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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을 보시고 우신 예수님 /예루살렘의 멸망

하나님아들 2016. 3. 24. 12:06

 

성을 보시고 우신 예수님/예루살렘의 멸망 

 

 

 

  김문영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土城)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四面)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眷顧)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눅19:41~44)

 

41. As he approached Jerusalem and saw the city, he wept over it  

42. and said, "If you, even you, had only known on this day what would bring you peace -- but now it is hidden from your eyes.  

43. The days will come upon you when your enemies will build an embankment against you and encircle you and hem you in on every side.  

44. They will dash you to the ground, you and the children within your walls. They will not leave one stone on another, because you did not recognize the time of God's coming to you."

 

 

 

 

 

 

                            예루살렘의 멸망

 

 주후 62년부터 64년까지 예루살렘에 재임했던 총독 알비누스는 높은 세금을 거두었으며 직권을 남용하여  자기 욕심을 채웠으며, 후임인 게시우스 플로루스 역시 전임자 이상의 횡포를 일삼았으며 가이사랴에서 유대인들의 폭동이 일어나자 폭동에 관련된 유대인들을 붙잡아 투옥시켰으며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 창고에서 벌금을 취하고 이를 비난하는 유대인들을 보복한다고 일반 백성의 집에도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고 도시 곳곳에서 학살을 자행하여 부녀자를 포함하여 3천 6백명이 살해되었다. 이에 분봉왕 아그립바 2세가 사태 해결을 위해 중재에 나섰고 시리아 총독 갈루스도 실정을 조사하기 위해 군사령관을 파견하였으며 아그립바 2세는 로마와 싸우는 것은 불리하다고 민중을 납득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은 걷잡을 수 없었다. 유대인 파격파가 사해 근처의 마사다 성채를 습격하고 로마 주둔군을 전멸시켰으며 예루살렘에서는 엘르아살이라는 청년이 인솔하는 과격파가 대제사장 안나스2세와 원로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호히 로마에 맞설 것을 선언했다. 이에 아그립바2세는 유대인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기병 3천을 파견하여 예루살렘은 보수파와 과격파 간에 싸움이 벌어졌는데  과격파의 승리로 끝났으며 이에 시리아 총독 갈루스는 군대를 파견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나 예루살렘 민중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퇴각하고 말았다. 이에 사태악화에 놀란 로마는 가장 유명한 장군 베스파시아누스에게 3군단을 지휘시키고 다시 보조군으로 기병과 종속왕(從屬王)의 원군 등을 합쳐 6만의 대군을 투입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충분한 전투준비를 갖추고, 교묘한 전략을 세움으로써 A.D. 67년에 들어와 착착 실지를 회복하고 68년 전반에는 예루살렘 성세를 둘러싸고 공격할 체제를 거의 굳혔다.

한편, 유대측에서는 전황의 역전과 더불어 내부 분열이 생겨 서전 당시에 전쟁을 지도하던 대사제와 바리사이파 지배층들이 일찌감치 탈락하고 말았다. 바야흐로 예루살렘 공략전이 시작되려 할 때 갑자기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수도 로마에서 정변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 무렵 유대에서는 사투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네로는 한가히 그리스를 여행하며 국사를 돌보지 않음은 물로 예나 다름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가와 군인을 차례차례 죽여버리곤 했다. 더 참을 수 없는 무장들이 각지에서 반기를 들고 제각기 황제를 내세웠는데 먼저 갈리아에서 빈테크스가 반란을 일으키고 스페인에서 갈바가 일어나고 갈바를 죽인 그의 부장,곧 네로의 황후 호파에의 전남편 오토가 일으키고 이어 게르마니에서는 비텔리우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 소문을 들은 각 군단에서는 그들을 모두 황제로 올려 세웠다.

그 사이 로마에 돌아와 있던 네로는 모든 사람에게 버림을 받고 밤중에 대로를 우왕좌왕 쫓겨다니다가 마침내 자살로 30년의 생애를 끝마친다.A.D.68년 9월9일 새벽의 일이다.

군대를 철수하고 사태를 주시하던 베스파시아누스도 다음해 9월 동부 제군단에 의하여 황제로 추대된다. 그리하여 A,D. 70년에는 비텔리우스를 물리치고 로마에서 정식 즉위하였다.

