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기독론 연구
정인채 교수[신학77' LA 국제개혁대학교 학감]
총신대학교(B.A.)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M.Div.)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Wycliffe College(Th.D.)
지혜, 지혜문서, 그리고 그리스도 - [지혜기독론 연구]
근래 신약연구에서 지혜기독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지혜기독론이란 그리스도 예수를 지혜로 이해하는 사상을 말하는데, 그 보편적인 연구방법은 구약과 후기 지혜문서를 배경으로 삼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영감된 구약과 신약만을 신앙의 표준과 신학의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20세기 신약연구에서 계시의 점진적인 진전이라는 관점으로 중간사 시대의 문헌을 연구하여 많은 유익을 얻었다. 구약과 함께 후기 지혜문서를 살펴보면서, 과연 어떻게 예수가 지혜와 연관되는지, 또 이 지혜기독론이 우리 신앙에 어떤 상관이 있는지 다루고자 한다.
1. 구약과 지혜문서에 나타난 지혜
구약의 지혜 이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했다는 주장이 폭넓게 인정된다. 즉 구약의 초기단계에서는 지혜가 현실적이고 물질적으로 이해되다가 바벨론 유수와 그 후기에 종교적이고 신학적 차원으로 승화되었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후기 지혜사상이 신약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기에, 욥28; 잠1-8; 시락24; 지혜7-9; 바룩3-4; 에녹일서 42장 등의 후기 지혜문서들을 살펴보겠다.
1) 지혜의 특징
대략 세 가지 특징이 후기 지혜사상에 나타난다. 첫째로 지혜는 태초부터 ‘선재’한다. 지혜는 땅이 생기기 전부터 존재했으며(잠8:22-23,30),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지혜를 창조하셨고(시락24:9), 그래서 오직 지혜만이 비밀스러운 것을 알고(지혜7:21), 지혜 외에는 하나님을 아는 자가 없으며(욥28:12,23), 지혜의 거처는 땅이 아니라 하늘(에녹일서42:1-3)이라고 한다.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잠8:30이다. “내가(지혜)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 하였으며”에서 어떤 학자들은 “창조자(아몬)”숙련공 또는 창조의 중보자로 해석하고 다른 학자들은 놀이하는 아이로 해석하기도 한다. 지혜가 아몬이라는 우선적 의미는, 지혜가 창조 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 앞에서 놀이하는 아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혜가 창조시의 중보자였다는 의미를 배제할 수 없다.
두 번째로, 지혜는 구약후기와 중간사 시대에 들어와 ‘인격화’ 되었다. 그래서 지혜는 놀이하는 아이로, 창조의 중보자로, 계시의 중보자로 묘사된다. 잠언서에서도 지혜는 거리의 전도자가 되어 지혜를 가르치고 어리석음을 경계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모으는 존재로 의인화되며, 사랑스런 연인이 되어 자기에게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거나(4:6-9),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한다(9:1-18).
세 번째로, 지혜는 때로는 가까이 때로는 멀리 있기도 한 것으로 묘사된다. 거리의 설교자, 연인, 또는 안주인으로 사람에게 가까이 있다. 시락24장은, 선재하는 지혜가 땅에 안식할 곳을 찾다가 예루살렘에 거처를 정하자 율법과 동일시되어 사람들에게 가까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지혜는 감추어져 이 땅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초월한 존재로 나타나기도 한다(잠1:28; 욥28:13). 그러므로 후기 지혜문서에서 지혜는 일종의 긴장상태에 있다. 한편으로 지혜는 인간에게 가까이 있는 율법으로서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되지만, 이 세상이 지혜를 거절하여 우둔함과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지혜에 접근할 수 없다는 두 사상이 공존한다.
