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례 성찬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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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아들 2015. 6. 1. 23:10

성만찬

 

 

들어가는 말

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돌려드리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 외에는 우주적 주권과 권위를 가진 이가 없으므로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란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은혜를 찬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름에 반응하는 성도들이 주의 날에 모여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연합을 이루고, 성경 말씀과 성만찬을 나누며 기도하고 찬미하며, 신앙고백을 통하여 구속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며 섬기기로 결단하는 교회의 축제를 예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장로교 초기의 예배는 미국 북 장로교회 선교사(청교도)들의 영향을 받아 교리적인 설교와 진정한 회심에 집중한 나머지 기독교의 귀중한 유산인 성만찬을 가볍게 보았다. 예배에서 말씀을 통한 은혜만을 추구하므로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성례전의 의미와 기쁨을 경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에 있어 말씀과 함께 성만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성만찬의 참된 의미를 깨우침으로 교회의 예배를 말씀과 성만찬이 이루지는 이상적인 예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본 소고에서는 성만찬의 성경적인 근거와 제정, 그리고 기원과 신학적 함의와 유익, 칼빈의 성만찬 신학을 살펴봄으로 한국교회의 예배에 있어 성만찬의 재인식에 대해서 고찰할 것이다.

 

성만찬의 제정

흔히 최후의 만찬(The Lord's Supper)이라고 부르는 성만찬은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저녁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며 친히 제정하신 성례이다(26:26~30, 14:22~26, 22:17~20). 복음서 가운데 예수님의 명령으로 이 예식을 행하라는 기록은 누가복음 22:19-20절에 나타난다. , “떡을 가져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하셨다. 이것을 통해 언약의 차원에서의 성만찬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초대교회는 언약적 성만찬 예식을 반복적으로 시행하였고 주의 만찬에 관한 사도 바울의 기록을 보면 떡을 나누고 잔을 마시는 것은 이것을 행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따른 것임을 밝히고 있다(고전 11:20~34). 그러므로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만찬을 행하는 것은 새 언약의 차원에서 예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며, 주의 재림 때까지 그의 죽으심을 기념/기억(ἀναμνησις)하며 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전 11:24~26).

 

기독교의 예배에 있어서 성만찬은 사도들로 시작된 기독교 예배의 원형에 속한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나누신 자리에서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떡과 포도주로서 상징하시면서 새 언약을 세우셨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 성찬을 행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탁과 명령에 따라서 사도들이 교회에 예배로 모일 때마다 성만찬을 거행하고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였다. 따라서 성만찬은 교회가 형성될 때부터 예배의 요소로써 말씀과 함께 예배 안에 존재하였다.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구원을 확신한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같이 떡을 떼면서 순수한 교제를 나눔으로써 성만찬의 교훈과 의미를 회상하였고, 기쁨과 찬미의 모임을 가졌다(2:46-47). 성만찬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였고 그리스도와의 일체를 경험하는 거룩한 의식이었다.

 

성만찬의 역사적 기원

설교가 회당의 기원을 갖는다면 성만찬 역시 유대교적 배경과 연관해서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시대의 제사와 식탁 관습의 연구는 성만찬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작업이다. 주후 1세기경 유대인들의 식사는 제사적 성격을 띠고 있었고, “최후의 만찬예식은 유대인들의 여러 종류의 식사 형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만찬은 예수께서 유월절에 우리에게 세우신 새 언약이라는 것으로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요한의 관점을 따르는 사람들은 일단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 식사가 아니라는 전제 아래 성만찬의 기원을 다른 방법으로 규명하려고 시도했다. 그 결과 상당히 많은 가설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1. 키두쉬(kiddush)

키두쉬를 최후의 만찬으로 해석하려는 입장이 있다. 유대인 랍비와 그의 제자들이 안식일이나 특별한 명절을 종교적 차원에서 준비하기 위하여 식탁을 함께 하면서 모였던 것이다. 이때 이들은 간단한 식사로서 빵을 먹었으며 포도주에 물을 섞어서 서로 돌려가면서 마셨고, 간단한 토론과 기도를 하였다. 이러한 모임은 주로 메시아를 기다리는 무리들에게 경건한 생활의 지속을 위하여 행하여진 것이었다. 이와 같은 키두쉬의 행사가 예수와 제자들의 3년간 생활에서도 계속 행해졌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2. 챠브라