 

예수님은 이미 40년 전에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하여 포위당할 것과 포위에서 풀려날 것을 보았다. 당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던 12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로마군이 회군하자 가까운 이웃나라로 도망한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그대로 있었다. 저들이 그대로 있었던 이유는 로마군이 스스로 물러났기 때문이었는데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승리했다라고 착각하였던 것이었다.

 

예수님은 분명히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 알라" 하시며 도망가라고 하였다. 또 이 날은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을 것이며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 잡혀 갈 것이라 예언한 가운데 있었다.

 

역사를 다시 살펴보면

 

이와 같이 로마 정변이 수습되자 예루살렘 공략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베스파시아누스제의 아들 티투스는 14군단을 이끌고 A.D. 70년 4월부터 9월말까지 격심한 공격을 퍼부었다. 이리하여 신전도 성벽도 도시도 다 불타버려 다만 기왓장과 흙덩이만이 뒹굴뿐이었다. 굶어서 쇠약해진 주민은 여자도 어린이도 철저하게 항전하다가 지옥과 같은 피의 개울 속에 다 쓰러져갔다. 포위 공격되어 전사한 자가 110만명 포로가 9만7천명이라 전해진다 .사해 서안에 있는 마사다 보루에 틀어박혀 항전하던 잔당도 3년 후에는 힘이 빠져 전원 자결하고 만다.

 

눅21/20절의 내용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의 내용이다.

예수님은 40년 후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정확하게 예언 하였다.

그 어느 누가 내일 일을 알 것이며 불과 1시간 후의 미래를 내다 볼 수 있을까?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예언서인 동시 우리 영혼의 구원이 담겨져 있는 생명책이다. 이런 성경을 멸시한다면 2000년 전 유대인들과 같은 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주후70년 예루살렘 멸망모습

 

(본 글은 미국 하바드 대학이 소재한 영어판 번역본 요셉푸스 기록발췌 내용이다 )

 

"한편 유대인들은 모든 출구가 막혀 성 밖으로 도망칠 수 있는 모든 희망은 사라져 버렸다.

기근이 점점 더 심해져 가족과식구들이 죽어갔다.

옥상에는 못 먹어서 완전히 탈진한 여자와 간난아이들로 북적거렸고, 길에는 노인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아이들과 어른 그리고 청년들은 못 먹어서 부은 얼굴로 시장거리 를 유령처럼 돌아다녔으며, 아무데나, 쓰러져 죽어갔다.

마리아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너무 못 먹어서 자신의 아들을 잡아먹고는 남은 부분을 숨겨 두었다. 강도들이 구운 구수한 냄새를 맡고는 음식을 달라고 협박했다. 나중에 사람의고기라는 것을 알고는 강도들은 기겁을 하고는 그 집을 도망쳐 나왔다. 이 부분은 예루살렘멸망 당시의 일부분이다.

당시 로마 유학파 지식인인 요셉푸스 라는 고대 사가가 기록한 부분인데, 갈릴리지역의 군대 장관이었으나, 로마군의 포로로 잡히자 죽이기를 아까워한 베스피아누스 로마사령관이 살려주어서 유대고대사를 역사에 남기게 된 것이다. 그리스어(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유창하게 잘하므로 로마군은 통역관으로 쓰게 된다. 그는 전쟁의 현장에서 보고들은 것을 기록하여 후세에 남긴 것이 "유대인의 전쟁"이라는 책이다.

도시의 강도들은 칼이 잘드나 시험하기 위해 죽은 시체나 숨이 붙어있는 사람에게 찔러 보았으며, 살려달라고 경멸하는 자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같은 동족인 강도에게 죽은 자가 더 많을 정도였다.

 

"시체가 도시 안에서 썩어 냄새가 진동하자. 처리를 못해 강도들은 성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성안주민들이 금화를 삼키고 탈출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로마군과 강도들은 금을 얻기 위해 산사람의 배를 갈라서 금화를 끄집어냈다. 어떤 때는 하루에 2000명이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했다.

