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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구약에서 본 이방인과 타종교

하나님아들 2017. 6. 17. 16:37
구약에서 본 이방인과 타종교


 

 


1. 서 론 white1.gif
언뜻 보기에 구약에는 선교사상의 기초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주변의 여러 이방 국가와 서로 어울리지 말 것을 명하신다. 심지어 곳곳에서 이방 민족들을 멸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흔히 구약에는 이방인들에 대한 자비나 축복의 여지가 거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특별히 구약이 이방인들을 적대시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유대인들과는 다른 인종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한다는데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러한 이방인들과의 교류가 있을 때마다 이방 종교들에 의해 유혹을 받았으며 너무나도 쉽게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주변에 있는 이방인들의 우상을 열렬히 경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경고하셨으며 그것은 곧 이스라엘과 이방 국가와의 계속적인 적대적 태도와 분리의 장벽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방 국가의 장래가 매우 중요한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구약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이방인들의 장래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으며 장차 그들의 소유가 될 구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관심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 자들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정의의 심판자가 되신다. 시편에는 이방 민족도 하나님의 알고 그들 존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자주 강조하고 있으며 선지자들도 이스라엘의 주위에 있는 열국들에 대하여 심판의 소리를 외쳤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를 요구하심에 있어서 열방 민족들을 제외시키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순종을 요구하시며 그들의 우상 숭배와 타락에 대하여 책임을 추궁하신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렘10:10)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고 당당히 선포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라는 성경의 증언은 열방을 향한 선교에 대한 강한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구약의 선교는 특별히 다양한 우상 숭배 가운데 있는 이방 국가와의 문제이다. 따라서 구약의 선교 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이방인과 우상 숭배, 곧 타종교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즉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인과 타종교에 대하여 구약 성경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이방의 신들은 무엇인가? 그들은 과연 참되고 신뢰할 수 있는 계시의 원천인가? 타종교들은 진정한 구원의 수단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포용적이면서도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즉 이방인에 대해서는 포용적이며 이방 종교, 곧 우상숭배에 대해서는 배타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논문은 이방인과 타종교를 대하는 구약의 여러 입장들을 살펴봄으로 구약 선교의 기초를 다지는데 그 목적이 있다.
2. 이스라엘의 부르심의 목적 white1.gif
구약에 있어서 구원의 메세지를 갖고서 열국들에게 보내는 행동으로서의 선교는 없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선교라는 용어를 구원의 메세지를 가지고 열국들에게 보내는 행동으로 정의한다면 구약에서 선교 활동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최근에 선교라는 단어는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즉 선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게 하여 구원시키는 일이므로 구원의 사역을 선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정규남 교수는 구약에 있어서 선교를 "구원을 위해 이스라엘이 행하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가 선교를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관심이 이스라엘 역사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 아브라함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구원이라는 보다 광범위한 목적을 위한 것이다. '너로 인해 땅의 모든 족속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두번 주어졌다.(창12:3, 22:18) 그리고 이 말씀은 거듭하여 이삭과 야곱에게 선포되는데 이는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지속적인 관심의 표현임이 명백하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선교적 사명을 위하여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열국에서 분리하여 선택하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선택이 특권과 우월성을 허락하신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이스라엘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것이며 그 목적은 특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선택의 목적은 한마디로 이방의 구원 즉 선교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부르심의 목적을 말씀하시는 구절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 출 19:5-6 )
이스라엘은 열국 중에서 거룩하게 구별되어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는 제사장 나라인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은 거룩한 생활이어야 했다. (레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그들은 의의 제사를 드리고(신33:19) 거룩한 옷을 입고 하나님을 경배해야만 했다. (시29:2) 그들은 일상 생활을 통하여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미6:8) 이방 나라들의 우상 숭배와 부도덕과는 대조적으로 그들은 유일신교와 도덕적인 순결을 지켜야 했다. 이렇게 해서 주님의 영광이 전 세계에 알려 져야 했다.(사62:2) 이스라엘 사람들이 순종하든 불순종하든 간에 그들은 주변 이방 국가에 대하여 하나님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증인이 되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약 때에 열국을 구원하시기 위한 선교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으며 이 계획이 이스라엘의 선택을 통하여 구체화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선택되었고 그 선택은 하나님을 섬길 뿐 아니라 결국은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선교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3.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간의 관계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양한 상황과 관계 속에서 이방인들을 접촉해 왔다. 이에 대하여 다음 4가지 관점에서 이방 민족에 대한 이스라엘의 입장을 다루기로 한다.
