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맥추감사주일설교/ 감사의 제사를 드리자(시편50:7-23)

하나님아들 2012. 9. 2. 01:05

감사의 제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시편50:7-23

 

기독교 방송 드라마에 맹인 목사인 윤인수 목사의 간증 드라마가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중병으로 앓아누워 있는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어린 소년시절에 그는 길거리에 나가 신문을 팔고 구두닦이를 시작했습니다.

친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년으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열심히 일을 해서 번 돈을 가지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그 돈을 내놓았습니다.

돈을 받아 든 어머니는 그의 등을 두들겨주며 십일조를 먼저 떼자고 하자 그는 버럭 화를 냈습니다.

십일조는 무슨 놈의 십일조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단 말입니까?

나의 눈은 멀게 했고, 엄마는 병들게 했고, 공산당에게 쫓겨 피난민 신세가 되게 했고, 재산도 다 빼앗기게 한 그런 하나님께 무슨 놈의 십일조를 내라는 것입니까?” 하며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병든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손을 꼬옥 쥔 다음 인수야, 고향 잃어버린 것도 한스럽고 집 잃어버린 것도 원통하고 건강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고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뭐가 남겠느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잃어버려도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하나님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소망을 잃는 것입니다.

천국을 잃는 것이고 생명을 잃는 것이고, 구원을 잃는 것이고, 미래를 잃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사를 잃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습니다.

소망을 얻고 구원을 얻고 생명을 얻고 미래를 얻고 천국을 얻고 무엇보다도 감사의 마음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얻으므로 감사의 마음을 얻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헬라의 법학자 라이피콥스는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을 벌하는 법을 따로 세우지 않는 까닭은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벌하시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세상 법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진노하시고 벌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치욕적인 노예 살이 에서 구원해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모세를 원망하며 "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이려고 끌고 나왔다."고 할 때 하나님은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들에게 불 뱀을 보내서 많은 사람이 죽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진노하셨고 벌을 내리셨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자를 하나님은 가장 싫어하십니다.

감사가 빠진 예배를 하나님은 지겨워하십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입술을 하나님은 축복하지 않습니다.

열 명이 다 구원받지 않았느냐 그런데 9명은 어디 있느냐? 하면서 안타깝게 여기십니다.

 

그러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쏟아져 내립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의 삶이 풍성해 집니다.

몬테피오리 가문에서 가훈을 정하는데 ‘THINK AND THANK’-‘생각하라 그리고 감사하라로 정했다고 합니다.

이 가훈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늘 생각하고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했을 때 그 가문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자자손손 수많은 교수와 선교사들과 박사들과 신학자들이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보면,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하는 말씀이 나오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운데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많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와 같은 이름으로 짐승을 잡아서 때로는 곡식을 가지고 아침저녁으로 때를 따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책망하고 계십니다.

왜 책망을 하였습니까?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지만 그 제사에 감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드리지 못했다는 거예요.

감사함으로 드리지 못하는 예배를 하나님은 책망하시면서 "감사로 나에게 제사를 드려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드려지는 이 예배가 감사의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성도들이 감사로 드리므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맥추감사주일로 지키는 우리들의 예배가 정말 감사의 예배가 되어 하나님께 상달하는 예배가 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우리는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1.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감사의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훌륭한 왕이었고 축복도 많이 받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아서 후대에 큰 불행을 안겨준 왕입니다.

이사야 37장에 보면 앗수르 군대가 포위하여 꼼짝 못하고 망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여 앗수르 군대 185천명을 시체로 만들게 하셨고, 38장에 보면 죽을병에 걸려서 선지자 이사야까지 집을 정리하고 죽을 준비나 하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그는 통곡하며 부르짖고 기도하여 병 고침 받고 15년이나 생명의 연장을 받았습니다.

이런 큰 기적을 두 번이나 체험했는데도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감사드렸다는 이야기를 읽을 수 없습니다.

도리어 이사야 39장에 보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나았다 함을 듣고 바벨론 왕이 많은 신하들을 보내어 예물을 드리며 병 나은 것을 축하했습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침 받고 또 앗수르 군대도 물리쳤다고 간증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텐데 우쭐해서 자기 자랑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들에게 궁중 보물과 은, , 보배와 무기고에 있는 것과 보물고에 있는 것까지 몽땅 다 보여 주었습니다.

이때에 히스기야를 괘씸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날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남은 것이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훗날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고 축복 받은 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은혜를 받고 축복 받았을 때가 정말 위험한 때입니다.

이때에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의 병이 들고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말씀하시고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찢으신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찢어지고 갈라지면 불안해지고 정신 분열증이 생깁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감사할 줄 모르고 자기만 잘났다고 하면 가정이 찢어지고 이혼하게 됩니다.

