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 ⑤ 제2차 전도여행(A.D 51-53년)-소아시아~그리스지역
제2차 전도여행 [A.D 51 ~ 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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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일지 (행15:2-18:22)
1차 전도여행 후 할례문제로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예루살렘 교회에 갔다가 돌아온 후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남.
1. 안디옥 >더베
요한의 동행 문제로 바나바와 헤어져 실라를 데리고 떠남.
2. 루스드라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역
디모데를 만나 할례를 베품.
3. 무시아
비두니아행이 좌절됨.
4. 드로아
마케도냐 사람이 부르는 환상을 봄.
5. 사모드라게섬 >네압볼리
6. 빌립보
루디아 집에 거함. 귀신들려 점치는 여종을 구한 사건으로 옥에 갇혔으나
오히려 간수에게 세례를 베품.
7. 암비볼리 >아볼로니가 >데살로니가 >베뢰아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의 시기로 베뢰아로 피신.
8. 아덴(아테네)
우상에 대해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와 논쟁함. 아레오바고의
관원인 디오누시오가 복음을 받아들임.
9. 고린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 장막업을 동업함. 1년반 머뭄.
10. 겐그레아
서원대로 머리를 깎음.
11. 에베소
유대인과 변론함.
12. 가이사랴 >예루살렘 >수리아의 안디옥
제2차 전도여행
예루살렘 회의 결과 바울의 전도 방침과 주의에 대해서는 전교회적인 공식 지지를 받아 이방인에 대한 전도가 더욱 확고하게 정해졌으므로 바울은 바나바와 더불어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려 하였다.
그런데 제1차 전도여행 도중 버가에서 일행을 버리고 도중 하차한 요한 마가를 데리고 가느냐 마느냐에 대해 두 사람의 의견이 엇갈려 서로 심히 다투어 마침내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 섬으로 건너가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소아시아를 향하여 떠났다.
바울은 도중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났는데, 그도 일행에 가담했다. 바울은 처음에 소아시아 서쪽 에베소의 전도를 뜻했으나,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므로 드로아로 내려가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렸다.
그런데 밤에, 환상에 한 마게도냐 사람이 바울에게 나타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고 청하므로, 바울은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하고 이에 비로소 구라파의 땅에 복음의 씨를 뿌리게 되었다(행 16:9,10).
사도행전에 있어서는 이때 홀연히 `우리'라는 대명사를 쓰기 시작하고 있다(행 16:10). 이것은 본서의 저자가 이 전도여행에 동행한 사실을 말해 준다. 즉, 누가라는 의사이다. 그 이유는, 본서에 의학술어가 있고, 또 바울의 동역자 누가는 의사인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환상에 나타난 `마게도냐 사람 하나'는 실은 다름 아닌 누가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누가의 종용(慫慂)이 구라파 전도의 계기가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바울 자신의 심중에는 하루 속히 구라파에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못견딜, 참을 수 없는 열정이 있어 그를 서쪽으로 서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한 것은, 사도행전 16:1- 10의 글쓴 태도로써도 짐작할 수 있다. 이리하여 빌립보˙데살로니가˙베뢰아˙아덴, 그리고 고린도로 다채롭고 의의 깊은 전도가 펼쳐진다.
① 마게도냐 지방에서는 여자 결신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빌립보에 있어서, 즉 구라파에 있어서의 최초의 그리스도인은 기록으로 전해지는 한에 있어서는 루디아라는 부인이었다는 것은 초대교회에 있어서 부인의 위치를 시사하는 사실로서 의의가 깊다.
빌립보 교회에는 또 순두게와 유오디아라는 유력한 여신도들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는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신앙의 길에 들어섰으며, 아덴에서는 `다마리아라 하는 여자'가 회심자들 중에 섞여 있었다.
② 유대인들의 집요한 반대 운동이 가는 곳마다 바울의 전도를 방해하였다. 특히 데살로니가에서는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라고 하면서 바울 일행을 체포하려한 것은, 그들의 운명에 대하여 불길한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 것이었다.아덴의 마르스 언덕. 바울이 이곳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이란 설교를 하였다.
