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과 하나님나라
I. 서론
'전천년설이 천년왕국이 앞에 있다는 거야, 후천년설이 앞에 있다는 거야' 이런 어찌 보면 부끄러운 질문에서부터 천년왕국에 대한 의문이 시작되었다. Baker 신학사전을 뒤져보고는 전천년설과 후천년설을 간신히 알았다. 그런데 수업 중에 무천년설을 또 들었다. 그리고 공부 잘하는 친구한테 무천년설을 물어보았더니 역사적 전천년설, 세대주의 전천년설까지 말해 주었다. 그래서 이번 교회와 종말 기말 보고서를 천년왕국에 대해 쓰기로 했다.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보니까 천년왕국 사상의 역사가 굉장히 길고 또 그 종류도 다양했다. 또 골치 아팠던 건 학자들이 나누기 좋게 전천년설, 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세대주의 전천년설 요로케 자기들의 입장을 맞추어 말한 게 아니라 자기들이 성경을 읽고 생각나는데로 그냥 막 말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후천년설 입장의 학자라고 분류된 사람이 말한 것이 무천년설 같기도 했고 무천년설의 학자가 말한 것은 후천년설 같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상 천년왕국 사상을 제대로 다루려면 이 생각을 다룬 학자들을 모두 따로 비교 분석해야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과 지면 관계상 그럴 순 없고 본 보고서는 그저 천년왕국에 대한 통상적인 분류에 따라 그것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본 고에서는 우선 통상적인 분류에 따라 천년왕국 사상을 정의한 후 그리고 그런 천년왕국 사상이 어떤 역사적 변화 과정을 밟는 지를 살펴 볼 것이다. 그 후에는 천년왕국 사상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을 살필 것이며 마지막으로 그러면 천년왕국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천년왕국과 하나님 나라'에서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II. 본론
1. 천년왕국 사상
이종성은 천년왕국에 대한 탈몬의 정의를 인용하면서 그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천년왕국 신앙은 구원이, 쉽고(imminent), 전체적이며(total), 궁극적이고(ultimate), 현세적으로(this worldly) 오리라고 믿는 종교 운동이다. 하지만 탈몬의 정의에 한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천년왕국이 승리적인(triumphant) 왕국이라는 것이다'1) 이처럼 천년왕국 신앙은 위와 같은 다섯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는 특수한 역사관이다. 하지만 천년왕국 사상은 초기교회 때 등장한 이후 한 가지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전천년설과 후천년설 그리고 무천년설 등이 그것이다. 이제 그 각각의 흐름들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1 역사적 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은 주님의 재림이 천년왕국 이전에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면에 있어서는 세대주의 전천년설과 동일하다. 하지만 역사적 전천년설은 세대주의 전천년설과는 다르게 그리스도의 이중재림과 비밀휴거를 믿지 않는다. 즉, 역사적 전천년설에 따르면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우면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큰 환난이 있을 것인데 이 환난을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겪을 것이고 환난의 마지막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며 주님께서는 적그리스도와 악한 세력을 물리치시고 이 땅에 천년왕국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비밀휴거 즉, 예수님의 공중재림과 같은 구조는 역사적 전천년설에는 없다. 역사적 전천년설의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예수님의 이중재림이 도무지 그 근거가 없다는 데 있다.
