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사전

[스크랩] 목사(牧師)란 무엇인가?

하나님아들 2014. 10. 2. 16:42

목사(牧師)란 무엇인가?



  Ⅰ. 이끄는 말
  Ⅱ. 목사직의 명칭
  Ⅲ. 목사직의 기원
  Ⅳ. 목사직의 소명
  Ⅴ. 목사직의 성격
  Ⅸ. 목사직의 임무
  Ⅶ. 맺는 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 엡 4:11-12 )



Ⅰ.  이끄는 말



  기독교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직임(職任)이 있는데  (고전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직임을 하나 꼽는다면 목사 (牧師 : minister)라는 직임이다.  그것은 목사의 직임이 행정적(行政的)으로 교회의 대표권(代表權)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교인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서의 책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라는 직임은 교회에 있어서 아주 소중한 직임으로서 제반 문제들에 관하여 당연히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당위성(當爲性)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주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현대 교회는 성경적인 순수한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으리만큼 변질이 되거나 변모가 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진리의 토대 위에 세워진 교회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교회에서 지켜져야 할 성경 진리가 변질이 되어가고, 도리어 교회로부터 외면 당 하고 있는 실정에 놓여 있는가 하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아니하는 교회 아닌 교회가 당당히 교회로서의 행세를 하고 있다.

   (딤후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이 같은 교회의 현실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목사직임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중한 목사의 직임이 너무도 왜곡(歪曲)되어 있다는 것이 현대 교회의 문제가 되고 있다.
목사의 직임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목사의 직임을 받아 교회를 지도하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목사의 직임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살펴보면, 어떤 자들은 구약시대 선지자들처럼 하나님께 직접 음성이나 계시를 받아 장래일이나 신적 비밀을 예언하는 예언가(豫言家)로 알고 있고,

어떤 자들은 구약시대 제사장들처럼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을 받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성도들을 대신해서 드려주는 제사장(祭司長)으로 알고 있고,

어떤 자들은 구약시대의 왕들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적으로 신권(神權)을 위임 받아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최고 권력자(權力者)로 알고 있고,

어떤 자들은 초대교회 당시의 사도들처럼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온갖 표적을 행하며 복과 저주를 마음대로 빌어 줄 수 있는 신통력(新通力)을 가진 능력자(能力者)로 알고 있다.

이와 같이 목사의 직임에 대해 대부분의 성도들은 물론, 많은 지도자들까지도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건전한 지도자를 통하여 건전한 교회를 세워 가신다.  그러므로 건전한 지도자가 없는 건전한 교회는 기대될 수 없다.

건전한 지도자는 자기 직임에 충실한 자이다.  목사의 직임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사의 직임이 갖는 임무와 성격(性格)등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목사의 직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절대로 건전한 목사직임의 수행(遂行)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초가 흔들려서 쓰러져가는 현대 교회를 바로 잡고 성경 진리 위에 견고하게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직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행(先行)되어야 한다.

Ⅱ. 목사직의 명칭

  목사의 직임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서 먼저 목사라는 직임의 명칭에 대한 뜻이 무엇인지 어원(語原)을 통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목사라는 말이 구약성경에서는 히브리어로 ‘로이(    )’라고 하는 단어인데, 그 뜻은 ‘목자(牧者)라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서 구약성경 예레미야 선지서 에서만 단 한 번 단수형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복수형으로는 일곱 번 사용되고 있다.  

그 뜻은 ‘양떼를 돌보다’ 또는 ‘친하게 지내다’라는 의미로 사용이 된 듯하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가 한 번 사용한 ‘목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는

  “ (예레미야  17장 16절    나는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를 좇았사오며 재앙의 날도 내가 원치 아니하였음을 주께서 아시는바라 내 입술에서 나온 것이 주의 목전에 있나이다 )” 에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은 여호와께서 유다의 배신 죄에 대하여 징계하실 것을 경고하실 때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권능을 찬양하고 원수를 보수(報讐)하여 주실것을 구하면서 “나는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를 좇았사오며 재앙의 날도 내가 원치 아니하였음을 주께서 아시는 바라”고 한 내용에 나타나 있다.

이 문장 내용의 흐름으로 보아서 ‘목자’라는 말은 선지자가 가지고 있는 임무의 성격을 표현하는 말로서 신약의 목사직임의 성격과는 차이가 있는 용어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구약 가운데 특히 선지서에서 목자라는 명칭은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들을 가리켜 사용하는 말로서 장차 오실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예표(豫表)하는 명칭인 것이다.