 
⑴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 민족들에 대한 입장 white1.gif
 
    구약은 이스라엘 주변의 여러 이방 국가에 대하여 상당히 배타적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이방 세계는 이스라엘에 대한 끊임없는 위협과 유혹의 대상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구약이 이방인들을 배척하고 적대시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유대인들과 다른 민족이기 때문이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우상과 자기 자신을 다소 동일한 존재로 간주하였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이방인들과의 교류가 있을 때마다 너무나도 쉽게 이방 종교들에 의해 유혹을 받았으며 주변에 있는 이방인들의 우상을 열렬히 경배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신앙적 순결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이방인과의 교류를 철저히 금하신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과 이방 국가와의 계속적인 적대적 태도와 분리의 장벽을 초래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은 소극적 의미의 선교적 역할을 감당하였다. 즉 이스라엘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들, 그리고 구원 섭리가 이방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만나게 한 것이다. 또한 이방인들과의 다양한 접촉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증거 하였다.
    솔로몬왕 때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소문을 듣고 스바여왕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 이때 스바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와 건축한 궁과 궁전의 모든 가구 등을 보면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왕상 10:9)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과의 외교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을 증거하게 한 여러 가지 예 중에 하나인 것이다.
⑵ 이스라엘 안의 이방인들에 대한 입장 white1.gif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에 대하여 선교적 관계를 갖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자신이 이 세상에서 '나그네' 라는 인식에서 시작한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나그네 되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보호하시고 구원해 주신 것처럼 이제 이스라엘은 자신들 가운데 있는 외국인 거주자들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 구약은 곳곳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보호하시며 이스라엘이 타국인을 자신과 같이 사랑할 것을 명하신다.
(레19:10)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 레 19:33-34 )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타국인 거주자들에게 개방적이었고 스스로 평등한 입장을 취했다는 것은 선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중에 있는 이방인들을 향하여 적극적으로 선교할 것을 명하신다.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신 31:12-13 )
⑶ 이방 국가 속의 이스라엘 white1.gif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 이방 나라에 가서 직접적으로 전도한 일은 드문 일이다. 학자들은 거의 유일한 예로서 요나의 경우를 든다.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악독한 죄로 인해 멸망받을 니느웨성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그 성의 12만명을 구원하는 놀라운 증인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외에 구약에는 직접적인 이방 선교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모세 오경 속에서도 직접적인 이방 선교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신33:18-19) 스불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그들이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이 구절은 모세가 스불론과 잇사갈 지파를 향해 축복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예언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비록 스불론과 잇사갈 지파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살지만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은 그들 자신뿐이 아니라 "열국 백성들"까지 불러 와서 함께 여호와를 경배할 것을 모세는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열국 백성을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의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칼빈은 이 구절을 스불론이나 잇사갈 지파 사람들이 무역을 하면서 접촉하게 된 이방 백성들을 불러서 성전에 가 제사를 드리도록 권고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우리는 이사야서에서도 직접적인 선교의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사12:4-5)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4절에서 그 날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그 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신 아름다운 일을 만국 가운데 선포하라고 강권한다. 또한 이 놀라운 구원의 사건을 온 세상에 알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칼빈은 이 구절을 주석하면서 "유대인들이 매데 사람들과 페르시아 사람들과 다른 이웃 민족들에게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을 선포했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비록 이스라엘이 적극적으로 이방 국가로 가서 선교하는 기록을 많이 찾아 볼 수는 없지만 구약은 이방 선교에 대한 사상으로 가득차 있음을 볼 수 있다.
(4) 디아스포라 유대인 white1.gif
앗시리아와 바벨론에 의한 이스라엘 민족의 두 왕국의 멸망은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 각처로 흩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래서 결국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유대인보다 Diaspora 유대인의 수가 더 많아졌다. 이 흩어진 유대인들은 가는 곳마다 그들의 종교를 가져갔고 비록 국가를 잃었어도 그들 특유의 종교 공동체를 형성해 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많은 이방인들을 유대 공동체로 끌어들이는 힘이 되었다.
