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의 역사
이준원 교수
전반적으로 볼 때 기독교회는 교회의 장래와 그리스도인 개인의 장래에 대한 영광스러운 예언을 한번도
잊어 본 일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 개인이든 혹은 교회든 이러한 예언들을 생각하지 않고
지낼 수는 없었으며, 또 생각할 때마다 거기서 위로를 받아 왔었다.
그러나 기독교회가 이 세상의 근심에 짓눌리거나, 이 세상의 쾌락에 탐닉하여 장래에 관한 생각을 거의
잊어버리는 적도 제법 있었다. 게다가 어떤 때는 장래의 소망 중에서 한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쏟다가,
또 어떤 때에는 그 소망의 다른 부분에 더 치중하곤 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교회가 태만할 때에는 이 기독교적 소망이 희미해지고 막연해지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
망이 아주 사라져 버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점과 더불어 언급되어야 할 것은,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종말론이 기독교 사상의 중심적인 위치를 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교리의 다른 부분들은
모두 특별한 발전을 경험하는 시기가 있었지만, 종말론은 그렇지가 못했던 것이다.
종말론 사상의 역사는 세 단계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 사도 시대로부터 5세기 초엽까지
교회는 그 초창기에도 기독교적 소망의 개별 요소들, 예를 들면, 육체의 죽음이 영원한 죽음은 아직 아니
라는 것, 죽은 사람의 영혼은 계속해서 살아 남는다는 것,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것, 하나님의 백성
에게는 복된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그 후에는 대심판이 있어서 악인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고,
경건한 사람은 하늘의 영원한 영광으로 상받게 되리라는 것 등을 매우 잘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은 단지 장래에 대한 소망에 포함된 별개의 부분들로만 여겨졌을 뿐, 교리적인 짜
임새는 갖고 있지 못했다. 이런 다양한 요소들이 매우 잘 이해되어 있기는 했지만, 이들 요소간의 상호관
계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종말론이 기독교 교리 체계의 중심이 될 만한 매우 유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어떤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두드러진 것은 아니지만, 처음 2세기 동안에는 천년왕국설이 다소
우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이 시기에는 종말론이 발전을 보지 못했다.
2. 5세기 초엽에서부터 종교개혁때까지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교회의 관심이 장래에서부터 현재로 옮겨짐에 따라 천년왕국설도 점차 잊혀
져 갔다.
특히 오리겐과 어거스틴의 영향 아래서는 반천년왕국적 관점이 교회를 풍미하게 되었다.
비록 이러한 종말론 교리들은 정통적인 교리로 간주되기는 했지만, 깊이 사색되지도, 체계적으로 발전하
지도 못했다. 죽음 이후의 삶,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죽은 자의 부활, 최후의 심판, 그리고 영광의 왕국
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이 있기는 했어도, 이런 일들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거의 생
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왕국 사상은 영생과 장래의 구원이라는 사상에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가 관심의 중심부에 놓이게 되었고, 계급적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되게 되
었다.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사상과, 교회가 장래를 위한 합당한 교육훈련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상
이 세력을 얻게 되었다.
지대한 관심이 중간기 상태, 특히 연옥설에 모아졌다. 이와 맞물려서 교회의 중보가 전면에 부각되고, 미
사에 관한 교리, 죽은 자를 위한 기도에 관한 교리, 면죄부에 관한 교리등이 생겨났다.
이러한 교회 지상주의에 대항하여 다시금 천년왕국설이 몇 가지 갈래로 나타났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교
회의 배타주의와 세속성에 대한 경건주의적 반동이 있었다.
3. 종교개혁에서부터 현재까지
종교개혁의 사상은 주로 구원을 적용하고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개념에 초점이 모아졌는데, 종교
개혁자들은 주로 이런 관점에서 종말론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초기의 많은 개혁주의신학자들은 성도의 영화를 다루면서, 종말론을 단지 구원론에 부속된 교리로만 취
급하였다. 그 결과 종말론의 한 부분만이 연구되고 발전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부활, 최후의 심판, 그리고 영생이라는 관점에서만 초대 교회의 가르
침을 받아들였으며, 재세례파에서 볼 수 있는 천년왕국설은 거부하였던 것이다.
카톨릭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종교개혁자들은 중간기 상태에 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해, 카톨릭이 주장하
는 많은 교리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종말론의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경건주의에서는 천년왕국설이 다시금 나타났다.
18세기 합리주의 시대에는 종말론이 무미 건조한 영혼 불멸설로, 다시말해 죽음 뒤에도 영혼은 그저 살
아 남기만 할뿐이라는 초라한 개념으로만 존속하였다.
끝없는 발전이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진화론의 영향 아래에서 종말론은,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
지만, 거의 무의미한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님의 종말론적 가르침을 완전히 무시
해 버린 채, 예수님의 윤리적 가르침만을 중요시하였다. 결과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은 종말론이라는 이름
에 걸맞는 그런 종말론은 가질 수가 없었다. 내세성은 현세성으로 바뀌었으며, 영생에 대한 복된 소망은
철저히 현세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회적 희망으로 대치되었다.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과 미래의 영광을 기대하는 예전의 확신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믿음으로 바뀌어 버
렸다.
제랄드 버니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신학에서 미래의 삶을 다루는 분야만큼 사상의 변화가 두드러진 영역은 없었다. 이전에는 신학자들이
「마지막에 될 일들」에 관하여 자세한 이야기들을 해왔지만, 지금은 보다 일반적인 용어들을 사용하여,
육체의 죽음을 넘어 생명이 지속된다는 낙관적 신념의 합리적인 근거를 설명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좀더 나은 변화의 징조들이 보인다. 전천년설의 새로운 흐름이 등장하여, 종파와 관
계없이 현대의 몇몇 교회에 받아들여졌으며, 또 이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특히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연구에 근거를 둔 기독교적 역사 철학을 주장하고, 다시한번 시대의 종말에 관심을 모으도
록 격력하였다.
바이쓰와 슈바이처는, 예수님의 사상 체계에서는 그저 「중간 윤리」에 지나지 않는 그의 윤리적인 교
훈보다는 종말론적인 가르침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에 관심을 불러 모았다. 칼 바르트도 역시 하나
님의 계시의 종말론적 요소를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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