(요5:11-15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목사라는 말이 신약성경에서는 헬라어로 ‘포이멘(   )’이다.

그 뜻 역시 ‘목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신약성경에서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으나 바울의 서신인 에베소서에서 단 한 번 복수형으로 언급이 되고 있는데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선물을 언급 하면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기록한 내용에서 나타나고 있다.

(엡  4:11-12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 외에도 다른 시제로 이 단어의 어근이 사용된 두 경우가 있다.  하나는 ‘포이마이네( )’라는 단어로서 그 뜻은 양 무리를 ‘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요한복음 21장 16절에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신 내용에서 언급되었다.

(요 21: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 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다른 하나는 ‘포이마나테’라는 단어인데, 그 뜻 역시 ‘양 무리를 치라’는 뜻으로서 베드로전서 5장 2절에서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말고.....”라고 권하는 내용에서 언급된 것이다.


(벧전 5:2-3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고 목사직의 명칭은 ‘포이멘’이라는 단어 외에도 그 의미를 같이 하는 단어들이 다양하게 많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들 중에 하나가 ‘에피스코포스(  )’라는 단어로서

(행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감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또 하나는 ‘프레스부테로소(   )’라는 단어로서

(벧전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장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명칭들의 용어는 서로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 의미는 목사라는 명칭과 동일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단어들의 뜻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면 ‘포이멘(목자)’이라는 말은 주의 양 무리인 성도들을 신령한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 기르는 자’라는 뜻으로 설명이 가능해진다.

Ⅲ. 목사직의 기원
  
  목사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그 역사적인 기원(起源)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역사적인 기원을 잘못 아는 결과로 말미암아 목사직에 대한 오해는 너무도 클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목사직임의 기원을 구약시대로 알고 있는 자들이 있다.
그것은 구약시대에 있었던 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와 같은 직임들을 마치 목사직임의 기원으로 착각(錯覺 )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가하면 목사직임의 기원을 신약시대로 알고 있는 자들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使徒)들의 직임을 목사직임의 기원으로 오해하며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이 대다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로마 카톨릭의 경우는 베드로 사도를 1대 교황(敎皇)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신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 결과로 교황은 마치 신적(新的)인 권세를 부여받은 절대 권세자로 착각하는 과오를 범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목사직임의 기원에  대한 충분한 요인(要因)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목사직임의 역사적 기원은 구약시대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있었던 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 직임들도 목사직임의 기원이 절대로 아닌 것이다.

그 역사적 기원은 어디까지나 신약시대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대에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직임이 목사직임의 기원은 물론 아니다.  

구약시대에 있었던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 직임들은 그 시대에 필요했던 직임들이고, 신약시대 초기에 있었던 사도의 직임 역시 그 시기에만 단회적(單回的)으로 있었던 직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나 신약시대 초기에 있었던 직임들은 신약교회 초기 이후의 교회시대에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직임들임은 물론, 현재도 있을 수 없는 직임들이다.

  사도 바울은 목사직임의 기원에 대하여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너무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가 기록한 에베소서 4장 7절에서부터 11절 사이에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라고 하는 시편68편 18절의 내용을 인용하여 목사의 직임이 그리스도께
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에 선물로 주고 가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엡4:7-12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목사의 직임이 신약시대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신약시대 그리스도께서 승천(昇天)하실 때에 목사의 직임을 주신 것이 곧 그 기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직임이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의 직임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며, 신약시대에도 사도직임과는 별개의 직임으로 주어진 것임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사도들은 오순절에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을 받고 복음을 증거한 결과로 예루살렘을 비롯해서 이방 각처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성령께서는 세워진 교회를 자라게 하시려고 사도는 물론 선지자와 감독(목사)과 교사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을 세우신 사실을 찾아 볼 수 있다.

