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이란 무엇인가?
Ⅰ. 이끄는 말
Ⅱ. 예언이란 말의 뜻
Ⅲ. 예언의 조건
Ⅳ. 예언의 구분
Ⅴ. 예언의 목적
Ⅵ. 예언의 시기
Ⅶ. 맺는 말
“또 무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 벧후 1:19∼21 )
Ⅰ. 이끄는 말
신문이나 잡지를 읽다가 보면 심심치 않게 예언가(豫言家)들의 예언 내용이 눈에 뜨이곤 한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국제정세에 대한 것들도 있고, 어느 특정한 나라의 정치인에 대한 장래의 운명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요즈음에 와서는 교회 이름으로 발행되는 간행물 등에서 세상 종말이나 예수 재림에 대한 예언 내용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 부흥회나 기도원 집회 등에서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여 성도 개개인의 장래 일이나 사업의 실패, 또는 성공은 물론 자녀들의 대학 합격 아니면 불합격 등을 미리 기도해서 알려주는 예언가들이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
성경은 구약이나 신약에서 예언에 대하여 수 백 회 언급을 하고 있다. 구약에는 사도들이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예언의 은사를 주어 예언하게 하신 일들이 있다.
(행21:8-14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 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수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이와 같은 예언에 대한 기사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많은 교사(목사 특히 부흥사)들에 의하여 예언의 은사가 강조되고, 이에 따라서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예언가들이 교회 내에 속출(續出)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가 혼란하고 무질서해지면 자칭 예언가들의 활동이 분주해 지듯이, 교회가 혼란하고 타락하면 사이비 예언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 교회는 전례 없는 혼란기를 맞고 있다.
교단의 분열은 물론, 신학의 혼란, 지도자들의 타락, 교회들의 사치 등은 성도들로 하여금 가치관의 상실과 함께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혼란기를 맞은 교회의 현실은 사이비 예언가들의 활동무대로 최적격(最適格)인 것이다.
많은 성도들은 결혼을 하거나 사업을 시작하거나 집을 사거나 심지어는 이사를 하는 일, 또는 자녀들의 대학 입학에 관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들을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목사나 부흥사 또는 권사 등에게 물어본다든가 자기 스스로가 기도를 해서 하나님께 응답을 듣고 처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경이 말하는 예언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 현대 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예언의 행위들은 참으로 성경적인 것들인가? 성경이 말하는 예언의 은사는 지금도 주어지고 있는가? 라는 문제 등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하여 근본적으로 “예언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Ⅱ. 예언이란 말의 뜻
예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용어에 대한 정확한 뜻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에는 예언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는데, 특히 구약에는 신약에서보다 더 많이 사용될 뿐만 아니라 그 내용 자체가 예언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구약에서는 예언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네부아’( )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선지자들이 하나님께서 미리 알게 해 주신 장래 일에 관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 말에서 유래된 동사는 ‘나바’( )라는 말인데 ‘예언하다’라는 뜻으로서 선지자의 행위를 표현하는 말이다.
신약에서는 예언이라는 말이 ‘프롭헤테이아’( )라고 하는데, 이 용어 역시 히브리어 ‘네부아’( )와 같은 의미로서 ‘장차에 이루어질 일들을 말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이 용어는 ‘프롭헤튜오’( )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명사인데 신약성경에서 여러 가지 경우에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신약성경 기자들이 구약의 선지자들의 글을 인용할 때, 또는 예수께서 무리들에게 장차 이루어질 일을 선포(宣布)하는 경우나 예수의 제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영감을 받아 장래 있을 일을 알려주는 경우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에게 주시는 은사들을 언급할 때 등이다.
결국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예언이라는 용어가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 용어에 관련된 내용들이 성경 전체에 허다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보아서 이 용어의 중요성을 엿볼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예언이라는 용어 개념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성경을 바르게 인식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뜻을 말하게 하신 예언의 말씀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언과 성경과의 사이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구약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불러서 예언하도록 하신 선지서
(렙1:4-10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 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도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리라)
(겔2:1-7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말씀하실 때에 그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열조가 내게 범죄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나니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팍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지어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즉 예언서들이 많이 있고 신약에도 요한계시록과 같은 예언서가 있다.
(계1:1-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비록 예언이라는 용어의 뜻을 ‘장차 되어질 일을 미리 선포하는 행위’라고 단순하게 설명이 될 수 있으나 이 용어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또는 신앙적 비중이 아주 크다는 것을 알게된다.
