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적인 교회를 세우자(사도행전 1:1~5)
1. 데오빌로에 대하여
1) 데오빌로는 각하의 존칭 받는 사람(눅 1:3). 각하는 권세의 최상급으로서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이다. 누가의 존경 받을 수 있다면 상당히 고상한 성품과 고결한 신앙을 소유했을 것이다. 예수 믿는 성도는 누구든지 남에게 존경받을 신앙적인 인격 소유함이 필요하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행 1:1). 데오빌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 이름 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였다”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데오빌로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이여]라는 의미로 바로 우리 자신이다.
3) 성경을 배우는 사람이다(눅 1:4). 데오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는 사람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더구나 누가의 입장에서는 데오빌로 한사람의 영혼을 바르게 성장하도록 하기 위하여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써 보냈다는 것과 데오빌로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었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목장에서 한 영혼을 위하여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지?
2. 사도행전은 누구를 위한 책인가 -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데오빌로를 위한 책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와 또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직접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이면서 “사도행전적인 성도”가 되고 “사도행전적인 교회”가 됩시다!
1.2절 - 내가 먼저 쓴 글(누가복음)은 어떤 내용인가를 말하고 있다. 바로 “예수의 내용이다” 사도행전의 주인공은 성령이시다. 그러면 곧 바로 성령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할 것이지 왜 예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하는 것인가? 사도행전은 구원의 확장(=교회 확장=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기록하고 있다. 구원의 시작은 예수로 부터이다. 구원의 완성도 예수 그리스도이다. 구원에 관한 모든 일, 구원의 알파와 오메가는 예수이시다. 그리고 성령은 완성된 구원을 확장시키는 일을 한다. 곧 예수는 구원의 모든 것이므로 예수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구원을 확장시킬 수 없고, 예수를 알지 못하면서 “사도행전”을 들어갈 수 없다. 예수에 대하여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면 “누가복음”은 예수에 대하여 무엇을 기록하고 있은가? “ 예수의 탄생, 십자가 사건, 부활, 승천에 대하여 기록을 하였는데 이런 예수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여기서 안다는 것은 예수의 삶에 대한 진정한 고난의 부딪힘과 예수의 십자가에 의해 깨어짐이 없이는 알수 없다.
3절 -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시어 40일 동안 여러 사람에게 보이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는 내용이다. 예수의 죽음과 우리의 죽음이 다르다는 점이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말씀을 선포하시다가 승천을 하셨다. 부활하셨다는 것은 죄와 인간의 난제인 죽음에서 승리하셨다는 의미이다. 또 사탄과 싸움에서 완전히 승리했다는 것이다.
3절下 -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 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일이란 무엇인가? 부활하신 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찾아보면 그 내용을 알 수 있다(마 28:19-20). 말씀을 살필 때 하나님 나라의 일이 무엇인지 ? ① 복음전파(전도) ② 제자 삼는 것 ③ 양을 먹이고 치는 것 ... 이런 것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일이 사도들을 통하여 이루어져 가는 내용으로 이제 우리가 이루어 가야 한다.
4절 - 주님의 명령이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는 것이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다. 왜 그런가? 떠나면 약속하신 것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 아버지 약속하신 것이 임하시기 때문에 성령충만 받기 전에는 떠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무가 큰 재목이 되어 그 자리를 떠나 쓰임 받은 것처럼, 성도 여러분도 베드로처럼 영적 큰 재목이 될 때 떠날 수 있다(눅 24:49)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은 성령이다.
5절 -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성령세례를 받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령세례란 무엇인가? 성령세례란 교파, 신학자마다 다르기에 꼭 집어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물세례가 구원받은 자의 외적 표현이라면 성령세례는 구원받은 자의 내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성령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중심에 성령을 모시고 그 분의 뜻대로 순종하고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을 모시지 못한 체 몸만 교회에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까? 나 자신이 성령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습니까? 성령이 임하는 것과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 동일 사건이든 별개의 사건이든 그런 것을 가지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지금 내가 영적으로 살아 뜨거움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감사와 기쁨으로 열심히 충성 봉사를 한다면, 영혼을 살리기 위해 애쓰고 노력함이 있다면 성령을 받은 사람이요, 성령세례 받은 사람이다. 그런 삶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해야 한다. “주님 ! 제가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세례를 받아 새사람, 새 일꾼이 되길 원합니다” 하고 사모하며 기도할 때 주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셨기에 분명히 성령의 사람이 되어 짐을 믿는다.
성도여러분! 사도행전교회처럼 우리 교회에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말씀 속에 회개가 나타났다면 이곳에서도 설교 중에 회개의 역사가 나타나고, 기도해서 질병이 치료되었다면 우리도 그런 능력이 나타나야겠다. 초대 교회를 통해 천국이 확장되었고 날마다 부흥이 되었다면 우리 교회도 그대로 나타내야겠다. 사도들과 성도들이 사랑으로 하나 되고 순교의 길을 걷고 죽도록 충성을 했다면 저와 여러분도 똑같은 길을 갈 수 있어야 한다. “사도행전”적인 교회가 되어 여러분은 베드로가 되고, 7집사가 되고 바울이 되시기 바란다. 4절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한 것은 복음의 출발점이다. 우리 교회가 사도행전 교회처럼 이곳에서 우리 모두 성령충만 힘입어 복음이 힘있게 전파되어져 하나님 나라 확장을 이루자!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사도행전” 사건 속으로 초대를 하셨다. 우리 가정과 교회를 “성령행전” 속으로 초대하셨다. 모든 교회를 “성령행전” 속에 부흥하는 우리교회로 초대하자! 이제부터 “사도행전”을 이룰 일만 남았다. 우리 모두 기대하자. 내가 일어서고, 내 가정과 교회가 일어서야 한다! 기도의 불이 붙고 교회 부흥의 불길이 붙는다. 세계 선교의 열망을 갖게 된다. 성령의 역사가 다시 시작된다. 나를 포기하고 예수위해 죽기를 각오하는 그런 변화가 나타난다. 이 모든 일에 성도 여러분이 주인공이요. 우리 교회가 그 일의 중심에 자리를 하고 있다. “주여 ! 나를 사용하소서. 내 가정을 사용하소서. 우리 교회를 사용하여 주소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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