로마군에 반란 중 죽어서 갇힌 성에서 탈출을 못하고 성 밖으로 운반된 시체는 115,880명'''  특히 힘없는 하층민은 죽어서 성 밖으로 던져졌는데 무려 600,000명이다.

시체를 옮기다가 힘들면 큰집에다가 차곡차곡 쌓은 후 문을 잠갔다.

그리고 성안의 풀과 소똥도 먹느라고 남아있지 아니했다.

이러한 처참함은 로마군의 동정심을 자아냈다.

나머지 17세 이상은 포로가 되어 이집트의 작업장에서 중노동에 평생 붙들렸다. 그리고 노예로서 선물로 보내지고... 로마의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이 되거나, 검투사가 되어 죽어갔다.

포로를 구분하여 노예로 분류하는 하루 동안에 11,000명이 배고파 죽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음식을 주지 않는 로마간수를 저주하며 죽기도 했고, 음식 먹기를 거절하여 죽기도 했다.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자 전투 중 포로는 97,,000명이었다.

도시주민 전체의 총사망자 수는 무려 1백 10만 명이었다.

 

성남시 인구 전체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됨"""

 

그 당시는 유월절 축제 준비 기간이라 각 나라에서 온 유대인과 여행객이 있었는데, 예루살렘에 무려 2백 70십만 명 정도가 구름같이 몰려 있었다.

그리고 유대인이 로마인에 대한 반란으로 도시에 운집한 인구의 무려 50%정도가 죽은 것이다. 로마군이 어느 지하 동굴을 수색하자 2000구의시신이 나왔다. 로마병사들은 악취가 고통스러워 피했고, 다른 로마군은 시신 속에서 금은보화를 찾기 위해 뒤지고 있었다.

주후73년 유대총독 플라비우스 실바는 유대전체의 반란을 진압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최후의 한곳에서 반란을 저항하고 있었다.

그곳은 바로'''! "마사다 "라는 해발 약 600미터의 절벽으로 된 천연요새였다.

헤롯대왕이 자기의 은신처나 별장으로 왕궁을 건설한 곳이다.

3년 동안 저항하였으나 마침내 로마군은 흙을 부어 토성을 쌓아 점령하였다.

1000명이나 되는 유대인은 포로가 되어 고문을 당하거나, 노예로 팔려가느니 각자가 제비를 뽑아 죽이는 자살극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예루살렘은 주후 70년 9월 26일에 로마군에게 완전히 함락되었다.

하나님은 이때 멸망징조도 보여주지 아니하고 가만히 있었을까? 당시의 기록을 보자

 

1) 수도 도시위에 칼처럼 생긴 별 하나와 혜성이 1년 동안 계속 떠있었다 한다.

 

2) 주후70년 3월경 유월절 축제기간 중 아주 밝은 빛이 성전주변과 동물 제사 드리는 제단주위를 낮과 같이 비쳤다하며..

 

3) 유월절 제사에 바치려던 암소가 성전 뜰 한가운데서 새끼 양을 낳은 기괴한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4) 성전 안뜰 황동문은 어른 20명이 밀어야 겨우 열리는 문인데, 분명히 나사못과 빗장을 치고 했는데도 저절로 열려있는 것이다.

 

5) 예루살렘 하늘위에 해가 지기 전에 전차와 대군대가 구름처럼 대부대를 만들어 도시를 포위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6) 반란 4년 전 주후 63년 제수라는 사람이 나타나 7년 5개월 동안 밤, 낮, 골목, 시장, 거리에서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과 성전아'''너를 대적하는 소리가 들린다" 고 우울한 멸망의 저주만 외쳤다고 한다. 화가 난 제사장들 지도급인사가 채찍질하고 뼈가 부러져 드러나도록 맞아도 살려달라고 애원도 아니 했단다. 자기에게 음식을 주는 자도 축복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로마군의 투석기의 돌대포를 맞고 즉사했는데, 숨이 끊어지면서 까지 저주의 말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구주 예수님을 죽이고도 회개를 아니하자 (유대인은 착각으로 로마로 부터 하나님이 해방시켜준다고, 하여 반란을 전국토에 일으키게 됨) 예루살렘의 멸망을 로마군의 손에 붙인 것이다

