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恩惠)란 무엇인가?
Ⅰ. 이끄는 말
Ⅱ. 은혜의 정의
Ⅲ. 은혜의 내용
Ⅳ. 은혜의 특성
Ⅴ. 맺는 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 엡2:8~9 )
Ⅰ. 이끄는 말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나 교회 강단에서 전해지는 설교 중에서 은혜라는 용어가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기독교 진리와 은혜와의 관계가 매우 밀접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은혜의 종교’라고 하기도 하고, 기독교 진리를 ‘은혜의 복음’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기독교 진리를 논하기가 어렵게 된다. 따라서 신앙적인 대화나 복음전도에 있어서 ‘은혜’라는 용어가 흔히 사용될 수 밖에 없다.
(롬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어떠한 학문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기독교 진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설명된 단어 하나하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앞서야 한다. 그것은 아무리 자세하고 분명하게 정리된 진리체계라 할지라도 먼저, 설명된 단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는 진리체계 전체에 대한 오해를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가 진리대로 전달이 되어지려면 전달의 도구(道具)로 사용된 용어들에 대한 바른 이해가 앞서야 하는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특별계시로 주신 하나의 성경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기독교 진리가 너무도 복잡하고 혼란한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으나 그 중 하나는 용어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다양한 형태의 신비주의 신앙운동들이 건전한 기독교 신앙계에 암초 역할을 하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가 ‘은혜’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부터 왔다는 사실이다.
성경진리의 기초 위에 견고하게 세워지고 자라가야 할 교회가 몇몇 광신적인 신비주의 운동가들의 불장난에 의하여 커다란 상처를 받은 것이 현대 교회의 현실이다. 광신자들 중 더러는 마술적인 신통력(神通力)에 의하여 사람을 넘어지게 하여 소위 입신을 시키기도 하고, 양손을 서로 붙이기도 하고 떼게 하여 호기심을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신적 능력으로 과장하여 군중들을 흥분시켜 놓고,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충만한 은혜의 역사라고 선전한다. 그리고 혹자들은 방언도 하고 환상도 보게 되는 것이 은혜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
(살후2:8-12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고 요즘 흔하게는 ‘주여!’ 삼창(三唱)을 부르고 등골에서 땀이 나도록 큰소리로 기도할 때, 몸에 뜨거운 불이 임하고 진동도 일어나게 되며 하나님의 응답도 받는 것이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 자들이 허다하다. 그리고 더 흔하게는 소위 부흥회라 해서 많은 사람을 집회 장소에 모아놓고 북과 나팔소리에 맞추어 빠른 속도로 복음송을 부르게 함으로 분위기를 고조시켜 참석자들의 마음을 들뜨게하는 작태(作態)들을 은혜의 역사라고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은혜를 받는 수단으로는 금식기도를 한다든가, 산기도를 한다든가, 또는 새벽기도나 철야기도 등은 물론 안수를 받거나 은사 집회에 참여하는 것 등으로 알고 있는 경우는 일반화 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깊게 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모두가 성경적인 은혜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부족이나 오해에서 나타나는 잘못된 신앙적 부산물(副産物)이다.
건전한 신앙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딤후3:13-17 약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여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신앙의 대상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이 건전한 신앙은 기대될 수 없다. 신앙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목적으로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무엇인가를 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은혜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역시 건전한 신앙이 기대될 수 없는 것이다.
현세교회는 계속 개혁이 진행되어야 한다. 신학은 물론 신앙과 교회 행정 전반에 걸쳐서 꾸준한 개혁이 진행되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에 대한 오해들을 바로 잡아가야 하는 것이 선결 과제이다. 그 중의 하나가 은혜에 대한 성경적인 올바른 이해라고 생각이 되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적인 은혜란 무엇인가?
Ⅱ. 은혜의 정의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가 무엇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은혜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알아보려고 한다. 신약성경에서 은혜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리스( )’라고 하는데 고대어에 있어서의 이 단어의 외적인 의미는 ‘매력’ 또는 ‘매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는 ‘친절한’ 또는 ‘예의 바른’이라는 의미로 발전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은총’이나 ‘혜택’ 또는 ‘은혜’라는 의미로 나타나게 되었다.
