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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도, 이제는 제대로 합시다

하나님아들 2017. 6. 3. 15:11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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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이제는 제대로 합시다

6:5-8

 

6: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설교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교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설교가 있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런 시국에 목사는 뭐라고 할까?’ 그런데 본인은 이미 마음을 정해 놓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맞으면 은혜 받은 것이고 마음에 안 맞으면 참 목사 맞아?’ 합니다.

그러나 기도 중에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설교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주님은 무엇이라고 하시나? 그것을 들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혹 설교 중에 마음에 안 맞는 부분이 나올 수 있겠습니다. 그 때 성경에 집중하기 바랍니다.

지난 주일을 전후하여 때 아닌 기도 논쟁이 있었습니다. 저는 늘 영성일기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 그리스도들에게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도전해야 한다는 사명 때문입니다. 이번 대통령의 비리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저는 영성일기 칼럼을 썼습니다. ‘감추어진 죄를 두려워하고 마음을 열고 살아야 합니다.’ ‘더욱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라는 글을 올렸는데, 엄청난 비난 댓글이 달렸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지금이 기도할 때냐, 행동할 때지?” “언제까지 기도만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그리스도인들이기에 당황스러웠고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인도 기도하자면 분노하는 시대이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분이 해석해 주었습니다. “목사님이 기도하자, 주님을 바라보자하는 것을 대통령 비리를 외면하자, 덮고 가자.’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였습니다. 역사를 통하여 그렇게 교인들을 잘못 인도했던 때가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그리스도인들조차 기도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기도가 무시당하는 것이 하나님이 무시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기도를 너무나 잘못해왔던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가 무시당하는 것은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하면서도 능력 없는 기도, 껍데기뿐인 기도만 드려왔기 때문이라고 깨달아졌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 강해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자기들이 기도했던 기도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기도 많이 한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바리새인들의 기도와도 달랐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였고, 주님은 그 대답으로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주기도문을 언급하기 전에 먼저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기도는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6: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당시 유대인들이 기도를 참 열심히 했지만, 이것이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평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보라고 기도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건한 사람이라고 평가받으려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대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도 기도합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 의식하여 사람 들으라고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어느 교회에 전도사와 장로가 새벽기도 일찍 나오는 경쟁이 붙었습니다. 어느 날 전도사님이 새벽 4시에 나갔습니다. 다음날 장로님이 벌써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예 전날 밤에 새벽기도 나오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으니 기도에 아무런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골방기도를 드리라 하셨습니다.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 말씀은 정말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골방 기도는 하나님을 정말 믿고 친밀히 동행하지 않은 사람은 할 수 없는 기도입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자며 쓰는 영성일기에 대하여도 온갖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어떻게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느냐?” 하였습니다. 24시간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은 가능성 문제가 아닙니다. 갈망의 문제요, 믿음의 문제이고, 관계의 문제입니다. 주님을 갈망하는 자를 주님이 만나주십니다. 주님을 원하지 않으니 주님께서 친밀하게 다가오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되지도 않을 일을 왜 하라고 하셨겠습니까? 믿음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기 전에 항상 그 사람만 생각하게 될 줄 알 수 있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24시간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관계의 문제입니다.

 

불의 전차의 주인공 스코틀랜드의 신화적인 육상 선수 에릭 리들은 여동생 제니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니! 나는 달릴 때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임재를 느끼고 있어주님과 친밀한 사람은 트랙에서 달릴 때도 주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 하셨습니다.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느냐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을 사는 자는 그의 모든 삶이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기도만으로도 새 힘을 얻습니다.

 

364'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이 찬송 작가는 월 포드 목사님입니다. 맹인입니다.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기도하는 그 시간만은 가장 즐겁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아뢰어 큰 불행 당해 슬플 때 나 위로 받게 하시니 기도하는 그 시간이 정말 즐겁다.'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골방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이 말이 절대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행동도 기도이다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기도한다면서 순종이 없는 것은 거짓 기도입니다. 그러나 행동이 기도라고 하면서 골방 기도가 없다면 그것은 속이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골방기도가 있는 사람이 가장 개혁적이고 실천적인 사람입니다.

 

여호수아가 아모리 족속 다섯 왕들과 기브온에서 싸울 때, 대승을 거둘 수 있는데,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외쳤습니다.

10:12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여호수아가 어떻게 이런 담대한 기도, 엄청난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까?

그가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이 전쟁을 이끌어 가시려 하신다는 것이 깨달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태양과 달을 향해 그렇게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모압과 암몬이 치러 왔을 때, 극한 두려움으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가 기도하다가 그 전쟁이 하나님의 전쟁임을 깨닫고 전쟁터로 나갈 때, 찬양대를 군대에 앞세웠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전도하다가 붙잡혀 매 맞고 옥에 갇힌 상태에서 한 밤중에 기도하다가 찬송을 부르는데, 옥이 흔들리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기도가 이렇게 강력한 것입니다.