③ 이 여행에 있어서 기독교는 헬라(희랍) 사상과 처음으로 정면에서 접촉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아덴에 있어서 바울은 에비구레오파(에피쿠르스)와 스도이고(스토아) 철학자들과 논쟁하여 이에 극히 철학적인 연설을 시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적으로 보아 실패였다. 믿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였다. 그 후 바울은 더욱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고전 2:1-5) 전도하려고 결의를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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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아덴(아테네)에서 철학자들과 논쟁하는 사도 바울
④ 고린도 전도에 있어서 기독교는 이교 사상과 접촉했을 뿐만 아니라, 이교적 생활과도 접촉했다. 그리하여 이것을 기독교화하는데 다소의 효과는 거두었음에는 틀림없으나, 아직 교회 그 자체가 그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고린도전서에서 취급되고 있는 제문제는, 사실은 고린도에 있어서의 이교 생활과 기독교와의 접촉에서 생긴 것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이교 사상과 생활의 기독교와의 관계는 더욱 더 복잡하게 되어몇 개의 중대한 문제를 교회에 던지게끔 되었다. 여하튼 이교 생활의 전형적 대표 도시인 고린도에 유력한 교회가 설립된 것은 위대한 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⑤ 빌립보에서는 로마의 관헌에 체포되었다.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 주었더니 그 주인이 수입이 끊어지는 까닭에 군중을 충동시켜 소송하였다. 그러나 밤중에 옥중에서 기도하고 찬송할 때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스스로 열렸다. 그들은 자결하려는 간수에게 전도하고 이튿날 풀려 나왔다(행 16:16-40).
이렇게 1년 반에 걸친 고린도 전도 후 바울은 고린도에서 얻은 동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바울이 갇혔던 빌립보 감옥에서 데리고 배로 에베소에 건너가 거기에 이 부부를 남겨 두고, 그와 실라 일행은 일단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안디옥으로 돌아갔다(바울의 고린도 도착은 AD 50년 초라고 한다.
이것은 바울의 연대기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따라서 바울의 생애에 있어서 다른 사건의 연대를 추정하는 열쇠가 될 만한 중추적인 연대이다. 1905년 에밀 부르게〉가 연구 발표한 델피 비문(碑文, 글라우디오 황제가 델피 시민에게 보낸 서신)에 바울의 고린도 전도시 아가야 총독으로 있는 갈리오<행 18:12- 17〉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어 그의 부임하던 해, 따라서 바울의 고린도 도착 후와 체재의 연대를 아주 확실히 미루어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넷자료)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에서는 전도의 대상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번져가는 상황이 묘사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이 뿌려 놓았던 복음의 씨앗이 맺은 열매들을 돌아보며 제2차 전도 여행을 떠난다. 본문에서는 유럽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1. 빌립보에서의 바울과 실라(행16장)
바울은 전도 여행시 디모데를 만나 그에게 할례를 행한다(행16:3). 그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게 되는데 그 환생의 내용은 어떠한 것이었으며, 그 환상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한편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에게 일어난 사건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었으며, 그 사건들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1) 말씀성취를 위한 전주곡
바울은 1차 전도 여행 때 방문을 하였던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난다. 이러한 디모데에게 바울은 할례를 받도록 한다(행16:3). 어떻게 보면 이방인의 할례에 대해 반대한(행15:1 ; 갈2:3) 바울이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원만한 복음 전도를 위한 할례였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의 계획대로 진행하려고 하였으나(행16:6,7) 뜻대로 되지를 않았다. 밤에 마케도냐와 아시아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행16:9) 바울은 그리로 향하였다. 이것은 행1:8 말씀의 성취의 첫 단계로 볼 수 있다. 마게도냐의 첫 지경인 빌립보에서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게 된다(행16:11-40). 그 여종의 주인은 그들로 인해 돈을 못벌게 되자 바울과 실라를 고소하게 된다(행16:19-21), 그 결과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되고, 이곳에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감옥의 문이 열리지만 바울은 도망하지 않고 오히려 간수와 그 집안에게 복음을 증거한다(행16:31-34).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통하여 볼 때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도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깨달을 수가 있다.
