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스크랩]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의 시작(7월 8일; 행 11:19~30, 13:13~25)

하나님아들 2018. 7. 12. 22:49

설교제목 :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의 시작

설교본문 : 사도행전 11:19~30, 13:13~25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1878

 


서론 : 안디옥 교회의 등장

 

1) 최초의 이방인 교회 안디옥 교회

 

 드디어 초대교회에 가장 큰 선교의 역사를 이룬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가 등장하였습니다.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는 로마 점령 지역의 대부분의 도시에 복음을 전파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사 바울과 바나바를 배출한 교회입니다.

 

2) 선교의 거점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옮겨짐

 

 그동안 교회의 중심은 예수님의 사도들이 있는 예루살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을 포함하여 예루살렘 교회가 여전히 유대인의 고집에 빠져 있었습니다. 오직 유대인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그 유대인의 고집 때문에 이방인들에게로 도무지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수리아의 안디옥에 새롭게 이방인의 교회를 세우시고, 그 이후로는 안디옥 교회가 복음증거의 중심지가 됩니다. 선교의 거점이 사명을 거부하는 예루살렘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옮겨진 것입니다.

 

3) 사도행전의 중심이 베드로에서 바울로 옮겨짐

 

선교의 거점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옮겨지는 것과 함께

사도행전의 중심이 베드로에서 바울에게로 옮겨집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교회의 높은 직책을 가졌더라도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선교의 거점과 사도행전의 중심인물이 바뀌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 시대에 주님의 뜻을 따르는 주님의 중심인물인가 아닌가를 스스로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 이방인 선교의 새로운 중심지인 안디옥 교회


1. 안디옥 교회의 시작

 

1) 스데반의 순교는 안디옥 교회의 기초(11:19~20)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페니키아), 구브로(키프로스)와 안디옥에까지 가서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 구브로(키프로스)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서 헬라 말을 하는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했는데, 뜻밖에 유대인들보다 헬라인들에게서 엄청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름 없는 몇 명의 전도로 인하여 안디옥에 있는 수많은 헬라인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고, 이 소식이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까지 전해져서, 예루살렘 교회의 회의를 통해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파송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안디옥 교회는 시작되었습니다.

 

2) 핍박으로 강제로 흩어진 자들에 의해 세워진 안디옥 교회(11:19~20)

 

 하나님께서는 도무지 유대인들 이외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려 하는 초대교회의 초기 성도들을, 박해를 통해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480km 떨어진 안디옥까지 강제로 흩으셔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스데반 집사의 순교는 안디옥 교회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박해나 시련을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련과 박해 같지만, 그 일로 하나님께서 거룩한 열매를 맺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서 그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시련과 박해 속에서도 주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섭리는 아름다운 열매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3) 고넬료의 일은 안디옥 교회의 신호탄(11:22)

 

 스데반 집사의 순교가 안디옥 교회의 기초가 되었다면, 안디옥 교회가 일어설 수 있도록 했던 결정적인 사건은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임하신 일입니다. 고넬료의 집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중에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하신 사건으로 예루살렘 교회는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을 열어주셨다고 결의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이 결의가 있기 전에는 이방 지역으로 흩어져 가면서도 복음은 오직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만 전해졌습니다(19). 그러나 이 결의를 통해 안디옥에서 이방인인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열매가 바로 안디옥 교회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안디옥 교회는 최초의 이방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4)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11:18).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고백이었습니다. 그동안 이방인은 개나 돼지쯤으로 여겨졌으므로 그들이 아무리 회개를 해도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여겨왔습니다. 이방인은 아무리 회개를 해도 용서를 받지 못하고, 이방인은 결단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그를 당장이라도 집어 삼킬 듯 냉소를 보내며 조롱하고 심지어 욕설을 퍼붓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설명을 들은 성도들이

이제는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이 고백이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게 했습니다.

 

 

2.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어짐

 

1) 세계 최초의 이방인 교회 : 안디옥 교회

 

 안디옥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모여 세운 세계 최초의 교회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형제가 되었습니다. 한 족속, 한 백성이 되어 함께 사랑하며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순결하고 순전한 삶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에게 아주 독특하게 보였습니다.

 

2)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어짐(11:26)

 

 오직 육체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당시 사람들에게 이들의 이런 독특한 삶의 모습은 참으로 놀라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처음에는 조롱하는 뜻으로 불려진 것이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이름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게 되어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묵상 :

 

세상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있습니까?

그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2 :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 합류함

 

3. 바울의 다소에서의 10년의 세월

 

1) 복음 전할 곳을 찾지 못하고 고향에 머물러 있던 바울(11:25)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파송될 때 다소를 들러서 바울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바나바와 사울은 1년 동안 줄곧 그곳에 머물면서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바로 글라우디오 황제 때의 흉년이 있었던 때라고 했으니, 바울은 그의 고향 다소에서 적어도 9~10년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기질을 가진 사울입니다. 전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여겼을 때 그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성도들을 색출하여 죽였습니다. 그러던 자가 예수님을 믿게 되자 곧바로 회당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수배령이 내려질 만큼 복음 증거에 열정적이었습니다.