또한 역사적 전천년설은 세상 마지막에 있을 환난을 겪는 사람들의 대상에 있어서도 세대주의 전천년설과는 다르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의 주장에 따르면 7년 대환난이라고 불리는 세상 마지막의 환난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휴거됨으로 겪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역사적 전천년설의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은 그 환난을 교회도 겪을 것이라고 말한다.2) 여기에 더하여 역사적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강조하는 또 한 가지는 성도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을 철저하게 구분하고 있는 점이다. 요한계시록 20장에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먼저 성도들이 부활하고 천년왕국의 마지막 최후의 심판 시에 악인들이 부활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역사적 전천년설은 이렇게 천년을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성도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을 가장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역사적 전천년설의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은 요한 계시록을 해석함에 있어서 그 의미를 요한 당대에서도 찾으려고 하지만, 동시에 미래에 대해서도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역사적 전천년설이 한국교회에 소개된 것은 이눌서(W.D. Reynolds)박사와 박형룡 박사에 의해서이다. 박형룡 박사는 한국교회의 신학 전통을 역사적 전천년설이라고 말한다.3)
1.2 세대주의 전천년설
'세대주의'라고 할 때 '세대'라는 말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복종이라는 기준에 의해서 인간들이 시험을 받는 기간을 말한다.4) 세대주의자들은 인류의 역사를 일곱 개의 시대로 구분한다. 첫째, 순결시대(에덴시대), 둘째, 양심시대(노아까지), 셋째, 인간통치시대(아브라함까지), 넷째, 약속시대(시내산까지), 다섯째, 율법시대(예수탄생까지), 여섯째, 교회시대(재림까지), 일곱째, 왕국시대(재림부터 천년)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일곱 번째의 시대 즉, 주님의 재림 후 천년의 기간으로 말해지는 '왕국시대'가 바로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천년왕국의 기간이다. 천년왕국이 재림 이후에 온다는 구조임을 보면 세대주의자들의 주장도 전천년설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지상재림 전의 공중재림(비밀재림)과 휴거 그리고 7년이라는 기간으로 상정된 환난의 기간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전천년설과 구분된다. 이것은 결국 예수님의 이중재림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천년왕국에 대한 여러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에 의해 가장 강력하게 비판받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세대주의 종말론은 다른 여타의 종말론에 비해 그 구조가 복잡한데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의 공중재림-->그리스도인들의 휴거-->지상의 7년 대환난-->예수님의 지상재림-->천년왕국-->곡과 마곡의 반란-->마지막 싸움-->최후의 심판-->새 하늘과 새 땅
세대주의의 또 하나의 특징은 그것이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이스라엘과 교회를 지속적으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즉, 세대주의에 따르면 이 땅에 세워질 천년왕국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나라로 그것은 구약의 다윗 왕국의 회복을 의미한다. 세대주의자들의 천년왕국은 이렇게 다분히 이스라엘과 관련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세대주의자인 호이트(H.A. Hoyt)는 천년왕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나라는 실제적인 나라이며, 그곳의 위치는 예루살렘과 그 근방이며, 왕은 실제로 어느 한 왕이 인공적인 보좌에 앉을 것이며, 열방의 백성들은 천년 왕국의 번영과 구원을 위한 사역에 참가할 것이다. 그리고 천년왕국은 역사적인 다윗 왕국이 부활한 것이며, 남은 자들이 회복되어 이 왕국의 핵심이 될 것이며, 따라서 다윗과 맺은 언약이 온전히 성취된다. 이때 천년왕국의 수도는 예루살렘이며, 여기서 세계를 통치한다'
세대주의자들은 이러한 천년왕국의 예언을 오늘의 시대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려는 강한 경향을 가지고 있다.
세대주의적인 생각이 언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는지 말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 초보적인 형태가 초기교회 교부들의 기록에서부터 발견되는 것을 보면 그 기원이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던 것이 보다 체계적인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포레(P. Poirt), 에드워드(J. Edward), 왓츠(Isaac Watts) 등에 와서부터이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영국의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ern) 운동을 이끌었던 다비(John Nelson Darby)가 세대주의의 맥을 잇고 있는데, 다비는 역사적으로 세대주의 사상을 가장 폭넓게 집대성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다비는 특히 그리스도의 이중재림을 주장함으로써 그 동안의 천년왕국 주의자들과 자신을 구분하는데 첫째 재림 즉, 예수님의 비밀스런 공중재림으로 교회의 시대는 끝을 맺는다고 한다. 또한 다비에 따르면 공중재림에 이어지는 7년간의 환난기 동안에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는 자들이 생기며, 이어 예수님께서 지상에 재림하시고 비로소 주님께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이 땅에서 천년의 통치를 이어가는 천년왕국이 수립된다. 다비는 이런 천년왕국 사상에 더하여 성경의 축자 영감설, 인간의 완전 타락,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주권 등을 강조했다.
