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세대, 어떻게 교육할까?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한다
대한민국은 인터넷 왕국이 되었다. 인터넷 세대가 사회의 주류(主流)를 이루고 있다. 인터넷이 있었기에
'아∼ 대한민국'의 월드컵 성공이 있었고 인터넷 시대가 대선(大選)의 축을 이루어갔다.
인터넷은 무차별적으로 전 국민들을 공략하고
청소년들은 인터넷의 공격 앞에 맥을 못 추고 있다. 인터넷은 얼굴 없는 존재로 우리 시대를 좌지우지한다. 그 옛날 언론이 제4부(部)라고
했다면, 이제 인터넷은 그 어떤 매체보다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인터넷 세대. 교회 학생들 역시 인터넷 세대이다. 학생회 활동이 점점 위축되고 문학의 밤, 수련회, 주일 출석 등에서 인터넷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학생들은 예배당이라는 장(場)에서 서로 만나 얼굴을 보고 대면하고 믿음의 교제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상에서 서로 채팅하고 학생회 사이트에서 서로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보니 진정 믿음의 우정들이 형성되지 못하고 학생회는 갈수록 학생의 숫자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영향력이 약화되기에 교사 자신들에게 무력감을 주고 그래서 교사 지망생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터넷 세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결론은 교사 자신이다. 세상이 인터넷 세대라고 해서 인터넷으로 학생들을 잡을 수는 없다. 그
옛날 DDR이라는 게 나와서 대 선풍을 일으켰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앞서가는 교회들이 앞 다투어 DDR을 설치했다. 교회 안에 노래방 기기를
설치하는 교회들도 늘어났다. 강습회에 가면 DDR을 설치하고 노래방 기기(器機)들을 설치해야 된다는 신세대 강사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 DDR들은 어디에 갔는가? 이제는 흔적도 없이 교회 안에서 사라졌다. 교회마다 잠시의 유행에 따라서 춤추다보니 돈만 버리고 꼴만
우습게 되었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 인터넷 공간은 무궁무진한 발전을 기약하고 있다. 모든 생활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직장인들도
출근하면 먼저 인터넷을 살펴본다. 그리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인터넷 사이트들은 정보의 창고들이며 그 정보를 무시하면 나만 손해인 듯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인터넷 세상이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활동 공간이라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들이 서로 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줄 때 변화의 역사는 일어난다. 그러기에 교회교육의 중심은 언제나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에는 어떤 도구나 방법보다는 사람을 통하여 역사 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자기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들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데 사람을 동원해서 그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다. 아무리 세상이 앞서간다고 해도, 그래서
사람들의 위치가 초라해진다 해도 사람은 소중하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고 영성으로 무장된 사람들이라면 분명 그 어떤 프로그램이나
기기를 동원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지금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의 위기성을 알아야 새 시대에 쓰임 받는 교사들이 될
수 있다.
교사 여러분들을 엘리에게로 안내한다. 새로운 세대가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시대가 주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놓쳐버리고 만 엘리
제사장의 처신은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우리는 성공자에게서만 역사와 교훈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패한 지도자들에게서도 배워야 할
부분들이 있다. 신년 첫 해의 특집으로 엘리를 선택함으로 역(逆)으로 우리가 더 이상 실패하는 교사들이 되지 않기 위함이다.
교회교육의 중심은 말씀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입성 후 3백여 년이 지나고 있었으나 국가의 틀은커녕 부족(部族) 사회를 벗어나지
못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한 12지파는 사사들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통일성을 지니고 있기는 했어도 자기 소견대로 사는 민족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강력한 통치력이 없었기에 자신들이 법(法)이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 새 수백 년이 흘러버린
것이다.
이스라엘은 사사 엘리 시대를 맞게된다.
엘리 사사는 역사의 기로에 서 있는 지도자였다. 그가 바로 서면 새로운 통일왕국의
시대가 열리고 그가 실패하면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제 8족속으로 전락해 버릴 기로에 서 있었다. 안타깝게도 늙은 사사는 시대의 중요성을 간파하지
못했다.
