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스크랩] 종 말 론

하나님아들 2014. 9. 20. 23:25
 

종 말 론



  종말론은 모든 만물의 최종적 완성에 관한 성서의 교훈을 가리키는데 사용하는 용어이다. 특별히 인간과 세상의  마지막을 논하는 이론, 곧 개인들의 죽은 후의 일, 현재의 조직과 제도가 끝난 후의 인간의 역사에 대한 것들이다. 그리하여 종말론에는 이 세대가 끝난 후의 일, 곧 심판날, 주의재림, 부활, 천년왕국, 영원한 세계의 상태 등이 포함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의 현실성은 모든것이 끝이라기 보다는 시작이라는 의미가 더욱 강력하다. 다시말해 그리스도인은 죽음으로 모든것이 끝난다고 믿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에 대한 승리이며 또한 영생의 소망을 안겨 준 사건이다. 그래서 종말론에 관한 기독교의 교리가 말하는 바는 바로 이러한 소망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종말은 인간 세상의 끝이라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종말론에 대해서는 보편적으로 세가지의 주요한 입장들이 있다. 그리고 이 입장들은 하나님의 왕국 도래에 관해 서로 다른 전망을 갖고 있다. 즉 왕국은 1)현재적,2)미래적,3)현재-미래적이라는 견해들이다. 보통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세번째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 다시말해 우리는 “이미”(already)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된 왕국의 현재적 상태와 “아직”(not yet)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수립될 왕국이 형성된 형태사이의 구별을 짓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말론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포괄하는 실체라는 입장을 원칙으로 삼으면서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도록 하자.



        Ⅰ. 시작된 종말론


  왕국의 현재적 성취와 구속받은 공동체에 의해 향유되고 있는 축복을 다루자는 것이다. 다시말해 종말은 예수님의 오심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관습적으로 종말론이란 개인과 이 세상에 관해서 장차 일어날 사건들에 관한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성경적 종말론에는 신자의 현재적 상태와 아울러 하나님의 왕국의 현재적 면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1.신‧구약에 나타난 종말론

  성경의 종말론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종말을 성경계시의 연관성있는 한 부분으로 바라다 보아야 한다.종말론이란 성경중 어느 한 부분이나 구약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다니엘서,요한계시록 등)

오히려 종말론이란 성경전체의 멧세지를 일관하여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몰트만은 “기독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종말론이며,소망이며,앞을 바라다 보며,앞을 향해 움직인다.그러므로 현재를 혁신하고 변혁하고 있는 것이다.종말론은 단순히 기독교의 한 요소가 아니다.------오히려 모든 기독교 선포의 특징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존재의 특성이고 전체교회를 특징 지우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1)구약에 나타난 종말론

  구약의 신자들의 신앙은 철저하게 종말론적이다.그들은 가까운 장래에 혹은 머나먼 미래에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실 것을 기대하고 바라다 보았다.구약에 나타난 종말론의 흐름은 이스라엘 구원 역사와 우주적 종말에 대한 예고의 특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종말의 형태적 표현은 개인적 종말론과 민족(국가)적 종말론간으로 구별되어 나타나고 있다.더불어 구약의 종말론 사상은 구속사적 종말의 예고이며 그 모형이다.

구속자가 나와서 하나님 나라의 핵심인 교회를 역사속에서 형성하여 하나님께 바친다는 내용이다.뱀의 머리를 파괴한다는 예언에서 시작하여 새하늘과 새땅의 도래를 전적으로 포괄하고 있는 것이 구약 종말론의 내용이다.


대표적인 구약의 종말론의 내용은 세가지로 설명되어 질 수 있다.


A.하나님의 백성의 종말론

a.주의 날

  종말적 상황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구약성서가 가장많이 사용하는 특징적 표현은 “주의 날”이라고 할 수 있다.날이라는 용어는 아랍어의 경우 전쟁때에 대한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히브리어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미디안의 날”(사9:4)이란 표현을 볼 수 있다.일반적인 의미에서 “주의 날”은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원수들의 손아귀에서 건져 내고 그의 백성의 삶에 압박을 가하는 불행과 고난을 감하기 위해서 그들을 위하여 개입하시는 때를 가리킨다.

  주의 날에는 여호와께 신실하게 충성한 남은자들이 구원을 받게된다.(사6:13,암9:9) 주의 날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시며 그 날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욜2:28-32)

  예언자들이 명백히 밝히고 있는 바와같이 주의 날은 단지 구원받는 때만이 아니다.

여호와께서는 의로운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지만 반면에 악인에게는 심판으로 보응하시기 때문이다.(암5:18-20*암4:12,사1:25,26,호2:16-)이렇게 여호와의 날은 주로 구원이나 심판을 베풀기 위해 인류에게 임하시는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지만 동시에 이 날은 자연 자체의 질서가 큰 격동으로 붕괴되는 날이 될 것이다.

  예언자들의 예언에서 우리는 이러한 우울의 붕괴와 소멸의 장면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사2:12-,13-14장,호10:8,욜2,3장,암5:18,습1장) 그러면서도 낙원같은 새로운 질서를 보여주는 예언들이 언급된다.

b.메시야 소망

  메시야 소망은 구약의 핵심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신약의 종말론에서 예수님이 차지하는 중요성만큼 구약의 종말론에서 메시야란 인물이 그렇게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구약의 경건한 자들이 소망한 메시야는 하나님이었다.(시3:8) 메시야는 그의 신적 속성 때문에 구속자 혹은 구주로 불릴 수 있었다. “메시야”는“기름부음받은”을 의미한다. 구약성서에서 이 단어는 제사장에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특별히 왕에게 적용되고 있다.

c.이스라엘의 회복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이 본토로 회복하는 소망을 해석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이 소망은 구약 예언에 있어서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이다.



B.개인의 종말론

  구약성서 종말론의 중심적 주제는 하나님의 도래와 열국에 대한 그의 심판과 의의 새 나라를 세우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은 인류전체에 관련된 주제들이다. 더불어 개인의 죽음의 문제에 대한 구약적 이해는 스올(sheol)개념에 연겨되어 있다.

  이 단어 스올의 어원을 밝히는 일은 매우 어렵다. 손 ‘바닥’(hollow)이나  땅의 “우묵한”곳을 뜻하는 단어와 어원이 같은 듯하다.

  스올은 지하의 장소 혹은 구덩이이며,죽은자는 아주 어렴풋하고 연약한 상태로 존속하였다. 이 상태는 단지 자신의 삶(생명)의 연약한 반영일 뿐이다. 쉽게말해 히브리인들은 생명의 떠남이 끝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부활의 확고한 믿음의 표현이 구약에 나타나 있는 개인의 종말적 관념이라는 것이다.


 2)신약에 나타난 종말론

  신약의 종말론은 시발의 특징을 지닌 종말론이다.안토니 후크마는 “시작된 종말론”이란 말을 쓰고 있다.시발의 성격은 원상태의 모형이 아닌 사실로 시발했다는 점이다.시발은 말 그대로 실재의 출현의 첫단계이기 때문에 그것은 더 전진해야 할 목표를 지닌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신약의 종말론은 “이미”와 “아직”의 긴장 관계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신약의 종말론이 시발된 종말이라는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시발적 양태이며 완성지향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가.시발적 양태는 종말론의 내용이 상징이나 비유나 모형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실재 그 자체로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미와 아직”의 긴장관계 가운데 “이미”부분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것을 상술하면 신약성경은 예수의 초림과 그의 지상생활은 구약에서 예언한 약속된 구속자에 대한 완성이다. 그런즉 이것은 “이미”임이 말할 것도 없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오고 있다는 구약의 종말론적 기대가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신약의 신자들은 예언자들이 예언했던 새 시대에 살고 있음을 인식 한다.


나.완성지향적 과정이란 신약에서 시발된 종말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과정이며 그 마지막은 열매에 해당된다. 완성지향적 과정은 “이미”와 “아직” 가운데 “아직”에 속하는 종말이다.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은  이미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에 뿌리를 박고 있는 미래에 대한 기대인 것이다. 신약의 종말론은 구약에서 예고되어 신약에서 시발되고 신약에서 또 미래를 지향하는 연속적인 종말론의 대단원을 이룬다.

  미래 지향적 종말론의 실례를 든다면 신자의 중간기 상태,재림문제,천년왕국문제,부활문제,영원왕국 문제 등이다.


* 신약의 종말론을 종합하면

 a.구약에 예비되었던 위대한 종말론적 사건이 이미 발생했다.

 b.구약의 저자들이 한 개의 운동으로 묘사헀던 바가  이제는 두 개의 국면으로 보여

   진다.-현 세대와 미래의 세대.

 c.이 두 개의 종말론적 국면간의 관계성은, 현 세대의 축복들을 장차 올 더 큰 축복

   들에 대한 보증이며 담보물이라는 점으로 설명되어 진다는 점이다.


2.역사의 의미

  오늘날 세계에 있어서 역사의 의미에 관한 문제만큼 중대한 물음은 없을 것이다.

  지나간 일세기 동안 두번에 걸쳐 일어난 세계대전들의 충격적 상흔,나찌 점령하의 악몽들,베트남 전쟁이 가져다준 공허와 무익성 등을 맛 본 현 세대는 역사의 의미에 관한 질문에 대해 진정한 대답을 얻기 위해 지금도 수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경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마땅히 역사의 의의에 관한 그 해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벌코프)

  성경에 의하면 역사란 의미없는 일련의 순환 회귀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과 우주에 대한 자기의 목적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매개 수단이다.역사는 신성하게 설정된 목표를 향해 움직이며,미래란 과거에 만들어진 약속들의 완성과 성취를 바라다 보아야 한다고 성경저자들은 주장한다.


* 역사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의 특징(5가지)

1)역사는 하나님의 여러 목적들을 이루는 작업이다.

