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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No.51 제 4 강 사무엘상 개관

하나님아들 2015. 11. 17. 13:58
No.51 제 4 강 사무엘상 개관

1. 명칭

 

히브리 맛소라 성경은 사무엘상·하의 이름을 분리하여 각기 다른 이름으로 정하지 않고 두 권을 통합하여 하나의 이름, 즉 '사무엘의 책들'이라고 불렀다. 이렇듯 한 권의 책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사무엘서는 헬라어역인 칠십인역(LXX)에 와서 비로소 두 권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모음 없이 자음만으로 되어 있던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함으로써 책의 부피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칠십인역자는 사무엘서를 상·하로 나누어 '왕국 제1서'와 '왕국 제2서'(The First and Second Books of Kingdoms)로 불렀고, 열왕기상·하는 '왕국 제3서'와 '왕국 제4서'(The Third and Fourth Books of Kin-gdoms)로 불렀다. 고대 이탈라(Old Itala)역과 벌게이트(Vulgate)역 역시 이러한 칠십인역의 구분에 따라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를 각각 두 권씩 분류하였다. 그 명칭은 칠십인역의 명칭과 달리 사무엘 상·하는 '열왕 제1서'와 '열왕 제2서'로 열왕기상·하는 '열왕 제3서'와 '열왕 제4서'로 칭하였다. 이러한 분류법은 영역성경과 한글개역성경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영역성경은 사무엘서를 '제1, 2사무엘'로 칭하였고, 한글개역성경은 '사무엘상'과 '사무엘하'로 분류하였다. 한편 사무엘서의 명칭이 사무엘의 이름을 따라 불리운 것은 사무엘이 본 서 첫 부분의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사울과 다윗 왕에겐 기름을 부어 준 위대한 선견자였기 때문이다.

2. 저자와 시대적 배경

 

1) 저자

본 서의 저자는 미상이다. 단 몇 가지 추측은 가능하다.

첫째는 사무엘이 저자라는 견해이다. 하지만 삼상25:1에 그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기에 사무엘상의 첫 부분은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본 서를 다 기록했으리라 보기는 어렵다.

둘째로 다윗이라는 견해이다. 왜냐하면 본 서에 나타난 모든 사건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사람은 다윗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주장이다.

셋째로 선지자 생도 중 한 사람이 편집했다는 견해이다. 즉 대상 29:29에 나오는 '선견자 사무엘의 글' 과 '선지자 나단의 글' 그리고 '선견자 갓의 글' 과 함께 '야살의 책' 등의 자료들을 모아 편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견해들도 추측일 뿐 정확하지는 않다.

2) 시대적 배경

본 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윗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다윗에 관한 기록은 사무엘상 16장에서부터 시작되어 그의 죽음을 기록한 열왕기상 2장까지 계속된다. 따라서 본 서는 다윗의 40년 동안의 통치 기간이라 할 수 있는 주전 1011-971년까지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다윗은 40년 동안의 통치 기간 중 7년(B. C. 1004-1004년)은 헤브론을 중심으로 다스렸고, 나머지 33년 (B. C. 1004-971년)은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면서 이스라엘 전역을 다스렸던 것이다.

3. 기록 연대와 기록 목적

 

1) 기록 연대

기록 연대는 본 서의 저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바 저자가 미상이다보니 연대도 정확히 알 수 없고 단지 추측만 가능할 따름이다. 대체적으로 본 서의 기록 연대는 솔로몬의 죽음(B. C. 931년) 이후로부터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하기까지(B. C. 722년)의 어느 시점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본 서의 내용이 다윗 통치의 말기에서 끝나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으며, 또한 삼상27:6에 분열된 이스라엘에 대한 암시적인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본 서의 기록 연대를 솔로몬의 죽음 이후로 보고 있다. 그리고 본 서에는 B. C. 722년에 있었던 북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일체의 언급이 없기에  B. C. 722년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2) 기록 목적

본 서는 본래 사무엘상과 함께 사무엘서라는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사무엘서라는 한 권의 책에서부터 비롯되어져야 할 것이다. 본래 사무엘서는 이스라엘의 왕정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부터 다윗 왕조가 수립되어 정착하기까지의 역사를 제시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동시에 본 서는 왕정 통치 제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또한 완전하고 이상적인 통치자로서의 메시야에 대한 대망을 암시하고자 하는 기록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한편 다윗의 일생을 통하여 한 개인과 민족의 죄가 어떠한 결과와 파급 효과를 가져오는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경고하기도 한다.

 

4. 특성

 

본 서에는 세 가지 특성이 서술되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신정 정치가 등장하고 있는데, 조직적인 면에서 인간 왕을 세워 하나님께서 간접적으로 통치하는 형태가 나오고 있다. 사실 인간들이 요구한 왕정 통치는 불완전한 제도이다. 하지만 본 서에는 하나님께서 왕정 체제를 통한 간접 통치 방법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곧 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계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섭리에는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는데 앞으로 임하게 될 완전하고 불변한 메시야 왕국을 대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둘째는 인간 심령의 죄악성과 그 죄의 인과 응보를 보여 주고 있다. 다윗은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었으나 사무엘과 엘리처럼 하나님을 거역한 자식들을 갖고 있었다. 또한 성군이라 칭함받던 다윗도 음행과 살인을 범하였다. 다윗은 진실로 회개했으나 그 죄의 형벌을 매섭게 치루어야 했던 것이다. 즉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의 죽음, 장자인 암몬이 저지른 음행 그리고 아들인 압살롬의 반란 등 다윗은 자신이 저지른 죄악 때문에 엄청난 비극을 맛보았던 것이다. 셋째로 다윗 언약이 기록되어 있다. 이 언약은 다윗에게 영원한 왕위와 나라를 약속해 주는 언약으로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를 예언해 주는 약속이었다. 한편 이 언약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확충시키고 있다.