 

흔히 개인적인 영성과 사회적인 영성을 구분하지만 사실은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과 하나 된 사람이 예수님의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이 개인적인 영성이라면, 예수님의 열매를 맺는 것은 사회적인 영성에 해당될 것입니다. 하나입니다. 뿌리와 열매의 관계입니다. 골방 기도가 없이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라고 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기도할 내용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주기도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을 하나님이 가르쳐주셨다이상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시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8 ...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주기도문도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결국 그것을 이루어주실 분이 하나님이신데 왜 굳이 기도하고 이루어주시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이 나에게 나에게 돈 달라고 해 봐그래서 돈 주세요했더니 그래 달라고 했으니 주마, 이 돈 가져라이런 식이 말이 됩니까? 이해가 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에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의 배경은 창세기 1-3장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사람을 유혹하고 사람이 마귀의 말을 듣고 범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죄와 마귀가 지배하는 대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잃어버린 사람을 다시 구원하시려는 상황입니다.

한마디로 지금 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마귀가 세상의 왕 노릇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 배경을 놓고 기도를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귀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여 다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만드시려는 과정에서 우리의 기도, 하나님의 응답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란 근본적으로 하나님, 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기도를 하는 것이고 주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엄청난 내용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놀라운 계획이 담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나라와 온 열방에 이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주기도문에 다 나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철도변에 사는 친구 집에 들렀는데, 밥을 먹다가 지축이 흔들리고 엄청난 굉음이 들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기차가 지나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친구 내외는 아무런 느낌도 없는지 태연히 밥을 먹더랍니다. 익숙함이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엄청난 기도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준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 가치를 모르니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분의 간증입니다.

저는 가난했던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때 제겐 한 가지 꿈이 있었는데, 그것은 부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수 있다면 어떤 직업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께 크게 혼이 나고 가출을 하였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돌아오겠습니다.”떵떵 거리며, 금의환향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세상 어느 곳에서도 가출한 고등학생이 일할 수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가출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나쁜 짓을 하다가 결국 경찰서에 가게 되었고 부모님이 찾아 오셨고, 피해자와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저는 구치소에 있게 되었습니다. 10일 정도 되었던 그 시간은 비참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주기도문을 예배가 아닌 시간에 외워보았습니다.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도 몰라 그냥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외웠던 주기도문을 외웠습니다.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도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참한 순간 깨달아지는 것은, 무엇보다 비참했던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수년간 교회를 꼬박꼬박 다녀 놓고도 예수님과 어떻게 대화 하는지조차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는 기도란 주기도문 밖에 없어서 주기도문을 외우는데, 눈물이 터졌습니다. 통곡을 했습니다. 제가 지금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정말 기적입니다. 주기도문으로 저는 물질의 노예가 되어 한 없이 세상 깊은 곳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늘나라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주기도문,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기도, 아닙니다.

그동안 솔직히 기도하지 않고 사신 분, 계십니까? 기도에 실패했다고 여기고 기도에 불신을 가지고 있는 분, 계십니까? 기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칠 것입니까?

기도가 없는 내일, 내년을 맞이하시렵니까?

이제 주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했던 제자들의 심정을 가지고 주님께서 가르쳐준 기도문으로 기도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정치가 위기이고, 경제도 위기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처한 진짜 위기는 영적위기입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 기도가 성도들의 관심사에서 벗어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시대가 망한다면 정치인의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나 남북 간의 전쟁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에 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살았던 당대의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 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여기서 육체가 되었다는 말은 사람들이 영적인 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무감각해졌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그 시대를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지 않습니까?

 

나라가 어려울 때,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한 태도를 보이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나라 문제에 대하여 언제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촛불집회, 구국기도회, 어디로 가든 상관없습니다. 다 나라를 걱정하는 행동의 표현입니다. 나라를 위하는 행동은 다양할 수 있고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를 위하여 골방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 하는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하나님은 오직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여 역사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너무 뻔해서 기도할 것도 없다그 순간을 조심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 행동부터 한 것 때문에 언제나 땅을 치는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낙망한 채 주저앉아 있어도 안 됩니다.

주님은 다시 오실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셨습니다. (18:8) 이 말씀은 낙망하지 않고 불의한 재판관에게 매달려 문제해결을 받았던 과부의 이야기 끝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찾으시는 믿음의 사람은 낙망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 때 우리 나라를 보시면서 주님은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낙망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 누구냐?”

 

민족과 한국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기도합시다.”했더니주님이 무엇이라 하시더냐?”묻는 이가 있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데, 마음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저처럼 충격을 받지 않으셨음을 느꼈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셨겠지요. 하나님께서 어찌 뉴스 보고 아셨겠습니까? 그것이 깨달아지면서 확신이 왔습니다. ‘주님께서 드러내신 것이구나!’이대로 어떻게 우리 민족의 통일을 진행하시겠습니까? 주님을 바라보면서 마음의 요동함이 잦아들었습니다. 주님은 이미 다 알고 계셨어!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님만 더욱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진짜 기도의 삶을 살아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안에 임하신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이끄십니다. 그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주기도문, 소중하게 여깁시다.

성찬의 은혜 또한 소중하게 여깁시다.

 

찬송 364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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