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성 찬
1. 성찬에 대한 견해들
1) 가톨릭의 견해
화체설- 사제의 행위로 인해 떡이 실제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물리적인 몸으로 변화된다고 믿는 것. 로마가톨릭은 화체설을 중심으로 방대한 철학을 엮어 냈다.
개신교가 생명력을 잃고 무기력하게 될 때는 언제나 사람들이 이상하게도 성례주의적 가르침, 즉 자신은 아무 할 일이 없고 단지 떡을 먹으면 그 떡이 거의 자동적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가르침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견해는 떡의 흰색은 떡의 실체가 아니라 우유성(accidents)에 속한 것이며 감촉이나 맛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우유성에는 영향을 주지 않은 채로 실체가 바뀌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떡의 실체는 더 이상 같지 않으며 기적에 의해 주님의 실제 몸이 된다고 믿는다. 떡이 실제로 주님의 몸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 떡을 특별한 용기에 담아 경배하고, 그것을 향해 기도한다. 그들은 떡을 “성체”라고 부르면서 성체를 들고 행진한다.
화체설에 대한 반론- 화체설은 성경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들도 인정한다. 그들은 주님이 “이것은 나의 몸이라”(눅 22:19)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대단히 강조한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명백한 대답은 주님이 그 자리에 육체 가운데 서 계셨다. 그렇다면 주님 앞에 있는 떡이 실제 주님의 몸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시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또 하나의 설득력 있는 대답은 주님이 계속해서 하신 말씀이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눅 22:20). 떡의 경우에 “--이라”는 말을 강조했다면 여기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포도주가 아니라 그것을 담고 있는 잔이 되고 만다. 주님이 “ 잔 안에 있는 포도주”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 잔”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 한 단어를 근거로 하여 화체설을 주장하는 것은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실로 비합리적이다. 사실 이 교리는 단지 사제의 지위와 신분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회에 들어 왔다. 이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제 뿐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제는 더욱 중요한 존재가 된다.
2) 루터파의 견해
공재설- 그들은 가톨릭의 주장은 잘못되었으며, 떡의 실체는 변화가 없다고 말한다. 떡은 여전히 떡이지만 주님의 몸이 그 떡에 결합된다. 그래서 그들은 떡과 주님의 몸이 동시에 있다고 믿는다. 우리 주님의 몸이 떡과 함께, 그리고 떡 아래에 있는 것이다.
3) 종교개혁자들의 견해
츠빙글리는 성찬은 단순히 표징과 기념일 뿐이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개혁주의 관점에서의 성례는 표징일 뿐 아니라 동시에 인이다. 성찬도 마찬가지다.
2. 성찬의 의미
1) 성찬은 주님의 죽으심을 보여 준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떡을 떼는 것과 포도주를 붓고 마시는 것은 우리 주님의 찢어진 몸, 흘린 피를 나타낸다. 강단이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성찬은 여전히 주님의 죽으심을 선언하고, 선포하고, 전파했으며 사람이 전파하는 것과 성찬대의 떡과 포도주가 전파하는 것 사이에는 모순까지는 아니더라도 종종 큰 불일치가 있어 왔다. 주님의 놀라운 예비하심이다.
2) 성찬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참여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성찬은 그리스도와의 교제 및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상기시킴으로써 우리가 그의 죽으심에 참여했다는 것을 상기 시켜 준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렇게 때문에 그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
3) 성찬은 우리가 새 언약에 참여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5), 성찬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신자들과 새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다. 그리스도는 이 새 협정, 하나님이 사람들과 맺으신 이 놀라운 새 언약에서 인류의 머리이며 대표이시다.
4) 성찬은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힘을 받아 신자의 삶을 산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요한복음 6장이 성찬식에 대한 말씀은 아니지만 적용할 수 있는 진리가 56,57절에 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주님은 사실상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너희는 나를 먹어야 한다. 너희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한다. 즉 너희는 나를 의지하여 살아야 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고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며 너희는 나를 인하여 살아야 한다.” 그것은 영적인 참여였다. 주님은 자신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실체를 문자적으로 먹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영적인 개념이다. “내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니라”(63절).
5) 성찬은 신자들 사이의 연합도 보여 준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10:16-17) 우리는 성찬식을 하면서 떡을 뗄 때, 부분과 전체를 동시에 상기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찬식에서 성찬이라는 용어는 우리와 주님의 교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이의 교제도 나타낸다.
6) 성찬은 위의 모든 사실을 우리에게 인쳐 준다
우리가 떡과 포도주를 받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이 새 언약이 주는 유익들에 참여하는 자라고 말씀해 준다. 성찬은 이 모든 것을 인쳐 준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을 인 쳐 준다.
성찬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하시는 자리다. 성찬식 때 우리는 언제나 감사해야 하며 이렇게 말해야 한다. “지금 하나님은 나에게 내가 새 언약 안에 있으며, 하나님이 나를 자녀로 양자 삼으셨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 언약의 모든 복과 유익들이 나의 것이고 나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 순간 나는 이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3. 누가 성찬에 참여할 것인가
1) 오직 신자들만 성찬에 참여한다
성찬은 오직 신자들만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연약한 신자들, 심지어 죄 가운데 있는 신자들도 참여한다. 완벽한 상태가 되어야만 성찬식에 나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 성찬에 참여하는 자는 자신을 살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신을 살피려 하지 않으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고 적지 아니하니”(고전11:30). 바울은 우리가 스스로를 판단하면 판단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고 벌하실 때, 이것은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다.(32절) 이것은 우리가 설교와 권면을 듣지 않으려 하면 우리는 약해질 수 있고, 병에 걸릴 수 있으며, 죽음을 상기하고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고전11:30)라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문구가 나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자신을 판단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죽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구절은 그들이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죽었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그들이 멸망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죽음이라는 수단까지 사용해 징계하셨다는 것이다.
4. 성찬은 말씀의 은혜를 확증하는 것
성찬이 말씀 선포보다 더 많은 일을 하지는 않는다. 성찬에서 새롭거나 추가적인 은혜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성찬이 하는 일은 말씀의 효력에 대해 인을 치고 우리가 은혜를 받았음을 확증하는 것이다. 특별한 은혜는 없다. 오직 성찬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교회 안에 있는 최고의 은혜의 방편은 말씀, 선포되고 가르쳐진 말씀이다. 성찬은 단지 은혜를 전달하는 또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성찬이 놀랍고 특별한 것이긴 하지만 추가적이고 특별한 은혜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하는 일은 은혜를 강화시키고 더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례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성찬을 통해 믿음 안에서 강건해지고 세워지고 견고해짐을 느끼며, 위대한 구원을 기뻐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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