결국 은혜(Grace)라는 말은 친절함이나 은택을 베푸는 자에 대하여 이것들을 받는 자가 감사를 느끼는 태도를 나타내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은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헨’( )이라고 하는데 ‘은총’(favor) 또는 ‘은혜(Grace)’라는 말로 번역이 되었다.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은혜’라는 단어의 용례들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구약성경에 있어서 노아 시대에 온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시는 여호와께 노아가 은혜를 입은 일이나
(창6:1-8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소돔성이 멸망을 당할 때 롯의 가족이 여호와께 은혜를 입어 멸망을 피한 사건
(창19:12-22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 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롯이 나가서 그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종이 주께 은혜를 얻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희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희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김으로 여호와의 진노를 받아 백성들 삼천명이 죽게 된 후, 모세가 회개하고 여호와께서 함께 해 주실 것을 구하면서 은총을 입은 증거를 보여 주시라고 한 사건 등이 있다.
(출33:12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나더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이러한 사건 등은 구약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은’'이나 ‘은혜’에 대한 단어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나 진노에서 구출되거나 용서되는 사건들인데,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배경으로 해서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의 ‘구원’섭리와 관계를 이루고 있다.
(롬6: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 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특히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사역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고 있다.
(출6:2-8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아브람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가나안 땅 곧 그들의 우거하는 땅을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
그러므로 구약에 있어서의 구원섭리는 하나님의 언약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구약에 있어서 ‘은혜’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구원이나 언약섭리와 관련을 지어 그 의미가 이해되어져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열조와 맺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하고, 그 언약은 아무런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성이나 자비성에 근거한 그 뜻에 따라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은혜’라는 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신7:6-8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화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신약성경에 있어서도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에게 예수가 잉태될 것을 알리면서 은혜를 받은 자라고 했고
(눅1:26-33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을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이사야의 글을 읽고 말씀하신 것을 은혜로운 말이라고 했다.
(눅4:16-22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리고 특히 서신서에는 은혜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아브라함의 후사가 되는 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말한다.
(롬4:13-16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 것이 되고 약속은 페하여졌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마리아의 경우 많은 처녀 가운데 예수의 모친으로 선택된 사건이나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으로 약속하신 것이 예수를 통해 이루어진 사실이나 아브라함 후사가 믿음으로 되는 것 등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주권과 자비성에 의하여 무조건적(無條件的)으로 되어진 것들이기 때문에 ‘은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은혜’라는 용어는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절대 주권적 섭리에 따라 자비하신 능력으로 당신의 백성을 선택하셔서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구원해 주시는 역사가 아무런 조건없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은혜에 대한 개념은 일반적인 은혜와 특별한 은혜로 구분한다. 일반적인 은혜는 하나님께서 택한 자나 택하지 아니한 자에게 일반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말한다. 예를 들면 물ㆍ공기ㆍ태양 등 자연의 혜택 또는 정치ㆍ문화ㆍ예술ㆍ교육ㆍ학문ㆍ경제 등과 같은 일반적인 혜택을 말한다.
그리고 특별한 은혜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만 베푸시는 종교적인 은혜인데, 예를 든다면 진리를 깨닫게 해서 믿게 해 주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섭리하시는 혜택을 말한다.
‘은혜’라는 용어도 일반적으로 사용할 때에는 부모의 은혜 또는 스승의 은혜, 상사의 은혜 등 다양하게 사용이 되지만, 이 용어가 종교적으로, 즉 성경적으로 사용이 될 때에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사용이 되는 것이다. 본 논고에서는 전자와 같은 ‘은혜’에 대한 일반적인 용도의 의미는 제외하고 후자와 같은 종교적인, 즉 성경적인 용어에 있어서의 해답을 구하려 한다.
Ⅲ. 은혜의 내용
은혜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을 얻으려면 은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아 보아야 한다. 그 내용을 성경에서 일일이 구하자면 너무도 방대한 분량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같은 방대한 내용을 간단히 간추려서 총정리 하듯이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이 설명해 주고 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성경 내용을 중심으로 은혜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아 보기로 한다.