이렇게 다비에 의해서 집대성된 세대주의 사상이 확산되게 된 계기는 미국의 '성경 사경회 운동(Bible Conference Movement)'이었다. 이 운동은 1875년 나이아가라 성경 사경회를 기점으로, 뉴욕 사경회, 시카고 사경회 등 많은 사경회를 탄생시키는데, 1909년 나이아가라 사경회에 참석했던 달라스제일회중교회의 목사 스코필드는 세대주의 사상에 근거하여 스코필드 관주성경을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 성경 사경회와 스코필드 관주성경 등으로 미국 보수교회에 확산된 세대주의 사상은 또한 세대주의 사상에 근거한 많은 신학교와 성서대학들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디 성경 연구원(Moody Bible Institute) 같은 오랜 전통을 가진 성경학교들도 이런 배경 하에 세워진 학교로서 세대주의를 공식입장으로 가르치는 학교였다.
이 외에도 많은 방송 사역자들이 세대주의의 입장에서 그들의 사역을 수행해 나감으로 세대주의 사상을 널리 보급시켰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들이 반하우스(Donald G. Barnhouse), 크리스웰(W.A. Criswell), 스탠리(Charles Stanley), 디한(M.R. DeHaan), 위어스비(W. Wier-sbe), 스윈돌(Charles Swindoll) 등이다.
이 같은 19세기 말엽 미국의 세대주의 사상은 미국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까지 전파되어 이후 한국 개신교회가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에 강하게 영향받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5)
1.3 후천년설
후천년설은 예수님께서 재림하는 시기에 있어 전천년설과 차이를 보인다. 즉, 후천년설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이 천년왕국의 끝에 있다고 말한다. 후천년설에서는 이중재림 같은 건 물론 인정하지 않으며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휴거라든가 7년의 환난기간도 상정하지 않는다. 그저 이 역사 안에 있을 천년왕국과 그것의 종말 그리고 재림과 최후의 심판이 있을 뿐이다.
후천년설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이 점 즉, 천년왕국이 인류 역사 안에서 이루어진다 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마태복음 20장 19-20절의 말씀이 문자 그대로 이 역사 안에서 이루어져 온 세상이 복음화되고 그리스도의 의가 편만하게 이루어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6) 그리고 그러한 시기는 문자적으로 천년이라기보다 천년을 넘어서는 긴 기간이다. 후천년설을 주장하는 워필드(Benjamin B. Warfield)는 역사 안에 천년왕국이 이루어진다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요한계시록 20:1-6절은 현재 교회 시대 동안에 사단이 결박당하고 있는 것과 또한 현세대 기간 중 이미 죽은 신자들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통치하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후천년설의 천년왕국은 복음을 받아들인 변화된 성품의 사람들과 그들이 성취해낼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업적들에 의해서 이 땅에 이루어질 의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이다. 후천년설에서 말하는 이 세상과 이 역사 안에 수립될 이 같은 천년왕국에 대해 뵈트너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왕국은 지금 복음의 전파와 각 개인들의 심령들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구속적 사역을 통하여 이 세상 안에 확장되고 있다. 따라서 이 세상은 점차적으로 기독교화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일반적으로 '천년기'라고 불리는 의와 평화의 긴 시대의 끝 무렵에 발생하게 될 것이다' 후천년설의 원리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곧 따라서 대부활, 대심판 그리고 천국과 지옥으로의 인도됨이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후천년설은 성경적 근거가 가장 약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의가 편만하게 이루어지는 평화의 왕국이 온다는 주장은 성경에서 근거를 발견할 수 없고 그러한 의의 왕국 말미에 다시 악한 세력이 갑자기 등장한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7) 더불어, 후천년설의 주장은 인류 역사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어서 역사 안의 깊은 죄의 문제를 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8) 인본주의적이고 진화론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후천년설은 그래서 교회를 천년왕국으로 보았던 중세 이후에는 크게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1.4 무천년설
무천년설은 말 그대로 천년왕국 자체를 부인한다. 이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 땅에 이루어질 천년왕국이라는 생각 자체가 성경적 근거가 약한 것으로 본다. 이들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천년이라는 기간을 문자적이라기보다 상징적으로 해석한다. 무천년설에 따르면 예수님의 재림은 바로 최종적이며 완전한 상태의 시작이며 그러므로, 재림에 뒤이은 지상적인 천년왕국 같은 것은 없다. 이들이 천년왕국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구체적이고 지상적인 천년왕국이라기보다 재림 이후에 있을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징하는 나라로서의 천년왕국이거나 후천년설의 주장처럼 재림 이전의 교회의 시대를 가리키는 천년왕국이다.