다니엘과 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의 바벨론에서의 삶과 그들의 신앙은 분명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인이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 단 3:16-18 )
또한 에스더서를 보면 모르드개가 총리가 되고 유다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때에 " (에8:17) ...각 도,각 읍에서 유다인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로 경절을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고 말하고 있다. 정규남 교수는 본문에서 "유다인을 두려워했다" 구절을 유다인들을 지키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를 유다인들을 통해 직접 전해 듣고 생긴 두려움으로 해석한다.
* 이 흩어진 유대인들의 종교 생활은 회당을 중심으로 행해졌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회당 제도는 전적으로 새로 창안된 제도였다. 그 기원을 정확히 추적할 수 없으나 흩어진 유대인들이 성전 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된 사람들, 그것도 절기 때에 국한해서 가능하였다. 따라서 회당 제도가 없었다면 그들은 그 오랜 기간 동안 자신들의 종교적 유산을 보존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된 곳에서는 어디에나 회당이 세워졌다. 그리고 이 회당은 그들의 종교 생활의 중심지가 되었다. 새로운 형태의 하나님 예배가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식일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낭송하며 예배를 드렸다. 특별히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 성전 출입이 금지된 이방인들도 회당 출입은 자유로웠다는 것은 중요한 점이 아닐 수 없다. 회당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유대인의 율법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이 만날 수 있는 장이요, 이방인들이 유대교 신앙에 관하여 들을 수 있었던 장이었다. 매주 회당에서 선포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으로 하여금 참 하나님을 알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회당은 그 사회의 이방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 회당에서 사용된 언어나 읽혀진 성경이 히브리어였다면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히브리어를 알지 못하는 Diaspora들을 위하여 구약 성경이 번역되었고 따라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게 된 것은 선교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또한 유일신 사상에 입각한 Diaspora의 신앙과 생활은 이방인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이었다.유대인들의 엄격하면서도 독특한 종교 생활, 특히 안식일 준수와 경건한 신앙생활, 높은 수준의 윤리적 생활 등은 이방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상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이방과의 관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였다. 일반적으로 구약은 이스라엘 주변의 여러 이방 국가에 대하여 상당히 배타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들, 그리고 구원 섭리가 이방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만나게 하였다. 또한 이방인들과의 다양한 접촉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증거 하였다. 무역이나 외교 관계 또한 전쟁을 통해 이방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찬양하거나 두려워하였다. 특별히 이스라엘 안에 거하는 타국인 거주자들에게 개방적이었고 우호적 입장을 취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행하게 하는 적극적 차원의 선교적 역할을 감당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또 비록 구체적인 사례를 많이 기록되어 있지는 없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가에 대하여 항상 열방을 향해 직간접적으로 선포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흩어진 유대인들은 이방인 가운데서 생활을 하면서 그들 특유의 신앙 공동체를 형성해 갔으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앙과 생활로 증거 했음을 볼 수 있다.
4. 구약과 이방 종교 white1.gif
 
우리는 이미 구약이 이방인들을 배척하고 적대시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앞에서 우리는 구약에 기록된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과 구원의 계획을 선교적 차원에서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이방과의 교류에서 항상 문제로 대두되었던 우상 숭배, 즉 유일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구약의 타종교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두 가지 관점에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구약에 나타난 타종교적인 요소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구약이 타종교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종교 다원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타종교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제공해 준다.
⑴ 구약에 있는 타종교적 요소에 대한 이해
애굽, 바벨론 그리고 가나안의 고대 종교들은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공통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종교들은 농경 사회가 당면했던 문제들과 주로 관련된 종교 표상으로 나타났으며 신들의 지상 대변자인 왕이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제의로 표현되었다.
구약 역시 고대 동양 종교 세계에 속했던 많은 종교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약에 있는 다양한 종교적 현상들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많은 종교학자들이 구약 역시 고대 근동의 원시종교 사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아 비교종교학적인 관점에서 구약의 종교를 분석하려 한다. 그 대표자중 한사람이 바로 벨하우젠이다.
① 벨하우젠의 가설 white1.gif
 
벨하우젠은 종교란 단지 인간의 문화적 활동의 열매와 산물일 뿐이라는 실증주의적인 전제를 가지고 구약의 종교를 분석한다. 특별히 벨하우젠은 헤겔 사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그의 시대에 유행하고 있던 진화론에 입각하여 히브리인들의 유일신 사상은 그들의 신앙의 발전 과정의 맨 마지막 단계에 나타났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는 이 이론에 맞추기 위하여 성경에서 초기의 기록들 속에서 비교적 진보된 신학적 개념들이 나타나면 이것들은 선지자 혹은 그 이후 시대의 편집자들의 활동에 의해 삽입된 것으로 귀속시켰다.
