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에 제시된 교회의 본질과 그 사명
* 강의: 황동하목사
Ⅰ. 들어가면서
목회서신의 저자인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서를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완전하거나 그 구성원들이 어려운 문제로부터 면제된 사람이라고 묘사하지 않는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처럼 그들도 주후 1세기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하였고, 때로는 그 문제들로인해 쓰라린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에게서 현대 기독교인들의 삶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뭔가 독특함이 있음을 느낀다. 그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 현대 교회가 "어디서 실패하였으며", 또한 "무엇을 잃어 버렸는지", 그리고 "왜 혼동하고 힘을 잃어버렸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목회서신의 교회는 우리가 실패한데서 성공하였으며,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간직하던 교회였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의 정체성"과 "그 교회의 사명"을 다시 한 번 새롭게 정리하고, 인식하는 작업이 필요하겠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필연성을 가지고 목회서신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어떤 교회론을 지향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은 어떤 삶을 살기위해 몸부림 쳤는지"를 제시하여 우리 시대의 교회와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를 상고해 보고자 한다.
Ⅱ. 목회서신에 제시된 교회론(딤전 3:15)
"교회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은 과거 본인이 신학을 하면서부터 진지하게 던졌던 질문이고, 특별히 목사가 되어 더더욱 목회 현장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는 현재에도 필자의 가슴을 떠나지 않고 언제나 남아 있는 질문이다. 최근 미국의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지금까지 교회가 가졌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교회론의 새로운 정립을 시도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 내부에는 그동안 교회론에 대한 심각한 혼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목회서신를 통해 올바른 교회의 의미와 그 사명에 관하여 교훈 받을 수 있다. 목회서신은 교회다운 교회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성경이다. 목회서신에 나타나고 있는 교회는 우리 교회가 어떤 길로 가야할지를 정확하게 제시하여 준다. 그렇기에 우리 교회는 바른 교회를 세우기 위해 목회서신의 교회로 돌아가야만 하겠다.
그렇다면 목회서신에 제시된 교회는 어떤 교회를 의미하고 있을까?
1.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다(딤전 3:15).
사람은 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한 그 집에 대해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다. 이러한 집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개념을 가지고 있다.
* 공간적인 의미의 집 개념: 말 그대로 건물을 중시하는 집을 의미한다. 즉, 호화롭고 넓고 멋진 집을 상상할 수 있겠다. 혹은 초가집, 기와집, 아파트, 오피스텔 등을 생각할 수 있다.
* 관계적인 의미의 집 개념: 이것은 말 그대로 집에 살고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집을 의미한다. 즉, 부모와 자녀, 아내와 남편, 형제 자매간의 긴밀한 관계를 중시하는 집 개념을 의미한다.
이 두 의미 중 당연히 집을 생각할 때 중요시되어야 할 것은 바로 후자인 관계적인 의미의 집일 것이다. 우리는 후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그런데 오늘날 과거에 비해 건물로서의 집은 더 좋아졌는데, 관계적인 면에서의 집은 많이 쇠퇴하고 무너진 것 같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집의 개념을 사도 바울께서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서 제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집"서의 교회와 연관시켜 보아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는 교회를 본 목회서신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으로 비유하고 있다. 바울 사도는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그리고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며, 이 하나님의 집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교회는?
첫째, 건물 중심의 성전으로서의 교회가 아닌 관계 중심의 구성원이 중요시되고, 중시되어야 하는 교회를 의미한다.
여기서 집이란 헬라어로 “오이코스(집, 거처, 가족, 성전을 뜻함)”라 한다. 이것은 앞에서도 잠시 나눴지만, 공간 중심의 건물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의미의 단어이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그 구성원인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며, 격려하며, 존중되어야 한다. 작은 자로부터 큰 사람까지 모두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한다. 빈부귀천 유무식을 초월하여 모든 성도들이 사랑받고 사랑해야할 대상이다.