챠브라를 최후의 만찬으로 해석하려는 입장은 요한복음의 관련 기사에서 근거를 두고 있다. 요한에 의하면 예수의 죽음은 유월절 예비 일에 일어났기 때문에(19:14), 이로써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식사가 아니라 유월절 24시간 전에 있었던 유대 종교의 공동 식사인 챠브라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필요할 때마다 동료들과 함께 간단한 종교의식을 거쳐 함께 나누는 식사였으며, 예수가 이것을 통해서 종교적인 모임을 만들었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후 만찬은 결코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없는 보통의 식사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3. 에세네파 식사

쿰란 종파는 하루 두 차례씩 오전 11시와 늦은 오후에 공동의 식사를 했으며, 이 식사에는 여자들도 참석을 했고 빵과 포도주가 주 메뉴로, 그리고 축사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그리스도인들의 성찬식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식의 순서가 다르며 성만찬이 매일 행했던 식탁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4. 카버락

예수의 최후의 만찬을 유월절 24시간 전에 있었던 카버락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근거로 식탁에 주인과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 빵을 쪼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참석자가 함께 떡을 떼며 잔을 들어 축사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점을 든다.

5. 유월절 식사

이러한 견해들에 대해서 어느 것을 확정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유월절 식사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확실한 것은 예수와 제자들의 심정 속에는 유월절에 대한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유대인 최대의 명절이고, 유월절을 통하여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으며 과거 애굽의 노예 생활의 고역을 회상하고 현재의 축복과 미래의 희망까지도 고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복음 22:15ff에 보면 예수님은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였다고 말하면서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유월절의 식사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어떤 형태의 식탁을 이용했든지 간에 분명히 새로운 성례전으로써 성만찬을 제정하셨다는 사실이며 그 식탁 위에서 제자들과 함께 단순한 식사만을 나눈 것이 아니었고 그것은 하나의 성례전으로 제정된 최후의 만찬이었다는 것이다.

 

초대교회에 있어서 성만찬의 의미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신약 교회는 주의 만찬을 식사라는 관점에서 매 주일 있었다고 볼 수 있다(행전 20:7). 이러한 주의 만찬은 문제도 있었지만(고전 11:21), 1세기 말의 초대 교회 DidacheClement's First Letter 그리고 2세기 문헌들에 따른다면 예배는 말씀의 예전과 성만찬 예전의 이중 구조로 발전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행해진 성만찬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주의 만찬은 εχαριστω라는 감사하다에서 나온 말로 감사를 드림을 의미한다. 이것이 주의 만찬의 핵심 요소가 된다. 이것은 후대에 무겁고 침통한 마음으로 성만찬을 했던 것과는 다른 것이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것이 다시금 현재의 것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떡과 포도주에 참여하는 자들 가운데 교제가 있다. 화해를 이루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감사의 드림으로서 서로를 하나로 묶어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악에 대한 타협으로부터 배제되도록 한다.

그리스도의 임재가 이 모든 이미지들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도의 임재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그가 오실 때까지 그의 죽음을 기억하고 선포함으로써 종말을 바라보는 의미가 있다(고전 11:26).

 

그러므로 성만찬은 천상적 잔치의 축제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기 주심을 통하여 미리 맛보는 것이다. , 성만찬은 천상적 잔치를 고대할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제한된 방식으로 천상적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을 의미한다.

 

성만찬에 대한 신학적 이해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초대 교회 이후 성만찬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형식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중세 이후 성만찬은 그들의 신학적인 입장에 따라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로마 카톨릭은 형식에 치우쳐 성만찬에 화체설과 신비적인 요소를 추가함으로 성만찬의 참된 의미를 실추시켰고 이에 대한 반응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다. 개혁의 주역들은 성만찬을 자신들의 특유한 신학적 입장에 따라 재조명하였다. 카톨릭과 여러 개혁자들이 이해하고 추구했던 성만찬은 다음과 같다.