그는 히브리인들의 종교의 기원은 자연주의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즉 그는 히브리인들의 종교가 고대의 다른 종교들 , 특히 원시사회에서 존재하던 종교들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보았다. 그는 히브리인들의 원시사회를 분석하고 비교종교학적인 관점에서 구약의 신앙을 설명한다. 그 결과 족장 시대에는 애니미즘, 토테미즘, 타부, 다신론, 조상숭배 등의 전형적인 원시적 현상들이 잔존한다고 보며 이는 왕정 제도가 등장하기 이전 시대에는 당연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전 8-7C의 선지자들은 종교적인 사고의 수준을 높여서 일신숭배사상을 단일신론으로 바꾸고자 시도하였다. 이스라엘의 포로기는 히브리인들의 신앙을 정화하였으며 끈질기게 따라 다니던 우상적인 요소들을 제거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종교의 정수인 윤리적 유일신론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벨하우젠은 모세 오경에 나타난 히브리인들의 초기 종교는 분명히 에니미즘적인 요소들을 띠고 있다고 본다. 에니미즘이란 타일러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로서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줄만큼 움직임이 있는 사물들은 그 자체의 생명과 의사에 의해서 동작한다는 원시사회의 신앙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러한 사물들 중에 흐르는 물, 구르는 돌, 흔들리는 나무 가지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꼭 움직이지 않는 물체도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경향이 있는 것으로 지목된 구약의 예로는 모레, 마므레, 세겜의 상수리나무(창12:6;13:18;18:1;35:4), 또는 큰 돌, 삼상 22:6과 왕상 13:14의 에셀나무, 그리고 우물과 샘물에 대한 많은 언급들(창14:7; 민 21:17,18; 수 18:17; 삿 1:18,19) 등을 들 수 있다.
벨하우젠은 토테미즘이 원시종교에서 좀더 발전한 단계의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구약에서 시므온(하이에나?) 라헬(암양) 갈렙(개) 살빔(여우), 에글라(염소)등의 인명과 지명에서 토테미즘의 흔적을 찾아내었다. 그 외에도 동물 제사의 예배에 대한 언급들이 그전의 토테미즘적인 단계의 흔적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면 사 66:3, 17; 렘 2:27; 겔 8:10) 이러한 토테미즘적인 해석은 '엘'이나 '야'같은 신의 이름이 포함된 인명의 경우에도 적용이 되었다. 그는 이러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특정 동물의 이름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그 특정한 토템 동물의 후손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자신들이 특정한 신의 후손이라고 생각했다.
원시종교에서 벨하우젠은 타부가 토테미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원시적인 사람들에게는 타부들은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거룩한 사람들, 제의, 의식들과 출산, 사망 등의 여러가지 비종교적인 행위들, 그리고 때로는 어떤 구체적인 물건들이나 장소들에는 고유한 금기가 들어 있다. 벨하우젠은 고대 근동 지방 사람들의 생활에서 거룩한 사람들이나 성스러운 물건 등의 경우에 이런 비슷한 사고방식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즉 거룩함이나 부정함의 개념은 고대 셈족의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타부들이었다.
벨하우젠은 토테미즘이나 타부보다 더 발전된 것이 조상숭배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토템 조상은 점차적으로 인간 조상으로 그리고 결국은 신적인 존재로 발전되었다. 구약에서 조상숭배는 죽은 자들을 위하여 곡을 하는 관습과 장지를 성스럽게 보는 것 뿐 아니라 바알-갓등과 같이 신적인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부족명, 인명 등에서 나타난다고 추정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종교가 초보적인 단계에서 시작해서 고도의 유일신 사상까지 성장했다는 벨하우젠의 사상은 중요한 부분들에서 구약 자체의 역사에 대한 해석과는 완전히 대조가 된다.