초대교회는 당시 유대교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건물 중심의 성전 개념이 아닌 이 사람 중심의 성전 개념을 신앙으로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예수님(마 26:61)과 스데반(행 7:48-50)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고전 3:16-17절("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과 엡 2:20-22절("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리고 벧전 2:5절("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말씀에 기초하여, 건물로서의 성전(교회) 개념을 반대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하여 구성원 중심의 교회를 중시했고 믿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교회를 생각할 때, 항상 교회가 분열되거나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전 1장-4장). 그는 항상 교회가 주님의 사랑으로 하나 되길 소망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역사로 함께 지어져가고 있는 성도들을 사랑하고 격려하며 존중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목사와 교역자, 교사들과 목장 목자들은 자신들의 양무리를 대하는데 있어서 소홀하지 않도록 늘 조심하고 신중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교회의 의미는 수평적인 사람 중심의 신앙고백을 뛰어넘어, 교회의 근원되시고 주인이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연결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교회가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형성된 영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갖게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소유하시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곳이다. 그래서 음부의 권세가 침범할 수 없는 것이다(마16:18).
이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아무리 그리스도인들이 수평적인 관계가 잘 되어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올바른 신앙고백으로써 영적인 관계를 확립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교회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교회의 근원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교회의 근원을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두면, 그 기독교 집단은 어떤 협회는 될 수 있을지언정 교회는 될 수 없다. 교회를 지탱하는 것은 사람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렇기에 교회는 사람의 영광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을 영광을 목적으로 삼는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 대신에 사람의 영광을 추구하는 자는 사업가는 될 수 있을지언정 하나님의 백성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철저하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로서 저와 여러분들은 먼저 철저하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가르치는 자로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바로 맺어야 우리에게 맡겨진 양무리들 또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교회란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연결되어져 있어야 되며, 수평적으로는 사람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우선시 되어서는 안됨을 알아야 하겠다. 교회는 어떤 행사나 프로그램 보다도 하나님과 성도, 성도와 성도의 관계성 속에서 항상 긴장 관계를 가져야 할 것이다.
2. 교회란 진리가 기둥이 되고, 터가 되어야 하는 곳이다(딤전 3:15).
사도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내친 김에 이 집은 진리의 기둥이며 터라고 규정하였다. 터가 흔들리면 집은 무너진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집을 안전하게 세우기 위하여 터를 견고하게 다진다. 집을 아릅답게 꾸밀 것은 생각하지만 터를 든든하게 다질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처럼 미련한 사람이 없다.
영적인 면에서 볼 때 진리는 교회의 기둥이고 터이다. 즉, 교회는 진리가 기둥과 터로 된 집이다. 따라서 진리가 흔들리면 교회는 무너진다. 진리를 바로 전하지 않고, 교회에서 양을 치는 것은 터를 제대로 다지지 않고 집을 짓는 것과 같다. 터를 견고하게 다지지 않는 집이 허사가 되고 무너지듯이, 진리를 바로 전하지 않는 교육과 모임은 허사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디모데와 디도에게 이 중대한 원칙을 지금 알려 주고 계신 것이다. 기둥과 터가 요동하면 집이 파괴되고 무너지듯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진리가 흔들리면 교회는 파괴되고 망가진다. 그렇기에 교회를 바르게 세우려면 무엇보다도 목회자와 교사들은 이 진리를 바로 알아야 한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영적인 신앙의 아들들인 디모데와 디도에게 목회보다도 중요한 것이 진리라는 사실을 지금 가르치고 있다. 영적 스승인 사도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에게 목회서신을 통해 이 원칙과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 지금 혼신의 힘을 쏟아 붙고 있다.
결국, 목회서신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임을 강조하면서 그는 목회를 위한 방법보다는 목회를 위해 진리가 강조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바울의 이 강조는 매우 귀중한 옳음이다. 교회가 살길은 방법이 아니라 진리를 알아야 하고, 그 진리를 가르치며,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즉, 교회란 진리의 말씀을 쫓아 * 올바른 말씀이 선포되어져야 하고, * 참된 성례전이 시행되어야 하며, * 정확한 권징(치리)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만약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다른 인간의 가르침과 방법, 술수를 사용한다면, 그 순간 교회는 교회로서의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즉, 쓸모없게 된다. 마치 맛을 잃은 소금처럼... 그렇기에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며, 진리의 기둥과 터임을...