  하나님은 그의 목적들을 역사 속에 나타내신다. 일반적으로 “신성한 역사”는 “구속사”를 의미하는데 즉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의미한다. 이 구속은 구약의 약속들,모형들,예식들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완성되며 장차 다가올 미래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 구속은  그 최고 정점에 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통제와 지시 아래 있기 때문에 역사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에 대한 계시라고 할 수 있다.

2)하나님은 역사의 주님이시다.

  이것은 성경이 분명히 가르치는 사상이다. 하나님은 왕국의 모든 만물을 지배하시며(시103:19) 세계의 열방들을 통치 하신다.(대하20:6) 또한 하나님은 그의 뜻하신 바 대로 모든 것을 성취하시며(엡1:11), 땅 위에 나라를 위해 세우신 년도와 그들이 거주할 장소를 정하시고 제한하셨다.(행17:26) 하나님이 역사의 주님이라는 사실은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이 방법으로든,저 방법으로든 간에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시키는데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사10:5,10:12,24-27,44:28,45:1)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기에 역사의 의미와 그 방향을 갖게 되는 것이다.

3)그리스도는 역사의 중심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이 역사의 중심적이라는 사실은 이 중심적 사건으로 “과거의 모든 것이 성취되어질 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든 것도 결정되어 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건은 역사의 모든 것 위에 그것의 특징적인 도장을 찍어놓는 것이다.(계5:9)

4)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정말로 새 세대,즉 하나님의 왕국의 시대를 도래케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에는 전과 같은 세상일 수가 없다. 즉,놀랄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만일 어느사람이 이러한 변화를 인정치 않거나 알지 못한다면, 그는 진실로 역사의 의미를 이해치 못하는 것이다.

5)역사의 모든것은 목표를 향해 움직여 가고 있다.-새하늘과 새땅을 위하여.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된 새 세대는 최종목표인 새하늘과 새땅의 목표를 향해가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항상 역사를 지배하고 있으며 역사는 점진적으로 그것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역사해석의 중요한 특징들이다. 이제부터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세계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런 역사의 해석이 함축하는 바를 얼마간 살표보도록 하자.

 가)현 세대의 특징적인 활동은 선교사역들이다.(마28:19-20,24:14)

 나)우리는 “이미”와 “아직”사이에 계속되는 긴장 속에서 살고 있다.

 다)역사 속에는  두  줄기의  발전이  있다. (하나님의  왕국과  악의  왕국  병행,

    마13:24-30)

 라)우리의 역사적 판단들은 모두 잠정적이다. (역사의 모호성 알림 - 최후 심판날에

    선과 악 분리)

 마)역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이해는 근본적으로 낙관적이다.(하나님이 역사를 지배

    하시고 그리스도가 악을 이겼다고 믿기에)

 바)이 세대와 다음세대 사이에는 불연속 상태 뿐만 아니라 연속 상태로 존재 한다.


3.“이미”와“아직“사이의 긴장

  “이미”와 “아직”사이에 놓여 있는 긴장이 특별히 신약 종말론을 특징 지우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 보았다. 신약이 가르치고 있는 바와같이 신자는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되었던 종말론적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최종적인 상태에 다다른 것은 아니다. 신자들은 이미 성령의 내주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그의 부활된 육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앞장에서 이 긴장에 대하여 다루었다. 우리는 신약이 이 긴장을 두세대(현 세대와 장차올 세대)에 관한 교리를 통해 설명하고 있음을 보았다. 또 우리는 신약을 가르치고 있는 역사의 이해는 이 긴장이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본 바 있다. 즉 하나님의 왕국과 사단의 왕국이 역사 속에서 계속적으로 발전하는 두개의 줄기라는 것을 보았다. 사실상 하나님의 왕국은 그 자체가 현재적인 동시에 미래적 실체이기 때문에 이런 긴장에 비추어서만 이해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 긴장관계를 알지 못하고 신약의 종말론을 이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와 “아직”사이의 긴장상태는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명백히 제시되어 졌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왕국을 현재적인 동시에 미래적 소망이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이미”와“아직”사이의 이러한 긴장이 신약 종말론의 중요한 전망이기 때문에 이 긴장은 오늘날 우리 신자들의 삶과 생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 “이미-아직”의 긴장은 우리가 흔히 “시대의 징조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특정 지워준다.

  “시대의 징조들”(배도 하는일,대환란,적그리스도의 출현)은 그리스도 재림 전에 발생하게 될 모든 사건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의 징조들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체 기간 동안에 걸쳐 일어나게 되는 것으로 인식 되어져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때야 끝이 오리라”고 (마24:14) 하셨다. 그러므로 이 복음 전파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대의 명백한 표정인 동시에 앞으로 그리스도의 승리를 회상케 하며 동시에 장차 올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바라보도록 하는 징조인 것이다.


 2) 교회는 이 긴장속에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된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새 사람들이면서도 불완전한 인격들인 사람들의 친교이다. 새로움과 불완전함을 항상 같이 생각해야 한다.(부족함인정,서로용서,남의 행위 잡아주려는 행위는 갈6:1의 정신으로 해야함)

 3) 이러한 긴장은 책임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자극제가 된다.

  이 긴장이 의미하는바는 그리스도인들의 죄에 대한 투쟁은 현재의 생활 전 영역에서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투쟁은 패배감속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확신속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예수님이승리) 또 이 긴장의 관계는 연속성이란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미”는 “아직”의 전초전 일 뿐이다. 우리의 현재적 삶의 질과 죽음 저 너머의 삶의 질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신약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상급, 면류관, 열매, 추수, 알곡과 죽정이, 씨를 뿌림과 거둬들임(갈6:8) 이런 종류의 개념들은 우리의 최대한의 능력을 다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살아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4) 우리의 자화상은 이러한 긴장을 반영해야 한다.

  자화상이란 자신의 가치와 부가치에 대한 자기 자신의 평가적 개념을 말한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미”와“아직” 사이의 긴장속에서 새로움보다 옛것을 많이 닮고 있다는 것을 보게된다. 그러나 비록 긴장은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적 성장으로 특색을 이루고 있다. (골3:9-10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 자신을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점진적으로 새로와지고 있는 그리스도 안의 새사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5) 이런 긴장은 신자들이 당하는 고난의 역할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왜 의인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은 신자들의 생활속에 일어나는 “고난”은 “아직”의 구체적 현현이라는 것이다. 즉 고난은 죄의 모든 결과들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신약(환난을 통해서 하나님 왕국에 들어감 - 행14:12 / 현재의 고난과 미래적 영광 연결-롬8:17-18 / 벧전4:12-13 /신자들이 당하는 고난 이해하도록 도와줌 -계6:9-11)의 여러 구절을 참조하라.

  고난은 우리의 눈물을 모두 씻기시고 슬픔과 죽음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계21:4)종말의 관점에 비추어 이해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백성들의 삶속에 고난을 허용하신 목적들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있다.(롬5:3-4, 히12:11 참조)


 6) 문화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이 긴장과 관련되어 있다.

  이 세상과 다음세상에는 불연속성 뿐만 아니라 연속성도 존재한다.(고전3:10-15)

  모든 문화적 산물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에 비추어 평가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문학, 예술, 철학, 또한 기독교 접근을 통한 과학 등등의 진정한 기독교 문화를 계속 생산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완전한 기독교 문화가 달성되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Ⅱ. 미래 종말론


  미래 종말론은 미래에 있게 될 종말론적 사건들을 다룬다. 그러나 미래 종말론을 다룸에 있어서 우리는 1부에서 발전된 것을 기억하여야만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종말론적 사건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있다. 그리스도께서 사단, 죄, 죽움에 대하여 과거에 이미 결정적 승리를 얻으셨기 때문에 미래의 종말론적 사건은 이미 시작된 구속적 과정의 완성으로 보여져야만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마지막 날에 일어나게 될 것은 이 마지막 날들에 발생하고 있는 것의 완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미래 종말론의 토의는 두개의 부분들로 나누이게 될 것이다.

  󰠆󰠏첫번째 부분(4-5): “개인 종말론”으로 육체의 죽음, 죽음과 부활사이의 중간상태

  󰠐                    를 다룰것이다.

  󰠌󰠏두번째 부분(6-10): “우주적 종말론”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에 관한 문

                        제, 부활, 심판, 최후상태등을 다룰 것이다.


1. 육체의 죽음

   육체의 죽음에 대해 죄와 구속에 관련하여 살펴 보고자 한다.


 1) 죽음의 근본 성격(죄와 죽음과의 관계성)

   죽음은 근본적으로 인간 타락에 대한 결과중의 하나이다.

 * 성경적 증거들

  창2:16-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

             리라.”

󰠆󰠏“네가 그것을 먹는 그 날에”-“그날에”라는 표현은 단순히 “정령히”“확실히”라는 뜻

󰠐 “네가 이 과일을 먹는 만큼이나 확실히 너는 죽으리라”                    

󰠐 에서 살펴보면 열매를 먹는 그 날 육체의 죽음을 맛보지 않은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네가  정녕 죽으리라”- 죽음이라는 히브리어 동사 muth의 일차적이고도 분명한 의미는육체의 죽음이다.(창3:19 참조) 그러므로 창2:17절의 분명한 내용은 인간의 죽음은 인간의 죄의 결과이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들에 비추어 보아 창2:17절의 죽음은 육체의 죽음 이상을 의미한다. 인간은 그의 존재에 있어서 육체적인 면 뿐 아니라 영적인 면도 가진 전인이다.

  성경에 의하면 삶의 가장 깊은 의미는 하나님과의 교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의 가장 깊은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창2:17에서 위협적으로 선언된 죽음은 영적죽음을 포함하고 있다.

  (참고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죄와 죽음의 관계성은 신약에서도 가르치고 있다. (롬5:12,롬8:1에,고전15:21)

 2) 구속의 빛 아래서의 죽음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정복하고 파괴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셔서 그의 백성들을 죄로부터 속량하셨을 뿐만 아니라 죄의 결과들로 부터 구원하셨다고한다.(히2:14-15,딤후1:10,계21:4)

  그렇다면 지금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가?