② 벨하우젠의 가설에 대한 성경적 비판
 
ⓐ애니미즘에 대한 비판 white1.gif
최근의 연구는 히브리 종교의 가장 최초의 단계를 애니미즘 신앙으로 해석하는 근본적인 헤겔주의적-벨하우젠 견해가 상당히 많이 수정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 고대 근동 지방의 문헌들과 고고학적인 자료들에 대한 비교학적인 연구는 애니미즘이 히브리 족장들이 역사의 장에서 나타나기 몇 세기 전에 이 지역에서 사라졌음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족장 시대보다 훨씬 오래 전에 이미 에니미즘의 단계가 지나갔음이 많은 고고학적 자료들을 통해 밝혀졌다. 그리고 이미 주전 3000년 기에 애굽이나 메소포타미아의 종교들이 고도로 발달된 다신론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결론을 강화시켜 준다.
물론 다른 민족들의 신앙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종교도 정확한 기원을 설명할 수 없는 원시적인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벨하우젠의 히브리 종교의 초기에 대한 추정은 부적절하며 타당성이 없다. 특히 근동 지방의 고고학이 더욱 많이 알려진 결과 이스라엘 종교의 전 역사가 원시시대에 대한 자료에서가 아니라 만개한 고대 근동 지방의 문명에서 찾아야 한다는 카우프만의 주장은 숙고할 가치가 있다.
엔 미스밧이나 엔 게디와 같은 구약의 장소명들이 중요한 물의 근원을 가리킨다는 사실에는 동의 할 수 있지만 이 이름들이 신탁의 우물이라고 주장이 되거나 이것들이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진 장소들로서 그 이후에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증거가 없는 추측일 뿐이다.
신선한 물을 다량으로 공급하는 것이 쉽지 않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우물이 있는 곳은 어느 곳이나 다 중요한 곳이기 마련이며 엔 미스바라는 옛 이름이 가지고 있는 '결정'이라는 의미는 아브라함과 롯이 양을 치는 입장에서 내린 결정 이상의 것을 기념하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구약 족장들이 애니미즘적인 미신의 배경에서 이러한 장소들의 이름을 지었다고 생각해야 할 실질적인 근거는 전혀 없다.
엘른 모레나 엘론 므오느님과 같은 나무의 이름과 관련된 장소명도 마찬가지이다. 첫번째의 경우는 세겜 지방의 잘 알려진 지역 표시물이였으며 창 12:6의 언급을 통해서 볼 때 그 이름들이 가나안적인 기원을 갖는 것 같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계시를 받고 나중에 그 장소를 표시하기 위하여 제단을 쌓은 것은 상호 연관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그는 나무와 관련이 없는 다른 장소에서도 역시 계시를 받은 것이 있으며 그 장소들도 역시 제단들을 이용해서 표시를 했다.
두번째의 것, 즉 사사기 9:37에 언급된 신접자의 상수리 나무도 역시 가나안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이 장소가 애니미즘적인 신앙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곳은 한군데도 없다.
또 어떤 사람들은 초기의 히브리인들이 나무들에 대한 일련의 행동들이 뚜렷한 애니미즘적인 흔적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에브라임 산간 지대에 있는 종려나무 그늘 아래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재판을 베푼 여선지자 드보라(삿 4:4,5)나 석류나무 아래에서 재판을 개최한 사울왕(삼상 14:2)은 균형 잡힌 사고력을 활용하여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 머리 위에 있는 나뭇잎들의 살랑거림을 보고 영감을 받았으며 그들이 내린 재판의 결정 사항은 이에 근거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숙고할 여지가 없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어떤 병행하는 도구가 없이는 판단을 내릴 수 없었음을 제시해 주는 부분들이 구약은 전무하다.
모세의 지팡이는 그의 권위의 상징이지 그의 영감이나 능력의 원천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엘리야의 외투는 엘리야 자신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그리고 엘리사가 그것을 받았을 때 그것은 단지 그의 선구자의 유물이 이제부터 그의 선지자적인 활동을 특징지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토테미즘에 대한 비판 white1.gif
구약에는 특별히 토테미즘의 흔적들이라고 증명될 만한 것들이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구약에는 어느 특정한 집단이 시조인 동물의 형통으로부터 기원했다는 개념이 전혀 없다. 단지 족장 시대의 성경의 기록들은 일부 개인들이 그 기질이나 성격상의 특징들 때문에 동물에 비유된 경우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인물들 중에는 유다(창 49:9), 잇사갈, 단, 납달리, 베냐민등이 있다. 이와 마찬 가지로 어떤 인물들은 르우벤과 같이 물의 움직임에 비유된 경우도 있다. 하갈은 자신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들나귀같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선언을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들었는데 이 이름은 칭찬이 담긴 이름이다. 물론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으로 연결시킬 근거는 전혀 없다.
