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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임재 (presence of God)

하나님아들 2017. 10. 5. 22:00

하나님의 임재 (presence of God)


     최근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성경연구 동향이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
재의 형상 및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순수하게 이스라엘적인 신화를 크게 간과해
왔다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글나 요즈음에 들어서는 이 개념의 중요성이
점차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신.구약에 나타나는 이에 관련된 용어들은 얼굴.
영광.이름.장막 등과 같은 개념들 및 '~앞에'(축어적으로는 '~의 얼굴을 향해
혹은 ~의 면전에'), '~의 가운데에', '~와 함께' 등의 전치사들이 중심이 되고
있다.  '거하다'라는 뜻의 동사 shakan과 그 파생어들 또한 중심적인 용어들이
다.  이 개념에 관련된 자료들은 여러가지로 분류될 수가 있다.
     첫째로 선의와 축복을 말하는 상투적인 문구들이 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창 21;22)라는 문구 및 흔히 보이는 "여
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예. 창 39:3)이라는 문구는 단순히 하나님의 축복으
로 해석되는 행운을 인정하는 말들이다.  그러한 문구들이 미래 시제를 취하면
바로 이와 똑같은 행운을 약속하는 말들이 된다(예. 출 3:12, 수 1:5,9).
     또한 하나님의 방문 및 현현을 말하는 많은 구절들이 있다.  이런 구절들
에서는 여러가지 현시, 꿈, 환상, 방문의 신탁 등-시각과 청각-을 통해 이스라
엘의 하나님이 개개인들, 그의 백성 및 이스라엘 주변의 민족들을 방문한다. 
하나님의 이러한 일시적 방문이나 현현에 대한 자료들은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임재라는 주제를 위해서는 적당한 자료가 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읭 무소부재에 관한 성경자료들 또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자료로서는 적당하지가 못하다(예. 시 139편, 렘 23:23-24, 암 9:2-5, 요
4:19-24).  왜냐하면 이것은 믿는 자에게는 언제 어디서나 임재해 계시는 하나
님의 편재에 대한 교리이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언급된 분류들에 속하는 자료들을 제쳐 놓으면 하나님의 임재라
는 주제에 관련된 여러가지 구절들과 개념들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 구절들과 개
념들 가운데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가운데 거하심'이라는 개념이다.  이스라엘
의 하나님이 활동이나 장소를 통해 '임하시거나', 혹은 '거하신다'는 바로 이러
한 특징이 '장막 임재'(tabernacling presence)라는 용어를 생겨나게 하였으며,
바로 이 장막 임재라는 개념이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성경적 묘사의 핵심을 이
루고 있다(장막 임재라는 어구는 피티안 아담스가 최초로 사용한 것이다).
     출애굽기는 이러한 임재 개념을 보여주는 책들 중의 하나이다.  무엇보다
도 먼저 그 책은 오경의 나머지 책들과 더불어 구름을 통해 하나님이 나타나는
임재에 대한 세가지의 개념들을 보여주고 있다.  야훼문서에 구름을 통해 나타
나는 임재는 이스라엘의 앞에 서서 이스라엘을 인도한다(출 13:21-22, 14:19b,
민 14:14b, 신 1:33 등).  그러나 엘로힘 문서에 나타나는 임재의 구름은 계시
를 주기 위해 때때로 내려와서 회막의 문 옆에 서기도 한다(출 33:9, 민 11:25
등).  그리고 제사문서에서의 임재의 구름은 정지 중의 회막을 덮어 보호해준
다.  바로 이 제사문서의 임재 구름 기사가 장막 임재에 가장 유사하다.