가장 깊은 의미에 있어서 신자는 이젠 더 이상 죽음의 영역에 속해 있지 않으며, 오히려 죽음의 영역이 신자에게 속하여 있다. 실현하는데 있어서의 징검다리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신자의 죽음에 대하여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를 관찰해 보자.

  신자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며”(시116:15)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게”되는 것이며

                 (눅16:22)

                “낙원에 가는”것이며(눅23:43)

                “거할 곳이 많이 있는 집에 가는 ”것이며 (요14:2)

                “복된 이별”이며 (빌1:23, 딤후4:6)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것이며(고후5:8)

                “유익한 것”이며(빌1:23)

                “훨씬 더 좋은”것이며(빌1:23)

                “주 안에서 잠자는” 것이다(요11:11, 살전4:13)


2. 중간상태

  인간의 미래에 관한 신약의 가르침 속에는 그리스도의 재림, 재림을 수반하게 될 사건들(부활,최후의 심판, 새땅의 창조)이 있다. 이러한 주제들을 생각해 보기전에 우리는 소위 “중간상태”라고 불리우는 것에 관해 주의를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중간상태란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기간 동안에 죽은 자들이 처해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제 중간상태(죽음과 부활사이 기간)의 동안에 인간의 상태는 어떠할 것인가에 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가르치고 있는지 살펴보자.

 1)구약

  구약에 따르면 인간 존재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후에도 인간은 스올이라고 불리우는 죽음의 영역 속에서 계속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죠지래드는 “스올은 죽음이 인간존재의 종국이 아님을 보여주는 구약적 표현 방법이다.”라고 말한다.

  “스올”(SHEOL):구약에 66번나옴

                70인역에서 하테스(HADES)로 번역했으며 신약에서도 같다.

                흠정역에서는 무덤(31회),지옥(31회),구덩이(3회)로 번역했다.

  의미:스올은 문자적으로든 또는 비유적으로든 사람이 내려가는 곳 또는 상태이다.

      이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문맥에 따라 그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1)때로는 스올은 악인들을 위한 형벌의 장소이다.(신32:22,시9:17,55:15)

이같은 구절들에서의 스올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붙고 있는 곳이며 의인들이 아닌 악인들이 죽어서 내려가는 곳이다.(지옥이라는 번역이 타당)

  (2)다른 구절들에서 스올은 죽은자의 영역을 의미하는데 상징적으로 죽음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무덤을 가리킴)

“내가(야곱) 슬퍼하여 음브(스올)에 내려가 아들에게도 가리라”(창37:35) 이런식으로 생각하면 경건한 자들이나 불경건한 자들 모두가 죽은자의 영역으로 들어가지 때문에 이들 모두가 사망시에 스올로 내려감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이것이다. 신구약성경 중 어느 구절에서나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죽어서 실제로 문자적으로 똑같은 곳으로 간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성경은 한결같이 악인들은 죽어서 영원한 저주의 운명에 처하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의인들은 영원한 축복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2)신약

 신약도 구약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사망시 멸절되지 않고 어느 한 곳에(하데스,낙원)

계속 존재 할 것을 가르치므로,구약의 가르침을 보완하고 확장하고 있다.


“하데스”(Hades):스올의 번역이다.

               스올은 신‧구약 중간기에 변화를 겪어 하데스(음부)란 단어는 지하세

               계에서 불경건한 영혼들을 위한 형벌의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

               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신약에 반영) 그러므로 하데스에 대한 바

               른 번역은 지옥이 되어야 한다.(눅16:23-24,마11:23)


  요약하자면 우리는 스올과 하데스란 개념들의 성경적 사용으로부터 중간상태에 관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가)인간은 사후에 완전히 존재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영역” 으

    로 간다.

 나)이러한 죽은 자들의 영역 속에서 불경건한 자들에게는 사망이 목자가 될  것이며

    사망의 돌봄 아래 그들은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다. (신약:죽음과 부활의 전기간

    고통하게 됨,눅16:19-31)

 다)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은자들의 영역에 내버림을 당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행

    2:27,31) 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 자신들이 스올의 권세로부터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되며, 위로를 받게 된다.(눅16:25)


그러면 신자로서 죽은 자들은 죽음과 부활 사이의 어떤 상태에 놓일까?(3개의 구절)

가)눅23:42-43  “오늘날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낙원이란 단어는 고후12:4,계2:7에서만 사용,고후12:4에서 낙원은 2절의 세째 하늘

  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낙원은 축복받은 죽은 자들의 영역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처소인 하늘을 의미한다.계2:7에서도 낙원은 중간 상태가 아닌 최종적 상태

  를 묘사 하고 있는 하늘(곧 천국)을 가리킨다.

나)빌1:21-23  “나의 소망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니”

   “떠나다”죽음의 순간적 경험을 묘사하는 부정과거 부정사이다.따라서 여기서 바울

    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가 떠나는 죽는 순간이 곧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순

    간이라는 것이다.회개한 강도와 일치점이 있다.“그리스도와 함께”

다)고후5:6-8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몸을 떠나 주와 함

              께 거하는 것이라.”

   죽음은 그리스도인의 순례의 끝이다. 자기의 진정한 집(천국)으로 가는 것이기 때

   문이다.중간 상태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육체안에 있게 되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에 고난들과 불완전함들, 그리고 현재적 삶을 괴롭히는  죄악들로부터 구출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영화롭게 됨은 육체의 부활이 일어나는  순간까지는  완성

   되지 못할 것이다.그러므로 중간 상태 동안 우리 믿는 자들의 상태는 칼빈이 가르

   쳤던 것처럼 불완성의 상태이며, 기대의 상태이며, 잠정적 축복의 상태인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재림

  “우주적 종말론”을 고찰하게 될때 그리스도의 재림은 매우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왕국을 시작하기 위해서 오셨으며 그의 왕국의 최종적 완성의 시대를 시작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다.

  신약 종말론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기대이다.


 1) 재림론의 중요성

 가. 재림론은 성경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초림사건과 밀접하게 합병되어 나온 경우가 많다. 신약에 와보면 재림진리는 300회 이상이나 언급되어 있다.(25절당 한번씩 언급) 또한 한장 전체를 할애한 장도 있으며(마24,25, 막13, 눅21, 참고고전15) 어떤 책들은 재림론을 위해 나온것도 있다.(살전.후,계)

 나. 재림론은 성경의 열쇠다.

    성경의 많은 교리들, 의식들, 약속들, 그리고 모형들이 주님의 재림론의 빛을 떠나서는 온전하게 이해되어 질 수 없다. 그리스도의 직분은 예언자, 제사장, 왕이다. 그러나 재림의 진리를 떠나서 그의 왕의 직분을 적절히 이해할 수 없다. 구원은 과거, 현재, 미래로 제시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재림의 신앙을 떠나서는 미래적인 국면의 구원관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없다.

 다. 재림론은 거룩한 삶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한다.

    바울은 롬 13장에서 재림의 가까움은 우리로 하여금 어두움의 일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고 육체의 일을 도모하지 말며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고 말한다.(12-14절) 딛2:11-13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우리의 삶은 이생에서 우리가 세상적인 정욕을 버리고 근신하여 의롭게, 경건한 삶을 살아가야 할것을 강조하고 있다.

    베드로는 첫번째 서신에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우리에게 가져올 은혜위에 온전히 우리의 소망을 둔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열심히 근신과 순종과 거룩함을 좋아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벧전1:13-15)

    사도요한도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나타나실때에 우리도 그와같이 될 것이라고 말한 뒤에 곧 이어서 “‧‧‧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요일 3:2-3)

 라. 재림론은 우리의 삶의 질에 대하여 영향을 끼치게 된다.

  주님이 미래에 나타나신다는 사실은 우리를 감동시키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게 만든다.(딤전6:14)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한 것은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에 대해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대비해 보여주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준비는 그가 우리에게 주셨던 재능과 능력들을 가지고 그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마25:14-30, 눅19:11-27) 마25:31-46에 묘사된 최후심판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재림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리스도의 형제들에게 계속적인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을 위한 삶의 계속적인 촉진제가 되어야 하며, 땅 위에 있는 것들이 아닌 위의 것들을 추구하는데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위에 것들을 추구하는 최선의 길은 지금 여기서 주님을 위한 일에 분주해야 하는 것이다.


 2) 재림의 시기

  친히 그리스도나 그의 제자들도 그가 언제 재림하실지에 대해서는 확정적으로 나타내 보이지 않았다. 때는 홀로 하나님 아버지만 알고 계신다.

  막13:32,33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 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행1:7 “때와 기한은 아버지에게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는 알 바 아니요”

  벧후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러므로 사도들도 주님의 재림의 때를 알지 못하며, 그리고 수육해 계실 동안은 친히 주님에게까지도 감추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의 정확한 시와 때를 확정지우려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하신것을 안다고 억단하는 것이다.(나는 그 날자를 안다! 나는 그 시간을 안다! 고 부르짖는 자는 다 이단으로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3) 재림의 징조

  주님은 재림의 시기는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재림이 있기전의 상황들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말씀하셨다. 그것은 시대의 징조와 특별한 징조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가. 시대의 징조들

  “시대의 징조들”이란 표현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선행하는 사건들이나 상황들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되어 진다. 그러나 “시대의 징조들”이란 미래에 나타날 것만 가리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너희가 천기를 분별할 줄 알면서도 시대의 징조들은 분별할 수 없도다”. (마16:3)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 문구는 ta semeia fon kairon dlek.

  비록 semeion 이란 단어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여기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지금 행하시고 계신 그리고 미래에 하시려고 하시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는 의미에서의 하나님이 주신 의미있는 증표”를 의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kairos는 일정한 시점, 혹은 일정한 시간의 기간을 뜻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의미는 하나님의 행위의 기간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므로 시대의 징조를 전적으로 세상 끝날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한다든지 그 징조들을 극적인, 혹은 큰 재앙의 사건들로만 생각한다든지 하는 잘못이다.


