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예수 그리스도의 피
(롬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그분을 화목제물로 세우셨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것을 행하셨는가? 그것을 이해한다면 그가 어떻게 화목하는 속죄소가 될 수 있는가?
- “그의 피로써” 왜 성경기자들이 단순히 그의 죽음에 관해서 말하지 않고 특별히 ‘그의 피’라고 말하는가?(행18:8, 엡1:7, 히9:12, 10:19, 벧전1:19, 요일1:7, 계1:5)
‘피’라는 말이 죽음이라는 말을 대신 사용된 것은 우리 주님에 관한 교훈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그 방도 안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으며, 그것은 구약의 희생에 관한 교훈과 일치하는 것이다. 신약에 있는 모든 것은 구약에서 이미 예언되었던 것이다.(3:21)
바울은 여기서 ‘피’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것이 구약의 가르침과 일치한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약 교리는 언제나 구약적인 희생을 나타내는 언어로 쓰여졌고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신약은 언제나 이 교리를 구약의 희생에서의 교훈의 차원에서 표현한다. 세례 요한은 주님을 가리키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신약의 시작이다. 주님은 구약 레위기의 가르침 가운데서 예시되고 암시되고 예표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루셨다(마5:17,18). 주님은 모든 모형들이 바라고 또한 예표하고 있었던 위대한 원형이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20:28)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24:44)
- 오늘날 불행하게도 이 모든 것이 논쟁과 비판의 주제가 되어 있다.
첫 번째 집단은 ‘피’란 말을 좋아하지 않고 극렬하게 모욕적 투로 그것을-“피에 적시고 싶어하는 복음 전도자들”- 말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이것은 유대주의에 불과할 뿐이며 이교 사상과 밀접히 관련된 부족신을 말하는 구약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현현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한다. 지금은 그것을 말소한 시대며 그것에 영광을 돌리며 찬양으로 작별을 고했다는 것이다. 모든 피의 신학은 그들이 혐오하고 경멸하는 바이다.
두 번째 집단은 과거에는 교회가 피를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었으나 사실은 피는 생명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레위 제사제도 아래 있던 사람들은 희생된 동물의 피를 바쳤는데 그들은 죽음을 바친 것이 아니고 생명을 바친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그 사람들이 하나님께 다시 자신들을 바치기를 원했으며 동물의 피 안에 있는 동물의 생명을 통하여 자신들을 드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자기 헌신의 행위로 새롭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그것의 참된 의미는 주님이 그의 생명을 하나님께 제시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음이 아닌 자신의 생명을 헌신의 최종적인 행위로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피’는 생명을 대신하지 죽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목적은 우리가 이미 살펴 본 바 있는 하나님의 진노의 교리를 회피하기 위해 그 짓을 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근본 사상과 형벌 의식을 싫어하고 그렇게 해서 화목제물의 필요성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 말들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십자가’는 긍정적이고 아름답고 놀라운 것이 되는 것이다. 주님은 그의 생명을 바치고 있었고, 만일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그를 통해서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의 생명을 바친다는 것이다. 그들의 견해는 언어학적으로 보다 철저한 지식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는 점을 주장할 수 있다. 언어적인 차원에서만으로 이 이론은 단순하게 정립될 수 없다. 성경에서 ‘피’란 그저 ‘생명’이 아니고 ‘죽음으로 난 생명’을 의미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피는 죽음이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대한 최종적인 증거이다.
- 히브리인들은 몸을 떠나서는 생명을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생명과 몸을 밀접하고 또 필수적인 것으로 연관지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몸 밖의 피에서 생명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히브리인들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에는 상충되며, 피는 언제나 생명이 쏟아 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짐승의 희생의 피는 죽음에 끌려갔고 생명이 거두어진 것을 의미한다. 피는 짐승이 고난 받아 죽었다는 것에 대한 적극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다. 유대인에게 임했어야 할 심판이 짐승에게 임한 것이다. 피는 죽음의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드려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피’란 ‘희생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구약에서 동물의 희생 죽음의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한 것이었다.
둘째, 화목을 얻는 것은 속죄로 말미암아서이다.
셋째, 가해자에 의해 또한 가해자를 위해 대체된 희생물에 대한 여러 가지 심판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해자인 죄인은 동물의 머리에 안수함으로써 상징적 으로 그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켜 짐승을 도살하는 것이다. 그 원리를 파악하 지 못하면 출애굽기와 레위기에서의 구약적인 교훈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넷째, 희생 제사의 효력은 범죄자에 대한 용서와 하나님의 은총의 회복이다.
이상의 원리들은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4대 원리이다. 단순히 동물이 죽임을 당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피가 흘려져야 한다.
- 왜 이 모든 것이 필요한가? 히 9:22,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왜 사함이 없는가? 그것은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선고는 죽음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떠나서는 죄가 처리될 수 없다. 피흘림을 떠난 죄사함은 없는 것이다. 이 성경적 교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리스도를 우리의 대체물이 되게 하셨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그분을 화목제물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거기엔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복음의 모든 영원성과 경이로움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렇게 하셨다는 데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기 시작하는 것은 실로 여기서부터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죄책을 담당하셨다. 그의 생명은 죄를 위한 제물이 되었다. 우리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그에게 임했던 것이다. 베드로는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표현하며, 이사야는 그것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그를 때리셨다”고 예언하였다. 나와 여러분에게 임해야 할 심판이 우리의 죄성과 죄악으로 인해서 그분에게 임한 것이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었고”(4:25),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셨다”(8:32) “---하기까지 내어 주셨다”.
십자가의 죽음 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에까지 내어줌이 되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진노에서 아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은 것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만일 하나님의 진노와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교리를 믿지 않는다면 버림에 대한 울부짖음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단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은 아니다. 순교자들도 즐겁고 대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만일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하셨다. 그분은 그가 담당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맛보아야 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될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오직 가능한 설명이다.
본문이 뜻하는 바는 그 분이 말씀하셨듯이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기의 생명을 주셨다는 것이다. 히 9:12,14에서 그는 단번에 그리고 동시에 희생 제물과 대제사장으로서 자기 자신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리셨다. 그는 자기의 피를 가지고 “가장 거룩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던 것이다. 그의 죽으심은 충분하셨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전부 쏟은 바 되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와 율법은 완전하게 충족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된 것이다(히10:9). 그와 함께 빛 가운데서 행하면 그의 피가 모든 죄와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항상 죄짓고 부정하게 되어도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항상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모든 것을 안전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피’이다.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새 언약에 속한 피조물이다. 그 증서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날인되었다(히9:). 우리가 성찬식에서 함께 행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새 언약을 상기시키고 우리가 새 언약에 속해 있다는 것을 재음미하게 한다. 우리의 모든 것은 그 피로 가리움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가 새 언약에 속하고 그리스도의 뜻과 그가 우리에게 남겨 주신 일, 그리고 우리의 부요한 기업의 모든 영광을 읽을 수 있다.
그는 결코 그의 생명으로 제사 드린 것이 아니고 그의 생명은 죽음으로 바쳐졌다.
'성경 용어 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겸손의 12 단계(12 Steps of Humility) (0) | 2018.02.26 |
---|---|
[스크랩] 유향과 몰약이란? (0) | 2018.01.28 |
[스크랩] 안식년, 희년(레25:1-55) (0) | 2018.01.17 |
[스크랩] 성경 족보에 대한 고찰 (0) | 2018.01.17 |
[스크랩] 지혜 기독론 연구 (0) | 2018.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