Ⅳ. 목사직의 소명

  이제는 목사직임에 대한 소명(召命)은 어떻게 받는 것인가? 에 대한 문제를 알아보아야 할 차례이다.
이 내용 역시 목사직임에 대하여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반드시 논의를 거치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목사직임의 소명을 부여할 때에 장로교나 감리교 및 성결교들의 경우에 노회나 지방 회에서 목사 후보생(候補生)을 선발하여 신학교육을 받도록 해서 시험을 거쳐 목사로 안수(按手)를 주여 세우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은 목사의 직임에 대한 소명을 주는 권한이 각 교단의 노회나 지방회의 고유(固有)의 권한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일의 경우에 목사직임의 소명을 주는 고유 권한이 노회나 지방 회에 있다고 한다면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황제도(敎皇制度)의 원리와 하등 다름없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경우에는 교황 직임의 권위가 선임자로부터 이어진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은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으로부터 천국의 모든 권한을 완전히 위임 받은 1대 교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1대 교황인 베드로는 죽으면서 2대 교황에게 역시 천국의 모든 권한을 위임(委任)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 교회의 교황은 예수님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고유의 권한을 행사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 각 교단(敎團)의 노회나 지방회는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권한을 완전히 위임을 받아 고유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고유 권한을 행사하시는 데 그의 몸 된 지체들을 사용하시는 것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로마 카톨릭교회의 머리는 교황인 반면에 개신교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라는 말이다.
  
목사직임에 대한 소명은 어디까지나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인데, 이러한 사역을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역사로 노회나 지방회를 통하여 나타내시는 것 뿐이다.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 같은 사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목사직임에 대한 소명을 직접적인 소명과 간접적인 소명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것이 편리하다.  

직접적인 소명은 목사직임의 소명을 그리스도께서 직접적으로 주신다는 소명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고, 간접적인 소명은 목사직임의 소명을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역사로 노회나 지방회를 통하여 나타내시는 소명의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목사직임에 대한 소명은 개신교의 각 교단 노회나 지방회의 고유 권한이 아니고, 로마 카톨릭교회의 사제단(司祭團)의 고유 권한도 아니며, 어디까지나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 권한인 것이다.

  원리(原理, principle)가 없는 방법은 하나의 형식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목사직임의 소명을 주시지도 아니하셨는데 노회나 지방회가 어떠한 자를 목사로 안수를 해서 소명을 주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형식에 불과한 것이며 어디까지나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교회의 정치적인 ‘쇼(show)'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끄러운 불행한 일들은 불완전한 지상 교회 안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있는 일이며, 또 있었던 일이다.

중세시대에 교회에서 성직(聖職)을 돈으로 팔고 샀던 과거의 역사적인 사실은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Ⅴ. 목사직의 성격

  목사직임에 대한 오해를 없애버리기 위해서는, 그 직임에 대한 성격을 올바로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목사직임에 대한 대부분의 오해가 그 성격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원인이 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직임에 대한 오해의 유형(類型)으로는 목사직임이 구약 시대의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 등과 비슷한 직임으로 알고 있고, 신약 시대의  
사도들과 비슷한 직임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목사직임의 성격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 직임들의 주된 임무와 그 성격을 알아보기로 한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 하게 되면 백성들을 대신하여 성전에서 하나님께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 속죄(贖罪)제사를 드리는 일을 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임무였다.

그들은 모두가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세상에 오셔서 택한 백성들의 죄를 속하여 주시기 위해 자기의 몸을 드려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模型)과 그림자였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후로는 모형과 그림자적인 구약의
제사장 직임은 완전히 폐지된 것이다. (마 26장 - 28장 참조)


  구약 시대의 왕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와의 언약을 따라 유다 지파 자손 중에서 세우신 자들로서 백성을 대적으로부터 보호하고 다스리는 일을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택한 백성들을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여 다스려주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였다.

따라서 만왕의 왕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로는 그림자와 모형적인 왕직 역시 완전히 폐지(廢止)된 직임인 것이다.

(마 16:13-25: 참조바람)

(막 15:1-3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로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소하는지라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범하여 범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세워 이상(異象)을 보여주고 말씀을 들려주어서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고 진노를 예언하며 위로해 주는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참 선지자로 오셔서 영생의 말씀을 전해주신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였다.

따라서 참 선지자이신 그리스도가 오신 후로는 그림자나 모형적인 구약의 선지자이신 그리스도가 오신 후로는 그림자나 모형적인 구약의 선지자는 완전히 폐지된 직임인 것이다.
(마 5:16:12)
(눅 7: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 보셨다 하더라.)

  신약  시대의 사도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오셔서 직접 불러 주시고, 보여 주시고, 들려주시고, 가르쳐 주신 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사도로 세우셔서 오순절에 성령의 능력을 입혀 표적을 행하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게 하시고 교회를 세우게 하시며 신약 계시를 기록하게 하신 직임이다.  

그러므로 이 직임은 초대교회 시대에만 국한된 직임으로서, 그 후에는 다시 세워지지 않는 직임인 것이다.