그러면 시대의 징조들이 무엇인지 이 징조들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a. 일반적으로 시대의 징조들이 미래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런 징조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셨던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징조란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크나큰 승리를 쟁취하셨으며 그러므로 역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변화가 이미 일어났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그것들은 하나님이 역사속에서 일하시고 계시며 그의 약속들을 성취하고 계시며 구속의 최후 결정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도록 힘쓰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한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의 행동에 대해서 중요한 의미로 부여하는 것이다. 즉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8), 또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5:8) 라는 것을 의미한다.


b. 시대의 징조들이란 앞으로의 역사의 종말 특히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징조들이 무엇인지를 나타내신 후에 “그때야 끝이 오리라”와 같은 표현을 여러번 사용하셨다. (마24:14,29,30) (살후2:3절 참조) 그래서 시대의 징조들은 역시 앞날의 일을 지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님이 이미 과거에 행하셨던 것을 밑바탕으로 하여 앞날을 지시하는 것이다. 종말론적인 복음전파는 이미 도래한 구속의 관점으로부터 볼 때에 미래에 대한 증거를 지니고 있다.


c. 시대의 징조들은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왕국과 악의 세력들 사이에 끝없는 대립을 나타낸다.

  알곡과 가라지는 마지막 날에 있게 될 추수때까지 서로 함께 자라난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단의 세력의 분쟁이 역사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계속되어짐을 의미한다.


d. 시대의 징조들은 결단을 촉구한다.

  시대의 징조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아들을 맏고 구원 받을 것을 권고하신다. 그러므로 시대의 징조를 주목하지 않는 불신자들은 저주를 증가시키게 된다. 그러나 신자들에게 징조는 오히려 기쁨의 소식이 된다.


e. 시대의 징조들은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깨어 경성할 것을 요구한다.

  예수님과 바울은 재림전에 어떤 일들이 분명히 일어날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재림의 정확한 시기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고 가르쳤다.그러므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재림을 대비해 계속적으로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깨어 있으라 어느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나라”(마24:42)

  우리는 재림이 시간적으로 임박했다고 말하지 말고 상황적으로 임박해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재림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언제 올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대비해 끊임없는 기대와 준비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 다음의 표어가 이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어제 죽으셨고, 오늘 아침 일어 나셨으며, 내일 다시 오실 것처럼 살자.”


나. 특별한 징조들

    (항목으로 묶어 간단히 적도록 하겠다 - 지면상 설명은 생략)

 a. 하나님의 은총을 증거하는 징조들

  a)모든 나라에 복음이 선포됨(마24:14, 마28:19.20)

  b)이스라엘의 충만한 숫자의 구원(롬9-11)

 b. 하나님께 반역하는 징조들

  a)환난(마24:3-51, 막13:3-37, 눅21:5-36)

  b)배도(마24:24, 10-12, 딤전4:1, 딤후3:1-5)

  c)적그리스도(마24:23-24, 요일4:2-3)

 c.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키는 징조들 (마24:6-8, 막13:7-8, 눅21:9-11)

  a)전쟁들

  b)지진들

  c)기근들


4) 재림의 모습


 가. 한 인격의 오심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그의 인격 속에서 오신다는 것이다.

  행1:11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3:19-21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골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나. 눈으로 보이는 오심이다.

  계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행1:11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

          라.”

  마24:30,31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다. 영화로운 오심이다.

  첫번째 오심은 비천한 가운데 오심이었다.(사53:2,3, 빌2:7,8)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그는 영광중에 오실 것이다.

  마24:30,31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살전4:16 “그날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을 쫓

            아 강림하시리라.”

  그리스도께서 다시오사 그의 성도들에게 영광을 얻으실 것이다.(살후1:10) 그리고 그의 백성인 우리는 그가 다시 오실 때 영광 중에 그와 함께 나타날 것이다.(골3:4) 영광스런 정복자, 만유의 심판자, 온 창조 세계의 구속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것이다(계19:16)


5) 재림의 목적


 가. 세상의 심판

  그리스도가 처음에는 이 세상을 구원하려고 왔으며, 심판하러 오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다”(요12:47)

  그러나 그가 다시오실 때는 심판자로 오실 것이다.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요12:48)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마25:31,32) 이 마지막으로 그림같이 생생한 성경 말씀의 잔여 부분은 심판날에 우리 주님에 의하여 수행될 심판과정의 결과를 보여준다.

  그리고 예수님이 심판하러 오실 때는 이미 회개하기에는 너무나 늦을 것이다. 그의 놀라운 구원이 그가 심판하러 오시기 이전에는 허락되겠지만 그러나 그 이후에는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나. 나라의 완성.

  예수님은 지금 이 완성 가운데 있는 것을 완성하러 오실 것이다. 그는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하실 것이다.(고전13:12)

  하나님 나라는 현재와 미래 양자의 함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때에 종국적 완성에 이르러서는 나라의 현재적 국면은 미래에 융화되며, 그래서 그것이 본질적으로 지금도 그러하지만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 때에 (고전1:24-26)구속 사업이 완성되며, 나라를 회복하여 아버지께 바치며, 구속을 받은 자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에 들어가게 된다.


 다. 만물을 새롭게 하심.

  그리스도께서 다시오실 때에 그는 저주를 제거하시고 비록 말못하는 피조물이라도 이전의 완전과 영광에 복귀시키실 것이다.(계21:5,롬8:19-22,23)


4. 천년왕국에 대한 문제

  요한 계시록은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다스리게 될 어떤 개인들에 관해 말하고 있다.(계20:4) 이 구절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때문에 천년 왕국에 대한 네가지 견해(무천년설, 후천년설, 전천년설, 새대주의적 전천년설)가 대두되게 되었다.

여기서는 세가지(무천년설, 전천년설, 후천년설)만 다루도록 하겠다.


1)무천년설

   주장자: 고대 - 아우구스티누스가 체계화

           현대 - 벌코프, 핸드릭슨, 아브라함 카이퍼, 렌스키, 에드워드영, 보스

이 설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지상일천년의 문자적 동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예수의 재림을 즈음한 지상의 문자적 천년왕국은 없으며 왕국에 관한 모든 예언은 교회에 의해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현재 실현중이라는 것이다.

계시록20:4-6 해석(상징적으로 해석)

  천년기간:이미 죽은 신자들의 영혼들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현재적으로

           통치함.

  사단의 결박(1-3):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동안에 일어나는 것으로

                   해석함.

                   (결박되어 있다는 것은 활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결박되어 있기에 열국을 미혹할 수 없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기간동안에 선교와 복음사역이 가능하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끝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무천년론자들은 

* 미래의 영화롭고 완전한 왕국이  장차 올 새 삶의 새 땅위에  건설되리라는 것을 바라보년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왕국은 승리하신 그리스도가 말씀과 성령으로 자기 백성들을 통치하심으로써 지금 이 세상속에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 그리스도께서 죄와 악에 대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이미 쟁취하셨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악의 왕국은 이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의 왕국과 함께 계속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 우리는 현 세대에서 많은 종말론적 축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된 종말론) 우리는 또한 최종적 상태시에 시작될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된 결정적 미래적 사건들이 일어날 것도 바라보고 있다.(미래적 종말론)

* 소위 “시대의 징조들”이 그리스도의 초림사건 이후 이 세상에 나타탔고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직전에 이 시대의 징조들은 더욱 심화된 결정적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전에 복음이 모든 나라들에 전파되고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완성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재림전에 한명의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고, 대환난과 배도하는 일이 극에 달할 것으로 보고있다.


  <무천년설의 내용>

가. 그리스도의 재림은 단한번 발생하는 유일한 사건이다. (두단계로 보지 않는다)

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신자들과 불신자들이 모두 부활할 것이다.

 전천년자들의 신자들의 부활과 불신자들의 부활은 천년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진다는

 견해를 반대한다.

 세대주의자들의 3-4가지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반대한다.

다. 부활사건이 있은 직후에 그때까지 살아 있던 성도들은 변하여 영화로운 몸이 될

  것이다. 고전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이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

  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라. 부활한 신자들과 변화된 신자들은 구름속에 이끌리어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공

  중으로 휴거 될 것이다.(살전4:17)

마. 이어서 최후 심판이 있게 된다.

바. 심판 이후에 영원한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무천년설 도표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

                                      *의인의 부활이 있다

        천년기                        *성도의 휴거(들림)가 있다

       *예수의초림과재림사이의기간임  *적그리스도가 멸망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왕국과그의  *사탄이 파멸된다

       백성의 삶 속에서 총치되고      *불의한 자의 부활이 있다

       계시는 중이시다.               *최후심판이 있다.            새하늘과

                                                                  󰠐  새땅   

      󰠆󰠏󰠏󰠏󰠏󰠏󰠏󰠏󰠏󰠏󰠏󰠏󰠏󰠏󰠏󰠏󰠏󰠏󰠏󰠏󰠏󰠏󰠏󰠏󰠏󰠏󰠏󰠏󰠏󰠏󰠏󰠏󰠏󰠏󰠏󰠏󰠏󰠏󰠏󰠏󰠏󰠏󰠏󰠏󰠏󰠏󰠏󰠈            󰠐           

      󰠌󰠏󰠏󰠏󰠏󰠏󰠏󰠏󰠏󰠏󰠏󰠏󰠏󰠏󰠏󰠏󰠏󰠏󰠏󰠏󰠏󰠏󰠏󰠏󰠏󰠏󰠏󰠏󰠏󰠏󰠏󰠏󰠏󰠏󰠏󰠏󰠏󰠏󰠏󰠏󰠏󰠏󰠏󰠏󰠏󰠏󰠏󰠍󰠏󰠏󰠏󰠏󰠏󰠏󰠏󰠏󰠏󰠏󰠏󰠏󰠎           

   *사탄이 결박된 것은 예수의 십자가로 인함.   *사탄의 결박이

    (20:2-3,3:27,10:1-20,12:27-33)      풀린다                   

    비록 사탄이 결박되어 있지만 그의 영향력    *적그리스도가              

    은 지금까지 미치고 있다.                    행세한다

                                               *대환난이 있다

2)전천년설

주장자  고대:초대교회때 믿음.이레니우스,저스던, 터둘리안

        현대:죠리래드,헨리디이슨,크리스웰,위어스비

이설의 핵심은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지상에 범세계적인 7년 대환란이 있으며 그후에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가시적으로 재림하셔서 땅위에 문자적이고 가시적인 천년왕국을 건설해 직접 왕으로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지상재림                 