(주전 582년 유대나라 2지파가 바빌로니아에,,,주전 722년 이스라엘 10지파가 앗시리아에 망하듯이'''_

 구약시대 바빌로니아에 유대나라가 70년 만에 돌아오는 조건으로 망해도 하나님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 대예언자들을 보내주었는데''''' 이번에는 하나님의 아들까지도 죽였으니 엄청, 쫄딱 망하는데''''하나님이 위의 징조를 보여주므로  경고하신 것이다. 그러자 최후에는 온 유대나라가 로마에 쑥대밭이 되어 망한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이 도시로 세워진지 1468년 6개월 만에 완전히 처음으로 멸망한 것이다. 그리고 고대 아브라함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는 무려 2177년 만에 망한 것이다. 로마군 사령관인 티투스는 "성전에는 불을 지르지 말라 했으나, 흥분한 로마군은 말을 듣지 아니하고 못들은 체하면서, 성문에 불을 놓았다. 그러자 사방에 금과 은이 녹아서 불길은 삽시간에 퍼졌다 한다.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68-70년에 발생한 유대인들의 로마에 대한 항쟁 당시에 극적으로 예루살렘을 탈출한 후 욥바 근교에 있는 야브네(Jabne 혹은 Jamnia)에 랍비학교를 세우고 유대주의를 발전시킨 위대한 학자이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온건파로써 강경파의 강력한 견제를 받고 있었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유대 민족이 영원히 살아남을 방법을 골똘히 생각하던 끝에 로마의 장군과 이 문제를 협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모두 예루살렘 성벽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출입이 전혀 불가능했다. 이에 요하난 벤 자카이는 하나의 계교를 생각해 내어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이 거사에는 군대 지휘관으로 있던 요하난의 조카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요하난은 거짓으로 환자노릇을 했고, 기거하는 방안에 악취가 나도록 위장했다. 그리고 그를 병 문안하기 위하여 찾아온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아나기 어렵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가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제자들은 그를 관속에 넣고 시체를 성 밖에 매장할 허가를 신청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안에 묘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경파 경비병들은 랍비가 죽었다는 사실을 반신반의하여 칼로 시체를 찔러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것을 돌아간 분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필사적으로 항의했다. 이리하여 그들은 강경파의 눈길을 피하여 드디어 로마군의 진영으로 나갈 수 있었다. 로마군 진영에 이르자, 이번에는 로마병들이 칼로 관을 찔러 보겠다고 하였다. 제자들은 다시 로마의 황제가 죽었다면, 칼로 관을 찌르겠는가 라고 주장하면서 로마군의 진영을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드디어 관속에서 나온 랍비는 로마군 사령관을 만나고 싶다고 신청했다. 신청이 받아들여져서 로마의 사령관 베스파시안 장군 앞에 나간 그는 사령관이 앞으로 로마 황제가 될 것을 예언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조그만 학교를 하나 세워 줄 것과 그 학교만은 파괴하지 말고 보존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에 로마군 총사령관 타이터스는 요하난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그 후 예루살렘과 성전은 파괴 되고 말았다.

 열심당원을 중심으로 한 로마와의 전쟁에서 실패하자 이 전쟁을 주도한 열심당원들과 대제사장 및 예루살렘의 귀족 중심의 사두개파, 그리고 쿰란 수도원 중심의 에세네파가 모두 소멸되고 오직 바리새파만이 건재하게 되었으며 유대교의 전통만은 요하난 벤 자카이와 그와 함께 한 십여 명의 랍비들에 의하여 그 후 약 2000년 동안이나 보존될 수가 있었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

 

 

당시 로마군들은 총사령관 타이터스(Titus)의 명령을 어기고 황금빛으로 찬란한 예루살렘 성전에 불을 질렀는데 타오르는 불길에 성전의 금은은 녹아 흘러내려서 무너진 돌들 위에 덮쳐졌다. 시간이 지난 후 병사들은

폐허더미 속에서 돌더미에 붙은 금은을 떼어내느라고 돌을 하나 하나 깨뜨리며 금을 취했다고 한다.

이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리우리라."

    

 

 


바그너- 발퀴레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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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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