ⓒ타부 신앙에 대한 비판   white1.gif
어떤 신들과 관련이 되어 있는 동물의 이름 목록 등과 같이 타부와 연결시켜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우리는 셈족의 문헌에서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러나 레위기와 신명기에 나오는 이와 비슷한 목록들이 원시시대의 타부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성스러운 동물들이 인간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러한 성경의 기록들의 관심은 본질적으로 섭생이나 위생상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정한 동물들은 이방인들에게는 신적인 동물들이었으며 따라서 히브리인들이 이 동물들을 먹거나 희생 재물로 사용하기를 꺼려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레위기에 열거된 목록 들 중에서 정결한 짐승들 또한 이교의 종교 의식들 속에서 종교적으로 숭배를 받았음을 볼 때 이것을 타부로 간주할 근거가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조상숭배에 대한 비판   white1.gif
벨하우젠 시대 이후로 구약에서 조상 숭배의 흔적을 어느 정도 찾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상당한 논쟁 거리가 되어 왔다. 이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토템 신앙이 점차적으로 인간 조상으로 발전하고 이 인간 조상은 후에 신적인 존재로서 추앙을 받게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고고학적인 자료들을 통해서 볼 때 구약의 관련 기록들은 죽은 자들에 대한 종교적인 숭배라기 보다는 죽은 자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모세 오경은 죽은 자들과 접촉을 한다든지 죽은 자들을 위하여 형식적인 애도를 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되는 원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특별히 레위기는 죽은 자들을 위하여 제물을 받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가나안의 이교적인 의식과 관계가 있는 것들이다.
벨하우젠은 신에 대한 명칭이 포함되어 있는 부족명이나 인물명을 사용하는 것이 조상숭배의 단계가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러한 이름들은 특별한 설명이 없는 것들도 있지만 대게는 하나님의 나타나심 등의 중요한 사건들을 반영하고 있다. 한 예로서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하갈에게는 하나님이 그의 고통에 찬 외침을 들으셨다는 것을 보증해 주기 때문에 중요했다. 비록 이 이름에 하나님을 총칭하는 엘 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이것이 어떤 조상의 신성을 나타내는 것은 분명 아니다.
또한 제단들이 사라와 드보라 등의 매장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초해서 만약 조상들의 무덤들이 성소였던 것이 사실이라면 유대인들도 조상숭배를 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성소에서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은 죽은 자가 아니라 그 성소의 신이었으며 죽은 자들이 바로 그 장소가 거룩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 장소에 묻히게 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족의 일원이었던 고인들은 신의 손에 맡게지게 됨을 암시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행동은 조상숭배를 반영한다기 보다는 사후 세계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조상숭배의 흔적이라고 주장되는 드라빔은 고고학적인 증거를 통해 볼 때 상속권을 나타내 주는 작은 휴대용 우상이었다.
ⓔ 결 론   white1.gif
구약의 종교 문제를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진화론적인 가정이다. 대부분의 자유주의 학자들이 진화론적인 가정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의 유일신교는 진화의 최종 산물이라고 전제해 버린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종교도 처음에는 모든 자연의 대상들이 그들이 생명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오직 초자연적인 영의 내주에 의하여 살아있게 되어진다는 애니미즘에서 시작되어진다고 믿는다. 이 애니미즘으로부터 다양한 신들이 등장하게 되고 결국 다신론적이 된다. 그 다양한 신들 중에 가장 강력한 신이 다른 신들보다 우위에 올려지게 되는 일신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 저급한 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유일신을 주장하는 종교적 최고의 발전 경지에 도달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이처럼 비교 종교학에서는 이스라엘의 종교가 소위 애니미즘에서 다신교, 일신교, 유일신교로 진화의 과정을 거쳐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진화론적인 가설을 가지고 비교종교학적인 관점에서 구약을 연구하는 것은 구약 신앙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유일신론은 수세기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진화되어진 것이 아니고 한분 참되신 하나님에 의해서 그의 언약 백성들에게 계시되어진 영감된 통찰력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구약은 타종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을 갖는다. 구약의 신앙은 인류의 근본적인 우상 숭배의 와중에 사는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구약을 통하여 하나님은 고대의 다양한 종교 문화 가운데서 유일한 구세주로서의 자신을 계시하셨다. 구약의 신앙은 자연발생적인 종교도 아니고 주변 여러 종교들의 혼합체도 아니다. 구약 신앙은 인간의 왜곡된 종교 심성을 인하여 전혀 다른 방법, 즉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다. 이 신앙의 순수성을 인하여 이방 종교로부터의 오염 방지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과의 접촉을 엄히 경계하신 것이다.
