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사도 바울 ④ 제1차 전도여행(A.D 44-48년)-소아시아지역
제1차 전도여행 [A.D 44 ~ 48(?)년]
* 전도일지 (행13:1-14:28)
1. 안디옥(시리아) > 실루기아 > 살라미
안디옥 교회에서 안수받고 전도목사로 파송받아 1차 전도여행을 떠남.
2. 바보
거짓 선지자 바예수를 소경이 되게 함. 총독이 복음을 받아들임.
3. 버가(밤빌리아)
동행한 마가 요한이 떠나 예루살렘으로 귀환함.
4. 안디옥(비시디아)
일부 유대인들의 시기로 바나바와 함께 핍박받음.
5. 이고니온
돌에 맞을 뻔함.
6. 루스드라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를 고침. 돌에 맞아 죽을 뻔하다 살아남.
7. 더베
8. 이고니온과 안디옥
제자들을 격려하고 교회의 장로를 세움.
9. 비시디아 지역 >버가 >앗달리아
10. 안디옥 도착
전도여행을 보고함.
바울의 대 전도여행은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에게 대한 성령의 지시에 의해 시작되었다(행 13:1-3). 교회는 이 지시에 따라 바나바와 바울을 전도사로 파송하게 되었다. 요한 마가가 조수로 동행하였다.
이들은 먼저 구브로 섬에 건너가 섬 전체를 순회하고 그 후 소아시아에 건너가 밤빌리아의 버가,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을 돌아다니면서 전도하였다. 이것이 소위 제1차 전도여행인데, 사도행전 13장, 14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바울이 왜 이 코스를 취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바울이 이때 소아시아의 남해안을 따라 전도할 계획이어었는데, 버가에서 풍토병인 말라리아에 걸렸으므로 건조한 고원 지방인 갈라디아 지방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어떤 학자는 바울이 지금까지 전도한 수리아, 길리기아의 주변 지방으로 전도의 범위를 확대하는 뜻으로 이 여정을 택했다고 한다. 이 전도여행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도행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므로 생략하고 일반적 고찰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그는 어떤 도시에 들어가면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서 전도했다. 이것은
첫째, 동포를 구원하려는 생각에서였으나,
둘째, 유대인 회당에 출입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즉 경건한 이방인 구도자를 인도하기 위해서였다고 믿어진다. 초대 기독교가 눈부신 발전을 할 수 있었던 큰 원인 중의 하나는 이미 유대교에 의해 종교적 윤리적으로 양육되고 있던 이방인 구도자가 계속 기독교로 개종한 데 있다. 바울은 재빨리이 점에 착안했던 것이다.
바울은 단순히 설교하고 신도를 만들 뿐만 아니라 교회를 조직하고, 장로를 세우고성도의 교제를 유지시키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가 귀로에 자연스럽고 안전한 더베 다소 안디옥의 코스를 택하지 않고 지금까지 더듬어 온 길을 다시 순회한 것은 이와 같은 교회 조직을 촉진시키고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열렬한 전도자임과 동시에 용의주도한 목자인 바울의 면목을 엿볼 수 있다. 이 전도여행 후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 교인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말하고 감사했다. (인터넷자료)
아굴라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지인 고린도에서 만난
성령이 충만한 믿음의 부부로 천막짓는 일을 하며
바울의 사역을 돕는다.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사도행전 18:1-3)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로마서 16:3-4)
*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브리스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영] Aquila and Priscilla 초대교회의 유력한 신자 부처로, 바울의 전도의 협력자(고전 16:19,딤후 4:19,롬 16:3-5).
이 부처의 이름은 신약에 6회 나오는데(행 18:2,18,26,롬 16:3,고전 16:19,딤후 4:19), 그중 4회는 아내 브리스길라(정식 이름 브리스가)의 이름이 먼저 보여진다(행 18:18,26,롬16:3,딤후 4:19). 이것은 브리스길라가 아굴라보다 전도활동에 열심이어서, 또는 남편 아굴라가 흑해 남안 지방 본도 출생의 유대인이었던데 대해 아내 브리스길라는 로마의 귀족 출신이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는 이도 있고, 아내 브리스길라의 편이 개성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지고도 있다. 로마의 지하묘소의 유적 등에 의해, 브리스길라는 로마의 상당한 고관의 가족출신이었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아굴라
아굴라( Agulla) 「독수리」
본도 태생의 유대인인데, 아내 브리스길라(브리스가)와 같이 로마에서 살고 있었다.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이 내렸을 때(AD 52년)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이주하여 거기서 천막짓는 업을 했다.