무천년설은 종교개혁 이후 루터와 칼빈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개혁주의 신학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개혁주의 전통이 지상 천년왕국을 거부하는 이유는 역시 그것이 성경적 근거가 약하다는 데 있다. 이들은, 요한계시록 20장을 제외하고는 성경에 천년왕국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은 천년이라는 기간을 그리스도가 통치할 나라의 완전성과 궁극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즉,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에 대한 언급은 재림 이후 있을 그리스도의 통치의 장구함과 완전함에 대한 상징이다. 이런 그리스도의 통치의 장구함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로 말해지는 사탄의 통치와 대비되어 그 영원성이 더욱 강조된다. 개혁주의자들은 그래서 천년왕국보다는 하나님의 역사의 최종 지향점인 새 하늘과 새 땅에 더 중요한 의미를 둔다.
2. 천년왕국설의 역사
초기교회는 구원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했다. 그 하나는 지적이고 영적이며 개인적인 성취로서의 구원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건설하게 될 지상적인 왕국의 시민이 되는 것으로서의 구원이다. 후자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최후심판까지 이어질 천년왕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천년왕국 신앙은 초기교회 때부터 보편적인 신앙이었다.
전천년설 지지자인 파인버그(Charles Feinberg)는 초기 3세기 동안 전 교회와 성도는 거의 전천년설의 입장을 견지했다고 말한다. 여기에 대표적인 교부로 2세기 초엽의 파피아스, 순교자 저스틴(Martyr Justin)이 있고, 2세기 후반의 이레니우스, 3세기 초 몬타니스트들과 이 시기 로마 교회의 가장 박학한 자로 알려진 히폴리투스도 이런 입장이었다.9)
이러한 초기교회의 전천년설에 대해 가장 단호하게 반대한 인물이 오리겐이었다. 그는 몬타니스트들을 배격하기 위해 천년왕국을 영적으로 해석하였다. 어거스틴도 처음에는 전천년설의 입장을 취했지만 후에 그러한 주장을 철회하였다. 어거스틴은 이레네우스나 순교자 유스티누스, 힙폴리투스나 락탄티우스와는 달리 하나님의 나라와 천년왕국이 지상에 구체적으로 건설되리라고 믿었으며, 그것이 로마 천주교회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어거스틴 식의 천년왕국 사상은 중세 교회의 대표적인 신앙이었다.
12세기의 요아킴은 역사 전체를 삼위일체론적 구조로 구분했다. 성부의 시대와 성자의 시대 성령의 시대가 그것이다. 그는 성부의 시대를 율법과 지식의 시대라고 보았으며, 성자의 시대를 복음과 지혜의 시대 그리고, 성령의 시대는 영적 왕국의 시대 또는 지식의 풍요시대라고 했다. 특히 그는 성령의 시대인 영적 왕국의 시대가 1260년부터 지상에서 시작된다고 했는데 물질적, 정치적 왕국이 아닌 영적 왕국의 시대 성령에 의해 지배되는 이 시대를 천년왕국으로 보았다. 플린의 지적과 같이 그는 천년왕국을 역사적 과정에 따르는 필연적 결과로 보았다.