⑵ 타종교에 대한 구약의 입장   white1.gif
성경은 점을 보는 행위나 신접을 금지하고 있다.
죽은 자와 의논하고 복을 구하는 것은 우상으로 정죄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부패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고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묻는 것을 강력히 경고한다.
(사8:19)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사2:6)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같이 술객이 되며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레19:26)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 채 먹지 말며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며
(겔13:9)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슥10:2) 대저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치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함이 헛되므로 백성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출23:19)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출34:26) 너의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며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이것은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가나안의 바알 종교의 습관이다. 즉 가나안 사람들은 한해의 풍년을 빌기 위하여 염소를 어미의 젓에 삶아 원하는 나무나 장소에 뿌렸다. 성경은 이 역시 우상적 행위로서 정죄하고 있다.
호세아 선지자는 바알신이 풍년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풍성한 곡식과 열매를 주신다고 하면서 바알을 따르는 배반한 이스라엘을 책망하였다.
(호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마술적인 샤마니즘의 종교 행위를 정죄한다.
(신18:9-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을 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 내시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
모세는 하늘의 일월성신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것을 엄히 금하고 있다.
(신4:19) 또 두렵건대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일월 성신 하늘 위의 군중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분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길까 하노라
요시아가 개혁 운동을 전개할 때 먼저 이스라엘이 모든 우상을 파괴하였다.
(왕하23:4)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버금 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기명을 여호와의 전에서 내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
그외
(렘8: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 방백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민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렘8:2) 그들의 사랑하며 섬기며 순종하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아래 쬐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렘19:13)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 곧 그 집들이 그 집 위에서 하늘의 만상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더러워 졌은즉 도벳 땅처럼 되리라 하셨다 하라
(습1:5-6)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와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
다수의 시들이 우상숭배 사상의 헛됨을 지적한다.
(시135:15-18) 열방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 입에는 아무 기식도 없나니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
우상 숭배는 열방의 거짓된 숭상의 일면이다.
(시96:5) 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시97:7) 조각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긍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시97:9) 여호와여 주는 온 땅 위에 지존하시고 모든 신 위에 초월하시니이다
5. 결 론 white1.gif
우리는 이상에서 타종교를 대하는 구약의 여러 입장들을 살펴보았다. 구약의 선교는 특별히 다양한 우상 숭배 가운데 있는 이방 국가와의 문제이다. 따라서 구약의 선교 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이방인과 우상 숭배, 곧 이방인에 대한 문제와 타종교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포용적이면서도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즉 이방인에 대해서는 포용적이며 이방 종교, 곧 우상숭배에 대해서는 배타적이다.
구약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방 국가의 장래가 매우 중요한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구약 성경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이방인들의 장래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으며 장차 그들의 소유가 될 구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관심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 자들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정의의 심판자가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순종을 요구하시며 그들의 우상 숭배와 타락에 대하여 책임을 추궁하신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렘10:10)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고 당당히 선포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라는 성경의 증언은 열방을 향한 선교에 대한 강한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주변의 여러 이방 국가와 서로 어울리지 말 것을 명하하시는 하나님의 강경한 말씀을 접하게 된다. 심지어 곳곳에서 이방 민족들을 멸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특별히 구약이 이방인들을 적대시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유대인들과는 다른 인종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한다는데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러한 이방인들과의 교류가 있을 때마다 이방 종교들에 의해 유혹을 받았으며 너무나도 쉽게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주변에 있는 이방인들의 우상을 열렬히 경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경고하셨으며 그것은 곧 이스라엘과 이방 국가와의 계속적인 적대적 태도와 분리의 장벽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이방 족속들을 사랑하되 그들의 헛된 우상숭배는 경계해야 하며 모든 이방 족속들이 우상숭배의 허상을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도록 하는 일에 더욱 정진해야 할 것이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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