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 !!! 구원사!!!

[스크랩] 삼상 구속사 강해 : 하나님 나라의 정치체계

하나님아들 2018. 3. 21. 14:41

삼상 구속사 강해 : 하나님 나라의 정치체계

 

 

서론 : 하나님 나라의 정치 체제

 

 

1. 이스라엘 국가의 정치 체제
사무엘서는 세 명의 인물, 즉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 제도의 길을 열어놓은 사무엘과, 이스라엘 왕정 제도 아래에서 첫 번째 왕권을 행사한 사울과, 왕국의 언약을 바탕으로 3세기에 걸쳐 지속될 다윗 왕국의 창설자인 다윗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무엘서는 구속사에 있어 커다란 전환기를 가져온다. 그것은 신정(theocracy) 체제로부터 왕정(monarchy)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정정치 아래에서는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백성이 필요로 하는 지도자들을 선택해 세우셨다. 그러나 왕정 체제의 도입과 함께 백성의 지도력이 제도화되었고 세습화되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왕정 체제는 신정정치의 연속선상에 있었다. 이 사실은 사울이 버림을 받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을 받는 과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스라엘의 군주로서 사울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통치권을 행사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반면에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기 위해 왕권을 행사하였다. 이것이 다윗 왕국을 유지시킨 원동력이었다.
솔로몬 이후 남 유다 왕국과 북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되었을 때에도 이 원칙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북 이스라엘 왕들은 사울과 같은 방식의 통치권을 행사한 반면에 남 유다 왕국의 왕들은 다윗의 통치 이념을 구현하였던 것이다. 다윗의 후손 중 몇몇 왕들이 하나님의 통치권을 구현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유다 왕국의 명맥을 유지시키셨다. 그것은 다윗 왕국이 세속적인 왕정 체제의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세우신 왕국의 언약(삼하 7:8-16)을 신실하게 이행하신 역사적 증거이다.
따라서 유다 왕국의 역사는 세속적 군주 정치와는 전혀 다른 이스라엘의 왕정 체제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을 대리하여 통치권을 행사하는 대리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철저하게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자율적으로 국가를 통치하도록 하셨다. 그 통치의 기준으로 주신 것이 시내산 언약, 즉 율례와 법도였다.
시내산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주적인 하나의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고 국가 단위의 체제를 갖추기 시작한 시점에서 주어졌다. 그러므로 시내산 언약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세상 역사 속에서 하나의 국가 체제를 확립함과 동시에 그 나라의 헌법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가 국가의 헌법인 시내산 언약에 따라 독립 국가를 건설하였으며, 그들은 이 헌법이 정한 율례와 법도에 따라 하나님을 왕으로 섬겼다. 이러한 정치 체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신정 국가임을 보여주었다.
이스라엘 나라는 세속 국가와 달리 독특한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는데, 그것은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었다(출 19:4-6 ; 출애굽기 19장 구속사 강해 참고). 그리고 제사장 나라로서 고유한 문화를 펼치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성막과 함께 주어진 성막 제의였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통치 이념인 율례와 법도를 떠나 배도와 패역의 길에 접어들었을 때에는 가차없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였다. 이 때 도탄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서게 되면 하나님은 때를 따라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사들을 세우셨다. 제사장 나라로서 이스라엘은 이렇게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사사 시대를 거쳐 사무엘 시대에 이를게 되었다. 사무엘서는 이 사실을 매우 중요시 여기고 있었는데, 그것은 비록 이스라엘이 왕정 체제를 도입하였다 할지라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신정국가였다는 점이었다.