Ⅲ. 예언의 조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장차 되어질 일을 미리 선포하는 행위로서의 예언이 가능해지려면 앞서 갖추어져야 할 근본 조건들이 있다. 그 조건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예언이라는 것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예언의 선행조건(先行條件)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으나 그 근본적인 조건은 하나님의 작정과 계시이다. 즉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미리 작정하셔서 그 내용을 계시해 주셔야 예언이 가능해 진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작정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만사와 만물을 기쁘신 뜻대로 계획하신 섭리를 말한다. 하나님께로부터 창조된 모든 우주만물은 물론, 피조세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은 모두가 하나님의 창세 전 작정(계획)섭리에 따라서 이루어져 간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사14:26-27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엡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하나님의 창세 전 작정섭리를 기초로 할 뿐만 아니라 선행조건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작정섭리가 없으면 예언은 불가능한 것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일이든지 그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미리 정해져 있어야 예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리 정해지지도 않은 것을 예언, 즉 미리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예언은 반드시 작정(계획)을 기초로 하고 그 선행 조건으로 삼는 것이다.
모든 만사가 우연(偶然)히 이루어져 간다면 예언은 불가능하다. 우연히 되어져 가는 것을 어떻게 이루어져 갈 줄을 알아서 예언을 하겠는가? 우연을 기초로 하는 예언은 실효성(實效性) 없는 거짓에 불과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작정하신 내용을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아니하면 예언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든지 미리 계시해 주셔야 먼저 알게 되고, 먼저 알아야 예언을 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만사 만물을 창세 전에 작정하셨어도 하나님께서 아무에게도 계시해 주지 아니하시면 예언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신ㆍ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람을 선택해 부르셔서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을 미리 알게 해 주셨다.
(암3:7-8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렘1:11-12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구약시대에는 족장들이나 사사들, 그리고 왕들과 선지자 또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들이었다. 신약시대에는 세례요한, 예수, 사도들 또는 초대교회시대에 더러의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 이들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아 예언을 한 것이다.
결국, 예언의 선행조건은 하나님의 창세전의 작정하심과 하나님의 작정내용의 계시하심이다. 이와 같은 선행조건에 기초를 둔 예언이 곧 성경적인 올바른 예언인 것이다.
Ⅳ. 예언의 구분
일반적으로 예언은 그 성질상으로 보아 몇 가지로 구분이 가능하다.
기독교 이외에 토속종교(土俗宗敎) 또는 무속종교나 이방종교들에서도 예언행위가 자행(恣行)된다.
이같은 행위들의 예언들은 모두가 잡신(雜神)과의 교신(交信)에 의하여 점술행위나 통계학에 의한 한 해의 운수를 예측하는 행위, 또는 오랜 세월에 걸친 수도연마(修道鍊磨)를 통한 신통력에 의해 장래사에 대하여 예언하는 행위 등으로 나타난다.
본 란에서는 앞에서 말한 토속종교 또는 무속 내지 이방종교들에 대한 예언행위에 대하여는 언급을 피하기로 하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올바른 성경적인 예언에 대한 구분을 밝혀 보려고 한다.
성경적인 올바른 예언은 그 성질상으로 보아 직접적(直接的)인 예언과 간접적(間接的)인 예언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직접적인 예언은 예언하는 자가 예언의 내용을 하나님께로부터 음성이나 환상 또는 꿈과 같은 방법들로 직접 받아서 선포하는 예언을 말한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에 있어서 계시가 주어지는 시대에는 특히 족장들이나 선지자들 또는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아 예언을 한 경우가 많이 있다. 이와 같은 예언의 내용들은 대부분 성경으로 기록이 되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구약에 있어서 오경(율법서)은 모세가 대부분 하나님께 직접 받아 기록한 내용의 예언이며
(출3:1-5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눅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선지서들은 모두가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직접 받아서 예언한 내용들의 기록이다.
(사22:12-14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가라사대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1:17-19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두렵건대 내가 나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 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신약에 있어서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하나님께 직접 받아서 예언한 대표적인 직접계시라고 볼 수 있다.
(계22:6-9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 자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이 외에도 전체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사도들이나 초대교회 성도들이 직접 받아서 예언한 내용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고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의 예언들은 직접계시에 의한 예언으로 볼 수 있다.
(계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물론 사도들 가운데 이방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의 경우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신ㆍ구약성경 모두는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적으로 받아 예언한 내용의 기록이다.
(벧후1:20-21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간접적인 예언은 이미 완성된 직접적인 예언의 내용을 기초로 해서 행해지는 예언을 뜻한다.
즉 성경을 근거로 해서 행해지는 예언을 말하는데, 성경강론(聖經講論)과 같은 방법을 통하여 행해지는 것을 말한다. 성경은 예언의 내용이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을 강론하는 행위를 가리켜 간접적인 예언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타당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서, 즉 성경을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가르쳤다.