새로운 시대 2천년 대. 새로운 1백 년. 엄청난 속도로 세상은 변할 것이며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것들이 우리를
경이(驚異)와 혼란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기존의 상식틀을 뛰어넘는, 신세대가 아닌 인터넷을 도구로 한 '신인간'(新人間)들이
출현할 것이다. 그들은 기존의 방식과 행동양식을 거절하고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이런 시대가 도래하면 기독교는 심각한 도전을 받게된다. 21세기의 '신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네피림 종족이다. 그들은
영성을 거절하고 자신들이 신(神)임을 자처하며 기독교의 가르침을 배격할 것이다. 천국이나 지옥,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죄사함과 칭의, 성화
등의 교리는 구 시대의 껍데기로 내던져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가인의 자손들이 될 것이며 가인의 문화를 재생시켜 현대판 바벨탑을 만들어 낼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재앙을 미리 내다보는 안목들이 있어야 한다. 셋의 자손들을 키워서 가인의 후손들의 불신앙을
대항하지 못하면 21세기는 온통 어둠의 세력들이 조종하는 타락한 시대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엘리 사사 역시
한 시대의 끝과 또 다른 시대의 시작에 살았다. 사사의 시대는 끝나가고 다음 시대는 왕정(王政) 역사의 새로운 막이 오를 텐데도 불행하게도
엘리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문장들을 찾아보면 그 당시 사회의 종교적 수준, 도덕적 상태가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사무엘상
3:1).
사사 시대는 말씀이 희귀했다. 제사장도 사사도 있었고 회막에서는 날마다 요란스럽게 제사의식이 거행되고 있었으나 정작 말씀이
없었다. 말씀이 사라진 종교교육은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은 '종교인'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말씀으로 교육받지 못했다.
그들의 교사(엘리)가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교사들은 갱신되어야 한다
엘리는 오래된 교사이다. 그 교사는 성경책과 공과는 있었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내지 못했다. 지난 시대, 그들 조상들의 역사는 들려주었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전해주지 못했다. 의자에 앉아(4:18) 조는 듯한 태도로
율법은 해석했으나 여호와의 능력은 가르치지 못했다. 그의 말씀에는 성령의 능력이 없었다. 그는 형식적인 교사에 불과했다.
교회/주일학교의 교재는 성경이 되고 있는가? 교사는 자기가 아는 것 이상은 가르칠 수 없다. 요즈음 성경 교사들은 교육의 텍스트인
성경을 너무 모른다. 성경의 초보(히브리서 5:12)도 모르는 사람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공과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교회는
'성경'을 교육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과'를 전하고 있다. 성경을 안다고 하는 교사들도 성경의 이야기만 알고 있지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의도를 모르고 있다. 교사가 모르니 아이들은 더 모르고,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은 아이들로 자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능하지만
말씀은 없는 아이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니까 어떤 결과가 왔는가? 이상(異像)이 보이지 않았다(1절). 이상(異像)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다. 말씀교육에 충실하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 여호와를 향하여 가슴을 찢으며 여호와를 중심한 삶을
살게된다. 소견대로 살 아 왔던 삶을 청산할 것이다.
엘리 사사는 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2절). 육신의 눈만 흐려진 것이 아니다. 영안(靈眼)은 더 흐려졌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능력은 상실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는 것, 새 시대에 제사장의 집안은 전혀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기에 엘리는 자녀들의 잘못을 알면서도 타이르는 정도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행동은 위험 수위를 이미
넘었다. 그들은 여호와의 제물을 훔쳤고(2:13∼16), 성막의 여인들과 통정했다(22절).
