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사전

[스크랩] 복(福)과 축복(祝福)에 관한고찰(1)-서론과 복의 일반적인 이해

하나님아들 2017. 6. 3. 15:07

<들어가는 말>

 

빛과 소금, 소금과 빛

복과 축복, 축복과 복

 

이 두 말은 기독교의 전문용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실제적으로 많쓰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소금이나 복과 축복을 무심사용하고 있다. 심지어는 목회자들도 설교에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성도들도 목회자의 영향을 받아 무심코 사용하고 있다.

 

빛과 소금, 소금과 빛은 단어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순서적 의미도 단어적 의미만큼 중함에도 불구하고 무심코 사용하고 있다. 복과 축복도 마찬가지이다. 복과 축복 순서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단어적 의미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심코 사용하고 있다.

 

복과 축복은 단어적 의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필자가 신학교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면서 자주하는 말이다. 복과 축복을 사용함에 서 단어적 의미만이 아니라 신론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무심사용하게 되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신학적 문제를 갖게 된.” 다시 말해복과 축복신론에까지 문제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심코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이 말을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강의가 끝날 즘에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처음으로 들은 신학도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일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반응이 여기저기터져 나온다. 복과 축복이 도대체 무슨 의미이기에 신론에까지 문제가 야기될 수 있을까? 때문이다. 이제 이글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여기에는 과 축복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 들어 있다. 그래서 과 축복에 관한 성경적인 고찰이 요구되는 것이다.

 

복과 축복

서론 말미에 과 축관한 열 두 개의 설문이 준비되어 있으니 스스로 강의나 서를 읽기 전이나 후에 각각 한번 체크해 보기 바란다. 설문이기 때문에 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복과 축복의 관한 문은 청중들이나 독자들이 그동안 복과 축복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가름해 줄 것이다.

 

서론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경에서 복과 축복이 사용될 때는 어떤 에 의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여기 공식원리와 같다는 의미로 하는 말이다.

 

                            복과 축복에 관한 설문조서

(12문항)

순번

설문항목(주제)

강의 전 체크

강의 후 체크

1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축복해 주신분이다.

 

 

2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신분이다.

 

 

3

하나님은 이 시간 여러분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4

하나님은 복 받을 자에게 축복해 주신다.

 

 

5

하나님은 남을 위해 진실로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주신다.

 

 

6

사람은 사람에게 축복할 수 있다.

 

 

7

사람은 사람에게 복을 줄 수 있다.

 

 

8

축복은 목회자나 평신도 누구나 할 수 있다.

 

 

9

하나님 2013년에 우리 가정을 축복해 주세요.

 

 

10

여호와(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1

나는 그동안 복과 축복을 무심코 사용했다.

 

 

12

나는 그 의미를 알고 심중하게 사용했다.

 

 

 

(본 설문지는 강의나 자료를 보기 전에 한 번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자기 생각이 맞거나 그동안 사용해 왔으면 'O' 으로 표기하고 아니면 ‘X’자로 표기하면 된다.) 

 

 

. 복의 일반적인 이해 : 유형, 순서, 호칭

 

복과 축복이라는 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흔하게 쓰고 있는 말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이 말이 신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그리고 그 진실은 어디까지일까? 이 의문점을 시작으로 복과 축복에 관한 고찰을 구체적으로 하려고 한다.

우리는 먼저 에 관한 일반적인 이해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복에 대해 바르게 알 수가 없다. 복의 유형, 순서, 호칭 이 세 가지는 복을 이해하는데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일반적인 요소이. 그래서 이 세 가지는 복의 삼박자라고 말할 수 있다.  

 

1. 복의 유형(종류)

복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영적(하늘)인 복이며, 다른 하나는 육적()인 복이다.

 

1.1 육적인 복. 이 세상에서 누릴 복으로서 물질, 건강, 부모와 자녀, 명예로부터 얻는 복총체적으로 말한다. 육적인 복은 여기서 열거한 것 외에도 아주 다양하다. 육적인 복이라해서 영적인 , 즉 신앙과 별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질적인 복이 영적인 복다르고 해서 하나님과 전혀 연관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육적인 복도 하나님으부터 오는 복이 진정한 복이다. 그러므로 육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는 영적인 삶이 중요하다.  