(신6:6-9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가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예수님 당시에도 율법학자들이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바로 그 당시의 선생들이었다.
(요3:9-11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비록 그들이 성경을 올바른 뜻대로 가르치지는 못했지만 대단히 세도있는 선생들로 인정을 받았다.
신약시대에는 사도들 이후, 사도들의 제자인 속사도(續使徒)들이나 교부(敎父)들은 예수님과 성령의 감동을 통해 직접 계시를 받아 예언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복음을 전승(傳承)시킨 자들이다. 이들은 모두가 간접적인 예언을 한 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성경의 예언을 풀어서 가르치는 복음전도자들의 행위도 곧 간접적인 예언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올바른 간접적인 예언행위는 어디까지나 신ㆍ구약성경의 예언대로 풀어 가르칠 경우에만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Ⅴ. 예언의 목적
이제는 예언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아보아야 할 차례이다. 혹자들은 예언이 장래에 되어질 일에 대한 인간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그 대책을 세우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생각은 무속종교나 이방종교들의 견해(見解)에 불과한 것이다.
기독교에 있어서 성경적인 예언의 올바른 목적은 먼저 하나님 자신의 계시완성(啓示完成)에 있고, 다음으로는 계시된 예언의 말씀, 즉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로 알고 경외케 하려는데 있다.
(신4:9-10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네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 속에서 떠날까 하노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
첫번째 예언의 목적으로서의 계시완성은 하나님께서 신.구약성경 66권을 완성시키심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족장들이나 사사들, 그리고 선지자, 왕, 제사장들의 직접적인 예언을 통하여 구약성경을 완성시키셨고,
신약시대에는 성자 되시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그리고 더러의 초대교회 성도들의 직적접인 예언을 통하여 신약성경을 완성시키신 것이다. 신ㆍ구약성경 66권은 하나님께서 성경 기자들의 직접적인 예언을 통하여 일점 일획도 더하거나 덜할 수 없을 만큼 완전하게 완성시키신 하나님 자신의 계시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스스로를 계시하시는 섭리의 방법으로 언약하시고 그 언약을 성취(成就)해 주시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언약이 백성들에게 주어질 때 예언적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과 예언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하나님의 언약은 약속이기 때문에 예언적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두번째 예언의 목적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경외케 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목적을 이루어가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직접적인 예언의 방법으로 하나님 자신의 계시가 완성되게 하신 후, 시대마다 지역마다 복음 전도자들을 세우셔서 완성된 성경 계시에 의거(依據)한 간접적인 예언, 즉 성경강론(일명 설교)을 하게 하셔서 택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로 알고 경외하도록 해 주시고 계시는 것이다.
성경 계시가 충족(充足)되게 완성된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교사(목사)들을 세워 언약(구약)과 성취(신약)의 내용으로 엮어진 성경을 잘 풀어 가르치는 간접적인 예언의 방법으로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여 장차 천국의 유업을 주실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게 하신다.
교회시대의 목사나 전도자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선포하는 간접적인 예언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 계시된 내용의 말씀만을 선포하는 자는 올바른 예언자이지만 성경에 계시되어 있지 아니한 내용을 사사(邪思)로이 선포하는 자들은 거짓 예언자인 것이다.
한 예를 들면, 예수님 재림하실 날자가 성경에 계시되어 있지 아니한데
(마24:34-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몇년, 몇월, 몇일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예언을 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거짓 예언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예언의 목적이 직접적인 예언은 성경 계시의 완성에 있고, 간접적인 예언은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게 하려는 데 있다.
Ⅵ. 예언의 시기
예언의 시기가 언제이며, 그 기간은 언제까지인가를 알아보는 것은 예언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커다란 보탬을 준다. 성경 교사들 중에는 예언이 지금도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없는 것인지에 대하여 확고한 견해를 가지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예수께서 신약교회에 주신 은사 중에 예언의 은사(恩賜)가 있다고 하여 철저하게 예언이 지금도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그리고 현재도 교회 안에는 하나님께 계시를 받아 예언을 한다고 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예언은 그 성격에 따라 예언의 시기가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아 예언하는 직접적인 예언의 시기는 성경 계시시대로 한정(限定)이 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아 시행하는 직접적인 예언은 성경 66권이 다 완성이 될 때까지로 그 시기가 한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성경 계시시대를 주전 약 1500년 모세시대로부터 시작해서 주후 100년경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묵시(默示)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때까지 약 1600년 기간을 말한다.