홉니와 비느하스는 어린 시절부터 제사장의 아들이 되어 회막 안에서 자랐다. 요즘 같았으면, 그야 말로 모태(母胎)
신앙이었고 유아세례를 받았고 입교했고 교회/주일학교부터 시작한 사람들이다. 교회를 떠난 적이 없다. 학생회장도 했고 청년부 활동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상을 체험하지 못했다. 회막 생활은 종교적이었고 형식이었다. 그들은 습관을 좇아서 신앙생활을 한 것이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 교사가 이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엘리 교사는 자녀들이 회막을 출입하는 것으로, 회막 안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만족해버린 지도자였다. 교회 안에서는 성경을 대하지만
하루 종일 인터넷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 그 현실을 읽어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그 아이들은 버릇없이 자랄 수밖에 없었고 회막 안의 탕자가 된
것이다.
우리의 학생들은 이상(異像)을 보고 있나? 날마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고 있는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을 통해
듣고 있을까? 만약 아이들이 이상을 보지 못하고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면, 그래서 때를 따라 세례 받고 학생회 간부로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아이들은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 아이들은 교회를 떠난 적이 없으면서도 교회 안에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모방하며 누리며 죄를 지으며 살 것이다. 아이들이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상을 보고 있는가, 예수 안에서 비전을 갖게되었는가를 확인하라. 기독교의 복음을 자꾸
종교적 활동과 습관으로 전락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영광이 떠난 인터넷 시대
성경은 제사장의 두 아들을 불량자라고 했다(2:12). 불량자는 '망나니'라는 뜻이다. 망나니는
교회 밖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제사장의 집안에도 있었고 교회 안에서 그럴듯하게 제사를 집례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않았다.
회막 안에서 평생을 살았으나 여호와의 이상을 보지 못했다. 인터넷에는 능수능란 했지만 말씀의 깊이는 없었다. 그러니 자기 소견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 교회/주일학교 출신 불량배들이 얼마나 많을까? 교회/주일학교 교사 출신
가운데도, 성가대 출신 중에도 불량자들이 많다. 소년원에서 종교의 유무(有無)를 조사했다. 절반 이상이 주일학교 출신이었다고 한다. 충격적인
사실이다. 교회가 여호와의 이상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앙운동을 전개하지 않는다면 아군(我軍)의 진지 안에서 사탄에게 학생들을 다 빼앗길 것이다.
사무엘상 4장 22절에서 그 사실을 확인해 보자.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 앞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엘리 사사 시대는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가 버린 시대이다. 지도자는 눈이 멀고 영력(靈力)이 쇠하였다. 후계자인 젊은 제사장들은 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 왔다. 블레셋 군대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한 이스라엘은 회막 속의 법궤를 앞장세우고 전쟁을 치렀다. 신앙심이 사라져 버린 시대일수록 의식을 중시 여기고 형식을 앞세운다. 그들은 여호와를 앞세워야 했는데 법궤를 앞 세웠다. 이상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홉니와 비느하스로는 그 선택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쟁의 결과는 예견되었다. 두 제사장은 전사했고 법궤는 빼앗겼다. 엘리는 참패 소식과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의자에서 떨어져
즉사한다. 전쟁 패배의 전갈이 왔을 때 비느하스의 아내는 해산 중이었다. 산고(産苦)가 심하여 임산부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누가 옆에서
아들을 낳았다고 하자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 명하고 숨을 거두었다. 이가봇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갔다"는
것이다.
이가봇(Ichabod). 여인은 죽음이 임박했을 때 법궤는 빼앗겼고, 시부와 남편과 그 형제는 죽고 군사들은 전몰했다는 것을
알았다. 여인의 생각에도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였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 버린 시대에 내리는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그래서 이가봇이라고 외친
것이다.
훗날, 솔로몬이 모리아 산에 성전을 건축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전(殿)안에 가득했다고 했다(열왕기상 8:10, 11). 하나님은 성전에 거하시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영광으로 거하셨다. 사람의 손으로
건축한 처소보다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 가운데, 성민 가운데 거하시기를 기뻐하셨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들어 차 있는 그 죄악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멀리 내쫓은 것은 결국 회막 안의 사람들이다. 회막 안의 죄악이 하나님을 회막에 머물지 못하도록, 군대의 진(陣)에
머물지 못하도록, 백성들 가운데 머물지 못하도록 쫓아내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간 곳에는 저주와 재앙이 내렸다. 하나님의 신이 떠나간
삼손이 힘을 잃고 원수들 앞에서 희롱 당했던 것처럼 영광이 떠나가 버린 이스라엘은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었다.