     그러나 임재의 구름은 출애굽기에 나타나는 임재의 여러 형상들 가운데 하
나에 불과하다.  야훼는 하늘에 거하시나 지상의 여러 곳에 나타나신다.  그렇
지만 그가 거주하시는 곳은 오직 한 곳이다.  출애굽기에서 이 곳은 시내-호렙
산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훼 자신에게 오듯이 이 산으로 온다(19:4, 24:1-
2,9-11).  그리고 그들이 야훼를 만나지 못하고 그 산을 떠나게 되는 경우 그들
은 스스로의 몸에서 단장품들을 제해야만 하였다(33:6).  야훼가 이스라엘과 함
께 시내산을 떠나려 하지 않기 때문에 회막과 그리고 추측컨대 언약궤(신명기에
서처럼)가 마련된다.  그리하여 이것들이 대용 성소, 이동하는 임재 성소, 대체
된 임재를 형성한다.  이 대체된 임재는 또한 천사와도 결부된다.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23:20-21, 33:14).  그리고 그 천사가 야훼의 이름을 지니
는 것과 인도를 하는 것 그리고 군사적 특성들을 지니는 것은 언약궤를 암시한
다(참조. 민 10:35-36, 삼상 4장, 삼하 6:2).  비록 일부 학자들은 이것을 모세
의 장인에 대한 언급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말이다.  출애굽기의 지성소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출 24:9-11에 나오는 장로들의 환상을 말하는 부분과 그리고 특
히 자기 옆을 지나가는 야훼에 대한 모세의 환상을 말하는 부분인 것이 확실하
다(33:17-23, 34:6-7).  모세 홀로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야기하였다는 주장(민
12:8, 신 34:10)이 출애굽기에서는 모세가 오직 하나님의 등만을 보았다고 설명
되어 있다.  출애굽기의 율법들 또한 마찬가지로, 출 20:24의 '이름' 임재이든
25:8, 29:42-46, 40:34-38의 거주함, 즉 '영광' 임재이든간에 임재 주제에 의해
통어되고 있다.
     비록 출애굽기에 나타나는 임재의 형상들이 후대에 북이스라엘 및 예루살
렘에서 유행되던 특징들과 개념들을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전승의
근저에는 임재의 개념이 사막 시대의 이스라엘 종교에 본래부터 존재하던 것이
며, 따라서 그것은 아마도 사막의 이스라엘에 대한 모세으 사역의 일부분, 그것
도 중심적인 부분이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암시해 주는 사실과 믿음이 존재하
고 있다.  모세의 동료들이 맛사에서 바로 이 문제를 놓고 모세에게 도전을 하
였다는 것은 확실하다(출 17:7, 참조. 신 6:16, 9:22, 33:8, 시 95:8, 참조. 시
81:7).  그리고 이 사건이 시내산에 오르기 이전이었느냐 이후였느냐 하는 것은
(민 20장) 본 논의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출애굽기에 나타나는 임재에
관한 자료들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으나, 그 핵심은 모세가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 확실하며, 이스라엘의 독특성과 독창성을 표현하고 있다(출 33:
16).
     출애굽기에서 및 출애굽기 이후의 임재는 성소에 결부되어진다.  처음에는
이동하는 성소로서의 언약궤와, 그리고 그것을 따라다니는 회막에 결부되었고
그리고 나서는 세겜, 실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처럼 법궤와 장막의 안주
처로서의 역할을 한 몇몇 성전들과 결부되었다(왕상 8:12-13).  이러한 성소 임
재는 장막에 거하는 이름에 대한 신명기학파의 신학적 개념과 레위인 제사장들
및 예루살렘 제사장들의 영광 개념에 의해 대표되며 임재에 대한 두 가지 상이
한 서술-이름과 영광-의 발생은 어떤 기본적인 뿌리 개념이 있어서 그 개념이
양자보다 우선하였고 양자가 그 개념으로부터 발전하였던 것이라고 하는 것이
입증되어 있다.