사도 요한은 신ㆍ구약성경 맨 마지막 부분에서 성경의 예언의 말씀을 더하거나 제하여 버릴 수 없음을 선언하였다.
(계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즉 직접적인 예언이 종결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하나님의 특별계시 방법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특별계시 방법에는 역사섭리 사건이나 이적 또는 환상, 꿈, 음성, 방언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예언도 그 방법 중의 하나인 것이다. 특별계시로서의 성경이 완성되었음으로 특별계시의 방법 중의 하나인 직접적인 예언이 종결(終結)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언급한 예언의 은사는 당연히 있어야 할 은사이다. 왜냐하면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게 서신을 보내는 시기가 신약계시시대의 초기에 속하는 주후 55년에서 57년경에 해당하기 때문에 신약계시시대로서 당연히 예언의 은사나 방언의 은사가 필요한 시기였다.
신약계시 초기에는 방언이나 예언을 통하여 복음을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할 수 밖에 없었다.
(고전13: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그러나 신약계시가 완성이 되어 온전한 계시가 다 이루어지면 부분적으로 알고 예언하던 방언이나 예언의 은사는 다 폐하게 된다고 예언하고 있다.
(고전13: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혹자들은 고린도전서 13장 10절에 “온전한 것”을 세상 종말 후 천국이 이루어질 것을 뜻한다고 해서 현재 신약교회시대에도 예언이 있고 방언도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본문의 문맥으로 보아서 “온전한 것”은 그 앞서 9절에서 부분적으로 하던 것에 대한 대구어(對句語)이다.
그것은 “온전한 것”과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라고 하는 문구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 ) 이라는 정관사가 둘 다 주격, 중성, 단수라는 점에서 더욱 분명하다.
그러므로 “온전한 것”은 부분적으로 예언하던 것이 아닌 온전한 예언으로 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예언의 완성 또는 계시의 완성을 뜻하는 것이 분명하다.
만일 현재 교회시대에도 직접적인 예언이 계속되고 있다면, 성경이 계속해서 기록되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직접적인 예언은 성경 계시의 종결과 함께 그 은사 역시 폐지된 것이다.
이미 완성된 계시인 성경에 근거해서 행해지는 간접적인 예언은 교회시대인 오늘에도 계속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목사나 전도자가 성경을 풀어 가르치는 예언적 행위(설교)는 지금도 있다는 말이다.
베드로 사도는 두번째 보내는 서신에서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고 하면서 성경에 있는 예언을 언급하였다.
(벧후1:19-21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닌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이것은 베드로 사도가 여러 가지 교훈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베드로 자신이 예수님 생전에 듣고 본 바를 성도들에게 언급한 후에 이것보다 더 확실한 예언, 즉 성경이 있다고 말해주면서 성경의 예언을 사사로이 풀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하여 기록하게 해 주신 예언의 말씀인 성경은 희미한 것이 아니고 확실하고 완전한 계시의 말씀이다.
성경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오류(誤謬)가 있거나 모자람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그리고 성령께서 교사들에게 계시의 영을 주어 성경을 깨닫게 하여 올바른 간접적인 예언을 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결국 예언의 시기는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아 시행하는 직접적인 예언은 성경 계시의 완성과 함께 이미 끝이 나버렸고,
정확무오한 성경 계시에 의존하여 예언하는 간접적인 예언은 교회시대인 오늘에도 성경 교사들에 의하여 성경강론(설교)의 방법으로 계속 진행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Ⅶ. 맺는 말
지금까지 ‘예언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하여 몇 가지 내용들을 하나하나 언급하였다. 이제는 최종적인 마무리를 지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만사만물에 대한 작정하심과 계시하심을 선행조건으로 하는 성경적인 예언은 직접적인 예언과 간접적인 예언으로 분류가 가능하며, 직접적인 예언은 성경 계시를 완성하기 위한 은사로서 계시시대에만 국한된 은사이며, 간접적인 예언은 이미 완성된 성경 계시에 의해서만 하나님을 알고 경외케 하려는 은사로서 교회시대에도 계속해서 교사들에게 주어진 은사이다.
계시시대가 이미 지나간 오늘의 교회 시대에 성경과는 무관한 예언을 하는 행위는 무속신앙에 의한 잡신과의 교신에서 나타나는 점술 행위나 동양철학적 통계학에 의한 예측(豫測)에 불과한 것들이다.
특히 교회 안에서 성경을 빙자해서 마치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적인 계시를 받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사생활에 관한 것이나 국가와 세계의 운명, 또는 천재지변 등을 예언하는 행위 역시도 비성경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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