종교개혁 시대의 개혁가들은 대체로 천년왕국 사상에 반대했다. 루터와 칼빈은 모두 천년왕국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특히 칼빈은 전천년설 주의자들에 대해 '그들의 주장은 너무 유치하여 논박할 필요가 없으며, 그럴만한 가치도 없다'고 경멸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개혁파들 중에도 16-17세기의 화란 개혁파들은 천년왕국을 인정하기도 했는데 그들의 천년왕국 사상은 후천년설에 속하는 것이었다. 또한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이 미흡하다고 느낀 급진적 개혁가들은 예수의 교훈을 따르는 참된 성도들의 공동체를 지상에 건설하려고 했는데 이들이 건설하려고 했던 이상적인 공동체는 천년왕국 신앙에 입각한 것들이었다. 뮌스터를 중심으로 순결한 하나님의 자녀만으로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던 뮌처(Thomas Münzer), 또한 성서의 교훈대로 사랑의 실천을 '모토'로 하면서 비폭력과 반정치, 군복무 반대 등을 주장했던 시몬스(Menno Simons) 등이 그들이다.
이후 '계시록을 푸는 열쇠'라는 책을 통해 천년왕국의 필요성을 강조한 메드(Joseph Mede)와 신양성서 주석을 통해 천년왕국을 주장한 위트비(Daniel Whitby) 등이 17-18세기 영,미 개신교 권에서 천년왕국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이다. 독일의 프랑케(A.H. Franke), 슈페너(P.J. Spener), 그리고 진젠도르프(Count von Zinzendorf) 등 경건주의자들자들도 이 시기에 천년왕국 신앙에 근거해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건설하려고 했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교회 내에서는 천년왕국에 대한 강렬한 신앙이 생겨나는데 1차 대각성 운동을 주도한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도 그들 중 하나였다. 에드워즈는 지상의 역사 안에서 기독교의 황금 시대를 보았으며, 그것은 성령의 권능 안에서 복음을 전도한 정상적 과정을 통해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외에도 밀러(W. Miller)에 의해 탄생한 '어드벤티스트'들과 스미스(Joseph Smith)와 영(B. Young)에 의해 시작된 모르몬교 그리고, 러셀(Ch.T. Russell)에 의해 창시된 여호와의 증인 등이 미국교회 내에서 근대까지 이어진 천년왕국 운동을 주도한 세력들이다. 이들 중 어드벤티스트 교파의 일종인 제 7일 안식교의 한국 선교는 해방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한국내의 천년왕국 신앙에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다비(John Nelson Darby)에 의해 시작된 영국의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ern) 운동은 미국으로 전해져 세대주의적 천년왕국 신앙이 미국 전역에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때 생겨난 신학교와 성서대학에서 배출된 많은 한국 선교사들은 한국교회가 이후 세대주의적인 천년왕국 신앙을 갖게 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10)
3. 천년왕국 사상과 한국교회
한국교회는 살펴본 바와 같이 그 시작부터 천년왕국 사상을 가진 선교사들의 선교에 의해 탄생했다. 이러한 영향 때문에 다른 기독교 국가에선 주류였다고 말하기 힘든 천년왕국 신앙 전통이 한국교회에서는 중심적인 신앙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한국교회의 천년왕국 신앙은 미국 세대주의의 영향을 받아 세대주의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한국 초기 선교사 중의 대표 격인 언더우드는 세대주의에 강하게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근본주의 계열의 성경인 스코필드 관주성경을 번역하기도 했다.11) 어쨌든 한국교회는 그 시작부터 이렇게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을 배경으로 출발하였는데 이런 종말론, 극단적인 천년왕국 신앙이 한 교회에서 중심적인 교리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매우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점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한국교회는 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종말론을 주장하는 많은 목사와 교파와 이단들이 생겨났는데, 1907년 대부흥 운동을 이끌었던 길선주 목사를 비롯해서, 감리교의 이용도, 성결교의 이명직, 김응조 목사, 장로교의 김익두, 주기철, 손양원 목사 등 초기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목사들이 대부분 세대주의적 종말관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해방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은 변하지 않아서 용문산 기도원을 창설한 나운몽과 전도관의 박태선, 통일교 문선명, 세계일가공회 양도천,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 그리고, 다미선교회의 이장림 등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이들 역시 대부분 세대주의적인 전천년설의 입장에 서있는 인물들이다.