     똑같은 이야기가 언약궤와 회막의 개념에도 해당된다.  왜냐하면 비록 그
것들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때때로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따로따로 나타나
각기 따로따로 언급되는 다른 경우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 나타나든
따로따로 나타나든 그것들은 주 주제에 대해 증언을 한다.  임재 주제에 대한
자료들은 매우 복잡하고 또 현현의 매체 역시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이 교리의
발전에 있어서의 여러 단계들을 추적하려는 시도들은 성공을 한 적이 없다.  단
선적인 연쇄를 가정하고 그를 서술하는 것보다는 고대의 이스라엘에는 임재 형
상의 다양한 형태가 있었다고 추측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마찬가지로 장막
임재 주제에 대한 설명 하나만으로는 서술의 모든 매체들을 다 적절하게 설명하
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임재는 야훼에 관련해서 대유법(일부로서 전체를 나타
내는 법)-동일성, 인격의 확장, 그리고 부재 중 임재를 나타내는 기이한 종류로
서 그 동질성이 없는 야훼의 가치 등(출 32:33, 겔 10-11장, 43장)-에 의해 설
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언자들이 비록 간접적이지만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통해 장막 임재에 대
해 증언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사 6:1-5, 8:18, 30:27-29, 31:9,
렘 7:12-15, 8:19, 14:9, 23:23,39, 겔 8:6, 호 5:15, 11:9,11, 암 1:2, 5:14,
미 1:2-3, 3:11, 6:6 등.
     임재의 장소에 대한 그들의 증언은 닥쳐 올 새 이스라엘에서의 임재의 재
개에 대한 그들의 서술에 의해 보강된다.  이러한 종말론적 임재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서 발견될 수 있다:  사 12:6, 겔 11:16, 37:26-28, 43:1-7, 44:1-2,
48:35, 욜 3:17,21, 미 4:7, 습 3:15,17, 슥 2:10-11, 8:3,23, 말 3:1 등.
     그러므로 임재는 역사, 예배 및 종말론적 약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의 신앙과 소망에서 핵심적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종말론적 임재에 대한 약속은 임재에 대한 유대인들의 묘사상-쉐키
나-과 대조를 이루는데, 그들의 묘사에 따르면 장막 임재, 즉 쉐키나는 제2 성
전 때부터 부재하였다.  유대인들의 고전문학은 그들이 아무도 쉐키나 혹은 메
므라(즉 말씀) 혹은 영이 되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신약에서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가 장막 임재 및 쉐키나의 영적, 인격적,
화육적 및 가견적인 상속자이며 성취자이다.  그러므로 성육은 임재 주제의 새
롭고 최종적인 차원이다.  그의 탄생과 세례, 그의 사역과 이적, 그의 가르침과
변모를 통해서, 그리고 그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영
광을 보았다.  파티안 아담스는 '나오모르피즘'(naomorphism:  성전과 신의 동
형론)이라는 단어를 새로이 만들어내, 이 단어 하에서 신약에서의 대속, 성화,
연합 등에 대해 논하고, 장막 임재를 그리스도, 신자 및 교회에 관련짓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고무적인 이론은 몇 가지 오류들로 말미암아 손상되고
말았다.  일례로 그는 임재의 방식에 관해 그릇된 구별을 하고 있는데, 그의 임
재는 이스라엘에서는 오직 사람들 '가운데에'만 있었고 신약에서는 기독교인들
'안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화육적 임재가 모든 신약서들의 중심으로서 그것에
연원해서 생겨나는 생활과 사상과 제도의 모든 국면들-신약신학의 주요 분과들
하에서 연구되어져야만 하는 국면들-을 지배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는 신약에서 임재와 관련하여 생겨나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언
급만을 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임재의 문제는 십자가 위에서 버림받은
것에 대해 절규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가장 심각하게 대두되는데, 이러한 문
제는 오직 임재에 대한 구약의 범주들에 비추어서만 해결되는 것은 물론 이해될
수가 있다.  그 다음으로 부재 중 임재의 주제 또한 나타나는데, 이에 관련해서
그리스도는 자신이 제자들로부터 떠나가는 것의 필요성과 바람직함에 대해 말을
하나(예. 요 13:1,33, 14:1-7, 16:7,28), 그러나 또한 그의 영속적 임재도 또한
약속한다(예를 들면, 마 28:20).  이러한 역설은 엄위의 우편에 높이 앉아 계시
는 그리스도에 대한 환상 및 기독교 신자의 마음과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를 경
험하는 것에서도 또한 발견되는데, 이것은 성령의 강림에 대한 교회의 신학에서
틀림없이 해결되어지나, 또한 계 21:22-24에서 그 최종적 해명을 보게 되는 역
설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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