2) 하나님 중심의 삶
이기주의가 팽배해진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바울은 보여 주고 있다(행16:7-10). 복음 전도자는 인간이지만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이다. 오늘의 주어진 현실을 자기 중심적인 사고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히다.
2. 바울의 전도와 나타나는 현상들(행17장)
바울은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등으로 사역지를 옮기면서 복음을 전한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서의 복음 전도와 베뢰아에서의 복음 전도시에 보여지는 이상한 현상들이 있다. 그 현상들은 어떠한 것들이며,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리고 아덴에서의 전도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실패를 하게 된다. 그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나?
1) 복음 수용자와 박해자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증거한다. 그 복음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의 고난받으심과 복음 그리고 부활이었다(행17:2,3). 이러한 내용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하나는 복음을 수용하는 쪽(행17:4)이었으며, 다른 쪽은(행17:5) 핍박하는 무리들이었다. 베뢰아에서의 전도는 완악한 유대인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즉 너무나 신사적이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삶을 보인 것이다(행17:11).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다름 아닌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쫓아와서 바울을 괴롭힌 것이다(행17:13-15). 그래서 이들의 박해를 피해 아덴으로 갔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전도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행17:32). 그 근본 원인은 아덴 사람들의 지적인 교만과 사도 바울의 사변적인 설교라고 볼 수 있다. 철학자들과 변론하는 장면은 바울이 한낱 말장이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행17:17,18). 실패의 쓰라림을 맛본 바울은 고린도에서는 사변적인 설교가 아니라 '십자가의 도'만을 강조하였다(고전2:2)
2) 인간의 지적 교만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함이지 결코 인간의 학문이나 이성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고전1:18). 인간의 이성으로 복음을 평가하는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행한 아덴의 설교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인간의 지식을 내세우다가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복음 증거에 있어서 인간의 지식으로 인한 증거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3. 제2차 전도 여행의 종료(행18장)
고린도에의 바울의 일상적인 모습이 소개되고 있다. 어떠한 모습인가? 그러한 모습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바울은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동역자들을 만나고 전도 활동을 시작한다. 그의 활동에서 나타나는 일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1)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힘
바울은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고 이들과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한다(행18:2,3). 이것은 자급 전도를 위한 것이었다. 평상시에는 천막 만드는 일을 하고, 안식일이 되면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였다(행18:3,4). 바울의 이러한 모습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타인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다시 만나게 된다(행18:5). 그래서 전도 사역을 또다시 시작하게 되는데, 그의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행18:5). 주님께서는 그에게 환상으로 격려하시며 위로를 하신다(행18:9,10). 이것은 아마도 아덴에서의 실패와 유대인들의 끝없는 학대로 인해 바울이 지쳐 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이러한 격려에 힘입어 바울은 열심히 복음을 전한다.
2) 말씀에 사로잡힌 삶
개인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에게 바울의 고린도에서의 전도는 하나의 경종이 될 것이다. 향락과 부패가 만연한 고린에서의 전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생활하는 사람에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바울의 삶은 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모본이라 할 수 있다.
복음 전도를 위해 바울에게 보여진 이적들은 단순한 이적이 아니라 복음 전도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리고 성령께서 바울에게 유럽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역사하신 것도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였다. 행1:8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오묘한 섭리 가운데 바울이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1. 실라
1) 생애
그는 이방인 구원 문제에 대한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을 안디옥 교회에 전하기 위해 택함 받았다(행15:22). 그 후 안디옥에 가서 2년간 사역하다가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에 동행하였다(행15:40). 빌립보에서 바울과 함께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준 이유로 투옥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감옥에서 벗어난다(행16장). 박해를 피해 아덴으로 향한 바울을 대신하여 베뢰아에서 디모데와 더불어 사역했다(행17:13,14). 고린도에서의 공식적인 활동을 끝으로 교회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나 그 후 마가 및 베드로와 더불어 활동했던 듯하다(벧전5:12)
2) 성품과 행적
이방인의 구원 문제와 같은 중요한 사안을 전달하고 가르칠 책무를 맡고 안디옥으로 파송된 것으로 보아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서 지도자 위치에 있었던 듯하다. 빌립보 감옥에서 고통중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찬양하며 주께 영광을 돌린 점은 온유한 성품과 신실한 믿음을 보여 준다. 바울, 베드로 등 주요 사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아 서역이 원만하며 맡은 일을 성실하게 잘 감당해 냈던 것으로 여겨진다.