이 땅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 우리는 선교 1세기만에 엄청난 성장의 축복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이런 영광이 가득 차리라고는 보장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회막에서 떠나듯 한국 교회에서 영광이 떠나가 버릴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불상사가 일어났다면 그것은 세상 탓이 아니라 전적으로 교회의 잘못이고 지도자들의 잘못이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의 죄 때문에 영광을 거두시는 일은 없다. 세상이 핍박당할수록, 세상이 어둠에 쌓일수록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드러내고 영광의 빛을 발한다. 교회 자체가 부패하고 썩어버리면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거룩을 위해 그 영광을 거두어 가신다. 21세기, 인터넷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런 끔찍한 일들이 한국 교회에 일어난다면 한국 교회는 잠깐 일어났다가 스러져간 세계의 어떤 교회의 운명으로 끝날
것이다.
새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우리가 키우는 아이들을 다시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장년들의
그릇된 신앙, 한국 교회의 병폐에 대해 너무 오랜 시간을 들여 비판할 여유가 없다. 문제가 있는 곳마다 피켓 들고 찾아다니고 인터넷을 통해 자기
교회, 대형 교회에 대한 비방을 일삼기만 하는 그런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 기성세대는 새 시대의 주역들이 아니다. 그들은
새 시대에 별로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새 시대의 중심은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이다. 하나님은 그 아이들의 손에 한국 교회의 운명을
맡기셨다. 그 아이들이 교회 안에서 비느하스 형제처럼 자라나고 있다면 한국 교회의 내일은 희망이 없다.
우리 교육현장을 돌아볼 때 필자는 안타까운 게 많다. 그 중의 하나가 신자 가정, 그것도 교회의 중직이라고 하는 목사, 장로, 권사
가정의 자녀들 중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필자의 교회만 해도 중직들의 가정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교회 출석하지 않는
자녀들이 많다. 그들만 교회가 제대로 붙들어 놓고 부모들이 어려서부터 믿음으로 양육했다면 한국 교회는 적어도 100만∼200만 명 정도(이건
필자의 막연한 추정)는 '확실한 신자'로 더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가정교육에서 실패해 버리고 말았다. 교회 일에 열심하는 동안 내 가정의 자녀들은 교회에 나가는 것만으로 안심하고 넘어가
버렸다. 아이들이 교회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교회에서 무엇을 배우고, 배운 바대로 살려고 애쓰고 있는지 전혀 살펴보지 않고 교회에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안심해 버렸다. 그 결과 그들은 교회 안에서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살아갔다. 교회 안의 탕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는 더 흔할
일이다.
어느 날 자녀들이 교회 출석을 거절했을 때에야 그 심각성을 알고 야단하고 사정하고 지도자들을 탓해보았자 이미 자녀들의
관심은 세상 끝까지 떠나가 버린 후였다. 그들은 이미 교회에 대해 식상해 있었기에 교회에 대해 아무런 아쉬움도 없이 쉽게 떠나간다. 그들
부모들이 보여준 신앙생활-교인들끼리 싸우고 시기하고 편을 가르고 자녀들 앞에서 거리낌없이 목회자들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교회는 더 이상
신비스럽고 경건한 장소가 아니었다.
교회 안에서의 행동과 교회 밖에서의 그들 부모가 보여주는 이중적인 믿음의 생활은 자식들을 철저한 냉소주의자로
몰아간다.
패트리지가 한 말처럼 "자녀는 부모의 삶을 그대로 본받는다." 부모의 영적 지도의 소홀함 속에서 자라나던 자녀들은
'세월이 지난 후에'(창세기 4:3), 즉 턱수염이 나고 자아가 독립체제로 되었을 때 가인처럼 부모의 종교를 거절하고 나선다. 자기 식대로 믿고
자기 식대로 살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버려진 중직자들의 자녀가 대략 100만∼200만 명은 될 것이다. 우리 교회 안에, 중직자들의 자녀 중에 몇 %가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금방 계산이 나올 것이다.