5. 기본 사상

 

사무엘서의 기본 사상은,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민족의 삶 전체를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심판하시고 때로는 축복하시면서 당신의 예정하신 목적, 즉 세상의 빛이 되며 구원의 섭리를 성취하시기 위해 메시야를 예비시키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 기본 사상을 드러내기 위해서 몇 가지 부수적인 주제를 사용하셨다. 예를 들어 나이 어린 사무엘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범죄한 백성 위에 임박한 진노를 계시한 것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제사장과 은혜를 저버린 백성들을 심판하신다는 불변의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

1. 사무엘의 지파에 대한 해석

삼상1:1을 보면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역대상 6:28, 33을 보면, 사무엘은 분명히 레위 지파의 자손이다. 그리하여 위의 두 구절들이 사무엘의 지파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진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 될 수 있다. 모세오경을 보면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들처럼 땅을 기업으로 받지 않고 12지파 중에서 48성을 얻어 그곳에서 살았던 것을 볼 수 있다.(민35:1-8). 따라서 사무엘의 아버지가 살던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도 특별히 레위 지파에게 준 성읍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사무엘은 에브라임 지파가 아니고, 레위 지파임을 알 수 있다.

 

2. 사무엘상의 특별 주제들

1) 인접 국가와의 관계

①블레셋: 사사 시대 말에서부터 사무엘 시대까지 이스라엘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었던 그들은 헷 족속을 패배시키면서부터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대적 중의 하나로 부상하였다. 그들은 헷 족속을 패배시키고 애굽에까지 진출하려 하였으나 라암세스 3세에게 대패한 후 지중해 연안의 가드(Gath), 가사(Gasa), 아스글론(Ashkel-on), 아스돗(Ashdod), 에글론(Eglon) 등에 거주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이들 지역에 거하던 블레셋 족속은 처음에는 지중해 연안의 제한된 지역에 만족했으나 점차 팔레스틴 동쪽으로 진출을 꾀하다가 결국 11세기가 시작되면서 이스라엘의 동쪽과 남쪽 지역으로 침공하여 사사 시대에는 단과 유다 지파의 여러 지역들을 차지하였고(삿14:4; 삿15:11), 사사 삼손의 활약으로 다소 위축되기도 하였으나 사무엘 당시에는 에브라임 지파의 영역 깊숙이까지 침입하여 실로(Shiloh)를 파괴하고 법궤를 빼앗아 감으로써(삼상 4장), 결국 이스라엘이 사무엘에게 왕정을 요구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② 앗수르와 그외의 강국들: 이스라엘의 눈에 가시 같은 블레셋보다 실상 더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족속은 앗수르인들(Assyrians)이었다. 이들은 블레셋이 헷 족속을 격파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B. C. 1200년경까지 헷 족속을 타도한 후 계속하여 티그리스 강 북쪽 주위의 온 땅을 정복하고 그 위세를 몰아 바벨로니아로 진군할 정도로 막강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영토 확장은 B. C. 1100년까지 중단되었다.

그 이후 다시 위세를 나타내려고 할 때, B. C. 1050-930년에 애굽 및 미타니 왕국과 헷 족속 그리고 아람 및 앗수르 나라들이 서로 세력을 견제하면서 서로 세력 다툼을 하는 동안 팔레스틴은 이들 세력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주위 세력들의 배경으로 이스라엘은 왕정 시대가 출범하게 되고, 다윗 시대에는 이들을 지배하는 막강한 이스라엘로 성장하게 되었다.

2) 사울과 다윗의 전쟁

사무엘서의 특징은 거국적인 대사건의 기록과 개인적인 사소한 일의 동시적 기록이다. 사무엘서에 나타난 전쟁 기록의 대 부분은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과 그 뒤를 이은 다윗과 연관되어 있다. 이 전쟁에 대해서 중요한 부분만을 고찰해 보면 암몬은 두 차례에 거쳐 공격을 했으며(삼상11:1-11; 삼상14:47), 블레셋은 네 차례에 거쳐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다(삼상13:3,5-14:46; 삼상17:1-54; 삼상31:1-6). 그리고 아멜렉의 침투(삼상 1-9장)와 모압, 에돔, 소바 등이 동맹이 되어 이스라엘과 대적이 되었다(삼상14:47). 다윗 시대에는 이방 민족들과 11차례의 전쟁 가운데서 모두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3) 사울의 왕국

사울은 이스라엘 왕정 시대의 최초의 왕이었다. 사울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멍에에서 구원하였을 뿐 아니라 주위 모든 국가들과 전쟁을 벌여 영토의 확장과 나라를 견고하게 세우기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다윗과의 끝없는 갈등으로 인해 밖으로의 정복 사업에는 그리 활발하지 못하여서 그의 수도와 매우 근접해 있는 이방의 여부스마저도 정복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결국 사울과 아들 요나단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전사하므로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로 이양된다.

4) 다윗의 시대

사무엘로부터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었지만 그의 앞길이 그리 평탄한 것 만은 아니었다. 특히 사무엘상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정식 왕으로 추대되기 전까지의 방랑 생활을 기록하고 있다. 사울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피난 생활을 하게 되는 다윗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침으로써 얻은 높은 명성 때문에 사울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고, 그에게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으며, 피난 생활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처럼 사무엘상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정식 왕으로 추대되기 전까지의 피난 생활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출처 : 강북축복은혜기도원
글쓴이 : 박용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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