 

1. 카톨릭의 화체설

카톨릭의 성만찬은 말씀을 상실하고 지나친 의식만 강조하므로 예배의 이중 구조인 말씀과 예전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말았다. 카톨릭은 수백 년 동안 말씀보다 성찬의 전통을 지켜왔다. 그리고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에 깊게 자리 잡은 것은 사제가 집례 하는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이다. 화체설에 따르면 신부가 빵과 포도주를 축사하는 순간에 성령의 능력으로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 형태와 맛은 불변하지만, 그 질료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거룩한 변화를 겪은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재현하는 미사를 통하여 신비와 경이의 대상이 되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대신에 스스로 기적을 일으키는 빵과 포도주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스도의 성체로 변화된 빵과 포도주는 치유의 능력을 갖고 있고, 마귀를 쫒아내는 효력을 발휘한다고 여겨졌다. 성만찬의 기계적 효과와 신비적 요소들에 대한 강조는 종교개혁을 일으킨 한 원인이 되었다.

 

초대 교부들 중 유세비우스, 이레니우스, 시릴이 간헐적으로 표명한 화체설은 9세기 라베르투스에 의하여 체계화 되었고, 교황 이노센트 3세는 라테란 회의(1265)에서 화체설을 카톨릭 교의로 채택하게 했다. 화체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와 형상의 개념을 이용하여 아퀴나스에 의하여 정교한 조직체계로서 서술되었다.

 

2. 종교개혁자들의 견해

이런 상황에서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카톨릭의 말씀과 성만찬의 불균형을 회복하고 의식과 형식주의 예배에서 말씀 중심의 예배로 복귀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리고 종교 개혁자들에게도 성만찬은 초기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기독교의 개혁이 아무리 거세게 일어나는 현장에서도 성만찬에 대한 신학적 내용은 초대교회의 성만찬과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주역들은 성만찬을 자신의 특유한 종교개혁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 재조명하였다.

 

2-1. 루터의 공재설(Consubstantiation)

루터는 로마 카톨릭의 화체설에 반대하여 공재설을 공식화한다. ,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 제정된 것과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떡과 포도주 안에(in), 함께(with), 밑에(under) 그리스도의 참 몸과 피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주의 만찬에 참여한 사람은 떡과 포도주 안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죄의 용서에 대한 약속으로 주어진다. 그런데 이 떡과 포도주에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영적인 몸이 아니라 자연적인 몸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떡과 포도주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연적인 몸을 받아먹고 마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 곧 그리스도께서 머리 되시고 몸이 되시는 교회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루터의 이런 주장은 두 본성의 교류가 영향을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불가 분리한 것으로 보고, 그리스도의 몸(인성)은 도처에 있고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이 그의 지상 생애처럼 공간적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의 인격을 이루고 있고 또 본성의 교류로서 모든 장소에서 모든 것 위에 있다는 것이다.

루터는 떡과 포도주 속에 그리스도의 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화체될 필요가 없이 이 떡과 포도주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모두 임재하므로 이 떡은 주의 몸이고 이 포도주는 주의 피가 된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영화된 몸의 임재를 믿었고, 공간 속에 연장된 몸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리스도의 신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변화 없이 연합되었듯이, 예수의 몸과 피도 변화 없이 빵과 포도주에 연합되었으므로 신자들이 성만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얻는다는 것이다.

 

2-2. 쯔빙글리의 기념설(Memorialism)

쯔빙글리의 성만찬에 대한 견해는 성만찬에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단순한 기념을 위한 표시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행동을 회상케 할 뿐이라는 것이다. 쯔빙글리는 에라스무스의 인문주의에 영향을 받아 어떠한 교리도 이성에 모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쯔빙글리는 화란의 코넬리우스 호엔의 영향을 받아 1524년에 루터의 공재설을 거부하고 떡과 포도주는 단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쯔빙글리는 예수님이 공동체의 예배에 임재하시지만, 그의 몸과 피, 곧 그의 인성은 하늘 아버지 우편에 제한되어 계시고 성만찬은 십자가상의 구속적 사역을 회고하는 감사의 기념이라고 하여 기념설을 주장하였다.

 

결과적으로 쯔빙글리는 성만찬을 단지 기념적 행위로써 그리스도의 희생의 기념과 신앙 공동체 의식의 근거로써 단순화시켜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성만찬을 예배의 중요한 부분으로 보지 않고 기념적 행사로 간주하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그는 지금껏 예배 가운데 말씀의 예배와 성만찬 예배가 예배 가공존했던 것을 분리시키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심지어는 성만찬을 연 2회로 함이 좋다는 견해를 펴서 성만찬 예배의 경시 현상을 개신교에 유산으로 물려주고 말았던 것이다.