한국의 가나안 농군학교의 설립자이신 고 김용기 장로는 누구나 복 받기 위해서는 복 받해야 진정으로 복을 받을 수 있다.”유명한 말을 남겼다. 장로님께서 말씀하신 받을 짓이란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하면서 경건하게 사는 자기 삶을 말한다

  

1.2 영적인 복. 이 세상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까지 받을 복을 말한 것으로서 신앙, 은사, 능력, 예배, 경건, 사랑, 죄의 문제 등 신앙생활로부터 얻는 복을 말한다. 영적인 복도 육적인 복만큼 매우 다양하다. 영적인 복 역시 육적인 복과 무관 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영()은 육이라는 그릇 안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육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는 영적인 삶이 중요하듯, 영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도 육적인 삶이 중요하다 

영적인 복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깊은 관계에서 오는 것이다. 성경에서 의롭다말과 경건하다는 말은 바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깊은 관계를 뜻하는 말이다. 여기 의롭다는 말은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으로써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만 이해될 수 있으며, ‘경건하다는 말은 정직한 마음과 믿음을 대변한 것으로써 하나님과 깊은 관를 나타내는 말이다.

 

육적인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이 가장 복된 복이며, 좋은 복이다. 아브라함의 복이 세상에서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 복이기 때문이다. 면에 영적인 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이 가장 복된 복이며, 좋은 복이.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란 말은 하나님과 바른 관깊은 관계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인격적인 삶, 곧 거듭난 삶을 말한다(고후5:17).  

 

2. 복의 순서(중요성과 필요성)

다음은 복의 순서이다. 육적인 복이 우선인가? 영적인 복이 우선인가? 양자 중에 보편적으로 육적인 복보다 영적인 복을 우선적으로 말한다. 예수님도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 중에서 영적인 것을 우선시 하라고 말씀하셨.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의 말씀은 영적인 것을 먼저 추구하면 육적인 것은 필요에 따라 자연적으로 주어진다는 것이. 이것은 복 받는 원리로서 영적인 복을 먼저 받으면 육적인 복은 후에 덤으받는다는 것이. 그렇다고 돈을 달라면 즉석에 돈을 주며, 명에를 달라고 한다고 해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밀쳐내고 그 자리를 준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를 조금이라도 오해해서는 안 된다.

 

복의 순서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복의 순서에 있어서 복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 있다. 복의 순서에는 복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함께 내재(內在) 되어 있는 개념이다. 복의 순서에는 반드시 복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대비()되어 있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복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바르게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 그리고 두 관계를 혼동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간략하게 핵심 부분만 다루려고 한다.

 

2.1 복의 중요성. 복의 중요성은 앞에서 언급한 것 같이 복의 순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육적인 복보다 영적인 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복의 순서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중요성에 있어서도 육적인 복과 영적인 복은 그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육적인 복은 이 세상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제한적이다. 육적인 복은 죽음 이후에는 어떤 것도 누릴 수 없으며, 작은 것 하나라도 다음 세상(무덤)으로 가지고 갈 수 없다. 한국의 현대그룹의 창시자였던 고 정주영 회장은  현대 자동차에서 좋고 비싼 차를 많이 생산하고 있었지만 작고했을 때, 자동차 한 대도 가지고 가지 못했다. 심지어는 살아실 때 자기 고향인 북한이 못 살기 때문에 황소를 지원하면서, 황소 천 마리를 실고 갔던 화물차 수 십대를 모두 북한에 주고 왔다. 그러나 진작 자기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좋은 차는 고사하고 당시 가장 싸고 흔한 자동차 한 대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빈 몸으로 갔다.

이것은 육적인 복은 이 세상에서만 누릴 수 있는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단면(斷面)적으로 보여준 좋은 실례이다.

반면에 영적인 복이 세상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까지 지속되기 때문에 영원하다. 그래서 육적인 복보다 영적인 복이 우선일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에 권면하고 있는 말씀을 한 번 상기해 보기 바란다(2:16). 여기 그 날은종말론적인 의미로서 새 예루살렘이 임하는 구원의 날이다. ‘그 날에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이다. 그리고 여기 은 하늘에서 받을 상급으로서 영적인 복, 영원한 복을 말한다.

 

2.2 복의 필요성. 그러나 복의 필요성은 복의 순서 중에서 중요성과는 약간 다른 개이다. 육적인 복과 영적인 복은 양자가 모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양자의 복은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면서 추구해야 한다. 만약에 육적인 복만 필요하여 추구한다면 이 세상에서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누릴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반대 현상이 있게 될 것이. 반면에 영적인 복만 추구한다면 이 세상에서 너무 힘들게 살아갈 것이. 그래서 양자의 복은 균형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물질이 없다면 가정생활, 자녀교육, 신앙생활, 문화생활 등을 누리기는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고통 그 자체일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물질과 땅(토지)필요로 하고 있다그리고 경제적인 지표(指標)라고 할 수 있는 돈(물질)은 생활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더 중게 필요한 것이다. 하게 사는 것이 경건의 삶이 아니다. 앞 단락에서 언급하였듯이 진정한 경건은 하나님 정직하고 순결하게 사는 삶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사는 것이 진한 경건의 삶이지 가난하게 사는 것이 경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의 복의 필요성을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물질의 복, 세상적인 복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받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구약의 족장들이 받은 물질의 복의 의미도 되새겨 보아야 한.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 영적인 복과 물질의 복을 함께 주셨. 사람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영적선물이, 복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다른 피조물에게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에게만 셨기 때문이다. 이 보다 큰 영적인 복은 없다. 인간의 구속의 문제도 이러한 영적인 복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죄인을 향한 구속의 섭리는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없다면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죄로 물들어 있는 인간의 구속은 영적인 복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를 마치시고 사람에땅을 정복하며, 다스리며, 민족을 번성하여 가정을 이루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누릴 육적인 복말한다. 여기 다스리라씀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통치 개념이다. 많은 피조물 중에 하나님형상을 지닌 인간이 가장 으(머리)라는 말이다. 우주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통치의 복은 이 세상에서는 가장 으뜸이 되는 복이며 가장 좋은 복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통치는 야망적이국가를 통치하는 정치적인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세계를 의식한 자연섭리적인 정직한 통치를 말한. 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사람이 통치한다는 것은 복 중에 복이다.