Ⅲ. 목회서신에 제시된 하나님의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할 사명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목회서신을 통해 디모데와 디도에게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이제 그 교회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를 그의 서신을 통해 크게 3가지로 제시한다. 그것은 첫째 교회를 보호하고, 둘째 교회의 일꾼을 세우며, 셋째 성도를 교육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 세 가지를 그의 목회서신 전체를 통해 올바른 교회라면 반드시 이것을 시행해야 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교회는 이 사명에 충실해야 됨을 교훈한다. 특별히 가르치는 자의 위치에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이 세 가지 사명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1. 교회를 보호해야 한다.
목회서신에서 가장 먼저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보호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디모데와 디도에게 알려 주었다. 이것은 사도 바울에 의하여 목회서신이 기록된 첫 번째 목적이다. 디모데와 디도가 목회하는 교회들은 무엇보다도 이단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었다. 즉, 잘못된 가르침이 교회 안에서 독버섯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 디모데전서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에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에 대하여 주의할 것을 가르친다(딤전 1:3, 4:1-2)).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은 세상의 헛된 신화와 족보에 착념하는 자들이다(1:4, 4:7). 이들은 하나님이 한 분으로서 창조주이시며, 섭리자라는 것을 거절한다(1:15-17). 더 나아가 이들은 율법의 선생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율법의 목적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1:7). 심지어 이들은 결혼과 음식에 관하여 금욕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말았다(4:1-4).
* 디모데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바른 교훈 대신에 진리에서 돌이키는 허탄한 이야기를 쫓을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였다(딤후 4:3-4). 이런 허탄한 이야기를 유포하는 자들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행위대로 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딤후 1:9). 또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씨로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심을 부인하였다(딤후 2:8). 게다가 이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는 것을 무시하였다(딤후 3:15-16).
* 디도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단에 속한 사람을 멀리할 것을 권면한다(딛 3:10). 아마도 이들은 할례당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딛 1:10). 이 사람들은 특히 언어에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헛된 말을 하고(딛 1:10), 비방하기를 좋아하며(딛 2:8,15), 어리석은 변론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딛 3:9).
이렇게 디모데와 디도가 목회하는 교회들은 심각한 영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었을 뿐 아니라 세속의 물결에 휘말릴 위험 앞에도 서 있었다. 말세가 되면 나타나는 세속적인 현상들이 교회를 향하여 밀려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딤후 3장). 이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디모데와 디도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이제 이런 사명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우리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로써 과연 무엇을 해야만 될까? 우리 교회는 안전한가? 여러분들이 속한 기관은 안전한가? 여러분 자신들과 가족들은 어떠한가?
2. 일꾼을 세워야 한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와 디도에게 또 한 가지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하여 일군을 세우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 일군을 세우는 것은 교회를 보호하는 가장 구체적인 방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였던 바울을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셨던 것처럼(딤전 1:12-13), 디모데와 디도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충성해야 하며(딤후 2:15, 딛 2:15), 또한 충성된 사람들을 선택하여 직분을 맡겨야 했다(딤후 2:2).
이런 이유 때문에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직분을 행하기에 합당한 조건들을 자세하게 그의 목회서신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렇기에 목회서신에는 직분자들이 가져야 할 신앙과 생활의 내용들을 열거하는 목록들이 많이 들어있다(예: 딤전 3장, 딤후 2:24-26, 딛 1장). 이만큼 사도 바울은 직분자들의 경건과 윤리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직분과 관련하여 사도 바울이 반드시 말하고 싶었던 중요한 사실은 직분이 교회론적인 목적을 가진다는 것이다.