2) 지혜의 본질
지혜는 무엇인가?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상징적 표현에 불과한가? M. 헹겔을 위시한 많은 학자들은 상징화나 실체도 아닌 그 중간상태로 보고, G. 폰 라드는 창조 시의 창조원리로, J. D. G. 던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하나님의 자신의 사역이라고 말한다. 결국 지혜가 하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필자는 마지막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지혜의 개념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의 한 단면이며,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며 질서를 바로잡는 행위이고, 인간의 구속을 계획하는 행위이며, 자신의 영광을 이스라엘 시온에 계시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3) 지혜운동의 이유
왜 이러한 지혜신학 또는 지혜사상이 바벨론 유수 때, 또는 그 후기에 현저히 나타나는가? 중간사 시대 많은 유대인들은 선지자 말리기의 예언 이후 하나님의 직접 계시가 끊어져 하나님은 세상으로부터 멀리 하늘에 계시고 인간사에 무관심하다고 믿었다. 또한 헬라국가들로부터 물리적, 정신적 침략을 받음으로써 유대주의의 정체성이 상실될 위기에 놓였다고 믿었다. 이시스종교 같은 이방 종교들과 헬라주의가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지혜교사들은 구약의 전통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초월하신 하나님은 지혜를 통하여 여전히 역사 가운데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중간사 시대는 지혜로 모든 사물을 이해하고자 하는 지혜운동이 왕성한 때였다. 바벨론 유수 이후의 모든 신학적 사고방식은 지혜론적으로 되었으며(E. J. 슈나벨),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까지도 지혜의 관점으로 이해되었다. 이런 지혜사상의 발전과정을 통해 지혜교사들은 외부 종교의 위협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는데, 이시스-마트 신화에서 지혜에 관한 묘사와 표현을 조심스럽게 도입하여 오히려 이시스종교를 공격했다. 후기 중간사 시대에 와서 지혜신학 또는 지혜운동이 융성했던 이유는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 찾지 못하던 답을 지혜를 통해서 찾는 동시에, 외부의 세속적 헬라주의와 이방종교의 위협을 방지하게 위한 결과라 할 수 있다.
4) 지혜의 기능
그렇다면 이 시기에 나타난 지혜의 역할은 무엇인가? 첫째, 지혜는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세상을 연결시키고 맺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하늘 위에 멀리계신 하나님처럼 여겨지지만, 그 분은 처음부터 신실하게 자기 백성을 통치하셨고 당시 그들의 경험과 같은 위기에 더욱 신실하게 역사하신다고 믿을 수 있었던 근거가 바로 지혜신학이다. 이를 통하여 비록 현재 핍박을 받으나 의로운 자들인 이스라엘은 여전히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도 확인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지혜는 그들을 거룩한 삶으로 인도한다. 의로운 유대인들의 현재 고난의 원인은 지혜를 경청하지 않고 이시스종교로 배도하였기 때문인데, 다시 거룩한 삶을 사는 방법은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시락서의 언급은 율법의 절대성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를 주제로 하여 지혜의 주석 또는 설명서로서의 율법을 말하고 있다.
2.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지혜
신약연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혜와 연결시켜 이해하려는 시도가 지난 70년대부터 일어나 8-90년대에 강하게 이어졌다. 기독론 분야의 이런 시도는 신약성경이 예수를 지혜로 보여준다는 중론을 형성했다.
1) 지혜기독론의 특징
첫째, 예수가 선재하신 지혜로 묘사된다. 특히 마11:25-27에서 예수가 하나님에 관한 상호 독점적인 지식을 가지는 것으로 언급되며, 많은 학자들은 요1:1-3의 “말씀”을 구약과 지혜문서에서 말하는 지혜로 이해한다. 다른 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의 중보자로 묘사하는데(고전8:6; 골1:15-20, 히1:1-3), 이것 역시 그의 선재를 나타낸다.
두 번째 특징은, 구약의 지혜와 같이 예수는 창조와 계시, 그리고 구원의 중보자라는 점이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았으므로 그는 창조의 중보자이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고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기에 계시의 중보자이시다. 또한 예수는 선재하는 지혜로서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성육신하셨으므로 구원의 중보자가 되신다.
세 번째로, 지혜기독론은 그리스도가 세상에 가까이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그가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나 성육신하셨으며, 구약의 지혜와 같이 공생애 동안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함께 먹고 마시며 진리를 가르치셨다.