 

2) 바울에게 고향 다소에서의 삶은 광야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열정의 사람 사울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해 고향 다소에 무려 9년이 넘는 세월을 조용히 지내야만 했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지냈고,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아둘람 굴에서 10년을 지낼 때와 같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열정적으로 할 꿈을 가진 자에게 그저 조용히 지내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열정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런 때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때입니다. 사람들에 따라서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삶의 의미를 잃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그저 내가 의미를 잃은 것처럼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그 어두움의 시간조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훈련의 시간으로 정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묵상 :

 

그러므로 힘들고 어렵고 답답하고 괴로운 시간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어 의심하지 마십시오.

남방 시내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는 갑자기 찾아옵니다.

       

 

제 3 : 바울의 제 1차 전도여행의 시작

 

 

4.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는 안디옥 교회(13:1~12)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서 1년쯤 말씀을 가르치다가, 예루살렘에 큰 흉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구제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해주고 옵니다.

 

 그 후에 안디옥 교회는 금식까지 하면서 전심으로 기도하다 성령의 지시를 받고 바울과 바나바를 최초의 선교사로 이방 지역에 파송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바보 섬에서 복음을 증거한 후에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로 가서, 그곳에서 타우르스 산맥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넘어갑니다. 이 과정에 대한 것까지 하면 오늘 말씀이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하오니, 사도행전 13:1~12의 큐티를 참조하십시오.

 

 

 

5. 버가에서 만난 큰 위기(13:13)

 

 바울 일행은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위기를 만납니다. 이때의 위기가 바울에게 큰 타격이 된 것은 그가 선교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가지 악조건이 한꺼번에 밀어닥쳤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당한 위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까지의 거리가 200km나 됩니다.

그 사이에 평균고도 1,100, 최고봉 3,300미터의 타우루스(Taurus) 산을 넘어야 합니다.

그 산은 강도들이 많이 출몰하는 으스스한 곳입니다(고후 11:26 참조).

이때 바울은 말라리아 풍토병에 걸려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마가요한이 선교의 대열에서 이탈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바울은 이때가 엄청난 핍박을 받을 때보다 더 큰 위기였다는 것을 그의 편지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외부적인 핍박보다 내부적인 갈등이 나를 더 좌절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기고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넘어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더욱 큰 능력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묵상 :

 

어둠이 지나면 새벽이 오듯 위기를 넘으면 하나님의 복이 기다립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기십시오.

 

 

 

6. 중간에서 사역을 포기한 마가요한(13:13)

 

 마가 요한이 이때 왜 선교의 대열에서 이탈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까요? 15:37~40에서 마가 요한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크게 싸우고 2차 전도여행을 각자 다른 곳으로 정하여 갈 정도로 마가 요한이 돌아간 일은 바울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본문에서 그 이유를 밝히고 있지 않으나 여러 가지 상황을 동원하여 그 이유를 정리하여 보겠습니다.

 

1) 마가요한에게 향수병이 있었다.

 

 첫 번째 가능성은 마가요한에게 향수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12:12~13에서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성도들이 기도하던 집이 마가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는데, 그 집에 대문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 충만을 받았던 곳 역시 마가요한의 다락방이었습니다. 이것은 마가요한의 집이 대문이 있는 아주 큰 저택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자로 좋은 집에서 살던 마가요한이 힘든 여정을 눈앞에 두고 향수병에 걸려 돌아갔을 것입니다.

 

2) 이방인의 선교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두 번째 가능성은 바울 일행이 본격적으로 이방인을 위한 선교를 하기 위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넘어가려 할 때, 이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그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얼마나 증오했는지를 생각한다면 이것 또한 가능성이 있는 추론입니다.

 

3) 두려움에 사로잡혀 돌아갔다.

 

 세 번째 가능성은 위 5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힘들고 어려운 여정을 눈앞에 두고 두려움에 빠져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거리가 200km나 되고, 험한 산을 넘어가야 하며, 강도들이 자주 출몰하여 그 산을 넘다가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흉한 소문도 들은 터에, 바울의 일행이 말라리아 풍토병에 걸려 큰 고생을 하기까지 하는 것을 보고 그만 겁에 질려 돌아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일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극단적인 감정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가 요한 역시 위의 세 가지가 모두 작용하여 선교의 대열에서 이탈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마가요한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일이겠지만, 확실한 것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넘어가는 길을 그가 매우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묵상 : 하나님은 나의 두려움보다 더 크신 분이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신 분이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겪는 시련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내가 겪는 좌절감보다, 내가 겪는 우울감과, 미움과 증오심과 그 어떤 것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그 모든 것을 다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주께서 정하신 길로 나아갑시다.