 

2. 신정국가의 왕정 제도 도입
이스라엘이 왕정 체제를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정국가였다는 사실은 이미 신명기에서부터 왕정 체제의 도입을 예견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 신명기는 왕의 통치 원칙(신 17:14-20)을 제시하고 있으며, 사무엘서는 이스라엘의 왕정 제도가 어떻게 정착하고 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신명기와 사무엘서는 부와 권력을 많이 축적하는 왕들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신 17:16-17; 삼상 8:10-18). 그리고 왕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례와 법도에 따를 것을 경고하고 있다(신 17:18-19; 삼상 10:25). 이 원칙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그 백성을 통치해야 한다.
나) 신명기는 하나님께서 세우실 왕에 의해 이스라엘이 주변의 적들로부터 안식할 날에 대해 언급하면서(신 12:12)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예배할 한 장소를 선택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신 12:1-14; 20-25). 이와 관련해 사무엘서는 이동 성소인 성막 시대가 끝나고 성전이 지어질 것에 대해 밝히고 있다(삼하 7:1-2). 여기에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집을 위한 처소로 선택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셨다는 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다) 신명기는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그들이 순종할 때에는 복으로, 그들이 거역할 때에는 심판으로 응답하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신 28장). 이것은 개인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께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거역할 것인가를 결정할 권한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선택에 따라 복과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 사무엘서는 분명히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순종하고 경배할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삼하 7:7-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은 백성에게 달려 있었으며 그 결과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거나 심판을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의 선과 악의 정도를 초월하시는 분이시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과 왕들을 향해 자신의 은혜로운 뜻을 위해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사무엘서에 등장하는 왕정 체제가 이스라엘에 도입되었다 할지라도 그 최종 통치는 하나님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시내산 언약 이후 여전히 신정 국가임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사무엘서가 신명기-여호수아-사사기-룻기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점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왕을 갖게 될 것을 예견하고 있으며 그 왕의 통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신 17:14-20; 삼상 8:5, 20 참고). 이후 여호수아서는 시내산 언약을 계승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 나라를 세우는 과정을 그려주고 있다. 이 나라는 제사장 나라로서 신정정치를 구현하는 나라였다. 나아가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세운 제사장 나라가 무력하게 되어 가는 과정을 소상하게 밝혀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사기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 18:1; 19:1; 21:25)고 사사 시대를 규정함으로서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져야 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어 등장하는 룻기는 한마디로 다윗의 출생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룻기의 메시지에 따르면 새로운 인물, 즉 다윗에 의해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을 예견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메시지들은 사무엘서에 와서 종합되어 하나의 결실로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왕정 체제의 도입과 더불어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졌다는 정당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사무엘서는 이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사무엘서는 여호수아 정복 시대로부터 시작된 제사장 나라인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다윗 왕국이 승계했다는 역사적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다윗 왕국이 왕정 체제를 도입한 신정국가였음을 의미한다.

 

