 나라에 태어나 여기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신 줄 믿어 지는지요?.

성경은 모든 부모는 자식을 하나님으로부터 상급으로 받았다 합니다.

시127:3“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작품인줄 믿어지시는지요.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태로부터 우리를 지으셨고 , 창조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가 거듭나서 예 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것 또한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한 말씀에서 잘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하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함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선한일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로 지으셔서 하나님만 찬양하고 하나님만 경배하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자로 살게 하시고 , 이를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모든 만물을 다스리며 살도록 하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간을 지었으나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사탄의 유혹을 받아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되었고,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사망아래 거하게 된 것입니다.

사망아래 거하게 된 인간을 구원하시고 다시 살리시고 회복시켜 주신 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선한 목적에 부합되게 즉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라는 명령인 줄 믿어 지는 지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삶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홍수한 선수가 [어머니 나 참피언 먹었어!] 그 한마디에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더 큰 광영을 받은 것 아닙니까?

어쩜 저렇게 자식을 잘 키웠을까? 어떻게 저런 자식을 낳았을까?

저렇게 훌륭한 자식을 키우려면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었을꺼야....?

부모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자식이 잘할 때입니다.

자식이 잘못하면 도리어 부모님이 욕을 먹습니다.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습니다. 불명예를 뒤집어씁니다.

자식이 잘되고 바르게 깨끗하게 되어야 부모님이 칭찬받고 높임을 받듯이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의 삶이 깨끗하고 자랑스럽고 내 놓을만해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합니다.

원창조 당시 인간의 불순종이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깨뜨렸다면, 이제 재창조시에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선한 목적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원창조로  회복시키시는 변화에 잘 적응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살리신 뜻에 부합된 삶을 살라.(1-3)

둘째로 살림 받고 하늘에 앉게 해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라(4-6)

셋째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7-10)

오늘 본문은 죽음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빛 가운데서, 새 생명의 역사 가운데서 행하는 것으로 맺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이렇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변화의 진폭을 분명하게 깨닫고 이 변화를 따라잡고 이 변화를 능동적으로 주장하며 다스리며 통제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서대장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