 

 

4 : 위기를 극복하고 전도여행을 계속하는 바울

 

7. 바울은 처음부터 능력 있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1) 바울에 대한 오해 : 바울이 처음부터 능력 있는 사역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울은 능력 있는 자이니 그렇게 어려운 중에도 주님의 사역을 할 수 있었지만, 나는 연약한 자이니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처음부터 능력 있는 사역자가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바울 역시 매 순간 포기하고 싶은 어려움을 만납니다. 그런 어려운 위기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능력 있는 바울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행하였으므로 한 단계 한 단계 자라서 우리가 보는 바울이 된 것입니다.

 

묵상 :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위기를 극복할 때마다 하나님의 복 또한 그만큼 커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믿음이 있는 자는 위기를 이기고, 믿음이 없는 자는 위기에서 넘어집니다. 위기를 이겨 믿음 있음을 보이십시오.

 

2) 바울처럼 믿음으로 고난을 이기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의 사역에 충성된 자에게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모두 주께서 복을 주시리라 말씀하신 것을 믿고 오늘도 세상을 구하시려는 주님의 사역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 받을 상은 크고 아름답지만,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는 자리는 결코 편안하고 좋은 길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묵상 : 도리어 주를 위한 고난을 기뻐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의 사역이 중요한 일일수록 힘들어지고, 또한 세상이 악할수록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기가 더 힘들고 고달파집니다. 그러므로 역으로 말하면 주님의 일을 하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그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주의 일을 하다가 고난을 만나면 기뻐 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위해 일하다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나를 주를 위해 고난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주심에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8. 위기를 극복하고 비디시아 안디옥에서 설교하는 바울

 

1) 그 고통에도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13:13~15)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마가요한까지 돌아가는 일이 일어나자 바울도 그만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험한 산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갔습니다. 안식일이 되자 바울 일행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당시 회당에서는 쉐마(Shema, 6:4~9), 기도, 율법서와 예언서 낭독, 설교, 축도의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회당장은 바울의 일행에게 설교를 청했습니다.

 

2)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설교하는 바울(13:14~16)

 

 회당장이 바울 일행에게 설교를 청하자 바울이 손을 들어 자신이 하겠노라고 표시를 한 후에 일어나서 설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하신 일에서부터 다윗에게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그를 통하여 큰일을 하시리라 말씀하셨는데, 바로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오신 구세주라고 증거합니다.

 

묵상 :

 

 마가요한이 후일 회개하여 바울에게로 다시 돌아오기는 했습니다만, 이 경우만 놓고 본다면 그는 복 있는 자리를 버렸고, 바울은 위기를 극복하여 더 복된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매 순간 위기를 극복하면서 더 나은 사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 : 경건의 일을 멈추지 말고 계속 하십시오.


1) 주님의 말씀대로 움직이십시오.

 

 마가요한과 바울과의 차이를 기억하십시오. 마가요한은 예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 함께 했던 사람이고, 바울은 그때는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던 자입니다. 신앙의 경력으로 따지만 바울은 믿음을 가진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가요한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넘어가는 길 앞에서 두려워하며 돌아가고, 바울은 끝까지 이겨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움직이는 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 당시 바울이 교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였으나 주께서는 그의 순종하려는 열심을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대로 움직이는 자가 되십시오.

 

2)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바로 지금 시작하십시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면 지금 바로 그 일을 시작하십시오.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시작하십시오. 주의 일을 시작할 때 주께서도 당신에게 주님의 능력을 채우십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주께서도 움직이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3) 조금씩이라도 멈추지 말고 계속 하십시오.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넘어가는 타우르스 산맥을 앞에 두고 마가요한과 바울이 전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선택을 하기 전에 두 사람의 심령의 상태가 서로 달랐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의 생활은 마가요한이 먼저 시작했으나 그의 영은 건강하지 못했고, 바울은 믿음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의 영이 더 건강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영의 상태가 어떤 선택을 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조금씩이라도 말씀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마십시오. 너무 바빠서 오늘은 도무지 아무것도 못하겠다 하더라도 조금씩이라도 멈추지 말고 계속 하십시오. 말씀 묵상과 기도를 며칠만 쉬어도 하기 싫어집니다. 이 일이 식어지면 마가요한처럼 엉뚱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하나님께서는 박해와 시련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게 하옵소서.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며

주를 의지하는 자에게만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을

믿게 하옵소서.

 

그 믿음으로 우리도

안디옥 교회와 같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의 사역을 감당하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포기하지 말게 하옵소서.

 

좋은 선택을 하는 자가 되고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 가애교회
글쓴이 : 송호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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