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나님의 안식(창세기 2:1-3)
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 2:1-3)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 하신 후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해석하려고 한다. 즉 하나님께서 쉬셨으니 우리도 그 날은 쉬어야 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오늘날 우리가 세상의 일에 대하여 쉬고 주일성수를 해야 한다는 식의 이해는 본문에 대한 너무도 피상적인 이해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시는 의도와는 관계없이 우리가 전하려는 논리에 맞추어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신 후 기뻐하며 쉬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창조되었기에 마지막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였다(창 1:31). 그리고 다음 날에 안식하셨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식이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아서 계속 기쁨이 유지되는 상태가 바로 안식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셔서 거룩하게 하셨다고 선언하고 있는데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따로 떼어서 구별하셨다’는 의미이다. 일곱째 날을 하나님께 속한 날로 정하셨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단순히 일곱째 날 하루만 하나님께 속한 날로 정하신 것으로 본다면 본문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6일 동안의 과정 전체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다. 이런 점에서 일곱째 날을 구별하셨다는 것은 6일 동안 창조하신 모든 것, 즉 모든 날들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성경에서 특정한 ‘시간’을 거룩하게 하였다는 말이 없다.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날이나 시간 자체를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씀이 아니다. 만약 시간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한다면 사람이 죄 짓기 전의 상태에 누렸던 안식을 영원하지 못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된다. 범죄 하기 이전에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살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의 안식은 하루만 안식이고 나머지는 안식이 아닌 상태가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이 안식을 빼앗긴 것은 죄를 지은 후의 일이다. 때문에 3절에서 일곱째 날을 복 주셨다는 말씀은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천지 만물의 존재 상태가 하나님께서 주신 복과 안식의 상태에 있었다는 뜻이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안식에 동참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거룩을 입는 것이며, 영원한 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누렸던 최초의 사람들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거부하였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로 제한하시는 안식이 싫다는 것이었다. 마귀의 꾐에 빠져 자신의 힘으로 자기 왕국을 건설하며, 스스로 안식을 누려보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그 결과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안식과는 상관없는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 죽음의 지배를 받고 있는 자기 백성들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출애굽 때에 안식일을 말씀하셨다. 신명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12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2-15)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구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애굽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던 그 창조의 힘으로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어떻게 나왔는가를 묻지 말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지신 분이 어떤 분인가를 알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자신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위하여 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해야 되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그 창조상태의 질서를 염원하라는 뜻이다.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것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를 기억하게 될 때에 창조 질서를 생각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출애굽 때에 주신 안식일의 의미이다.
최초의 사람을 보고 기뻐하시는 그 하나님을 잊지 말고 처음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최초의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살았다. 무엇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오로지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은혜만 바라며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만 있으면 되었다. 따라서 구약에서 말씀하신 안식일이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힘이고 하나님의 은혜이지 사람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의도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 일을 생각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안식일에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감사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는 고백을 위해서 노동을 쉬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모든 세계가 오직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보존되고 있음을 고백하고 확인하는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이다.
그러나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와 취지에서 한참 벗어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무엇인가 지키는 능력을 따라서 안식일을 수행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안식일을 완벽하게 지키신 분이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셨는가?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안식일에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때 사람들은 한편 손 마른 사람을 두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냐고 묻는다. 이는 예수님을 범법자로 몰아 고발하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마 12:11-13)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난한 것은 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무엇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였는가 하는 것에 초점이 있다는 뜻으로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서 안식일에 무엇을 하느냐 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뜻이다. 안식일에 손 마른 자에게 생명을 주심으로 안식일이란 창조의 능력자가 어떤 분인가를 보여 주기 위한 날로 주어진 것이 하나님의 취지이다.
생명이란 천지를 친히 창조하신 하나님의 몫이지 사람의 몫이 아니다. 아직도 창조의 능력은 중단되지 않으며 전혀 약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통해서 보여 주셨다. 따라서 안식일은 그 누구도 완벽하게 지킬 수가 없었다. 안식일뿐만 아니라 모든 율법이 죄인들이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주신 것이 아니었다. 율법을 지켜내는 분은 따로 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요한복음 5장에서도 보면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다. 마침 이 날도 안식일이었기에 사람들은 분개하면서 예수님을 핍박하게 되었다. 이때 하신 말씀이 바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라는 말씀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그 하나님의 창조 능력으로 38년 된 병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일을 지금 예수님께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고 해서 전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오히려 창조의 능력을 계속 보여 주며 일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심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 주셨다.
힘겨운 노동이라는 것은 사람이 죄를 범하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내리신 징벌이다. 즉 힘든 노동이라는 것은 사람이 죄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라는 말이다. 이러한 노동을 쉰다는 것은 죄에서 벗어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서 된다. 이것을 보여 주는 것이 구약에서는 유월절 어린 양이었고 그 유월절 어린 양이 지칭하는 분은 바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때문에 구약에서 안식일에 노동을 쉬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만으로 구원이 이루어지고 안식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약속하신 나라, 곧 안식은 우리의 죄를 사하신 예수님의 희생을 근거로 해서 이루어진 의(義)의 나라이다. 그러기에 이 의의 나라는 우리의 노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임을 고백하고, 그 은혜를 기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안식일의 의미는 예수님을 향하여 있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안식일의 의미가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스스로를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셨다(마 12:8).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안식일의 완성으로서 예수님이 바로 안식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본문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된 자이다. 그러기에 어떤 특정한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날이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였다. 그렇다면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날을 십자가 정신으로 살아가는 삶을 안식으로 여기고 기뻐하는 자가 성도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스스로 점검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은혜로 이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인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에서 날마다 확인되어야 할 문제이다<글 / 자유인_김영대>.
'모세 오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제3장 천지의 창조된 내력(창 2:4-4:26) - 2.남자와 여자(2:18-25) (0) | 2015.03.11 |
---|---|
[스크랩] 제3장 천지의 창조된 내력(창 2:4-4:26) - 1.사람과 에덴동산(2:4-17) (0) | 2015.03.11 |
[스크랩] 제2장 태초에(창 1:1-2:3) - 2.하나님의 창조사역(1:2-31) (0) | 2015.03.11 |
[스크랩] 제2장 태초에(창 1:1-2:3) - 1.창조주 하나님(1:1) (0) | 2015.03.11 |
[스크랩] 제1장 창세기 이해를 위하여 (0) | 2015.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