 

다른 하나는 여기서 말하는 통치는 이 세상에서만 누릴 수 있는 제한성이 들어 있다. 앞에언급하였듯이 육적인 복은 이 세상이라는 제한성을 지니고 있다. 앞으로 더 좋은 통치의 복이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육적인 복은 이 세상에서 끝이 난다. 결코 천국에서 가서도 사람이 통치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목회자들이지만 육적인 복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여 그리스도인들질 만능주의자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이 상에 살아가는 데는 물질이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물질()을 만능으로 취급해서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대는 돈이면 모든 것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기업인들은 물론이며, 정치인들도 편화되어 있으며, 군사 무기를 사오는 것도 뇌물로 오가고 있으며, 교육계도 돈으로 성적이 좌우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가장 공의로야 할 재판장에서도 돈 때문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돈 앞에 자유하면서 누리며 아야 할 사람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증거이다. 이 역시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 사도 바울은 이런 시대를 예언적으로 예고하고 있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 아니하” (딤전3:3).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6:10).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3:2)

 

사도 바울은 이 세 구절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사람들은 돈을 너무 사랑한다는 것이다. 여기 사람들이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면서 돈을 사랑하지 말 것을 거듭거듭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심중하게 받아드려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도 돈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사도 바울과 같은 개념으로 히브리서 기자도 돈을 사랑하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5)  

여기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는 말은 세 가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부덕하게 돈을 소유하지 말 것을 권면하는 것이며, 둘째는 돈을 부도덕하게 사용하지 말 것을 권면한 것이며, 셋째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며 살라는 권면이다  

물질의 복으로 상징되는 돈은 이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부를 위축적해서는 안 되며,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서는 더되는 일이다. 그리고 돈을 너무 사랑하여 일만 악의 뿌리로 사용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는 더더욱 안 되는 일이다.

 

물질의 복, 세상적인 복은 긍정적인 좋은 면과 부정적인 나쁜 면이 함께 공존하고 있. 그러므로 긍정적인 면은 말씀으로 지켜나가야 하며 부정적인 면은 기도로 물리쳐야 한. 그래서 신앙생활은 말씀과 기도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복의 요성은 중요성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으며, 그렇지만 양자는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 여기 균형이라는 말은 복의 필요성 때문에 복의 중요성을 망각해서는 안 되며, 반면에 중요성 때문에 복의 필요성에 너무 지나치게 매달려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복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필요성의 너무 매달리게 되면 돈의 부정적인 요소가 자기도 모르사이에 쉽게 부각될 수 있다. 그러면 돈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 교만해 지며,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은 자명(自鳴)해 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인 돈의 의미와 가치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3. 복과 축복의 호칭

  

복의 유형과 복의 순서에 대해서는 보편적으로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복과 호칭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실상은 혼동하거나 아예 모르고 있다. 면 많은 사람들은 하고 있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복과 축에 대해 모르고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복의 호칭은 본 주제의 핵심이다. “복과 축은 단어적 의미를 넘어서 신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바로 복의 호칭의 문제를 염두하며 나온 말이다. 복의 호칭은 일반적으로 ’(혹은 ’) 두 가지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어떨 때 사용하고 어떨 때 을 사용하는 것일까? 이것은 복과 호칭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장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성경은 어떨까? 이 물음이 전제되지 않는 한 에 대해 바르게 알 수 없다. 성경은 어떨 때는 으로, 어떨 때는 축복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사용하고 있다. 성경의 기자들은 복과 축 아무런 생각 없이 무심코 사용하지 않고 어떤 공식을 적용하여 사용하고 있. 이 말은 복과 축에 대해 바르게 알 수 있는 두 번째 전제이....출처 창골산...바나바선교사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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