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면서: 기독교 변증학의 미래
기독교 밖의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의 오류들에 대한 비판들로서 신의 존재, 기독교 신앙에서 이성이 억압된 상황, 악과 고통의 현실성, 과학의 사유는 신앙을 배제하는 문제, 기적의 문제, 종교의 다원성 등을 언급했다. 이러한 비판들에 대해 기독교 신앙은 그들의 주장에서 갖는 문제점들을 지적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이 과목을 마치면서 우리는 몇 가지 물음들과 마주한다.
첫째, 변론이 최상의 공격이 될 수 있는가. 둘째, 첫 번째 물음과 연관하여 그 같은 변론이 그들을 설득하는 최상의 방식인가. 셋째, 기독교 변증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에 맞서는 것을 전략으로 설정해야 하는가. 넷째, 기독교 변증이란 기독교의 내적 공동체를 보호하는 전략이 아닌가. 다섯째, 미래는 어떤 방식으로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여야 하는가. 여섯째, 기독교 변증은 합리적인 신앙의 가능성을 제공하는가. 일곱째, 포스트모던 시대에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무얼 말하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1. 끝나지 않은 논쟁: 변증적 방식과 비변증적 방식 여전히 기독교 전통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위한 방식으로서 두 가지 방식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적극적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변호하는 방식과 다른 하나는 포스트모던 상황에서 '체계-내-진리'로서 공동체 안에서의 진리성을 그대로 수용하고 실천하는 방식이다. 전자는 복음주의적 성향의 그리스도인들의 방식이고, 반면에 후자는 후기자유주의 신학자들(postliberal theologians)의 방식이다. 윌리엄 플레이커(William Placher)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너티는 진리의 토대를 보편성의 원리에 따라서 해석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포스트모더니즘은 거대담론(meta-narrative)이 아니라 지엽적 이야기에 의해서 특징짓는다는 것이다. 보편타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런 이유에서 포스트모던 시대는 비변증적 시대로 규정된다. 기독교가 진리라는 명제는 끊임없이 도전을 받아왔다. 그것은 진리의 토대와 근거였다. 하지만 플레이커는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한 도전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첫째, 포스트모더너티는 어떤 토대(foundation)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말해야 하고, 그들의 주장들을 위한 철학적 토대를 찾고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포스트모더니티는 보편적 이론을 가정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우리의 주장들은 반드시 다른 철학적 근거에 의존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자신들의 세계관에 충실해야만 하며, 만일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 지적인 고립을 의미한다고 해도,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주장들이 반드시 지적고립으로 인도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한스 프라이와 조지 린드벡의 예일학파의 이야기 신학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참고: 신학을 계속 공부하려고 하는 학생들은 수정주의 신학과 후기자유주의 신학에 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William Placher, ?비변증론적 신학?, 정승태 옮김 (서울: 은성출판사, 2003), 1장을 참조하라).
비변증론적 방식은 (1) 계몽주의 기획이 실패했다는 가정: (2) 학문이나 이론의 토대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불신: (3) 포스트모던 문화의 차이성과 다양성의 수용: (4) 문화와 세계관의 해석적 상황: (5) 성경의 텍스트내재성. 간단히 요약하자면, 진리는 단지 진리라는 이유만으로 거짓을 부정하는 힘을 갖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상황은 이러한 생각을 뒤집는 것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이러한 생각은 비변증론적 방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근거 없는 감상주의적 발상이기 때문이다.
2. 기독교 변증학의 미래 기독교 변증학의 미래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아마도 추측하기에는 기독교 변증학은 증명의 부담에서 삶의 질적 가치를 증대하는 방향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행복을 추구한다. 성경의 권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이성적 논의, 합리적 신앙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 주제들이다. 그들의 논의와 우리의 삶과 분리된다면, 그것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힘이 상실될지 모른다. 만일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기독교 신앙은 오래 동안 증명의 부담에서 과학적 방식에 근거된 입증과 증명을 원칙으로 하는 것에만 메이지 말고, 보다 넓은 삶의 테두리에서 생활하는 신앙의 실천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만일 그렇다면, 기독교 변증은 어쩌면 나를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 신앙에 대한 변증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을 위함이다. 외부의 어떠한 것에 내 자신을 보호하고 확고한 신앙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는 행복하고 삶의 가치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진리로 승인할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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