감사가 넘치는 가정은 불행이 찾아 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치 않을 때에 교만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게 됩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은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유명한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드리는 감사의 제사를 통하여서도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들을 보고 있습니다.

산 위에 세워진 동네같이 잘 드러나는 우리들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어떻게 하는지 우리를 주시합니다.

욥과 같이 역경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감사의 제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성도들은 감사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2.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자는 기도의 응답을 받기 때문입니다.

 

본문 14-15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하셨고,

23절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 성도들이 기도의 응답을 받는 비결을 몇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는데, 첫째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가 서원한 것을 갚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꼭 지키는 것입니다.

셋째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종합해 보면,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감사하라는 말이 됩니다. 환난을 당할 때 부르짖는 기도는 잘 할 수 있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환난을 당하면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때 많은 사람들은 감사를 하지 못합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면서 한숨을 쉬면서 부르짖을망정 감사하면서 기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때에라도 감사하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해 주시고 응답해 주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월남 전투 때 닥토 고지에서 200명의 전사자를 나란히 누여 놓고 군목이 추수 감사예배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200명의 전사자를 눕혀놓고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을 본 사람들은 도대체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추수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 전사한 200명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도 없고 죽음도 없는 먼 미래를 내다보며 하나님 앞에 미리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에는 에프터 감사가 있고 비포어 감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우리가 서비스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천박한 감사의 생활로 오늘날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렇다보니 무엇 무엇 때문에 감사했고 무엇 무엇이 없으면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비포어 감사도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함께 해 주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확신하면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우리를 가장 선하고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면서 어떠한 상황 중에서도 특별히 역경 중에서도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환난 중에 감사를 드릴 때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응답해주시고 욥과 같은 축복을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6-7)할렐루야!

감사와 찬양을 통하여 기도의 문이 열리고 형통의 역사가 나타나는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배신자가 되고 맙니다.

죄 사함 받고 구원받는 것이 너무 감사하여 귀한 나드 향유 옥합을 값을 따지지 않고 깨뜨려 드린 마리아의 행위를 보고 "아까운 것을 허비한다."고 화를 내며 비난하던 가룟 유다는 결국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먹는 배은망덕한 자가되어 그 돈을 써보지도 못한 채 목 메달아 자살하여 곤두박질하면서 창자가 터져 나와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왕의 아들 압살놈은 아버지의 가장 큰사랑을 받았으면서도 이에 감사할 줄 모르다가 결국 아버지의 왕위를 찬탈하려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버지의 후궁을 백주에 겁탈하는 패륜적인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결국 잘생긴 머리털이 나무에 걸려 죽었습니다.

감사가 모든 도덕과 윤리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좋은 자식이 되고, 좋은 제자가 되고, 좋은 회사원이 되고, 좋은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감사의 사람 욥이 위대한 것은 그가 당한 환난이 열 번, 백 번, 하나님을 욕하고 원망하고 불평할 만한데, 끝까지 그 입으로 범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을 잘 섬기며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던 욥을 시기하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 욥을 참소하면서 그에게 고통을 주면 분명히 하나님을 욕하고 불평할 것이라고 했지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탄이 하루아침에 그 많던 재산을 다 쓸어가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10남매가 잔치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 할 때, 대풍이 불어와 집이 무너지며 다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쯤 되면 "하나님이 계시면 내가 이런 참변을 당할 수가 있겠느냐" 하면서 하나님을 욕하고, 불평하고, 원망할 만한데 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 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 하면서 욥이 이 모든 일에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 했습니다.

온몸에 악창이 나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는데 그의 아내가 사탄에게 격동되어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지만 욥은 여전히 불평하거나 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탄은 항복하고 물러났고 욥은 그전 소유물보다 갑절이나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탄 마귀는 불평하고 원망하게 만들지만, 성령은 역경 중에도 감사하고 찬송하게 만듭니다. 여러분들은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좋은 환경에서뿐만 아니라 욥과 같은 역경 속에서도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역경 속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자가 진정한 신앙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자입니다.

쇼펜하워는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는 감사할 줄 모르고 없는 것만 가지고 불평한다.

하나님의 축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사라진다.

종은 울려지기까지 종이 아니며 노래는 불려 지기까지 노래가 아니며 축복은 감사하기까지 축복이 아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노래는 불려 지기까지 노래가 아닌 것처럼 우리가 받은바 축복은 감사하기까지는 감사가 아닙니다.

예비감사입니다.

감사해야 그 축복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환경이 좋아진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옛날보다 환경은 너무 좋아졌지만 불쾌지수 불만지수 불안지수는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가장 어렵게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무엇을 많이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사느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은총의 꽃이 피어납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행복의 천사가 나라듭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행복이 쉬어갑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행복이 보장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감사하는 마음의 기도를 하나님은 응답해 주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barnaba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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