동업상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그의 집에 머물면서 그들 부부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행 18:1-3). 그들은 바울의 동역자로서 고린도에서 에베소에 갔다(행 18:18,19). 고린도전서에서 그들은 바울과 같이 아시아 교회(아마 에베소)로부터 문안 인사를 보내고 있다(고전 16:19).
에베소에서 그들은 아볼로를 만나자 그를 초청해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들었다(행 18:26). 그리고 그들은 한 때 로마로 갔던 것으로 보이나(롬 16:3), 다시 에베소로 왔다(딤후 4:19).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대략인데, 이 사실로부터 자연히 추측되는 것은(언제든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같이 기록되어 따로 따로 볼 수없다), 이들 부부가 교회에서 브리스길라가 남편인 아굴라보다 능동적인 활동가였다는것이다.
이 설을 지지하는 이는 크리소스톰인데, 그는 자세히 `하나님의 도'(행 18:26)를 풀어 이해시켜 아볼로에게 도움을 준 것은 그녀였다고 한다.
하르나크는 이 증언에 근거하여 히브리서의 저자를 브리스길라라고 하는 교묘하고도 엉뚱한 설을 주장했다. 로마의 비문이나 또는 전설에서 브리스가(Prisca, 바울이 쓴 것과 꼭 같은 철자로) 또는 그 지소사(指小詞) 브리스길라(누가가 쓴 애칭)의 이름이 매우 존귀히 여김을받고 있다는 점에서 호르트(Hort)는 그녀는 로마의 명문 출신이었다고 결론 짓고 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로마에서 추방된 것은 AD 52년이라고 한다. 그들이 추방당하기에 이른 유대인들의 소요(騷擾)는 `크레스타스(Chrestus)의 교사에 의해' 일어났기때문에, 브리스길라는 바울을 알기 전에 이미 기독교에 동정을 가지고 있었음은 전연무근한 것은 아니다. 이 가정으로 볼 때 고린도에서 바울을 그들의 집으로 기꺼이 맞아 들인 것은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다.
큰 은혜를 받은 것은 그들 뿐만 아니라 람제이(W. Ramsay)가 암시하고 있듯이, 이방인의 사도는 교회 발전에 있어서 로마의 중심적 중요성을 배웠을 것이다… 우리는 이 교우(交友)와 로마, 그리고 서부의 교회에대한 바울의 계획의 성숙과를 관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 후 얼마 안 있다가완전히 성안(成案)된 사실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행 19:21,롬 15:24).
고린도에서 바울이 18개월 동안 체류한 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그를 에베소에 동반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집에 모여 예배 드리고, 또 고린도전서 16:19에 의하면 바울이 다시 그들의 집에 유숙하고 있었다.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기간 중 그들은 에베소에 머물렀는데, 당시 대학자이며 능변가였던 알렉산드리아인 아볼로가 와서 그들의 원숙(圓熟)한 크리스찬 경험에 의해 큰 유익을 받고, 또 그 중 한 사람, 또는 두사람으로부터 은혜의 복음을 섬기는 능력의 비결도 전수 받았다(행 18:26-). 또 그들은 거기에 많은 이방인 교회를 세웠는데, 그 신자들은 바울을 지키기 위해 자기들의
목숨마저 버리려고 했다(롬 16:3,4).
이 귀절로부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잠시 로마에 이주하였는데, 거기서도 따뜻한 그들의 가정은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소가 된 것을알 수 있다. 바울은 이 믿음직스러운 우인(友人)으로부터 기쁜 소식을 받고 로마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 보기를 열망하기에 이른 것이리라(롬 1:11). 이 경건한 가정에 대한신약성경의 마지막 인용은, 그들이 에베소에 돌아온 것이다(딤후 4:19). 그들과 디모데와의 교제는 반드시 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속에서 강하게 했을 것이다(딤후 2:1).
(인터넷자료)
사도바울의 동역자로서 빼놓을수없는 사람들중
한 가정이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부부' 가정입니다.
본래 '아굴라'는 유대인으로 이름의 뜻은 '독수리'란 의미로
흑해 근처에 있는 '본도'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로마에가서 브리스가 집안의 노예신분으로
있다가 브리스길라와 결혼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브리스길라'는 로마인으로 브리스가 명문 가문출신입니다.