한국의 초기교회에서 이런 세대주의적인 종말관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급속하게 확산된 이유는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 상황 때문이기도 했다. 초기 교회 지도자들은 암울한 시대에 희망을 잃고 헤매이는 백성들을 향해 세대주의적인 천년왕국에 대한 희망과 꿈을 가르침으로 위안을 주려고 하였다. 이들이 선포한 종말 신앙은 다분히 개인적이고 내세 지향적인 것이었는데 이러한 내세 지향적인 종말 신앙은 그 이후 한국교회를 지배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바로 이런 한국교회의 개인적이고 내세 지향적인 종말 신앙 때문에 한국교회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개인주의적인 신앙전통은 교회가 사회와 역사를 위해서 수행해야 할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 초기부터 한국교회를 지배해온 천년왕국 신앙은 한국교회에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생각된다.
4. 천년왕국과 하나님 나라
천년왕국과 하나님 나라는 어떤 관계인가. 천년왕국이 하나님 나라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둘은 별개의 것인가. 이제껏 살펴본 바에 의하면 천년왕국에 대한 여러 입장에 따라 천년왕국은 하나님의 나라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먼저 전천년설의 입장에서 보면 천년왕국은 하나님 나라와 분명히 구분되는 하나의 독립된 개념이다. 왜냐하면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하늘 새 땅 즉,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 이 땅에 건설될, 이스라엘과 관련이 있는 구체적인 왕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이종성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반대의 입장을 보인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성육신 사건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전통적으로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현 역사 안에서 현재 하나님의 나라가 가시적, 불가시적이라는 이중 성격을 띠고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과 같다. 이러한 신국관에서 볼 때 '천년왕국'은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천년왕국이 가능하려면 하나님 나라의 진행 과정을 천 년 동안 정지시키든지, 그렇지 않으면 교회 시대에 성장을 계속한 하나님의 나라에 종말이 왔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불가능하다. 만약 천년왕국이 하나님의 나라에 반대되거나 무관한 것이라면 그러한 천년왕국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12)
후천년설의 입장에서 보면 천년왕국은 거의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된다. 후천년설에 의하면 천년왕국은 이 역사 안에서 실현되고 성장할 그리스도의 교회, 실현될 의의 나라를 가리키는데 이는 곧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무천년설은 후천년설 보다 천년왕국과 하나님 나라가 더욱 동일시된다. 무천년설에서는 하나님 나라와 다른 독립적인 천년왕국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천년왕국이란 개념은 그리스도가 통치할 나라의 완전성과 궁극성을 상징하는 것일 뿐 하나님 나라와 다른 것이 아니다. 오택현은 그의 책 '알기 쉬운 성서 묵시문학 연구'에서 전천년자들이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이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낸다. 그는 전천년주의자들이 계시록 20장 1절의 '열쇠'라든가 '인봉'은 상징적으로 해석하면서 굳이 '1000'이라는 숫자에 대해서는 문자적 해석을 고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적 특성이 강한 매우 상징적인 책으로 그 상징성은 '666'이나, '144000' 같은 숫자들에서도 잘 나타난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이런 숫자들이 상징적인 것처럼 계시록 20장의 '1000'이라는 숫자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는 천년왕국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도래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상징으로 본다.13)