2) 지혜기독론의 본질
지혜로서의 예수의 본질 또는 본성은 무엇인가? 첫째, 그는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창조질서의 최종적 계시이다. 태초부터 지혜로서 존재하던 하나님의 구속계획이 마침내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서 나타났다는 뜻이다. 세상이 그의 지혜로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함으로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그것을 극명하게 나타내셨다(고전1:23-24). 즉 그리스도는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 곧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최종적으로 드러내셨다.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단지 계시하신 것만이 아니다. 그의 ‘인격적’ 차원이 있다. 창조와 계시와 구원의 중보자로 역사하신 그 지혜가 완전한 인간으로 이 땅에 성육신하신 것이다.
3) 지혜기독론의 기원
왜 신약 저자들은 예수를 지혜로 묘사하고 있는가? 단지 신약 저자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인가? 필자는 약속과 성취라는 측면에서 답을 찾는다. 즉 그들은 예수에게서 구약과 지혜문서의 지혜가 성취되었다고 보았다. 예수가 지혜라는 신약의 묘사와, 구약 및 지혜문서의 지혜가 거의 동일시되는 것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경험한 후 그리스도가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추적한 결과였다. 하나님이 실행할 수 있는 구원을 실행한 그가 과연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두고 구약과 지혜문서를 연구한 결과, 오랫동안 기다리던 지혜가 바로 그들에게 구원을 허락한 그리스도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바울의 경우,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시고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만난 경험 후에 바울은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는 바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며 이것은 구약과 지혜문서의 지혜가 최종적으로 표현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전1:21).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원을 경험함으로써 바벨론 유수 이후 불완전하게 나타난 지혜의 개념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구약이나 지혜문서에서도 지혜가 성육신된다는 개념이 어느 정도 나오긴 하나, 그것은 지혜가 율법에서 발견된다는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육신 하신 지혜는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4) 지혜로서 그리스도의 기능
그리스도가 지혜의 성취라면 그의 역할은 무엇인가? 우선, 지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거룩한 삶으로 이끈다. 물론 예수도 율법이 순종의 삶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가르치며 율법을 지혜의 구체적 표현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절대시하고 자기들의 의를 주장한 반면, 예수는 자기가 하나님의 지혜이며 따라서 율법보다 더 충만한 하나님의 계시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기의 삶과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거룩한 삶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두 번째로, 지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과 세상을 연결시켜 준다.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지혜가 성육신되어야 했는데, 그리스도가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된다(요1:14,18; 골1:15). 지혜이신 그리스도는 또한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시킨다. 창조의 중보자이신 그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끝으로, 지혜기독론은 진정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밝혀준다.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사역을 경험한 후, 신약 저자들은 그러한 구원을 가져다주는 분이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3. 결론
지혜기독론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는 무엇인가? 첫째,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다. 아담기독론으로 바울은 그리스도가 진정한 인간이 되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지혜기독론은 그리스도가 진정한 하나님이신 것을 강조한다. 창조주로서,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자로서, 그리고 인간의 구원자로서 그리스도는 진정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밝혀준다. 이 점에서 우리의 구원이 확실한 근거에 서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다.
둘째, 지혜기독론은 ‘성경의 일관성’을 다시 입증해준다. 약속과 성취라는 구약과 신약의 관계가 지혜기독론을 통해 증명된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는 이미 구약과 지혜문서에서 지혜로 묘사되었고, 마침내 그 지혜가 성육신하여 구약의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
셋째, 지혜이신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그의 죽음이 ‘우리 삶의 방향이요 기준’이 된다. 전에는 지혜의 주석 또는 설명서인 율법을 통하여 지혜의 가르침에 순종했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새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지혜의 성육신이신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삶을 보고 거룩한 삶을 살아간다. 구약시대의 법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며 그를 본받는 삶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갈 수 있다. 물론, 율법은 여전히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요구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계시이다. 그러나 이 율법은 진정한 지혜이신 그리스도의 조명 아래, 억압하고 제한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랑과 공의를 천명하는 원리로 우리에게 다가와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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