 

2-3. 칼빈의 영적 임재설(상징이 보여 짐에 있어서 사물 그 자체가 보이는 실재설)

칼빈은 루터의 공재설이나 쯔빙글리의 기념설의 견해를 그대로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이 빵과 포도주에 성례전적 연합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했다. 즉 성령과 말씀 안에서만 성물이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몸과 연결된다고 하면서, 루터와 쯔빙글리의 중간적 견해를 취한 것이다. 칼빈에 의하면 루터의 공재설은 전적인 그리스도의 몸을 썩는 물질 안에 제한하고 그것을 분열시킨다. 또한 쯔빙글리의 기념설은 예배와 성만찬에서 부활한 그리스도의 역동적인 내재가 증발되고, 성만찬의 주인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를 기념하는 교회 공동체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칼빈은 성만찬에서 중요한 사건은 하늘의 질료에 접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신자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신비한 연합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빵과 포도주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증거 하는 성례전적인 상징이며, 성령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효력을 나타내는 은혜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4:17:10에서 떡과 포도주는 상징이며 그 자체가 아님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그는 또한 상징이 보여 짐에 있어서 사물 그 자체가 또한 보여 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상징을 통해 보이는 실재만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므로 그 약속을 선포하고, 해석하고, 적용시켜 주는 말씀의 증거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칼빈의 성만찬 신학

1. 예배의 한 부분으로서의 성만찬

칼빈은 교회의 정체성은 언제나 말씀이 정확하게 선포되어지고, 성례전이 바르게 집례 되는 곳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실, 교회는 사도 시대부터 말씀의 선포와 주님이 제정하신 성례전을 집례 하는 것이 예배의 핵심이었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모든 예배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있으며 인격적인 교제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의 연약함에까지 자신을 낮추어 그의 계시의 말씀과 함께 성만찬 즉, 보이는 표식을 더 해주셨다고 말한다.

 

2. 성만찬과 제정 이유

칼빈은 성만찬을 제정하신 이유에 대해 칼빈은 세 가지를 제시한다. 보이는 표식을 통해서 약속의 실체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우리의 영적 둔감함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이 수용하는 정도에 맞추어 우리를 이해시키고자 하신다. ,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한다는 이 신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성찬을 제정하셨다는 것이다. 성만찬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자비를 깨닫고 하나님을 보다 온전히 찬양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성만찬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알고 모든 성결에 힘쓰게 된다는 것을 성만찬 제정의 이유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3. 성만찬의 유익

칼빈이 보는 성만찬은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방편으로써, 사람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깊은 의미가 담긴 예전이다. 성만찬은 하나님의 자기주심으로 우리의 지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시적 표시로 나타내 보여주신 것이다. 성만찬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ἀναμνησις)하는 것, 즉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에 대해 회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만찬은 우리가 떡과 포도주를 마심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그에 따르는 유익을 준다. 물론 성만찬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을 나타내는 상징일 뿐, 실제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 분은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인 동시에 보증이다. 또한 성만찬을 통하여 우리는 주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오실 때까지 전한다는 것으로 모든 참여자가 주님의 재림의 소망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4. 성만찬의 올바른 집례와 참여

칼빈에게 있어서 성만찬은 예배의 본질적인 부분이었고 통합적인 예배의 일부였다. 그러므로 말씀과 성만찬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따로 분리할 수 없었다. 이 둘의 어느 하나를 빼면 예배는 불완전한 것이 된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례가 약속 그 자체를 확증한다는 의미에서 성례를 전파된 말씀에 일종의 부가물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리는 그 자체로 충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무지함과 연약함으로 인해 성례전이라는 세상적인 요소를 통하여 우리를 자신에게로 인도하시는 신령한 축복의 거울을 두신 것이다. 따라서 칼빈에게 있어서 성만찬은 예배의 본질이므로 매주 시행해야 하는 것이다.

