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알수 있는가 ?
로마서 1장 : 20절.
하나님의 자연을 통해 보여 알게 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 했다. 그가 창조하신 창조물을 통하여 보여 주신 것을 자연 계시라고 한다. 하나님의 존재의 여부는 그가 창조하신 만물에 분명이 보여 알게 된다고 했다.
(롬1:20)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1. 창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창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이 분명하게 보여 알게 된다고 했다. 다만 인간이 마음이 타락하여 알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1) 창조물이 있는 것은 창조자가 있음을 증명한다.
창조물이 있다는 것은 그것을 창조한 창조자가 있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시계가 있다는 것은 그것을 만든 기술자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계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만든 사람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시계는 쇠 조각으로 만들어 졌다. 만든 사람이 있기에 질서와 조직이 정확하다 그리고 생명의 받데리를 넣어두었기 때문에 움직인다. 그 움직이는 것을 보고 살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받데리의 수명이 다하면 시계는 멈춘다. 그 멈추는 것을 죽었다고 말한다.
또한 움직이는 시계는 쇠 조각으로 만들어 졌다.
이 쇠 조각을 모아 수 억 만년을 둔다고 해서 자연적으로 시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 움직이는 시계를 누군가가 만들어 생명의 받데리인 생명력을 넣어서 움직이게 해 놓았기 때문에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 시계는 기술자의 의해서 존재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도 자연히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주는 존재한다. 그리고 우 주 만물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질서가 있고 정확한 조직이 있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기에 우주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신비롭다고 경탄한다.
2. 우주는 살아 움직이고 있고 질서와 조화가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생명이 있고 생명력을 가진 것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이 없는 것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그런데 우주는 생명이 있는 것이건 없는 것이건 움직이고 있다.
생명이 없는 것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그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우주를 보면서도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움직이는 자가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우주는 질서와 조직이 정확하다. 그 질서와 조직을 보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작가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자연적으로 질서와 조화가 이루어 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작곡가가 없이 악보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고 악기의 제작자가 없이 피아노 건반이 배열되었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바닷물 속에 있는 물고기가 지상의 물위의 세계를 알 수 없으며 어찌 어항 안에 들어 있는 고기가 바다의 세계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
우주는 무한한 신적인 능력이 나타나 있다.
지구가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돌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주관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전한다고 말한다.
생명이 없는 지구가 자전하는 것은 그 지구를 관리하고 있는 주고나자가 있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지구는 3분의 2가 물이다. 물이 둥근 지구에 붙어 있는 것도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신비롭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은 빨리 돌아가는 둥근 지구에 붙어살고 있다. 이것도 인간이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다만 그 실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창조자의 능력이고 주관자의 관리 법칙이다.
진화론을 인정한다고 하면 우주가 자연이 존재하였고 자연히 이루어진다면 계속적으로 우주는 자연히 발생하여야 한다. 그리고 고정되어 있을 수 없고 계속적으로 변하여야 한다. 질서가 있을 수 없고 우주는 혼란이 있어야 한다. 인간 자신도 믿을 수 없는 공포에서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언제 어떻게 어떤 괴물로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생명이 있는 것은 자연히 발생할 수 있고 진화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이 없는 것은 발생도 진화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우주를 보면 생명체가 아닌 것들이 무수하다. 생명이 없는 것들은 아무리 역사가 흘러도 변하거나 발생하거나 진화할 수 없는 것이다.
움직이는 우주를 보면서 우주의 조종자가 있음을 알 수 있고 우주의 질서와 조직을 보면서 작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창조자가 있기에 창조물이 있고 움직이는 자가 있기에 우주는 살아 움직이며 작가가 있기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창조자, 조종자, 작가가 하나님이시다.
생각해 보자. 하늘에 날으는 비행기가 조종사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피아노는 쇠 조각과 나무 조각으로 이루어 졌다. 그러나 자연이 만들어 질 수 있다면 그 쇠 조각과 나무 조각을 한 곳에 모아 수 억 만년을 둔다고 해서 자연적으로 피아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3. 양심이 있음은 그 원천이 있음을 증거 한다.
(창1:26)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했고
(창3:10-11)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했다.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과 달리 양심이 있다. 이 양심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지는 본능적 규범이다.
양심이 있기에 죄를 지으면 수치를 느끼며 두려움을 느끼고 선을 행하면 기뻐하고 평안을 느낀다.