김명용 교수도 천년이라는 기간의 상징성에 대해 강조한바 있다. 김명용 교수도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의 묵시문학적 특성을 강조하면서 요한계시록에 나온 숫자들의 상징성을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천년이라는 기간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로 말해지는 마귀의 통치가 잠깐이라는 점과 대비되는 그리스도의 통치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는 요한이 계시록을 통해 고난 중에 있는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잠깐인 마귀의 통치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원할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승리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김명용 교수의 종말론에 의하면 주님의 재림 후에 이어질 천년 동안의, 하나님 나라와 별개인 왕국 같은 것은 없다.14)
III. 결론
이상 한국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천년왕국 사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나는 나 자신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많은 것들이 세대주의 종말론의 영향임을 알고 놀랐다. 7년 대환난과 휴거 그리고 주님의 재림 후에 이어질 천년의 왕국과 같은 생각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것이 성경의 진리인양 한국의 교회에서 가르쳐지고 또 가르치고 있는 내용들이다. 나도 설교 중에 그것이 정말인지 확인도 안 해보고 그냥 당연히 그런 거겠지 하면서 아이들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새삼 한국교회가 세대주의에 엄청난 영향을 받았음을 깨달았고 또 그것이 세대주의에 물든 한국교회의 초기 선교사들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왜, 어찌 보면 변방 신학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런 종말론이 하필 그런 신학이 주도하는 시대와 나라의 선교활동에 의해 우리 나라에 전해져서 우리 나라에서는 부동의 교리처럼 자리잡게 되었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느꼈다. 보고서를 마무리하면서 내린 결론이 '세대주의적인 천년왕국은 없다'였기 때문이었다.
요한 계시록 20장을 가만히 읽어보면,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것에 근거하여 세대주의자들은 천년왕국의 확실성을 주장하고 또 그러한 주장에 대해 다른 학자들은 '그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을 못해 왔다. 요한계시록의 상징성을 강조하는 오택현 교수도 '어느 입장이 성서에 충실한 것인지에 대해서 절대적 단안을 내리기도 어렵다'고 말을 할 정도니 말이다. 복음서의 종말 예언들과 계시록 20장을 종합하면 천년왕국은 정말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회복, 다윗왕국의 구체적인 회복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 같은 게 사실이다. 그러면 세대주의 천년왕국 사상이 맞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천년이라는 구체적인 언급이 나오는 곳은 요한계시록뿐이다. 그렇다면 그곳에 분명히 나와있는 그 천년이라는 구절을 상징이라는 말로 애매하게 반박할 것이 아니라 요한이 예언을 잘못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모든 게 확실해 진다. 예언은 틀릴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요한의 예언은 큰 틀에서는 별 문제가 없는데 구체적인 작은 부분에서 문제점이 있는 것이니 이렇게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는 예언은 틀렸다고 보는 게 모두에게 좋다.
그럼 왜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종말론이 틀렸는가.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고. 세대주의자들이 아무리 성경에 나와 있다고 강조해도 그렇게 애매한 구절을 가지고 자기들의 주장이 옳다고 우겨선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런데 성경에 근거했다고 말하는 세대주의 종말론은 그렇지 못했다. 수많은 이단 종파를 만들었으며 시한부 종말론 등으로 사회에 많은 해악을 끼쳤다. 많은 부녀자들과 아이들까지 가정과 학교를 떠나 사회를 등지게 했으며, 최근에는 시한부 종말론에 심취한 사람들이 UFO를 타고 오는 그리스도를 맞는다고 집단 자살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또한, 세대주의 종말론에 물든 교회는 하나같이 교회가 수행해야 할 사회, 역사적 책임을 등한시했다. 이런 열매를 맺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디 있는가. 세대주의자들은 입으로는 주여, 주여 했지만 사실은 싸움과 분쟁만 일으키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것이 정말 정의와 평화가 편만한 그리스도의 통치를 말하는 천년왕국이라면 이 땅에 분쟁과 문제거리가 아닌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왕국을 결과로 내놓아야 한다. 따라서 그렇지 못한 열매를 맺는 세대주의 종말론은 틀렸다. 하나님 나라 복음이 아니다...
사도 요한이 보았던 천년왕국은 새 하늘과 새 땅,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나라, 하나님 나라를 향한 꿈이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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