3. 이스라엘 왕정 제도의 정착과 그 의미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 18:1; 19:1; 21:25)는 사사기의 반복 구절은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에게도 왕정 제도가 도입되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이 늙어 더 이상 통치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왕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들의 요구를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신명기가 예견하고 있는 왕정 제도와 백성이 요구하는 왕에 대한 기대감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백성은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삼상 8:5)라고 요구하였다. 그 왕의 역할에 대해선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삼상 8:20)라고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국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전제 정권의 왕권을 갖춘 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왕권(kingship)은 결코 하나님의 뜻과 대치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은 구속사의 계획에 따라 왕권의 도입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인간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기"(창 1:26-28 참고)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다. 그리고 인간은 에덴 동산과 모든 피조 세계를 다스리기 위해 동산에 거주하였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들의 후손 중에 왕들이 출생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으며(창 17:6, 16) 이 약속은 야곱에게서 재확인되었다(창 35:11). 그리고 야곱은 유다에게서 왕이 출현하게 될 것이라고 축복하였다(창 49:10).
이 약속에 근거해 모세는 장차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왕을 세우실 것을 말했고 왕정 제도의 규정을 제시하였다(신 17:14-20). 이 규정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의 선택을 받은 사람, 즉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인물이어야 하며 율법의 원리에 따라 백성을 통치하여야 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볼 때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일(삼상 8장)과 후에 사울을 선택하고 왕으로 기름부은 일(삼하 10:17-27) 사이에 어떤 모순과 긴장이 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사무엘이 백성의 요구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모세의 가르침과 같이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실 왕을 기다리지 못하고 주변 국가들과 같은 차원의 통치자인 왕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당시 상황은 300여 년 동안에 있었던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기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끈질긴 위협 아래 시달리고 있었고 북쪽의 아람, 동쪽의 암몬이 호시탐탐 이스라엘 침략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리고 사무엘은 늙었고 그가 세운 두 아들들은 뇌물에 따라 판결을 달리하는 부패한 사사들이었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사사 위주의 지역적인 방어 체제보다는 국가적인 방어 체제를 갖추기를 원했고 사사들과는 달리 더욱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를 수용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왕정 제도의 수준이 문제였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내용의 왕정 제도가 사사 시대 이후 이스라엘에 정착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친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름부은 자를 왕으로 세우시길 바라셨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보다는 열방과 같은 강력한 통치자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백성이 왕을 요구하고 나설 때 그들이 신정(theocracy)을 거부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삼상 8:7).
사무엘은 백성이 원하는 왕정 아래서는 왕이 청년들을 자기를 섬기도록 징발하고 백성에게 무거운 세금과 부역을 부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8:11-18)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사무엘의 경고를 거부했다. 그리고 오히려 그처럼 강력한 왕을 필요로 한다고 요구하였던 것이다(8:20).
이러한 백성의 요구에 따라 세워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은 사울이었다(10:1). 비록 사울은 그 자신을 상당히 겸손하게 낮추는 왕이었지만, 길르앗 야베스에서 암몬 왕 나하스와의 첫 번째 전투에서 크게 성공(11장)하고 난 후부터 열방의 왕과 같은 전제적인 군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사울은 길갈에서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있으면서 사무엘이 더디 오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제사장만이 행할 수 있는 제사를 집례했다(13:8-9). 이것은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13:13-14). 그리고 아말렉을 도륙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일은 사울이 버림을 당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고 말았다(15장).
이러한 사건이 있고 난 후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삼상 13:14)고 사무엘이 말한 것처럼 사울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왕을 세우실 때까지 시한부 이스라엘의 통치자였을 뿐이다.
사무엘 상 후반부(16장 이하)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세우실 왕이 누구인가를 꾸준히 추적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과 백성의 요구에 따라 세움을 받은 사울과의 긴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어떻게 세워 나가시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철저한 훈련을 받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마침내 사울이 블레셋과의 길보아 산 전투에서 죽고 난 후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을 받게 되는데, 이 때 다윗은 온 이스라엘 백성의 축복 가운데 왕으로 세움을 받기에 이른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울에게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다윗에게로 전향되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다윗을 훈련시키시며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다윗에게로 전향되도록 오랜 시간을 기다리셨던 것이다.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왕의 개념을 이스라엘 백성이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무엘서는 사울로부터 고난받는 다윗을 그려내고 있다. 동시에 다윗은 차세대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자(메시야)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것을 가리켜 진정한 메시야로 오실 분의 고난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단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다윗은 메시야의 전형이라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는 없다. 때문에 고난받는 다윗을 통하여 진정한 왕으로 오실 메시야의 고난받음을 유추하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어떤 인물인가를 알게 하며 메시야의 속성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무엘서에서 특히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메시야)에 대한 언급이다(삼상 16:3, 6, 12-13; 24:6; 26:9, 11, 16, 23; 삼하 1:14, 16; 3:39; 19:21). 그런데 이 메시야라는 개념은 다윗에 의해 정의로운 왕으로 정립되었다. 이런 점에서 다윗은 메시야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메시야는 이스라엘의 독특한 자아 인식, 즉 하나님께서 열방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셨다(출 19:4-6)는 인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리고 다윗은 이 점을 가장 명확하게 인식한 왕으로 평가되었다. 
여기에서 사무엘서의 특성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열방의 왕정 제도를 모델로 한 이스라엘 왕정 체제의 도입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고자 하시는 왕이 어떤 인물인가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무엘 하서는 이렇게 세워진 다윗 왕의 행적을 집중 추적함으로서 이스라엘 왕정 제도의 특성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사무엘서는 다윗 왕의 실수와 범죄를 통해 지상에 설립된 다윗 왕국의 불합리성을 통찰하고 있다. 이것은 진정한 메시야의 출현과 함께 마침내 등장하게 될 신령하고 영원한 왕국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출처 : 행 복 충 전 소
글쓴이 : DMpasto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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