먼저 하나님께서 아들되게 하심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3~6)"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찬송할 것을 언급하고,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으니까 은혜의 영광을 찬송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구체적인 내용은 신령한 복으로서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구체적인 방법이 놀랍다.
그 첫째 방법으로는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기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을 아들들로 택하신 것이고,
둘째 방법으로는 택한 바 된 아들들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欠)이 없도록 하시려고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
이 방법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이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에 의하여 아무런 조건 없이 거저 주신 은혜임을 알게 된다.
첫째 방법인 하나님의 선택이나 둘째 방법인 하나님의 예정이 모두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한 조건 없는 은혜이다. 목적을 위한 방법이 은혜라면 그 방법의 목적이 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도 아무런 조건 없는 은혜일 수 밖에 없다.
다음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됨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7~12)"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께 찬송을 해야 할 두 번째 이유를 밝혀주고 있다. 그 이유로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아 기업(基業)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구속(球贖) 사건 역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해 놓으신 하나님의 비밀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해서 다 알게 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 목적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모든 일을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이 다 예정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받아 기업이 되게 된 것도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섭리에 의하여 아무런 조건 없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은혜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졌기 때문에 바울은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찬송을 드려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그 다음은 성령으로 인치심이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엡1:13~14)"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찬송해야 할 이유를 밝혀 준다. 그 이유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성도들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도들이 성령으로 인(印)치심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믿은 것이라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아들들로 인치심을 받은 것이 어떠한 공로나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무런 조건이 없는 은혜로 된 것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는 것도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셔서 듣게 하셔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구원의 복음을 들었다는 것도 은혜라는 것이며
(마13: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예수를 믿는다는 것도 누구나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음을 듣게 해서 깨닫고 믿게 해야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믿는다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고전2:12-14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자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은 자만의 것이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살후3:1-2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지금까지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14절까지의 내용을 중심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았다. 다시 한번 요약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선택하시고 예정하셔서 아들들이 되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여 기업이 되게 하시고, 약속의 성령으로 인을 쳐서 기업의 보증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성경적인 은혜의 내용인 것이다.
Ⅳ. 은혜의 특성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는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있다. 그 내용 자체도 특수하지만 그 성질 자체도 특별하다. 성경적인 은혜란 무엇인가? 라는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무엇인가를 알아 보기로 한다.
먼저는 주권성이다
은혜의 내용 부분을 설명하는 가운데서도 약간 언급했지만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은혜는 절대 주권적이시다.
(마20:1-16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 또제 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 육시와 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 십일 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 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하니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 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성도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성도들 편에서 은혜 받기를 원한다고 해서 은혜를 받게 되거나 받기를 원치 않는다고 해서 받아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내용을 가리켜 신학에서는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라는 교리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교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성도에게 베풀어지는 은혜가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이기 때문에 인간 편에서 거부될 수 없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장로교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信仰告白)에도 보면 10장 1절에서 “영생에 이르도록 예정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기뻐 용납하시기로 작정하실 때에 말씀과 성령으로 저희를 확실히 부르사 저희가 본 성품으로 사는 죄와 죽음에서 나오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은혜와 구원을 얻는 지위에 이르게 하시되……”라고 했고
2절에서는 “이 유효(有效)한 부르심은 하나님의 값없고 특별한 은혜로만 되어지는 것이며 결코 사람 안에 있는 어떤 것을 미리 하나님이 보시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점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수동적(受動的)이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소생하고 새롭게 된 연후에는 이 부르심에 응답할 수가 있게 되며, 또한 이 부르심 가운데서 제공되며 전달된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모든 내용들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가 주권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소위 장로교회 지도자나 성도들이라고 하는 자들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적인 열심이나 노력에 의하여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성경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9:14~16)
다음은 자비성이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특성 중에 하나는 자비성(慈悲性)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이 은혜의 기초가 되고 있기 때문에 은혜의 특성 중에 하나로 자비성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성경에서 사랑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구약에서는 히브리어로 ‘아하바’( )라는 말과 ‘헨’( )이라는 말이 있고, 신약에서는 헬라어로 ‘아가페’( )라는 말과 ‘필레오’( )라는 말이 있다.