  초림  󰠆󰠏󰠏󰠏󰠏󰠏󰠏󰠏󰠏󰠏󰠏󰠏󰠏󰠏󰠏󰠏󰠏󰠏󰠏󰠏󰠏󰠏󰠏󰠏󰠏󰠏󰠏󰠇󰠏󰠏󰠏󰠏󰠏󰠏󰠏󰠏󰠏󰠏󰠏󰠏󰠏󰠏󰠇󰠏󰠏󰠏󰠏󰠏󰠏󰠏󰠏󰠏󰠏󰠏󰠏󰠏󰠏󰠏󰠈    

        󰠌󰠏󰠏󰠏󰠏󰠏󰠏󰠏󰠏󰠏󰠏󰠏󰠏󰠏󰠏󰠏󰠏󰠏󰠏󰠏󰠏󰠏󰠏󰠏󰠏󰠏󰠏󰠍󰠏󰠏󰠏󰠏󰠏󰠏󰠏󰠏󰠏󰠏󰠏󰠏󰠏󰠏󰠍󰠏󰠏󰠏󰠏󰠏󰠏󰠏󰠏󰠏󰠏󰠏󰠏󰠏󰠏󰠏󰠎

                   교회시대             7년대환난      천년왕국            

   계시록20:4-6 해석 (문자적으로 해석)


<전천년설의 내용>

가. 재림의 어떤 최후적인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를 만

  나러 들림을 받는다.(“은밀한 휴거”라고함)-환란을 통과하지 않으리라는 입장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공적인 출현시에 휴거할 것이다(“환란후 휴거”

  라고함)-교회가 환란기를 통과하리라고 함.

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세상은 악의 영향권 아래있고 적그리스도가 능력을 발한다.

다.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그리스도가 놀라운 승리로 적그리스도를 패배시킬 것이다.

라. 신자들의 부활은 대환란 이전이나(환난전 휴거설 주장자) 혹은 천년 왕국 시작

  (환난후 휴거주장자)에 있을 것이다.

마. 천년왕국 시작에서 살아있는 열방들에 대한 기본적인 심판이 있다.

  살아있는 성도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다스린다. 사탄은 결박된다.

바. 천년왕국 끝에가서 악한자가 나오는데 이것은 사탄이 풀림을 받은 결과이기 때문

  이다. 이 “잠시동안”이 사탄이 예수를 무너지게 하려는 최후의 시도이다.

사. 잠시 후 악한 자들의 부활이 있고 이어서 큰 백보좌의 마지막 심판이 따른다.


     천년설 도표

                     * 예수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

                     * 적그리스도를 멸한다                                   

                     * 첫째 부활이 있다          * 불의한자의 심판이 있다     

                     * 열망의 심판이 있다        * 큰 백보좌 심판이 있다    

               *성도가 휴거한다     󰠐                        󰠐              

            (환난전휴거설) 󰠐        󰠐                        󰠐            

                           󰠐        󰠐                        󰠐            

                           󰠐        󰠐                        󰠐             

          󰠏󰠏󰠏 교회시대 󰠏󰠏󰠏󰠏󰠋        󰠉󰠏󰠏󰠏󰠏󰠏󰠏 천 년 기   󰠏󰠏󰠏󰠏󰠏󰠏󰠋               

                           󰠐        󰠐                        󰠐                

                           󰠐        󰠐 사탄이결박되는󰠐        󰠐                

                           󰠐        󰠐     기간      󰠐        󰠐              

                           󰠉󰠏󰠏󰠏󰠏󰠏󰠏󰠏󰠏󰠊󰠏󰠏󰠏󰠏󰠏󰠏󰠏󰠏󰠏󰠏󰠏󰠏󰠏󰠏󰠏󰠊󰠏󰠏󰠏󰠏󰠏󰠏󰠏󰠏󰠋            

          󰠏󰠏󰠏󰠏󰠏󰠏󰠏󰠏󰠏󰠏󰠏󰠏󰠏󰠏󰠏󰠏󰠏󰠍󰠏󰠏󰠏󰠏󰠏󰠏󰠏󰠏󰠊󰠏󰠏󰠏󰠏󰠏󰠏󰠏󰠏󰠏󰠏󰠏󰠏󰠏󰠏󰠏󰠍󰠏󰠏󰠏󰠏󰠏󰠏󰠏󰠏󰠋          

                      대환난기간이다󰠐          사탄이잠시동안󰠐         

                    적그리스도가행세󰠐            풀림을 받다.󰠐           

                      한다.         󰠐                        󰠐           

                                 아마겟돈                          


** 참고 : 역사적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의 비교

  두 설은 크게 3가지 차이점이 있다. (계20:1-6의 해석/롬11:26의해석/그리스도의 초림,재림의 강조점)


가. 계20:1-6의 해석

  전천년설: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나타날 것으로 봄(문자적 해석)

  무천년설:그리스도의 초림 이후에 이미 천년왕국이 시작되었다고 봄(상징적 해석)

나. 롬11:26의 해석

  전천년설:천년왕국설에 근거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문자적으로 해석

  무천년설:이 문구의 이스라엘의 영적으로 해석하여 문자적인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

           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곧 신자들의 권을 가리킨다고 해석

다. 그리스도 초림과 재림의 강조점

  전천년설: 구속사의 중심을 재림에 둠

  무천년설: 구속사의 중심을 초림에 둠

 두 설 사이에는 이러한 상이점이 있지만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일치점이 있는데 즉 이들 모두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미 하나님 나라가 시작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 나라가 완성된다는 사실에 생각들을 같이하고 있다. 이점은 구속사의 이해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다. 우리가 두 설이 상호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다 받아들일수 있는 것은 이들이 성경의 근간이 되는 구속사를 상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3) 후천년설

주장자: 고대-초대교회때 주장되지 아니함. 12세기 요아킴이 처음주장

        현대-찰스하지,죠나단 에드워드,A.H스트롱, 뵈트너

이 설의 핵심은 소위 천년왕국이 지난 뒤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다는 것이다.

                                                                          

          󰠆󰠏󰠏󰠏󰠏󰠏󰠏󰠏󰠏󰠏󰠏󰠏󰠏󰠏󰠏󰠏 교회시대󰠏󰠏󰠏󰠏󰠏󰠏󰠏󰠏󰠏󰠏󰠏󰠏󰠏󰠏󰠏󰠏󰠏󰠏󰠏󰠈                    

          󰠐                                           󰠐

          󰠆󰠏󰠏󰠏󰠏󰠏󰠏󰠏󰠏󰠏󰠏󰠏󰠏󰠏󰠏󰠏󰠏󰠏󰠏󰠏󰠏󰠇󰠏󰠏󰠏󰠏󰠏󰠏󰠏󰠏󰠏󰠏󰠏󰠏󰠏󰠏󰠏󰠏󰠏󰠏󰠏󰠏󰠏󰠏󰠈                 

          󰠌󰠏󰠏󰠏󰠏󰠏󰠏󰠏󰠏󰠏󰠏󰠏󰠏󰠏󰠏󰠏󰠏󰠏󰠏󰠏󰠏󰠍󰠏󰠏󰠏󰠏󰠏󰠏󰠏󰠏󰠏󰠏󰠏󰠏󰠏󰠏󰠏󰠏󰠏󰠏󰠏󰠏󰠏󰠏󰠎                

        초림                        천년왕국        재림              


  뵈트너의 정의 (현재 생존한 대표적 학자)

“후천년 설이란 하나님의 나라가 복음전파와 성령의 구원 사역을 통해서 현재 전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세계는 결국 기독교화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재림은 의와 평화가 지배하는 긴 시기 즉 천년왕국 말기에 있을 것이라고 보는 종말론적 견해이다.”


  <후천년설의 내용>

가. 현재의 세계 질서 속에서 선과 악이 함께 계속된다.

나. 성령의 역사 아래서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역사가 크게 부흥되며 신자들은 그 영

    적인 힘을 의식하게 되며 놀라우리만큼 악의 세력이 정복된다.

다. 교회의 “황금시대” 곧 천년왕국 뒤에 잠시 배교가 일어날 것이다.

    여기서 악과 선의 세력과에 격렬한 투쟁이 있다. 이 때는 사탄이 풀려나오며

    적그리스도가 힘을 쓰고 큰 환난이       *후천년설 도표

    일어날 것이다. 아마겟돈 전쟁이              . 예수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 

    일어나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즈음하여         . 적그리스도가 멸망된다     

    대환난은 끝을 맺는다.                       . 죽은자의 부활이 있다      

라.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죽은자가                . 최후 심판이 있다   󰠐     

   부활하고 최후심판이 행해진다.                                     󰠐   

                                                    천년기           󰠐새하늘과

                                       교회시대   󰠆󰠏󰠏󰠏󰠏󰠏󰠏󰠏󰠏󰠏󰠏󰠏󰠏󰠇󰠏󰠏󰠏󰠏󰠏󰠋 새땅 

                                      󰠏󰠏󰠏󰠏󰠏󰠏󰠏󰠏󰠏󰠏󰠏󰠏󰠍󰠏󰠏󰠏󰠏󰠏󰠏󰠏󰠏󰠏󰠏󰠏󰠏󰠍󰠏󰠏󰠏󰠏󰠏󰠍󰠏󰠏󰠏󰠏󰠏󰠏󰠏󰠏

                                                . 사탄이 풀림을 받는다        

                                                . 적그리스도가 행세한다    

                                                . 대환난이 있다        

5. 육체의 부활

육체의 부활은 성경의 종말론적 멧세지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헬라 철학자:인간의 육체는 악하고, 완전한 존재의 방해물이다.죽음시에 육체는 소멸

            하게 되나 영혼은 계속 살아남게 된다(육체부활 꿈도 못꾼다)

성경:하나님께서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창조하셨고 인간은 육체없이 완전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은 육체가 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선한 것이라는 점

     증명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자들이 중간기 상태동안 잠정적 행복을

     누리고 있긴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행복은  그들의 육체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게 될 때에 비로서 완전해질 것이다.(육체의 부활 : 독특한  기독교

     교리다)

1) 부활의 시기

 (전천년론자 세대주의 천년론자:신자들의 부활과 불신자들의 부활을 천년 간격으로 분리)


가. 성경은 불신자의 부활과 신자의 부활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가르친다.