더 한심스러운 것은 자녀들이 청년부에 출석하지 않는
중직들이 청년부 부흥이 안 된다고 요란을 떨고 학생회에 참석하지 않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더 지도자들을 공박한다. 비판하고 공박할
자격이나 있을까?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고 떠나간 자녀들의 영혼을 위해 울며 가슴을 쳐야할 분들이 교회교육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적반하장이다. 내 자녀들은 내가 챙겨야지 누가 챙겨줄 것인가?
필자 역시 청소년 시기를 보내고 있는 두 아들을 둔 아버지의
입장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목사 아들도 얼마든지 부모의 믿음을 떠날 수 있다. 내 아이라고 홉니와 비느하스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강성(?) 발언을 하는 것은 자녀 믿음의 1차 책임자는 부모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자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지도자들을 비판하기 전에 부모 자신들이 먼저 자책과 자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이다.
탈무드에는 "아이들은 왜 성장함에 따라서 부모를 잊어버리는 것일까? 그것은 부모의 교육이 나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가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쓰여있다.
학생들의 신앙 이탈은 교사가 책임지기 전에 먼저 부모들이 책임지려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녀들이 그 부모의 믿음의 계승자가 될 수 있다. 자녀들이 믿음의 계승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영적 가문의
대(代)가 끊어졌음을 뜻하는 것이고 그 어떤 일보다 무릎 꿇고 통곡해야 할 일이다. 인터넷의 무차별 공격속에서 아이들을 지키는 1차적인 책임은
교사가 아니라, 부모이다.
미국의 시인 월터스터프(Nieholas Wolterstorff)는 25세의 외아들이 알프스에 놀러갔다 실수하여 추락사하자 아들의
죽음 앞에 이런 시를 썼다.
잘못됐다. 아주 잘못됐다
부모보다 먼저 죽는
녀석들은
정말 못된 자식들이다
어떻게 너를 땅에 묻을 수
있느냐
부모는 과거에 속하고
아이들은 미래에 속했는데
어떻게 나의 미래 나의 영원을
땅속에 묻을 수 있느냐
너를 보지 않고는 미래를 볼 수 없고
너와 얘기하지 않고는 미래를 알 수 없으니
오늘
내가 너를 묻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묻는 것이다.
아무리 부모 세대가 훌륭한 믿음의 삶을
살았다 해도 자녀들이 믿음을 계승해 주지 못하면 그 훌륭한 믿음은 빛을 바래게 된다. 부모의 믿음이 사후(死後)에조차 훌륭한 흔적을 남기려면
자녀들이 내 믿음의 바통을 이어받아 더 열심히 달려나가야 한다. 자녀들은 부모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하다가는 믿음 도끼에 발을 찍히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부모들이 깨어나야 한다
청교도의 조상은 해적의 대명사였던 바이킹(Viking). 바이킹족(族)은 북 게르만족이라 불리는데 A.D.
8∼10세기 경 노르웨이 덴마크 영국의 템즈 강 지역을 점령했고 후에는 앵글로색슨족과 합해져 영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들 해적들은 바다에서
해적질을 하면서도 머리가 대단히 우수하였다.
이 머리 좋은 해적들은 자신들의 후예를 어떻게 훌륭하게 이어나갈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가장 깨끗한 여자를 찾아 결혼을 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오직 기독교도들만이 도덕적으로 육적으로 순결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면서 기독교 여성을 마구 붙잡아 강제로 결혼하게 되었다. 강제로 해적의 아내가 되었지만 그들은 아이들을 신앙으로 키웠다. 성경을
들려주고 기도해주고 순결하게 키우느라 삶을 바쳤다. 그 자손들이 훗날 청교도의 조상이 되었다.