이들 용어들은 모두가 사랑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구약에 있어서의 히브리어 ‘아하바’( )나 ‘헨’( )은 아주 다양하고 폭넓게 사용되고 있고, 신약에 있어서도 헬라어 ‘아가페’( )나 ‘필레오’( )도 그 의미상 커다란 구별없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헬라어 ‘아가페’라는 말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God is love)라는 말에서 사용되고 있다.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이 용도는 ‘아가페’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아가페’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성경에서는 사용이 되고 있지 아니하는 헬라어 ‘에로스( )’라는 말과는 구별이 되는 용어이다.
‘에로스’는 성(性)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아가페’와는 구별이 된다. ‘하나님은 사랑(아가페)이시다’라는 말에서 ‘아가페’는 신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용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신적인 사랑이란 역시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며 일방적인 사랑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는 역시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며 일방적인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하나님의 은혜는 어떠한 조건이나 의사(意思)에 관계없이 하나님께로부터 택한 성도들에게 일방적으로 베풀어지는 것이다.
(요일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1:9)
그 다음은 영원성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의 특성 중의 또 하나는 영원성이다. 영원한 존재이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가 영원성을 특성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영원(Eternity)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시간의 연속이나 시간의 제한이 없는 미래를 일컫는 말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원이라는 말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형상을 초월한 상태를 표현하는 것으로써 종교적이고 절대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알파와 오메가이며, 처음과 나중이 되는 상태를 말하는데
(계21:6-7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표현 방법이다. 그래서 ‘영원’이라는 말이 하나님과 결부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성경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시136:1-26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땅을 물 위에 펴신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함심이 영원함이로다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저희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로 그 가운데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드려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저희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따라서 ‘영원’은 그 용어 안에 무한성(無限性)과 불변성 또는 완전성 등이 포함된 넓은 의미의 말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역시 영원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한하고 불변하며 완전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한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변함도 없고 완전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혹자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작은 것이 있는 줄로 알기도 하고 또 은혜를 하나님께서 베푸셨다가 생각에 변동이 생겨 다시 되돌려 가시는 줄로 알고 있는 자들도 있다. 이러한 결과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베풀어 주신 성경적인 은혜의 특성을 오해하고 있는 데서 얻어진 것들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라는 용어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선택하셔서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구원해 주시는 역사가 아무런 조건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정의된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성을 포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도 영원한 언약이며, 그 언약대로 구원해 주신 것도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이다.
(창17:7-8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러므로 성경적인 은혜는 영원성을 그 특성의 하나로 가지고 있는 무한하고 불변하며 완전한 은혜인 것이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4:17~18)
Ⅴ. 맺는 말
처음 이끄는 말에서 은혜에 대한 오해의 부분들을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은혜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정의와 그 내용 및 특성들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은혜에 대한 오해의 결과는 기독교 신앙계에 엄청난 부작용(副作用)을 일으키게 되었다. 비성경적인 신비주의 운동 또는 염세적인 기도원 운동, 그리고 말씀 중심에서 탈피한 은사 중심의 부흥 운동 등과 같은 사이비적 신앙운동 등이 곡식밭에 무성한 가라지처럼 자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경보다는 인기나 명성은 물론 큰 목소리가 비중이 큰 것도 사실이다.
이제야말로 건전한 말씀운동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이다. 방향감각마저 잊어버리고 탐욕과 허영에 취해 인기나 통계 중심의 탈선된 신앙운동에 열을 올리던 자들은 어리석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조용히 말씀 안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해된 은혜중심의 부흥회는 당연히 경계해야 하며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욱 신사적인 베뢰아 사람들처럼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성경공부(사경회)가 심도 깊게 자리잡혀 가야 한다.
(행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미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받은 바 은혜를 깨달아 가는 것이다. 즉 엄밀하게 말하면 은혜를 성도가 받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라는 뜻이다. 성도들은 성경을 통하여 은혜를 깨달은 농도(濃度)만큼 은혜의 감격이 솟아나게 되기 때문에 감사와 찬송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후4: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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