그녀 이름의 뜻은 '작은 노부인'으로, 이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속에 있는 빛'
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굴라는 노예신분이었지만 성품이 온화하고
정직하며 매사에 순종하는 신뢰가 가는 인물이었으므로
나중에 주인에 의해서 자유인이 되었으며
후에 그 집안에 브리스길라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결혼전에 이미 개종하였고
이로인해 글라우디오 황제때 유대인 추방령으로
인하여 고린도로 떠나 오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천막짓는 일을 하며 지내던 중,
바울이 1차 고린도 방문때 그들을 만나 그집에 머물면서
장막짓는 일을 도우며 하나님의 도를 사모하였던
그들부부에게 복음에 진수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주고 들려주게 되었습니다.
이로인해 성령충만을 받은 두 사람은 바울의 동역자로
주께 헌신할것을 결심하고 18개월후에
바울이 에베소로 떠나자 함께 동행했습니다.
그후에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인 로마에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들 사역의 특징은 자신의 집을 열어 예배모임을 갖는
가정교회를 제일먼저 시작한 사역으로 고린도, 에베소,로마,등
가는 곳마다 교회를 창립하였던 부부 사역자였습니다.
다시 로마에서 네로황제의 핍박이 심해지자
에베소로 돌아와 사역을 하였으며
브리스길라의 복음전파에 대한 특심은
생명을 아끼지 않고 사도바울의 뒤를 이어나갔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에서 목이 잘리어 순교하자 그들도 끝까지
복음중거에 힘쓰고 사도바울과 마찬가지로
로마에서 목에 잘리어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로마 카톨릭교회에서는 순교자의 역사가운데
7월8일에 그들의 이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남달리 믿음과 영성의 깊이가 뛰어난 브리스길라는
작자미상으로 있는 히브리서를 쓴 저자로
지목받고 있는 여인이기도 합니다.
이부부를 통하여 가정사역의 중요성과 브리스길라의 헌신된
주님을 위한 훌륭한 사역을 우리도 본받아
이 세대를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바랍니다.
[출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작성자 inmyhands
루스드라에서 신(神)이 될뻔했던 사도 바울과 바나바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지인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앉은 뱅이가 된자를 고치는
기적을 일으키자 무리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쓰스(제우스)와 허메(헤르메스)
신(神)으로 추앙하려 한다.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사도행전 14:8-18)
* 제우스와 헤르메스 : 개역에서는 쓰스와 허메로 영어 비슷하게 번역되어 있는데,
새번역(개역개정)에서는 원문을 따라 제우스와 헤르메스로 바로 역하고 있다.
루스드라는 이고니온(성화의 도시,현재지명 꼰야)에서 남쪽으로 약 30km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어원의 뜻은 "양의 무리"라는 뜻입니다. 당시 루스드라는 로마의 속주 갈라디아의 남부 루가오니아 지방의 성읍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 일행이 선교하였던 비시디아 안디옥과는 로마의 군용도로로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지역은 "카툰 세례"라 불리우는 한적한 시골 마을입니다. 이곳 마을에서 약1.6km떨어진 구릉이 루스드라라고 추정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제단에서 라틴어로 LUSTRA라는 문자가 발견되었는데 현재 이것은 꼰야의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1차 2차 전도 여행때 이 성읍에 왔었습니다.[행14:6이하] 그리고 사도 바울의 제자였던 디모데는 이곳 출신이었습니다.
이곳 루스드라에서 사도 바울은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에 성읍 사람들이 그들의 믿는 신인 쓰스와 허메가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왔다고 하고, 산당의 제사장은 소와 화관을 가지고 무리와 함께 제사하려는 소동이 일어난 곳입니다.[행14:8]
(인터넷자료-성지순례를 다녀 온 분이 블로그에 올린 글을 인용합니다)
< 1차 전도여행 여정 >
* 쓰스와 허메=제우스와 헤르메스
쓰스와 허메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쓰스는 신들의 왕인 '제우스'를, 허메는 제우스의 심부름꾼인 '헤르메스'를 가리킨다. 루스드라의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초라한 나그네로 변장하여 루스드라에 왔는데 아무도 그들을 맞아주지도 않고 먹을 음식이나 잠자리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가난한 노부부만이 허름하나마 그들을 정성껏 대접했다. 화가난 제우스는 루스드라에 홍수를 내려 자신을 대접한 노부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홍수의 거센 물결에 휩싸이게 했다.
그래서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이 앉은뱅이를 고치는 것을 보고 전설이 다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바나바를 쓰스(제우스)로, 바울을 허메(헤르메스)로 생각하고 신으로 추앙하는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 (인터넷자료)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행13-15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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