기독교 최고의 박해 국가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게 된 것은 단지 콘스탄틴 대제의 결단만이 아니다. 로마에 기독교가 들어간 지
300년 동안 로마의 기독교도들은 엄청난 박해를 받아가면서도 믿음을 지켰다. 그들의 믿음은 곧 순결이었다. 신앙적인 영적 순결과 육체적인 순결을
지켜내었다. 이에 비해 로마는 타락하고 성적 생활이 문란하였다. 로마의 귀족들의 눈에도 로마의 처녀들은 순결하지 못했다. 그들은 순결한
기독교도의 처녀들과 결혼했다. 상대방의 승낙이 없는, 그야말로 반(半) 강제적인 결혼이었다.
그들 그리스도인 아가씨들은 바이킹족에게 붙들려 온 여인들처럼 자기들의 운명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남편의 개종을
위해 기도했으며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기독교 신앙을 심어주었다.
그들이 점점 자라나면서 로마의 각 방면으로 진출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큰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고 황제의 모친 헬레나의 개종과 함께 로마는 기독교국가가 된 것이다. 로마가 기독교국가가 된 것은 일면 세계사의 기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고자 했던 기독교 여성들과 그들 가정이 만들어 낸 하나님의 역사였다.
<로마제국멸망사>를 썼던 에드워드 기번(Gibbon)이 로마가 멸망한 원인 중의 하나로 가정의 파괴를 들었던 것은 정확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가 제국이 되고 부강한 나라가 되니 남자들은 가정을 팽개치고 전쟁과 사냥과 주연을 열어 흥청망청 거리고 부인들은
사치와 쾌락에 묻혀 가정을 돌보지 않았기에 가정이 파괴되면서 제국도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역(逆)으로 로마가 기독교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로마 교회의 가정이 건강하고도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내었고 그것이 바람둥이 남자
귀족들의 눈에도 좋게 보였기에 기독교로 개종했고 그 세력이 로마제국을 기독교로 만들어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앞서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도에 출판된 앨빈 토플러의 <미래의 충격>은 가족의 파괴,
가정의 해체를 들고 있다. 시험관 아이들이 나오고 실험 결혼, 독신주의, 동성연애, 일부다처 등이 법적으로 공인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 예언했다.
가정은 당연히 해체될 수밖에 없다. 기독교인들의 가정도 날로 해체의 위기를 막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가정은 더 이상 신앙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그냥 '집'일 뿐이다. 사단은 교회를 공격하기 전에 '가정'을 공격하고 주일학교/교회학교를공략하기 전에 부모의 교육열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점수와 성적을 위해서는 많은 과외들을 불사하면서도 성경을 과외 시킨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한다. 성경 과외? 오죽했으면 그런
발상이 나오겠는가?
토니 캄풀러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은 자녀를 가질 때부터 죽을 때까지 50년 정도의 시간을 갖는다. 이 50년 중 처음 20년은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제일의 관심사로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후에는 보다 큰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위해 많은 시간들을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20년, 그 세월은 전적으로 내 자녀들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신앙교육을 해야할 때이다. 교회의 어떤 일보다 자녀들의 신앙 교육은
최우선적이다. 교육의 적기를 놓치면 내 아이들은 교회를 떠난다.
새로운 인터넷 세대, 부모들의 각성이 요구된다.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자라고 있는가? 를 항상 점검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원하는 모습이 있다면 당신 자신이 그런 모습이 되라(테렌스). 인터넷 시대의 부모들이 성경 교사의 심정으로, 구역장의 심정으로. 내 자녀들이
교회 출석을 하고 있지 않다면 더 죄송한 마음으로 남의 자식들이라도 열심히 가르치고 재정적으로 교육에 후원해 주고 격려할 때에 우리 교육은
활기를 띌 수 있다. 교회의 주일학교로 자녀를 이끌고 오는 부모가 자녀의 문제로 법원으로 불려 가는 일은 거의 드물다는 리슬리의 말을 덧붙인다.
벗
출처:http://cafe.daum.net/teacher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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