  신약 교회의 목사직임은 구약의 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 직임은 물론, 신약 시대의 사도직임과도 그 성격을 아주 달리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목사직임은 다른 직임과 관련이 없이,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유익하게 하시려고 은사와 직임을 각 사람에게 직접 나누어 주신 것 가운데 하나의 직임인 것이다.

(고전 12:4-11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을 통역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을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Ⅵ. 목사직의 임무

  목사직임의 임무(任務)는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처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이 아니고, 왕들처럼 성도들을 다스리는 일도 아니고, 선지자들처럼 묵시를 받아 예언을 하는 일도 아니고, 신약시대의 사도들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적인 표적을 행하며 복음을 증거 하거나 신약 계시를 기록하는 일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축복권과 저주권을 받아 가지고 성도들에게 복을 빌어 주어서 복을 받아 누리게 하거나 저주를 빌어 주어서 저주 받아 고통을 받게 하는 신통력(新通力)을 발휘하는 일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목사의 직임이 수행해야 하는 임무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질문은 “목사란 무엇인가?” 라는 본 논고(論考)의 주제에 대한 결론적인 해답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질문이다.

  목사직임의 교리적인 임무는 말씀을 전파하는 것과 성례를 집행하는 것과 권징을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세 가지의 임무가 차등이 없이 다 동등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임무들 중에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궁극적인 임무로 볼 수 있고, 그 나머지 성례를 집행하는 것은 말씀 전파의 방법이고, 권징을 행하는 것은 말씀 전파의 한 결과로써 이루어지는 지엽적인 임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목사직임자가 세례와 성찬을 집행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고,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전 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권징을 행하는 것은 어떤 정치적인 권세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파되는 말씀의 능력에 의해 행해지는 결과인 것이다.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적인 신약 교회의 목사직임의 임무는 궁극적(窮極的)인 임무와 지엽적(枝葉的)인 임무로 나누어서 정리하는 것이 이해하기에 편리하다.

궁극적인 임무는 목적(目的)이 담긴 임무라고 할 수 있는데,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그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목사에게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먼저 깨eke게 하셔서 지체된 교회들을 진리로 가르쳐 자라게 하여 승리케 하시는 일에 도구로 쓰임 받는 일이다.

(딤후 4:1-2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즉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지엽적인 임무는 방법(方法)이 담긴 임무라 할 수 있는데,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으나 간단하게 요약해서 정리한 다면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세우신 교회에서 세례를 베풀고 성찬을 행하며,
성도가 서로 교통하게 하며,
선한 일을 행하게 하며,
말씀으로 책망하고 격려하며 위로하는 일에 쓰임 받는 일이다.

이 같은 지엽적인 임무들은 앞에서 말한 바 있는 궁극적인 임무 수행의 방법인 경우도 있고,
또는 임무 수행의 결과인 경우도 있다.

(엡3:16-21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다시 말하자면,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는 궁극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구체적인 방법이나 결과들을 가리켜 지엽적인 임무라고 한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신약교회 목사직임의 궁극적인 임무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아 더하거나 덜하지 못하는 정확무오(正確無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66권을 정확하게 깨달아 택한 백성들에게 잘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성도들을 가르쳐야 하는 디모데에게 성경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딤후3:14-15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Ⅶ. 맺는 말

  지금까지 성경적인 목사의 직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알아보았다.

결국 목사의 직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하나님을 알고 그의 뜻을 깨닫게 하여 경외케 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쓰임 받는 일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된 궁극적인 임무는 등한이 여긴 채 지엽적(枝葉的)인 수단이나 아니면 본연의 임무를 떠난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직임 자들이 많이 있다는데 문제의 초점이 모아지는 것이다.

소위 교회 강단에서 목사에 의해 전해지는 설교내용은 성경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인간의 사상이나 도덕 또는 철학적 이론들로 그럴 듯하게 채원지고, 그런가 하면 교회나 기도원 등지에서는 소위 부흥회나 영성훈련(靈性訓練)이라는 그럴 듯한 명목 아래 심령술(心靈術)에 의한 잡다한 행위들이 목사나 부흥사들에 의해 거룩한 성령의 역사로 가장(假裝)이 되어 자행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성경적인 건전한 교회는 성경 진리만을 순수하게 가르치는 목사직임의 건전한 수행을 통해서만 세워져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수한 목사직의 수행이 없이는 순수한 성경적인 교회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교회의 개혁은 목사직임의 올바른 인식으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한다.

출처 : 장안중앙교회 동경모임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