 

성만찬의 올바른 참여에 대해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누구든지 이 성만찬을 업신여기거나 무관심으로 접근하는 자는 참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다. 만물에 주님의 몸과 피보다 더 귀하고 더 존엄한 것이 없는데, 경망스럽고 준비 없이 성찬에 참여해서는 안 되고 간절한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 어떤 사람, 특히 교회에서 하나가 된 그리스도인을 미워하거나 그에게 원한을 품고서 성찬을 대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서로 싸우고 다툰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여러 조각으로 찢게 되며 하나님을 모독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성찬에 참여하는 자의 태도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비록 믿음이 불완전하다고 느끼며 우리의 양심이 수많은 죄악들을 책망하지 못할 정도로 순결치는 못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주의 거룩한 식탁에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런 연약함 가운데서도 마음에 위선이나 기만이 없어야 한다. 성찬은 우리의 허약함을 돕고 우리의 믿음을 강건케 하며 우리의 사랑을 증가시키고 더욱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치료책인 까닭에, 우리가 죄악과 질병으로 억압된 느낌을 받으면 받을수록 성찬을 거부하기보다 은혜의 수단이므로 더욱 사모하고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5. 성만찬의 빈번한 시행을 위한 칼빈의 노력

중세 암흑기 동안은 말씀은 흔적을 감추고, 성례전(세례와 성찬식)만이 기독교 예배에 남아서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성례전마저도 형식화되고 미신적인 종교행사로 전락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결국 종교개혁은 말씀의 예배와 성만찬 예전을 초대교회처럼 회복하여 교회를 이어가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쯔빙글리의 기념설은 성만찬 예전을 연중 4회로 축소하는 중요한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개혁의 기치를 들고 말씀과 성만찬이 공존했던 초대교회의 예배 복원을 위하여 노력을 했지만, 자신보다 15년을 앞서서 개혁의 뿌리를 내린 쯔빙글리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다. 제네바 의회는 성만찬의 매월 시행하는 것조차 거부했고 연중 4번 실시하는 것을 선호했다. 칼빈은 예배가 말씀과 성만찬이 공존해야 한다는 힘겨운 주장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생의 끝을 맺는다. 그러나 심혈을 기울여 남긴 기독교 강요 4:17:46에서 오늘도 다음과 같은 말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1년에 한 번 성만찬에 참여하도록 하는 관례는 분명히 악마의 농간이었다. 주님의 만찬은 적어도 크리스천들이 매주 한 번은 참여할 수 있도록 거행되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성만찬

한국교회의 성만찬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칼빈의 성만찬 신학에 영향을 받은 성만찬 갱신 운동으로 메르서스버그 운동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1. 메르서스버그 운동

개혁주의 예배의 역사를 검토해 보면 칼빈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성만찬에 있어서 그렇지 못함을 발견할 수 있다. , 예배에 있어서 성만찬은 쯔빙글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나 칼빈의 성만찬 신학에 입각한 성만찬 갱신운동이 19세기 미국 펜실베니아에 있는 메르서스버그라는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이 일어난 배경을 살펴보면 성만찬의 시행에 있어 문자화된 모범 예식서가 참 예배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단순한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덜 강조되었다. 마치 설교의 부가물이 되었고,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신앙으로부터 신비를 벗기려는 노력은 기독교를 이성적인 종교로 만들었고, 이성주의자들은 설교만을 가치가 있고 유일한 신앙의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고, 미국의 영적 대각성 운동으로 회심을 강조하고 불신자를 상대로 했기 때문에 성례는 무시되었고 교리적 설교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영향들의 배경에서 칼빈의 성만찬 신학에 영향을 받은 성만찬 갱신 운동이 메르서스버그 운동이다. 이 운동에서 존 네빈(J.W. Nevin)은 성만찬에 대한 주요인물이다. 그는 성만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영적이며 실제적인 임재에 관심을 두었다. 왜냐하면 영적 임재에 대한 교리는 거의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성만찬이 십자가를 기념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연합에도 효과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네빈은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인격체와의 신비한 연합을 말한다. 물론 이원론적인 플라톤적인 사고를 가진 하지와는 충돌이 있었다. 네빈은 하지와의 논쟁을 통해 개혁자들의 견해를 더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성만찬을 행할 때마다 점점 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가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다고 믿었다. 네빈은 칼빈처럼 떡과 포도주는 상징이며 실재 그 자체가 아님을 인정하고 또한 상징이 보여 짐에 있어서 사물 그 자체가 또한 보여 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한 걸은 더 나아가 영적이며 실제적인 임재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네빈은 칼빈의 성만찬 신학에 대한 중요성을 발견했지만 칼빈처럼 성만찬을 매 주일 예배에 적용하려는 노력에는 치중하지 않았다.