2. 빌립보
1) 위치
빌립보는 마게도냐 동편에 위치하며 스트리몬 강과 네스토스강을 경계로 하는 지역이면서 또한 항구 네압블리로 통하는 에게 해에서 내륙으로 21Km떨어진 지점으로, 오늘날의 '휠리벡드직'(작은 빌립보)이라 불리는 곳이다.
2) 관련 기사 및 역사
빌립보는 B.C.360년 마게도냐의 빌립 2세가 건설하고, 자기 이름을 따라 명명했다. B.C.168년 빌립보는 로마에 의해 정복당했고, 로마인들은 B.C.42년 빌립보에 퇴역 군인들을 주둔시켰다(행16:12).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시(A.D.50-52년), 이곳에서 자주 장사 루디아를 개종시켰다(행16:12-15). 바울과 실라가 이곳에서 귀신들린 여종을 개종시킨 이유로 옥에 갇히는 능욕을 당하게 되었다(행16:19-40).
3) 유적 및 고고학
빌립보의 유적지는 아덴에 있는 프랑스 학교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바울과 실라가 재판받았던 광장은 길이가 91m, 폭이 45m 정도 된다. 아고라, 로마, 아시아를 연결시킨 에그나티아대로가 그 광장을 관통하고, 그 광장 북쪽에는 행정관들이 재판을 했던 강단이 있다.
3. 고린도
1) 위치
그리스 본토 중부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지협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의 주요 상업 도시이이다. 구 고린도시는 1856년 지진으로 완전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그 북동 5Km 지점, 곧 고린도 운하의 서단 부근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이전했으며 현재 인구는 약 2만 명 가량 이다.
2) 관련 기사 및 역사
고린도는 전략적 요충지인 지협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정착민이 거주했다. 지형상의 특색으로, 고린도는 상업뿐 아니라 공업이 발전했다. B.C.7-6세기경, 페리안더(Periander)의 통칭하에서 고린도는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 B.C.146년 로마 장군 뭄미우스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방치되었다가 B.C.44년 율리우스 케사르의 재건 정책으로 다시 부흥, B.C.27년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로마령아가야 지방의 수도로 정해진 이후 고린도는 상업, 무역, 정치의 중심지로 급속히 성장했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B.C.50-52년) 때 고린도를 방문, 1년 6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데 주력했다. 당시 고린도는 여러 민족이 모여든 코스모폴리탄의 성격을 따고 있어서 전도지로 유망했으나, 각종 우상들이 섬겨지고 상업 항구 도시라는 특성상 도덕적으로 매우 문란할 수밖에 없었고,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문제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4.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1) 생애
로마 황제 그라우디오(A.D.41-54년)의 유대인 추방 명령으로 로마에서 고린도로 이주하였으며(행18:2), 바울과 함께 거하며 장막짓는 일을 하고(행18:3), 함께 에베소로 가서 거주하며(행18:18,19), 자기 집을 교회로 개방하였다(고전16:19), 그리고 세례 요한의 제자 아볼로와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었다(행18:24-26)
2) 성품과 행적
이들 부부는 합심하여 주의 일에 전념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다. 그들은 자기 말을 하기보다 남의 말을 들을 줄 알았으므로 아볼로에게 설득력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행18:24,26). 또한 필요로 하는 곳에 자기 것을 내놓을 줄 알았으며, 자기 집을 교회로 개방함으로써 하나님 말씀이 더욱 널리 전파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전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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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마음의 멜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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