직분을 맡는다는 것은 사도 바울 자신에게든지, 디모데와 디도에게든지, 그들에 의하여 세움을 받는 사람들에게든지, 개인적인 의미보다는 교회적인 의미를 가진다. 직분을 맡는다는 것은 직분을 맡는 사람을 위한 유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보다도 직분을 주는 교회를 위한 유익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딤전 4:6-16, 딤후 1:11-14)
따라서 직분자는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일할 것이 아니라 교회의 건덕과 유익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그렇다면 직분자는 어떤 일이 비록 자신에게 명예가 되더라도 교회에 건덕이 되지 못하면 그것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하며, 어떤 일이 비록 자신에게 영광이 되지 않더라도 교회에 유익이 되면 그것을 선택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목회서신에서 디모데와 디도에게 교회를 위하여 이와 같은 충성스러운 일군들을 세울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이제 이 사명과 교훈은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이 시대에 주님의 종과 일꾼으로 부름 받은 우리들이 교회 안에서 최소한의 자질과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겠다.
3. 성도를 교육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는 성도를 바로 교육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디모데와 디도에게 알려주었다(딤전 4:6, 딤후 2:2, 딛 2:1-10, 딛 3:1-2). 하나님의 교회를 보호하는 것은 직분자의 사명일 뿐 아니라 모든 성도의 책임이기도 하다. 성도들은 교회를 보호하는 것이 직분자에게 맡겨진 일이라고 생각하여 팔짱끼고 관망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직분자가 교회를 보호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면 성도들 또한 교회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디모데와 디도에게 이런 사실을 성도들에게 가르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목회서신에서 성도를 교육하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도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즉,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자로써 성도인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로 성도들은 세상에 관하여 배워야 한다(딤후 3장). 세상은 성도들이 알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강 건너에서 타는 불이 아니다. 성도들은 세상에 살고 있고, 또 세상에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정치에 관하여도 알아야 하며, 경제에 관하여도 알아야 한다. 특히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도 알아야 한다(딤후 3:1-5). 그렇지 아니할 때 도리어 세상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무서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딤후 4:10). 따라서 사도 바울은 목회서신에서 성도들에게 이런 불행이 닥치지 않도록 세상에 대하여 교훈을 주었다.
그런데 성도들은 세상에 관하여 정확하게 알려면, 둘째로 진리를 더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밝음을 이해하면 어둠을 파악하고, 깨끗함을 인식하면 더러움을 깨닫듯이, 진리를 알면 세상을 알게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목회서신에서 진리가 무엇인지 강도 있게 제시한다.
즉,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딤전 1:1, 17, 2:4-5, 6:5-16 등등),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지(딤전 1:1-16, 3:16, 딤후 1:10 등등), 성령에 대하여(딤후 1:14, 딛 3:5-6), 성경에 대하여(딤후 2;15, 3:15-17), 구원(딤전 1:15, 2:4-6, 딤후 1:9, 딛 3:4-7)과 경건에 관하여(딤전 4:7-8, 딤후 3:15, 딛 2:12), 그리고 그 외에 다양한 진리들에 관하여(교회: 딤전 3:5,15, 기도: 딤전 2:1-3, 물질관: 딤전 6:6-10, 17-19) 사도 바울은 정확하게 설명한다.
성도들이 이러한 진리를 이해하고 확신한다면 세상을 극복하고 승리하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목회서신에서 디모데와 디도에게 진리를 제시함으로써 성도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제 이 교훈과 사명은 우리의 몫이다. 이제 우리는 세상에 관하여, 그리고 우리가 가르쳐야 할 대상에 관하여, 그리고 그 내용인 다양한 진리에 관하여, 어떤 정신과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되는지를 깊이 있게 고민하면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Ⅳ. 결론적 제언
지금까지 필자는 목회서신에 제시된 교회의 참된 의미와 그 교회가 반드시 감당해야만 하는 사명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이제 글을 맺으면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드려본다.
첫째, 우리는 교회에 관하여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그 내용에 합당한 신앙고백과 삶을 살아야 하겠다.
둘째, 올바른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았다면, 그 올바른 교회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교회 보호하기, 일꾼 세우기, 성도 교육하기에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이 일은 목회자 한 사람의 일이 아님을 배웠다. 목회자를 중심으로 교사와 목자,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합력해야 되는 것임을 교훈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도록 하자. 자신들의 문제에 매여 평생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에서 살다가 인생을 마치는 부끄러운 일꾼들이 되지 않길 바란다. 모두가 하나님께 칭찬받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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