 

2. 한국교회 예배의 갱신 운동: 말씀과 성만찬의 이중적 구조 회복

예배에서 성만찬은 말씀 선포와 함께 분리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더 나아가 성만찬은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주므로 성만찬의 시행은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성만찬에 대한 바른 인식 가운데 주일 예배 때마다 말씀과 성만찬이 시행되었던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계몽주의의 영향과 성만찬에 대한 기념설적인 신학적 사고는 예배에 있어서 설교에 대한 강조와 함께 성만찬의 간과(看過)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청교도의 영향을 받은 한국장로교회는 회심과 교리의 가르침에 집중하므로 성만찬을 하나의 행사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수단을 무모하게 거부하는 것이 되었다. 물론 한국 초기 기독교의 문화적인 배경을 외면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과 성만찬 예배의 이중적 구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물론 급작스러운 개혁이 아닌 지혜롭고 형편에 맞는 개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만찬에 있는 신학적인 의미, 즉 예수께서 성만찬을 제정하신 의미와 그 유익을 바르게 가르침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가르침이 없다면 성만찬을 자주 시행해도 습관이 되어버리는 일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가는 말

한국교회는 일 년에 한두 번의 성만찬을 거행하는 것이 악마의 농간이라는 칼빈의 말을 묵과하였다. 다는 아니더라도 성만찬이 연중행사가 된 것 같은 모습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만찬에 있어 사도들의 본을 따르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큰 실수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21세기 세계 교회의 구심점이 될 한국교회가 드리는 예배의 현장은 실로 부끄러운 현실이다. 말씀만이 살아 있는 예배의 성격을 유지한다고 하면서 성만찬을 형식화하면서 지난 한 세기를 지나왔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사실에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칼빈/개혁 신학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절대다수의 교회들마저 칼빈이 주장한 말씀과 성만찬의 균형 잡힌 예배의 복원에는 무관심한 것이 현실이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성만찬을 영적 임재설로만 주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카톨릭을 거부한다는 의식으로 영적 임재설만/기념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성만찬을 나를 기념(ἀναμνησις)하라는 신학적 함의를 부여하지 못하고, 성만찬의 중요성과 비중에 대한 인식이 없이 지극히 형식적 순서로 끝마치는 현상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참된 예배란 말씀과 성례전의 살아있는 두 바퀴가 동일하게 움직이는 것 되어야 한다. 칼빈은 성만찬이 없는 말씀 선포는 육체가 없는 영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성례는 은혜의 수단이므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하는데 유익을 줄 것이다. 또한 성만찬 자체는 교회에 대한 정체성을 부여해 주는 것이므로 개인적인 신앙과 축복에 집착해 있는 한국 교인들에게 하나 됨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줄 것이다. 설교를 통해서 뿐 아니라 성만찬을 통해서 자신을 온전히 주시는 그리스도의 영적인 임재의 체험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더욱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단순히 말씀만 듣고 살아가는 공동체로 끝나지 않고 주님이 제정하신 성례전 가운데서 경험하고 깨달은 신앙으로 예수님과 연결된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따라서 말씀과 성례전이 이상적으로 살아 실행되어지는 교회로서의 바른 출발을 위해 성만찬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이 참되게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면 칼빈의 성만찬 신학에 대한 입장을 나부터 바르게 인식하고, 또 잘 가르치므로 지혜롭고 점진적인 개혁을 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국제신학 3, 온전한 예배를 향하여 ”. 서울: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출판부, 2001.

국제신학 4, 온전한 예배를 향하여 ”. 서울: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출판부, 2002.

 

정인교,예배학원론. 서울: 솔로몬, 1997.

 

James A. De Jong. Jackman. 황규일 역,개혁주의 예배. 서울: CLC, 1997.

James F. White. 박상만 역,역사적 측면에서 본 예배학 개론. 서울: 요나, 1994.

John Calvin, Instiutes Ⅳ 」.

출처 : 포커스
글쓴이 : 포커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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