아담이 범죄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내가 두려워함으로 피하여 숨었나이다. 라고 했다.
[창 3:9-10]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이 두려워 한 것은 선한 양심 규범의 발동이었다. 인간이 진화하였다면 짐승에게도 양심이 있어야 한다. 또한 인간의 양심은 세대가 흐를수록 타락하여 사악해 졌다. 그렇다면 그 원래의 양심, 그 양심의 원형을 찾으려면 인간과 제일 가까우며 진화하지 아니한 원숭이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짐승들이 인간처럼 양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만 양심이 있다.
이 양심은 어디서 왔는가 ? 그 양심의 근본 원천이 있다는 말이 된다. 그 양심의 원천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 양심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만이 가진다.
창조주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을 닮은 인간에게만 양심을 부여해 주셨다.
[창 1:26-27]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했다.
4. 인간의 종교심은 그 종교심을 부여해 준 자가 있음을 증거 한다.
(전3:11)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했다.
종교심이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며 신을 찾는 본능이다.
역사에 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인종이든지 종교를 가지지 않은 인종은 없다. 또 역사 이래 종교를 부인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종교심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나름대로 자연이나 또한 인간, 그리고 여러 피조물을 섬겨 왔다. 그러기에 이 지상에 인간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종교들이 있다.
진화론 자들은 인간이 진화 했다고 말한다. 인간이 만약 진화되었다면 짐승에게도 종교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원숭이에게도 종교심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원시인들도 종교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짐승들에게도 종교의식이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 신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짐승에게도 종교의식이나 신전이 없다. 인간만이 종교심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어떤 인간이든지 어려울 때에는 신을 찾는다. 사람은 뇌성 번개가 치면 사람은 누구나 신에게 머리를 숙인다.
진화론의 유일한 증거는 화석이다. 그러나 그 화석도 추상에 불과하다. 2000년의 것이니 10.000년의 것이니 하는 것도 우리가 믿을 수 없는 추상에 불과하다. 화석이 진실한 증거라면 2000년 전의 두개골과 오늘 현대인의 두개골과 달라야 한다.
10000년 전의 것과 오늘의 것은 더욱 현저하게 달라야 한다. 그러나 동일하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이 진화되었다면 지금도 진화 중에 있어야 하고 또한 원숭이와 사람 사이의 중간층의 동물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 비슷한 동물이 있어야 한다.
머리는 사람이며 반은 물고기든지 꼬리 달린 사람이라든지 얼굴 모양을 가진 동물이라든지 즉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듯이 그 중간에 연결되는 짐승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간 화석도 없었고 짐승도 없었다. 또한 사람과 원숭이 중간층의 화석이 발견되지 아니하였고 현 중간층의 짐승도 없다.
성경학자들은 화석은 노아 홍수 때의 매몰된 유물이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산 속에 산호의 화석이 있고 조개의 화석이 있다,
인간이 진화했다면 지금도 호적이 없는 인간이 간혹 태어나야 한다. 역시 그런 사실도 없다. 이것은 찰스 다윈의 학설에 불과한 것이다. 종교심은 신과 인간과 맺어지는 끈이다.
아무리 문화가 발달하고 지성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종교심은 없어지지 않는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종교심도 같이 존재한다.
오히려 지성인이면 지성인일수록 종교를 더 추구한다.
고대 현자(賢者)들 어느 누구도 종교를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다.
5. 인간의 짧은 생명은 긴 생명이 있음을 증거 한다.
(창2:7)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짧은 생명을 지니고 있다.
이 짧은 생명이 있다는 말은 긴 생명이 있다는 것을 전제 한다
잘려진 한 나무의 가지가 있다는 말은
그 나무의 원목이 있는 것을 증명한다. 한 컵의 물이 있다는 말은 그 물을 길어 온 원천이 있다는 말이다. 수학적으로도 100이 있다는 말은 영원한 수가 있음을 말해 준다.
인간에게는 70년 혹은 100년이란 짧은 생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그 짧은 생이 있다는 말은 그 생이 기원한 영생이 있음을 말해 준다.
한 컵의 물을 보고도 그 원천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한 나무의 가지를 보면서도 그 나무의 원목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모른다고 말해야 할 것이고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성경은 말하기를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 도다 했다.
(시 14:1)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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