  단12:2“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다.”

  요5:28-29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인자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

             로 나오리라.”

  행24:14-15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

              라.” (헬라원문:부활이라는 단어가 단수로 사용)


나. 성경은 신자들이 “마지막 날”이라고 불리우는 그리스도 재림의 때에 일으킴을 받

    으리라고 가르친다.

살전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

          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고전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는 자요”

요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

        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다. 살전4:16과 고전15:23-24에 근거하여 두 단계 부활을 주장하는 것은 결정적일 수

   없다.

    살전4:16, 고전15:23-24에서 바울의 관심은 오직 신자들의 부활에 관한 것이다.

    성경의 분명한 교훈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신자와 불신자의 대부활이 있을 것이

    며 이 대부활후에 심판이 따를 것이라는 것이다.


2) 부활의 본질

  육체부활에 대해 신약은 구약보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상세하다

* 구약 참고구절,단12:2(영생영벌 명백히 함), 사26:19(육체부활 언급)

부활에 관한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보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신약 부활교리의 중심을 이루고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들의 미래적 부활에 대한 증표와 보증이라고 한다. 성경에 언급되고 있는 그리스도 전의 모든 부활들은 다시 죽음이 찾아왔다.(사렙다 과부의 아들 왕상17:17-24/수넴 여인의 아들, 왕하4:32-37/나인성 과부의 아들 눅7:11-17/야이로의 딸 마9:18-26/나사로 요11:38-44)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의 부활만은 죽음이 뒤따르지 않았다. 이 부활의 모형을 신자들은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셨으므로 신자들 역시 일어날 것이다.

고전15:20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 열매:추수의 첫 부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수의 미래적

           완성을 보증하는 의미가 있다.)

롬8:11 그리스도의 부활과 신자들의 부활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고 신자들의 부활

       이 성령의 사역임을 말하고 있다.

빌3:20-21 신자들의 부활한 육체가 그리스도의 부활 육체와 비슷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낮은 몸을 가지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육체의 부활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하고 있다.

  (1) 부활의 사실(fact):12-34절   (2) 부활의 양태(manner):35-49절

  (3) 부활의 필연성:12-14절


가. 부활의 사실(12-34절)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들의 부활에 대한 보증이라고 말한다.

     12-14절 그리스도의 부활을 하지 않고는 신자들의 부활을 부인할 수 없다.

     20절  그리스도는 이미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이다.

     21절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고 죽은자의 부활도 한사람(예수)으로

           말미암는다.

     22절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다.(모든 사람:그리스도안에 있는

           모든자)

# 바울의 요점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은 그와함께 부활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들의 부활은 사실상 그리스도의 중보적 사역의 필수적인 국면인 것이다. 왜냐하면 “맨 나중 멸망받을 원수는 죽음”이기 때문인 것이다(26절)


나. 부활의 양태 (35-49절)

  부활의 양태에 대해 그는 씨앗의 표상을 들고 있다.

35-38절:이 예증의 3가지 요점

  (1)씨가 씨로서 죽지 않는다면 새로운 식물이 나타나지 않듯이 육체가 현 상태의

     육체로서 죽지 않는다면 부활의 육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2)사람의 씨앗의 형체를 보고 그 미래의 실물의 형체를 말할 수 없듯이 사람의

     현재의 육체를 보고 미래의 부활육체가 어떠한 것일가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다.

  (3)씨앗과 그 씨앗의 식물 사이에 연속성이 있듯이 현재의 육체와 부활의 육체와의

     사이에도 연속성이 있을 것이다.

 42-44절:현재의 육체와 부활육체 사이의 현저한 대조표현(심는다:죽어묻힌다는 뜻)

  (1)부패와 부패되지 않음

  (2)욕됨과 영광(빌3:21참조)

  (3)약함과 강함

  (4)자연적육체  영적육체

#참고, 영적육체(=신령한 몸):비육체적, 비신체적인 의미를 갖지 않고 전적으로 성령

                           의 지배와 인도를 받고 있는 존재를 대변해 주는 것이다

       자연적 육체:현재의 죄로 저주닫은 존재의 모습을 표현

* 하나님의 구속의 목표는 육체적 몸의 부활이며, 이러한 영화로운 육체를 갖고 구속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그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새 땅의 창조인 것이다.


다. 부활(육체부활)의 필연성(50-57절)

  50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의미:우리의 현재적 존재 상태, 즉 약하고 썩어지게 될 우리는 현재적 육체로서는 장차 올 삶의 풍요로운 축복들을 기업으로 받을 수 없다. 반드시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그리스도의 재림시 까지 이미 죽었던 신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도 살아 있는 신자들에게도 일어나야 할 것이다.

 51-52절:썩어질 육체로부터 썩지 아니할 것으로 바뀌어야 할 필연적 변화는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리스도 재림시 순식간에 영화롭게 될 것이다.

 살전4:16-17, 53, 54절


현재의 육체와 부활육체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 연속성과 차이점이 있다.


가. 연속성:연속성이 없다면 부활에 관해 말할 하등의 이유가 없게 된다.

      죽은 자들이 살것이며(고전15:52), 살고 있는 우리도 변화될 것이라고(52절)

      바울이 말한 참뜻은 존재의 두 국면 사이에 어느정도 연속성이 있다는의미이다

      바울은 신자들의 부활과 휴거를 말한 후에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7) 부활이나 변화후에 주님과 항상 있게 될 것이다.


나. 차이점:마22:30(막12:25,눅20:35)과 고전6:13절에서 말하고 있다.

  마22:30 “부활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리라.”

     천사와 같게 된다는 것은 천사처럼 육체적 몸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요점을 재확인할 뿐이다.

  고전6:13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은 이것저것 다

            폐하시리라.” (“폐한다”는 끝낸다, 없애버린다로 장차 육체의 소화기적

            기능이 필요치 않을 것이라는 뜻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고백해야 할 일은 성경은 부활육체의 정확한 본질에 대해 거의 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약간의 힌트가 주어졌으나 대부분의 문제에 관해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미래의 존재를 설명함에 있어서 부정법을 동원하여 묘사하고 잇다.

  :부패가 없음, 불명예스러움이 없음, 죽음과 눈물과 곡함과 울음과 고통이 없다.

  (고전15;42-43, 계21:4)


6. 최후 심판

  그리스도에 대해 어떤 반응을 나타내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은 이에 현세에서 심판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요3:18 “저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6,5:24참조)

  그러나 성경은 또한 역사의 종말에 최후의 심판이 있을것도 말하고 있다.(본장에서는 최후심판 다룸)


1)최후 심판의 목적(필요성)

 3가지 요점을 말할 수 있다.

 가. 각 사람의 최종적 운명을 나타내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최후심판때 각 사람의 신앙과 행위가 드러날때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구원을 통하여는 자기의 은혜를, 자기 원수들을 정죄한 일을 통하여서는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시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의 날의 핵심이 되는 것은 개인의 운명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나. 각 사람이 받게 될 보상과 형벌의 정도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러한 정도의 다소는 사람들이 살았던 삶의 질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최후의 심판 때에 해결되어야만 한다.

 다. 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행사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이제 각 사람에게 그들이 영원토록 지내야 할 장소를 정해주신다.(새땅,지옥)


**참고, 리톤(E.A.Lilton)

  “인간의 재판이란 엄격하게 조사의 과정이다....그러나 최후의 심판에서는, 재판장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증거가 필요 없으시다. 그는 자기 앞에 서 있는 각 사람의 성격과 역사에 대해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재판을 진행하신다.   ...이 위대한 날은 엄격한 의미에서 재판이라기 보다는 성고와 집행의 날일 것이다.”


2) 최후심판의 시기

  종말론적 시간표에 정확히 최후심판의 위치를 선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최후심판은 현세대의 종말에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벧후3:7,13,마13:40-43) 또 다른 성경에서는 심판이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행해질 것이라고 말한다.(살후1:7-10) 더우기 계20장에서 말하기를 심판이 대부활 후에 있을 거라고 기록했다.(계20:12) 그러면 최후심판은 어느 정도 지속될 것인가? 성경은 “심판 날”(마11:22) “그 날”(마7:22) “진노의 날”(롬2:5)에 관해 말한다. “날”이라고 쓰여진 단어는 종종 긴 시간을 의미한다.


3)최후심판의 상황들

가. 누가 재판장인가?

  수많은 셩경구절들이 하나님 아버지가 재판장이라고 증거하고 있다.(벧전1:17, 롬14:10) 신약에서의 대답은 그리스도가 재판장이시다는 점이다(요5: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행17:31, 딤후4:8, 고후5:10참조) 그리스도는 심판의 사역을 집행하심에 있어서 천사들과 성도들의 보좌를 받으실 것이다.

  마13:41-43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고전6:2-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마19:28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참고, 눅22:30)


나. 누가 심판받을 것인가?

 천사들(고전2:3) 범죄한 천사들 (벧후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

  시고 ...지옥에 던져”)

  (참고 유다서 6절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이 땅위에 살았던 모든 인간들 (마25:32, 롬2:5-6, 3:6, 계2012-13)

  --신자들도 포함된다(고후5:10 “우리 믿는자”들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참고, 롬14:10, 히10:30, 벧전4:17, 약3:1)

비록 신자들이 심판대 앞에 모두 나타나야 하지만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함이 없기 때문이다.(롬8:1) 또한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심판날에 담대함을 갖기 때문이다.(요일 4:17)


다. 무엇이 심판될 것인가?

  이 현재의 삶 동안에 이루어졌던 모든 일이다.(고후5:10)

  사람들의 행위, 말들, 생각등이 포함

마25:35-40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계20:12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리라”

         고전3:8, 벧전1:17)

엡6: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히6:10)

마12:36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라.”

고전4:5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목적들(동기들, 뜻들)을 나타내시리라.”

  그러나 반드시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신자들의 죄와 잘못들은(위에 언급한것) 용서된 죄들로서 심판 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죄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덮어진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미 말했던 것처럼 신자들은 심판을 두려워 할 하등의 이유는 없는 것이다. 있다면 그때에 신자들은 자기들이 행하고 말하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모두 설명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신자들이 늘 생각하고 산다면 그들은 현세에서 죄와 싸우고, 하나님께 대한 봉사를 게을리 하지 아니할 것이며 헌신된 삶을 살려고 계속 힘쓰게 될 것이다.


라.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판단기준은 하나님의 계시된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의 더 큰 계시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받는 자들은 그에 따라 더 큰 책임을 갖고 있다. 마11:20-22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니라”              

  신약에 나타난 계시를 전혀 받지 못한 자들은 그들이 가졌던 빛 아래서 판단받게 될 것이다.

  롬1:18-21 자연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만을 가졌던 자들도 그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지 못했을 때에 변명할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롬2:12,14-16 하나님의 풍성한 계시를 받지 못한 자들은 “그들 마음속에 쓰여진 율법의 사역”에 대해 취한 반응에 근거하며 판단하신다.

  많은 특권들을 가졌던 자들은 많은 책임을 갖게 될 것이요 적은 특권들을 가졌던 자들은 적은 책임들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버림받은 자들이 당하게 될 고통에도 “등급”들이 있는 것이다.

  이것에 관해 예수님은 눅12:47-48에서 말씀하신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는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 하나님의 계시의 풍성한 빛을 받은 자들에게 관해서, 즉 성경 전체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는 자들에게 관하여는,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그들이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의 완전한 의로움으로 옷 입었느냐이다. 사람의 영원의 향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자신들의 관계인 것이다.(요3:18,3:36, 요5:24, 롬8:1)

  그러나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즉 만일 그리스도에 대한 살아 있는 믿음이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면, 왜 성경은 그렇게도 끊임없이 최후심판은 행위들에 따라 판단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다음 문장들을 살펴보자.

  마16: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롬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계20:12 “죽은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22:12 “보라 내가 속히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

  구원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지 결단코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최후의 심판은 각자의 행위에 따라 집행될 것이라고 가르치는 이유는 신앙과 행위간의 밀접한 관계성 때문이다. 신앙은 행위들 속에서 그 자체를 나타내야 하며 행위들은 참된 신앙의 증거들이다 요한 칼빈이 잘 요약 했듯이 “의롭다하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그러나 의롭다 하는 믿음은 혼자가 아니다.”

  이 사실은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나있다.

약2:26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갈5: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람으로써 역사하는 믿

      음 뿐이니라.”

마7: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

       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다른 말로 표현한자면, 행위에 따른 심판은 실질적으로 믿음에 대한 심판인 것이다. 즉 증거로 나타난 믿음에 대한 심판인 것이다. 만일 믿음이 참이라면 그곳에는 행위가 있을 것이며, 행위가 없다면 그 믿음은 참이 아닌 것이다.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다’하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마25:31-46>

  심판의 장면:인자가 영광 중에 돌아와서 심판의 보좌에 앉게 된다. 모든 민족이 모이게 되자 우편에는 “양들”을 그의 좌편에는 “염소들”을 구별지어 나눈다.

  양과 염소들 모두의 최종적 운명에 대한 결정이 먼저 이루어진다.

  양:결정사항 “내 아버지께 복받은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34절)- 어떤 종류의 행위로 최종적운명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배제됨

            “나의 아버지의 복받은자들”-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의 대상들

            “상속”-노력해서 받아지는 것 아니고 항상 선물로 받아 지는것

            이들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에 의한 것임

  이제 임금은 “양”들에 대한 결정이 왜 옳고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이유를 나타내고 있다. 34~“ 왜냐하면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라를 상속받기 위하여 “양”들이 아무런 선한 일을 하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이 그들의 놀람속에서 증명된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즉 아무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오히려 그들의 놀람은 그리스도의 형제들에게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에게 참된 헌신을 표현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염소들: 그리스도의 형제들에게 사랑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결국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지 못했던 것이다.


4)최후심판과 상급

  구원은 분명히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게 될 상급들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눅19:12 므나의 비유-어떤 귀인이 먼 나라로 가면서 열 명의 종들에게 한 므나씩 줌

돌아왔을때  열므나를 남기종(16절)-“제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17절)

            다섯므나를 남긴 종-“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19절)

  * 중요한 사실:주어진 상급의 변수는 종들이 원래 받았던 므나와 이익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이 비유의 중요한 교훈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을 충실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섯고을, 열고을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은 최소한 어느 정도의 중요성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상급이란 기쁨이라는 측면보다는 증가되는 책임의 문제라는 것인 듯하다.

<고전3:10-15>

  11절:사람이 세워야 할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 터 위에 건물을

        어떻게 지어 나아가느냐가 문제였다.

  13절:사람은 터위에다 금, 은, 보석 그리고 나무나 풀, 짚으로도 지을 수 있다.

  14-15절:각 사랑의 공격을 시험하게 될 불에 대하여 언급한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위에서 두 종류의 건축자 : 모두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 받음 (둘다 예수님의 터가 된

                          기초 위에 세웠기에)

  상급 : 불의 시험을 거쳐 남아난 집을 지었을 때 받음.

  (불의 시험을 통과치 못한자의 손실-구원상실이 아님 15절 “불가운데서 도망나온”자와 같은 구원얻음. 상급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터 위에 사람이 어떤 재료들로 집을 지어 나가느냐와 밀접한 함수관계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의 삶의 질과 상급은 비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차 신자들에게는 상급이 있음이 명백함을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마5:11-12, 6:19-21, 눅6:35, 막9:41, 마25:23) 그러나 예수님은 못박아 말씀하시기를, 그러한 상급들은 인간의 공로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특히 눅 17:10에서 이러한 핵심이 잘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다 행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분명히 상급도 공로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선물이다. 그러나 우리의 행위와 우리의 미래의 상급사이의 관계는 기계적으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음악을 공부하여 어떤 음악기구를 잘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자. 그렇다면 그의 음악을 즐기는 능력 역시 크게 증가될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을 위한 우리의 헌신과 봉사가 커질 수록 지금과 미래의 그리스도의 왕국의 축복들을 향유할 수 있는 우리의 용량 역시 커질 것이다.


5) 최후심판의 중요성

가. 세상의 역사는  무의미한  원형의 끝없는 연속이 아니라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운동이다.

. 구원과 영원한 축복상태는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각 개인의 관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최후심판의 날은 최종적으로 나타낼 것이다.

다.심판의 날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며 특별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우리 모든 각 개인들이 도덕적 노력을 게을

  리 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라. 심판의 날은 하나님의 최종적 승리와 역사속에 그의 구속사역의 최종적 승리를 의미한다. 즉 그 날은 모든 악에 대한 최종의 결정적 정복의 날이며 죽음 당하신 어린양의 승리가 최종적으로 계시되는 날이다. 심판의 날은 모든 의심의 그림자를 넘어서 세상 끝에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이루어졌음을 드러낼 것이다.


7. 최후상태

  이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나타났던 자들의 최종상태를 논의하게 될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듯이 이 최종상태는 영원한 비참 이든지 영원한 행복이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될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새 땅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자들은 지옥의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될 것이다.

본장에서 신자와 불시자의 최후상태를 논할 것이다.


1) 영원한 형벌


가. 영원한 형벌에 대한 교리를 부정하는 두가지 형태 : 보편주의,전멸주의

 a. 보편주의(universalism)-지옥과 영원한 형벌은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개념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결국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주장:오리겐(AD.185-254)-인간 뿐 아니라 마귀와 귀신도 구원받게 된다.

        만인 구원론이 1961년에 결성된 Unitaria Universatist Association에 의해

        주장 (1975년 1,019개교회, 21만명의 회원 가짐)

 b. 전멸주의 (Annihilationism)-두가지 형태가짐

  첫째형태 :인간은 죽지 않도록 창조되었으나 계속적으로 죄를 짓는 자들은 불멸성

            을 탈취 당하게 되고 완전히 전멸되어 버린다.(비존재 상태로 환원)

  둘째형태(조건적 불멸성) :사람은 죽도록 창조되었으며 신자들은 은혜의 선물로써

            불멸성을 받게 되고 따라서 사후에 축복상태 속에서 계속적으로 존재하

            게 된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이러한 은혜를 받지 못해서  죽음의 때에

            완전히 소멸되어 버린다.

   주장  AD 4세기경-아르노비우스(Arnobius)

          16세기-소시니안파(the socinians)

          현시대-제칠일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모두 영벌을 부인)


나. 영벌에 대한 성경적 증거

a. 그리스도의 가르침

  “사랑 많으시고 현명하신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나타난 그 어떤 사람보다 지옥에 대해 더 많이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은 참으로 사고를 자극하는 놀라운 일이다”(뷰이스)

마5:22, 29-30, 10:28, 18:8-9, 막9:43, 마13:41-42, 25:30

  “지옥”(헬라어 geenna), 영어 단어 게헨나 (gehenna)

  눅16:23절에서 ‘음부’(hades)가 중간상태 시의 형벌의 장소를 의미하고 있음을 보았

다. 그러나 최후의 장소를 가지키는 신약의 단어는 종종 지옥으로 번역되는 Gehenna이다. 이 단어는 “힌놈의 골짜기”를 의미하는 아람어 표현 gee hinnom으로 부터 나온 헬라어 단어다.

  “힌놈의 골짜기”: 예루살렘 남쪽의 계곡, 거기서 아하스와 므낫세 왕의 시절에(왕하16:3, 21:6, 렘32:35)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암몬의 신 몰렉에게 제물로 바쳤던 곳이다. (렘7:32, 19:6 참조)

  또한 이 골짜기는 예루살렘의 쓰레기를 소각했던 곳이다.

  더우기 이 골짜기는 죄와 저주의 대명사가 되었고  따라서 Gehenna 라는  단어는 종말론적 지옥불 혹은 최후의 형벌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사용되었다.

  우리가 이 단어의 용도를 계속 살펴본다면 gehenna 의 형벌은 결코 끝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마10:28, 5:29-30 지옥의 고통들은 영혼과 육체위에 내려지는 고통들이며 따라서

    육체의 부활을 전제한다.

 마18:8-9 예수님께서 영원한 불에 대해 언급하신 곳으로 그 중요성이 있다

     (예수님은 지옥불이 어느날엔가 풀려나올 수 있는 잠정적형벌이 아니라 영원한

      것임을 가르친다.)

 막9:43,48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옥의 형벌이 끝이

      없음을 나타낸다.

 마13:41-42 지옥의 아비규환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자책과 낙망적인 자기 저주

      나타냄)

 마25:30 또 다른 공포의 다른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바깥어두움:버림 받은 자의

      비참한 고독과 하나님의 은혜로운 교제로부터 영원한 분리)

 마25:46 악한자의 형벌과 구원받은 자의 축복이 얼마나 지속되는가를 동일한 형용사

      를 사용하고 있다.(영원한 (aionion)형벌과 생명)

    “아이온이오스”-3가지의미󰠆󰠏시작이 없는   --->  아이온이오스가 하나님의

      (aionios)             󰠐 시작이나 끝이없는   백성이나 악인 등의 미래,운명

                            󰠌󰠏끝이없는            을 묘사하고자 할 때 그 뜻은

                                                  세번째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끝없는 미래의 축복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신약에서 aionios가 사용되었다. (마25:46, 요10:28, 딤후2:10, 고후4:7, 18, 5:1)

b. 사도들의 가르침

  살후1:7-9 잃어버린자의 고통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딤전6:9)

  히10:28-29,31 하나님의 아들을 저버린 자들의 비운을 말하고 있다.

  계14:10-11,4:9 하나님이 영원하신 것처럼 버려진 자의 고통도 영원하다.

  계21:8 버림받은 자의 형벌을 묘사하고 있다.(20:10,14,15)


* 성경의 증거들을 개괄해 보았다. 성경의 증거를 정말로 진지하게 다룬다면, 우리의 교리를 성경에 근거하여 전개시킨다면 우리는 버림받는 자들의 영원한 형벌을 믿게 될 것이다. (겸손히 받아들여야 함)

  버림받은 자의 고통에 있어서도  “차등”이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며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각 사람은 자기들이 받아야 할 만큼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다. 지옥의 장소성

  중세기: 지구위의 저 공중 어느 한 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현대과학에 맞지않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이란 성경의 자료에 동의하면서 어디엔가 지옥이라고 불리우는 곳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라. 영원한 형벌에 관한 교리의 중요성

  지옥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설교와 성경 가르침에 더욱 진지하도록 인도한다. 우리는 망설임과 슬픔 아마도 눈물마져도 가지면서 지옥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다 지옥의 교리는 우리로 하여금 선교적인 일에 대하여 열정과 긴급성을 갖게 한다.

  만일 저 먼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못하여 그리스도 없는 영원의 형벌을 향하여 가고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복음을 그들에게 전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2) 새로운 땅

  성경은 가르치기를 믿는 자들이 죽은 후에 하늘 나라에 간다고 한다.

  죽은 후와 부활사이 동안을 가리켜 “중간상태”라고 하는데 이러한 상태 속에서 신자들은 즐거워 할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그들의 육체의 부활을 기다리며, 동시에 하나님이 자기의 구원사역의 결정체로서 창조하실 새 땅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새 땅에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이다.


가. 새 땅에 대한 교리의 중요성

 a.장차 올 생명 (부활)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중요하다(계21:1-3)

  신자들이 마지막 상태를 생각할 때 새 땅을 생각하지 않는 습관은 장차 올 새 생활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곡해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b.하나님의 구속계획의 충만한 다양성들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셨다. 그러나 인류의 타락으로 저주가 선포되었다. 하나님은 죄의 결과들로부터 창조세계를 구속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역은 단순히 얼마간의 인간만을 구원하시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이란 이 모든 창조세계를 죄의 영향력들로부터 구속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원대한 목적은 하나님의 새로운 땅이 도래할 때 비로서 성취된다.

 c.구약의 예언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11:6-9


나. 새 땅과 현재의 땅과의 관계성

  새 땅이란 현재의 땅과는 전혀 다른 땅인가 아니면 현재의 땅이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사65:17과 계21:2에는 “새하늘과 새 땅”에 관해 말하고 있다.

“하늘과 땅”이란 표현은 전 우주를 지칭하는 성경적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늘과 땅은 함께 우주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당면한 질문은

“현재의 우주는 완전히 소멸되고 현재의 우주와는 전혀 별개의 새로운 우주가 등장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우주는 현재의 우주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되 오직 새롭게 되고 정화된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에 열거할 4가지 이유 때문에 우주는 완전히 소멸한다는 입장보다 우주가 새롭게 된다는 의견을 받아들인다.

 a.벧후3:13과 계21:1을 살펴볼때, 새 우주의 참신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네오스”(neos)가 아니라 “카이노스”(kainos)임을 주목 할 필요가 있다.

    neos:시간과 기원에 있어서 전혀 새 것이라는 뜻

    kainos:본성이나 질에 있어서 새롭다는 뜻

  그러므로 새하늘과 새땅이란 의미는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우주의 출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주와 동질이되 영화롭게 갱신된 우주의 창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b.롬8장에 나타난 바울의 주장에 근거를 둔다.

  8:20-21에 나타난 바울의 요점은 장차 종말에 현재의 창조세계가 전혀 새로운 세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패로부터 자유케 될 것이라는 점이다

c.새 땅과 신자들의 부활한 육체들을 비교해서 설명해 보면 명백해진다.

  현재의 육체와 부활의 육체 사이에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듯이 새 땅은 현재의

  땅과 전혀 새로운 종류가 아니라 놀랍게도 새롭게 변한 현재의 땅이다.

d.만일 하나님께서 현재의 우주를 완전히 소멸시키셔야  한다면  결과적으로 사단이 승리를 쟁취하게 된다.

  사단이 현재의 우주와 창조질서를 치명적으로 부패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현재의 창조세계는 치유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으며 하나님도 병든 우주를 어떻게 다루실 수 없어서 결국 완전히 소멸하게 되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사탄은 이러한 승리를 쟁취하지 못했다. 오히려 정반대로 사단은 결정적 패배를 맛보았다. 사단의 결정적 패배의 결정은 하나님께서 사단이 그토록 부패시키려고 힘썼던 바로 이 땅을 새롭게 하시고 사단의 악한 음모의 결과들을 이 땅에서 부터 완전히 제거하실 바로 그 때이다.


다. 새 땅에 관한 중요 성경구절

   사65:17-25, 66:22-23, 벧후3:13, 계21:1-4


계21:1-4(성경 전체 중에서 새 땅에 관해서 가장 즉적으로 묘사)

1절 “새로운”(카이노스,kainos)이란 단어는 새하늘과 새땅의 “새로움을 묘사하기 때문에 이상에서 요한이 본 세계는 지금의 것과는 전혀 다른 우주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우주가 영화롭고 새롭게 된 상태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영화롭게 된 하나님의 교회 전체를 상징하는

    용어이다.

 3절 하나님의 처소는 땅위에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다.(하늘과 땅이 하나가 될것임)

 4절 새 땅에는 눈물이 없을 것이며 애통함이나 고통함도 다 지나갈 것이다.


22:1-5(새 땅에 대한 묘사)

 2절. 모든 나라들이 평화중에서 공존한다.

 3절. 인간의 타락 이후 모든 피조물의 세계에 내려진 저주가 제거될 것이다.

 5절.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를 섬길 것이다.하나님의 종들이 영원무

      궁토록 통치하게 된다.


20:4(영광의 생명과 삶의 가장 높은 환희와 위대한 특권을 말함)

  “그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며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한 마디로 새 땅에서 산다는 가장 확실한 표식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완벽하게 알게되며, 하나님을 완벽하게 기뻐할 수 있게 되며, 하나님을 완벽하게 섬기게 되는 것이다.


    [결  론]


  그러므로 새 땅에 대한 가르침은 우리에게 무한한 소망과 용기를 그리고 절망과 좌절의 이 세상 속에서 낙관적으로 살게끔 한다. 비록 악이 이 세상에 횡횡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이미 최후의 승리를 확보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우리는 무한한 안위를 얻게 된다.

  이미 말한 것처럼 이 땅과 새 땅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는 동시에 불연속성이 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로서 우리는 현재의 땅이 완전히 소멸되는 것으로 간주해서도 안되고, 또 그렇게 되는 것을 기뻐해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더 좋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왕국을 충만하게 노출시키기 위해서 힘쓰는 우리의 노력들은 영원한 가치가 있는 값진 것들이다. 현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면서 죄와 투쟁하고 (개인적 이건 기관적이건) 선교를 전개하기도 하며 기독교 특유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증진시키는 모든 노력들은 이 세상에서뿐 아니라 장차 올 새 나라에서도 값진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새 땅에서 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비공개

출처 : 말씀의 공간
글쓴이 : 착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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